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거(御馬車), 고조 광무제 어거(御車),황태자 이척,의친왕의 거(車)

2014. 11. 1. 22:24우리 역사 바로알기

 

 

 

 

 

      

어마거(御馬車), 고조 광무제 어거(御車),황태자 이척,의친왕의 거(車) 조선국 대한제국 역사

2014/10/3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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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거(御馬車), 고조 광무제 어거(御車),황태자 이척,의친왕의()

 

http://blog.naver.com/msk7613    김민수 님의 글 중에서 ....

 

    일본군국주의 총독부(1910-1945)1930-5년 사료(史料) 수집(蒐集) 및 취사선택, 편수(編修), 감수(監修)한 일본군국주의 통감부, 총독부 일지(日誌) 성격의 고종순종실록 편찬위원(編纂委員)은 위원장은 시노다 지사쿠이며 감수위원(監修委員)은 경성제국대학 교수 오다 쇼고, 나리타 세키나이이며 사료수집위원(史料 蒐集委員)은 기쿠치 겐조이며 서무위원(庶務委員)은 스에마쓰 구마히코, 시가 노부미쓰이며 회계위원(會計委員)은 사토 아키미치이며 감수 보조위원(監修 補助委員)은 총독부 이사관 에하라 젠쓰이이며 편찬 보조위원(編纂 補助委員)은 총독부 도경시 하마노 쇼타로, 총독부 군서기 미즈바시 후쿠히코이며 사료 수집 보조위원(史料 蒐集 補助委員)은 기타지마 고조이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사료(史料) 수집(蒐集) 및 취사선택,편수(編修),감수(監修)한 고종순종실록은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대한국(1897- )을 불법 통치한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1906-1945)에 대한국(1897- ) 역사를 왜곡하고 통감부, 총독부, 일본 왕실, 일본군 기사를 중심으로 편수(編修),감수(監修)하여 편찬한 일본군국주의 통감부, 총독부 일지(日誌)이므로 통감부, 총독부, 일본 왕실, 일본군 기사를 삭제하고 대한제국 황실 기사를 중심으로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실록을 수정, 편집하였다.

 

1439(세종 21)106일 산림(山林늪과 못의 소택(沼澤공장(工匠건축·도요공(陶窯工금속을 광석에서 추출, 정련하는 야금(冶金)을 관장하던 공조(工曹)에서 궁성(宮城), 한성(漢城), 도로(道路), 교량(橋梁)의 수축(修築)을 관장하는 수성도감(修城都監)의 하급 관청에서 상급 관청에 보고하는 공문서 첩정(牒呈)에 의하여 의정부에 보고하기를, “한성(漢城)을 둘러 길을 내는 것은 그 유래가 오래 되었는데 한성(漢城) 옆에 사는 자들이 혹은 길을 막아서 통행하지 못하게 하여서 이내 초목이 무성하고 우로(雨露)에 젖어서 성곽이 장차 무너지게 되었으되 한성(漢城)을 맡은 관리들이 조금도 검사하여 살피는 검찰(檢察)하지 아니하므로, 태종(太宗) 5(1405)4월에 한성(漢城)의 행정사법을 관장하는 한성부(漢城府)에서 ‘한성(漢城) 안팎을 모두 둘러서 길을 내고 한성(漢城)을 관장하는 관리를 시켜서 날마다 순찰(巡察)하여 만일 퇴락한 것이 있으면 봄·가을마다 수리하게 하고 그 길의 넓이는 역시 참작하여 제정하게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세종(世宗) 17(1435)10월 한성부(漢城府)에서 한성(漢城) 안의 도로 제도를 정할 때에도 한성(漢城)을 둘러 낸 길을 수리하는 것은 미처 하지 않았으니 예전 제도에 의하여 자로 재어서 제도를 정하게 하소서.”하니,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한성(漢城) 안에는 두 마거(馬車)가 나란히 갈 수 있는 넓이에 두 자를 더하게 하옵시고, 한성(漢城) 밖에는 두 마거가 나란히 갈 수 있는 넓이에 넉 자를 더하게 하옵소서.”하므로, 세종이 그대로 따랐다.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903년 어극(御極)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칭경식(稱慶式)을 전통예술극장인 협률사(協律社)에서 열었으며 경운궁(慶運宮)부터 협률사까지 행사 이동시 사용할 포드(Ford) A형 무개거(無蓋車) 1대를 칭경식(稱慶式) 의전용 어거(御車)로 수입을 지시했다. 1902년 어극(御極) 40주년을 맞은 고조 광무제는 콜레라의 발병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한 칭경식(稱慶式) 이듬해인 1903년 협률사(協律社)라는 극장에서 열게 되었으며, 칭경식(稱慶式) 기념 공연을 위해 8도 광대들과 미기(美妓)들을 뽑아 미리 궁내부(宮內府) 장악원(掌樂院)에서 풍악과 가무를 연습시켰다. 미국인 알렌을 통하여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판매상 '프레이저'로부터 포드의 A4인승 무개거 1대를 어거(御車)로 수입하였다. 알렌은 1884년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을 세워 신임을 받고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의 어의를 지냈다. 포드의 A4인승 무개거는 인천항에서 하역하고 1899년 개통한 경인선 철도를 이용하여 1902년 개통한 한강철교를 건너 남대문역에서 내려서 경운궁(慶運宮)까지 가야 했으므로 칭경식이 끝난 후에 도착하였다.

