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과 中國의 茶文化 比較

2015. 4. 17. 00:09차 이야기

 

 

 

 

 

    

 

 

1. 序論

   文化란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目的 또는 생활 理想을 實現하려는 활동의 과정 및 서서히 형성되는 生活方式과 內容. 곧 衣食住를 비롯하여 학문.예술.종교.법률.경제 등 외적 물질적인 문명에 대하여 특히 人間의 內的인 精神 活動의 소산이다. 文化는 그 당시 지도자들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것에 따라 문화는 변화되었다.

   따라서 茶文化는 차잎을 매개로 삼아 파생적으로 낳은 物質的(自然的 茶文化), 精神的(人文的 茶文化) 文化라 할 수 있다. 차나무는 하나이지만 각 지방에 따라, 시대에 따라 먹는 방법이 달라져 왔다. 중국에서 처음 비롯되었지만 수세기 전에 세계화가 되어 세계 3대 음료인 차를 음용하는 자연적인 차문화는 동.서양에서 모두 발달하였지만, 차잎을 통해 인간의 철학적.정신적인 것을 높이는 인문적 차문화는 중국.일본 그리고 한국뿐이 없다.

   중국에서 마시기 시작한 차는 육우가 茶經을 저술함으로써 차를 마시는 것이 동양 삼국에서는 인간의 살아가는데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동양 사람들은 육우의 다도정신을 중시하여 단순히 마시는 음료에 그치지 않고, 각기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며 차를 마시며 마음의 여유로움, 즉 풍류를 즐겼고, 차를 마시며 심신을 수련하여 멋 속에서 맑고 깨끗한 마음씨를 기르고 한없는 깨달음을 가져오게 했다.

   본 글에서는 인문적 문화를 가진 동양 삼국 중 중국과 한국의 茶文化를 실제와 문헌고찰을 통해 비교해 보고자 한다.

 

 

2. 中國의 茶文化

 

   중국은 중국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漢族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이 중국을 대표하는 것들은 아주 많겠지만 그 중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차'일 것이다. 중국은 차의 원산지이며 세계에서 차를 가장 먼저 이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처음엔 약용으로 사용하였으나 점차 음식으로, 음료로도 이용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차로써 심신을 수련하고, 풍류를 즐기며 깨달음을 얻는 도구로 발전되었다. 중국 차문화의 발상지인 사천성과 운남성 일대부터 전국 각 지역으로 차나무 재배는 전파되었는데 위진 남북조시대 대 차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중국의 차문화는 당대에 들어와서 제다법과 음다법을 체계화시킨 '다경'을 육우가 저술함으로써 비로소 생활 속의 차로 보편화되었고, 차 문화가 만들어졌다. 또한 이 책에 담긴 다도정신인 '精行儉德'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나라가 멸망한 후, 오대를 거치면서도 차문화는 계속 발전하여 '湯社'라는 차모임이 결성되었다. 이 차모임을 중심으로 차문화가 교류되었고, 보급되었으며 차의 품질을 비교했다. 이것이 송나라에 이르러서 크게 유행한 鬪茶가가 되었다.

   송대에 와서 차의 제조방법에 크나큰 변화가 와 煮茶法에서 點茶法으로 변해갔다. 점차법으로 변해가며 점차 넓은 다완을 사용했으며 다선이란 茶具를 이용하여 잘 휘저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음다법이 유행하였다. 송대에 들어서 차문화가 더욱 번창해진 이면에 왕실의 음료로 귀족화되어 공차의 고급화로 다농들의 생활고는 심각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명대에 이르러서 주원장(태조)이 단차의 제다법을 폐지하는 칙령을 내려 약 400년 동안 중국 차문화를 이끌었던 硏膏茶의 점차법은 사라지고 포차법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따라서 마시기 위한 다기도 큰 변화가 왔는데 녹차의 향과 맛을 보존하기 위해 瓷器類를 선호하게 되었다. 제조과정이 간결한 잎차가 제조됨으로써 서민들에게까지 일반화되어 국민보건음료로 정착되었다. 이 차는 청대에 와서 아편전쟁으로 인해 서양에 전파되었다.

