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제 158 회) 3000년 전의 암각화- 그 비밀이 풀리고 있다

2014. 10. 13. 03:33들꽃다회






       

아래내용은 책의 요약정보입니다


3000년 전의 암각화- 그 비밀이 풀리고 있다

[프롤로그]

어둠속의 암각화 15 (4-5 초 정도 보고)
먼 옛날, 선사인들은 바위에 그림을 새겼다.
오랜 세월동안 거대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암각화 줌 아웃 18 암각화.
(4-5 초 보고)

3천년 전의 바위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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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타이틀] 3000년 전의 암각화- 그 비밀이 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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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1]

(암각화 뒤에 흐르고)
아마 이 그림을 기억하실 겁니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역사스페셜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그림을 보면 한쪽엔 고래사냥을 하는 모습이
아주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한쪽에는 이렇게 육지동물들이 보입니다.
워낙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암각화가 있습니다.

(암각화 뒤에 흐르고)
자, 지금 뒤에 있는 이 그림도 암각화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 그림들은 반구대 암각화와는 달리
무척 추상적인 도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대체 이 그림들은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요?

(지도 나오고, 발견지역 표시되고)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암각화는 모두
스무 군데가 넘게 발견됐습니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울산 이외의 것은 대부분이
이 뒤에 보이는 추상적인 도형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도형들이 한반도의 대표적인 암각화라는 뜻인데요
그동안 이 그림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추상적인 암각화들은 큰 주목을 받
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 최근 들어 베일에 싸여있는 3000년 전 암각화의 비밀들이 하나둘
씩 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3000년 전의 암각화를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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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1]

바다 팬 곤륜산 13 (2-3 초 후)
경북 포항시에 위치한 작은 항구마을 칠포리,
취재팀은 마을 뒤에 우뚝 솟아있는 곤륜산으로
향했다.

세 사람 올라오고 14 지난 1989년, 이하우 선생을 비롯한 이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곤륜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단한 유적을 발견했다.

곤륜산 계곡 10 좀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과 계곡속에
숨어있는 바위들. 그위에 아주 오래된 듯한 암각
검파형 암각화 16 화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은 대부분 추상적인 도형들로
발견 당시만 해도 그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바위 손으로 그리고 4 없는 것들이었다.

이하우 인터뷰 이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죠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글씨인지 그림인지 뭔지 모르는
상태에 저희들이 이 일대에 조사를 하니까
이상한 글씨가 있다 한번 가보자

바위위 걸어가고 5 조사과정에서 땅 속에 감춰져 있던 암각화들이
속속 드러났다.

석검 그리고 8 석검의 손잡이로 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석
검의 날로 보고 있습니다.

계곡 팬 검파형 11 흔히 암각화는 그림을 새긴 방법으로 그 연대를
추정하는데, 곤륜산 암각화는 청동기시대의 것으
로 추정되고 있다.

이하우 인터뷰 청동기 시대 때의 그림 제작기법이 이 그림의
획선이 아주 굵습니다. 한 4-5센티 정도 되는
폭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굵은 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림 제작이 오래 되었다는 것.
그 다음에 그림을 오랫동안 문질러서 저절로
생긴 굵기라고 봤을 때 청동기 시대 때의 세계
일반적인 현상으로서 갈아내기 기법이라든가
그거와 축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곤륜산 4 실제로 곤륜산 주변에는 많은 고인돌이 흩어져
고인돌 4 있어 청동기시대와의 연관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바위 올라가고 8 발견된 암각화중에는 미완성의 암각화도
눈에 띄는데,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오랜
미완의 그림 6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 팬 19 (2-3초 보고)
칠포리 일대에서는 곤륜산을 포함해 모두 일곱군
데에서 암각화가 발견됐다. 이렇게 한지역에서
대규모 암각화가 발견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갈대 팬 고인돌 11 취재팀은 이번엔 칠포리 농발재쪽으로 향했다.
폐가 앞에 놓인 고인돌에도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검파형 무늬 보이고 4 우선 곤륜산 바위에서 보았던 도형이 눈에 띈다
바위 보는 세사람 16 그 외에 다른 형태의 그림들도 찾을 수 있는데
한쪽에는 윷판 모양의 도형이 새져겨 있어 흥미
롭다
(보고)
풀샷 4 (보고)

암각화들 27 농발재 고인돌은 다양한 그림이 한꺼번에 새겨
져 있는 독특한 형태의 암각화다. 이렇게 하나의
바위에 여러 형태가 함께 있다는 것은 이 도형들
이 같은 시기,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이하우 인터뷰 다른 지역에서는 별개로 따로 따로 나타나지만
여기서 한바탕에 한 바위에 같이 나타났다는
것은 아마도 같은 문화층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암각화 연구회 사람들 6 암각화 발견이후 칠포리 암각화 연구회는 모두
탁본 팬 6 5년에 걸쳐 정밀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칠포리
암각화의 전모가 드러났다.

