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한글이 쓰인 최초의 그림은 무엇일까요?

2014. 9. 10. 14:39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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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한글이 쓰인 최초의 그림은 무엇일까요?  홍윤표의 한글 이야기 

2011/05/1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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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옛 그림 속에 한글이 쓰인 것도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글이 쓰인 최초의 그림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알려진 그림 중에 한글이 쓰인 최초의 그림은 <안락국태자전변상도安樂國太子傳變相圖>입니다. 

 




   한글이 쓰인 최초의 그림 <안락국태자전변상도安樂國太子傳變相圖>

 

   이 그림은 현재 일본의 고지현高知縣 좌천정佐川町에 있는 청산문고靑山文庫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탱화幀畵 부처, 보살,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로 비단 위에 그린 것인데, 크기가 세로 106.5cm, 가로 57.1cm입니다. 1576년에 그린 그림이지만, 누가 그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이 1996 12월 호암미술관에 전시되었을 때, 저는 그림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감상하면서 왜 이 중요한 문화재가 우리나라에 있지 않고 일본에 있는지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우선 그림을 보시지요.




 

 안락국태자전변상도

 

   이 그림은 21개의 장면이 한 화폭에 그려져 있고, 각 장면에 대한 설명이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를 그린 동기

 

   그림의 상단에는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문 금자金字로 쓴 세로 31행의 화기畵記가 있습니다. 화기에는 이 그림을 그린 동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1576년에 선조대왕과 왕비인 의인왕후 박씨懿仁王后 朴氏를 위해 제작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화기의 기록과 그 번역을 보시기 바랍니다. 


   번역은 정재영 교수의 글 <'안락국태자전변상도'라는 글><문헌과 해석>통권 2, 1998을 참조하였습니다.




 

 

원문

 

萬曆四年丙子六月日 比丘尼慧因慧月等見沙羅樹舊幀 多歷炎冷 塵昏蠹食丹漫滅 形像隱隱 不可識矣 觀者病焉 於是普勸禁中得若干財 卽倩良畵 改成新圖 卦諸金壁之上 形容森嚴 光彩百倍於前 使人人一見 便知而能發菩提之心 普與含生同樹善根 其願力之化深 誠意之懇至 嗚呼至哉 憑此良因主上殿下聖壽萬歲 王妃殿下聖壽齊年速誕天縱 恭懿王大妃殿下聖壽山高慈心海闊 濟世如願 度生如心 德嬪邸下壽命無盡 福德無量 惠嬪鄭氏寶體無灾無障 壽命無窮 金氏業加氏保體灾如春雪 福似夏雲 權氏墨石氏保體 壽基益固 福海增淸 各各隨喜因緣等 俱崇福慧 共享安穩 必無疑矣 吁其盛歟 是歲秋七月上浣 對松居士 謹誌

 

번역문

 

   만력 41576, 선조 9 병자 6월일에, 비구니 혜인과 혜월 등이 사라수구탱을 보았는데, 여러 해 동안 더위와 추위를 겪으면서 먼지로 더렵혀지고 좀이 먹어서 단확단사, 곱고 부드러운 빨간 빛깔의 흙의 색이 벗겨지고 형상이 희미해져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보는 사람의 마음이 안타까웠다. 


   이에 널리 금중 궁궐에 권하여 약간의 재물을 구하고 곧 좋은 화공을 청하여 새로 그림을 고쳐 그려 금벽 위에 그림을 걸었는데, 그 모습이 삼엄하고 광채는 이전보다 백배나 더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 보게 하면 곧 깨달아 보리심을 내게 되고, 널리 중생과 더불어 한가지로 선근을 심게 된다. 그 원력의 교화가 깊고 성의의 간절함이 지극하다오호라 지극하구나. 이 어짊을 인하여 주상 전하 성수만세, 왕비 전하 성수제년이 천종하고하늘에서 준 덕을 따르고, 공의왕대비 전하의 성스러운 수가 산처럼 높고, 자비로운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서 원대로 세상을 구제할 수 있고, 마음먹은 대로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덕빈 저하의 수명은 다함이 없고 복덕도 무량하구나. 혜빈 정씨의 보체는 재난이 없고 장애가 없어 수명이 무궁하다. 김 씨와 업가 씨는 몸을 보존하여 재앙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복은 여름 구름처럼 피어나는구나. 권 씨와 묵석 씨는 몸을 보존하시매 장수의 기틀이 더욱 견고해지고, 바다와 같은 복이 더욱 맑아지는구나. 각각 기쁨을 따라 같은 인연으로 복과 지혜를 다 숭상하고 안온함을 함께 누리는 바, 의심할 바 없구나. , 성대함이여. 이 해 7월 초순에 대송거사가 삼가 쓰다.

