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사대주의와 반미 진보좌파의 기원 - 역사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 外

2015. 2. 12. 23:04잡주머니

 

 

 

 

전두환 5.17 쿠데타, 민주세력 탄압 진상

 

- 전두환 최규하 김종필 모두 조직의 꼭두각시였다
조직의 비밀

 

2015/02/26 09:46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83852938

전용뷰어 보기

전두환 5.17 쿠데타, 민주세력 탄압 진상 - 전두환, 최규하, 주영복, 이희성, 김종필 모두 조직의 꼭두각시였다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10)

 

 

 

   전두환 정권 시절, 식자들은 모두 80.5.17 쿠데타는 전두환 그룹이 최규하 대통령, 주영복 국방장관, 이희성 참모총장을 협박하여 일으킨 것으로 보았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자 식자들이 5.17 쿠데타 진상을 밝혀내려고 했다. 이 쿠데타는 전군지휘관회의 결정에 따라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회의의 전모가 드러나면 그 쿠데타 진상은 자연스레 밝혀질 것이었다. 전군지휘관회의는 주영복 국방부 장관이 주재했지만 식자들은 전두환 그룹이 배후에서 그를 조종한 것으로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회의 때 주영복이 몇 마디 말하고 옆방으로 가기를 반복했다. 식자들이 그 옆방에서 전두환 그룹이 주영복에게 지시했다고 보았지만 노태우 정권의 불 협조로 인해 그 방에 있었던 사람을 밝혀낼 수가 없었다.

 

  김영삼 정권 때 그의 아들 김현철이 5.17 쿠데타 진상을 밝히는 데 앞장을 섰다. 이에 주영복이 꼼짝 못하고 전군지휘관회의 때 옆방에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 사람을 밝혔다. 이 사람은 전두환 그룹이 아니라 계급이 아주 낮은 주영복의 부하였다. 이제는 김현철을 위시해서 식자들이 전두환 그룹은 전군지휘관회의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고 주영복이 전적으로 그 회의를 주재했음을 인정해주어야만 했다.

 

5.17쿠데타의 법적인 죄는 전두환 그룹에게는 없고 최규하 대통령, 주영복 국방장관, 이희성 참모총장에게 있음이 명확해졌다. 최규하 대통령에게도 죄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쿠데타가 아닐 수가 있다. 그래서 김영삼 정권이 그를 빼고 주영복, 이희성만 엄벌했다.

 

   위의 내용에 미루어 볼 때 5.17쿠데타는 전두환 그룹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그런데 민정기, 허문도, 박철언 같은 사람들조차도 그 쿠데타는 그 그룹이 일으킨 것으로 보았다. 최규하의 측근이었다가 전두환의 측근이 된 이원홍은 1988년에 열린 국회청문회에서 그것은 쿠데타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헌법을 어기지 않은 쿠데타라는 것이다. 헌법에 따라 한 것이 어떻게 쿠데타가 될 수가 있는가.

 

   국보위를 설치하고 전권을 장악한 전두환 그룹이 민주투사들을 악랄하게 탄압했다. 노태우 정권 때 전두환 그룹(신군부)이 모두 자신들은 그렇게 탄압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정기, 허문도, 이원홍, 박철언은 탄압했음을 인정하고 허화평, 허삼수, 권정달, 이학봉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민주세력이 허화평 등을 경멸했다. 민주세력이 노태우 정권의 불 협조로 인해 그들의 죄과를 밝혀낼 수가 없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민주세력이 세 정권의 협조 덕택에 국보위 설치 뒤의 악랄한 탄압 그 진상을 밝혀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전두환 그룹 가운데 아무도 그 탄압에 앞장서지 않았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탄압을 받은 사람은 숱하게 많이 있는데 그것을 지시한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 의하면 쿠데타, 탄압 모두 유령이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 블로그 <조직의 비밀> 카테고리의 글들의 내용을 이해한 사람은 그 유령의 정체를 파악했을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그 유령에 관한 것이다.

 

   육사 17기 대령들이 12.12 사태를 성공시키고 이 결과로 장성들 위에로 올라섰다. 그래서 ‘전두환 그룹 조직지능’이 생겼다. 최규하, 신현확,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에게 실망한 사회 각계의 조직지능이 그 조직지능에게 붙었다. 이제는 최규하, 주영복, 이희성이 ‘전두환 그룹 조직지능’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이 그 지능이 시키는 대로 5.17쿠데타를 일으켰다. 전두환 그룹 사람들이 그것을 하지 않았는데 멀리서 그것을 본 민정기, 허문도, 박철언에게는 그들이 그것을 한 것으로 보였다.

 

* 전두환 그룹 사람들은 스스로 쿠데타 같은 헌법을 깨는 일을 한 적이 없다. 국보위는 대통령 재가, 국무회의 통과 법적 절차를 밟은 기구였다. 국보위가 초법적 권한을 갖게 된 이유는 『부자나라가되다(유길만 지음, 청명 출간)』에 상세히 밝혀져 있다. 후세 사람도 그것을 알고 있는데 국보위를 만든 사람들인 민정기, 허문도, 박철언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기가 막힌 것은 전두환 비서실장였던 허문도가 그가 5.17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알았다는 사실이다. 허문도가 헌법을 준수하려고 하는 허화평에게, ‘당신들은 이미 5.17로 헌법을 깼다. 이제부터는 헌법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세력을 탄압한 자는 이승만 정권 때 생긴 ‘반공극우 조직지능’이었다. 허문도, 박철언, 김재익은 그 지능을 싫어하고 멀리했다. 허화평, 허삼수, 김진영은 그 지능과 연합했지만 그 지능의 민주세력 탄압에 끼어들지 않았다. 전두환도 기반을 다진 뒤에는 ‘반공극우 조직지능’을 멀리 했다. 정규육사출신들은 이승만 정권 때 생긴 그 지능과 생리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수면 아래에서 명맥을 이어가던 ‘반공극우 조직지능’이 김영삼, 김대중 정권 때 된서리를 맞아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다. 현재 그 지능은 조갑제, 지만원, 박희도 그들에게 붙어있다.

 

 

 

전체보기목록열기 (404)

목록열기

 

21세기 파라다임 - 인문 사회 과학 시대의 종언

 

- 칼 마르크스 자본론 베버의 관료제
조직의 비밀

 

2015/02/24 10:11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81590958

전용뷰어 보기

21세기 파라다임 - 인문 사회 과학 시대의 종언 - 칼 마르크스 자본론 베버의 관료제…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9)

 

19세기에 과학문명이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인간이 조물주보다도 뛰어난 존재라는 사상이 일어났다. 당시 초능력, 귀신 그것들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00년 만에 문명 수준이 이전보다 억만 배 높아졌으므로 십년 안에 그 정체를 파악할 것으로 믿었다. 사회, 경제 그 체제도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체제의 정체는 당장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와 같은 시대의 분위기 아래 그 체제에 대해서 연구한 마르크스, 베버가 공산주의, 관료제 이론을 세웠다. 이들 이론은 크나큰 허점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사조 덕택에 백번 옳은 것으로 여겨졌다.

 

20세기에 들어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자 지식인들이 이제는 초능력, 귀신의 세계 그것들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나 불원간 상대성이론을 넘어서는 뛰어난 이론이 나타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연 1920년대에 양자역학이론이 나타났다. 1960년대에 그 이론은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서 맴돌고 있음이 명확해졌다. 이것은 인간이 초능력, 귀신 그 정체는 영영 알아내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해 줄 수 없는 지식인들이 양자역학이론을 넘어서는 과학이론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1970년대에 카오스이론이 나타나자 지식인들이 이윽고 양자역학 이론을 넘어서는 이론이 나타났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카오스이론은 양자역학 이론의 발뒤꿈치에도 못 따라가는 것이었다. 이제는 지식인들이 기적, 귀신의 세계 이런 것들은 고사하고 국가, 경제, 사회 그런 것들의 실체도 불원간 파악하지 못한다고 보아야만 했다. 이에 19세기 이래 사조인 ‘인간이 조물주보다 뛰어난 존재라는 사상’이 사그라졌다.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지식인들이 허점 많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폐기시켰다. 21세기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이전에 세워놓은 인문사회과학 이론의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허점이 많은 베버의 관료제 이론은 그 껍데기만 비판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알맹이는 여전히 옳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베버가 관료제 이념형 이론 세웠다. 이 이론은 글자 그대로 이념형으로 그런 관료제는 당시 세상에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념형은 인간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는 것은 베버가 관료제 이념형은 당시 유럽에 부분적으로 있고 불원간 전체적으로 있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나 오늘날이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모두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행정학, 정치학, 경영학은 베버의 관료제 이념형이 오늘날 사회에 존재한다는 전제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 학문이다. 그러니까 모래위에 성을 쌓은 것이었다. 구미 열강의 식민지였다가 2차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나라들을 규율해야 하는 미국 정부가 사회과학자들에게 그들 나라들의 관료제를 연구하게 했다. 이에 수십년간 선진국과 후진국의 행정을 비교, 연구한 그들 학자들이 자신들이 연구한 것을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 해야 하는 것이 선진국의 관료제는 베버의 관료제 이념형에 가까운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한국행정 수준은 필리핀, 말레이시아보다 몇 수 아래 그러니 세계에서 가장 뒤떨어진 것이었다. 그런 나라인 한국의 관료제가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관료제보다 열배 큰 업적을 올렸다. 이것을 본 미국의 학자들이 미국 같은 선진국의 관료제가 한국 같은 후진국의 그것보다도 못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것이 싫으면 베버의 관료제 이념형은 엉터리 이론이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고 그 이념형에 입각해서 1960년대에 한국에서 일어난 현상을 설명했다. 이런 멍청한 일은 돌대가리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미국의 학자들은 수재, 천재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이 그때 한국에서 일어난 현상을 베버의 관료제 이념형으로 설명한 것은 그 이념형이 인간유전자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베버의 관료제 이념형은 그 내용이 수박 껍질만 핥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학자들이 그런 내용의 것을 오늘날까지도 훌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오석홍, 김광웅 등 미국의 행정학을 수십년간 연구한 학자들의 저서에 있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베버(M. Weber)는 행정학 발달사의 측면에서 볼 때, 프랑스의 파욜(H. Fayol), 미국의 귤릭(L. Gulick)·어윅(L. Urwick)·윌슨(W. Wison)·테일러(F. Taylor) 등과 같은 시대의 학자였다. 오늘날 행정학자들은 베버를 관료제 이론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합법적, 합리적 관료제 베버(M. Weber)가 제시한 이념형 관료제 개념이다.

베버는 근대관료제가 생긴 것은, ① 화폐 경제의 발달, ② 행정업무의 양적 증대, ③ 행정업무의 질적 발전, ④ 관료제도 기술 발달, ⑤ 관료제도에 국가적 역량 집중, ⑥ 관직 보유에 대한 차별의 철폐 6가지 원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대 관료제의 세 가지 장점은, ① 객관적, 보편주의의 추구 ② 공직(公職)에의 기회균등, ③ 우수한 기술, 능률적인 수행이다. 관료제의 그 장점은 민주주의에 공헌하고 있다.

   베버는 가산적(家産的) 관료제 대해서도 연구했다. 이 관료제는 근대 이후의 합리적 관료제와 대비되는 말로서 통치권과 소유권의 미분화(未分化)와 군주와 관리 간의 시혜적(施惠的)인 종속관계가 특색이다. 가산관료제에서 군주는 관리들을 하인 부리듯 한다. 가산관료제에는 근대관료제와는 달리 객관적, 합리적인 규칙이나 법규에 입각한 명확한 권한의 체계나 합리적인 관청조직이 결여되어 있다.

 

 

 

 

 

 

 

 

이종찬 장도영 노태우 회고록 속의 이승만 이기붕

 - 그들은 조직의 꼭두각시였다 조직의 비밀

 

2015/02/21 09:41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8680378

전용뷰어 보기

이종찬 장도영 노태우 회고록 속의 이승만 이기붕 - 그들은 조직의 꼭두각시였다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8)

 

 

   이기붕이 이승만과 인연 덕분에 그의 첫 사저인 돈암장에서 그의 비서로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그의 아내 프란체스카와 친밀해진 자신의 아내 박마리아의 주선으로 이승만의 신임을 얻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대통령비서실 실장이 되었고, 윤보선의 뒤를 이어 서울특별시 시장을 지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국방장관 신성모가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물러나자 이기붕이 제3대 국방부 장관이 되어 국민방위군 사건을 처리하였다. 12월 자유당 창당 조직에 참여하였다. 창당 초기, 부당수에 피선된 원외자유당의 이범석과 경쟁관계에 놓였다. 이런 때에 이범석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이승만과, 이 사람의 곁에서 이범석, 윤치영 등 강경파를 분리시키려는 미국이 이기붕을 자유당의 2인자 자리에 앉혀놓았다. 1954년 이기붕이 이승만의 대통령 장기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하여 가결시켰다.

