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천문의 정체성

2013. 6. 2. 16:15별 이야기

 

 

 

 

 



자미원 하늘엔 우리 조상의 별이 총총해

노  중 평

 

    천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조상이 고대에 천문학의 선진국이라고 말한다. 우리 조상이 고대에 천문을 살펴 제사를 지냈다는 말이다.
제사의 대상으로 삼은 별이 북극오성(北極五星: 작은곰별자리)과 북두칠성이었다. 이들 별은 우주를 주재하는 신으로 보았고, 우리
조상들이 이들 별에서 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북극오성엔 우주의 중심에 떠 있는 북극성이 있고, 이 북극성과 일렬로 황후(皇后), 서자(庶子), 천제(天帝), 태자(太子)라는
별들이 나란히 서 있다. 우리 선조는 언제부터인가 민족의 기원을 이들 별자리에서 찾았다. 황하 유역에 살면서 동양권에서 처음
천문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삼국유사나 한단고기에 기록된 ‘단군신화’는 민족의 기원을 이들 별에서 찾고자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북극성은 천주(天樞)라고 하는데 우주의 주재신을 상징하는 별이다. 황후는 곰할머니인 웅녀(熊女), 서자는 서자한웅(庶子桓雄), 천제는 한인천제(桓因天帝)를 상징한다.
북극오성은 임금이 계시는 구중궁궐에 해당하는 별이고 북두칠성은 정승판서가 나라 일을 살피는 조정을 상징하는 별이다. 이 별이 우리의 별임을 중국의 최고 천문서인 보천가(步天歌)나 중국의 사서(史書)인 진서 천문지(晋書 天文志)에서도 밝히고 있다. 중국의 최고 천문서인 보천가에서 북두칠성을 우리별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최초로 쓰여진 보천가(아마 후대로 내려오면서 중원을 통일한 한족에 의하여 첨삭이나 변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에서 ‘삼한(三韓)의 주인이 청구칠흑자(靑丘七黑子)’라고 하는 것을 보면 북두칠성을 우리조상의 별로 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진서천문지에서도 28수의 끝별 자리인 진성(軫星) 분야에 청구칠성이 속해 있다고 기록해 놓았다. 우리의 역사서인 제왕운기(帝王韻紀: 고려 문신 李承休 지음)는 고구려가 일어난 것을 북두칠성이 일어난 것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청구칠성은 우주의 변방인 태미원(太微垣)에 속한 별이고, 북두칠성은 우주의 중심인
자미원(紫微垣)에 속한 별이기 때문이다. 왜 한족은 우리민족의 주성(主星)을 청구칠성으로 비정하고 우리조상은 우리민족의 주성을
북두칠성에 비정하는가? 이는 중원의 최초의 주인이 가지고 있던 별자리를 그들이 진한대(秦漢代)에 고조선의 영토였던 중원을
빼앗으면서 변방으로 쫓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전해 오는 천문도는 대체로 진한대에 완성한 천문도이다. 이 천문도는 그들이 황제헌원(黃帝軒轅)을 그들의 최고 조상으로 정하면서 한웅과 신농(神農)을 정점으로 한 동이계(東夷系)의 천문을 모두 뜯어 고쳤다.
황제헌원의 별자리는 17개의 별이 남방주작칠수(南方朱雀七宿) 별자리인 유(柳), 성(星), 장(張), 익(翼)의 네 별자리에 걸쳐서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한족이 의도적으로 황제가 남방을 석권했다는 것을 나타내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황제와 라이벌이었던 치우천왕의 별자리는 어디를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별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당시에 한족이 치우천왕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가를 먼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한족은 치우천왕을 ‘머리에 두 뿔이 나 있고, 귀밑 털은 칼날처럼 빳빳이 섰으며, 눈이 네 개나 되고, 손이 여섯이고, 발은 마치
소의 발처럼 생겼다’고 했다. 이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귀신의 형상이다. 그들은 치우천왕을 귀신취급을 했던 것이다.


    황제헌원의 별자리 앞에 보면 남방주작칠수의 귀성(鬼星)분야와 유성(柳星)분야 사이의 좁은 하늘에 귀(鬼)라는 이름이 붙은 다섯
개의 별자리가 있다. 별 넷은 방형의 형상이고 별 하나는 방형 안에 갇혀 있다. 그러니까 이 별자리를 치우천왕의 별자리로 본다면
가운데 하나는 치우천왕이고 밖의 네 별자리는 치우천왕을 가두어 둔 감옥이라고 할만하다. 한족은 치우천왕을 귀신으로 몰아 하늘에
감금하고 있는 것이다. 가운데 있는 별을 적시(積尸)라고 하는데 이는 시체를 쌓아 놓았다는 뜻이니 치우천왕의 시신으로 보인다. 시(尸)라는 글자는 고조선과 한(韓)의 문자인 금문(金文)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북두칠성을 형상화한 글자인데 제(帝)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족이 중원을 통일하면서 이 문자를 ‘염하기 이전의 시체’를 의미하는 불길한 문자로 폄하하였다. 그러니 적시별이 치우천왕을 의미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헌원성과 귀성 사이에는 관성(琯星)이라고 하는 별자리가 있는데 이 별자리는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는 봉화대별자리이다. 헌원은 치우천왕을 죽여서 갇아두고서도 불안하여 봉화대를 세워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해석을 한다고 해도, 이 별자리는 한족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변조된 별자리이므로 이 해석에서 별자리의 원형을 찾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한
족의 별자리를 무시하고 우리의 입장에서 다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고조선의 별자리라고 했을 때 헌원성이 치우성이 되고 귀성이 헌원성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와 같이 바꾸어 해석하자는 것이다. 아마 이렇게 해야 맞는 원형이 될 것이다.



