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 15:51ㆍ별 이야기
동양 별자리 28수 이야기
인간은 오래전부터 별을 관찰하고, 길잡이로 삼았다.
확실히 동양 별자리는 남다른 면이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인도의 천문학이 골고루 버무려져 생겨난 서양의 별자리 체계와 달리
중국의 천문학은 독자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
독자적으로 확립된 문명체계라니 참으로 감탄할 만한 일인 듯하다.
그런데 양손에 동서의 별자리 체계를 올려놓고 비교해 보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몇 가지 사실이 눈에 띤다.
동양의 별자리에서는 밝게 빛나는 예쁜 별들 말고 굳이 흐리고 어두운 별들을 별자리로 묶고 있다. 또 별자리 간의 구역 구분도 들쭉날쭉이다.
별자리의 탄생 신화도 희박하다. 모양새가 기하학적으루다가 근사하지도 않다.
언뜻 보기에 엿장수 맘대로 그어 놓은 낙서 같기도 하고,
누가 악의적으로 망쳐놓은 지도 같기도 하다.
대체 누가, 왜 이런 별자리 체계를 만들어 낸 것인가?
별자리의 탄생에 얽힌 묵은 비화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양 별자리가 결코 열등하다거나 덜 유용하다거나
하지 않다는 얘기를 해야겠지.^^ 갈 길이 멀다!
동양별자리는 각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조금 긴 인트로를 필요로 한다.
동양 별자리의 특수성을 인식해야 한다.
각론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서양 별자리랑 완전히 다른 지반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제까지 우리가 늘 해왔던 얘기,
동양의 고대 천문학은 일종의 우주 종교로 출발했다는 점을 기억하고 시작하자.
동양 별자리의 탄생 -중국 천문학과 적도좌표계
기우(杞憂)라는 말을 알 것이다.
기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걱정했다는
‘기인지우(杞人之憂)’의 줄임말이다.
쓸데없는 걱정, 안 해도 될 근심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우리는 이 얘기를 들으며 옛 사람들은 이다지도 어리석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앞날을 걱정하며 쓸데없는 걱정으로 발을 동동거리는 건
첨단의 문명을 갖춘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버전의 기우에 시달리며 살 뿐이다.
오존층이 뚫려서 지구가 타 들어가면 어쩌나
(풍수지리에 의하면 작년부터 인류는 소빙하기에 접어들었단다)
말로만 듣던 ‘서울 불바다설’이 현실이 되면 어쩌나(그럴까 과연?)
고리 원전이 저러다 터져버리는 건 아닌가(음.. 이건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는 등.
고대인과 현대인을 막론하고 인간에겐 뿌리 깊은 불안이 내재해 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세상이 진짜 갈 데 까지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태양이 아홉 개라면? 우리는 타죽고 말 것이다. ㅠㅠ
고대인들은 태양이 미쳐버린 나머지 계절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게 최고의 걱정거리였다고 한다. 이 더위가 계속된다고 생각해 보라.
아니면 봄이 오지 않고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 된다고 생각해보라.
전쟁이 세상을 폐허로 만들어도, 수해가 산천을 할퀴고 지나가도
세상은 놀라운 재생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우주의 ‘순환’이 이대로 멈춰버린다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리다. 그야말로 세상이 끝장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문명은 공통적으로 우주의 순환을 기리는 우주종교를 보유하고 있다. 이때 천문학은 하늘과 소통하기 위한 창구가 되어 주었다.
중국을 제외한 여타의 문명에서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늘을 봤다.
생명의 원천이자 가장 명징한 순환의 질서를 보여주는 하늘의 주인공 이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순환과 계절의 주재자로 그들은 태양에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아니었다. 왜일까? 일찍이 고도의 농경문명을 이룩한 그들이, 메소포타미아의 양치기들도 우러러 본 태양을 왜 이리도 홀대한 것인지…….
시리우스는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이다. 큰 개 자리에 배속되어 있다.
이 문제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구성하는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고대 천문학자들은 그 계절의 지표가 될 만한 별을 찾아 별자리로 엮어냈다.