이기붕의 집은 '서대문 경무대'라고 불릴 정도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었다. 제1공화국 후반기 이기붕 권력은 막강했다. 그를 찬양하는 내용의 서적이 자주 출간되었는데 '민족의 해와 달'이란 책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 책에서 '민족의 해'는 대통령 이승만을, '민족의 달'은 이기붕을 지칭한다.

 

   1956년 5월, 이기붕이 부통령 선거에 자유당 공천으로 출마하였으나 민주당의 장면에게 패하여 낙선하였다. 1957년 자기 아들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1958년 제4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되고 제4대 민의원의장이 되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를 통해 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으나 4·19 혁명으로 사임하고 자유당, 국회의장직마저 제명되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 부정선거는 임기를 마칠 가망이 없는 고령의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대통령 유고시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의 지위에 이기붕을 앉히려는 것이었다. 4월 28일 육군 소위로 복무 중이던 아들 이강석이 권총으로 아버지 이기붕, 어머니 박마리아, 동생 이강욱을 쏘아 죽이고 자살하였다.

 

   위쪽의 것은 위키백과에 있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위쪽의 내용 가운데 이강석이 자신의 가족을 모두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부분은 틀린 것이다. 검찰의 현장조사 기록에 미루어 볼 때 제삼자가 이강석을 포함한 그의 가족을 모두 쏘아 죽였다. 대통령 경호관인 곽영주가 자신이 그들을 쏘아 죽였다고 고백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기붕이 군부를 장악하고 있었음은 장도영(만주군관출신 참모총장), 이종찬(일본육사출신 참모총장)의 회고록을 보면 미루어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경호관이 수틀리자 그런 사람인 이기붕을 쏘아죽인 것이었다. 곽영주 경호관은 5급 공무원이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한테 지시를 받지 않았으면 이기붕 가족을 모두 쏘아 죽였을 리가 없다. 곽영주가 누구한테 지시를 받았음이 틀림없는데 사형당할 때까지 그것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에 미루어 볼 때 그 누구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장도영과 이종찬은 회고록에서 나쁜 사람 이승만이 착한 사람 이기붕을 이용해 먹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노태우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6.25 동란 때 육사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측근에게 물어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승만이 그때 이미 치매 상태에 있었음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이승만이 곽영주에게, 자신의 분신인 이기붕과 양아들인 이강석과 최순실 같은 여자인 박마리아를 쏘아죽이라고 지시했을 리가 없다. 곽영주가 이승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지시를 받았다면 사형 당하는 마당에 그 사람을 밝혔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시는 받았는데 그 지시를 한 사람을 알지 못했다고 보아야만 한다. 이것은 박관천, 조응천이 지시에 따라‘정윤회 문건 사건’을 일으켰는데도 불구하고 그 지시를 한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경우이다.

 

   곽영주, 박관천, 조응천에게 지시를 한 자는 조직지능이었다. 세 사람은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여기 블로그의 <조직의 비밀> 카테고리에 있는 글들의 내용을 이해한 사람은 그 정체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박근혜 이명박 노무현과 정부조직 및 청와대의 집단지성

 

- 유령과 싸우는 김기춘 비서실장
조직의 비밀

 

2015/02/20 09:29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7993961

전용뷰어 보기

박근혜 이명박 노무현과 정부조직 및 청와대의 집단지성 - 유령과 싸우는 김기춘 비서실장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7)

http://blog.naver.com/yukin48/220277456004 

 

​   위의 주소의 글에서, ‘대통령이나 장관에 의해 임명된 조직의 책임자와 상급참모가 조직지능이나 그 대리인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인즉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조직들이 무더기로 파괴되고 정권이 무너져야하는데 그러하지 않은 이유는 위의 주소의 글에서 이미 시사하고 있다. 아래의 것은 그 내용을 부연하여 설명한 것이다.

 

   대통령, 장관한테 절대적으로 신임 받는 조직의 책임자, 상급참모가 조직에 관해서 워낙 모르는 사람인 관계로 조직지능이나 그 대리인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 경우에 이 조직이 통째로 파괴되어야만 하는데 그러하지 않는 것은 조직지능이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고 있고 그래서 각 기관의 조직지능이 서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능한 조직의 책임자로 인해 위험에 빠진 조직의 ‘조직지능’이 장관이 직접 통할하는 기관의 ‘조직지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면 이 기관의 조직지능이 장관 명의로 개입하여 구해낸다. 장관이 그 조직의 책임자, 상급참모보다도 더욱 조직에 관해서 모르는 사람인 경우에는 그 조직의 ‘조직지능’이 대통령이 직접 통할하는 기관의 ‘조직지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조직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집단적으로까지 그런 경우는 없다(대통령이 집단적으로 안다는 말은 그의 참모가 안다는 말이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개입하여 위험에 빠진 조직을 구해낸다. 대통령이 조직지능에 대해서 비록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집단적으로는 아는 것은 민주국가의 경우이다. 옛날 전제국가나 오늘날 독재국가에서는 집단적으로도 모르는 경우가 발생할 수가 있다. 그 결과는 물론 그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국가라 대통령은 모두 조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알고 최규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는 개인적으로는 모르고 집단적으로만 알았다. 이것에 대한 것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경우는,『박정희에서 고건까지(유길만 지음, 북갤러리 출간) 』책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노무현은 그때까지의 대통령 가운데 조직지능이나 그 대리인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탄핵 당한 것이었다. 국민 덕분에 살아났으나 임기 내내 식물 대통령 상태에 있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노무현이 고졸 학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통령까지 된 데에 미루어 알 수 있듯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임기 말에는 조직지능과 그 대리인에 관해서 감을 잡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부조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인 이명박이 그 조직을 통째 뜯어고치려고 하자 노무현이 퇴임을 며칠 앞둔 식물대통령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거부권’을 행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것을 알고 있는 참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조직을 통째 뜯어고쳤다. 그러자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로 떨어졌다. 이 이유는 조직지능 내지 그 대리인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이명박과 그의 참모들이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는 것은 청와대 수석을 ‘조직지능 대리인’으로 교체시켰기 때문이다. 이 이유인지 다른 이유인지 그 후 이명박의 지지율이 두 배로 올라갔다. 그가 집권 후반기에 청와대 수석들을 다시 교체시켰지만 초반에 된통 혼난 관계로 조직지능 내지 그 대리인들을 거슬리는 일은 감히 하지 못했다.

 

   이명박이 집권 1년차에 겪은 일의 진상을, 교수고 기자고 누구고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의 삼인방만은 그것을 알아차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조직지능 내지 그 대리인을 거슬리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미루어 볼 때, 공무원연금개혁 파동 때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정부의 조직지능’에게 거역했는데 이것을 주도한 사람은 삼인방이 아니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은 청와대의 조직지능(직원들?)이 삼인방을 쫓아내기 위해서 일으킨 사건이었다. 삼인방은 그것을 이해해주는데도 이것이 그들을 쫓아내려고 한 이유는 맨 위에 있는 주소의 글을 보면 짐작할 수가 있다. 오늘날 중요 기관 중에 공채를 실시하지 않고 있는 곳은 청와대뿐이다. 이것은 청와대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오늘날까지 똑같이 운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청와대 조직지능(직원들)의 수준이 박정희 정부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아야만 한다. 그 조직지능이, 그 정부 때의 사람인 김기춘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의 편에서는 ‘청와대 조직지능’에 관해서 감은 잡고 있지만 알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청와대 비서실장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은 모두 파악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청와대 문건 사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정윤회 문건 사건은 유령이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지금 내가 그 유령과 싸우고 있다.”

 

 

 

 

 

 

 

 

전체보기목록열기 (399)

목록열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시해 진상

 

- 경호실장 차지철과 비서실장 김계원
조직의 비밀

 

2015/02/19 08:55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7456004

전용뷰어 보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시해 진상 - 경호실장 차지철과 비서실장 김계원…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6)

 

http://blog.naver.com/yukin48/220273698737 

 

​   위의 주소의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조직을 이루면 그 조직에 사람처럼 감정을 갖은 조직지능이 생긴다. 조직원 80%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20%는 대충 짐작하고 있다. 1% 이하의 사람만이 그것을 제대로 알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많으면 5 명 중 1 명 적으면 50 명 중 1 명이 조직지능의 존재를 짐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그들이 짐작하고 있는 조직지능에 관한 것이다.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은 그 조직의 1% 이하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임명한 책임자나 상급참모인 경우도 있지만 운전수 같은 고용직인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조직원 80%는 그 사람의 역할을 전혀 모른다. 20%는 그것을 알고 그 결과로 그 사람과 조직지능을 동일시 여긴다. 이 사람들은 조직지능은 모르고 그 사람만 알고 있다. 그들은 조직의 책임자의 명령은 형식적으로 따르고 그 사람의 명령은 목숨을 걸고 따른다. 물론, 운전수에 불과한 그 사람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임명한 책임자와 상급참모가 엄연히 있는데 주제넘게 자신이 직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20%의 조직원들이 눈치로 그 운전수의 뜻을 알아내고 목숨 걸고 그것에 따르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조직이 눈치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청와대고 백악관이고 크레믈린궁이고 모두 마찬가지이다.

80%의 조직원들은 20%의 조직원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전직원이 책임자를 외면하고 운전수만 따른다는 말이 된다. 이 말은 내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외면적으로는 80%의 사람들이 운전수에게 불복하고 책임자에게 복종하고 있다. 이것은 조직원의 내면과 외면이 충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조직이 엉망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조직의 책임자가 뒤늦게라도 운전수의 뜻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면 그 조직이 되살아난다. 그 책임자가 고집스레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자신의 뜻대로 운영하면 소생불능 상태에 빠진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직접 통할하는 기관에도 물론 조직지능 있다. 이것은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그 기관의 20%의 직원들에게 그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가 있다. 대개는 전임 대통령, 장관이 후임 그들에게 그 사람에 대해서 가르쳐준다. 정권이 교체될 경우에는 물론 그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경우에 국가적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후임 장관이, 조직지능이나 그 대리인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도 전임 장관한테 그것에 대해서 하나도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장관 노릇을 전혀 하지 못한다. 아래의 내용은 조직지능 내지 그 대리인에 관한 구체적 사례이다.

 

   국가정보원장 김재규가, 청와대와 붙어 있는 안가(安家)에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안가 안팎에는 청와대 소속의 경호원들이 진치고 있었다. 김재규가 부하 박선호에게, ‘내가 박정희를 쏘면 네가 안가 안에 있는 경호원들을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박선호가 그 지시에 따르려고 하지 않자 김재규가, “지금 정승화 참모총장과 김정섭 차장보가 여기 와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박선호가, “지시에 따를 테니까 한 시간 준비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그가 나중에 판사에게, “나는 총을 항상 갖고 있다. 바로 경호원들을 사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한 시간 준비 시간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기막힌 상황에서 박선호가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다음의 내용은 필자의 추정이다. 박선호가 정승화와 김정섭이 식사하고 있는 방으로 갔다. 당시 정승화는 그곳에 영문 모르고 와 있었다. 그러므로 박선호가 김정섭한테 눈치를 받았다고 해야 한다(한 시간이란 시간을 볼 때 박선화가 그 방에 세 번은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 방에서 나온 박선호가 안가 밖에 경호원들이 진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가 안에 있는 경호원들을 사살했다. 이상의 내용에 미루어 볼 때 김정섭은 국가정보원 20%의 직원들이 조직지능과 동일시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국가정보원을 실제적으로 움직인 사람은 김재규가 아니라 김정섭이었다.

 

   당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의 조직지능이 박정희로부터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원래는 그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특별한 사람인데 그때는 정신력이 혼미 상태에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부자나라(유길만 지음, 청명 출간)』에 상세히 밝혀져 있다. 김재규 국가정보원장과 김계원 비서실장은 조직지능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차지철 경호실장은 그것에 대해서 감도 못 잡고 있었다. 이것은 아래의 내용에 근거해서 한 말이다.

