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달빛다회 - 셋

2014. 9. 15. 21:35들꽃다회






       

             북한산 달빛다회 - 셋


               / 20140911~12(음력 8.18~19일) 목~금요일, 

                                   맑음 & 가끔 구름








노적봉 정상부

- 왼쪽 바위 위의 검은 점이 일찍 놀러온 까마귀....







병풍암 일부....






백운봉 정상의 태극기









백운봉암문( 옛 위문)으로 만경대 뒤로 돌아가는 철계단







서서히 드러나는 노적봉의 위용






노적봉과 일산시내 원경...








효자리 너머 고양시 일산 원경....








노적봉과 까마귀









노적봉과 원효봉(우측 아래)







노적봉








원효봉과 염초봉(영취봉: 우측)

- 북한산성 입구에서 원효암과 원효봉을 거쳐서 염초봉 코스로 

백운대 북서릉으로 오르는 릿지산책이 재미있

일반등산객들에게는 위험한 구간이다.








영취봉(靈鷲峯)

암릉이 불꽃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일명 염초봉(焰硝峰)








원효봉과 영취봉으로 연결되는 염초봉암릉길








노적봉과 고양시 일산 일대 원경...






의상봉(좌), 원효봉, 영취봉









노적봉 뒤로 펼쳐지는 의상봉 능선






노적봉 뒤로 보현봉(좌측), 문수봉, 나한봉, 의상능선








병풍암








원효뵹과 상운사(祥雲寺)






백운봉 백운대









영취봉(염초봉)


- 염초봉 릿지에서 떨어지면

떨어질 때에는 정신만 잘차리면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으나

땅이나 바위에 부딛힐 때에는 많이 아프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전에 있던 초입부의 고정볼트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회수되어 일반인들은 오르기 어렵다.







원효봉과  북한산성마을 입구









원효봉과 영취봉.... 구파발 신도시, 

삼송리 , 고양시 일산 일대 원경







사진 중앙의 보현봉.


- 좌측이 형제봉~ 사자봉~보현봉능선 

우측이 문수봉, 나한봉~의상능선








형제봉~보현봉 능선

- 뒷편으로 희미한 남산 관악산







우측 앞이 노적봉


- 형제봉~ 보현봉 ~ 의상봉 능선







백운대(白雲臺)





삼각산(三角山)의 유래 | 31 예쁜 정보 공유방
캐논 김영진|조회 305|추천 2|2014.09.06. 11:45

 

 


삼각산(三角山)의 유래

 

 

 

     

 

 

 

   삼각산은 지금의 북한산이다. 삼각산이란 이름은 고려 성종 때인 993년 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당시만 해도 부아악이란 명칭이 같이 사용되었으나 고려 정종 때부터는 부아악이라는 이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삼각산으로 통일된다. 이 명칭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고문헌에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기록되어있다.

 

   즉 삼각산은 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간직한 이름이다. 삼각산이 삼각산이라 불리게 것은 삼각산의 정상을 이루는 세 봉우리에서 유래하였다. 세 봉우리는 백운봉, 만경봉, 인수봉을 뜻하며, 봉우리 하나 하나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형상으로 인간이 감히 범접하기 쉽지 않은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 상징성이 결국 지금의 북한산이라 불리는 산 전체를 삼각산으로 부르게 된 이유라 할 수 있다.

 


(관련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삼각산은 인수봉, 백운봉, 만경봉의 세 봉이 있는데, 우뚝 솟아 높고 뾰족한 것이 마치 세 뿔과 같으므로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 동국여지비고의 삼각산기

 

    백운봉과 만경봉 일명 국망봉과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삼각산이라 이름 하였다.

 

 고려 및 조선시대의 옛 선비들 또한 삼각산의 빼어난 자체에 매혹되어 삼각산의 아름다움을 많은 시로써 남겼다. 아래 시들은 북한지에 수록된 시 들 중 일부이다.

 



고려시대의 문인 이존오

 

奇峯廻接天    세 송이 꽃 같은 기묘한 봉우리 멀리 하늘에 닿았는데

虛無元氣積雲煙    텅 빈 자연의 원기에 구름 연기 쌓였네.

