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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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은 이웃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그 사랑은 선행을 행하는 것으로,
또한 이웃과 다투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드시어
주님의 말씀을 드러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등불을 덮거나 가려서는 안 되듯이
우리는 말씀이 세상을 환히 비추도록 해야 한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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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신다.>
▥ 잠언의 말씀입니다. 3,27-34
내 아들아,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
이웃이 네 곁에서 안심하고 사는데,
그에게 해가 되는 악을 지어내지 마라.
너에게 악을 끼치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하고도 공연히 다투지 마라.
포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길은 어떤 것이든 선택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하신다.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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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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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등불의 빛에 비유하신 뒤
그 등불에 대한 사람들의 두 가지 유형의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서도 그 말씀이 부담스럽고
내 숨은 속내를 드러낼지 두려워 은근히 치워 두거나,
짐짓 듣지 못한 듯이 처신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말씀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 말씀이
다른 사람들을 비추도록 애쓸 수도 있습니다.
말씀의 등경을 들고 다른 사람을
비추러 나서는 일은 어렵고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첫 발자국을 내디딘 사람은 어둠에서 자유로워지며
빛으로 충만해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진 자가 더 받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말씀의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는 모습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제1독서의 잠언 말씀이 잘 알려 줍니다.
하느님 말씀의 빛은 이웃 사랑의 결실인 선한 행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환히 드러나며, 이로써 종교적 체험은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봅니다.
하느님 말씀의 빛을 등경 위에 밝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의 윤리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잠언에서 우리는 사랑의 윤리에 기초한
올바른 행위의 두 가지 차원을 봅니다.
소극적 차원의 애덕으로 우리는 이웃과의 필요 없는 다툼을 피하며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적극적 차원에서는 어려움에 빠진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잠언의 이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위란
단순히 인간적 차원의 처신을 넘어, 말씀의 빛을 간직한 사람이
자신의 선한 행위로 그 빛을 세상에 드러내는 종교적 차원을
그 안에 담고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가 행하는 작은 선행과 호의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깊은 차원을 드러낼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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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내안의 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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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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