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최초 다섯제자 外

2015. 4. 18. 15:41경전 이야기

 

 

 

 

 

       부처님 최초 다섯제자는 누구인가요

 

다섯제자 이름을 정확히 알려주세요

하림스 | 2006.01.05 16:31 수정됨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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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The First Five Monks  (부처님의 최초 다섯제자)

   Now the Buddha wanted to tell other people how to become wise, good and do service for others. He thought, "Now Asita, Alara and Uddaka are dead but my friends Kondanna, Bhaddiya, Vappa, Mahanama and Assaji are in Benares. I must go there and talk to them."

 

   Then he set out for Benares, till at last he came to a grove where his five friends were. This grove at Sarnath was called the Deer Park. They saw him coming towards them and one said to another, "Look yonder! There is Gotama, the luxury-loving fellow who gave up fasting and fell back into a life of ease and comfort. Don’t speak to him or show him any respect. Let nobody go and offer to take his bowl or his robe. We’ll just leave a mat there for him to sit on if he wants to and if he does not, he can stand. Who is going to attend on a good-for-nothing ascetic like him."

 

참고: http://www.buddhanet.net/e-learning/buddhism/lifebuddha/18lbud.htm

 


    부처님은 맨 먼저 누구에게 설법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아라라와 웃다카가 떠올랐으나 그들은 아깝게도 모두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사람이 네란자라 강가에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사문들이었다.

부처님은 그들이 고행하고 있을 녹야원(鹿野苑)으로 발길을 옮겼다. 녹야원이 있는 바라나시까지는 여러날이 걸리는 먼 길이다. 부처님은 그 길을 혼자서 걸어가셨다. 도중에 다른 교단에 속해 있는 수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수행자는 부처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의 얼굴은 잔잔한 호수와 같이 맑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이며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나는 모든 것을 이겨냈고 이 세상의 진리를 다 알게 되었소, 나는 스스로 깨달았으므로 내 스승은 없소. 또 나와 견줄 사람은 아무도 없소.』
하고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녹야원으로 가는 도중 부처님은 하루 한 끼씩 얻어 먹으면서 쇠약해진 몸을 다스렸다.



 

1개의 답변  : 부처님의 10대 제자

답변
  • 지혜제일 사리불(智慧第一舍利佛)

     

       십대제자 중에서 제일 먼저 귀의한 인물이 사리불과 목건련(目建連)이다.
    산스크리트명은 샤리푸트라(Sariputra)로 샤리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하며 마갈타국 왕사성 북쪽 나라촌에서 출생. 이웃의 목건련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중에서 큰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산자야(Sanjaya)의 문하로 출가하여 사문의 길을 걷게 된다. 얼마 안되어 이들은 산자야가 거느리고 있는 250명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섰다. 그후 산자야와 결별하고 누구든 믿고 따를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면 서로에게 알려주기로 약속하고 다시 구도의 행각에 나섰다. 그러다가 사리불은 부처님께 최초로 귀의한 다섯제자 중의 한사람인 앗사지(Assaji,阿說示)에 의해 부처님께 귀의 하였다.


    자기의 수행에 정진함가 동시에 남을 교화하기에 노력했다.
    석존 교단 가운데 중요한 지위인 인물이며 부처님보다 먼저 나라카 마을에서 춘다의 간호 아래 열반에 들었다. 당시 그의 나이 70세였으며 부처님은 80세.
    그의 유골이 부처님 곁으로 돌아오자 여러제자들과 더불어 부처님께서는 애닯아 했으며, 수닷타 장자는 탑을 세워 그의 유골을 안치하였다. 그로부터 200년 후 아쇼카왕은 기원정사에 들러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만금을 희사하였다고 전한다.
    석굴암의 입구에서 바라볼 때 우측의 첫번째가 사리불이요, 좌측의 첫번째가 목건련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사리불은 왼손으로 비구의 필수품인 정병(淨甁)을 왼편 가슴 높이까지 들어올려 간직하듯 들고 있는데 그 한 손가락에 조그마한 종을 거꾸로 뒤집은 듯한 지물(잔인듯 하다)을 걸고 있으며, 오른 손은 엄지와 검지를 타원형으로 맞댄채 오른편 가슴에 대고 있는 모습으로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다.

     

     

    신통제일 목건련(神通第一目建連)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의 콜리타라는 마을의 한 부유한 브라만 사제의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처님의 교단에 사리불과 함께 들어온 후 맹렬하게 수행한 결과 진리를 깨닫고 십대제자의 반열에 끼게 된다. 열명의 제자 중 목건련의 두드러진 특기는 신통력이었다. 그는 신통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날아 다니는 물체를 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처님과도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목건련은 육신통을 적절하게 발휘하여 포교와 부처님 교단 유지에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하였다.