 


     귀와 가까운 곳에 8개 별로 구성된 유성과 7개 별로 구성되어 있는 성성의 두 별자리가 있고, 이들 별자리는 모두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별자리이다. 유는 지상에 최초로 출현한 나무이다. 단군왕검은 버드나무 잎으로 옷을 해 입었다.
   따라서 유성은 단군왕검의 옷으로 볼 수 있는 별이 된다. 성성은 달리 조성(鳥星)이라고도 한다. 고조선의 새라면 신라의 왕족을
탄생시킨 닭(大鷄)과 고구려를 탄생시킨 까마귀(三足烏)인데 닭이나 까마귀는 모두 고대 고조선의 지배집단 종족들의 족표(族標)임을
뜻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치우천왕을 귀로 몰아서 하늘에 감금한 황제가 과연 한족의 조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황제는 한족의 조상이 될 수 없다. 이는 한족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를 따져 보면 자명하게 풀린다.

    한족의 신화에 따르면 원래 한족은 중국의 서북쪽에 있는 화서씨(華胥氏)의 나라라고 하는 곳에서 출발한다. 화서씨는 여자였는데 뇌택이라고 하는 곳에 놀러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따라간다. 발자국은 뇌택의 주인인 뇌신(雷神)의 것이었다. 화서씨는 뇌신과 관계하여 복희(伏羲)를 낳았다. 한족은 복희가 인류의 조상이자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한족은 복희에서 시작하여 황제로 이어져 내려오는 족보를 만들어서 자기들의 조상이 황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단고기 신시본기(神市本紀)에 보면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신시라면 한웅천왕이 처음 세운 부도(符都: 한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이 처음 도읍한 국도)를 말한다. 복희는 신시에서 우사(雨師)라는 벼슬을 하고 청구의 낙랑을 거쳐서 진(陳)의 땅으로 들어갔다. 이때가 한족은 중원에 나타나기 이전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보아서 복희는 저들이 자기의 조상으로 차용해 간 것이다. 한족의 조상은 이렇게 출신이 분명치 않다. 한족은 이 불분명한 조상을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기 위하여 중원을 고조선에서 빼앗은 후로 역사 바꿔치기를 하여 동이계의 조상을 자기들의 조상으로 둔갑시켜 그들의 정체성을 여기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족이 역사날조를 하기 위하여 열심히 변조한 천문도의 원형이 실은 동이족의 천문도라고 의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글학자인 한갑수 선생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1971년 당시 주 이태리 문덕주 대사로부터 주선을 받아서
이태리 정부의 초청으로 로마에 가서, 이태리 관광장관이며 세계적인 대석학인 자코모 박사로부터 “솟대”를 비롯한 11가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를 설명해 주자 자코모 박사가 2시간이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 후

 

“코리아 당신의 나라가 세계에서 단독으로 최고 선진국입니다. 왜냐 하면 당신나라가 확실히 세계에서 제일 먼저 절대자를 모신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희랍 사람이 아니라 한국이 단독으로 세계에서 제일 선진국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나의 학설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은 그리스도가 태어나서 알려주기 4000년 전(BC 4000)에 절대자 하느님을 먼저 알고 있었으며, 고대 이집트 인들보다 2세기 반에서 2세기 전에 황하 연안에서 인류 문명을 싹 틔었다. 음력을 BC 2357년에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1/100의 오차도 없어 수정을 한적이 없었고, 이 당시에 황하 유역에는 중국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자코모 박사가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으로 미루어 우리 선조가 황하 유역에서 현재 중국의 천문도로 알려진 천문도의 원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우리는 지금부터 5, 6천년 전의 별자리를 공부하여 우리 별을 찾아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정체성과 잃어버린 역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5, 6천 년전의 역사를 복원해 내지 못하면 우리의 역사는 머리 없는 시체와 같은 역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태연하게 아무 의식 없이 머리없는 역사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이러고서도 과연 나라가 온전하게
발전할 것인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우리의 별자리를 찾으면서 우리의 고대 역사,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사용되는 물품과 우리 문화의 시원(始原)을 찾게 되는 과정과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별자리는 280여개의 별자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양의 별자리와 신화만을 접해왔던 우리는 불과 100여년 전, 우리의 증·고조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알고 있었던 많은 별자리들을
알지 못합니다. 이들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우리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역으로 우리 문화는 별자리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 이러한 내용들을 설명해 주는 책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가 단지 옛 별자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들이 실은 우리의 오랜 기록을 담고 있는 역사서라는 것과,
조선 시대의 천문서인 《천문류초》, 우리의 고대사임을 주장하는 《부도지》, 《규원사화》가 이러한 역사와 별자리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오래되어 최근에 황해가 만들어지고 우리 민족이 형성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규원사화》나 《부도지》는 별자리에 맞추어진 내용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들은 별자리로 추정한 각 시대의 생활상과 서로 들어맞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내용들은 최근까지 발굴된 해당 시대의 유적과도 부합합니다.

 

    출간된 책에서는 별자리와 관련된 태고(구석기 후기) ~ 단군임금까지의 고대사를 위주로 설명하였고, 차례에 나타나 있듯이 그 내용은
황해 동쪽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인류·문물의 역사이며, 우리 별자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책이 ‘단군 이전’의 고대사를 맞추어 본 것인 만큼, 단군조선 2대 임금 이후의 내용의 추론은 특별한 권위가 없습니다. 즉, 부루 임금 이후의 단군 조선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아직 보강 자료를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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