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진의 차맥] (14) 한국 차의 신화학 다시 쓰기 ② 매월당은 한국의 다성, 다신
2014. 11. 25. 04:21ㆍ차 이야기
[박정진의 차맥] (14) 한국 차의 신화학 다시 쓰기 ② 매월당은 한국의 다성, 다신
김시습 초암차는‘한국의 미학’ 바탕으로 탄생
매월당, 경주 용장사터서 차·대나무 가꾸며 ‘금오신화’ 집필
한국의 초암차의 전통이 전적으로 매월당 김시습(金時習·1435∼1493)에 의해서 시작되고 이룩된 것은 아니다. 초암차는 한국 선비들의 미의식을 비롯하여 한국인의 심층에 도사린 자연주의 미학과 일탈의 미학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다. 단순소박, 자연친화, 자유일탈로 요약되는 한국의 미학은 ‘청허(淸虛)의 차’를 초암차의 미학으로 변용한 셈이다. 매월당은 특유의 선가나 도가, 불가의 사상과 사생관을 바탕으로 선비차의 전통에 철학적 깊이와 구체적인 법식을 더했다.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 |
그는 차를 손수 재배하고 법제하면서 조선 초기에 차문화를 물심일체(物心一體)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차 종류와 용어인 ‘작설’(雀舌)이나 ‘훈차’(焄茶·차를 끓이다)의 개념을 전한 인물이다.
매월당은 비록 초의(草衣)나 한재(寒齋)처럼 차를 어떻게 키우고, 법제하고, 차의 종류에 관한 산문 기록은 없지만 많은 차시를 남겼다. 차시의 내용을 보면 차와 혼연일체가 된 생활의 모습이 보이며, 차를 통해 우주에 이른 경지를 드러낸다. 차에 관한 산문 기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기술적인 것으로 차의 정신이나 차의 스승을 세우는 데 큰 고려사항이나 덕목이 되지는 못한다. 이 점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매월당이야말로 차의 정신세계를 이룩한 인물이다.
매월당이 차를 사랑한 경지가 어떠하였는지는 다음의 시에서 잘 드러난다.
“해마다 차나무에 새 가지가 자라네/ 그늘에 키우느라 울 엮어 삼가 보호하네/ 육우의 다경에선 빛과 맛을 논했는데/ 관가에서는 창기(槍旗)만을 취한다네/ 봄바람이 불기 전에 싹이 먼저 터 나오고/ 곡우가 드디어 돌아오면 잎이 반쯤 피어나네/ 한가하고 따뜻한 작은 동산을 좋아해/ 비에 옥 같은 꽃 드리워도 무방하리다.”(‘養茶’)
매월당의 초암차는 우리 민족의 소박함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으로 건너가서 나름대로(일본식으로) 완성된 일본의 소안차-와비차의 전통은 도리어 겉으로는 소박함을 표명하지만 뒤에서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사치스럽고 귀족스럽기 그지없다. 소박함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며, 인위적으로 소박함을 표현하는 형식주의는 이미 소박함이 아니다. 일본 차의 계보들은 명기(名器)에 속하는 차 그릇을 가지지 않으면 아예 축에 끼지도 못하였다. 이게 무슨 소박함인가.
오늘날 일본 다도 종가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와비의 외피 속에 숨겨진 그 도도함과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억압하는 분위기, 이는 ‘과시하는 선(善)’과 같다. 번잡할 정도의 다도 과정을 따라가노라면 도리어 답답함을 느낀다. 결코 소박하지 않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본의 한계이자 특징이다. 일본은 형식이라는 틀에 스스로 매이지 않고서는 단순 소박함조차도 얻질 못한다.
매월당 김시습이 경주 남산에 있을 때 머물렀던 용장사 전경.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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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화려한 쇼인차(書院茶), 차노유(茶湯)에 반발하여 만들어진 소안차-와비차는 다시 쇼인차나 차노유로 돌아간 느낌이다.
오늘날 일본 다도를 보면 ‘박제된 김시습의 초암차’를 보는 느낌이다. 물론 법식은 법식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예(禮)의 정신이 성(誠)이라는 것을 환기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소안차-와비차라는 말은 소박함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일본의 기물(器物)주의로 왜곡되어 있다. 문화라는 나무는 외래에서 옮겨 심더라도 결국 심겨진 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대원칙을 발견할 따름이다.