仰看廉利長劍    쳐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장검을 꽂은 듯    ( 攙 : 찌를 참)

橫似參差聳碧蓮    가로로 둘러보면 올망졸망 푸른 연꽃 솟아 오른 양.

        - 하 략 -


조선시대 초기의 문인인 김시습

 

三角高峯貫太淸    높은 삼각산 봉우리 하늘을 꿰뚫으니

登臨可摘斗牛星    그 위에 오르면 가히 북두칠성을 딸 만하네

非徒岳岫興雲雨    멧부리는 구름과 비를 일으킬 뿐 아니라

能使王家萬歲寧    왕실을 만세토록 능히 편안케 하리로다

      


   삼각산의 세 봉우리 중 만경봉만이 주능선상에 위치하고 나머지는 독자적인 맥을 갖는다. 

백운봉은 주능선과 연결은 되지만 이어지는 원효능선은 효자동에서 맥을 다하며, 인수봉은

큰 줄기를 갖지 못하고 사기막골에서 그 맥을 다한다.

어찌 보면 평범한 산줄기와의 연결을 거부하는 장군의 기상을 보는 듯하다.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은 다양한 문헌에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지(北漢誌)의 기록을 보면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의 기록을 그

대로 차용한 부분이 많다. 여기서는 북한지의 기록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내용만 기술한다.


 


(1) 백운봉(白雲峯)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인수봉 서쪽에 있다. 일명 백운대라고도 한다. 곧 이 산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나. 내용

 

■ 백운봉은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당시에는 백운봉 또는 백운대로 불렸으나 현재는 백운대로 불린다.

 

 백운대는 행정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에 속하며 하루재에서 만경대를 거쳐 대남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상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에 위치한다.

 

■ 사방이 깎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조선시대에는 만경대 또는 노적봉보다도 더 올라가기 어려웠던 봉우리이다.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가장 일반적인 위문길을 비롯 호랑이굴길, 여우굴길, 원효능선에서 오르는 길 등 모두 네 가지가 있다. 위문길은 쇠난간 등 안전시설이 있어 겨울철에도 올라갈 수 있으나 나머지 길 들은 동절기에는 위험하다. 특히 원효능선길은 위험한 리지구간으로 반드시 안전장비를 갖추고 경험자의 동행이 필요한 길이다. 위문에서 올라가는 쇠난간은 최초 일제시대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2) 인수봉(仁壽峯)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인수봉의 삼각산의 첫 번째 봉우리이다. 사면이 순수한 암석으로 되어 깎아 세운 듯 서 있는데, 한 봉우리가 .이 봉우리 동쪽에 혹처럼 붙어 있으므로 또한 부아악(負兒嶽)이라고도 이름하였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에서 남행하여 한산(漢山, 지금의 서울)에 이른 후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살펴 보았는데, 그 산봉이 곧 이봉우리이다.

 

 

나. 내용

 

■ 북한지에서는 삼각산의 세 개의 봉우리 중 인수봉을 가장 으뜸 되는 봉우리로 생각하는 듯하다. 문구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의 인수봉이 분명하며 동쪽에 혹처럼 붙은 봉우리는 귀바위를 뜻한다. 다만, 온조와 비류가 과연 험준한 인수봉을 올랐을까 하는 데는 이론의 소지가 있으며, 이는 부아악이란 명칭을 북한산이 아니라 인수봉으로 좁게 해석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인수봉은 암벽등반지로 유명한 봉우리이다. 안전 장비 없이는 사실상 올라가기 불가능한 봉우리로 최대 200m정도의 대암벽이 있는 등 봉우리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이다.

 




(3) 만경봉(萬景峯)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백운봉 남쪽에 있다. 높고 빼어나고 기이하고 웅장함이 인수봉과 자웅을 겨룰 만하다.

 

■ 申耆의 書啓

 

    만경봉과 백운봉 사이에 또 암문이 있다. 

 

■ 신경준의 삼각산기(三角山記)

 

    삼각산은 다 석봉이다. 그 상봉을 백운대라 하며, 그 옆에 국망봉과 인수봉이 있다. 세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 하늘로 치솟아 있으므로 삼각산이라 이름 붙여졌다.

