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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부르심은 세속의 기준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하시려고 세상의 비천하고 천대받는 것을 선택하셨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로 하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주인에게서 한 탈렌트를 받고서 행여 그것을 잃어버려 추궁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땅에 묻어 둔 사람을 주인은 크게 꾸짖고 쫓아낸다(복음).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6-3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웃지 못할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 가서 문을 두드리며
학교 가기 싫다는 아들을 깨우려 합니다. “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들은 싫다면서 이렇게 이유를 댑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첫째 거긴 너무 시시하고,
둘째 아이들이 성가시고, 셋째 전 학교가 싫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타이릅니다.
“그래, 그럼 난 네가 왜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하는지
세 가지 이유를 말해 주마. 첫째 그건 네 의무고,
둘째 네 나이가 마흔다섯 살이고, 셋째 넌 교장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가르침은 늘 깨어 있으며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받은 ‘재능’에 감사하고 기뻐하기보다는
그것을 귀찮은 짐으로, 또는 두려운 과제로 여길 때가 더러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충만하고 행복하게 이끌도록
부여하신 내적 자질과 기회가 언제나 만사형통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주 진지한 의무, 큰 위험이나 희생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움츠리고 도망가거나,
선물이자 사명인 그 재능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그러나 참으로 행복한 삶을 위한 출발은 다름 아니라 그러한 수고와
풍파 속에 인생의 참맛과 보람이 숨겨 있음을 깨닫는 것이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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