    오직 중생을 교화하는데만 신통력을 쓸 뿐 삿된 목적으로 악용한 적이 없었다.
    목건련은 효성 또한 지극했다. [우란분경]에 의하면 그는 어머니를 아귀도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효자역할을 충분히 한다. 이 [우란분경]의 가르침으로 오늘날도 우리 사찰에서는 돌아가신 선조들을 천도하는 우란분재(盂蘭盆齋)가 열리고 있다. 우란분재는 다른 말로 백중(百衆) 또는 백종(百鍾)이라 불린다. 백중 혹은 백종이란 말은 100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불,법,승 삼보께 공양을 올려 저 세상으로 간 부모님들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법회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목건련은 사리불과 더불어 부처님을 배반한 데바닷타의 무리 500명을 부처님 품안으로 귀의 시키는 등 부처님 법을 널리 펴는데 매진했다.
    목건련은 불행하게도 포교의 길에 나서다 난폭한 이교도에게 매를 맞아 순교한다.
    신통력이 으뜸인 그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첫번째 그런 위기에 접하여 신통력으로 죽음을 모면했지만 두번째는 이것이 자신의 업인줄 알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목건련은 석굴암 본존불 우측에,바라보는 자 측에서는 좌측에 사리불과 마주한 채 커다란 메부리코에 고개를 약간 쳐든 연로한 비구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 팔은 옷 속에 감싸여 있지만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 한손으로는 향로 자루를 잡고 다른 손으로 향을 넣으면서 고요하게 사념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묵연히 서 있다.

     

     

    두타제일 마하가섭(頭陀第一摩訶迦葉)

     

       마하가섭은 마가다국 왕사성 마하사타라 마을의 핍팔라(pippala)라는 나무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으므로 어릴적 이름이 핍팔라야나라 했으며 그가 속한 종족이 마하카샤파였으므로 훗날 마하카샤파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음역이 마하가섭이다.


    마하가섭은 브라만계급의 여자와 결혼하여 12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지낸 데다가 부친이 사망하자 가업을 이어받아 일가의 가자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세속적 생활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부처님 교단으로 아내와 함께 출가한다.
    그는 영특한 기질을 타고 났음인지 부처님 곁에서 수행한지 불과 8일 만에 아라한의 지위에 다다르게 된다.


    그 후 가섭은 자신의 가사를 부처님께 바치고 대신 부처님이 입던 분소의(糞掃衣)로 갈아 입고 두타행의 길을 간다. 두타란 산스크리트 두타(dhuta)에서 나온 말로 번뇌를 털어 내고 모든 집착을 버린다는 의미에서 수치(修治) 또는 기제(棄除)라고 한역되었다. 바로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불교 수행의 원형인 것이다.
    경전에서는 두타행을 12가지를 들어 말하고 있다.


    ①조용한 곳에 거주한다.
    ②항상 걸식한다.
    ③걸식할 때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④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
    ⑤과식하지 않는다.
    ⑥정오 이후에는 과즙이나 설탕물을 마시지 않는다.
    ⑦헤지고 헐은 옷을 입는다.
    ⑧삼의(三衣)만 소유한다.
    ⑨무상관을 체득하기 위해 무덤 곁에 머무른다.
    ⑩주거지에 대한 애착을 버리기 위해 나무 밑에서 지낸다.
    ⑪아무것도 없는 한데 땅(露地)에 앉아 좌정에 든다.
    ⑫항상 앉아 있으며 눕지 않는다.

    마하가섭은 세곳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았다. 이를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①다자탑전 반분좌(多子塔前半分座):부처님이 중인도 북쪽에 있던 다자탑 앞에서 설법하고 계실때 남루한 차림의 마하가섭이 늦게 도착하자 제자들이 멸시의 누초리를 보낼 때 부처님께서 자신의 자리를 반쯤 내어 주어 같이 앉으신 일.
    ②염화미소:영축산에서 부처님이 말없이 꽃을 들어보인 마음을 읽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말없이 미소를 지은 일.
    ③사라쌍수하 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부처님이 80생을 마감하시고 사라 쌍수 밑에서 조용히 열반에 잡겨 법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을 때 가섭이 늦게 도착하여 열반하시는 모습을 봇본 것을 안타까워 하며 울자 부처님은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인 일.

     

     

    천안제일 아나율(天眼第一阿那律)

     

       산스크리트명은 아니룻다(Aniruddha)이다. 무멸(無滅), 불멸(不滅)등으로 의역 된다.
    아나율은 석가모니불의 사촌형제다. 부처님의 작은 아버지 감로반왕(甘露飯王)의 아들이었다.아나율은 마하남이라는 형의 출가권유를 받고 석연치 않게 출가를 결심했다.
    석연치 않은 축가 때문인지 잘 적응하지 못하고 지내던 중 부처님께서 출가,재가신도들을 모아놓고 기원정사에서 설법하실때 졸다가 호된 주의를 받고 다시는 졸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일주일 동안 자지 않는 정진에 들어갔다.그결과 살명위기애 처했으나 계속 치열한 정진을 하여 끝내 실명을 하였다. 그런데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지만 직관으로 모든 일들을 꿰뚫어 보게 된것이다.


