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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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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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비오 성인은
1887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1910년 사제가 된
그는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다.
비오 신부는 1918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68년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지닌 채 고통 받았다.
곧, 그의 양손과 양발, 옆구리에 상흔이 생기고 피가 흘렀던 것이다.
이러한 비오 신부를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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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은 여러 가지 교훈을 전하고 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나으며, 거만한 눈과 오만한 마음은 죄악일 뿐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찾는다는 말에
누가 당신의 참가족인지를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 그분의 어머니요 형제들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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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교훈>
▥ 잠언의 말씀입니다. 21,1-6.10-13
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거만한 눈과 오만한 마음, 그리고 악인들의 개간지는 죄악일 뿐이다.
부지런한 이의 계획은 반드시 이익을 남기지만,
조급한 자는 모두 궁핍만 겪게 된다.
속임수 혀로 보화를 장만함은, 죽음을 찾는 자들의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악인의 영혼은 악만 갈망하고, 그의 눈에는 제 이웃도 가엾지 않다.
빈정꾼이 벌받으면 어수룩한 자가 지혜로워지고,
지혜로운 이가 지도를 받으면 지식을 얻는다.
의인은 악인의 집을 살피고, 악인을 불행에 빠지게 한다.
빈곤한 이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자는,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대답을 얻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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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9-2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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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근래에 성인 반열에 오른 분 가운데 참으로
열렬히 공경을 받고 또한 그의 시성식이 큰 화제가 된
성인으로 꼽을 수 있는 분이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출신의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사제입니다.
성인의 인기가 고국인 이탈리아에서 얼마나 높은지는
도시의 식당이나 카페들에서조차 쉽게 눈에 띄는
그의 사진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 지닌 성덕의 위대함은, 세속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심의 변할 수 없는
본질을 철저하게 증언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명성이 널리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그에게 몰려들고
인간적으로 추앙받던 상황에서도 그는 참으로 겸손하였습니다.
그는 대중의 환심을 사기보다 때로는 거친 태도를
보이면서까지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통하여 회개하고
참된 신앙을 다시 찾도록 인도했습니다.
또한 성체성사가 예수님과 나누는 참된 친교이며 신비적 실재임을
자신이 혼신을 다해 봉헌하는 미사를 통하여 느끼게 했습니다.
그가 직접 병원을 세워 환자들을 치료하게 하였듯이,
비오 성인은 인간의 육체적 고통을 깊이 염려하면서
그리스도의 고통에 자신을 일치시켰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라고 부르듯이,
그의 다섯 군데의 상처는 예수님의 고통과 일치하며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자신을 봉헌한 사람이라는 점을 상징합니다.
그 유명한 ‘오상’과 또한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주어진
환시들과 수많은 치유의 기적 때문에 그의 존재는
현대에 시성된 어느 성인들보다도 우리가
기적’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숙고하게 합니다.
‘기적’은 현대 신학이 애써 외면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오 성인에게 일어난 기적들을
우리 그리스도인은 피안의 세계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신비로운 ‘초월적 실재’와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표징으로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초월’에 대한 의식과 경외심 없이는
눈에 보이는 세상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믿음과 희망을 두는 순례의 여정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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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당신뜻을 따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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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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