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꽃은 욕심이 없다 外 / 도 종 환

2013. 6. 3. 09:56

 

 

 

              지는 꽃은 욕심이 없다 

 

                                                                    도 종 환 ( 1954 ~     : 충북 청주시 출생 )

 

 

 

    저녁 바람이 라일락 나뭇 잎을 일제히 뒤집는다

 

    일이 잘 안풀려 마음이 복잡해지고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나는 창가로 간다

 

    그리고 창가의 나무들을 오랫동안 쳐다 본다

 

    아름다운 꽃들은 지고 없다

 

 

 

    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견뎌온 나무들을 생각하며

 

    나무는 바람 속에서 얼마나 아파 했을까

 

    그러나 결국 나무는 꽃을 바람에 되돌려준다

 

    그토록 아름다운 꽃들은 겨우 몇날 지나다가

 

    다시 풀숲이나 흙 바닥에 뒹굴게 하고 말았다

 

    얼마나 가슴 아렸을까

 

 

 

    그러나 어떤 나무도 꽃송이를

 

    일년 내내 지니고 있을수 없다는 것을

 

    나무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욕심이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우리가 이룬 아름답고 영예로운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간속에 묻히게 되어 있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영광과

 

    영화로운 시간을 끌고 가려는 것은 욕심이다

 

 

 

    일이 이루어 지는데는 반드시 그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너무 빨리 가려고 하면 멀리 가지 못하는 것이

 

    정한 이치이다

 

    지치고 힘들 때면 자신을 놓아 주어야 한다

 

    바람 앞에 나무가 꽃을 놓아 주듯이

 

    더 달라고 하면 잎마져 놓아 주듯이

 

    그렇게 자신을 놓아 주어야 한다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들도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의 시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