    아나율은 8가지 수행자의 조건을 제시해서 그것을 구도자의 표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것이 팔대인념(八大人念)이다. 팔대인각(八大人覺)이라고도 하는 이 말의 내용을 알아보자.


    ①지족할 줄 아는 마음가짐 「知足者」
    ②시끄럽지 않고 적정한 곳에 머무르는 마음가짐 「閑居者」
    ③욕심없는 마음가짐「小欲者」
    ④계율을 지키는 마음「持戒者」
    ⑤생각이 고요한 마음가짐「三昧者」
    ⑥지혜로운 마음가짐「智慧者」
    ⑦많이 들으려는 마음가짐「多聞者」
    ⑧정진하는 마음가짐「精進者」

     

    그는 또한 깨달음으로 가는 구체적인 교리도 잘 알았고 마음 또한 침착하고 의젓하여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드시자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 하는 제자들의 안정처가 되어 부처님의 열반을 공표하고 그 뒷수습을 맡았다.
    석굴암 십대 제자상에 본존불을 향하여 우측 네 번째로 등장하는데 눈에 이상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두손을 가슴쪽으로 모아 홀(笏)을 다소곳이 부여잡고 있는데 그 홀의 윗부분이 아랫입술에 닿아 있다.
    그 조용하고 단아한 분위기에서 아나율존자의 침착하고 의젓한 모습이 서려 있는 듯하다.

     

     

    다문제일 아난(多聞第一阿難)

     

       아난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정반왕이 아난다(Ananda;기쁨,환희)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난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룬 후 붓다가 되어 고향인 카필라 성으로 돌아왔을 때 출가한다.당시 그의 나이 8세 였지만 석가족의 자연스러운 출가 분위기에 따라 사촌들과 더불어 교단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는 생김새가 굉장히 출중한 미남이었다. 이런 외모를 지닌 탓으로 많은 여인들로 부터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아난에게 불교사적으로 중요한 몇가지 일이 벌어진다.


    ①부처님의 시자로서 그 인류의 스승이 열반에 들 때까지 보필한 일.
    ②여인의 출가를 부처님께 간청하여 받아낸 일.
    ③경전 결집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일.

     

    가장 뛰어난 공적은 경전을 편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마하가섭이 주도한 경전편찬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님 말씀을 외워 보인 뒤 거기에 참가한 500나한들의 지지를 받고 정식으로 경을 성립시키는 주역으로 등장한다. 오늘날 경전의 첫머리에 상요구처럼 따라 다니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라는 말은 바로 아난이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그 말씀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전편집 과정에서 애초에 마하가섭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봇해 참가하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는 참담한 운명에 처한다. 그 후 아난이 번뇌를 모두 없앤 뒤 경전 편집에 참여 하였다. 석가모니불의 십대제자상에서나 여러 후불탱화에서 아난은 머리를 단아하게 깍은 젊고 용모가 바른 비구의 모습으로 부처님 우측에 등장하고 있으며 마하가섭은 그 죄측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얼굴로 자리잡고 있다. 석굴암에서 아난은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 맨 마지막에 자리잡고 있다. 두 손은 단정히 깍지를 낀 채 가슴에 대고 있으며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는 젊은 비구로서 옷깃을 세운 미남형 비구의 모습이다. 갸름한 얼굴, 단아한 이목구비, 상큼한 미소에서 단박 아난존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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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계제일 우바리(持戒第一優婆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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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율을 지키는데 있어 타의 모범이 되었을뿐더러 그 계율조항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노예 출신으로 부처님 교단에 입교한 대표적인 인물로 계급을 떠난 부처님 교단의 평등성을 몸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산스크리트명은 우팔리(Upali)로 인도 사성 셰급 중 최하층인 수드라 출신으로 샤캬족의 이발사였다.


    그가 모시고 있던 7인의 석가족이 한꺼번에 출가하면서 살림살이를 모두 넘겨 주었다. 우바리는 자신만이 천민 출신이라 출가하지 못한 사실에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다음과 같이 마음을 굳게 다지고 축가를 감행한다.
    "나는 본래 이들 석가족 아이들에 의해서 살아 왔는데 오늘 나를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떠났다. 나도 차라리 그들의 뒤를 따라 출가를 하리라 만일 그들이 얻는 바가 있으면 나도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석가족의 사촌형제들을 따라 출가하게 된다. 그런데 왕자들을 출가에 따른 무소유와 평등정신을 보다 철저히 되새기려 했음인지 우바리를 먼저 득도케 해달라고 부처님께 사뢰어 제일먼저 수계를 받고 윗자리에 앉게 된다. 출가 교단에서는 사성의 차별이 없고 대신 출가한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했기 때문이다.
    석굴암 본존불을 향하여 죄측에 고개를 약간 치켜 든 상태에서 이마가 튀어 나오고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간 매서운 인상의 비구가 우바리상이다. 오른손으로 커다란 발우를 껴안 듯 들고 있는 당당한 모습에서 율사(律師)다운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설법제일 부루나(說法第一富樓那)

     

       본명은 푸르나 마이트라야니 푸트라(Purna maitrayani putra)다. 풀어보면 자애로운 마음으로 충만된 여성의 자식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만자자(滿慈子), 만족자자(滿足慈子)등으로 의역 되었으며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는 그 음역으로 줄여서 부루나라 불리게 되었다. 부루나는 봄베이 북쪽에 자리잡고 있던 고대 무역항 수나파란타카국 수파라카 출신이라고 한다. 부루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중지부 경전) 사리불도 극구 칭찬했다.


