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大韓帝國) 황실(皇室) 이화문(李花紋)은 자두꽃(오얏꽃)

2014. 11. 1. 22:28우리 역사 바로알기

 

 

 

 

 

      

대한제국(大韓帝國) 황실(皇室) 이화문(李花紋)은 자두꽃(오얏꽃) 조선국 대한제국 역사

2014/10/3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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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大韓帝國) 황실(皇室) 이화문(李花紋)은 자두꽃(오얏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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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절정을 이루는 자두꽃은 오얏꽃으로도 부르며 신라국 말기 도선(道詵) 스님이 쓴 비기(秘記)에 왕(王)씨에 이어 이(李)씨가 한양(漢陽:고려시대 지명)에 도읍한다고 예언하였고 고려국(918-1393) 왕실은 한양에 벌리목사(伐李牧使)를 두어 백악(白岳:북악산)에 오얏(자두)나무를 심고 나무가 무성할 때면 모두 찍어서 이(李)씨의 기운을 눌렀지만 고려국(高麗國) 권지국사(權知國事) 이성계가 1393년 조선국(1393-1897)을 건국했다. 1897년 10월 12일 초대 황제 고조 광무제(1897-1919)가 대한국(1897- )을 건국하면서 오얏 이(李)자에서 따온 자두꽃(오얏꽃) 문양, 이화문(李花紋)을 대한제국(大韓帝國) 황실(皇室)의 상징 문장(紋章)으로 삼았으며 이화문(李花紋)의 문양은 여러 형태로 남아 있지만 대체로 다섯 꽃잎의 꽃잎마다 셋의 꽃술을 놓고 꽃잎 사이에 또 꽃술을 하나씩 놓은 꼴로 정형화됐다. 대한제국(大韓帝國) 황실(皇室)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화문장(李花紋章)은 대한제국(大韓帝國) 황실(皇室)의 상징 문장(紋章)으로서 원수복,적의 등 황실 복식과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의 순종 융희제가 황태자궁인 창덕궁에서 대리청정할 때 고조 광무제가 임어한 양전(洋殿),가구,자기,시계,우표 등의 각종 황실용품, 대한제국 황태자(1919년 1월 황제 등극한 2대 순종 융희제)와 황태자 이척의 아내 윤씨가 사용했던 어거(御車) 문에 대한제국(大韓帝國) 황실(皇室)의 상징 문장인 이화문(李花紋)을 금도금했다.

 

 

 

   대한제국 황제의 대원수복(별 5개)의 단추,대한제국 명헌태후,황후, 황태자비(민씨)와 의친왕비가 착용한 대례복인 심청색 적의(翟衣)에 이화문이 시문되어 있으며 경운궁(慶運宮) 안 고조 광무제가 임어한 양전(洋殿)인 덕수궁(德壽宮) 건물에도 이화문이 있다.은제 탕그릇은 대한국(大韓國) 황실(皇室) 문장(紋章)인 자두꽃(오얏꽃)을 선각(線刻)으로 새겨 넣고, 예서체로 ‘萬壽無疆’을 4곳에 써넣었으며 몸체 2곳에도 자두꽃이 선각되어 있다. 꽃모양 은잔은 순은(純銀)으로 된 술잔으로 다섯 꽃잎이 벌어진 형태이며 표면에 자두꽃을 선(線)으로 새겨 넣었으며 자두꽃무늬 은잔은 속이 깊고 바닥이 둥근 은잔으로 표면에 자두꽃을 선각으로 그려 넣었다. 청자자두꽃무늬병은 대한국(大韓國) 황실(皇室)에서 사용하였던 국내산 자기로 그릇 표면에는 자두꽃(오얏꽃) 문양 이화문(李花紋)을 선각(線刻)으로 장식하고 백자자두꽃무늬접시는 백자 그릇 중앙에 청화안료(靑華顔料)로 자두꽃(오얏꽃)을 그렸으며 가장자리는 금선을 둘러 장식하였고 굽의 안쪽에 광무 9년(光武九年)의 명문이 있어 1905년에 제작된 접시임을 알 수 있다. 낙선재(樂善齋) 명(銘) 이화문(李花紋) 접시는 꽃모양의 대형 백자 접시로 가운데에 청화안료(靑華顔料)로 자두꽃(오얏꽃)무늬와 ‘樂善齋’를 새겼으며 접시의 바닥에도 청화안료(靑華顔料)로 자두꽃 무늬가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