 

■ 동국여지비고의 삼각산기

 

    백운봉과 만경봉 일명 국망봉과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삼각산이라 이름하였다.

 

나. 해석

 

■ 백운대 옆의 있는 암문은 백운봉암문으로 현재의 위문을 가리키며, 바로 옆에 만경대가 있다. 따라서 위문을 중심으로 백운대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는 만경대를 의미하며, 과거 만경봉 또는 국망봉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만경대로 불린다.

 

■ 만경(萬景)의 이름에 담고 있는 뜻과 같이 만경봉이란 전망이 좋은 봉우리로 국망봉이란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제시대 온조, 고려 말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올랐다는 봉우리가 만경봉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만경대에서 용암문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위험한 암릉 구간으로 상당히 위험하여 안전장비가 필요하나, 위문에서 정상까지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따라서 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만경대가 백운대보다 상대적으로 올라가기 쉬운 길이다

 


 

삼각산(三角山)의 유래


   1395년 12월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 지은 경복궁에 들게 되니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새 도읍의 만년태평을 기원하는 가사를 지었다. 그 내용을 담은 '악장가사'에 북한산을 일러'삼각산'(三角山)'이라 쓰고 있다. 


   또 고려조 성종 12년(993년) 서희가 성종에게 아뢰기를 "삼각산 이북도 또한 고구려 땅입니다"하였고, 그 뒤 고려사에 20여회나 삼각산이 등장하면서 각종 문헌과 비석 등에도 삼각산으로 굳어져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여지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한결같이 '삼각산'이 북한산의 본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 떠나려.'

라며 '삼각산'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주객이 전도되어 '북한산'이 산의 본명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북한산'은 산이름이라기 보다는 백제 건국 이후 한강 이북지역을 뜻하는 이름, 또는 고을 이름이었던 것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 대며 영토확장에 혈안이 되었을 당시에는 개차산, 열야산, 진악산, 삼년산, 마시산 등 '산'이 붙은 이른바 고을 이름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산'은 고구려계 땅이름이 달(達), 홀(忽), 골(骨) 등과 함께 고(高) 또는 성읍(城邑)을 뜻하는 땅이름의 접미어로 쓰였던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문헌을 눈여겨보면 산을 이야기할 때는 '삼각산'이라 하였고 한성부의 옛 고을명칭을 이야기할 때는 '북한산'이란 이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각산 이름에 대하여 풀이하기를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솟아있으므로 삼각산이라 부른다."고 풀이하고 있으나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 북한산이 어찌 이 세 봉우리뿐이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과 맞먹는 노적봉, 보현봉, 문수봉 등 여러 봉우리들을 제외하고서 어찌 세 봉우리만 가지고서 논할 것인가. 


   이것은 뒷날 사람이 '삼각'(三角)이란 한자풀이에 너무 얽매어 부회한 결과일 뿐이다.여기서 '삼각산'이란 이름은 '서울산'을 한자로 나타낸 것 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서울'의 본딧말이 '셔불'(세불)이다. 그러니까 '삼각'(三角)의 '삼'(三)은 '세'(서)이고, '각'(角)은 '불'(뿔)로 곧 '서불→서울'이 된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의 삼각산,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의 삼각산 등 여러 곳에 산이 삼각형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말의 '셔불', '세부리'를 한자로 뜻빌림(意譯)한 것 뿐이다. 그것은 옛날 그 지역이 부족국가의 군장(君長)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셔불, 세부리)은 그 지역의 '수부'(으뜸도시)라는 뜻이다. 특히 신라의 17관등급 가운데 첫번째 품계인 '각간'(角干)을 '셔블한'(敍弗邯)으로 쓰고 있는데, 여기서 '각=셔블'과 '간=한'의 대등관계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삼각산'에서 '삼=셔(서)'와 '각=셔(서)불'에서 '셔'(서)가 다만 중복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한산=삼각산'에서 뭇사람 사이에 사용해온 산이름은 백제의 도읍 이후 삼각산이었으며 그것은 이 산이 사람들 사이에 '서울산'의 뜻으로 통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서울산'이 있음은 온당한 일이다.

