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도착한 칠불사, 나무가지 끝 정겨운 까치집이 어릴적 고향마을처럼 한겨울 아침의 시린 추위를 덜어 줍니다. 한달 가까이 계속되던 혹한이 오늘은 평년 기온을 되 찾아 다행이었다. 새벽 5시 40분 우리 백팔고찰순례단을 싣고갈 버스에 오르니 몇몇 단원이 벌써 승차해 있었다. 05시 50분 불교TV 제작 「해인사 아침예불」DVD를 켰다. 도량송, 종송, 불전사물에 이어 06시 15분 버스출발과 동시에 이어지는 예불문에 맞추어 아침예불을 올리고 계속해서 천수경 을 봉송하였다. 휴게소에서 잠깐 쉰후 승차하여 불교TV 제작 「한국의 명찰 지리산 쌍계사」DVD를 시청하며 칠불사에 도착하니 08시 30분경 이었다. 오늘 제21차 고찰순례는 칠불사, 쌍계사, 진주 청곡사에 이어 추가로 창원 우곡사를 순례할 예정이며, 사시불공시 올릴 공양물은 여래지보살이 준비하고, 쌍계사 대웅전에서 사시불공 후 곧 바로 「예불대참회문」에 따라 108배 후 11시 30분부터 점심공양을 하기로 사찰측과 협의 되었다. 보설루의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란 편액이 순례단을 맞고 있다. 칠불사(七佛寺)는 지리산 계곡에 자리 잡은 고찰로,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이곳 에서 수도한 뒤 모두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숱한 선승들이 머물렀는데, 조선시대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부휴 선수, 백암 성총 등의 고승들이 주석하였고, 근세에서는 용성ㆍ석우ㆍ효봉ㆍ금오ㆍ서암 ㆍ일타ㆍ청화 스님 등이 안거를 지낸 바 있다. 이로 인해 예로부터 금강산 마하연 선원과 함께 2대 선원으로 부르던 유서 깊은 참선도량이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한국 다도의 중흥조 초의 선사가 머물며 차에 관한 명저 『다신전』을 짓기도 했다. 선방인 아자방은 우리나라 온돌의 시초로, 한 번 때면 한 달 동안 온기가 지속될 정도로 교묘 한 구조로 유명하다. 출처: koreatemple.net 계단을 올라 보설루(普說樓) 누하진입(樓下進入)하여 다시 계단을 올라가니 하늘과 맞닿은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전(大雄殿) /칠불사의 금당인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로, 근래에 지은 건물이다. 안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 석가여래좌상과 좌우에 협시하고 있는 문수ㆍ보현 보살좌상의 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 밖에 역시 최근에 조성한 후불탱ㆍ칠불탱ㆍ신중탱 등이 있다. 이 게송은 실차난타법사가 한역한 신역대방광불화엄경(80권 화엄경)의 권제6 여래현상품제2에 나오는 일체법승음(一切法勝音) 보살의 게송. 삼존불과 후불탱 / 대웅전 주존불인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고 목조후불탱은 입체감을 살려 조성되어 있다. 칠불탱 / 법당 우측면에 목조 탱으로 조성한 성불한 7왕자가 봉안되어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와『동국여지승람 하동지』등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태어 났으며 인도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기원전 5세기 부터 있었던 태양왕조 아유다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들여 10남2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거등(巨登)은 왕위를 계승 했고 차남 석(錫) 왕자와 삼남 명(明) 왕자는 모후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許)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왕자는 출가하여 허황옥의 오빠인 인도스님 장유보옥(長遊寶玉)선사 를 따라 처음에는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의령 수도산, 사천 와룡산 등를 거쳐 서기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더욱 정진, 수로왕 62년(서기103년) 음력 8월 15일 모두 생불이 되었다 합니다. 이들 일곱왕자들인 혜진(慧眞), 각초(覺初), 지감(智鑑), 등연(等演), 주순(柱淳) , 정영(淨英), 계영(戒英)은 성불한 후 각각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 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로 불리었습니다. 일곱 왕자의 성불 소식을 들은 수로왕은 크게 기뻐하여 국력을 기울여 그곳에 큰 절을 짓고 일곱 부처가 탄생한 곳이라 해서 칠불사(七佛寺)라 불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다고 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372년) 보다 약 270여년 앞선 기록입니다.『372년 북방전래설』은 중국을 통해 전해진 것임에 반해 이곳은 가락국이 바다를 통해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를 받아 들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어 이와 같은 창건 설화를 지닌 칠불사는 종래 의 북방 불교 전래설과는 또다른 남방불교 전래설을 뒷받침 하는 것으로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신중탱 / 목조 탱으로 법당 좌측면에 봉안되어 있다. 문수전(文殊殿) / 대웅전 오른쪽에 처마를 나란히 하여 문수전이 자리한다.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근래에 지은 건물이다. 안에는 전각 이름대로 최근에 조성한 금동 문수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탱과 신중탱 등의 불화가 있다. 이 문수전은, 칠불사가 문수신앙 도량임을 잘 나타내주는 전각이다. <주 련>