정확한 관측을 위해 일출전이나 일몰 직후 태양 근처에 있는 별들을 관찰하려 했다.
유명한 별, ‘시리우스(Sirius)’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집트에서는 이 별이 태양과 함께 동쪽 하늘에 떠오르면
대지의 어머니 나일 강의 범람기가 임박했다는 전조로 읽었다.
대부분의 고대 문명에서 이런 식으로 별자리를 구성했다.
이는 참으로 속편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태양의 길을 읽은 후 그 근처에 있는 환하고 잘빠진 별들로 별자리를 엮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의 천문학의 뼈대가 되는 “황도 좌표계”의 기원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자.
이들이라고 생명의 원천인 태양을 도외시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한 술 더 떠 태양에 대해 아주 제대로 알아내려 했다.
태양과 별들 그리고 관측자인 나의 위치를 엄밀하게 규정해내려 했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태양 반대편에 있는 별을 관측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를 알기 위해 우주를 엄밀하게 구조화 해 내려 했다.
확실히 중국인들은 고생을 자처한 감이 있다.
중국인들에게 우리가 지난 2회 동안 살펴본 바 있는
하늘의 극과 주극성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들은 북쪽 하늘의 극과 그 반대편을 극을 연결해
하늘을 구조화 한 천구(天球)라는 가상의 구에 중심축을 만들어 냈다.
이게 자오선(子午線)이다.
(여기서 우주와 인간을 관련짓는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념이 나왔다.
중국인들은 하늘의 북극은 지상에서의 황제와 같고, 나머지 주변에는
제후국과 같은 별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천구에 지구의 적도에 상응하는 가로선을 그으면 그게 하늘의 적도가 된다.
그러면 북극과 적도 사이의 공간을 분절해 천구에 우산살 같은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이걸 업계 용어로 시간권(時間圈)이라 하는데
중국인들은 시간권이 적도를 나누는 점에 의해 정의되는 “적도좌표계”를 만들었다.
28수는 오렌지 조각처럼 나뉜 천구의 영역을 기준으로 뽑힌 별들이다.
여기서 밝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우주의 구조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중국의 복잡하고 모호한 별자리 체계가 대체 뭣 때문이었는지
대략 그 실체가 드러난다.
틀이 이리도 확고하니 별자리의 모냥새가 떨어지고 자잘할 수밖에.
게다가 28수 별자리를 제후국으로 여겼기에 제후국스럽게 파편화된 모양새로 그려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하늘을 분할함으로써 우주의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즉자적인 관측에 머물지 않고 구조화와 하늘의 분할에 골몰했다. 지구상의 관찰자에게 하늘의 일부만 보인다 해도 그들은 나머지 별자리,
즉 28수의 전체 구조를 알았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어디에 태양이 위치해 있는지 마저 알았다. 보이지 않는 별들 사이의 태양의 위치,
지금 우리로선 이런 해괴한 걸 대체 왜 알아내려 하는지 의아할 뿐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건 참으로 근본적인 문제였다.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 제후국인 28수의 그 어디를 지나고 있는가 라는
정치적인 상징이기 때문이다. 중국 천문학 우습게 볼 일 아니다.
우리의 통념과 달리 중국의 천문학은 고도의 기하학과 질서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에서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은 하늘의 형체, 열차는
황도 부근을 12개로 나눈 것, 분야는 그에 해당하는 땅의 영역을 의미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28수의 탄생
적도좌표계를 택한 것은 어떤 점에서는 공교로운 선택이었다.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도,
지축이 기울어 있다는 것도 일찌감치 간파한 그들이었지만,
지축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뒤뚱거리며 돌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업계용어로 이를 세차운동(歲差運動)이라 한다.
마치 팽이의 회전축이 빙그르 도는 것 같이 자전운동을 하고 있는
지구의 자오선이 26,000년을 주기로 원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 과학시간에 존 사람들,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놀랄 것이다.^^
아마 진한 무렵의 중국인들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당장에 내 멱살을 잡을게 분명하다.
그들에게 북극이란 천자의 상징이자 우주의 영원성을 담지하는 확고부동한 축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주의 영원불멸에 관한 일종의 신앙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과 달리 공교롭게도 북극성은 계속 변해왔다.