    그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영위해 나간 사람이다.
    [법화경]{오백제자수기품}에서는 그의 걸림없는 언설로 부처님 말씀을 잘 전해 중생들에게 이익을 베푼 결과 장차 법명(法明)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다.
    부루나는 불법을 전하기 위해 민심이 흉악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들로 득실대는 수나파란타카국으로 가겠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그들이 나무나 돌로 때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칼을 가지고 해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칼로 상처를 입힌다면?"
    "그들은 지혜롭기에 그런 무기로 저를 해치기는 하되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끝내 칼로 죽인다면?"
    "온갖 고뇌 때문에 칼이나 독물로서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 했던 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좋은 사람입니다."
    "훌륭한 일이로다. 너는 능히 인욕을 배웠으니 수파란타카국 사람들 사이에 머물 만하다. 너는 거기에 가서 제도 못 받은 자를 제도하며, 안심 못 얻은 자를 안심케 하며, 열반 못 얻은 자를 열반에 들게 하라."고 하셨다.


    석굴암 제자상 중에서 본존불을 향하여 우측 세 번째로 등장하는 비구가 부루나이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뜨려 정병을 비스듬히 거머쥐고 있는 상태에서 왼손을 입 언저리까지 자연스레 들어올려 설법하고 있는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해공제일 수보리(解空第一須菩提)

     

       산스크리트명은 수부티(Subhuti)로서 브라만 부티(Bhuti)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현(善現), 선생(善生), 선업(善業), 선길(善吉) 등으로 의역 되었다.
    온갖 법이 空한 이치를 처음 깨달은 석존 10대 제자중 한사람.
    [증일아함] 제3{제자품}에서는 "좋은 옷을 즐겨 입지만 행이 본래 청정하여 항상 공적을 즐기고 공의 뜻을 분별하여 공적의 미묘한 덕업에 뜻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은둔자 중에서 제일이라고 칭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요한 곳에 은둔한다고 해서 그가 깊은 산속에 홀로 숨어지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 생활할지라도 내면의 고요를 응시하면서 대립과 다툼이 끊어진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이다. 다툼이 없는 무쟁행(無諍行)은 바로 맑고 향기로운 행이요, 무아의 빛이 외면으로 비추어진 행이다.


    그래서 그는 무쟁도(無諍道)의 제일인자로서도 거론된다. 무쟁행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면, '그는 총명하였지만 성질이 포악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이며 짐승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못살게 굴었다. 그 도가 지나치자 부모와 친구들도 그를 외면하고 미워해 산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그러나 그는 산으로 들어가서도 마주치는 짐승이나 나뭇가지에 해를 끼치게 되는데 산신의 도움으로 부처님을 뵈어 교화를 받고 출가, 이윽고 무쟁도를 깨닫고 무쟁제일자가 되었다. 출가전의 난폭한 인물이 부처님의 교단에 출가한 이후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보리는 조용한 곳에서 무쟁의 삼매를 닦아 모든 법의 공적을 관찰하여 은둔제일, 무쟁제일, 해공제일의 인물로 떠올라 마침내 공양을 받을 만한 모든 성문, 아라한 가운데서 으뜸이신 분, 즉 소공양제일(所供養第一)로 찬탄받는다.


    사물의 본성을 명확히 꿰뚫는 그의 탁월한 식견은 대승불교에 와서 확연하게 부각된다.
    초기 반야계 경전의 정수이자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공의 모습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는 하모니를 이루어 결국 깨달음이라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석굴암 십대 제자들의 무리 가운데 수보리 존자는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의 두 번째로 등장하는 비구로 어깨가 올라간 구부정한 모습이다. 두 손을 턱 밑에 모아 왼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오른손을 덮어 독특하게 포개고 있는데, 은둔자로서의 그의 개성을 강조하려는 듯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논의제일 가전연(論議第一迦 延)

     

       불경을 대별하여 경(經), 율(律), 론(論) 삼장(三藏)으로 나눈다. 이 중에서 경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논은 그 말씀에 대한 해설이다. 가전연존자는 부처님 말씀에 대한 해설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탁월한 논리적 분석력으로 간명하게 설한 부처님 말씀에 살을 보태고 피가 통하게 만든다. 그래서 논의 제일, 또는 분별 제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더불어 말하는데는 논리적 구사는 필수적이므로 설법제일이었던 부루나 존자는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부루나와 가전연을 굳이 비교하면, 부루나는 재가자들을 상대로 말하는데 뛰어났고, 가전연은 출가한 사문들에게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해설을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 했다고 볼 수 있다.