안가에서 수십 발의 총성이 울리자 안가 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안가로 왔다. 그러나 그들은, 박선호가 ‘돌아가라’고 말하자 그냥 돌아가 버렸다. 그 날의 당번인 두 명의 경호원만 안가로 들어갔다. 그러나 박선호가 ‘이상 없다.’는 각서를 써 주자 그들도 그냥 돌아갔다.

   위의 내용에 미루어 볼 때, 당시 경호실 직원들도 차지철에게 형식적으로 복종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차지철이 조직지능이나 그 대리인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청와대 2인자 자리에 앉혀놓은 것이었다. 박정희가, 정신력이 혼미 상태에 빠지매 차지철에게는 의존할 수 없음을 알고 김계원, 김재규에게 의지하려고 했다. 두 사람은 친형제 같은 사이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리지 않았겠는가.

 

 

   

 

 

 

 

전체보기목록열기 (399)

목록열기

 

조지 오웰 1984년과 스탈린 빅브라더와 미국 유럽 지성인(인텔리)… 조직의 비밀

2015/02/18 09:26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6821214

전용뷰어 보기

조지 오웰 1984년과 스탈린 빅브라더와 미국 유럽 지성인(인텔리)…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5)

 

강대국 셋이 서로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 나라의 정부는 주민들을 지속적인 관찰과 조작, 세뇌를 통해 통제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제는 예전 같으면 목장을 구경하러 가자고 보챘던 것처럼 사형장에 구경 가자고 칭얼댄다. 영화관에서는 가장 잔인한 장면이 특별히 재미있는 것으로 통한다. 정부가 첩자들을 통해 시민들을 도처에서 늘 감시하고, 진실을 왜곡하며, 역사를 날조한다.

텔레비전이 아직 문화의 주류가 되기 이전인 1949년에 조지오웰이 출간한『1984년』 소설에서 빅브라더가 TV 스크린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일일이 감시하는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권력의 남용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언어, 역사를 조작하고 공포 심리를 조작하는 정부 권력에 대한 통찰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러한 이슈들은 어쩌면 오웰이 이 작품을 쓴 시대보다 오늘날에 더 절실한 문제들인지도 모른다.

 

조지오웰의 소설인 『1984년』에서의 시민들을 완전히 통제하는 비전은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오웰은 1930년대에 사회주의자로 전향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오웰은 영국의 엘리트 기숙학교인 이튼을 다녔다. 그는 미얀마의 식민지 공무원이 되어 일했다. 하지만 식민지 주민들이 통치 세력에게 엄청나게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 그는 그 자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돌아갔다. 거지처럼 옷을 입고 런던의 빈민가로 이주한 그는 호텔에서 접시닦이로 일하기도 하고, 떠돌이들과 함께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보인 그의 동정에도 불구하고 오웰은 결코 공산주의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스탈린주의의 발전을 경악을 금치 못하며 관찰했다.

그는 『1984년』 작품을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경고로 집필했다. 공산주의와 나치즘의 제도를 소재로 한 그 작품은 냉전(冷戰) 분위기 덕택으로 1년 사이에 영국 ·미국에서만 40만 부가 팔렸으며, 세계 각국에서 잇달아 번역 출판되었다. 냉전시대가 끝난 뒤에도 영화와 음악, 미술 등 온갖 문화 영역에서 끊임없이 그 작품의 세계가 인용되었다. 지금까지 전 세계 6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09년에는 「뉴스위크」 선정 ‘역대 최고의 명저’에 두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위의 내용은 조지오웰과『1984년』에 대한 전세계 지식인들의 평을 요약한 것이다. 이 소설 속의 빅브라더는 스탈린이다. 그런데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저그런 인물이었다.(주1) 식자들이 나중에 그것을 알아차렸다. 이제부터는 『1984년』이 인기를 잃어야만 하는데 그러지 않고 오히려 더욱 얻었다. 이 이유는 민주체제이지만 무자비하기만 한 정부 때문이라고 위에서는 말하고 있으나 구미에서 그런 정부는 진작 사라졌다. 2015년 오늘날에도 구미의 지식인들이 『1984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빅브라더 같은 존재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만 설명할 수가 있다. 짐작건대, 인간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빅브라더와 같은 존재와 함께 살고 있다. <집단지성(지능), 서울대학교 청와대 cia(국가정보원)의 경우…사회생물학 집단심리학과 집단조직…>에서(주2)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면 조직지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것에 미루어 볼 때 국가를 이루면 당연히 ‘국가 조직지능’이 생긴다. 이것은 (주2)의 내용에 미루어볼 때 『1984년』 속의 빅브라더와 유사한 면이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 소설이 오늘날에도 구미의 지식인들한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50185342382 

(주2) http://blog.naver.com/yukin48/220273698737  

 

 

 

삼국지이터널 - 최고의 모사 : 제갈량 방통 노숙 순욱 정욱 가후 정사 삼국지

 

2015/02/16 08:05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4550086

전용뷰어 보기

 

삼국지이터널 - 최고의 모사 : 제갈량, 방통, 법정, 노숙, 장소, 장굉, 순욱, 순유, 곽가, 정욱, 사마의, 가후, 동소, 유엽, 장제

 

 

   연의에서는 무장(武將)들에 못지않게 모사(謀士)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삼국지가 그토록 웅대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무장과 모사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며 활약하기 때문이다.

   촉한의 모사들을 보자. 하늘로 나르는 용이라는 제갈양(諸葛亮), 하늘에서 천하를 굽어보는 봉황이라는 방통(龐統), 그리고 법정(法正) 등이 있다. 제갈양은 만약에 법정이 살아있었다면 이릉 대전에서 유비가 육손(陸遜)에게 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법정은 육손을 능가하는 모사였던 것 같다.

 

   오나라를 보면 장소(張昭), 장굉(張紘), 노숙(魯肅)이 있다. 손책이 어린 나이에 강동의 지배자가 되었을 때 장소와 장굉 두 사람은 한 명이 국내에서 내정을 전담하고 또 한명은 손책을 수행하며 외정을 전담하였다. 기실 동오는 그 두 사람의 손안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래서 손책은 죽을 때 장소 보고 자신의 후계자가 되라고 권고했던 것이다.

연의에서 노숙은 어설픈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역사상의 실존인물 노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적벽대전을 주도한 사람은 제갈양이 아니라 바로 그였다. 손권은 노숙의 위대한 공훈을 두 가지로 요약해, 첫 번째는 손권 자신에게 정사(政事)의 핵심과 제왕의 공업(功業)에 관해서 알려준 것이오, 두 번째는 조조의 백만 대군에 저항하여 격파하게 하여 준 것이라고 하면서 노숙의 모사로서의 재능은 옛날 소진과 장의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극찬하였다. 후세의 평은 노숙은 모사로서 순욱(荀彧)을 앞섰고 제갈양 다음이었다는 것이다.

 

   위나라에는 걸출한 모사들이 촉한과 오나라의 모사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많다.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참패하고는 곽가(郭嘉)만 살아있었다면 자신이 그렇게 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하였다. 곽가는 모사로서 주유(周瑜), 노숙, 제갈양을 앞서는 걸출한 인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느 국내 삼국지 전문가는 위의 모사 가후(賈詡)의 일대기는 바로 삼국지가 된다고 하였다. 가후에게는 삼국지 전체 모사들의 지혜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순욱, 순유(荀攸), 정욱(程昱), 사마의(司馬懿)는 모사로서 오히려 곽가와 가후보다 한 수 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후는 모시는 사람을 선택함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였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마의는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서진(西晉)의 기반을 세운 모사였다.

 

   그들 외에도 동소(董昭), 유엽(劉曄), 장제(蔣濟) 등도 모사로서 걸출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모사로서의 능력에 있어서 사마의의 그것을 능가하여 조조 시대에는 서열에 있어서 사마의의 앞이었다. 사마의가 정치력으로 인하여 조비 시대에 그들을 추월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마의는 모사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 행정인, 군인으로도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럼 삼국시대 전체 모사 중 최고의 모사는 누구인가. 삼국시대 최고의 모사로 제갈양, 노숙, 순욱 등이 보통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제갈양이 가장 뛰어난 모사로 여겨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제갈양과 순욱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느 삼국지 매니아는 당연히 순욱이 이길 것이라고 하였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제갈양의 모사로서 공적은 변방 일개 소국을 이룬 것이다. 그는 평생 온몸을 바쳐 중원 서쪽 변방 땅 관서 지역의 공략에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에 비해 순욱은 모사로서 활약해 조조로 하여금 중원을 평정하게 하였다. 모사로서의 공적을 보면 순욱이 제갈양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 않는가.

 

   또, 어떤 매니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필자는 삼국지를 창조하고 움직인 실제 주인공은 바로 순욱이라고 본다. 실제로 삼국시대를 예견하고 그에 따른 전략을 구상한 이는 유비의 모사 제갈양이다. 제갈양은 천하삼분지계를 유비에게 헌책했고 결국 그렇게 삼국시대를 만들어 갔다. 따지고 보면 제갈양이 실질적인 삼국시대의 창조자가 된다. 허지만 그 제갈양이 삼국시대를 창조하기 이전에 삼국시대의 틀은 이미 90% 쯤 갖추어져 있었다. 그 90%가 바로 순욱에 의해서 구성이 된 것이다. 다만 제갈양은 그 나머지 10%를 채워서 완성했을 뿐이다. 제갈양은 순욱에 의해서 안착된 조조의 패권구도를 깨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오장원에서 진몰하고 말았다.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한 수많은 정책과 전략 그리고 조언들이 사실상 삼국정립의 모태가 되었다. 그래서 조조는 후일 유비와 손권이 넘을 수 없는 패자의 반열에 벌써 올랐던 것이다.

아무래도 삼국시대 최고의 모사는 제갈양이 아니라 순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제갈양이 설혹 모사로서는 순욱에게 쳐진다고 해도 영웅으로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조가 순욱의 공적을 표창하여 삼공(三公)의 지위와 작위(爵位)를 내리자 순욱은 자신이 야전(野戰)의 공이 전혀 없음을 들어 사양한다. 사실 순욱의 공훈이라는 것은 단지 모사, 내정 담당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제갈양의 역할은 모사를 넘어서 재상, 장군으로 확대되었다. 그는 또 훌륭한 문인(文人), 발명가이기도 하였다. 영웅으로서는 순욱이 제갈양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 같다.

 

 

전체보기목록열기 (396)

목록열기

 

집단지성(지능) 서울대학교와 cia(국가정보원)의 경우

 

 …사회생물학 집단심리학과 집단조직
조직의 비밀

2015/02/15 09:15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3698737

전용뷰어 보기

집단지성(지능) 서울대학교와 cia(국가정보원)의 경우…정치학, 행정학, 경영학,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사회생물학, 집단심리학… 집단지능(조직지능) 연구…

   정치학, 행정학, 경영학은 집단조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들 학문만으로는 그 성과를 낼 수가 없자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이 그 연구에 참여했다. 그래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매 급기야는 생물학마저 참여했다. 그런데도 성과다운 성과를 거둘 수가 없었다. 이에 구미의 지식인들이 절망해버렸다. 이렇게 보는 것은 19 세기에 집필한 『군중심리학』이라는 수준 낮은 책이, 오늘날 일본,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다.(주1) 미국에서는 그러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이 나라의 지식인들이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 유럽의 그들보다 수준이 ‘도토리 키 재기’이지만 아무튼 좀 높았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하더라도 집단조직에 관한 내용으로 알맹이는 빼놓고 껍데기만 다룬 『군중심리학』 책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해서 선진국의 집단조직 연구가들은 르봉의 『군중심리학』으로는 절대로 안 되고 그것을 넘어서는 저술서를 내야함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에 성공은 커녕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가오줴푸의 『군중심리학』 저술서가 나왔지만 그 수준이 르봉의 그것의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비록 한 권의 책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르봉의 『군중심리학』을 넘어서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3)’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주2) 아래의 내용은 그 후속편으로 보면 될 것이다.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4)

 

   조직은 사람이 지능을 갖듯 지능을 갖고 있다. 다섯 사람이 모여 조직을 이루면 조직지능이 생긴다. 이 지능은 개인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어렵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오백 명 이상으로 구성한 조직의 지능은 개인의 그것과 크나큰 차이가 있고 그래서 특별한 사람만이 그 지능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이 조직에서 그 80%의 사람들은 조직지능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다른 20%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이 20%의 사람들도 태반 조직지능을 눈치로 짐작할 뿐이지 실제로 알아차린 것은 아니다. 이들 가운데 아주 적은 사람만이 조직지능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있다. 그들이 조직을 이끌어가는데 조직의 책임자 자리보다 참모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조직에는 그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책임자, 참모가 아니라 운전수인 경우도 있다.(주3)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조직지능을 알아내는 재주는 순전히 선천적인 것 그러니까 서울대, 하버드, 행정고시, 박사 이런 것들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조직지능은 사람처럼 호불호의 감정을 갖고 있다. 조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80%의 사람들을 싫어하고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20%의 사람들을 좋아한다.(주4) 그래서 조직지능이 전자 성향의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후자 성향의 사람들로 채우려고 한다. 조직지능은 저능아의 그것이지만 전지전능한 능력도 갖고 있는 관계로 결국에는 그 조직 전체를 눈치 있는 사람들로만 채우고 만다.(주4) 이것은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로 그 자리를 채운 조직이 생겼음을 의미할 수가 있다. 그런 조직도 고대사회에서는 아주 효율적일 것이므로 괜찮은 조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비록 내부적으로는 효율적이더라도 외부적으로는 큰 해를 끼친다. 독재국가의 경우에는 눈치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한 행정조직으로도 유지할 수가 있지만 이 경우에도 다른 나라와 경쟁이 안 되므로 결국에는 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독재국가고 민주국가고 간에 모든 나라가 조직을 성문(成文)인 조직규정에 따라 운영하고 공개채용 방식으로 신규직원을 채용해야만 한다.