암각화 개별 30 칠포리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모두 11종류.
그후 잇달아 다른 지역에서도 똑같은 암각화가
발견됐다. 이로써 칠포리 암각화는 한반도 암각
화의 대표적인 형태로 밝혀졌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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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2]

(칠포리 암각화 전체 복원도 펼쳐져 있고, 바라보다가)

이것이 칠포리 일대에서 발견된 암각화를 모두 모아놓은 것입니다. 한 지역에서 발견된 것
인데도 이렇게 종류가 다양합니다.
'한반도 암각화의 대표적인 무늬는 다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칠포
리는 한반도 암각화의 종합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림들을 좀 자세히 볼까요
보시다시피 대체로 도형들인데요.
이것은 검의 손잡이 같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윷판같은 모양이군요.
사물과 비슷한 무늬도 있는데, 이것은 당시 사용하던
석검을 새겨놓은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동그랗게 구멍을 판 것도 있고,
역삼각형의 무늬도 있습니다.
마치 아주 거대한 암호문을 보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3천년 전 암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도형의 의미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이 도형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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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2]

형산강 팬 금장대 9 경주, 형산강의 줄기인 서천강변에 병풍처럼
둘려쳐 있는 금장대 .

하늘 틸다운 절벽 11 (2-3 초후)
이 깍아지른 수직절벽에도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

암각화 도형들 13 암각화는 칠포리와 같은 추상적인 도형들이 대부
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금장대 암각화에
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체에서 사실적인 그림 16 비록 아주 적은 수지만 추상적인 도형들 사이에
발바닥과 배 동물 인물상 얼굴과 같은 무척 사실
적인 그림들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11 하나의 암각화에 이렇게 사실적인 그림과 추상적
인 그림이 함께 있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장명수 인터뷰 나중에 의식이 발달이 되고 상당히 의식화 돼
나가면 사람들이 그림의 특징만을 살려서 추
상화시켜서 나가는 그런 과정이 모든 미술사
의 같은 흐름이죠. 여기보면 초기의 사실적인
모습을 묘사한 그런 그림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에 도형으로 추상화 돼가는 그런 과정이
보입니다. 그래서 추상화 돼 나가는 도형그림
의 초기 단계의 것이라 할 수 있죠.

절벽 줌인 성기모양 12 도형 암각화의 비밀을 풀기위해 취재팀은 우선
가장 간단한 것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금장대
에 새겨진 이 역삼각형 무늬를 보자.

칠포리와 비교/역삼각형 5 칠포리 암각화와 거의 비슷하다. 이와 함께 칠포
동그리 5 리의 동그란 무늬도 같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2 (보고)

안동댐 팬 취재팀 10 취재팀은 이번엔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안동 수
곡리로 향했다.

산 틸다운 신선바위 팬 15 수곡리 마을 산 정상에는 너비 3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일명 신선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 전면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모양찾는 사람들 5 수곡리 암각화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형태는
말밥굽모양 손으로 4 말발굽 모양.
(여기도...맞아요..)

바위의 말밥굽 모양 12 도형의 테두리가 역삼각형 대신 원으로 바뀌었을
뿐, 이 말발굽 모양은 칠포리나 금장대 암각화와
같은 형태다.
이 도형은 무엇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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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 5 그 해답은 몽골지역의 암각화에서 찾을 수 있었
송교수와 피디 4 다.
(보고)
슬라이드 여성의 생식시 문양이거든요. 이제 몽골에서는
문양을 해석하는데는 여성의 생식기 문양이라
고 하고 있다는 거죠. 여기 보이는 여성의 생
식기 문양이 상당히 퇴화형의 생식기 문양으
로 보이고 있다는 점

몽골암각화에서 9 그렇다면 이 수곡리 암각화도 여성의 생식기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암각화 17 우리나라와 몽골 외에도 여성의 생식기를 표현한
암각화는 세계 곳곳에서 보이는데, 이는 청동기
시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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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리 바위 줌인 16 다시 칠포리 암각화를 보자.
이 칠포리 바위 전체에는 역삼각형 무늬가 20여
점 이상 새겨져 있다.

성기문양 타이트 5 이것은 바로 여성의 생식기를 표현한 것이다.

바위 팬 석검 나오고 17 그런데 이 바위의 암각화에서 눈길을 끄는 그
림이 있다. 상징적으로 표현된 여성의 성기와
함께 석검 한 점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석검 그리고 13 석검은 바로 그 건너편 바위에도 새겨져
있었다.
암각화에 나타난 석검. 선사인들은 이 석검에 어
떤 의미를 부여했을까?