    산스크리트명은 마하카차야나(Mahakatyana)로서 대가전연 또는 마하가전연으로 한역.
    그는 16대국 중 하나인 서인도 아반티(Avanti)국의 수도인 웃제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크샤트리야 계급으로서 아버지는 아반티국의 국왕인 악생왕(惡生王)을 보필하는 재상(보좌관)이었다고 한다.


    [장로게주]에 의하면 그는 악생왕의 명을 받아 부처님을 아반티국으로 초청하기 위해 사신으로 갔다가 부처님을 뵙자마자 그 인격에 감복되어 그대로 출가하여 왕을 불교에 귀의시키고 이어 많은 사람들을 출가 시킨다.
    가전연은 빈틈 없는 논리를 바탕으로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탁월한 변재를 구사하여 중생교화에 힘쓴다. 그는 뛰어난 포교사였던 것이다.


    가전연은 석굴암 제자상 중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 세 번째로 등장하고 있다.
    왼손을 옷속에 넣은채 오른손을 올려 첫째, 둘째 손가락으로 둥근 원을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을 죽 펴들어 설법하는 모습이다. 얼굴은 왼쪽으로 약간 돌려 쳐든채 눈을 똑바로 뜨고 있으며, 두발을 활짝 밖으로 벌려 버티어 서서 굳은 의지를 내 보이고 있는데, 상대방과 자신있게 논쟁하는 가전연 존자의 특징을 잘 그려내고 있다.

     

     

    밀행제일 라후라(密行第一羅후羅)

     

       라후라 존자는 석가모니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도 은밀하게 스스로 행할 바를 실천하여 부처님으로부터 밀행제일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실제로 그는 인욕행(忍辱行)과 계율준수를 남이 보지 않는데서도 철저히 해 나갔던 모양이다. 산스크리트명은 라훌라(Rahulla)이다. 장애로 의역 되고 있다.
    사실 '라훌라'라는 이름은 아수라의 일종으로 그 아수라의 무리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자를 일컫는 말이다. 신화에 근거하여 '라훌라'라는 말은 월식으로 불리게 되고 결국에는 장애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하고 출가를 결심하여 돌아오던 길에 아들이 태어나 "라훌라(장애)가 생겼구나"라고 통탄했다는 일화가 있다.
    행간에 숨어 있는 본래의 의미는 태자의 출가후 야수다라비는 정상적으로 라후라를 분만했다. 그렇지만 싯다르타가 깨닫기 까지의 6년 고행기에는 가족들도 인도의 풍속대로 고행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으므로 라후라의 출생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성도의 소식과 함께 그의 출생이 공표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출생일 날 월식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를 '라후라'라고 불렀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후 고향 카필라 성으로 돌아왔을 때 야수다라 비는 라후라에게 "저분이 너의 아버지다. 가서 나는 왕이 되려하니 물려줄 재산을 달라고 하라."고 했다. 어린 라후라는 어머니 말대로 물려줄 재산을 요구했다. 부처님은 그녀의 마음을 간파하고 '차라리 그에게 보리 도량(菩提道場)의 거룩한 보물을 주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법의 상속자가 되게 하리라"고 생각하고 사리불에게 명해 라후라의 정식 출가의식을 명령했다. 당시 그의 나이 6세 혹은 10세라 한다. 이렇게 라후라는 사리불을 스승 삼아 최초로 사미가 되었다.`
    석굴암 십대제자상 중에서 본존불을 향하여 우측 다섯 번째로 등장하는 라후라 존자는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주먹을 쥔 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활달하게 들어올려 옷자락을 잡은 모습이다.


    만면에 미소가 감돌고 있는 미남형의 중후한 비구로서 단정한 자태다.
    일반적으로 불화에서 라후라 존자는 아난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단아하게 깍은 젊은 승려로 나타난다. 그 화면 구성을 보면 부처님 좌측에 마하가섭, 우측에 아나존자가 머무는데, 라후라는 가섭이 위치한 자리에서 약간 위에 젊은 비구의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2006.01.05 16:31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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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8. 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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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22대 제자


    묘법연화경에서만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1)아야교진여阿若憍陣如 : 맨 처음 깨달은 사람.

    -교진여憍陣如는 성으로 Kundin족이란 뜻이며, 가비라국의 바라문 성이다. 오비구의 한 분이다.

    -아야阿若는 잘 알았다는 의미로 초지初知 · 이지已知 · 요본제了本際라 번역함. 이는 최초에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잘 이해하는 사람임을 표현한 것.

    -석존께서 성불하신 후 최초로 교화하신 비구로 유명하다.

    본불행집경 제25실다태자가 고행할 때 처음으로 뽑히어 시봉하였으니 후일 태자가 고행을 발하였음을 보고 태자가 타락했다 하며 버리고 떠났다. 녹야원鹿野苑에서 사제법四諦法·사성제四聖諦인 부처님 설법을 듣고 불도에 들어와 불제자중 제일 먼저 깨달은 분이다.고 하였음.