 

   청대 때에는 민간 중심으로 성행했던 행다법인 '청차다예'는 중국이 공산권이 되자(특히 문화혁명) 때 주자문화인 자본문화가 퇴폐문화로 간주되어 철폐해 인문적 차문화는 점차 쇠퇴되고, 자연적 차문화가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반면 자본주의인 대만정부는 청차문화를 상업화하여 세계 차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새로운 차문화를 정립하여 차생활을 생활 속에 뿌리내렸다. 공산국가인 중국의 문호가 다시 개방됨으로써 중국의 다예는 점차 복원되어가고 있다.

 

 

   이제 중국사람들에게 차는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손님이 오면 자연스레 차로서 대접하는 차는 각 지역에 따라 민족에 따라 차의 제조방법이  다르고, 차를 마시는 습관이 다르다. 차의 원산지로써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 운남성과 사천성은 흑차로써 보이차와 타차 등을 즐겨 마시고, 복건성과 광동성 일대의 사람들은 무이암차(우룽차)와 쟈스민차(화차) 마시기를 즐겨 마시며, 티벳 등 서쪽지역에서는 떡차나 벽돌차(긴압차)와 밀크티와 수유차를 즐겨 마신다. 몽고 사람들은 차물에다 신선한 우유 혹은 양젖을 넣고 다시 소량의 소금을 넣어 마시는 밀크티를 즐겨 마신다. 또 절강성과 강서성 일대의 사람들은 용정차와 벽라춘 등 녹차 마시기를 즐겨 마신다.

 

   음다방법에 있어서도 차와 물의 등급이 세분화되었으며 우룽차는 소형의 자사다구에 우려 마시고,  용정차, 고저자순차 등 녹차는 맑은 유리잔에 마시며, 광동지역에서는 얌차라 하여 여러 가지 만두나 튀김요리를 먹는 음다풍습이 있다. 나시족의 팔보차는 긴 부리 주전자로 차를 따라 주며, 위그르족은 밀크티를 식사와 함께 마시며, 특히 운남지방의 소수민족에게서는 특이한 음다풍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잠시 살펴보면 염파차를 마실 때에는 옥수수떡을 함께 먹는 습관이 있고, 긴 나무통이 필요한 수유차는 차와 기름 및 각종 재료를 필요하는데 마실 때에는 주부가 쌀보리가루나 차즙으로 만든 가루떡을 대바구니에 담아 식탁에 놓고 수유차와 더불어 마시기를 권하면 손님은 수유차를 마시면서 가루떡을 먹는데 예의인데 이 때, 차를 모두 마시지 말고 조금 남겨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티벳 풍습에 다 마셔버리면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주인이 손님 접대를 잘못한 경우가 되어 버린다.

 

   이렇듯 현재 중국인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된 차는 다양한 차가 생산되며 그 민족 나름대로의 독특한 차문화를 이루고 있다. 갈증이 날 때,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인 자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기호식품인 차는 그들의 생활을 참 여유롭고 편안하게 해 준다. '다예'는 중국의 공산화 기간 동안 잠시 사라졌다가 불과 10년 전부터 조금씩 복원되어가고 있는 중국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맛과 향이 다양하며 기호식품으로서 충분한 즐거움을 주고, 마음의 한가함을 준다.

 

 

3. 韓國의 茶文化

 

   우리나라의 차생활을 보면 차를 통해 자신의 정신세계를 일깨우고 풍요롭게 하며, 심신을 수련해 왔다. 우리나라의 차문화의 특징을 살피기 전에 먼저 중국에서 전래되어온 차가 시대별로 어떻게 발전 계승되었고, 그 쇠퇴 요인과 현재 한국 차문화의 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차 전래설을 보면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가야국의 허황옥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라 흥덕왕 때 김대렴 설이다.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설을 증명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세계 차학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는 않고 있다. 최초로 차가 정사인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은 신라 흥덕왕 때 김대렴이 당나라의 사신으로 갔다가 차의 종자를 가지고 와서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이후였다고 한다.