이하우 인터뷰 석검 자체에서 고대 사람들은 남성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이 석검 형태와 남근과 유사한
느낌이 담겨 있고 그 다음에 이 석검이 가지
고 있는 권위라든지 권위와 힘 그런것들을 동
시에 발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성
과 석검을 동일시한 그런 형태가 나오죠

그래픽 9 결국 이 칠포리 암각화는 남녀의 성적인 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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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트래킹 8 암각화에 남녀의 성애를 그린 것은 비단 칠포리
뿐만은 아니다.
영남 문화재 연구원 5 현재 영남문화재 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종이 벗겨내고 4 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아 이게 뎦개돌입니까.
그렇습니다.
지산동 30호분에서 뚜껑돌로 쓰인 거석입니다.
그림이 어디 있습니까?

분필로 그리고 5 무덤돌 위엔 암각화가 새겨져 있었다.

머리부분
얼굴을 형상화한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쪽부분이 남자의 성기부분, 요쪽이 남자의
인물상을 보여주는 것이고, 역시 이쪽도

여자인물상 7 남자 인물상 다른 한쪽에는 여자인물상이 새겨져
있다.

손으로 가리키며 이쪽 부분이 남자의 인물상을 표현한 것이고
이쪽부분이 여자를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런 남녀가 같은 암각화에 표현돼 있는
것도 성애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바위 남녀 인물상 7 칠포리 암각화가 상징적이라면 이 무덤돌의 그림
은 보다 사실적이다

내몽고 인물상 슬라이드 10 이런 전통은 역시 몽골의 암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몽골의 인물상은 생식기가 무척
성젹결합문양 3 과장된 형태로 표현돼 있고,

성적결합문양 27 남녀의 성애장면 역시 무척 노골적이다. 그중엔
지산동암각화와 거의 같은 그림도 보인다.
(좀 듣고)

이렇게 암각화에 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것은 선
사시대의 공통된 문화였던 것이다. .

송화섭 인터뷰 선사시대에는 어떤 종족의 번식, 그 번식에 필
요한 것은 식량의 생산 이런것들이 제일 중요
한 문제죠. 그래서 생식의 문제는 당시 사회에
서 중요한 당면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녀간의 성적인 결합문양이나 생식기를 조각
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그런 것을 신앙의례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조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
습니다.

칠포리 바위 팬 결합문양 10 3000년전 사람들은 바위에 남녀의 사랑을 그
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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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3]

(칠포리 바위, 암각화 앞에서)

우리는 지금 3000년 전 사람들이 그린
한편의 추상화를 보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이 도형의 의미를 알고 나니까
이 암각화가 전혀 새롭게 보이는데요.
이 기하학적인 무늬들은 남녀의 생식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검파형 무늬 가리키고)
자, 이번에는 이 도형을 한 번 살펴볼까요.
이 바위에는 같은 도형이 여러 개 그려져 있습니다. 이 바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암
각화 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그림이 바로 이 도형입니다.
여러분은 이 도형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어떻게 보면 고대의 방패모양 같기도 하고 검의 손잡이 모양같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이 도형의 비밀을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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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3]

길 트래킹 11 경북 고령읍. 산능선에 줄지어 늘어선 고분군은
한 때 대가야의 도읍이었던 이 지역의 역사를 말
해주고 있다.

양전동 암각화 풀 5 지난 1972년 고령읍 일명 알터마을이라는 곳에
암각화 팬 털난 검파형 19 서 암각화가 발견됐다. 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전
혀 독특한 형태의 암각화였다. 검의 손잡이처럼
생긴 도형에 털처럼 보이는 작은 선들이 새겨져
있는데, 바위전면에 이런 도형이 29점이나 된다

이현기 인터뷰 1972년도에 향토사학자에 의해서 발견되고 영
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정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해서 양전동 암각
화와 똑같은 형식의 것이 최근에 발견된 포항
의 칠포리 암각화 경주의 석장리 암각화 금장
대 암각화 가흥동 암각화

지도 13 양전리 암각화가 발견된 이후 한반도 남부지
역에서 같은 유형의 암각화가 속속 발견됐다.

고령 발전기 9 그런데 각 지역에서 발견된 암각화의 모양을
비교해보면 이 암각화가 일종의 발전단계를 거치
남원 성장기 5 며 조금씩 그 모양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주 쇠퇴기 8 가장 단순한 형태의 영주 암각화가 이 암각화의
쇠퇴기에 해당하고
(보고)

칠포리 생성기 12 가장 초기형태는 칠포리 암각화로 추정되고 있다
(보고)

곤륜산 계곡 틸다운 17 선사인들이 바위에 새긴 이 도형은 어떤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까?
(보고)
가장 초기형태가 나타나는 이 칠포리 곤륜산에서
검파형 무늬 타이트 7 그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바위 보는 세 사람 8 저거하고 정말 비슷하네요.
이하우 선생은 이 도형의 유래를 인근 바위의
결합문양 설명 13 암각화에서 찾아냈다.
신기하게도 그 의문의 암각화는 남녀의 생식기가
결합한 이 모양과 거의 일치했다. 바로 이 그림
검파형 무늬 6 에서 이런 모양의 도형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계곡에 서 있는 세 사람 7 이 작은 계곡, 저는 이 계곡을 중요시합니다.
주로 계곡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에
계곡 11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이하우 선생은
이 도형을 땅의 여신 즉 지모신상으로 보고
있다.