한국에서 박정희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렸다. 그래서 이 조직이 자신들의 뜻대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쫓아내고 좋아하는 사람들로 그 자리를 채울 수가 있었다. 그러자 조직의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져버렸다. 독재자 박정희 입장에서는 그래도 효율적이라 괜찮았는데, 전세계와 교류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내부에서 혁명적으로 변신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붕괴하고 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들의 임의권한을 축소시키고 공개채용 제도를 실시했다.

  조직지능은 서울대학교나 김일성대학교나 하버드대학교나 모두 아주 낮다. 그 조직은 자신처럼 지능이 낮은 사람들을 좋아한다.(주4) 그래서 김일성대학교의 수준이, 박정희 정부 초창기에 국가정보원의 경우처럼 나날이 떨어지는 것이다.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는, 오늘날의 국가정보원의 경우처럼 일정 수준 이상은 떨어지지 않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면에서는 김일성대학교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조직이 비록 총장, 교수 자리고 무슨 자리고 간에 비록 그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로 채워야만 하지만 그 생리상 초등학교만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조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로 총장, 교수 자리고 무슨 자리고 간에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의 그 자리들은 학문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조직에 관해서 눈치껏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220272834235 

(주2) http://blog.naver.com/yukin48/220272834235 

(주3) http://blog.naver.com/yukin48/50027052781 

(주4) http://blog.naver.com/yukin48/50027052763 

 

 

 

 

 

 

전체보기목록열기 (395)

목록열기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3) 조직의 비밀

2015/02/14 08:39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2834235

전용뷰어 보기

집단지성 군중심리 르봉 괴벨스, 이기적 유전자 밈 도킨스 - 칼 융의 집단무의식(3)

  인간의 세포 하나하나는 정신, 지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것들의 집합체인 인간은 그것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모임인 집단도 개개인의 경우처럼 정신, 지능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은 과학적 사고라고 하여야 한다. 집단의 정신, 지능에 관해서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르봉이었다. 그 저술서인 『군중심리학(1895년 출간)』은 전세계의 학자, 정치인, 기업인, 종교인들한테 주목을 받았다. 프로이트 등의 학자뿐만 아니라 레닌이나 히틀러 등의 정치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독일 제삼제국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경우에는 그 책 내용에 따라 선전 정책을 펼쳤다. 현대에도 『군중심리학』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유럽,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는 데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러나 『군중심리학』은 19세기의 저술이라 21세기 관점에서 보면 알맹이는 빼놓고 껍데기만 다루고 있다. 아무튼 1895년부터 2015년까지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 책을, 일본 및 구미의 천재들이 연구했을 것인데 겉껍데기만 다룬 그것을 넘어서는 자신들의 저술서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군중심리학』을 넘어서는 책이 출간되었다. 2005년도에 출간된 『박정희에서 고건까지(유길만 지음, 북갤러리 출간)』에는 껍데기만 다룬『군중심리학』을 넘어서는 내용 그러니 알맹이를 다룬 것이 수록되어있다. 이 내용은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것이다. 그래서 지적으로 고등학생 수준의 사람도 그것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런데 학자들이 그런 내용을 이해를 못하기 때문인지, 이해는 하지만 골치가 아프기 때문인지 『박정희에서 고건까지(유길만 지음, 북갤러리 출간)』 책을 외면하고 있다.

 

* 아래의 내용은『박정희에서 고건까지(유길만 지음, 북갤러리 출간)』에서 발췌한 것이다.

 

…‘집단조직이 사람 개개인처럼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학계에서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변적인 견해가 만연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학계이다. 집단이 개인처럼 지능을 갖고 있다는 전제는 법률계에서는 진작 받아들였다. …오늘날 경제학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투입 - 산출 공식, 계량 경제학 등 실증적, 구체적 연구가 폭 넓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모든 연구들의 바탕에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움직여진다’는 그러니까 신 같은 존재가 경제 현상을, 인간이 물건을 만들어내듯 만들어내고 있다는 아주 사변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이것에 비한다면 집단조직이 사람 개인인처럼 지능을 갖고 있다는 전제는 아주 합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세계적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사실상 세상일 모두가 ‘유전자’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임을 구체적, 실증적으로 설명했다. 그 저서에는 아주 놀라운 내용이 있다. 세상일은 유전자 외에 또 밈(meme)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정자와 난자에 의해 개체에서 개체로 운반되는 것과 같이 밈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전달된다고 한다.

…그 밈이 사람처럼 지능을 갖고 활동을 한다.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권위의 자연과학자가 발표한 학술논문의 내용은 필자 같은 무명의 인문학도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말은 우리 모두가 잘 안다. 기계 덩어리 컴퓨터 안에 생물체 바이러스가 있을 리가 없다. 어떤 사람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그 프로그램이 바이러스처럼 활동하여 바이러스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컴퓨터 바이러스)과 생물체 바이러스 간에 차이점이 없다. 그러니까 프로그램이 생물체같이 지능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모임인 집단이 지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프로그램이 지능을 갖고 있다는 주장보다 훨씬 합리적인 것이라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전체보기목록열기 (394)

목록열기

 

칼 융의 원형(태고유형) - 꽃제비, 1.4후퇴, 흥남철수… 더글라스 맥아더, 김일성, 이승만, 박정희…- 칼 융의 집단무의식(2) 조직의 비밀

2015/02/13 08:29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1771716

전용뷰어 보기

칼 융의 원형(태고유형) - 부산 항구, 뱃고동 소리, 만주 북한 꽃제비,

1.4후퇴, 흥남부두, 흥남철수, 피난민들의 애환

더글라스 맥아더, 김일성, 이승만, 박정희, 육영수…- 칼 융의 집단무의식(2)

  우리 인간의 정신은 99%의 잠재의식과 1%의 현재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정신분석이론에 의해 밝혀졌다. 우리가 정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그 1%를 의미할 뿐으로 실제로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그 외 99%이다. 생리학이 그것의 옳음을 그러니까 의지로 뇌세포 1%를 사용하고 무의지로 99%를 사용함을 밝혀주었다. 무의식의 세계인 잠재의식을 체험적, 실증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에 의하면 잠재의식은, 비록 I. Q 가 저능아의 그것이지만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아는 능력, 곧 예시력, 투시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잠재의식을 전지전능한 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각 개인의 잠재의식이 모여, 골짜기 물이 모여 저수지가 되듯 민족의 잠재의식이 된다고 한다. ‘집단무의식(집단정신)’이란 바로 민족의 잠재의식을 말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민족 성원 개개인이 한 마음을 갖게 되어 한 덩어리가 된다.

—『조선민중의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유길만 지음, 광성 출간)』

 

  일제 강점기에 부산 항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 사람들은 전국민의 5%였다. 그것을 간접적이지만 리얼하게 체험한 사람은 20%였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인 전체의 무의식 그러니 집단무의식에 새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는 것은 1960년대까지 한국인이 태반,‘부산항구, 뱃고동 소리, 현해탄’이란 말을 들으면 애수에 잠겼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1.4 후퇴, 흥남부두… 피난민들의 애환… 돌아오지 않는 해병(주1)’ 그것을 들으면 애수에 잠겼는데 이것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다. 일제강점기 만주에 꽃제비들이 숱하게 많았다. 오늘날 만주에도 꽃제비들이 있지만 이들의 삶은 일제강점기의 그들에 비하면 행복한 것이었다. 1960년대에 만주의 꽃제비를 다룬 만화가 어린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것에 미루어 볼 때 민족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진 것은 아들딸에게까지 유전된다.

 

  경천진동시키는 큰 사건이 일어나거나 큰 영웅이 나타나면 그 사건, 그 영웅은 민족 성원 모두의 머릿속에, 곧 집단무의식에 각인된다. —『조선민중의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유길만 지음, 광성 출간)』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진 인물로는 일제강점기에는 김일성(김경천), 홍범도가 있고 1945년 이후에는 맥아더, 이승만, 김일성(김성주), 박정희가 있다. 집단무의식은 비록 IQ가 저능아의 그것이지만 전지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견해는 옳은 것 보인다. 그것은 국내외에서 김좌진이 일본군 수만 명을 격파시켰다고 떠들어댔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는 새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주2) 맥아더는 팽덕회에게 완패당한 관계로 미국에서는 최악의 장군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 한 방으로 북한군 전체를 괴멸시켰다. 그랬으니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에 새겨진 사람이 천지변화를 일으킨 사례는 동서 역사기록에 많이 있다. 맥아더의 경우에는 해임 당하자 한국에서 산이 무너지고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졌다. 영부인 육영수가 숨을 거둘 때는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한편 대통령 박정희가 숨을 거둘 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진 사람은 박정희가 아니라 육영수였던 것 같다.

 

  우리는, 이순신이 그 시대에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큰전투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고 그래서 B급 장군으로 여겨졌다.(주3) 그렇다면 그 시대에 집단무의식에 새겨졌을 리가 없다. 이순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새져진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경우는 동서역사에 많이 있다. 이승만, 김일성(김성주), 박정희의 경우에도 단번에 큰업적을 내거나 이름을 날린 적이 없다. 이들도 시간을 두고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진 것이었다.(주4)

 

  김경천은 2차 시베리아전쟁 때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당시 한국 서민들은 일본의 지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관계로 일본군에게 승리한 공적은 별것 아닌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김경천이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진 것은 그 공적보다 마적 퇴치 공적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시대에 만주, 연해주의 한국인들은 마적들 때문에 하루 살 것을 걱정해야만 했다. 한국, 중국을 굴복시킨 대일본제국도 그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때에 김경천이 연해주에서 마적들을 소탕하여 그 그림자도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가 연해주, 만주의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집단무의식 차원에서는 5%에 새겨지는 것과 100%에 새겨지는 것의 차이가 없다.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은 민족의 집단무의식과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것이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에 새겨지면 이것은 신의주에 살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이에 대한 실증적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있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50027178529 

(주2) 한국독립군 수백 명이 청산리에서 일본군 수만 명과 싸워 수천 명을 사살했다. 이것은 민족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질만한 사건이었다. 한국, 중국에서 김좌진이 청산리승첩을 거두었다고 떠들어댔는데 사실인즉 그 승첩은 홍범도가 거둔 것이었다.

http://blog.naver.com/yukin48/50179257794 

(주3) http://blog.naver.com/yukin48/50191010511 

(주4) http://blog.naver.com/yukin48/50182822105 

      http://blog.naver.com/yukin48/220252229594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21세기 문화 문명 - 칼 융의 집단무의식(1) 조직의 비밀

2015/02/12 07:03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70646541

전용뷰어 보기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21세기 문화 문명 - 칼 융의 집단무의식(1)

1900년 프로이트가 지성, 지식은 보잘 것 없는 것이며 무의식, 잠재의식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밝혀주는 정신분석이론(꿈의 해석)을 발표했다.(주1) 1905년 아인슈타인이 시간, 공간은 상대적인 것임을 그러니 이 세상은 뜬구름 같은 것임을 밝혀주는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정신분석이론과 상대성이론 덕택에 문명이 백배, 천배 발달했다. 그래서 전세계의 인민들이 아인슈타인, 프로이트를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여겼다.

