2014. 9. 15. 22:11ㆍ들꽃다회
북한산 달빛다회 - 넷
/ 20140911~12(음력 8.18~19일) 목~금요일,
맑음 & 가끔 구름
북한산 등산코스 개념도
만경대( 일명 : 만경봉 萬景峰 ,국망봉 國望峰)
- 만경대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수도 한양 도성 곳곳을
백운봉에서 조망 보다 더 잘 볼 수 있다.
백운봉 백운대는 삼각산 주맥에서 서북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으며,
서북쪽으로 시자봉, 영취봉(염초봉), 원효봉을 거쳐 효자동에서 그 맥이 끝나고,
앞쪽에 있는 만경대가 시야를 가려 도성을 다 볼 수 없다.
도성의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다는 뜻의
만경봉,만경대(萬景臺)나 국망봉(國望峰)이나
그 이름의 뜻이 하나로 모인다.
마치 원효대사가 그의 저술 <판비량론(判比量論)>에서 천진무애(天眞無碍)한
그의 사상을 펼쳐 당시 당나라의 최고지성이라는 서유기의 모델이셨던
삼장법사 현장의 인명학(因明學)을 뛰어넘어 이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당시 동북아의 최고 지성으로 우뚝 서신 것 처럼,
모든 것을 한번에 볼 수 있을 때 저절로 자재무애(自在無碍)함으로 모여진다.
나중에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이율배반론(Antinomy)>도
이러한 원효의 무애자재함을 배우지 못하여,
스스로 논리학의 모순 속에 빠져드는 길을 가게 된다.
이러한 논리학의 혼란은 니체의 니힐리즘으로 발전하게 되고
기존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또 다른 절대자를 찾아 헤메게 되는 서양의 철학사상은
후에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정치지도자들이
이 니체의 또 다른 절대자인 초인을 갈망하는 사상을 차용하여
현실세계에서 정치적 초월자를 만드는 나치즘과 파시즘의 기본원리로 삼아
세계대전의 대혼란기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효가 이 <판비량론>를 지어(탈고 671년) 당시 당나라 최고 지성인 현장스님의
인도 진나(Digna"ga)의 불교인식논리학을 받아들인 현장법사의 논리학 이론서인
<인명입정이론(因明入正理論)>을 신랄하게 비판한 당시 한반도 내의 상황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웅진과 평양에 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영구지배의 야욕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던 시기였고,
바로 이때에 당나라 최고 지성을 비판함으로서
우리의 배달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당(唐)의 영구지배의 야욕을 잠재울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도 또한 큰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원효대사의 <판비량론>을 언급하는 것은 현 북한산(삼각산)의 최고봉인
백운봉 백운대로 오르는 네갈래의 길 중에서 삼국시대 당시 주 교통로였던
한산(현 서울) ~국내성(현 집안) 간 마차로가 벽제~무악재 방향으로 나 있어서
북한산성마을을 통하여 비류와 온조가 이 산을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선조의 법궁인 경복궁~ 북악산~ 형제봉~ 보현봉
~문수봉 ~ 의상능선으로 이어지는 보현행(普賢行)의 능선에는
화엄학의 대가이신 의상대사와 관련된 의상봉 ,
왕실을 의미하는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등의 이름을 붙혀놓아
우리 배달민족을 다스리는 왕실이 조선을 연화장세계로 만들려는 염원을 담고 있는 반면에,
현 북한산의 최정상으로 향하는 다른 접근로에는 원효봉~ 영취봉~시자봉~ 백운봉의
이름으로 정하여 놓아 천진무애한 선(禪)적인 기상으로
최정상에 도달하고 또 그것을 간직하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크게 미련한 생각의 편린 때문이기도 하다.
백운봉 백운대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있는 큰바위 얼굴
<판비량론>을 통해 본 원효
인도의 진나(Digna"ga)에 의해 집대성되었던 불교인식논리학,
즉 인명학(因明學)은 <서유기>의 주인공인 유학승 삼장법사 현장에 의해
당나라에 소개된 뒤 다시 신라에 수입된 학문이었다.