 

   삼국 중 고구려는 중국과 가장 가깝고 불교가 가장 먼저 전래되었으나 차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고구려의 옛무덤에서 출토된 錢茶가 유일한 유물이다. 그리고 차나무가 자랄 수 있는 기온이고 신라보다 중국과 가깝지만 백제 역시 차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일본의 기록인 '日本書紀'에 차가 백제의 궁중에 쓰였다는 증거가 있고 백제 유민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일본에 귀화한 행기스님이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東大寺要錄'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에서는 불교문화와 더불어 들어와 불교와 함께 전파되었다. 승려들과 화랑들이 수도와 수행생활의 도구로 차생활을 했다는 것을 여러 기록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차는 통일신라시대를 들어와서는 민중을 중심으로 한 화합불교에 힘쓴 원효 덕분에 더욱 찬란히 빛나 궁중.승려.화랑 뿐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퍼져 대중문화로서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고려로 이어지면서 불교문화의 발전과 함께 차생활은 더더욱 융성했다. 茶房과 茶村이 생겨나고, 차 제품을 파는 가게와 거리에 茶店이 생겨 행인들이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였다는 것을 볼 때 차가 일반 서민들에게도 일반화되었으리라 추측된다. 화려하고 품격을 갖춘 다구는 중국을 모방했던 게 없지는 않으나 다구의 생김새와 만드는 법이 매우 독창적이었다. 음다의 성행으로 고려청자와 같은 예술품을 창조하였으나 백성들이 공다로 인해 피해도 심했다 고려 초기에 귀족중심이었던 차문화는 무신난 이후 고려말에서부터 조선 초에 들어서서는 문인들이 세상을 등지며 들어가 차를 즐김으로서 文人茶會시대가 열렸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차문화 또한 불교와 함께 퇴조되었다. 하지만 차생활은 민속화되어 혼례 때 封茶라든지 제사다례 등 아름다운 풍속으로 일반 서민에 가지 보급되었다. 숭유억불정책, 관청들의 힘겨운 다세, 서민들에게는 비싼 차값, 등으로 차는 고려에 비해 쇠퇴되었지만 왕실에서는 여전히 다례가 행해졌고, 선비들과 승려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차에 대한 저술이 이루어졌고, '다례'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연두 빛깔의 찻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소담스럽고 단아한 기품이 있는 백자가 창조되었다.

 

   일제시대의 차의 유통은 일본인이 장악하였다. 광주의 무등다원, 정읍의 오가와 다원, 보성다원 등 차의 생산기반인 차밭은 일본인이 경영하였고 일본으로의 동화를 위해 말차에 의한 다도교육을 시켰다. 일본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인해 우리의 차문화는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해방이 되자 서구의 문명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커피.홍차 등의 서양의 차가 들어와 빠른 속도로 기호음료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점점 우리 차와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사찰이나 소치.미산.의제와 같은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차문화는 면면히 유지되었다.

현대에 들어 와서는 기호음료 흐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현대문명의 지나친 발달에 대한 반사로 우리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더해감에 따라 그리고 차에 함유된 성분들이 분석되자 차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한국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지만 '차의 부재시대'를 너무 오랫동안 차문화에 대한 많은 것을 잃었고 잊었다. 차의 보급이 급속도로 생활 문화권으로 넓게 퍼져가는 이 시점에서 조상들의 아름다운 생활정신과 예절을 찾아 오늘에 맞도록 다듬어 아름다운 몸가짐, 여유있는 삶 그리고 편안함을 주는 대인관계를 갖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1400년 이상 이어져온 한국 차문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식다례가 발달되었다. 에로부터 제사와 누에신 등 차를 끓여 올리는 獻供茶禮와 살아있는 사람에게 격식을 갖춘 행사로써 차를 드리는 진다의례 행하였다.

 

둘째, 유가적 수신.수양의 다도 발달되었다. 정성스러운 한잔의 차는 학문하면서 깊은 사고를 해야 하는 유학자들에게 잡념을 없애주고, 도를 터득하고자 하는 마음과 정신을 갖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유가.불가.도가.민간사상에서도 골고루 갖추어져서 한국 차문화의 정신적 축이 되었으며, 생활문화의 철학적 기반이기도 하다.