   그런데 상대성이론, 정신분석이론은 20 세기 이전에 과학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가 특별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평범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하여주었을 뿐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수학, 물리 공식으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문명이 백배, 천배 발달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은 실용성 차원을 떠나면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이론이 새로운 차원을 제시했다고 하지만 이 차원에서는 허다한 문제에 실용적인 해답을 조금도 못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처럼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필자 개인의 체험을 말하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100 페이지의 정신분석이론 책을(주2) 10 시간 보고 동굴 속에서 10년간 명상하여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100페이지 책 내용보다 억만 배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보아야만 했다. 그래서 전세계의 학자들이 그에게로 몰려갔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원래 평범한 사람으로 그때까지 널리 알려졌지만 특별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신분석이론을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하여주었을 뿐이었다. 그는 본래 다른 학자보다 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주3) 프로이트에게 몰려갔던 학자들이 그것을 알아차리매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나갔다.

 

   칼 융이 천재적 심리학자임을 알아본 프로이트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를 자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사람으로 본 칼 융이 그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정신분석이론을 연구했다. 칼 융은 운이 나빴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전세계의 심리학자들한테 프로이트의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주4) 칼 융이 죽은 뒤에 그들이 비로소 그를 재평가했다. 이상의 내용에 미루어 볼 때 ‘칼 융의 연구내용은 학생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러니 과학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칼 융도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신경증 환자였다.(주5) 이런 사람들의 연구는 과학적인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 그들의 연구 내용에 천재적 발상이 간간히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칼 융의 연구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집단무의식 이론이라고 전세계의 학자들이 모두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세워놓은 그 이론은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그것을 달리 해석할 수가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각광받은 것 같기도 하다. 집단무의식 이론은 학자들한테 뿐만이 아니라 종교인, 문인들한테도 각광받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 나름대로 그 이론을 해석하여 사용했다. 따라서 그들의 그것은 칼 융의 집단무의식이론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자신들의 그것은 그의 그것이라고 말했다.

 

(주1)

- 심리학은 자연과학이다.

- 19 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명은 인간으로 하여금 힘든 노동일을 하지 않고 무거운 물건들을 땅과 바다에서 이뿐만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운반할 수 있게 하여 주었다. 그래서 모두가 과학의 수준이 그 이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2000년 전 수준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과학의 수준이 20세기 들어 정신분석이론, 상대성이론에 의해 높아졌다고 말하고 있다.

(주2) 프로이트가 방대한 양의 저술을 했지만 이 저술은 100 페이지로 요약할 수가 있다.

(주3) 프로이트도 천재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불건강한 탓으로 그 천재성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만약에 그가 가정, 사회에서 뛰쳐나가 히말라야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았더라면 발휘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이 경우에 그 자신은 인생, 우주의 비밀을 알고 행복하게 살았겠지만 인류에게는 하나도 기여를 못했을 것이다.

(주4)

- 칼 융도 프로이트처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나쁜 사람이었다. 칼 융의 경우 만약에 그가 정신분석학자가 되지 않았으면 자신의 어머니처럼 정신병 환자가 되었을 것이다. (정신의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광인과 천재는 동급의 사람이다. 그래서 칼 융이 천재적 발상을 했다. 그러나 (광인의 경우처럼) 그것을 체계적으로 나타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과학자들한테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칼 융이, 과학계에서 폐기시킨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 관점을 빌려 집단무의식의 유전을 설명했다. 이것은 천재적 발상이었다. 그러나 칼 융이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람인 까닭에 그의 집단무의식이론은 과학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과학계에서 칼 융을 라마르크와 동급 그러니 형편없는 과학자로 여기게 되었다.

(주5)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프로이트의 『문명화와 그로 인한 불만』, 칼 융의 『영혼을 찾는 현대인』을, 심리학자들은 3대 걸작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 뒤쪽 두권의 책은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람이 횡설수설 쓴 것이다. 『영혼을 찾는 현대인』의 경우에는 그래도 아주 가치있는 내용이 좀 들어있지만 『문명화와 그로 인한 불만』의 경우에는 그런 것도 없다. 이 책을 심리학자들이 걸작으로 꼽는 것은 전적으로 이데올로기목적에서였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엮인글 공감하기

 

새정치연합 대표에 문재인 박정희 참배, 박근혜 정부와는 전면전 선언

 

-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의 딜레마
시사 논단

 

2015/02/09 10:23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67346018

전용뷰어 보기

 

 

 

새정치연합 대표에 문재인박정희 참배, 박근혜 정부와는 전면전 선언 -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레마

문재인과 신익희, 김대중 - 박근혜와 이승만, 박정희

 

 

1950년대 서울시민 삼십만 명(당시 전체시민의 삼분의 일)이 신익희를 보려고 한강 백사장에 모였다. 1980년대 백만 명 시민이 김대중을 보려고 보라매공원에 모였다. 그 시대에 이승만, 박정희에게 실망한 국민이 신익희, 김대중에게 몰려들었다. 현재 문재인이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반기문을 앞지르고 1위가 되었다. 박근혜에게 실망한 국민이 문재인에게 쏠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당선된 문재인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선언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문재인이 신익희 및 김영삼, 김대중처럼 국민적 영웅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문재인은 1950년대에 사형당한 조봉암처럼 진보좌파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민이 안철수, 반기문에게도 실망한 관계로 문재인 외에는 기댈 사람이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국민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문재인의 새정치연합을 외면하고 박근혜의 새누리당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 것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 및 연두기자회견으로 위기에 빠진 박근혜가 다시 기회를 잡을 것인가

 

‘소위 국정농단 사건인 정윤회 문건 사건은 박지만 라인인 박관천과 조응천이 허위로 만든 것으로 박근혜, 정윤회, 최순실, 삼인방은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검찰의 수사 내용이다. 그런데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이 그 사건을 국정농단 그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민 누구도 검찰의 수사를 못 믿는다고 말하지는 않고 있다. 반정부 언론들도 검찰의 수사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으니 국민들로서는 그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국민이 국정을 농단한 사람들을 정윤회, 최순실, 삼인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보고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박관천, 조응천은, “자신들은 죄가 없음을 하늘과 땅이 알고 있다. 지금은 처벌받지만 후일 그 진상을 밝힐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기자들은, “지난 2년간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부에서 정윤회가 국정을 농간하고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사람만이 일으킬 수는 정윤회 문건 사건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부에서 일으킨 것이었다.(주1) 박관천, 조응천은 그들의 하수인이었을 뿐이다. 이 사실을 국민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수준이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30%로 떨어진 박근혜의 지지율이 반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국민 수준은 한국, 일본, 미국이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이다.(주2) 박근혜가 기회만 잡으면 지지율이 반등하여 60%로 올라갈 것이다. 그녀의 청와대에게 그 점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번 사건으로 ‘국민은 한없이 어리석으면서도 한없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점이다.(주3) 기자, 교수 누구누구 알지 못하거나 감추는 사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아는 국민이라면 아래의 내용처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청와대가 개개인은 아주 어리석지만 (지난 2년간을 되돌아볼 때) 전체적으로는 현명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청와대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220264470723 

(주2) …‘한국 정치 수준은 유치원생의 그것이다’라고 한 저명한 일본인이 혹평했다. 그러나 르봉의 이론에 의하면 선진국 일본, 미국의 정치 수준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미국, 일본의 그것은 우리보다 높겠지만 높아보았자 초등학생 수준이다. 일본과 미국에서 레슬링, 축구 선수와 영화배우 출신들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치가가 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집단이 되면 개성이 매몰되고 지능이 낮아진다. 집단이 커지는데 비례해서 그 지능은 낮아진다. 집단 중 가장 큰 것은 민중으로 어느 나라 민중이나 지능은 다 비슷하다. 보라매공원에 모인 사람이나 게티즈버그 언덕에 모인 사람이나 집단(민중)으로서는 똑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민중은 어느 나라 민중이고 간에 열 살짜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배우, 운동선수 스타들을 좋아한다. 미국과 일본에서 배우와 레슬러, 축구선수 출신이 정치 선거에 출마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다.… — 《박정희에서 고건까지(유길만 지음, 북갤러리 출간)》

(주3) …정신분석이론 덕택으로 인간성의 비밀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의 정신은 99%의 잠재의식과 1%의 현재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그 이론으로 밝혀졌다. …생리학이 프로이트 이론의 옳음을 그러니까 우리는 의지로 뇌세포 1%를 사용하고 무의지로 99%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무의식의 세계인 잠재의식을 체험적, 실증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에 의하면 잠재의식은, 비록 I. Q 가 저능아의 그것이지만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아는 능력, 곧 예시력, 투시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잠재의식을 전지전능한 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http://blog.naver.com/yukin48/50166818066 

 

 

 

 

 

 

 

 

엮인글 공감하기

 

친미 사대주의와 반미 진보좌파의 기원 - 역사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 쉽게풀어쓴역사학

2015/02/07 07:29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65496308

전용뷰어 보기

친미 사대주의와 반미 진보좌파의 기원 - 역사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

‘한국인들이 미국을 숭배하는 것은 중국 같은 큰나라를 숭배하는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식인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1)의 주소의 글에 의하면 한국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므로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사상에 선비들은 몰라도 서민들은 물들었을 리가 절대로 없다고 보아야만 한다. 서민들이 미국을 숭배하는 이유는 사대주의 사상 때문이 아니고 다른 데에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주2)의 주소의 글에 그 이유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해방된 것은 전적으로 소련, 미국 덕택이었다. 따라서 한국인이 두 나라를 하늘같이 받들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이곳에 들어온 소련군이 거지 떼들인 것을 보고 이 나라보다 미국을 존경하게 되었다. 남한에서는 서민들은 미국을 존경했지만 지식인들은 소련 육군이 미국 육군보다 강함을 알기 때문에 그러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일어난 국공내전에 미국은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에도 속수무책인데 이런 때에 맥아더 개인이 미국을 한국전에 개입시켰다.(주3) 그가 인천상륙작전 한방으로 북한군 전체를 괴멸시켰다. 이에 한국인들이 그를 하늘같은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미군이 팽덕회의 중국군과의 싸움에서는 완패했다.(주4) 미군을 패주시킨 중국군은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거지 떼들이었다. 이전에 거지 떼 소련군에게 학을 뗀 한국인들은 승리한 중국군을 외면하고 패배한 미군을 따라 갔다. 이것에는 중국군보다 열배 강한 일본군이 원자폭탄 한 방으로 항복했다는 사실도 작용했다.

미군을 완패시킨 중국군이 스스로 한국에서 물러났다.(주5) 그러나 전국민이 모두 3년 안에 굶어죽을 운명이었다. 그들이, 미국이 대량의 물자를 한국에 쏟아 부은 덕택에 살아남았다.(주6) 그렇다면 한국인이 미국을 하늘같이 받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및 이승만을 받드는 반공보수우파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군이 중국군에게 형편없이 깨지는 것을 목격한 지식인들은 그들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지식인들이, 서민들이 반공보수우파를 따르기 때문에 이들과 대놓고 싸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미국에게 있지만 소련에게도 있는 관계로 미국을 얕본 지식인들이 친공진보좌파가 되어 반공보수우파에게 저항했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50162304061 

(주2) http://blog.naver.com/yukin48/50182822105 

(주3) http://blog.naver.com/yukin48/50185209047 

(주4) http://blog.naver.com/yukin48/50156509380 

(주5) http://blog.naver.com/yukin48/50156509380 

(주6) http://blog.naver.com/yukin48/50182822105 

 

 

 

 

 

 

 

엮인글 공감하기

 

박근혜 지지율과 박지만 김기춘 - 반기문은 안철수 뒤따라 지고 문재인은 노무현 향수로 뜬다 시사 논단

2015/02/06 09:49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64470723

전용뷰어 보기

 

 

박근혜 지지율과 박지만 김기춘

- 반기문은 안철수 뒤따라 지고 문재인은 노무현 향수로

 

 

  국민 30%가 집권당에게 혜택을 입고 있으므로 계산상으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 아래로 떨어질 수가 없다.(주1) 떨어졌다면 혜택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돌아섰기 때문이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9%인데 이것은 그녀의 정부가 붕괴위기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지율이 그렇게 떨어진 것은 연두기자회견, 수첩파동 때문이지 국민한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주2) 사실인즉, 박근혜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진 것은 대구, 경북과 60대 그러니 박정희 향수의 사람들이 그녀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런 것은 그녀가 연두기자회견에서 친동생 박지만을 매몰차게 때렸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박정희 향수는 전적으로 소용없는 것이므로 이점에서 본다면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빠졌다고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말 정윤회 문건 사건이 나라 전체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이 문건은 청와대 문건이고 이 사건은 청와대직원인 박관천, 조응천이 일으켰다. 따라서 청와대 대표인 박근혜 내지 부대표인 김기춘이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물론 국민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그만한 사건으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박근혜가 연두기자회견 때 잘못했다고 머리 숙여 사죄했어야만 했다. 삼인방, 정윤회, 최순실은 그 사건에 죄가 없는 사람이다. 검찰수사에 의하면 박지만도 법적으로는 죄는 없는 사람이다.(주3) 정윤회, 최순실, 삼인방, 박지만은 개인적으로 죄가 없고 박근혜는 개인적으로는 없고 공적으로는 있지만 처벌할 수가 없다면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그 사건의 책임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뒤집어써야만 한다. 그런데 박근혜가 시종일관 그런 사람인 그를 감싸주기만 했다. 그래서 지지율이 35%로 떨어지자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의 무능이 부각되어 30%로 떨어진 것이었다.(주4)

 

  이상 내용을 종합하면 박근혜의 지지율이 30%로 떨어진 것은 김기춘을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근혜가 어째서 그를 처벌은커녕 감싸주기만 했던 것일까.