일본의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佰敎) 교수는 이미 1930년대에 ‘부산요와 대주요’라는 책자에서 초암차의 원형은 매월당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어 재일사학자 이진희(李進熙·1986년 작고) 교수, 차 연구가인 현암 최정간씨(하동 현암도예연구소 소장), 석용운 스님, 최석환씨(‘차의 세계’ 발행인)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세종실록’의 세종 10년 2월 17일경 자조에 왜국사자 가운데 ‘준초’(俊超)라는 승려가 나온다.
“임국은 예빈소원 정침을 보내어 선위하게 하고 이르기를 ‘듣건대 너희들이 여러 달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 게 간고가 반드시 많았을 것이다. 지대라는 모든 일이 소우했을 것이므로 지금 사람을 보내 위로하니 나의 뜻을 알도록 하라.’”
조선왕조실록을 추적한 최정간은 더욱 소상한 정보를 밝혀냈다.
“‘세조실록’ 세조 9년(1463년) 7월 신축조(辛丑條)에서 일본 국왕의 사절로 조선왕국을 방문한 정사(正使) 준초서당(俊超西堂)과 부사(副使) 범고수좌(梵高首座) 중에서 정사로 온 준초서당이 준장로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최정간은 이어 일본과 대마도를 현지 답사하여 준장로가 일본 교토의 오산(五山·남선사, 청룡사, 상국사, 건인사, 동복사) 문학승의 정맥을 이는 월동준초라는 것도 밝혔다.
이 준초는 일본 승려(일동승) 준장로(俊長老)임이 확실하다. 두 승려가 활동한 시기와 매월당이 준장로를 만난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준초는 1463년 조선에 왔다가 태풍을 만나 일본에 돌아가지 못하고 조선에 머무는데 준장로가 조선에 머물렀던 1460∼1470년 시기와 일치한다.
소설가 정동주씨도 15세기 중반(대체로 1463∼1464) 일본 사신으로 조선에 온 일본 승 준초 일행이 때아닌 풍랑을 만나 귀국이 지체되는 동안 매월당을 만나서 매월당의 차풍(茶風)을 배워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 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 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 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 천룡선사 법당을 짓는 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 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 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 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당시 일본 승려들은 일본의 최고 지식인이었으며, 한문에도 능해서 이들을 통하지 않고는 외교나 무역도 할 수 없었다. 준장로 일행도 그러한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월당은 일본 승려 ‘준장로’를 만나 철탕관에 차를 끓여 접대한 차시를 남겼다. ‘매월당집’의 12권 ‘유금오록’(遊金鰲錄)에 ‘일동 승 준장로와 이야기하며’가 전한다.
“고향을 떠나 먼 곳에 머무니 마음이 쓸쓸하여/ 고불(古佛)과 산꽃으로 고적함을 달래네./ 철탕관에 차를 달여 손님과 더불어 마시고/ 질 향로에 불을 더 넣으며 향을 사르네./ 봄은 깊어 바다의 달빛이 초가에 젖어들고/ 비 멎으니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와 나그네의 여정이 함께 아담하니/ 밤새도록 다담(茶談)을 주고받아도 무방하리다.”(‘일동 승 준장로와 이야기하며 與日東僧俊長老話’)
이 시를 보면 쇠 다관에 차를 달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펄펄 끓는 물에 차를 넣어 달여서(煮茶) 마셨던 셈이다. 당시에 우려서(煎茶) 마신 것은 아니더라도 잎차 중심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의 음다풍이 달이거나 우려서 마시는 것으로 바뀐 것은 고려의 말차(抹茶) 중심에서 잎차(葉茶) 중심으로 바뀐 때문이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명나라가 개국하면서 잎차 중심의 우려서 마시기로 바뀌었다. 매월당의 시에서 자다(煮茶)라고 한 것은 말차의 점다(點茶)가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준장로가 남긴 두루마리로 된 문서는 지금 일본 교토 오산(五山)의 금고 속 어디엔가 감추어진 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이 문서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사실을 밝히기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왜 이 문서만은 은폐하고 있는가. 이 문서가 공개되면 한일 양국 차인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초암차의 실체와 한일 간의 전파 과정, 매월당이 끼친 영향 등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
- 세계일보 기사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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