현장의 번역물들을 통하여 변방 신라에서 인명학을 연구한 원효는
이러한 인명학 이론에 입각해 현장의 신역 불전에 실린 다양한 논증식
뿐만 아니라 현장 자신이 고안한 논증식에서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는,
어찌보면 무모할 수도 있는 일을 벌였다.
인도니 중국의 그 누구도 감히 비판하지 못하였던 현장의
"유식비량(有識比量)"과 " 대승불설을 증명하는 논증식"을
이율배반(상위결정 相違決定)에 빠뜨리기도 하고,
소거법(消去法)이라는 기발한 방법을 고안하여
인명학의 난제 중의 하나였던
"상위결정인이 부정인(不定因)에 속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도 하였다.
<판비량론>의 원효는 화쟁가(和爭家)라기보다
철저한 논쟁가였으며, 그 작업은 치밀하고 정확하였다.
그 뒤 이러한 원효의 학문적 능력에 감탄한 당(唐)의 학승들은
원효를 진나의 환생이라고 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 동국대학교 김성철 교수의 <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 2003.10월 刊
386 쪽에서 인용....
산씀바귀
- 햇볕을 받으면 꽃잎이 활짝 피어나
매개곤충의 눈에 잘 띄이게 하여 꽃가루받이를 도우며,
저녁 때나 흐린 날에는 꽃잎을 오무려 모아
찬바람이나 찬비를 막아주어
암술과 수술, 씨방 등 식물의 생식기관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생리작용들이 멈추지 않게끔 스스로 보호한다.
*****니힐리즘과 새로운 가치의 창출
니체는 서구 기독교의 가치를 전부 무의미한 것으로 바꾼 사람이다.
니체는 자신의 '우주론적 가치들의 붕괴'라는 제목이 달린
단편 2번(ⅩⅤ145쪽 이하)에서 니힐리즘에 대해
"그것은 '최고의 가치들(die obersten Werte)'이
무가치하게 된다는 것이다(sich entwerten)."라고 메모를 남겼다.
주체성의 형이상학의 완성 : 니체
전통 형이상학의 주지주의적 관점은 사물의 본질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니체는 모든 사물에게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원리는 의지의 작용이거나
혹은 맹목적인 충동의 산물로 보는 입장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연장선에서
니체 사유의 고유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니체의 초인에 대한 교설
하이데거는 이러한 초인의 교설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최고의 승리를 구가한다"고 평했다.
그리고 니체에게서 발견되는 초인의 개념은
에른스트 윙어(Ernst Jünger, 1895~1998)에게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로서
노동자와 군인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오늘날 존재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현실적인 것
전체를 규정하는 형상을 노동자와 군인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이로써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자가 되었고
스스로 이데아와 신의 영역에 자리하게 되었다.
영원회귀와 소멸에의 복수의지
니체는 생성과 소멸하는 것에 대해 감당 못하는 나약한 인간들이
여기에 복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초시간적인 이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정립하여
시간적인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경멸했고
또 『파이돈(Phaidon)』에 보면 소크라테스(Socrates)가
자신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구절이 나온다.
니체는 이것을 매우 비겁한 것으로 보았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소멸에 대한 복수 정신과
생에 대한 경멸의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복수정신을 통해서 내세는 보장되겠지만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이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니체에게서 시간에 대한 긍정은
'사라짐이 공허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의욕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다.
하이데거는 니체가 생성은 긍정하지만
함께 결합될 수밖에 없는 소멸은 긍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마치 소멸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영원하게 되돌아오는 것을 긍정한다는 것이다.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서영화 교수의 강의노트 중에서 인용.....,
백운대로 올라가는 철계단
인수봉 (옛 부아악 負兒嶽)
- 이 부아악을 마주 대하려고 밤새워 달빛을 벗삼아 밤길을 걸어왔다.