 

  박관천, 조응천은 ‘정윤회 사건에 자신들은 죄가 없음을 하늘과 땅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 미루어 볼 때 이 사건은 원래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부에서 일으킨 것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설령 박관천, 조응천이 검찰이나 재판정에서 그 사실을 밝힌다고 해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 법적 처벌을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조직의 숱한 사람들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신문에서 ‘정윤회 문건 사건의 책임은 박관천, 조응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새누리당 조직에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의 기사를 싣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이 박관천, 조응천 및 김기춘에게 압박을 가하여 세 사람의 입이 열릴는지도 모른다. 이것에 겁을 집어먹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두 조직이 감옥에 갇힌 박관천, 조응천은 어쩔 수가 없지만 김기춘은 철저히 감싸주기로 했다. 한 발 양보하면 두 발 양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진상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만다고 판단한 두 조직이 박근혜와 김기춘의 잘못은 추호도 인정해주지 않기로 했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220212322214 

http://blog.naver.com/yukin48/220115526988 

​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박근혜의 지지율 30%에서 박정희의 것을 빼면 제로’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안경환, 진중권은 김용갑, 최병렬, 김동길, 조갑제와 동급의 사람 그러니 이 시대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사람임을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주2) http://blog.naver.com/yukin48/220255833077 

(주3) http://blog.naver.com/yukin48/220242996762 

  박근혜가 박지만을 책망한 탓으로 대구, 경북과 60대한테 뿐만이 아니라 국민전체한테도 신뢰를 잃었다. 왜냐하면 도리상(道理上)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근혜와 김기춘만은 박지만을 책망해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었다.

국민은 한없이 어리석으면서도 현명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이 정윤회 문건사건은 잘못된 국정개입 사건으로 보고 있는데 진실을 말해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잘못된 국정개입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주4) 대통령과 여당은 실과 바늘, 남편과 아내 관계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많이 잘못해도 여당이 잘 하거나 그 역의 경우에도 대통령 지지율 40%를 유지한다. 따라서 이번에 박근혜의 지지율이 30%로 떨어진 것은 전적으로 김무성의 무능 때문이라고 보아야만 한다.

http://blog.naver.com/yukin48/220249365065  

 

 

⁂ 문재인, 안철수, 김무성의 지지율을 합한 것보다 높았던 반기문의 지지율이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 떨어졌다. 이것은 대통령 지지율 30%라는 국가위기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반기문이 입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이, 반기문을 전국민을 슬픔 속에 몰아넣은 세월호 사건 때 입도 열지 않은 안철수와 동급의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 문재인의 지지율이 반기문을 앞지른 것은 보수우파, 뉴라이트에게 실망한 국민이 박근혜와 삼인방에게 새로운 것을 기대했는데 현재는 이들에게도 실망한 관계로 진보좌파 노무현 향수에 젖었기 때문이었다.

 

 

 

 

 

 

 

엮인글 공감 3 공감하기

 

전두환과 1980년대 친북 종북 급진좌파 전두환 연구

2015/02/05 08:16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63276170

전용뷰어 보기

 

전두환과 1980년대 친북 종북 급진좌파

 

2차세계대전 때 소련의 군사력이 승패를 가름했다.(주1) 따라서 전세계 인민들이 소련에게 붙었다.(주2) 미국, 영국에게 이것보다 두려운 것은 칼마르크스, 레닌의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두 나라의 식자들은 자신들의 머리로는 그 사상에 대적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주3) 사상면도 그렇게 군사면도 그렇다면 바다로 격을 두고 있는 미국, 영국, 일본 외의 나라들이 소련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은 코앞의 일이라고 해야만 했다. 미국, 영국이 절망에 빠져있는 때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두 나라로 하여금 공산국가 중국의 작전능력을 자신들로서는 감당해낼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주었다. 영국, 미국의 식자들이, 공산국가와 붙어있는 아시아의 자본국가들이 하루라도 유지하려면 공산주의자들은 가차없이 처형시켜야 한다고, 3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나라인 한국에서는 특히 그러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 공산주의 운동뿐만이 아니라 그 냄새가 나는 운동 그러니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가차 없이 처형시켰다. 그래서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 과격한 좌경운동이 나타나지 않았다.(주4) 1980년대에 들어서 공산국가는 자본국가의 적수가 될 수가 없음이 명확해졌다. 그러니까 소련, 중국은 별 볼일 없는 나라임을 미국, 영국이 알게 된 것이다. 이에 여유를 얻은 두 나라의 식자들이 어떤 나라에서든지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인간적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두환 정부가 두 나라의 식자들의 권고에 따라 그들을 가혹하게 다루지 않았다.(주5) 그러자 6.25 이후 사라졌던 과격한 좌경운동이 나타났다.(주6)

 

(주1) 실제로는 2차세계대전 승패를 가름한 것은 소련의 군사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민들은 소련의 군사력이 가름한 것으로 알았다.

http://blog.naver.com/yukin48/220189260394 

http://blog.naver.com/yukin48/50156509380 

(주2) 모택동은 원래 군사적, 정치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인 그가 성공한 것은 그 재능이 있는 부하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최고 자리에 올라가매 인민들한테 절대적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정치적, 군사적 재능이 있는 부하들을 모두 쫓아내거나 처형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모택동이 워낙 그 재능이 없는 사람인 관계로 죽자마자 그의 아내고 심복이고 간에 모두 처형당하고 말았다.

원래 어리석은 사람이었는데 많은 책을 읽고 사색을 해서 식견이 높게 된 모택동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보다 식견이 높은 사람인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유전자에는 군사력에 절대의존, 복종하는 심리가 새겨져있다. 그래서 전세계 인민들이 식자든지 무식자든지 간에 강한 군사력의 나라에게 붙는다.

(주3) 실제로는 칼마르크스 사상은 허점투성이고 레닌은 보잘것없는 인물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선민중의 영웅 김일성장군(유길만 지음, 광성 출간』)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구미의 고급지식인들조차 얼마 전까지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4)

- 1970년대에 분신자살한 전태일이 만고의 영웅이 된 것은 그때까지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에는 분신자살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런 사람은 영웅의 축에 끼지 못했다.

- 1980년 5월 총을 들고 정부와 싸운 광주시민들은,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다. 북한, 소련은 오판 말라!’고 외쳤다. 그때까지 한국인들의 심리가 어떤 것이었는지 미루어 알 수 있다.

(주5) http://blog.naver.com/yukin48/50187068187 

(주6)

- 교수, 기자 식자들이, 1980년대에 과격한 좌경운동이 일어난 것은 전두환의 강압정치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전두환이 김진영, 허화평, 허삼수의 뜻대로 강경통치를 펼칠 때는 그런 좌경운동이 일어나지 않았고, 세 사람을 뒷전으로 내몬 전두환이 온건통치를 펼치자 과격한 좌경운동이 나타났다.

- 광주사태 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전두환이 석방시켜주었다. 부산미문화원에 불을 질러 학생들을 죽게 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도 석방시켜주었다. 급진좌경 운동이 1980년대에 나타난 것은 전두환의 강압정치 때문이라고 식자들이 모두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아주 어리석은 것임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http://blog.naver.com/yukin48/50193053392  

 

 

 

 

전체보기목록열기 (393)

목록열기

 

문재인 지지율 차기 대선후보 1위, 반기문 낙동강 오리알 - 원인, 전망 분석 시사 논단

2015/02/04 06:04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62201733

전용뷰어 보기

문재인 지지율 차기 대선후보 1위, 반기문 낙동강 오리알 - 원인, 전망 분석

  문재인 의원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을 포함한 조사에서도 1위에 올라갔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8~29일 만 19세 이상 1000명에게,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문재인 의원은 24.8%로 반기문 총장(21.4%)에 오차범위(±3.1%P)를 벗어난 3.4%포인트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지역별로 보면 문재인 의원의 지지율은 대구/경북, 서울, 광주/전라에서는 올랐고 대전/충청/세종, 부산/경남/울산, 경기/인천에서는 떨어졌다. 연령별로는 40대에서 상승하고 20대에서는 하락하고, 직업별로는 자영업과 사무직에서는 올랐고 학생에서는 내려갔다. 정당지지층별로는 새정치연합 지지층에서, 이념성향별로는 중도 및 보수 성향에서 상승했다.

‘국가과제를 실현할 대통령 적합도’ 항목에선 문재인 의원이 경제적 삶 향상과 민주주의 발전 등 2개 분야, 반기문 총장은 계층간 차별해소 및 인권증진과 남북평화와 통일 등 2개 분야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연말정산 사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 백지화 등 각종 정책의 혼선, 취임 이후 처음으로 20%대에 진입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30%대로 하락한 새누리당의 지지율에 따른 반사효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김철근 동국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박 대통령 지지율, 새누리당 지지율 하락 후 이탈층이 무당층으로 가지 않고 야당에 기대를 보이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미현 알앤서치 소장도 "초이노믹스(최경환+이코노믹스) 등 각종 박근혜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문 때문에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새누리당이 각종 혼선을 보인 데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 그에 따른 반사이익의 효과까지 겹쳐서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충청권에 이완구 총리후보자가 등장하면서 기존 대선후보 구도가 흐트러지고 유권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정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문 후보가 부각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관련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과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던 문 후보를 중심으로 야권 지지층이 결집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안철수, 김무성의 지지율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높았던 반기문의 지지율이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 떨어진 것은 이 지지율은 원래 거품이었으므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주1) 현재, 문재인이 반기문을 앞질렀으나 이념 문제로 인해 차기 대통령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주2) 그가 대선주자 1위를 차지한 것은 박원순, 김무성, 안철수 이들이 워낙 뒤떨어지는 인물들인 덕택이었다.(주3)

  위쪽에서 전문가들이 문재인이 지지율이 오른 이유를 여러 가지 설명하고 있는데 첫 번째 그 이유를 간과하고 있다. 헌재에서 통진당을 해산시키자 한국 땅에서 발을 못 붙이게 된다고 본 진보좌파 측에서 죽기 살기로 결집했다. 그래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높이 올라 간 것이다.(주4) 이점에서 볼 때 만약에 문재인이 야권의 대선 주자가 되면 여권은 누가 나와도 그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박근혜가 그랬듯이 이념 문제에서 탈피해야 하는데 이것은 그와 그의 싱크탱크 입장 상 불가능한 일이다. 진보좌파 이념에서 탈피하면 당장 그의 지지율이 반 토막 나 버릴 것이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220234564903 

            http://blog.naver.com/yukin48/220162865806 

(주2) http://blog.naver.com/yukin48/220128878875 

(주3) http://blog.naver.com/yukin48/220162865806 

(주4) 지지율 1%인 통진당이 국회에서 세 번째 큰당이 된 데에 미루어 볼 때 친북, 종북 진보좌파의 세력은 막강한 것이다. 이들이 대선주자 순위에서 반기문을 끌어내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물론 그들한테 지지를 받아서는 대통령에 결코 당선되지 못한다.

