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9. 15:15ㆍ산 이야기
대청도 여행사진 - 셋
/ 20141108~09 토~일요일 , 맑음
서풍받이 하늘전망대 가는 중간에 있는 해식단애에서...
- 이곳에서 클립행어 류의 영화를 촬영하거나
행글라이딩을 하던가 하여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늘의 기운과 바다(北溟)의 정기(精氣),
삼각산 규암의 정기(晶氣)와 서북풍의 서기(瑞氣)를 받는
하늘전망대
선종하신 김수한 추기경님 말씀으로는 사람이 산에 들면 선(仙),
산에서 고을로 내려가면 속(俗)이라 하셨으니
안내판의 원고를 쓴 사람의 말도 맞는 것 같다.
돌아보아도 바닥이 좁아 그 풍경이다.
조각바위 언덕에도 원나라 순제(토곤 테무르: 재위 1333~1370년) 대칸의
스리텔링이 들어가 있다.
징기스칸은 배다른 형제들부터 제압하면서 부터 세력을 키워왔으니
그 후손인 쿠빌라이 칸이 세운 원나라 조정의 당시 상황으로는
계모의 모함에 의한 대청도 유배가 곧 생명의 연장선이 될 수 있었다.
이 원 순제는 재위 35년간 쿠빌라이 다음으로 안정된 치세를 이룬다.
이 때 고려출신의 기황후의 도움이 컸었다고 한다.
이 원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는 반원건명의 기치를 높이던 홍건적의
우두머리 중의 하나였던 주원장에게 연도(燕都 : 大都, 현 북경)을
함락(1368년)당하고 만리장성 밖에 있었던 상도(上都 지금의 외몽고자치구 인근)으로
겨우 6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쫒겨간 비운의 황제이다.
1369년에 주원장에게 상도마저 함락당하고, 이듬해 그의 아들에게
북원(北元)의 왕권을 물려준다.
상도에서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천연덕스럽게 유목생활로 돌아갔다.
이를 알고 고려국 공민왕은 최영장군에게 요동정벌을 명한다.
상도에서 쿠빌라이의 형인 홀레구가 세운 세운 중앙아시아 호라즘의 일칸국
(현 페르시아와 이라크)과 러시아에서 징기스칸의 아들인 주치와 그 후손 바투가
세운 킵착칸국과 징기스칸의 아들인 차카타이가 인도대륙에 세운 무굴제국의
지원병력을 기다리다가 페스트 창궐과 형제들의 내분으로 명나라 세력에 이렇다 할
대항을 하지 못하고 원이 멸망하다(1368년).
페르시아에서는 이보다 먼저인 1335년에 페르시아 일칸국의 몽고인들이 사라졌다.
<페스트 창궐은 유럽을 고립시켰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 러시아에 사는
몽골인들을 중국인이나 몽골과 차단했다.
페르시아의 몽골 통치자들은 이제 중국에 있는 자기 소유의
토지와 작업장에서 나온 물자를 얻을 수 없었다.
중국에 있는 황금가족은 러시아와 페르시아로부터 물자를 얻을 수 없었다.
각 지파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자 서로 맞물리는 소유제도도 붕괴했다.
- 중략 -
몽골제국은 사람, 물자, 정보가 제국 전체를 끊임없이 빠르게 돌아다녀야
생존할 수 있었다. 이런 연결이 없으면 제국도 없었다.
- 중략 -
몽골 왕가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이 통치하는 주민 내의 특정한 종교분파를
따르게 되자, 왕실 지파들 사이의 불화는 더욱 심해졌다.>
- 하략-
- 잭 웨더포드 지음 <징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사계절출판사
2005.3월 간행, 349~356쪽에서 발췌....
에볼라 창궐을 왜 선진국들이 두려워하고
이의 전파방지를 위하여 유럽과 미주대륙의 강대국들이 애쓰고 있는지는
몽골제국의 멸망과정과 유럽에서 중세 봉건왕조의 몰락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몽골제국의 붕괴과정에서 오늘의 한반도에서 살고있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본다. 이렇다할 자원이 빈약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적자원만이
있는 나라에서는 끊임없이 사람, 물자, 정보를 세계각국으로
유통시켜야 우리 경제와 국력 침체에 대한 돌파구가 생겨난다.
부둥산 경기를 회복시켜 얻은 동력으로 내수경기를
다시 일으키려고 하는 식의 경제정책은 근시안적이고
기득권층에게 어필하려고 하는 또다른 포풀리즘이 아닐까??
그의 숙부인 제8대 황제 문제(文帝) 때 인도의 석가모니불의 수제자인 가섭존자의
마지막 108대 법통을 이은 지공선사(指空禪師)께서 히말리아를 넘어 티베트를 거쳐서
현 운남성 남조국, 대리국 지방을 거쳐서 원나라 연도에 왔다가
제자인 원나라 유학승인 나옹선사가 귀국할 때 고려국 개경으로 함께 오셨다.
고려에서 약 2년반 동안 전국 제방사찰에서 인도의 정통선종을 지도하시다가
제 11대 황제인 순제의 부름을 받고 연도로 돌아가다.
그 동안 제9대 황제는 순제 효종의 아버지인 명종 쿠실라가 재위하였고,
제10대 황제는 순제의 동생인 영종 린친발이 재위하는 등
1333년 순제가 즉위할 때까지 13년 동안 7명의 황제가 바뀌는 격변기를 거쳤다.
지공선사가 양산 통도사에서 원나라 유목민들의 라마교의 영향으로
일부 사찰에서 행하여지던 동물희생제를 금지시키고자 설법을 하고
만든 경전이 국보로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중인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상계경이다.
지공선사의 관련유적으로 광주 무등산의 지공수도굴과 지공너덜,
양주 회암사의 지공선사 사리탑과 탑비가 유명하다.
하늘전망대와
원황제가 된 순제가 세자 시절에 호연지기를 길렀다는 조각바위
해국(海菊)
입동이 지났어도 해국이 피어있는 것으로 보아
북서풍의 해풍은 차가운 듯 느껴지나
해류의 영향으로 기온은 따뜻한 것으로 보여진다.
조각바위
하늘전망대에서 되돌아본 대청도 삼각산
삼각산, 기름아가리와 독바위 해안
등산로 맨 끝에도 또다른 하늘전망대가 있다.
바다 건너 소청도.
저녁식사 중 이철구 산산회장님의 인삿말
선포리 바다식당에서...
김벽수 (차기) 동기회장님 인사말씀과 건배제의
정수리로 돌을 깨부순 류학균 동기의 인삿말
처음 참석한 동기 소개는 사진을 못찍음... ㅠ ㅠ ㅠ ...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숙소에서 가까운 옥죽동 사구 산책
토끼 발자욱인지 염소 발자욱인지??
해풍에 날려온 고운 모래
갯멧꽃
옥죽동 사구의 넓이가 약 20여만평 ....
통신탑이 있는 곳이 어제 오후에 다녀온 삼각산
간이 기상관측장비
바다 건너 희미한 백령도
홍어잡이 전진기지인 옥죽동 어항
바람은 모래파도 무늬를 만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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