    문구2교진여는 성이며 이는 화기火器(불을 담는 그릇)라 번역되고 바라문족이며, 아야는 이름이다.

     

    (2)마하가섭摩訶迦葉 : 두타제일頭陀第一·12두타

    -왕사성 마하사타라촌의 바라문 출신

    -왕사성에서 부처님을 만나 제자가 되어 8일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매우 엄한 구도수행생활(깨달음을 구하는자·해탈을 구하는자)을 관찰하고 묘법연화경<수기품 제6>에서 미래에 광명여래로 수기를 받고 있다.

    -부처님 열반 후 교단의 최장로가 되어 석존의 유언을 받고 왕사성 필발라굴에서 제1회 불전결집을 주재했다. 그 후 20년간 부법장 1로써 소승교를 홍통했으며, 법을 아난존자에게 부촉附囑하고 계족산에서 입정했다고 한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

     

    부법장附法藏 -불법의 교설을 후세에 부촉附囑한 것.

    불립문자不立文字 -선종에서의 오도悟道가 언어·문자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심전심의 현지玄旨(도에 이를는 것)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대범천완 불경의경부처님께서 나에게 정법안장·열반의 묘심·실상무상·미묘微妙의 법문이 있느니라. 문자를 세움이 없이 교외에 별전하고 마하가섭에게 부촉할 뿐이로다라고 있다.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도를 전함에 있어서 언어와 문자에 의한 교설을 배제하고 직접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심전심以心傳心).

     

    (3)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 공양중이고,

    -나한의 이름으로 번역하여 목과림木瓜林이라 함.

    -3가섭(우루빈나가섭·가야가섭·나제가섭)의 제일이다.

    -우루빈나는 중인도 가야성 부근의 지명이다. 그는 그 촌락의 사화외도事火外道의 수행자의 두목으로 부처님이 가야성에 가서 교화하심을 만나 제자 오백명을 거느리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사화외도事火外道 -에 일체의 것을 청정하게 하는 덕이 있다고 하여 불을 존중하고 이것에 공양하여 복을 구하는 종교지도자의 일파. 불을 섬기는 이교도.

     

    사분율32에 불전에 귀의한 오백제자의 외도 논사가 부처님을 독사굴로 인도하였으나 해칠 수 가 없었기에 두 아우와 제자들을 데리고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함.

    현응음의250에 조로빈나鳥盧頻螺는 여기서 목과림木瓜林이라 번역하는데 이 숲속에서 수행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지어 부른다. 가섭파迦葉波는 성으로 구역舊譯에는 우루빈라다. 정법화경에 상시 가섭은 형제 3인 가운데 맨 위에 있는 사람이다.

    현찬玄贊우루를 번역하여 목과木瓜인데 사람의 가슴에 한 융기가 있어 마치 목과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으며, 또 연못속의 용명龍名이 또한 목과인데 그를 따라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4)가야가섭伽耶迦葉 : 삼가섭.

    -번뇌를 항복 받고.

    -마갈타국 가야성 근처에서 태어나서 우루빈나가섭 나제가섭의 동생.

    -을 숭상하는 사화외도 이었으나 두 형을 이어 불교에 귀의하여 뛰어난 제자가 된 사람으로 25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부처님께 귀의.

    -가야伽耶는 번역하여 상성象城이라 함.

     

    (5)나제가섭那提迦葉 -삼가섭. 교화하는데 으뜸이고

    -가섭은 성, 나제는 강의 이름. 이 사람이 나제하那提가에서 도를 증득하였기 때문에 이같이 이름.

    -삼가섭의 두 번째 가섭. 형이 부처님께 귀의하자 250명의 제자와 함께 보두 불문에 귀의 함.

     

    (6)사리불舍利弗 -지혜제일

    -Sariputra사리푸트라·사리불다 라고도 쓰며 사리자舍利子·신자身子·추로자 등으로 번역. Sari·舍利는 어머니라는 뜻. putra··弗多(불다)는 불다라弗多羅 의 준말이여 아들·남자라는 뜻. 사리는 여자(어미의 이름이 사리)의 아들이므로 사리불舍利弗·사리자舍利子라 함.

     

    -마가다국 왕사성 밖의 나라촌에서 태어남. 처음에는 육사외도의 한 사람으로 사리사바 외도인 산사야에게 도를 배움. 스승과 사별한 후 부처님 제자 아설시(오비구의한 명마승비구馬勝比丘(석존의 맨 처음 제자, 위의가 단정하기로 유명) 사리불을 인도하여 부처님께 귀의케 함. 인연법(인연의 도리·연기·12인연의 가르침)을 듣고, 사리불은 목련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성문의제자 중에서 지혜제일知慧第一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법화문구사리불은 사리불라舍利弗羅의 준말이다. 이는 번역하여 신자身子라 하며, 또한 번역하여 사리가 주가 된다. 그 어머니는 여인 가운데 총명하고 총명이 안주眼珠(눈이 사리새를 닮아서)에 있으므로 주의 소생이 되어 주자株子라 하며, 또한 번역하여 신, 이는 여자의 몸이 묘형妙形이므로 신자身子라 한다.하였다.

