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과 한 잔의 차

2015. 1. 31. 18:32茶詩

 

 

 

 

 

       아름다운 사람과 한 잔의 차 | 공자님의 다도강좌

문수산 | 조회 27 |추천 0 | 2014.10.16. 08:44

 


<문종실록>에 나오는 괴애 김수온의 내용이다.


병조정랑 김수온은 중 신미(信眉)의 아우였다. 비록 유학을 배워 과거에 합격하였지만, 천성이 불서를 지독히 좋아하여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능엄경은 중용보다 낫다고 한다.”


그런 김수온이 불교를 좋아 하면서도 유교가 국교인 나라에서 부원군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 하나를 볼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가 영천군수로 있을 때다. 왕의 비호를 받는 어떤 스님이 자신의 세력을 믿고 여러 고을을 시끄럽게 하기도 하고, 지방의 수령들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등 갖은 행동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마침 그 스님이 영천 고을에 왔다. 그는 넌지시 스님과 내기를 걸었다.

 

"나와 당신이 불교의 이치를 서로 토론하여 지는 사람은 지팡이로 마구 맞아도 때리는 사람을 원망하지 말기로 합시다."

 

그 스님 역시 좋다며 선뜻 나섰다. 김수온이 먼저 거침없이 불경을 줄줄 외며 밝은 지식과 능숙한 말솜씨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어 놓으며, 상대방의 눈치를 살폈다. 상대 스님은 답변은커녕 머리만 조아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위엄 앞에 질려 버리고 만 것이다. 김수온은 대뜸 문창호지가 바르르 떨도록 호령을 내렸다.

 

"네 이놈 늙은 중놈이 불경도 모르면서 어찌 중생의 복리를 빈다고 혹세무민하며 떠들어 댈 수 있단 말이냐?"

 

하고 지팡이로 사정없이 때려대니 그 스님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부리 나게 도망치고 말았다. 김수온은 서거정(徐居正강희맹(姜希孟)과 함께 조선 초기 3대 문장가로 손꼽히는 인물로 특히 시문에 뛰어났다. 그는 많은 차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식우집(拭疣集)>에 보이는실제(失題)’라는 시다.


입이 마를 때 마다 차로 입을 적시고, 창자를 지탱해 주는 보리밥은 한낮에야 먹는다. 뼈에 사무치는 청빈함 아직도 옛날과 같으니, 이 꼴이 높은 벼슬의 부원군 집이라 말하지 마오.

[枯吻時時只點茶 撑腸麥飯午交加 淸貧徹骨猶依舊 莫道封候府院家.]


영산부원군이란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뼈에 사무치는 청빈은여전했던 모양이다. 점심이 되어야 겨우 보리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고, 마른 입은 겨우 차 한 잔으로 적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시도 있다.


늘그막에 관직이 한가하여 누추한 집에 누었더니, 차 그릇과 술잔만 남았구나.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사립문은 닫지 않았고, 높은 의자는 다만 찾아 올 아름다운 객을 위해 닦아 두었다. 고요할 때는 이리저리 석가와 노자를 탐구하고, 한가할 때는 친구들과 시서를 담론한다.

[垂老官閑臥弊盧 茶甌兼復酒樽餘 衡門不向世人設 高榻只爲佳客除 靜裏沿洄探釋老 閑中談笑駁詩書.]


괴애는 세인들을 위해 사립문을 열어 놓고, 차를 나눌 아름다운 사람을 기다리느라 높은 의자를 준비해 둔 멋쟁이였다. 사서삼경만 읽은 것이 아니라 석가와 노자도 즐겼다.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자 오늘은 우리도 아름다운 친구를 불러 차나 한 잔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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