- 보수우파, 뉴라이트에게 실망한 국민이 박근혜와 삼인방에게 그것을 넘어서는 이념을 창출해내기를 기대했었다. 현재는 이들에게도 실망한 관계로 진보좌파에게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엮인글 공감 5 공감하기

 

박정희 이승만 역대 대통령 지지율

 

  - 4.19혁명 5.16 군사정변 전두환 노태우 정권교체 때의 미국의 역할
시사 논단

 

2015/02/02 05:40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59904848

전용뷰어 보기

 

이승만 박정희 역대 대통령 지지율 - 4.19혁명 이승만 하야 5.16 군사정변 전두환 노태우 정권교체 때의 미국의 역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대통령 재임 시의 지지율에 대한 통계는 없다. 《부자나라가 되다(유길만 지음, 청명 출간)》 책 내용으로 지지율을 추정하면 박정희는 낮았고 전두환은 괜찮았다.(주1) 이승만의 경우는 추정하게 해주는 책도 없지만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960년 정치행정은 부패하고 경제는 나락에 빠진 관계로 국민이 정권교체를 원했는데 이때 이승만 대통령만은 물러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4.19 학생의거 때 학생 수백명을 쏘아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의 하야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루어 볼 때 당시 그의 지지율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주2)

 

  보수우파는 ‘국민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여겼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로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국민이 8.15 해방 때 이승만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가 해방 후에 정계의 거물이 되었으나 당시의 혼란에 속수무책이었다. 사회 전반의 엘리트들 및 미국이 워낙 내세울 인물이 없는 관계로 할 수없이 그를 대통령으로 내세운 것이었다.(주3) 어쨌든 간에 그가 1948년에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이 정부는 반쪽짜리 정부이니 국민이 그를 대단찮은 인물로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승만 정부가 나라를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한 관계로 국민이 하루 살 것을 걱정하고 있는데 이런 때에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인심이 흉흉해지자 군부를 포함한 사회전반의 엘리트들이 무능한 이승만을 제거시키려고 했다. 이때 그가 살아남은 것은 미국 덕택이었다.(주4) 그들이 원래는 이승만을 아주 형편없는 인물로 여겼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때 그를 도와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미국이 6.25 한국전쟁 때 중국에게 완패하여 형편없는 신세가 되었다.(주5) 중국군을 당해낼 수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미군이 친미파 인민들만 데리고 한국을 떠나려고 했다. 그랬음을 알고 있는 지식인들로서는 미국으로부터 돌아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한국에서 행세하려면 자신들처럼 형편없는 신세가 된 이승만에게 대통령 자리를 유지하게 해주어야만 했다.(주6)

 

6.25 한국전쟁 후 전국민이 3년 안에 모두 굶주려 죽을 운명이었다.(주7) 군부를 포함한 사회전반의 엘리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미국이 이승만 정부에게 대량의 물자를 보내준 관계로 전국민이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그들로서는 군부, 정치사회, 문화, 경제의 엘리트들을 외면하고 이승만 및 미국을 하늘같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이 친미파, 친이승만파인 다른 엘리트들을 하늘 다음의 인물로 여겼다. 이 덕택으로 이 다른 엘리트들이 군부, 정치사회, 문화, 경제의 기존의 엘리트들을 몰아낼 수가 있었다. 한국사회를 장악한 친미파, 친이승만파 엘리트들이 반공보수우파로 자칭하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받들었다.

 

(주1) 박정희의 지지율이 재임 시 형편없었던 이유는 그가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지지율이 괜찮아지려고 했는데 이런 때에 와우아파트 붕괴, 정인숙 피살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박정희의 지지율이 10%로 떨어졌다. 

http://blog.naver.com/yukin48/220252229594 

이제는 그가 대통령 노릇을 해 먹으려면 쿠데타(1972년 10월 유신)를 다시 일으켜야만 했다. 결국에는 미국을 거역하며 핵개발을 하려다가 피살당했다.

http://blog.naver.com/yukin48/50156509380 

(주2) http://blog.naver.com/yukin48/50182822105 

(주3) …해방후에 이승만, 김성주가 각각 한국,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 미국과 소련이 한국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두 사람을 괴뢰정부의 수장으로 내웠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다수 있은데 이 견해는 옳지 않은 것이다. 미국기밀문서에 의해도 미국에서 해방된 한국의 최고 지도자로 내세울 사람을 물색할 때 이승만은 독립운동 공적도 별로 없을 뿐더러 한국인한테 존경도 받지 않는 관계로 제외시켰다. 진실을 말하건대, 이승만이고 김구고 누구고 간에 독립운동가들의 그 공적은 모두 별 것이 아니었다. 봉오동, 청산리 승첩을 거둔 홍범도, 김좌진의 그것도 별 것이 아니었다. 김경천 등의 항일무장투쟁 공적은 큰 것이지만 그 투쟁은 간접 독립운동이었다. 한국이 해방된 것은 독립운동가들 덕택이 아니라 외세 덕택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해방 때까지 살아남은 독립운동가들의 그 공적을 서열 매긴다면 이승만, 김구… 순서가 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승만이 한국의 최고 지도자로 뽑힌 것이었다.…

http://blog.naver.com/yukin48/50179257794 

(주4) 6.25 한국전쟁 때 미군 장교들에게, 일본육사출신 나이 많은 장교들은 대들고 만주군관학교 출신 나이 적은 장교들은 고분고분했다. 육사출신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하자 미국이 그들을 예편시키고 그 자리를 군관학교 출신들로 채웠다. 이들은 미국 및 이승만에게 절대 복종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법이다. 친미파, 친이승만파가 군부를 장악하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존의 엘리트들이 그들한테 밀려났다.

http://blog.naver.com/yukin48/50156509380 

(주5) http://blog.naver.com/yukin48/50156509380 

(주6) 미군이 중국군에게 완패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서민들은 미국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군은 거지 떼들이고 미군은 부잣집아들들이기 때문이었다.

(주7) http://blog.naver.com/yukin48/50182822105  

⁂ 한국에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지를 받아야만 한다. 장악 후에는 별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 전에는 절대적으로 그래야만 한다. 4.19 혁명, 5.16 혁명 모두가 미국의 막판 지지에 의해 성공한 것이었다. 4.19 혁명은 이승만이 사직하여 성공했는데 실인즉 그가 군부가 자신으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에 할 수없이 사직한 것이며 군부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 그로부터 돌아선 것이었다. —《부자나라가되다(유길만 지음, 청명 출간)》

위의 책 내용에 미루어 볼 때 미국이 없었으면 4.19 때 이승만이 대통령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 자리를 내놓은 것도 미국 때문이었다.

 http://blog.naver.com/yukin48/220111706460 

미국과 정면충돌한 박정희는 살해되었다. 국내외의 식자들은 미국 cia가 그 살해에 간여했다고 보고 있다. 구미의 지식인들은, 박정희가 만약에 그때 피살 안 되었으면 오늘날 한국은 북한처럼 세계에서 가장 나라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엮인글 공감하기

 

박근혜 지지율 30% 20%대 그 원인 전망 진단 시사 논단

2015/01/29 08:06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55833077

전용뷰어 보기

 

 

대통령 여론조사 리얼미터 여론조사 갤럽조사 대통령 지지율 35% 30%

  박근혜 정부는, 그녀가 50대 이상의 몰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국가라는 것은 50대 이하의 동력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촛불시위가 일어나면 이명박의 정부와는 달리 무너지고 만다고 식자들이 보았다. 20대가 대통령 선거 결과에 특히 불만을 품고 있으므로 계기만 생기면 촛불시위를 일으킬 것이라고 본 김한길과 그의 당이 ‘국정원이 선거 때 댓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을 그 계기로 만들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으로 하여금 그와 그의 당을 한심한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것은 ‘국정원이 댓글로 선거에 개입한 것’은 설령 20대 편에서는 용납해 줄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선거에서 패배한 김한길과 야당 편에서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을 물고 들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김한길과 안철수의 야당에게 아주 실망한 국민이 그들로부터 돌아섰다. 그러나 삼인방을 포함한 여권의 식자들, 여야 정치인, 언론인, 학자 누구누구 모두가, ‘박근혜가 40대 이하한테 돌대가리로 여겨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만약에 그녀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지면 그녀로서는 국정을 운영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아래의 내용은 박근혜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지자 이것에 대한 정치인들의 견해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급락의 근본원인은 재벌감세, 서민증세"라고 말했다. 한정애 대변인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파문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더 굳건해진 김기춘 비서실장, 그리고 '권한 강화'라는 금칠을 한 문고리 3인방, 서민증세에만 골몰하는 현 정부에 국민이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정윤회 게이트가 불거지자 지지율 40%가 붕괴됐고, 김기춘 비서실장 및 문고리 3인방 유임과 김무성 대표의 수첩파동이 겹치면서 35% 지지율이 무너졌다"며 "서민증세로 심란한 국민들에게 '꼼수증세'를 또 했기 때문에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불리는 30%가 무너졌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짜 박근혜의 지지율이 29%인데 정치인, 기자 누구누구 모두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냉정을 잃지 않고 있다. 이 이유는 그들이 여기 블로그의 글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진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월호나 공무원연금개혁이나 정윤회 문건 같은 사건 때는 40%대 지지율을 유지하다고 연두기자회견 그러니 몇 마디 말 때문에 30%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주1)

 

 ‘박근혜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진 것은 그녀가 국정을 잘못 운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이 연말 증산, 담배값 인상으로 삐졌기 때문이다’는 네티즌의 견해는 옳은 것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국민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박근혜가 삼인방, 김기춘을 두둔한 것까지는 눈감아줄 수가 있지만 박지만을 공박한 것은 그래 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친동생을 매몰차게 때리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서 정이 뚝 떨어졌다.’ 이점에서는 박근혜와 삼인방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만약에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지만을 감싸주었으면 그랬다고 국민한테 비난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국민은 정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감싸주어야 했다는 견해는 결과론적인 것일 뿐이다.

여기 블로그에서는 박근혜가 연두기자회견 때 워낙 실수를 했기 때문에 그녀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져야 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박근혜의 청와대가 국정운영을 크게 잘못했기 때문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주2) 이 견해를, 기자들도 옳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콘크리트’ 지지층인 50대와 60대 연령층과 TK(대구·경북)지역구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주3)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도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신뢰가 무너진 게 아니고 정치적 행위에 대해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 대표는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뢰와 애정 같은 정서를 기대하고 있다. 국민이 그 기대에 어긋난 그녀에게 실망하여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220247039403 

      http://blog.naver.com/yukin48/220242996762 

(주2) http://blog.naver.com/yukin48/220247039403

      http://blog.naver.com/yukin48/220242996762 

(주3) 50대와 60대 연령층과 TK(대구·경북)지역구에서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국가를 위해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http://blog.naver.com/yukin48/220252229594 

      http://blog.naver.com/yukin48/220242996762 

 

 

 

엮인글 공감하기

 

박근혜 노무현(탄핵) 노태우 대통령 지지율 박정희 20% 전두환 80% 시사 논단

2015/01/26 07:11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52229594

전용뷰어 보기

박근혜 예언 - 대통령 지지율과 탄핵,  지지율은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일베저장소에서 ‘박근혜가 마침내 큰일을 해냈다!’고 감탄하기에 필자가 보았더니, 박근혜가 집권 3년차 지지율에서 노태우, 노무현과 동급을 이루자, 꽈배기 꼬듯 비꼰 것이었다. 그런데 노태우, 노무현과 동급이 되었다는 사실은 비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늘날 노무현은 국민한테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인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태우의 경우도 비록 오늘날 국민한테는 최악의 대통령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재임시에는 구미의 지식인들한테 최고의 대통령이란 찬사를 받았다.