이하우 인터뷰 여기의 그림이 여성신적인 지모신 상입니다.
그랬을떄 여기 이 계곡이 여성의 어느 일정부
분과 유사하다고 봐야 겠죠. 여기서 늘 물이
흐르고 한곳에 물이라는 것이 생명의 재생과
탄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분에다 그
림을 함께 새김으로 해서 여성신에 대한 이상
을 더 고조시키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공 있
습니다.

곤륜산 서쪽면 줌아웃 22 수많은 암각화가 숨겨져 있는 곤륜산의 형태가
여성의 신체를 닮은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 선사인들이 까다롭게 암각화의 입지를
선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논 24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땅을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와 동일시했다. 이러한 관념은
다산과 풍요를 주관하는 땅의 신 즉 지모신을 낳
았고, 하나의 신앙으로 발전했다. 이런 신앙은 농
포리 여신상과 같은 유물로도 확인되고 있다.

이하우 인터뷰 그림의 근본성격은 지모신 농경신의 성격이 깃
들어져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농경신이 중
요해진 이유눈 청동시 시대 확산되는 농경사
회. 그리고 많은 종족의 번성을 기대해야 되겠
죠. 그러다 보니까 어머니의 신에게서 그런 요
소를 발견했다고 봅니다, 어머니가 출산하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기능이 농사를 주재하는
땅의 기능과 닮아 있다고 봤겠죠. 그래서 형성
된 것이 지모신에 대한 신앙이 되겠습니다

청동의기 줌아웃 17 취재팀은 지모신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충남 아산에서 출토된
이 청동기는 그동안 제사의식과 관계된 것으로
추정됐을뿐,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었다.

칠포리 암각화와 비교 13 주목할 점은 이 청동의기의 형태가 칠포리 암각
화에 드러난 지모신상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두 유물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
이형청동기 3 음을 말해준다

송화섭 인터뷰 고인돌 덮개돌에 또는 자연석에 검파형 암각화
를 새기는 신앙이나 정서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 청동기 후기 말하자면 초기 철기시대가
되면서 북쪽에서 내려온 청동기 문화가 한반도
에 들어오게 되면서 이런 암각화를 새기는 정
서와 문화가 청동기 문와에 대체돼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한반도 서남부 지
방에서 이형동기 가운데 검파형 암각화와 유사
한 동기들이 많이 제작되고 그런 청동기를 통
해서 문화변동이라고 할 수 있는 암각화에서
동기로 전환되는 그런 문화가 한반도에서 진행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경문 청동기 13 청동의기가 지모신 신앙을 계승한 것이라면 지금
까지 의문에 싸여있던 농경문 청동기도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밭을 가는 남자 7 농경문 청동기 자체는 지모신상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위에는 도구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호미를 든 사람 7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보고)

항아리에 곡식담는여자 7 이 청동의기는 땅의 여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농경문 청동기 4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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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리 암각화 줌아웃 30 (2-3 초후)
3천년전 선사인들이 바위에 새긴 지모신상.
이것은 농경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던 간절한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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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4]

(어둠 속의 대곡리 암각화, MC 암각화 지켜보고 있고)
이제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하고 또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농사라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땅에서 곡식이 솟아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신기로웠
겠습니까.
땅에서 곡식이 자라는 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하게 된 것이죠.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생명을 잉태하고 ,
곡식을 키우는 신 즉 지모신을 섬기는 것이
하나의 신앙이 되었던 것입니다.

(환해지고 , 칠포리 암각화 펼쳐지고)
자, 다시 칠포리 암각화를 보겠습니다.
칠포리 암각화에서 나타나는 이 다양한 도형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으로 MC멘트에 따라 한번은 선도형만 남고,
한번은 원형만 남고)
하나는 선으로 도형을 만든 것입니다.
여성의 생식기나 지모신상은 여기에 포함됩니다.

