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염불했길래 염주 알이 저리 투명할꼬? /손철주

2015. 1. 7. 11:36美學 이야기

 

 

 

얼마나 염불했길래 염주 알이 저리 투명할꼬?   ---손철주

노을 2012.06.12 08:51

      

    짙은 남색의 장삼 위에 붉은 가사가 선명하다. 녹색 매듭을 지은 금빛 고리는 마치 훈장처럼 반짝인다. 색깔이 눈에 띄게 대비되어도 들뜬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매무시다. 다만 주인공이 앉은 의자의 장식이 요란할 정도로 복잡하다. 연두색 바지 아래 보이는 발 받침대가 의자 다리 노릇까지 하는 특이한 디자인인데, 초상의 주인공을 귀하게 모시려는 배려가 소도구에서까지 엿보인다. 왼쪽 위에 표제가 있다. '청허당(淸虛堂) 대선사(大禪師) 진영(眞影)', 서산(西山)대사로 널리 알려진 휴정(休靜·1520~1604)의 초상이다. 스님의 호(號)가 청허당이다.

    전국을 주유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휴정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주장자를 놓고 칼을 들었다. 임진왜란이 묘향산에 은거하던 그를 불러냈다. 그가 산문(山門)에서 전쟁터로 간 까닭은 시로 전한다. '나라를 사랑하니 종사(宗社)가 근심이라/ 산속의 중도 또한 신하라오.' 그는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정이품 직위까지 받았다. 휴정의 진영은 지금까지 여러 점 남았는데, 강골(强骨)의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승군(僧軍)을 지휘한 이력 때문일 테다. 이 작품은 고승의 진영을 자주 그린 승려화가 유성(有誠)의 솜씨다. 휴정의 눈맵시는 길고 부드럽게, 대춧빛 입술은 단단하게 묘사해 강온(强穩)을 고루 살렸다.

 
'청허당 진영' - 유성 그림, 비단에 채색, 160.1×74.9㎝, 1768년, 봉정사 소장.

 

 

    휴정의 손에 든 염주가 하얗다. 얼마나 염불을 해야 염주알이 저토록 투명해질까. 큰스님은 손에 칼을 들거나 염주를 들거나, 큰스님이다. 하지만 카드 패를 잡은 큰스님은 없다. 저지레하다 들킨 스님들 때문에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는 부처님이 안 오실까 걱정이다. 휴정은 생전에 초상화가 있었다. 그는 입적하면서 그 초상을 보고 말했다. "80년 전 네가 나더니 80년 후 내가 너로구나." 저잣거리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절집이 여여(如如)해야 한다.

 

 

     -다음 블로그 < 노을, 옛그림과 놀다>의 글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