위 게송은 설두 중현(雪竇 重顯:980∼1052 /중국 운문종) 선사의 게송으로 벽암록 제35칙에 실려있다. 문수보살 좌상 아자방(亞字房) / 선방인 아자방(亞字房)은 신라 효공왕) 때 담공 선사가 처음 지은 이중 온돌방이다. 내부의 방 모양이 ‘亞’자와 같이 생겨서 아자방이라 하였다. 아자방은 길이가 약 8m이고, 네 모서리의 높은 곳은 스님들이 좌선하는 곳이며 중앙의 낮은 곳은 불경을 읽는 곳으로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 온돌은 만든 이래 천 년을 지내는 동안 한 번도 고친 일이 없다고 하는데, 불만 넣으면 아래 위 온돌과 벽면까지 골고루 한 달 동안이나 따뜻했다고 한다. 100년마다 한 번씩 아궁이 를 막고 물로 청소를 했었다. 하지만 1951년 불에 타 없어졌다가, 근래에 지금과 같이 새로 지었다. 이 아자방은 그 교묘한 구조와 과학성이 인정되어 1979년 세계건축협회에서 펴낸 『세계건축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 설화> 아자방은 오직 참선방으로만 사용되어 왔으므로 큰 절 쌍계사에서는 물론 한국 각 사찰에서 지극히 수호하는 바 되었다. 그래서 이 방만은 참선하는 사람 이외에는 그 누구도 관람을 허락하지 아니했다. 그런데 이조 중엽 하동 현감으로 온 사람이 쌍계사에 초도순시차 왔다가 칠불암 아자방을 보고 가겠다 요청했다. 그래서 스님네가「그 곳은 보시나 마나 볼 것이 없는 곳이오니 그냥 가도록 하십시오.」 「내 여기까지 왔다가 그 유명하다는 칠불암을 보지 않고 간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잠깐 구경하고 가겠노라.」 하여 하는 수 없이 그 일행은 칠불암으로 안내되었다. 현감은 아자방을 가리키며, 「이 방을 보고 싶으니 좀 열어라.」명령했다. 「지금은 공부시간이 되어 열어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보여준단 말인가.」 「이제 막 시작하였으니 서너 시간 기다리셔야 합니다.」 「내가 이 고을 사또인데 주민을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화가 벌컥 난 사또는 곧 나졸들에게 명령하여 방문을 열라 하였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조정의 영상도 그러하였고 본도의 관찰사도 그러하였습니다. 옛날부터 규정이 그러 하오니 이 방만은 안됩니다.」 하고 한 중이 가로 막았다. 그러나 그 스님은 나졸들에 의해 내동댕이쳐지고 방문은 활짝 열려 구경거리가 나타났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이라 점심공양을 마치고 선방에 들어간 스님들은 오수(午睡)에 한참 몰려 앉은 자세가 엉망진창이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고 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푹 숙이고 땅을 들여다 보며 조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몸을 좌우로 흔들고 방구를 퉁퉁 뀌며 졸고 있었다. 사또 속으로 「기껏 공부한다는 사람들의 자세가 이것인가?」 안볼 것을 보았다는 듯 입맛을 쪽쪽 다시며 가만히 문을 닫고 나서며, 「요놈들 한번 혼쭐을 내놓아야겠군!」 하고 단단히 별렀다. 이렇게 벼르고 고을로 돌아온 현감은 3일 만에 편지 한 장을 쌍계사 주지 앞으로 보냈다. 내용은 이러했다. 「네 절에 도인이 많은 듯하니 나무말(木馬)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동헌(東軒) 마당에서 한번 타고 돌아보라. 만일 목마를 잘타면 큰 상을 내리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큰 벌을 내리리라.」 스님들은 당황했다. 산 말을 타라 해도 시원치 못할 터인데 나무 말을 타고 동헌 마당을 돌라 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도 없는 일, 쌍계사 큰 방에서는 각 암자 스님들과 함께 대중공사가 벌어졌다. 「누가 이 일을 맡아 현감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해결을 볼 사람이 없습니까?」 주지스님이 이렇게 말하였으나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라 공사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이 때 탁자 밑에서 12, 3세가량 된 사미동자 한 사람이 일어서며, 「그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스님들은 아무 걱정 마시고 싸리채나 엮어서 목마나 한 마리 만들어 주십시오.」 「네가 무슨 재주로 그렇게 하겠느냐?」 「그건 염려 마십시오. 