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천문학

2013. 6. 2. 15:59별 이야기

 

 

 

 

    고구려의 천문학을 한번에 보여주는 생생한 유물이 있다. 그것은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고구려 고분 벽화이다. 벽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다가 색깔이 선명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양식으로 만들어진 부덤 속 벽그림들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아름다운 색을 유지하고 있다. 벽화의 내용은 일상 생활을 그린 것에서부터, 상상 속 영물들과 자연을 그린 것,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과 종교적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별자리와 해와 달 등의 천체를 그린 고분 벽그림이 많이 있다. 지금까지 적어도 20여기의 고구려 고분 속에서 별자리가 발견되었는데, 각 시기마다 별자리 양식이 진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4세기 경에 만들어진 고분 속에서 나온 초기의 별그림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것으로 생각되며,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점차 종교적 색채가 가미 되면서 고구려 나름의 형식으로 정착됨을 볼 수 있다.

 

    즉, 북두칠성과 남두칠성을 각각 무덤의 북쪽과 남쪽에 크게 그리고, 사방에는 사령이라 불리는 신령스런 영물들을 그려서 방위를 나타냈다. 각각의 방위에는 7개의 별자리들을 배속하여 사방을 28수가 둘러싸도록 하였다.


    특히, 덕흥리 고분에 그린 28수 별그림들은 1496년에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오는 별자리 모양과 일치하는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각 별자리의 이름도 적어 놓는등 매우 진보된 양식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별자리들은 종래에는 중국의 별자리로 알려졌는데, 수나라 때 정립된 보천가에 나오는 별그림과 개념상으로 일치하는 것이 주목되나, 고구려의 것이 성립 시기가 200~300년정도 앞선다는 사실은 차후의 연구 과제라 하겠다.

    하여튼 중요한 점은 고구려 사람들이 별을 친숙하게 여겼고, 죽어서 무덤 속에까지 가지고 갔을 정도로 영원불멸의 대상으로 경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즉,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에 뉘인다. 예로부터 북두 칠성은 죽음에 관련한 수명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두육성은 탄생과 장수를 나타내는 수명을 담당한 별자리로 생각했다. 드러누워서 보면 하늘의 별들이 보이도록 천정에다 별들을 그려 놓은 것이다. 왜냐면, 우리네 조선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늘을 사랑한 것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수없이 많은 역사 사실과 유물이 증명하는 것들이므로 여기서는 더이상의 논구를 생략하기로 한다.) 또한 그러한 별자리를 알고서 관측하고 그것을 그리고 하는 행위의 바탕은 노련한 지식적 체계이므로, 고구려 사람들은 일찌기 그러한 천문 지식을 가지고 진보시켜왔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왕이나 귀족의 무덤 속에 별자리를 그리는 전통은 일본으로 전해졌다. 고구려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인들의 무덤으로 유명한 일본의 다카마츠츠카 고분 속에는 사령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천정에 28수와 북극성과 사보라는 별자리를 그렸다.

    그런데, 최근에 이 다카마츠츠카 고분 근처에 있는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조성한 다른 고분, 즉 기토라 고분에서 천문도가 발견되었다. 이 천문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247년에 만든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보다도 5백년정도 앞선 것이다.

    천문도의 특징을 살펴보자. 전몰성과 출몰성의 경계인 항은권과 주극성들과 출몰성의 경계선인 항현권, 그리고 천구의 적도선과 해가 지나다니는 길인 황도가 분명히 표시되어 있고, 동양 고유의 별자리들이 모습도 완정하게 그려져 있다.

 

    별들은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하여 노란색으로 그렸으며, 빨간선으로 별들을 이어서 별자리를 표시하였다. 일본의 고분 조사단은 내시경을 고분 속으로 들이밀어서 고분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내부를 발굴했는데, 확실하게 확인된 별개수가 438이고, 별자리는 22개라한다. 그러나, 약 1400여개의 별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특성들을 따져 보지 않더라도 첫눈에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고천문학자들은 이 천문도에 나오는 별들의 위치로부터 이 별그림이 기원전후 300년에 위도가 북위 38~39도인 지방에서 본 밤하늘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당시 이 위도에 존재하는 나라로는 고구려와 북위가 있으나, 중국 북조 여러 나라들의 수도와는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밤하늘을 그려 놓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우기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해설문 가운데 28수들의 좌표를 연구해 보면 기원 전후 1세기에 만든 것으로 나오는 것도 <기토라 천문도>와 일치하는 연대로 생각된다.

 
    별자리 모양을 보면, 중국 <순우천문도>와 닮은 것들이 있기도 하고,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닮은 별자리들이 있기도 하다. 또한, <순우천문도>나 <천상열차분야지도>와는 다른 모습의 별자리도 있다. 그러나 별들의 크기를 밝기에 따라 다르게 그린 점은 기토라 천문도가 고구려의 천문도임을 나타내며, 같은 시기에 다카마츠츠카 고분에 고구려 여인들이 벽화에 등장하는데, 기토라 고분을 만든 사람과 다카마츠츠카 고분을 만든 사람은 같은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니혼쇼키(일본서기)>에 따르면, 기토라 고분이나 다카마츠츠카 고분을 만들기 약간 전인 602년에 백제에서 스님 관륵이 건너와서, 일본국왕이 왕실 사찰에 그를 모셔두고 천문학과 풍수지리와 둔갑술 등을 가르치게 했다는 내용이 나오며,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목간이 그가 묶었다는 절의 연못 속에서 나왔다. 또한 그가 만들었다는 천문대와 물시계(루각)이 두 고분 근방에 남아 있다.


    이러한 증거가 나와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했다는 <천상열차분야지도> 해설문의 내용을 입증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있는 별그림들과 거기 새겨진 28수 별자리 이름들등의 천문 지식 수준으로 볼 때, 고구려의 천문학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이 되는 고급 천문도를 만들 수준에 이르렀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3.2 백제
    백제의 경우를 살펴보자. 백제 사람들이 이루어낸 문화적 업적들은 신라와 당나라의 침공으로 거의 파괴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백제의 천문학 수준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역사 기록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짐작해 볼 뿐이다. 일본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서기 602년에 관륵이라는 백제의 학자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문 역법, 천문학, 풍수지리학에 관한 책을 전했다고 전한다. 삼국 사기에 나오는 백제의 천문 관측 기록들을 재현해서 그 정밀성이나 특징을 살펴보면 백제의 천문학이 어떠했는지 조금은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224년에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는 '태백주현'이란 기록이 있다. 이 현상을 천체 역학 계산을 통하여 재현해 보니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금성을 낮에 관측하려면 금성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 수 있을 정도로 관측을 꼼꼼하고 끈기있게 해야하므로 당시 사람들은 천문 관측을 조직적으로 하였을 가능성이 있고, 또한 천문 지식도 있어야만 할 것이다.

출처 : 한국사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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