     

    묘법연화경<방편품>의 개삼현일開三顯一의 법을 듣고, 개오開悟(깨달음을 여는 것)했다. 삼주三周의 성문중 법설주法設周의 성문에 해당된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 외도 등을 파절波切(부수어 끊는 것. 타파)하고 많은 승려를 귀의시켰다고 전해져 있으며, 석존보다 먼저입적. 걸안의 바라문.

    사리불,목련의 선불입멸先佛入滅 -사리불과 목련존자를 비롯한 모든 대중에게 부처님께서 3개월 후에 열반에 드시겠다고 말씀하자 이 말을 들은 두 제자는 차마 눈으로 세존의 입멸을 불 수 없다고 하여 부처님께 고한 뒤에 먼저 입적한 것을 말함. 8세 존사. 임금과 태자.

    사리불·목련의 각현신력覺賢神力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의 덕이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보다 수승하다는 것.

     

    (7)대목건련大目建連 : 신통제일. 육사외도.

    -대목건련·마하목건련摩訶目建連·목련좌면目連左面제자· 아난을 시자로 천거 함.

    목련좌면目連左面 -목련은 신통력이 제일이어서 부처님의 좌면左面의 제자이고, 사리불은 지혜제일이어서 부처님의 우면右面의 제자라고 함.

    본불행집경·증아함경등에 의하면 마가다국 왕사성 교외의 구리가 촌의 바라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사리불과 친교가 있었으며, 용자 단려하고 일체의 학문에 통달하고 있었으나 어느 때 환락에 취한 군중이 노닥거리는 꼴을 보고 멀리해서 버리고 떠남.

     

    -마음을 일으켜 출가를 결심하여 육사외도의 한사람인 산사야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다시 진실한 법을 구하고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함. 불교에 귀의한 뒤에는 여러 고장으로 다니면서 부처님의 교화를 펴다가 부처님께서 3개월 후에 입적하신다는 말씀을 하자 사리불과 함께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하였다.

     

    -우란분경에 의하면 신통력으로 망모亡母가 아귀도에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았으나 구할 수가 없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란분 공양을 하여 구했다고 하여 오늘날의 우란분회盂蘭盆會의 기원으로 되어있다.

    (8)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 논의제일.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서인도 아반제국의 사람. 어깨가 잘생겼다.

    -아반제국의 우단니성優襌尼城의 찰리종刹利種으로 국왕의 명을 받아 부처님을 맞이하고자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가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증과후證果後 귀국하여 국왕을 교화하다.

    -후세에는 법회에서 논의를 행하게 되었고 경문의 중요한 뜻을 의논하는 법식을 논의라 한다.

    논의論義 -경문經文의 요의要義를 문답問答·의논議論하는 것.

     

    증일아함경 잘 도리를 분별하여 불도를 부연敷衍(설명을 덧붙임)하는 점에서는 가전연이 그 중 으뜸이다.하였고 그 구체적인 모습은 장아함경에 잘 나타나 있다.

     

     

    (9)아나율阿那律·아나율타阿那律馱 : 천안제일.

    -부처님의 10대 제자중의 하나. 부처님의 종제從弟(사촌아우)가 되며 가비라성의 석씨이다. 아난과 함께 출가.

    현응음의26 감로반왕甘露飯王의 아들이며 부처님의 당제堂弟이다.

    천안天眼 -6신통 중의 천안통天眼通을 말한다.

     

    -부처님의 설법 중에 졸다가 꾸중을 듣고 부터 불면不眠(잠을 자지 않음)의 서원을 세우고 잠을 끊었기 때문에 눈병에 걸려 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원인을 낳아 결과를 얻게 하는)에 의해서 천안을 얻었다고 한다.

    능엄경5아나율이 출가하던 처음부터 수안睡眼을 탐하여 부처님이 그를 축생의 류라고 꾸짖자 꾸지람을 듣고 곧 7일 동안 잠자지 않아 마침내 실명했다는 고사故事.

    아함경3천안제일은 시방역十方域을 시하니 이른바 아나율 비구가 이 사람이다.

     

    현우경과거 불사불의 말법에 기근이 들었는데 당시 굶주린 벽지불에게 패반稗飯을 베푼 공덕에 의하여 91겁 동안 인천·천상계에 태어나서 과보를 얻어 가난을 모르고 소원은 모두 뜻대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패반稗飯 -논에 나는 피씨를 익혀 끼니로 먹는 음식. 피밥.

     

    (10)겁빈나劫賓那 : 하늘의 별을 잘 알았으며.

    -겁빈나는 번역해서 방수防宿·방성房星라 한다. 교사라국의 사람.

    방수防宿·방성房星 -하늘의 28수의 하나. 동쪽의 넷째 별리인 방에 빌어서 났다고 해서 방수防宿·방성房星이라 함.

