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9/21)

2014. 11. 7. 15:15경전 이야기

글제목 : 말씀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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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9/20)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천주교 서적과 교리를 연구하던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대부분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다른 나라들의 교회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사회는 전통을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결국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천주교는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이들 순교자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103명을 시성하였다. 그 뒤 한국 교회는 9월 26일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9월 21일 주일로 경축 이동을 하지 않을 곳에서는 대축일 미사를 드린다.> ▦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성인들을 기리는 대축일입니다.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신앙의 증거는 세계 교회가 감탄하는 한국 교회의 풍성한 열매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순교 영성은 끝까지 십자가를 지는 참된 신앙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이 미사에 정성껏 참여하면서 우리 각자의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잘 이겨 낼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는 의인들의 운명에 대해 말한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은 세상 그 누구도 단죄하거나 심판할 수 없다고 증언한다. 환난과 역경도 주님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서 갈라놓을 수 없으며, 죽음과 그 어떤 권세도 그들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분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3,1-9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31ㄴ-39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가 기리는 한국의 순교 성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철저한 헌신을 통하여 이 땅에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 준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죽음만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깨닫고 실천했던 복음적 삶 또한 당시의 사회적 한계와 모순을 뛰어넘는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지난봄 순교 성인에 대한 매혹적인 연구서 한 권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어 국문학과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유중철 요한과 함께 동정 부부로 살다가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의 옥중 편지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그것을 박해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상황과 함께 연구하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저자는 당시 사회가 몰랐던 새롭고 위대한 인간상이 순교자들과 함께 등장했음을 이순이의 글에서 발견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다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순이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적고, 슬퍼할 친정 식구들을 위로하는 편지를 썼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순교자의 자기를 넘어선 숭고한 정신세계에 마음이 크게 울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조선 시대 문학 전공자로서 조선 사회에 나타난 새로운 인간형을 보았다. 현세를 넘어서서 천상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에서도 누구보다 성실했던 사람, 어떤 경우에도 감사를 잊지 않았던 사람. 이 새로운 인간형에 대해 교회는 주목하지 않았고 교회 밖은 무관심했다” (정병설, 『죽음을 넘어서: 순교자 이순이의 옥중 편지』). 순교자들의 장렬한 죽음은 복음으로 변화된 새로운 삶의 완성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이 땅의 참된 인간화를 위한 한 알의 밀알과도 같은 봉헌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의 후예로서 우리 또한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복음의 가치를 증언하는 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순교 정신의 계승일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주를 따르리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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