 

셋째, 飮茶風俗의 주도적 역할을 한 계층은 문사들이었다. 승려나 궁중에서도 차를 많이 썼으나 12세기초(고려 중엽)부터 15세기(조선초)까지와 조선 말엽인 18.9세기에 한국의 차문화는 문인다도의 전성기 즉 한국 차문화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성리학자 다인이 주축이 되었고, 조선 말엽에는 실학자 다인이 주축이 된 문인다도는 문장가보다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넷째, 관리들에게 다례제도가 있었다. 공무를 집행하는 관리들이 하루에 한 번씩 차를 마시는 시간인 '다시'를 행하였고, 고려와 조선조에서는 중형을 내릴 때 관여하는 관리들이 모여 앉아 차를 먼저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다시를 원만히 행하기 위해 '茶房'이란 정부기관이 있었는데 다방에는 군사(다방군사)가 소속되어 있어 조정이나 왕실의 의식다례를 행할 때 茶具와 차짐을 운반하였고 茶事를 했으며 다방에서 하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다섯째, 독창적인 茶具 발달하였다. 의식다례가 발달한 한국은 다구도 제사 때나 예의를 갖출 때 쓰는 것이 발달되었고, 야외용 다구도 발달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고려청자가, 조선시대엔 소담스럽고 단아한 기품의 백자가 세계적인 미술품으로 탄생되었다.

 

 

4. 結論

 

   중국과 한국의 차문화를 살펴보면 그 시대에 인접한 문화나 정치적 변화, 사회.경제적 요건 또는 새로운 문명을 포용.전이.창조를 거듭해 가며 형성되었다. 민족의 생활관습, 정서적 심미감, 정신적 가치체계 등을 포함하여 그 내면적 바탕이 되어온 특성과 오랜 세월동안 민족문화의 특성과 철학을 지니고 지금까지 잘 이어져 왔다.

 

   삼국시대의 병차, 고려시대의 연고차, 조선시대 이후의 엽차, 3단계로 변천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중국의 가공 이용법을 많이 답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차는 국민전체의 보건음료가 되기 전에는 귀족의 전유물이었지만 한국은 예로부터 문사중심의 차문화로 발전되었다. 우리나라 차는 제사나 부처에 헌다하였고, 승려들이나 화랑의 수행과 신체단련을 위해 마셨으며, 선비의 수양차, 문인들의 풍류차 등 우리 나라는 우리 민족의 예와 사상이 곁들어지면서 전체 흐름 속에서 개별성 즉 나름의 독창적인 차문화로 발전되어가고 있다.

 

   중국인들은 지방질을 많이 섭취하는 식생활에서 이를 씻어내게 하는 차가 필요로 하게 되었고, 대륙의 수질이나 공기가 좋지 않는 지방에서는 역시 이 향취가 나고 목을 적셔주는 차가 생활면에서 볼 때에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중정을 차생활의 지표로 하고 세속을 걷어내고 생각을 일깨워주는 각성제였고, 예를 실천하였고, 정신적 교류를 나누는 사교의 매개가 되었다. 향기를 마신다는 중국의 차와는 달리 우리의 차는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미각을 자극한다.        

 

   중국인들의 '多藝'는 과학적 차원인 차생활에 예의범절과 법도를 통하여 얻어지는 정신세계의 심미안적 예술세계요, 그 예술성을 포함한 정신적 만족감을 말한다. 중국다예의 기초는 불교, 도교, 유교 등 동양사상의 종합체라고 할 수 있다. 유.불.선 등 동양사상의 경절체를 다예에 주입시켜 생활화한 것이 중국다예의 기본적인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차문화는 다도를 겸처와 삼가의 예로 표현하였고, 세속을 걷어내고 생각을 일깨워주는 각성제의 역할이었고, 자성을 높이 밝혀주는 예가 있는 차는 교우관계에 있어서도 정신적 교류를 나눌 수 있는 매개이기도 했다.  

 

   컴퓨터가 세계를 지배할 시대인 21세기는 건강을 지키고,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차문화'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로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더욱 긴밀하게 해주는 매개가 '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로써 이기적인 사회에 사교의 도구로, 마음을 고요히 다스리고,예절을 배우고, 마음을 닦고, 조급해진 현대인들에게 여유로운 멋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21세기에는 중국.일본 그리고 한국의 차문화가 각기 다른 문화가 아니라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면서도 '和'로 뭉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함께 발전하는 차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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