 

   이 화기畵記는 대송거사가 작성한 것인데, 원래 비구니인 혜인과 혜월이 발원하여 선조대왕과 그 왕비, 그리고 공의왕대비  12대 임금인 인종의 비, 덕빈 저하순회세자빈 윤씨, 혜빈 정씨 등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면서 쓴 것입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의 이름

 

   이 화기畵記에는 '사라수구탱'이라는 기록이 있어서, 이 그림 이름을 '사라수탱'이라고도 합니다. 호암미술관에 전시될 때에도 '사라수탱'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재영 교수는 그 내용을 보고 '안락국태자전변상도安樂國太子傳變相圖'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편 일본인 학자 구마가이 노부오熊谷宣夫는 이 그림을 '안락국태자경변상도安樂國太子經變相圖'라고 하였습니다.熊谷宣夫, 1969, 靑山文庫 安樂國太子經變相, 김재원 박사 회갑 기념 논총, 을유문화사



   이 그림 속에는 주인공이 여럿 나오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세 사람입니다. 그림 속의 이야기는 사라수대왕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왕비인 원앙부인의 이야기이며 또한 그 아들인 안락국태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누구로 정하는가에 따라 그림의 제목을 각각 다르게 부릅니다.


   사라수대왕은 후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되었고, 원앙부인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되었고, 안락국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되었으니, 아무래도 사라수대왕을 가장 중요한 주인공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문학 작품 중에는 '안락국'을 주인공으로 하여 '안락국전'이라는 소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기畵記 '사라수구탱沙羅樹舊幀'을 보고 하도 헐어서 다시 그렸다고 하니, 이 이름은 ''자를 뺀 '사라수탱沙羅樹幀'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종교학이나 국문학, 또는 민속학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내용은 '안락국태자전'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변상을 그린 것이니 변상도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므로 '안락국태자전변상도'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의 그림 내용

 

   이 기록에 의하면 <안락국태자전변상도> 1576년 이전부터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수구탱'이라고 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라수구탱'에도 한글이 쓰여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새로 그림을 고쳐 그렸다.改成新圖'라고 하였는데, 이전의 그림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전의 그림에도 한글이 쓰여 있었다면 아마 15세기쯤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랫동안 그림이 바래 버릴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 시간은 흘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그림은 '안락국태자전'의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안락국태자전'은 월인석보 권889b-103b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내용을 소상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범마라국梵摩羅國 임정사林淨寺에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중생을 교화하고 있었는데, 서천국西天國에 사라수대왕이 왕비 원앙부인과 함께 사백여의 소국을 잘 다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제자인 비구니 승렬바라문勝熱婆羅門을 보내 찻물을 기를 채녀婇女,궁녀를 빌려 오라고 하였다. 승렬바라문이 서천국에 가서 궁중 뜰에서 사라수대왕의 지시로 나온 원앙부인을 만나니 원앙부인이 제미齊米, 제에 쓸 쌀를 바치려고 하였다. 