다른 하나는 이렇게 원, 즉 구멍을 파서 표현한 건데요.
보통 이런 하나의 구멍을 성혈이라고 합니다.
선사인들은 이 원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모양을 표현했는데
발자국이나 꽃모양을 만들기도 했고,
이런 모양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자, 이 모양을 주목해주시죠.
이것이 원으로 표현한 암각화중에서 가장 대표전인 그림입니다.
언뜻 보기에 윷놀이 판과 무척 비슷한데요.
3000년 전 사람들이 윷놀이를 한 흔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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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

온달산성 줌아웃 18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능선에는 온달산성이 있
다. 온달장군이 축성했다는 이 산성을 중심으로
이 일대 마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
다.

유기수(주민) 인터뷰 온달장군이 하루아침에 저 성 쌓고 한발자국에
여기 쉬는 데로 오셔가지고 거기서 쉰 후 여기
이 곳 윷판바위로 왔습니다. 이걸 손가락으로
그렸다고 그래요.

손태선 이장 인터뷰 윷판을 그려놓고 여기서 작전을 짰답니다...
졸병들이 전사 다하고 여기와서 윷을 치면서
전쟁 작전을 짰답니다.

윷판 들여다 보는 세사람 4 온달장군이 바위에 손으로 새겼다는 흔적은 특이
윷판 손으로 짚고 11 하게도 윷판 모양을 하고 있었다.
(현장음 듣고)

구멍에서 줌아웃 19 바위에 새겨진 구멍은 모두 29개. 현재 사용하는
윷판의 모양과 일치했다. 바위에 깃든 전설처럼
마을 사람들은 이 암각화가 윷놀이 판이라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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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팬 수곡리 바위 7 윷판형 암각화는 안동 수곡리 신선바위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윷판형 손으로 짚고 10 (도개걸 윷모 맞죠)
넓은 바위 곳곳에 윷판형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이장 얼굴 9 이런 식으로 다 파여 있습니다. 여기도 있고
여기도 있고, 그죠.

수곡리 바위 18 수곡리 신선바위 전체에서 발견된 윷판형 무늬는
모두 9개. 윷놀이를 하기 위해 이렇게 높은 산
정상의 바위까지 올라온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댐 10 다른 지역의 윷판형 무늬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
을까?
고구려 고분 사진 5 중국 집안. 고구려 고분 인근 바위에
여신상 8 눈길을 끄는 암각화가 있다.
언뜻 보기에 돌 위에는 여신상이 새겨져 있다.

윷판형만 남고 9 그러나 이 여신상을 지워보자. 가슴부분에 윷판
형 암각화가 남는다.
(보고)

지도 12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북쪽지역의
윷판형 암각화다. 중국 집안 그 이북 어디에서도.
윷판형 무늬를 찾아볼 수 없다

송화섭 인터뷰 한반도에서만 보이는 동이족의 문화적인 특
징중의 하나가 윷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런 윷판 문화는 한민족의 문화적인 특질을 보
여주는 하나로서 현재 외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정신이나 문화를 상
징적으로 보여주는 암각화라고 할 수 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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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 팬 13 선사시대 사람들은 왜 바위에 윷판을 새겼을까
동양 최대의 사찰터 익산 미륵사지.
걸어가고 8 발굴 당시 보고는 되었지만 그동안 아무도 주목
하지 않았던 주초석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았다.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지금 심하게 마모돼서
잘 안보이는데 분명히 여기 구멍이 있지 않습
니까. 여기 원으로 둘러져 있죠.

8 회랑 주초석 위에 희미하지만, 인공적으로 새긴
듯한 구멍의 흔적,

윷판형 모양 그리고 13 그것은 암각화에서 보았던 윷판형태가 분명했다.


송화섭 인터뷰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익산 미륵사지는 석탑
외에는 전부다 논이었습니다. 논이었기 때문에
이런 건물의 유구가 모두 땅속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이런 것을 의도적으로 조각한
것이 아니고 건물지 가운데서도 조석에서 기둥
이 세워져 있는 평상시엔 감춰지게 되겠죠. 그
래서 이것을 조각하고 어떤 의식을 거행하고
기둥을 세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런다고 한
다면 이 미륵사를 창건하면서 어떠한 주술적인
기원의례를 거행하고 나서 기둥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윷판문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군봉 가리키고 5 주초석 정면으로는 미륵산이 보인다. 송교수는
미륵산 올라가고 4 취재팀을 미륵산으로 안내했다

바위 올라가고 여기 보시죠. 여기 바위에 편평한 바위위에
조각돼 있고 이쪽으로

윷판형 손으로 짚고 8 미륵산의 정상부근의 바위 곳곳에 윷판형 암각화
가 새겨져 있었다.

나무 팬 장군봉 12 취재팀은 이번엔 미륵산 정상에 우뚝 서있는 장
군봉에 올랐다. 장군봉 곳곳에 큰 구멍이 여러개
나 있었다.