부아악은 귀바위가 있는 인수봉의 옛이름이라기 보다 삼각산이라고 불리워지기 이전에
현 북한산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인 듯하다.
삼국사기에 이 아이를 업고 있는 듯한 부아악에 동명왕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올라 도읍터를 살펴보고 나서
한강 건너편인 위례성에다 한성백제의 도읍을 정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 즉금의 한국정치상황을 하이데거의 "니체의 초인에 대한 교설"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에른스트 윙어의 "현실적인 것 전체를 규정하는 형상인 노동자와 군인"의
명제에서 한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금방 파악하게 된다.
여야의 선거를 통한, 또는 군사적 정변을 통한 집권과정과
집권 후에 일어나는 권력투쟁 양상은 서양에서 이미 용도폐기된
"초인에 대한 교설"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답답하기 그지 없다.
국내 정치경제, 외교국방 등 모든 상황을 국가수반인 정치지도자
한사람의 결정과 선택에 의존하려는 왕정복고적인 발상의 경향이
각 이해당사자들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음이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에른스트 윙어가 규정한 노동자와 군인들로 대표되는 집단들에서
자신의 이해관계 관철과 기득권의 유지를 위하여
끊임없는 투쟁과 상대방을 불인정함에 매진하고 있음도 동시에 나타난다.
다만 국내 정치 현실에서는 노동자와 군인 뿐만 아니라
기업가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있는 급진적 진보주의자들이
더하여지고 있으나, 큰 범주 내에서 보면
이들도 권력과 부의 획득 또는 유지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와 군인으로 대분되고 있는 그룹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기업체 중에서 특히 대재벌로 분류되는 집단에서
전근대적인 왕정복고풍의 구습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며,
대기업의 임직원들에게는 신민(臣民)의식이 강하게 잔존하고 있다.
이러한 전근대전이고 왕정복고적인 신민의식(臣民意識) 경향과
노동자와 군인들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력집단과의 마찰과 갈등이
오늘의 정치경제 상황을 난마(亂麻) 처럼 얽히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음이
사회 각 계층이 속하고 있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잠재적이고 전근대적인 신민(臣民)의식과 현대적인 시민의식이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유불리에 따라서
수시로 그 주장하고자 하는 바와 태도를 바꾸어가며 나타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논리학적인 면에서의 혼란은 시간이 지나갈 수록
현실세계의 혼동과 무질서로 나타나기 마련이며,
이러한 면에서 동서양 고전철학과 논리학의 융합과 통섭작업이
한시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가까운 장래 예견할 수 있는
더 큰 혼란을 피하고 여기에 수반되는 무질서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1400여년 전에 원효대사님과 같은 논리학의 대가가
이 땅에 오셔서 당나라 영구지배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여 우리 배달민족을 구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모화사상일 뿐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한 서구중심의 세대들이
우리의 뿌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음을
이 원효봉이 바라다 보이는 백운대에 올라 다시 한번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수봉 저 뒤로 수락산이 멀리서
이 한양의 진산(鎭山)을 옹위하고 있다.
불암산과 연무에 가려진 햇님
옅은 연무와 불암산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원효의 <판비량론 >의 비교
인간의 이성적 추리 과정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순수이성비판>과 <판비량론>은 그 저술 동기가 비슷하다.
그러나 칸트가 이해한 이성의 성격을 파악하고 나면 ,
두 사람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간극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ㅡ 중략 ㅡ
캠프 스미스 같은 칸트 연구가는 칸트가 이율배반에 직면한 이유를 두고,
그가 물자체(物自體)와 현상이라는 두 세계를 나눈 뒤
정립은 물자체의 예지계에, 반정립은 사물의 현상계에 해당하는
입론이라고 한 것을 지적한다.
물론 원효도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라는 두 세계로 나눈다.
한신대의 김상일 교수는 상위결정(相違決定) 혹은 이율배반이
반드시 무한 혹은 전체의 문제와 관계되어 있다고 본다.
