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스님과 사포성인

2014. 10. 23. 11:33들꽃다회




다도 연구원의 조 은 원장의 불교신문 에세이(1)원효스님과 사포성인| 茶와 건강
水流花開|조회 20|추천 0|2003.01.09. 21:35
제 목 : 원효스님과 사포성인


       

돌틈서 솟아나는 
젖과 같은 단물로 
차를 우렸을테지… 



   죽염으로 더 유명한 개암사는 찾아간 날도 죽염을 굽는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향해 풀풀 오르고 있었다. 법당에 참배를 하고 샘물을 한 바가지 떠서 목을 축이고 툇마루에 앉아 잠시 앞산을 올려다 본 후, 원효방을 가기 위해서 절 오른쪽 산길을 올랐다. 돌부리에 발을 채이며 한참을 오르니 커다란 굴이 보였다. 그곳이 원효방이었다. 

원효방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불려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규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23권, 「남행일월기」에 원효방과 원효스님, 사포성인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이규보는 33세부터 34세까지 전주에서 전주목사록(全州牧司錄)겸 장서기(掌書記)에 임명되어 지방관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전주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부안의 원효방을 찾았던 것 같다. 일생동안 불교에 깊이 심취했으며, 스스로 차를 지독히 좋아한다고 했던 이규보가 원효방을 찾았을 때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신년(庚申, 1200년) 8월 20일 부안 현령 이군 및 다른 손님 6,7 사람과 원효방에 이르렀다. 높이가 수십층이나 되는 나무사다리가 있어서 발을 후들후들 떨며 조심조심 올라갔는데, 정계(庭階)와 창호(窓戶)가 수풀 끝에 솟아나 있었다. 이따금 범과 표범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다 마침내 올라오지 못한다고 들었다. 곁에는 암자가 하나 있는데, 세상에서 말하기를 사포성인(蛇包聖人)이란 사람이 옛날에 머물었던 곳이라고 한다. 원효 스님이 와서 살자 사포가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는데, 차를 달여 원효스님께 드리려고 하였지만, 샘물이 없어 안타까워 할 때 이 물이 바위틈에서 갑자기 솟아 나왔다고 한다. 맛이 매우 달고 젖과 같아서 늘 차를 끓였다고 한다. 원효방은 겨우 8척쯤 되는데, 한 노승이 거처하고 있었다. 그 스님은 삽살개 눈썹과 다 헤진 누비옷에 풍모가 고고(高古)하였다. 방 한 가운데를 막아 내실과 외실을 만들었는데, 신발 한 켤레와 찻잔, 경궤(經机)만이 있을 뿐, 불을 때는 도구도 없고 시자도 없었다.(생략) 

이규보의「남행일월기」이다. 

『삼국유사』,「말하지 않던 사복」에도 원효스님과 사복이란 인물 이야기가 나온다. 사복과 사포성인이 동일인물이라고 생각되지만,『삼국유사』에 실린 내용은 이 이야기와는 다른 내용이다. 이규보의 기록대로 본다면 사포성인은 원효스님을 존경하던 도반 또는 제자로 짐작된다. 

지금의 원효방은 이규보가 찾아갔을 때와는 많이 변해 있었다. 가파르기는 마찬가지지만 나무 사다리는 철로 바뀌었고, 곁에 있던 사포성인이 기거했다는 암자도 없다. 큰 굴 바닥에는 욱자란 잡초가 듬성듬성 나 있고, 옆에 작은 굴이 하나 또 있었다. 「남행일월기」에 원효방이 8척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굴이 바로 원효방 같았다. 수염이 텁수룩한 한 젊은 사람이 좌선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는 바랑 하나만 덩그마니 있을 뿐, 원효스님과 사포성인의 흔적은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큰 굴 돌틈 사이에서 물이 흘러나와 바닥을 질펀하게 적셨지만, 찻물을 사용할만한 물은 아니었다. 물이 달고 젖과 같아 사포성인이 늘 차를 끓였다는 그 물이, 그 언제부터 인적이 끊기고 잦아들었는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돌틈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그 물을 보며, 원효스님께 차를 드리기 위해 물을 찾아다니며 애를 태웠을 사포성인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차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차를 애호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인물이 가끔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원효스님이다. 전해져 오는 많은 기행(奇行)과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서라벌 곡목골목을 누비며 왕실 중심의 귀족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기 위해 기인(奇人) 행세도 서슴지 않았던 스님의 모습이 먼저 연상되기 때문이다. 


원효 스님도 때로는 명산대천을 찾아 좌선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온 천하를 다 찾아도 자취를 찾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하니 
그런 때, 또는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를 비롯한 수많은 불교경전을 연구하는 여가에 
차도 가끔 마시지 않았을까 하면서도 
《남행일월기》를 읽을 때마다 원효 스님이 차를 마시는 모습보다 
스님께 간절히 차를 끓여 드리고 싶어하는 
사포성인의 모습이 먼저 그려진다. 

누군가에게 정성을 다해 차 한잔을 주어본 사람은 안다. 
차를 받아 마시는 즐거움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 다도에세이는 조 은 본원 원장이 <법보신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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