바위 구멍 바위 구멍은 미륵산 정상에 있는 장군봉 윗면
을 판 구멍입니다. 이런 구멍을 바위구멍이라
고도 하고 성혈이라고도 하거든요. 이런 성혈
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 고인돌
사회에서 어떤 주술적인 의례 풍요다산을 기
원하는 그런 주술적인 의례를 반복적으로 행
하면서 파진 그런 내공이 넓은 바위구멍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장군봉 위에 깊고 넓게 파인 바위 구멍.
이것은 선사시대부터 이곳에서 성혈을 파며 어떤
신앙의례를 거행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넓은 구멍 5 성혈은 선사시대 신앙의례의 상징인 것이다

송화섭 인터뷰 미륵사가 들어선 곳이 장군봉 바로 아래 계
곡에 들어섰거든요. 그래서 미륵사지에서 이
미륵산을 쳐다봤을 경우에 이곳이 정봉이 됩니
다. 이 정봉에서 있었던 신앙 어떤 의례를 그
대로 미륵사지를 창건하면서 그대로 수용해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장군봉에서 미륵사지로 15 선사인들의 신앙은 삼국시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바로 그 선사인들의 신앙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그림이 윷판형 암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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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5]

(뒤에 미륵사지 주초석의 윷판형 암각화 떠 있고)
보시는 것처럼 건물의 주초석에 윷판형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산 정상이나 무덤부분에서
똑같은 윷판형 무늬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 위치만 보아도 이것이 윷놀이 판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 무늬는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윷놀이 하면 윷과 이 윷판을 동시에 떠올립니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해서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혹시 윷판과 윷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 그림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우선 윷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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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5]

길 트래킹 6 (3-4 초 후)
윷이 무엇인지 알기위해 취재팀은 전남 해남군
녹우당 5 에 위치한 고산 윤선도 유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5 고산과 해남 윤씨 가문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윤두서 초상화 7 이곳에서 취재팀은 강렬한 자화상을 만났다.
주인공은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제 윤두서.

문 열고 28 우리나라 사실주의 화풍의 선구자이자 천재화가
로 알려진 윤두서는 천문수리 등의 학문에도 조
예가 깊었는데, 그가 남긴 유물 한 점이 취재팀
의 눈길을 끌었다.
영기경이라고 쓰인 옛서적 한권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나무상자였다.

이게 몇 개입니까?
자세히는 안세봤지만 몇 개 되네요
또 여기 주사위같은 것도 있고, 요새 주사위하
고는 다릅니다. 뭔가 다르죠.
이것도 알 수가 없는것이고, 또 이안에가 무엇
이 있었냐하면 자가 있었습니다. 자는 어디다
잘 치워놨습니다. 뭐 없애진 안합니다. 선조들
이 쓰던 것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용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시
나요?
전혀 몰라요.

책 넘기고 19 영기경의 앞쪽에는 모두 125가지의 괘가 차례대
로 적혀있다.
책의 서문은 영기경이 중국의 유명한 점술서임을
밝혀주고 있다.

5 영기경은 영기로 점을 쳐서 나온 괘를 해석한 책
영기 보이고 10 인데 , 표면에 상중하가 적혀 있는 이것이 바로
영기다. 영기는 상중하가 각각 네 개씩 모두 12
개다

책 틸업 7 그런데 중국의 점술서인 이 영기경에 대해 새로
운 주장을 펴는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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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생 연구하고 7 신원봉 선생.
지난 몇 년간 영기경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
책 넘기고 9 고 연구해온 신교수는 영기경이 바로 우리나라의
윷을 다룬 경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원봉 인터뷰 영기경은 윷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영기경
은 비록 중국 고전중의 하나지만 우리 민족의
경전이라고 봐도 틀립없을 것 같습니다.

책 틸업 16 (3-4 초후)
신교수에 의하면 윷은 놀이이기 이전에 점술이었
다고 한다. 영기경이 바로 윷을 사용한 점서라고
윷판 그림 5 주장하는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점괘의 숫자다

괘 18 윷가락은 모두 네 개, 이 네개의 윷가락을 세 번
던져서 점을 치는데, 한번 던질때마다 경우의 수
가 5이기 때문에 세 번던지면 모두 125개의 점
괘가 나온다.

영기경 틸업 40 그렇다면 영기경의 점괘를 보자.
영기는 상중하가 각각 네 개씩 모두 12개다. 이
12개의 영기를 한꺼번에 던지면, 네 개의 상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두 다섯 개, 마찬가
지로 중과 하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도 각
각 다섯이다.
결국 총 125괘의 점괘가 나오는데
이는 윷을 세 번 던진수와 같다

중국의 전통놀이 15 중국에도 우리나라의 윷과 같은 전통놀이가 있지
만 중국의 것은 가락이 다섯이거나 혹은 6개로
이를 사용했을 때 125개의 괘가 나오지 않는다.