그 결과 물자체는 현상계와의 자기 서술과 자기 비동일성이라는
제3의 인간 역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상일은 이율배반의 유래를
멀리 <파르메니데스>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 하략 -
한신대학교 철학과 김상일 교수의 <원효의 판비량론 비교 연구>
- 원효의 논리로 본 칸트의 이율배반론 , 2004. 9월 刊, 지식산업사
423~424쪽에서 발췌....
*******파르메니데스(Παρμενίδης, 기원전 510년경 - 기원전 450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엘레아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남이탈리아의 엘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모든 진리의 바탕은 바로 이성인데,
이성에 의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제논의 스승이며, <자연에 대하여>라는 시를 지었으나 일부분만이 남아 있다.
영향[편집]
존재와 무(無), 일자(一者)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로 플라톤에게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존재론은 사실상 플라톤의 존재론에 거의 그대로 흡수되어,
이후 2000여년 동안 서양 철학의 핵심인 존재론과 인식론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논리에는 고대 희랍어의 언어적 오류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
핵심적인 논리에 삽입되어 있어, 이후 많은 논쟁을 낳았다.
- 위키백과 자료 중에서.....
***** 한신대의 김상일 교수는 서양철학의 이론과 연구에는 깊은 조예를
가지고 계신 분이나, 모든 불교의 인식논리학을 서양철학의 접근개념인
인식학적인 즉 유식학(唯識學)적인 입장에서 전개하려다 보니 ,
그의 <원효의 판비량론 비교연구>라는 저술에서도 그 한계와
잘못된 인식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불교의 인식논리학은 인식(認識)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식론(唯識論) 뿐만 아니라 무식론(無識論)의 이론적인 접근을
함께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지 못한 연유로
여러 곳에서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서양철학 전공자들이 무식론이나 무색계(無色界) 등을
너무 인식학적인 논리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는 까닭으로 보인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밑바탕을 흐르고 있는 공(空)사상, 관(觀)의 논리
또는 용수(龍樹 나가르주나)와 무착(無着 아상가)의 중관사상 등을 통하여
접근할 수 있는 데에도 여기에 대한 이해와 체득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며, 뚜렷한 결론의 도출없이
지식의 나열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못내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비교연구를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는
그의 연구열의를 높히 살만하다.
이렇게라도 동양과 서양철학의 비교연구를 시작하는 분이 계셔야
후학들이 동서양철학과 사상을 서로 융합하여 통섭의 장을
만드는 기초를 놓아가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이령 가는 계곡 너머 수락산
만경대 정상에 있는 바위
애완용 바둑이를 닮은 바위
앞발을 모으고 재롱을 떠는 모습이다.
만경대와 병풍암 뒤로 보이는 남산
병풍암과 노적봉 사이로 보이는
형제봉~사자봉~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형제봉능선,
문수봉과 나한봉 ㅡ> 의상능선
천아(天鵝 하늘거위)를 닮은 바위
-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금(金), 청(淸)나라 시절에
금역으로 지정되어 봉금(封禁)되어 출입을 못하고 있을 때,
혜산에서 압록강 건너편의 장백진(長白鎭) 근처에 있는
망천아산(望天鵝山)에 올라 영산인 백두산을 바라보며
제(齊)를 지냈다고 전한다.
망천아산은 천아(天鵝)를 바라보는 산이라는 뜻으로
백두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정상부근에 있는 흰눈과
화산재인 흰 부석(浮石)이 마치 유유히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한마리의 하늘거위(天鵝) - 고니(白鳥)를 닮은 형상이여서 붙혀진 이름이다.
이처럼 하늘거위(天鵝)를 닮은 바위가 백운대로 올라가는
철계단 초입부에 있는 것은 조화옹(造化翁)의 재주로 여길 수 밖에 없다.
남산을 당겨서 찍어보다.
만경대 너머로 남산이....