 

  노태우는 재임 시에 항상 지지율이 형편없었지만 식물대통령, 레임덕 이런 것과는 먼 대통령이었다. 퇴임하는 날까지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 않아서 그렇지) 지닌 사람이었다(그래서 당시 구미에서 그를, 구미를 포함한 각국의 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인물로 보았다.).(주1) 노무현의 경우에는 재임 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식물대통령이었다. 그렇지만 퇴임 후에는 국민한테 박정희보다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최하의 지지율을 기록한 노무현, 노태우가 그러하니 ‘대통령 지지율’이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이 관점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경우를 보면 더욱 옳은 것으로 나타난다. 재임 시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박정희는 오늘날 위대한 대통령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전두환은 형편없는 대통령으로 여겨지고 있다.(주2)

  이상의 내용에 미루어 볼 때 현재 삼인방이 지지율에 아주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노무현의 386한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당시 노무현이 식물대통령 상태에 빠지자 청와대에서 진보정책을 보수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견해가 주류였는데 386이 고집스레 진보정책을 고수했다. 이로 인하여 노무현이 임기 내내 식물대통령이 되었지만 퇴임 후에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50026929668 

(주2) 대통령 여론조사 통계가 박정희와 전두환의 것은 없다. 따라서 이들의 것은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아래의 내용에 미루어 볼 때 박정희의 지지율은 형편없고 전두환의 것은 괜찮았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전두환은 시종일관 강경 조처를 내리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는 박정희와 대조적이다. 박정희는 계엄령, 위수령, 긴급조처를 번갈아 내렸다. 그 기간은 그의 재임기간의 절반에 해당했다. 한편 전두환은 단 한차례의 계엄령, 위수령도 내리지 않았다. 서울에서 백만명 시민이 시위를 벌이는 때에도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 —《부자나라가되다(유길만 지음, 청명 출간)》

 

  위의 책을 보면 재임 시 시종일관 박정희의 지지율은 형편없고 전두환의 것은 괜찮았음을 인정해주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 책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을 추정하게 해줄 내용을 모두 다루고 있다. 다루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박정희는 운이 나쁘고 전두환은 좋았다’는 내용에 관한 정도이다.

박정희가 전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국교수립, 베트남파병을 했다. 이것들은 가난한 나라 한국을 잘 사는 나라로 만들 결단이라는 것이 나중에 확연히 밝혀졌다. 그래서 박정희의 지지율이 높게 올라가게 되었는데 이런 때에 와우 아파트 붕괴, 정인숙 피살 사건이 일어났다. 두 사건은 한일국교수립, 베트남 파병의 공적을 제로로 만들만큼 크나큰 악재였다.

정인숙 사건으로 박정희의 지지율이 10%로 떨어졌다.

http://blog.naver.com/yukin48/220009826204 

당시 청와대에서는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는 지지율 문제가 아니라 박정권를 무너뜨리는 악재로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는 것은 청와대에서 정인숙 피살 사건을 이슈화해서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을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yukin48/220251387808  

 

 

 

 

 

 

 

      

엮인글 공감 2 공감하기

 

박근혜 정윤회와 박정희 정인숙 박근혜 박정희 연구

2015/01/25 09:52

복사 http://blog.naver.com/yukin48/220251387808

전용뷰어 보기

정윤회 사건 정리 박근혜 정윤회 - 박정희 정일권 정인숙 아들

  정인숙은 1964년에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 했으나 가족의 반대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다. 아버지의 실직과 대학 낙방은 그녀로 하여금 방황하게 만들었다. 영화배우가 되려고 영화감독과 교제했으나 1년만에 헤어지고 요정업계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타고난 미모와 영어실력으로 1급 접대부가 되었다.

 “청와대 모임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2백여 명의 아가씨들이 차출됐는데, 그 중에서 성적순으로 50명을 뽑고, 다시 신원 조회를 통해 25명을 선출했습니다. 마지막에 미모 순으로 5명을 뽑았습니다. 5명 중 정인숙이 1등이었습니다.”

미스 코리아나 영화배우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요정에서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선운각, 옥류장 등 서울의 일류 요정들은 정인숙을 데려가기 위해 앞을 다투었다. 그녀가 최고급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며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쌓았다. 이때부터 정인숙은 저명인사들의 노리갯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했다. 비밀요정을 주 무대로 정부의 A급 고관대작들만 상대했다. 정일권 국무총리 등 정관계 최고의 인사들과 어울리다 서너 번의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1980년대에 국회의원을 지낸 모 인사는, "정인숙을 편력한 이들 가운데에는 박정희, 박종규, 정일권, 이후락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은 정인숙이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을 낳은 것처럼 행세했다. 그래서 대통령 경호실장인 박종규가 그녀를 외국으로 내보냈다.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정인숙은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위장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녀는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 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사건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의하면, 범인은 오빠 정종욱이었다. 그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그 말을 듣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폭언을 가하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암살하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정인숙 사건은 당시 지도층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인숙의 빨간 가방 안에는 그녀가 생전에 알고 지내던 사회 저명인사 26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정인숙의 자택에서 발견된 포켓용 수첩과 장부에 적힌 이름과 일시, 장소, 명단 때문에 희대의 정치스캔들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시 경찰과 검찰 직원의 부주의로 언론에 드러난 정인숙의 수첩에는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장관, 차관급 인사들, 대한민국 국군 장성, 5대 재벌그룹 회장,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 27명을 포함한 권력 실세들 수십여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정인숙 피살 사건은 고위층의 부도덕한 타락상을 세상 밖으로 노출시켰다. 그렇지만 이 사건의 전모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온갖 추측만이 난무했다.

 

  정인숙 피살 사건 직후에 나훈아의 노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개사한 노래가 확산되기도 했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 / 만약에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 영원히 우리만이 알았을 걸 / 죽고 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 성일(정인숙이 낳은 아들)이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 고관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 그렇게 모두가 밉지는 않았을 걸 / 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당시 한 청와대 인사는, “어디서인지 변조된 가사 전문을 입수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박 전 대통령에게 따졌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은 “‘피살된 정인숙이 박 전 대통령의 여자였다’는 시중의 소문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 평소 거느리는 주변 사람들의 여자문제에도 관대한 편이었다. 심지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직원을 시켜 정적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등의 사생활을 캐서 보고서로 제출하자 화를 내며 찢어버렸다. 그러나 자신과도 잠자리를 같이 한 정인숙이 정일권과 관계를 맺어 자식까지 두었다는 사실에는 크게 분노했다.

 

  정인숙 살해 사건의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정치 주요인사 수십여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지도층의 부도덕성은 여론과 시민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세간에 '육박전' 이란 화두가 나돌았다.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인숙과의 관계를 추궁했고, 이것이 부부 싸움으로 이어졌다. 박정희가 육영수에게 재떨이를 던졌는데 이것이 그녀의 얼굴에 맞았다. — 육영수의 눈에 푸른 멍이 든 것을 각료들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목격했다. ‘육박전’은 박정희 대통령 부부간에 대판 싸움을 ‘박정희와 육영수의 전투’ 로 희화한 풍자용어이다.

 

  겉으로는 범인을 잡아 끝난 것처럼 보였던 정인숙 피살 사건은 파장은 국회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1970년 5월 열린 임시국회는 정인숙 사건과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소란스러웠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대정부 발언을 통해 정인숙 사건과 관련된 의혹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그 첫 출발은 법무장관이던 이호가 정인숙 사건을 자진해서 보고한 국정보고에서 시작되었다.

70년 5월 12일 열린 첫 본회의에서 법무장관 이호는 정인숙 사건을 자세하고 비중 있게 취급해 보고를 했다. 국회 속기록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정인숙 관련 기록이 4쪽인 것에 비해 와우아파트와 관련된 기록은 3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호 장관이 이렇게 자세하게 정인숙 사건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룬 것은, 정인숙 사건을 자신의 발언 선에서 마무리 짓자는 일종의 호소였다. 정인숙 사건을 야당이 더 이상 키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유진산 당시 신민당 총재는 5월 13일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정인숙 사건에 대한 정부의 민감한 대처방식을 통렬하게 비꼬았다.

“어제 이호 법무가 올라 오길래 무슨 법무 행정의 주요 문젠가 했더니 느닷없이 웬 강변3로 여자 살인 사건을 말하는 거야(웃음소리). 대통령이 여자 살인사건을 갖고서 모처럼 안 하던 결심을 하여 각료들을 국회에 내보내 보고하게 한 것이라고(웃음소리). …야당 의원한테 질문 받으면 이때 거짓말이든 무엇이든(웃음소리) 적당히 답변하면 되지. 오빠가 여동생의 난륜(亂倫)에 분개해 가지고 권총을 쏜 사건을 법무장관이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국회에서 상세히 보고하느냐 말이야(웃음). 미인사건이라니까 여러분은 흥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친절한 보고는 없어도 좋지 않느냐 이거요. 국회의원들은 질문을 안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지시로 국회에 나온 법무장관이 그 정인숙이라는 미인 살인사건을 장시간 보고하니까 우리가 의문이 생긴다 이겁니다.”

  큰 뱀으로 불렸던 유진산은 권모술수와 밀실정치에 뛰어났다. 당시 김계원 중앙정보부장은 유진산과 일부 야당 인사들에게 접근해 정인숙 사건을 쟁점화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유진산은 이를 쟁점화했고 뒤이어 다른 야당인사들도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정인숙 사건을 쟁점화시켰다.

신민당의 김상현 의원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정 여인과 관계한 사람들은 대통령, 총리를 포함해서 26명이다 는 얘기가 돌아다닙니다. …정 여인 사건은 계획된 각본에 의한 타살이요. 청부 살인 의혹이 있습니다.”

김상현의 발언은 본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공화당 차지철 의원을 필두로 고함과 욕설이 튀어나왔고, 이에 맞서 신민당 의원들도 고함을 지르며 공화당 의원들과 맞섰다. 한 여인의 의문에 찬 죽음은 국회 본회의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정인숙이 낳은 아들 정성일은 박정희의 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초점은 그 아이가 정일권의 아들 정성일이냐, 아니면 박정희의 아들 박성일이냐로 좁아진다. …자, 문제의 아이 성일군이 정일권의 아들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아이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인 최대현, 노진환, 문학림이 정일권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박정희의 의혹을 거슬리면서 침묵을 지켰을 것인가? 당시 정일권이 과연 침묵시킬 수 있는 실권자였는가? 정일권이 국회의원 자격도 없는 노진환을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밀어 넣고 최대현을 청와대 사정 보좌관실에서 일하게 할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었는가? …나의 대답은 ‘결단코 성일의 아버지는 정일권이 아니다!’이다. 이렇게 보면 성일군의 아버지는 박정희임이 명백해진다. 또 하나 명백한 것은 성일군의 아버지가 성일군의 어머니인 정인숙 여인을 살해한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이걸 성일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골육상쟁극이었다.”

1971년 정일권을 만난 재미언론인 문명자는 정일권한테, "문 기자, 나는 정인숙과 딱 한번 같이 잤는데, 그 아이가 내 아들일 니가 없소. 나는 이미 불임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몸이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박근혜는, 정성일의 생부는 박정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1998년 그녀가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버지(박정희)와 어머니(육영수)는 그때 정 여인과 관련된 당사자를 알고 있었다. 물론 상당한 고위층(정일권)이었다. 그 사람이 사표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와서 무릎 꿇고 울면서, '제가 관계했던 여자이지만 결코 살인은 하지 않았다'고 사죄했다. 아버지는 그때 그 당사자를 문책하게 되면 (그가) 살인자로 비쳐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같다.”

 

  정성일의 생부에 대한 논란은 정일권 설과 박정희 설, 박종규 설, 이후락 설, 기타 정부 각료 설 등이 유력하였다. 정인숙의 유족들은 처음에 정성일을 정인숙의 배다른 동생이라고 하였다가, 나중에는 정일권의 친자라고 주장하였다.

정인숙의 아들 정성일은 1991년 미국에서 국내로 들어와 정일권을 만나려 했으나 거부당하자 친자확인소송을 벌였다. 6월 5일 정성일은 서울가정법원에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정성일은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외삼촌으로부터 정일권 씨가 1967년 어머니와 교제해 다음해 나를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6월 27일 외삼촌 정종구의 권유로 소송을 취하하고 다음날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정일권의 한 측근은, '91년 그가 한국에 와서 친자확인소송을 한다고 했을 때 정 전 총리 측에서 거액을 주고 일단 무마시켰다.'고 진술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찾기 위한 정성일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1993년 3월 '저는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행림, 1993)이란 책을 낸 정성일은 1993년 5월, 서울가정법원에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 확인소송을 다시 제기했으나, 1994년 1월 정일권이 타계함으로써 정성일의 노력은 무산되고 말았다.

정성일은 '저는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라는 책에서 1991년 11월 미국에서 정일권과 대화를 나눈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한 대화에서 정일권은 정성일에게, "아가야, 나는 지금 가슴이 떨려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구나.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하고 다시 와주련?"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3년 SBS 주병진 쇼에 출연한 정성일은, "최근 정씨(정일권)가 나와의 직접 통화에서 ‘당신은 나의 아들이 아니며 내가 모시던 분의 아들 그러니 박정희의 아들’이라고 밝혔다."고 말해 자신이 박정희의 아들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