   사라수대왕이 젊고 고운 여덟 각시婇女를 주었다. 3년 뒤에 광유성인이 다시 유나維那, 절에서 중들의 규율 등을 맡은 책임자를 시키려고 사라수대왕을 직접 오라고 하니, 사라수대왕의 어려움을 알고 왕비인 원앙부인이 함께 길을 나선다. 사라수대왕이 국가를 동생에게 맡기고 서천국을 떠나 죽림국竹林國에 가는데, 만삭이 된 원앙부인이 걷지를 못해 원앙부인이 자원하여 그곳의 자현장자子賢長者, 자현이라는 부자의 집에 금 2,000근을 받고 종으로 팔려 남게 되었다. 만삭인 원앙부인이 사라수대왕에게 왕생게往生偈를 알려 주고, 또한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안락국安樂國이라 하고 딸을 낳으면 효양孝養이라고 부르라는 대왕의 부탁을 듣는다.


   원앙부인이 장자의 집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인 안락국이 7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찾으므로, 범마라국 임정사에 광유성인光有聖人이 계신 곳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처음에는 도망을 가다가 계집종에게 붙잡힌다. 다시 안락국이 장자의 집을 도망하여 임정사를 찾아 가는 길에 팔채녀를 만나 원앙부인이 알려준 왕생게를 듣는다. 그 근거로 아버지인 사라수대왕을 만나 이름인 '안락국' '왕생게'를 통해 부자지간임을 확인하고 붙잡고 운다. 그러나 사라수대왕은 안락국에게 남편과 아들을 잃고 더욱 슬퍼할 원앙부인을 생각하여 빨리 돌아가도록 한다. 죽림국에 도달하여 소를 치는 목동의 슬픈 노랫소리를 듣고는, 원앙부인이 장자에게 보리수 앞에서 환도로 세 동강 내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안락국태자가 원앙부인의 뼈를 이어 놓고 울며 살아나도록 합장하여 게를 지어 부르니, 극락세계로부터 사십팔용선四十八龍船이 진여대해眞如大海에 떠 안락국 태자 앞에 와서 그 중의 보살이 태자에게 부모가 벌써 서방에 가서 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안락국 태자가 그 말을 듣고 사자좌獅子座에 올라 허공을 타고 극락세계로 갔다.


   광유성인光有聖人은 석가무니불釋迦牟尼佛이고 사라수대왕沙羅樹大王은 아미타불阿彌陁佛이고 원앙부인鴛鴦夫人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고 안락국安樂國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고 승렬바라문勝熱婆羅門은 문수文殊이고 팔채녀婇女는 팔대보살八大菩薩이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 속의 한글 내용

 

   이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이고, 그림 속에는 이 내용을 한글로 적어 놓았습니다. 그림 속에 적어 놓은 한글 표기를 그대로 옮겨 놓으면 다음과 같습니다.보라색 글씨는 그림에 없는 부분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써 넣은 것입니다. 대신 현대문으로 번역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내용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1) 이 승열바라무니勝熱婆羅門 처엄 팔婇女 오라 셔 겨시니라

(2) 이 원앙부인鴛鴦夫人이 처엄 齋米, 보시로 주는 쌀 오라 나와 겨시니라

(3) 이 처엄 팔婇女 와 가시니라

(4) 이 비귀比丘 婇女 리고 와 뵈니라

(5) 이 승열바라문勝熱婆羅門 두 번재 셔텬구긔西天國 가시니라

(6) 이 승열바라무니勝熱婆羅門 두 번재 와 겨시거늘 원앙부인鴛鴦夫人 齋米 오라 나와 겨시니라

(7) 이 대왕大王과 부인夫人과 승열바라문勝熱婆羅門과 세 부니 가시니라

(8) 이 세 부니 초망가셔草莽間에서 자시니라

(9) 세 부니 길 녜샤  듁림국竹林國 디나실 제 부인니夫人 몯 뮈시니 냥분 오샤 사 지블 어더 내 몸믈 라지이다 빋 바샤 내 일홈 조쳐 셩인聖人 오쇼셔 름도 셜우시며 뎌 말도 슬프실 냥부니 장 우시니라

