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화제화(梔子花題畵) /豊坊 (明 1492~1563 ?) 外

2013. 6. 16. 23:25

 

 

 

 

겹치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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梔子花題畵(치자화제화)
                                                     豊坊(풍방)

 

 

金鴨香消夏日長(금압향소하일장)

抛書高臥北窗凉(포서고와북창량)

晩來驟雨山頭過(만래취우산두과)

梔子花開滿院香(치자화개만원향)


금압향로의 향 사그라지고 여름날은 긴데
보던 책 내던지고 편히 누우니 북창이 서늘하네
뒤늦게 내리던 소나기 산머리 지나가고
치자꽃 핀 정원에는 향기가 가득하네

 

 

- 梔子 ; 꼭두서니과(―科 Rubiaceae)에 속하는 상록관목.  지름이 5~8㎝ 정도인 꽃은 흰색으로 6~7월경 가지 끝에서 1송이 씩 핀다. 열매 말린 것을 치자 또는 산치자라고 하여 한방에서 소염제·이뇨제·지혈제로 사용하거나 황달의 치료에 쓰며, 초나 재를 매염제로 이용해 헝겊이나 단무지를 노랗게 물들이거나 전(煎)을 노란색으로 물들일 때 쓴다. 꽃 향기가 있어 남쪽지방에서는 정원수로 심기도 한다.

- 金鴨香 ; 금으로 만든 오리 모양의 향로, 또는 그 향로의 향.
- 驟雨 ; 소나기

 

 

☞ 근현대 중국화가 진반정(陳半丁)의 <장미치자도(薔薇梔子圖)> 화제(畵題)로도 쓰임

 

 

※풍방(豊坊, 1492~1563?)[= 豐坊 = 丰坊]

 

    명나라 때 서법가(書法家)、전각가(篆刻家)、장서가(藏書家)。

절강(浙江) 은현(鄞縣) 사람. 字는 존례(存禮), 또는 인옹(人翁). 號는 남옹외사(南禺外史)。만년(晚年)에 이름을 도생(道生)으로 바꾸었음. 방안(榜眼) 풍희(豊熙)의 아들.

 

    가정(嘉靖) 2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이부주사(吏部主事)를 제수 받았으나, 통주동지(通州同知)로 폄적되었다가 돌아왔다. 오중(吳中)에 살았는데, 빈한하여 병으로 죽었다. 성정이 광탄(狂誕-오만하고 방탄함)하여, 익살로 세상을 희롱하였으나, 재주가 비범하고 박학하여 수천 마디 글을 그 자리에서 써내려가곤 했다.

 

   13경을 모두 따로 훈고하여, 새로운 것을 끌어 내고, 특이한 것을 찾아냈다[鉤新索異]. 집에 만권루(萬樓)가 있어 장서가 매우 많았다. 서법은 5체에 모두 능하였으며, 특히 초서를 잘 썼다. 전각(篆刻)에도 뛰어났고, 산수화(山水畵)를 잘 그렸는데, 옛 사람을 사사하지 않고,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으며, 또한 화훼(花卉)도 잘 묘사하였다. 《서결(書訣)》을 지었으며,《만권루유집(萬樓遗集)》이 있다.

 

 

 

 

[참고]

 

    명나라 풍방(豊坊)은 『서결(書訣)』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예는 육예의 다섯 번째에 자리하는데, 성인은 이것으로 교화하고 육성시키는 데에 참여하여 도와주었으며 고금을 관철하였다[書居六藝之五, 聖人以之參贊化育, 貫徹古今.]”

 

    “손가락은 착실하고 팔을 들어 붓에 온 힘이 있게 한 뒤에 누르고 비틀고 머무르고 꺾어서 글씨가 반드시 나무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인인니와 같게 된다. 이는 방필과 원필이 깊고 중후하여 가볍게 나부끼지 않음을 말한다[指實臂懸, 筆有全力, 擫衄頓挫, 書必入木, 則如印印泥. 言方圓深厚而不輕浮也].”

 

 

栀子花题画(明·丰坊)
  七言绝句 押阳韵

金鸭香消夏日长,抛书高卧北窗凉。晚来骤雨山头过,栀子花开满院香。

 

 

 

                                                                                     다음 카페 <고사성어서당>에서

 

 

 

 

                                                                       치자나무

 

 

 

 

치자꽃 설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및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섦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박규리 (1960~ )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민족예술』에 「가구를 옮기다가」외 4편을 발표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2004) 간행.

 

 

 

 

    산중 깊은 암자일수록 속세와의 연이 더욱 질기게 이어져 있다. 역설이다.
세간에서 받은 상처가 깊을수록 더 깊은 산중으로 찾아들지만, 암자로 이어진

아주 작은 오솔길은 제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눈물의 길’이다.


 

    박규리 시인의 「치자꽃 설화」는 이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산중 암자의 한 일화를 그대로 옮겼을 것만 같은 이 시는 매우 산문적이면서도
절묘하게 시적 울림을 증폭시킨다. 시를 읽노라면 비에 젖은 치자꽃 향기가
온몸에 척척 달라붙는 느낌이다.


   종교적 엄숙주의 혹은 그 가식에 질릴 대로 질린 이들이라면 이 시에 감동받지
않을 이 몇이겠는가.


    시 속에 등장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도
비로소 스님답고, 실연에 겨워 ‘돌계단 및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는
여인도 비로소 사랑을 아는 여인다우며,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화자인 시인도 절집에 살만한
보살답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시는 ‘설화’가 아니라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한편의 영화다.
아니, 허구의 영화가 아니라 감동적인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그렇다.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니 이 시를 되새기며
우리 함부로 사랑의 이름으로 사기치지 말자. (이원규 시인)

 

                                                                                                  다음 카페 <풀꽃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