- 형제봉에서 달빛다회와 백운대까지 유산(遊山)에서는
엊그제 남산 한가위 달빛다회 때 팔각정 앞에 있는
음용수대에서 떠온 물을 사용하였다.
앞에 천아암(天鵝巖)
중간열 좌로부터 만경대, 노적봉.
뒷열 형제봉~ 보현봉 간의 형제봉능선, 문수봉, 나한봉, 의상능선 끝부분
원경 : 희미한 남산, 관악산,삼성산
고려 때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詩
젊은 날 절간에 머무르며 공부할 제
小年挾冊寄僧窓 소년협책기승창 이요.
샘물소리 은은히 들려왔었지....
靜聽飛泉灑石矼 정청비천쇄석강 이라.
저 멀리 서쪽 암벽에는 햇볕이 반짝이고
遙望西崖明歷歷 요망서애명역역 하고
종소리만 이따금 석양의 적막을 두드리네.
數聲鐘向夕陽撞 수성종향석양당 하네.
아득한 태초에 깍아 세운 세 봉우리
三峯削出大初時 삼봉식출대초시 요
하늘을 가리키는 신선의 저 손바닥 천하에 없는 절경이로세.
仙掌指天天下稀 선장지천천하희 로구나!!
삼각산의 참모습이야 어릴적부터 들어서 알았었지
自少己知眞面目 자소기지진면목 하니
" 이 산 뒤에 양옥환(楊玉環)이 산단다. " 고....
人言背後玉環肥 인언배후옥환비 하고....
***** 양옥환(楊玉環) : 양귀비(楊貴妃)의 이름이며 재색(才色)을 겸비한
절세의 미인으로 당나라 현종이 매혹되어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 함.
형제봉 정상에 있는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 형상의 바위
- 손각대 사용으로 사진이 많이 흔들렸음.
북한산 등산지도
멀리 보이는 도봉산 오봉(五峰)
도봉산 오봉
인수봉 뒤로 수락산
조선시대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의 詩
백운대의 모습은 어떠한고? 하물백운대 한가? 何物白雲臺
하늘높이 치솟아 북두칠성을 뚫었네. 통천삽두괴 하도다. 通天揷斗魁
당당히 올라 오악(五岳)과 어깨를 견주니 거연오악적 하니 居然五岳敵
천지(天地). 음양(陰陽)의 두 세계를 지니고 있네. 자유이의래 하도다. 自有二儀來
울창하고 무성한 그늘이 백운대와 조화를 이루어 창취음상합 하여 蒼翠陰相合
물안개에 가리운채 혼돈하고 홍몽(鴻濛)한 홍몽기불개 하네. 鴻濛氣不開
모습만 어렴풋하네.
시로서 이 장관을 묘사할 길 없으니 부시무걸구 하니 賦詩无傑句
적선(謫仙: 李白)의 시재(詩才)가 아쉽기만 하여라. 환억적선재 하니라. 還憶謫仙才
인수봉 뒤로 수락산과 불암산
불암산과 망우산
개여뀌
- 백운대 바로 아래 인수봉 쪽 호랑이굴로
내려가는 초입부 생태복원지에서...
백운대 철계단에 까마귀
백운대 정상 바로 아래의 생태복원지
도봉산 원경
- 좌로부터 오봉능선,칼바위, 주봉,신선대,만장봉, 자운봉 ,선인봉
도봉산 여성봉, 오봉
여성봉, 오봉 , 오봉능선, 도봉산 암봉들
형제봉을 당겨 찍어보다
- 희미한 원경은 관악산
티베트의 쫑카빠 대사(大師)
한국에서 통일신라 초기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계셨다면
설역고원(雪域高原)의 티베트에서는 종카빠 대사 (Tsong Kha pa 1357~1419)가
계시며,그것도 700 여년의 시차와 중원 땅을 중간에 둔 히말리아 남쪽 고원과
한반도 라는 지리적인 거리를 두고서 논리학의 대가가 활동한다.