(10) 이 비귀比丘 댱쟈長者 집 치시니라

(11) 이 초망가草莽間 자시고 댱쟈長者의 지브로 가시니라

(12) 이 현댱쟈子賢長者 지븨 세 부니 나아가샤 겨집죵을 라지이다 시니라

(13) 이 현댱쟤子賢長者 듣고 세 부 뫼셔 드려 겨집죵의 비디 언메잇 부인이 니샤 내 모매 비디 일쳔一千 이니이다  니샤 욘 아긔 비디  일쳔一千  이니이다 이쳔二千  을 비드로 내야 냥분 니라

(14) 밤 자시고 문  나샤 세 부니 슬흐시니 부인夫人 오샤 곧 아니면 어느 길헤 다시 보오리 사미 션을 닷면 리익글利益 니 왕往生偈 치시고 아긔 일호 엇 리잇 아비 어미 이셔 일뎡사이다 왕이 눈믈 흘리시고 부인 들 어엿 너기샤 아옷 나거든 안락기라安樂國이라   라커든 효양孝養이라 라 문 밧 셔 겨샤 냥부니 여희실 제 하디여 우시니라

(15) 이 비귀比丘  바다 지고 가시니라

(16) 이 부인란夫人을랑 시고 대왕大王이 비구比丘와 둘히 가시니라

(17) 이 아기 도망逃亡샤 가거시 댱쟈長者 집 죵이 보고 자바 가니라

(18) 이 아기 도망逃亡샤 아바님 보오라 딥동 고 가시니라

(19) 이 아기 나아가시다가 婇女 보시니 대왕大王이 오시다 시니라

(20) 이 아기 아바님 맏나시니 두 허튀 안아 우시니 왕이 무샤 네 엇던 아완 허튀 아나 우다 아기 말 아니고 왕往生偈 외오신대 아바니미 안으시니라

(21) 이 아기 아나 우시니라

(22) 대왕大王이 아기려 니샤 아래 네 어미 나 여희여 시름으로 사니거늘 오 네 어미 너 여희여 눈믈로 사니라 아기 하딕야 여희실 제 눈므을 흘리시니 아바니미 슬흐샤 아기 보내실 제 놀애 브시니 아래 녀리 그츤 이런 이븐 길헤 누 보리라 우러곰 온다 대大慈悲 원앙됴鴛鴦鳥와 공덕功德 닷 내 몸이 졍각 길헤 마조 보리어다

(23) 이 아기 도라오시니라

(24) 아기 도라올 제 길헤 쇼 칠 아 보시니 놀애 브르니 안락국기安樂國이는 아비 보와니와 어미 몯 보와 시르미 깁거다 댱쟤長者 야 부인 주기니 놀애 브시니이다 고븐 님 몯 보 하우니다니 오랄애 넉시라 마로렛 야 니니라

(25) 부인니 업스샤 삼동三同, 머리, 몸뚱이, 팔다리이 도외샤 즘게 아래 더뎟시니 아기 우르샤 삼동을 뫼호시고 셔방西方애 합쟝合掌시니 극락세계極樂世界 십팔룡셔니四十八龍船 공듕空中에 라 오시니 졉인즁接引衆生시 졔 대보살大菩薩히 獅子座로 마자 가시니라

 



   이 내용들이 어떻게 그림 속에 들어 있는지 그림을 몇 가지만 보도록 하지요.

 

(4) 이 비귀比丘 婇女 리고 와 뵈니라



 

(7) 이 대왕大王과 부인夫人과 승열바라문勝熱婆羅門과 세 부니 가시니라





 

 

(21) 이 아기 아나 우시니라




 

   이 그림에는 위의 한글 이외에 '광유셩인'횡서, '셔텬국 사라슈왕궁'횡서의 두 가지 글이 더 있습니다만, 내용을 쓴 것이 아니고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써 놓은 것입니다.


