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새올세라(시샘할세라) / 청강(淸江)에 죠히(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고려말 정몽주의 모친이 지었다는 백로가(白鷺歌)에서 보듯 까마귀에 대한 첫인상은 형편없었다.
우선 온통 검은 색인데, 제비나 흑두루미 같이 일부 검은 색조를 지닌 것도 있지만 까마귀한테서는 이들처럼 배나 날개 등 다른 부위에서 흰색으로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거나, 적어도 몸매로 받쳐주는(?) 아름다움을 찾아볼 데가 없다.

검디검은 무채색 옷을 걸친 까마귀는 저승과 죽음을 상징하는 새라고 한다면 이는 필자만의 생각일까? 소리는 또한 어떤가? 투박하기 이를 데 없이 그저 아는 노래 가락이라고는 ‘캬악 칵’하니, 이게 무슨 외마디 소리인고?

그런데 등산을 하다 까마귀를 만나게 되면서 점차 까마귀와 친해졌다. 아니, 등산로 주변에 까마귀가 자주 보이는 걸 보면 거꾸로 까마귀가 사람을 친근히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까마귀의 좋은 점이 하나둘 생각나기 시작했다.

첫째는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는 것에서 보듯 청정성이다. 깨끗한 지역에서만 노닐며 속진(俗塵)에 묻혀있는 아랫동네에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순수한 청정(淸淨)이미지는 환경문제가 화두인 21세기에 맞는 콘셉트 아닌가?

두 번째, 여러 색조가 아닌 검은 단색을 유지하는 점에서 정직하고 우직해 보인다. 검은 옷 하면 언젠가 아내가 머리부터 스타킹에 구두까지 온통 검정 일색으로 성장(盛裝)을 하고 외출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까마귀 패션인가?’하고 놀렸지만 검은색이 매우 어필한다는 것은 패션계에서는 일반상식이다.

‘까마귀 고기’는 옛말, 두뇌도 나쁘지 않다. 움막에 사람이 들어가면 까마귀는 가까이 가지 않고 사람이 나가야 비상경계령을 해제(?)하는데, 실험결과 넷 중 세 사람이 나가도 경계를 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숫자 넷까지는 기억을 하는 것 아닐까? 어떤 곳에서는 차도에 호두를 늘어놓고 차가 깨뜨리면 내려와 먹는 까마귀도 있다고 들었다.

나무에 앉을 때 까마귀 새끼는 어미보다 두 가지 아래에 앉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선조들은 효성이 지극하다는 표현으로 까마귀의 덕(?)을 기렸다 하는데, 이 역시 까마귀의 경계근무 중 하나일 성싶다.

야생의 생활은 늘 고단하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이다. 경계초소는 어디에 있나? 시야가 트인 나뭇가지 위. 그러면 누가 경계를 담당하나? 노련하고, 자식 안위를 걱정하는 부모가 맡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반포지효(反哺之孝)에 이르러서는 할 말이 없다. 어미가 늙으면 새끼가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까마귀를 마땅히 존경해야 할 것이다.

본래 까마귀 오(烏)는 부수로 보면 새(鳥)가 아니라 불화(火) 또는 연화(灬) 부수에 속한다. 그러니까 삶는 팽(烹)이나 자(煮), 굽는 적(炙), 아니면 마음이 타는 초(焦) 등과 유사한 글자라는 말이다. 아마도 불에 까맣게 탔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그래서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도 통한다.

고구려 유물 중 태양 안에 세발까마귀(三足烏·삼족오)를 넣은 그림이 나타나는데, 각저총, 오회분, 덕화리 고분벽화나 진파리 무덤에서 나온 장식품에 보이고 선비족이나 흉노족 유물에도 ‘세발까마귀 태양’이 그려져 있다. 종합해 보면 고조선 문명권에서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박은식 선생의 해석에 따르면 ‘세발까마귀 태양’은 ‘태양 3신’의 상징으로, 3神은 고조선의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을 지칭한다. 당시 고조선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주고 가호하는 신으로서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3신에게 제사하고 고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까마귀가 고대에서부터 숭상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 까마귀를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온 자신을 탓할 밖에.

-김덕영 대전시 경제정책협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