 

*현재 국립공원 북한산으로 부르는데 이 명칭은 일제 강점기 때 본격적으로

불리워졌는데 가급적이면 삼각산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자료를

올립니다*


- 다음카페 <   요즘+만남.취미.건강.스포츠.경제.정치.문학.연예...>  

캐논 김영진 님의 글 중에서 ....


cafe.daum.net/sa8000/OHDb/1223?q=%BB%...





******* 한성백제 도읍 이후와 신라 진흥왕(557년) 시절에 한강을 경계로 하여 

한산주(漢山州)를 설치하고

한강 북쪽의 지명(地名)을 북한산(北漢山)으로,

한강 남쪽에서 한산주에 속해 있는 곳의 지명을 남한산(南漢山)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북한산과 남한산은 산이름이 아니라 지명을 일컷는 말이다.


하온즉 현재 북한산국립공원은 삼각산국립공원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그 역사성과 각종 문헌고증을 통하여서도 옳은 일이다.



한산주[편집]


    한산주의 치소 일대는 원래 백제의 수도 한성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고구려 장수왕 이후 고구려가 점령하여 한산군(漢山郡)을 설치하였고,

백제 성왕 때 일시 회복했다가 다시 신라 진흥왕에게 빼앗겼다. 


   진흥왕은 이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하여 백제로부터 빼앗은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557년에는 한산주(漢山州, 북한산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로 개칭하였고, 

남천주(南川州)로 치소가 옮겨지기도 하였으나 604년(진평왕 26년)에 한산주로 다시 옮겼다.

757년(경덕왕 16년)에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고치면서 한산주도 한주로 개칭되었다. 

혜공왕 때 행정구역 명칭을 원래 명칭으로 되돌렸다고 한다.

고려 때는 광주(廣州)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른다.



                              - 위키백과 자료 중에서 발췌










의상능선 초입부

- 오른쪽 뒷편이 의상봉















백운봉 웅좌

- 정상부가 백운대








고려 때 간의(諫議) 오순(吳洵)의 시(詩)




하늘로 우뚝 솟은 푸른 보용화 세 떨

聳空三朶碧芙蓉         공삼타벽부용 하고


아득히 피어오르는 안개와 노을은 몇만 겹이런가!!

      煙霞幾萬重          표묘인하기만중 하도다!!


그 옛날 누대에 오르던 일 뇌리에서 떨쳐내니

 却憶當年倚樓處          각억당년의루처 하니


해는 서산에 지고 스산한 절간에선 문득 종소리 들리어 오누나!!

         日沈蕭寺數聲鐘          일침소사수성종 이로구나!!





- <국역 북한지(北漢誌)>  서울특별市史편찬위원회 刊, 1994.4월






백운봉









오리방풀과 달개비(닭의장풀) 군락지








오리방풀







백운봉암문( 대일항쟁기에 위문)








백운봉암문 안내판


-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일제강점기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강조하는 용어라 피하기로 하고

대신에 대몽항쟁기 처럼 우리 겨레의 항일사상를 고취하는 

대일항쟁기를 공식용어로 하자고 국회에서 결의하였는 데,

이 안내문에도 아직 일제강점기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산씀바귀와 구절초

- 백운봉 암문 바로 위  백운봉 등산로 초입부에서...









구절초







산씀바귀

- 일명 산고들빼기

뿌리와 어린 잎은 식용.








백운봉암문을 통과하자 일출시간은 이미 한시간 이상 지나 있었고....

부아악(인수봉)을 앞에두고 일출을 제대로 보려면 

일교차가 크고 산이내가 잘 피어오르는 비온 후에 

한번 더 올라와야 하겠다.








만경대








만경대(옛 국망봉)








구절 청초한 산아가씨처럼 아침을 반긴다.
















신갈나무에 가린 햇님









백운봉 백운대로 오르는 철계단과 

고쳐 쌓은 북한산성







수락산, 불암산, 그리고 

이미 솟아오른 햇님

-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끼어 햇님이 그리 선명하게 비치지 않는다.







노적봉과 의상능선, 뒤에 삼천리계곡 옆 응봉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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