남사 기록 30 영기경이 윷의 경전이라고 주장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영기경이 중국에서 그 유래를 알 수 없
다는 점이다
영기경에 대한 기록은 5세기 중국의 역사서인
남사에서 처음 나타난다. 영기경에 대해 안유명
이라는 학자가 처음 해설을 붙였는데,
그는 고구려사신과 접촉이 잦았다고 한다

신원봉 인터뷰 남사라는 책에 영기경의 구체적인 구절이 인용
이 돼서 나옵니다. 그 이전의 사료에서는 어떤
사료에서도 영기경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걸 본다면 안유명을 통해서 고구려 서적이 중
국으로 건너가서 고전처럼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주서 기록 14 백제의 풍속을 기록한 주서 내용에 윷이 등장하
는 것으로 보아 당시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윷이
건너갈 가능성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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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6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윷에 관한 점술서가 남아있
지 않을까.

책가지고 나오고 10 신원봉 선생은 규장각의 고서들 속에서 윷경
의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발견했다.

이책입니까?
예, 이책이 바로 사희경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책 넘기고 15 오주연문장전산고
이 책은 조선시대 학자 이규경이 지은 일종의 백
과사전으로 ,주목할 대목은 사희에 관한 것이다.

내용 7 (3-4 초후)
사희는 윷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

사희경 글씨 15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당시 사희경이라는 책이
있었다고 한다. 사희경, 사희 즉 윷을 사용한 점
술서가 있었던 것이다.

신원봉 인터뷰 사희경은 윷경이 틀립없습니다. 사희라는 말
자체가 윷 네가닥을 의미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윷을 세 번던져서 125가지 경우가
생기는데 그걸 아마 일일이 기록할 수 가 없었
을 겁니다. 그래서 그걸 적어놓은 책이 전해져
내려왔고 그 제목이 사희경이다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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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6]

(서재 테트에서)
우리는 윷을 놀이로만 생각했는데 놀이가 되기 이전에
윷은 점술이었습니다.
윷이 점술이었을 당시에 윷과 윷판은 전혀 별개의 것이었습니다..
결국 윷이라는 점술과 오늘날의 윷판과 같은 그림이
따로 따로 존재하다가 어느 시점에 만나서
윷놀이가 된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사인들이 바위에 새긴 이 그림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 그림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해석이 있습니다.

(송도지에 실린 윷판 그림 나오고)
이것은 조선시대 송도지라는 책에 실려있는 그림입니다.
개성의 학자 김문표라는 사람이
윷판에 대해 해석해 놓은 것인데요.
김문표는 이 가운데 있는 것이 북극성이고 바깥으로 늘어선 것은 28수다. 소위 북극성이 제
자리에 머물고 뭇 별들이 북극성을 향해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3천년 전 사람들이 과연 천체도를 생각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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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6]

도항리 팬 고인돌 보이고 12 경남 함안읍 도항리 산자락 끝.
지금까지 발견된 고인돌 중 가장 많은 별이
새겨져 있다.

덮개돌 팬 11 바위전체를 덮고 있는 수없이 작은 구멍들과
커다란 동심원들. 마치 하늘의 은하수를 연상케
한다.

바위 앞에 서있는 둘 3 (현장음)
바위 배모양 12 은하수에 흐르는 배.
이게 뱁니까?
여기 배가 흐르고 몇 사람이 탄 것 같죠

배 4 왜 은하수 사이에 배를 그렸을까?

전문가 인터뷰 배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실어서 죽은
사람의 영혼의 원처인 용혼의 세계 저승으로
돌려보내는 거죠. 돌려보내는 그림인데 이런
것은 이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다는 얘기죠. 이 죽음을 어떻게 극복해나
가느냐. 인간사는 세상에 있어서 가장 고민스
럽고 어려운 문제가 죽음의 문제인데 죽음 그
렇다고 해서 거부할 수 없는 거죠. 그것을 생
활속에서 수용해가는 지혜를 여기서 고대인들
의 지혜를 볼 수 있는데

바위에서 혼선 그래픽 25 (3-4 초후)
도항리 암각화는 거대한 은하계를 담고 있다.
이 우주에 떠가는 한척의 배, 이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실어보내는 혼선이다.

오래전부터 선사인들은 이렇게 하늘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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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팬 고인돌 14 (2-3 초후)
선사인들이 하늘을 관측하고 바위에 별자리를 새
긴 경우는 칠포리 암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별자리 7 이렇게 구멍과 구멍사이에 선을 그은 것은 별자
리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하우 그림 그리고 12 이하우 선생이 발견한 이 암각화에는 일곱 개의
동그라미가 새겨져 있다.
북두칠성이다.

세사람 이동하고 11 과연 선사인들이 천제를 정확하게 관측하고 이곳
에 별자리를 새겼다면 북두칠성의 북쪽에 북극성
이 있어야 한다

바위위 세 구멍 9 그런데 북극성이 있어야 할 자리엔 세 개의 구멍
이 있었다.