 

   대한국 최초의 민간인 운전자는 3대 천도교 교주였던 손병희1905년에 자동거를 타고 다녔다. 19071111일 궁내부 대신(宮內府 大臣) 이윤용(李允用)이 행행(幸行)할 때 일렬로 된 노부(鹵簿) 반차(班次)를 신식을 참고하여 별단(別單)에 써서 들어와 황태자 이척에게 보고하였다. 행행(幸行) 노부(鹵簿)의 별단은 '1907(광무 11)에 경무청(警務廳)을 개칭한 대한제국의 경찰 사무를 관장하는 경시청(警視廳)의 총순(總巡) 4명이 2()로 나누고 경시 부감(警視 副監)이 모두 말을 타며, 기병(騎兵) 3명으로 된 1대와 예식관(禮式官), 장례(掌禮), 황후궁 대부(皇后宮 大夫), 궁내부 차관(宮內府 次官), 예식과장(禮式課長), 궁내대신(宮內大臣)이 모두 마거를 탄다. 기병인 정교(正敎)와 황제의 깃발을 든 기병 4명으로 된 1대와 근위대(近衛隊)의 참령(參領정위(正尉내승(內乘)은 모두 말을 탄다. 황태자 이척의 어마거(御馬車)는 시종원 경(侍從院 卿)과 여관(女官)이 모시고서 타고 간다. 시종 무관장(侍從 武官長)과 시종 무관 2, 근위대 정위(近衛隊 正尉) 2명과 태복사 장(太僕司 長), 시종 2명은 모두 말을 타고 여관과 친왕(親王)은 비()와 함께 부원군(府院君)은 부부인(府夫人)과 함께 전의(典醫), 황후궁 대부보(皇后宮 大夫補), 총리대신(總理大臣)은 모두 마거(馬車)를 탄다. 기병(騎兵) 3명으로 된 1대와 총순(總巡) 2명으로 된 1대는 말을 탄다.'이다.

대한제국 황실은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 프랑스제 르노 리무진을 대한 황실 의전용으로 수입하였고 미국제 GM 캐딜락 1대를 더 수입하였다. 황태자(순종 융희제)가 미국제 GM 캐딜락 리무진을, 황태자 이척의 아내 윤씨가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을 애용했다. 고조 광무제 어거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이유는 어차를 마차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마부가 마차를 운전할 경우에는 왼손으로 줄을 잡고 오른손으로 채찍을 잡고 말을 몰므로 마부가 오른 쪽에 앉아야 채찍을 휘두르기 쉽고 왼쪽의 승객이 안전할 수 있었다.황태자(이척)의 거()는 미국 GM사가 제작한 문이 4개인 7인승 캐딜락 리무진으로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목제로 된 차체에 옻칠을 하여 진한 밤색을 띠며 대한국 황실 문장인 이화문(李花紋) 문양의 금도금으로 곳곳을 장식하고 내부는 금색 비단과 고급 카펫으로 치장했고 의자는 자유롭게 접거나 펼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배기량은 5153cc이다. 황태자 이척의 아내 윤씨의 거는 영국 다임러사가 제작한 리무진으로 목제로 된 차체에 옻칠을 하여 진한 밤색을 띠며 황실 문장인 이화문(李花紋) 문양의 금도금으로 곳곳을 장식한 문이 4개인 7인승 리무진이며 내부는 금색 비단과 고급 카펫으로 치장했고 의자는 자유롭게 접거나 펼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배기량은 3309cc이다. 다임러 리무진은 라디에이터 그릴 아래 달린 자 크랭크 핸들을 시계방향으로 힘껏 돌려서 시동을 걸었다.

1909129일 일본군국주의 통감의 대한제국 순행을 따라나선 황태자 이척의 마거(馬車)는 평안도 신의주(新義州)를 출발하여 의주(義州) 임금이 궁을 떠나 머무르던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렀다. 130일 일본군국주의 통감의 대한제국 순행을 따라나선 황태자 이척의 마거(馬車)는 의주(義州)를 출발하여 신의주(新義州)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정숙(停宿)하였다.1911121일 일본군국주의 총독은 황태자(1919년 1월 2대 황제 등극한 순종 융희제) 이척의 아내 윤씨의 아버지 윤택영(尹澤榮)에게 황마거(幌馬車) 1대를 하사하였다.1910년대 말에는 함경도 북청 태생의 공흥자동차운수회사 사장 방의석(方義錫), 방예석 형제가 함흥-흥남을 잇는 자동차 도로를 닦고 영업 허가를 받아 8인승 포드 자동거 독점 영업을 하였다. 1911년 경상도 진주에 살았던 일본인 에가와는 포드 8인승 지붕이 없는 무개거(無蓋車) 1대를 들여와 마산-삼천포간을 달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버스 영업을 시작했으며 10명까지는 탈 수 있었으며 저녁에는 천막지붕을 치고 가스등를 달고 다녔다. 1913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거회사가 생겨났는데 포드 T형 승용차 2대를 한성(漢城)에서 시간제로 임대하는 방식이었다.1914년에 이탈리아 공사관에 근무하던 윤권은 공관 자동거로 운전을 배워 황태제 의친왕(義親王)의 미국 GM 오버랜드를 운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운전기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