제가 기필코 환난을 모면케 하오리라.」 설사 그가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스님들은 각오한 듯 싸리채를 베어 목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미(沙彌)는 부목(負木=나무하는 일꾼)에게 목마를 지키게 하고 동헌 마당으로 나갔다. 군수는 어이가 없었다. 「네가 목마를 타려고 가지고 왔느냐?」 「그렇습니다. 소승이 군수님의 소망을 풀어 주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막힌 데가 없는지라. 「그렇다면 네가 목마를 타기 전에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다.」 「무엇 입니까?」 「내가 전날 칠불암에 갔을 때 아자방에는 도인들만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도인들이 앉아 있는 폼이 전혀 도인답지 않았다.」 「영감님도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도인이라고 별 모습을 하고 있는가요.」 「그렇다면 하늘을 쳐다보고 졸고만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이지?」 「그것은 앙천성숙관(仰天星宿觀) 입니다.」 「앙천성숙관이라니?」 「하늘을 보고 무량한 별들을 관하는 공부입니다.」 「별은 왜?」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해야만 천하만사를 다 알게 되고, 천상에 태어난 중생을 다 제도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럼 머리를 푹 숙이고 땅을 들여다보고 졸고 앉아 있는 사람은?」 「예, 그것은 지하망명관(地下亡命觀)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죽으면 지하에 지옥으로 들어가 죄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들을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를 일심으로 관하는 공부입니다.」 「그러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좌우전후로 흔들며 이리 쓰러지려 하고 저리 쓰러지려하는 것은 무슨 공부인가?」 「예, 그것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입니다. 공부하는 도승은 유(有)에 집착해도 못쓰고 무(無)에 집착해도 못 쓰고, 고락 성쇠 그 어느 것에 집착해도 못 쓰기 때문에 버드나무가 바람에 휘날려도 전후좌우 그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듯 공유(空有), 선악, 죄복 보응에 걸 리지 않는 관을 하는 공부인 것 입니다.」 「그건 그렇다 하고 방구를 풍풍 뀌고 앉아 있는 중은?」 「그건 타파칠통관(打破漆桶觀)입니다. 칠통같은 몸뚱이 속에 있는 번뇌와 업장과 죄악을 깨뜨리라고 울려 나오는 소리인데, 사람이 무식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만 하려는 사또와 같은 칠통배(漆桶輩)를 깨닫게 하는 공부입니다.」 「어허, 이놈.」 사또는 옆에 암아 있는 여러 조리들을 힐큼 바라보며 무안한 듯, 「아직 입에서 젖 냄새도 가시지 않은 너의 식견이 이러할진댄 그 곳에 있는 도승들이야 더 말할 것 있겠느냐? 이제 더 물어볼 것 없으니 어서 목마나 한번 타보라.」 사미승은 불끈 일어나서 싸리채로 만든 목마 위에 얼른 올라앉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말 궁둥이를 내려치며, 「어서 가자, 목마야. 미련한 터줏대감의 칠통 같은 마음을 확 쓸어버리고 태양 같은 밝은 빛이 그 안에도 비치게 하자.」 하고 발을 한번 내 구르니 목마가 터벅터벅 동헌 마당을 5, 6회나 돌더니 둥실둥실 공중 으로 떠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사또와 육방관속들은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로부터 군수는 발심하여 불교에 귀의하고 또 쌍계사와 아자방을 부처님 모시듯 살피니 일시에 하동은 불바다(佛海)를 이루고 화장세계(華藏世界)를 이루었다 한다. <韓國寺訓史料集 亞字房의 傳說> (어사 박문수가 등장하는 설도 있음) 보설루(普說樓) / 정면5칸의 맞배지붕으로 누각 건물로 문(門)의 역할을 한다. 보설루의 정면에는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원음각(圓音閣) 音徧十方(음편시방) 隨機熟處無所不聞(수기숙처무소불문) 故名圓音(고명원음) 非謂如空徧滿無別韻曲(비위여공편만무별운곡) 如經言隨其類音普告衆生(여경언수기류음보고중생) 斯之謂也(사지위야) -대승기신론 疏에서- 소리(音)가 시방세계에 두루 해서 근기가 성숙해짐에 따라 들리지 아니한 곳이 없다. 그래서 원음(圓音)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마치 허공이 두루 가득 차 있어서 별도의 운율(韻)이나 곡조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각각의 異類 衆生 음성에 맞추어서 두루 중생에게 알려 준다고 했는데,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9시 15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성지요, 문수보살이 현신하는 상주처인 칠불사 순례를 마치고 쌍계사로 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