김일권 인터뷰 바윗그림이 있다고 해서 북극성으로 보기는 쉽
지 않은데 여기 고인돌이 두 개 있습니다만 앞
쪽에 북두칠성이 뚜렷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북쪽에 이렇게 지금 하나둘셋 바위구멍이
뚜렷하게 새겨놨죠. 다른 주변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세 점입니다. 그랬을 때 세점을 북극
성으로 볼 수 있나 했을 때 물론 선사시대 문
화니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고려시대의
왕릉이나 무덤벽화 속에서 또는 고구려시대 많
은 별자리 무덤벽화가 있죠. 거기에는 분명하
게 이렇게 세 점으로 북극성을 그린 예가 있습
니다.

무용총 팬 11 (2-3 초후)
4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인 무용총.
무덤칸의 북쪽 벽면에는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북극성 사실도 6 사신도 옆에 그려진 세 개의 별, 이것은 북극성
이다.

종합도 8 북극성을 세 개의 별로 표현하는 것은 고구려 고
분벽화에서 공통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민왕릉 벽화 14 고려 공민왕릉에도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데 북두
칠성 위에 세 개의 별이 보인다. 이 또한 북극성
을 나타낸 것이다

바위 보는 세사람 11 결국 이 칠포리 암각화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정확하게 새겨 놓은 별자리 암각화인 것이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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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10 칠포리 일대에서 발견된 암각화중에서 별자리를
표현한 암각화는 또 있었다.

오줌바위에 서고 6 이 마을 뒷산에는 일명 오줌바위라 불리는 커다
란 바위가 있다.

별자리 훑고 24 바위 전체에는 별자리들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는
데 주목할 것은 바위 한가운데에 있는 바로 이
윷판형 무늬다. 별자리 사이에 윷판형 무늬가 있
다는 것은 이 그림의 성격을 말해준다. 이것은
별자리인 것이다

카시오페이아 보고 저는 이 자리를 카시오페자리로 보고 있습니다
네 여기 구멍이 있고 연결선을 주고 있습니다.
모양이 W자 모양이고
그랬을 때 이걸 카시오페이아가 분명하다고 봤
을 때 지금 현재도 카시오페이아에서 북극성을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랬을떄 그 대칭점을
찾아봤을때 이 정도 되는 위치에 북극성이 나
와야 하는데 이 바위구멍을 북극성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죠.
의도적으로 강조해놓은건 같습니다. 테두리를
해서.
여기서 다시 반대쪽으로 빠져나갔을 때 북두칠
성이 나와주면은 이것은 천체도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죠. 이쪽으로 가보시죠 .

바위 풀샷 5 북극성의 맞은편에 과연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을까

이하우 흙쓸어내고 여기에 북두칠성 대신에 윷판한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형태가 보이네요. 지금 마모가 돼서
잘 보이지 않지만 마모된 상태로라도 몇 개의
구멍이 ...

윷판 그래픽으로 선명하게6 북두칠성이 있어야 할 자리엔 윷판이 드러났다

세사람 얘기하고 5 그렇다면 이 윷판은 북두칠성과 깊은 관계가 있
윷 손으로 짚고 9 다는 뜻이 된다. 김일권 선생은 이것이 북두칠성
의 운행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픽 37 (3-4 초후)
가운데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이 사계절 운
행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윷판형 그림
이다.
(2-3 초후)
이것은 전체의 운행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낸
하나의 천문도인 것이다.

이하우 인터뷰 이 바위에다 윷판과 별자리를 새기면서 아마도
이지역이 당시사회 상당한 오랫시간이 되겠죠.
이 선산은 고대시대에 천문대 역할을 했을 가
능성이 있습니다.

김일권 인터뷰 이 너른바위에서 보면 하늘을 쉽게 관측할 수
있는데 별자리 관측도 하면서 윷판 그림도 그
리기도 하면서 한해의 농사를 점치를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
각이 됩니다.

바위 틸업 하늘 18 천문도를 나타내고 있는 윷판형 암각화.
그것은 이 땅에 살았던 선사인들의 의식세계를
담고 있는 상징이었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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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클로징]

(칠포리 암각화 펼쳐져 있고)
만약 이 그림의 의미를 몰랐다면 우리는 이 암각화를
그저 아주 오래 전 누군가 해놓았을 낙서 정도로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암각화에는 3천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코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이 추상화시킨 이 도형은 단순한 도형이 아닙니다.
그들의 의식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창이자 통로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반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추상적인 암각화의 비밀을 풀어보았습니다
이로써 대부분의 암각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는 암각화의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닙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
울산 천전리 암각화는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MC 나가고, 천전리 암각화 보이고)





       - 경남점자도서관 자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