쫑카빠 스님은 당시 타락해 있던 티베트불교를 청정계율로써 개혁하고,
아띠샤의 <보리도등론(菩堤道等論)>에서 나타난 상중하 세단계의
중생 근기와 각각의 다른 근기에 따른 수행체게의 이론을 계승하여
<보리도차제론(菩堤道次第論)> ,< 밀도차제론(密道次第論)>,
<입중론선현밀의소(入中論善顯密意疏)> , <중론정리해소(中論正理海疏)>,
<판료불료의선설장론(辦了不了義 善說藏論)> 등의
각종 논소(論疏)들을 집대성함으로써 경율론, 삼장과 현교, 밀교 등을
모두 통합한 독자적 체계를 확립하여 티베트불교를 중흥시키고
겔룩파의 창시자가 되었다.
불교학파 중에서는 용수의 견해를 불호(佛護 붓다빨리따)와
월칭(月稱 짠뜨라끼르띠)의 견해로 해석한
중관귀류파의 이론을 자신의 입장으로 취하였다.
쫑카빠 스님은 티베트불교에서 전무후무한 대학자일 뿐만 아니라
수행의 측면에서도 티베트의 제2의 부처님으로 숭배되고 있다.
전기에 따르면 쫑카빠 스님은 사후에 중음 상태에서 밀교의
수행법에 의해 성불하였다고 한다.
수제자로는 갤찹다르마린첸, 캐둡겔렉뺄상, 겐뒨둡 등 세명이 있고,
그 중에 겐뒨둡이 바로 현재 14대까지 내려온 제1대 달라이 라마이며,
앞의 두분 스님의 주석서들이 겔룩파의 각 강원에서 교재로 채택되어
널리 배우고 있다.
쫑카빠 대사의 저서 <판료불료의 선설장론>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어느 누구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설령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부처님의 말씀일지라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원효대사의 <판비량론(判比量論)>에서
보여주신 논리성의 우선과 궤를 같이한다.
그것은 부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기도 하며,
위 <판료불료의 선성장론>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절로 인용되어 있다.
" 비구들이나 지혜로운 이들은
금을 태우고, 자르고, 문질러 보듯이
잘 검토해 보고나서
나의 말을 받아들이도록 할 것이지,
존경심 때문이어선 안된다."
바로 이 인용문에서 티베트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자인 겐뒨둡을 제1대 달라이 라마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있음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그의 <판료불료의 선설장론>에서 "<무진혜경>에 의거한 입장"
내용 중 <중관장엄론>에서 인용한 구절을 소개한다.
" 두 가지 이치의 마차를 타고
논리의 고삐를 쥔 자
그들은 그로 인해 여실한 뜻
대승(大乘)을 얻는다. "
- 쫑카빠 지음, 범천 역주 < 불경 요의와 불요의를 분별한 선설장론
(辦了不了義 善說藏論)> 2014. 1월 , 도서출판 운주사 刊
에서 발췌......
역주(譯註) 범천 스님 : 1999년에 출가하여 여수 석천사 진옥 스님을
은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2004년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한 Institute of Buddhist Dialetics에 입학하여,
2006년 달라이라마를 계사로 사미, 비구계를 받았다.
현재 IBD에서 수학 중이다.
옅은 연무에 희미하게 보이는 남산
만경대와 서울시내 원경
- 사진 중상단부에 희미하게 여의도 쌍둥이빌딩이 보인다.
불암산과 원경의 화악산, 축령산
수락산 원경
도봉산 등산지도
인수봉과 도봉산
북한산 상장능선과 도봉산
백운대 정상에 새겨진 삼일운동 암각문 안내판
삼일운동 암각문
하산길에 돌아본 인수봉과 도봉산
좌로부터 도봉산 여성봉
, 오봉, 오봉능선,
칼바위,
주봉, 신선대,만장봉, 자운봉 ,선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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