   위의 글 해독에서 '' ''으로 오독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 ''처럼 필사한 데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근거는 '광유성인光有聖人' ''으로 쓴 것이나 '왕궁' ''으로 표기한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락국태자전변상도>에는 ''이 사용되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 그림은 화기畵記를 제외하고 모두 한글 전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6세기의 일반적인 표기 방식은 대부분 한자와 한글을 동시에 쓰고, 한자에 한글로 한자음을 다는 방식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불교 관련 자료는 대부분 한자와 한글을 함께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한글 전용이니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25가지 내용을 설명한 글은 <월인석보> 8에 나오는 사라수대왕의 이야기를 압축해 놓은 것인데, 이것은 세종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220'부터 '250'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합니다. 다음으로 <월인석보>에 수록된 <월인천강지곡>의 내용 중에 이 그림에 나오는 글과 유사한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월인천강지곡>에 없는 부분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면, 이 그림에 쓰인 한글이<월인천강지곡>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월인석보>에는 원앙부인이 장자에게 몸에 밴 아기값과 합쳐4,000근의 금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월인천강지곡>과 그림에서는 2,000근을 받았다고 하니 내용도 약간 다릅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 내용의 번호

<월인천강지곡> 출처

<월인천강지곡>

1

221

勝熱婆羅門 王宮에 브리샤 錫杖 후느더시니

2

221

鴛鴦夫人이 王 말로 나샤 齋米 받더시니

3

222

婇女를 請커시 王이 깃그샤 八婇女를 보내시니

5

224

勝熱婆羅門이 王宮에  오샤 錫杖 후느더시니

6

224

鴛鴦夫人이 王 말로  나샤 齋米 받더시니

7

227

세 分이 길 녀샤

9

227

竹林國 디나 제 夫人이 몯 뮈더시니 兩分ㅅ긔 샤 사 지블 어다 내 몸 라지다

12

229

子賢長者ㅣ 지븨 세 分이 나가셔 겨집죵 라지다

13

229

子賢長者ㅣ 듣고 세 分을 뫼셔 드라 겨집죵 비디 언메가

13

230

夫人이 니샤 내 몸앳 비디 二千斤ㅅ金이니다 夫人이  니샤 욘 아 비디  二千斤ㅅ金이니다

13

231

밤 자시고 門 밧긔 나샤 三分이 슬터시니

14

232

夫人이 샤  아니면 어느 길헤 다시 보리 사이 善을 닷면 利益을 受니 往生偈 치노니

14

236

門 밧긔 셔어 겨샤 兩分이 여희 제 하디여 우러 녀시니

17

239

아기 逃亡샤 아바님 보리라 林淨寺 向더시니 큰 믈에 다라 딮동 샤 梵摩羅國에 니르르시니

18

240

나가시다가 八 보시니 沙羅樹王이 오시다 시니

20

240

 나가시다가 아바님 맞나시니 두 허튀 안아 우르시니

21

241

王이 무르샤 네 엇던 아완 허튀 안아 우는다 아기 말 고 往生偈 외오신대 아바님이 안시니다

22

242

아래 네 어미 나 여희여 시름으로 사니거늘 오 네 어미 너를 여희여 믈로 사니니라

22

243

아기 하딕샤 아바님 여희 제 믈을 흘리시니 아바님 슬샤 아기 보내 제 놀애 브르시니

24

245

도라 길헤 쇼 칠 아 보시니 놀애 브르더니 安樂國이 아비 보라가니 어미 몯 보아 시름 깊거다

24

246

長子ㅣ 怒야 夫人 주기더니 놀애 브르시니다 고 님 몯 보 읏 우니다니 오날애 넉시라 마로롓다

25

247

夫人이 업스샤 三동이 외샤 즘게 아래 더뎻더시니 아기 우르샤 三동 뫼호시고 西方애 合掌시니

25

248

極樂世界옛 四十八龍船이 空中에 라 오시니 接引衆生시 諸大菩薩히 獅子座로 마자 가시니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의 배열

 

   위에 제시한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의 내용상 배열은 <월인석보> 8에 나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배열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의 그림은 내용에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또는 좌에서 우로 또는 우에서 좌로 배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14), (22), (24), (25)를 제외한 모든 내용이 ''으로 시작하는데, '' '이 그림은'으로 해석됩니다. (14), (22), (24), (25)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내용'에 대한 설명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단편적인 그림으로 표시하기 어려운 부분들이기 때문에 한 가지 내용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내용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안락국태자전변상도>를 엄밀히 장면으로만 따진다면 모두 21개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의 배열 순서를 내용에 따라 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의 이야기 배열 순서