공자가 말한 북극성이 우리가 보는 저 북극성이 아니고,
역사상 북극성이 두 개가 되었던 적도 있다.
28수란 주대로부터 진한대에 이르는 시기의 사람들이
당대의 북극성인 제성(帝聖, Kochab)을 중심으로 체계화 한 별자리 체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축이 빙그르 돌면서 이와 함께 하늘의 28수도
당시 사람들이 맞춰놓은 정교한 틀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공을 들여 28수라는 정교한 별자리 체계를 만들어 놓았는지를 알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세차운동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먼저 동양 별자리는 왜 28개일까?
수의 상형자를 살펴보면 거적으로 만든 작은 오두막의 모습이다.
이에 머무른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하늘에 있는 이 별들은 고속도로의 각 지점들마다 드문드문 있는 휴게소들처럼, 태양이나 달, 그리고 행성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쉼터로 인식되었다.
밤에 가장 밝게 빛나는 천체는 달이다. 곧 달은 밤의 주인이다.
그렇기에 달에 대해서는 특별대우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쉼터의 개수를 달의 운행 주기인 28에 맞춘 것이다.
이 28개의 별자리는 다시 네 개의 궁에 일곱 개씩 배당된다.
이들을 담는 궁은 사계절에 대응되고,
여기에 중앙의 주극성의 영역을 의미하는 3원(垣)이 추가된다.
그리하여 하늘은 크게 다섯 영역으로 나뉘는 데, 이는 오행(五行)을 나타내는 것이다.
별들이 일곱 개씩 배당된 이유는 우주의 시계바늘 북두칠성의 수를 본뜬 것이다. 북두칠성의 7은 음양의 2와 오행의 5가 합쳐진 것이니,
이들 28수는 그야말로 우주의 구조에 의해 분할 된 셈이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에는 현무, 주작, 청룡, 백호라는 네 수호신이
등장했다. 사신은 단지 판타지적인 요소가 아니라 동양 천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말씀! ^^
우주의 구조화를 통해 광대무변한 하늘의 영역을 임의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것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과 통한다.
그들은 땅을 나누고 인간의 세계를 나누듯이 하늘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 분류체계를 통해 하늘 땅 인간이 하나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궁극으로 밀고 간 것이 진한대의 시대적 조류였다.
동서남북의 사방위와 그 모서리를 합하면 여덟 개의 방위가 나온다.
이 팔 방위를 기준으로 땅과 하늘을 헤아렸다.
당대인들은 하늘과 땅의 팔방위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고 생각했고
이는 곧 8개의 기본 절기(동지, 하지, 추분, 춘분, 입춘, 입하, 입추, 추분)의 기운을 의미한다.
이 바람이 생명의 근간이 되는 기(氣)가 된다고 생각했다.
계절과 방위에 응하여 만들어지는 기가 곧 우주의 시간 질서가 된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문명은 여기 착안해 구축되었다.
시간 질서인 역(曆)은 우주의 팔풍을 기본 골자로 해서 짜여진 것이다.
바람의 운율이 시간의 근본이 되기에 여타의 다른 문명 제도도
우주 질서의 근간을 본받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는 이러한 천인감응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텍스트다.
그는 팔풍에 착안해 우주의 리듬인 율(律)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제도의 핵심인 예악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입각해 천지의 기운 변화에 상응하는 정치 교화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보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우주의 리듬을 이어받은 문명과 제도를 구축하려 했던
고대 중국인들의 고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의 무상함은, 그리고 우주의 광대무변한 변화의 원리는
이들의 자취를 지워가며 흘러갔다.
애써 이룩한 문명은 쇄락했고, 정교한 우주질서는 어긋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깊은 울림에 자기 삶을 일치시키려던
고대인들의 겸허한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우주의 바람이 만들어 낸 깊은 울림이 뭇 생명과 역사를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는 생각. 앞으로 별자리 서당에서는 28수 안에 녹아있는
고대 중국인들의 혜안을 추적해보려 한다.
(북드라망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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