 

   <안락국태자전변상도>는 각각의 장면이 평면적으로 배치되지 않고 입체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등으로 시선을 이동하게 합니다. 그 이유는 공간 배치에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광유성인이 있는 '임정사'그림의 4는 비교적 그림의 위쪽에 놓고, 사라수대왕이 있는 '서천국'그림 1, 2, 6의 궁궐은 그림의 아래쪽에 그려 놓았습니다. 두 곳의 거리를 멀게 하여 서천국으로부터 임정사로 가는 여정이 얼마나 고달팠을까를 나타내기 위한 구도로 보입니다. 이 두 공간 사이에 몇 개의 공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자의 집12, 13, 14이고, 또 하나는 초망간 즉 푸서리 사이8입니다. 모두 시련을 겪게 되는 공간입니다. 결국 모든 끝맺음은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서 끝나도록 하였습니다. 광유성인이나 사라수대왕과는 상관이 없는 공간입니다. 결국 모두 극락세계로 갈 수 있는 공간인 것입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의 등장인물

 

   <안락국태자전변상도>에 등장하는 인물은 광유성인, 승렬바라문, 사라수대왕, 원앙부인, 안락국, 팔채녀, 목동, 장자, 장자의 종입니다. 이 인물들의 그림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림이 잘 보이지 않지만, 가능한 한 그 인물들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광유성인                                     승렬바라문





 

       

          사라수대왕                              원앙부인

 

 

 

                                         팔채녀





 

           

               안락국                                         장자

 




   그림이 명확하지 않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흐릿하게나마 인물들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와 문학 작품

 

<   안락국태자전변상도>에서 한글로 쓰인 부분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전승되고 있습니다. 서사 무가로서는 '주도의 이공본풀이'평안북도 무가인 '신선세텬님청배', 제주도의 '악양국왕자노래', 경상도 동래의 '오구대왕풀이'가 전승되어 오고, 사찰 연기 설화로는 '기림사 사적'이 전해 옵니다.


   국문 소설로는 <안락국전>이 전해 옵니다. <안락국전>은 현재까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과 연세대학교 소장본의 두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이외에도 많은 필사본이 있습니다.




 

         

    안락국전_연세대 도서관 소장본                 안락국전_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안락국태자전변상도>는 서사 내용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표현한 보기 드문 형식의 탱화입니다. 이 그림과 같이 그림을 제작하게 된 경위가 적혀 있는 그림도 드물지만, 각 장면마다 한글로 간략한 설명이 쓰인 자료는 더욱 귀합니다.  25곳에 한글이 적혀 있는데장소 이름까지 치면 27군데, 장면을 그린 그림을 설명한 것은 21개의 장면입니다. 한 폭의 그림에 많은 장면이 삽입되어 있고, 그 내용의 순서도 전후좌우로 배열되면서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띠는 그림입니다.


   옛 그림 속에 한글이 쓰여 있고, 그것도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 있는 그림이, 이른 시기인 1576년에 그려졌다고 하는 사실은 정말로 경이로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글이 책이 아닌 그림 형태와 함께 쓰일 수 있었던 것은 훈민정음 창제와 그 이후에 간행된 많은 불경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날의 그림 중에서, 그것도 한국화의 화제畵題에서도 한글을 발견하는 일이 많지 않은 현실 속에서, <안락국태자전변상도>처럼 그림 안에 한글을 쓰던 유행이 계속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국화에서조차도 영문자가 보이는 오늘날에 <안락국태자전변상도>우리에게 한글을 어떻게 살려 써야 할 것인가를 암시해 주는 중요한 한글 문화재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소장되어 있지 않고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이제는 국어 학자들도 한글이 쓰인 문헌에만 집착하여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어딘가에 숨겨져 우리를 기다리는 이러한 한글 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하여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글_홍윤표





                - 네이버 블로그 < 쉼표 , 마침표 >   우리말지기 님의 글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