     

    -천문天文 · 역수曆數에 능통하여 부처님 제자 가운데서 지성수知星宿 제일이라 일컬음.

    증일아함경내 불법 중에서 성수星宿·일월日月에 대해 잘 아는 것은 겁빈나 비구가 으뜸이다.

     

    -비구가 출가하여 부처님을 아직 뵙지 못했을 때, 처음으로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길을 떠났을 때, 비가 많이 와서 못가고 도사(승방僧房(房星·星宿))인 집에서 머물 때 부처님이 그의 근기가 깊은 것을 아시고 늙은 비구로 화현하여 함께 묵으면서 겁빈나가 방석자리를 부처님께 깔고 주무시게 했다. 그날 밤에 곧 법을 설해 주어 그로 하여금 도를 증득케 하여 법신을 뵐 수 있었다. 그 득도한 처소를 따라 이름을 삼았으므로 겁빈나라 했다는 설도 있다. 그 설법 내용은 아함경에 있다.

     

    (11)교범바제憍梵波提 : 해율解律제일.

    -교범바제를 우시·우왕牛王·우적牛跡이라 번역.

    무량수경에서는 우왕이라 일컫고 증일아함경에서는 우적이라 말했다. 과거 오백세에 걸쳐 일찍이 우왕 노릇을 한 바 있었다. 소가 무엇을 먹고 나면 되새김질하는 버릇이 있거니와 그 남은 보가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짝짝대고 항상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우시라 했다.

     

    -과거세에 기러기가 되었을 때 항상 꽃과 과일을 얻어 안왕雁王(기러기 왕)에게 공양한 공덕으로 금생에 나한의 후신이 되어 항상 천상에서 천왕의 공양을 받았다.

    증일아함경천상에 있기를 원하고 인간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 점에서는 우적牛跡 비구가 제일이다.

     

    -교범바제는 계율을 이해하는데 제일이다.

    지도론부처님이 입멸入滅하고 마하가섭이 삼장三藏을 결집하고자 말하되 비니법장毘尼法藏을 결집하는데 누가 능하냐 하니 장로長老 아니려두阿泥廬豆가 말하기를 사리불의 제자 교범바제가 비니법장을 잘 안다 하였다. 지금 그는 천상의 니리사수원尼利沙樹園에 머물고 있으니 시자를 보내어 청해 오라 했다. 가섭이 하좌비구下座比丘를 보내어 교범바제를 초청했다는 전설.

     

    (12)이바다離婆多 : 좌선제일.

    -나한羅漢의 이름으로 바르게는 힐례벌다頡隷伐多라 함.

    -실수室宿·성수星宿·가화합假和合이라고도 한다.

    28宿(동서남북 각각7) 가운데 북방칠성 중 여섯 번째인 실수室宿의 이름이며 별에 빌어서 낳은 아들이라는 뜻. 또 비를 피해 서원사원에 있다가 두 귀신이 송장을 서로 자기 것이라 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몸이 거짓으로 화합된 것인 줄 알고 부처님께 출가하였다고 함.

     

    법화문구이바다는 실수室宿·성수星宿·가화합假和合이라 함.

    현응음의6이바다는 번역하여 실수室宿이며 북방의 별에다 빌어서 아들을 얻어 별 이름을 붙인 것. 바른말은 힐례벌다이며 경중經中에 이바다는 와전된 것이다. 곧 수능엄경 중 좌선제일坐禪第一은 이바다 같다 함은 이 사람을 말한다.

    증일아함경3좌선으로 정에 들어가면 마음이 착란錯亂하지 않는다 함은 이왈비구離曰比丘를 말한다.

     

    (13)필능가바차畢陵伽婆蹉 : 열좌列坐속에서 고통을 잘 참았으며.

    -아라한으로 여습餘習이라 번역함. 수명은 160. 과거 5백세 동안 바라문으로 지내다 보니까 거만한 습성이 남아 있어 여습이라 함.

    여습餘習 -번뇌를 끊은 후에도 아직 몸에 남아 있는 습기. 부처님만이 여습을 끊을 수 있고 이승(성문·연각)의 무리는 이것을 끊을 수 없다. 습기라고도 함.

     

    -묘법연화경을 설할 때 회좌會座(부처님이 법을 설한 곳. 승려 등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 열좌列坐(줄지어 앉는 것)한 아라한의 한 사람으로 견혹·사혹을 단진斷盡한 성문.

    증일아함경수하樹下(나무아래)에서 괴로움을 무릎쓰고 좌선하여 비바람조차도 피하지 않는 점에서는 바차비구가 으뜸이다.

     

    지도론2장로 필능가바차가 항상 눈병을 앓았다. 이 사람이 걸식하려고 항상 항하강을 건너 다녔는데 항하강가에 가서 손가락을 튕기며 말하기를

    소비야(종년아) 머무르고 흐르지 말아라

    하면 물은 곧 두 곳으로 갈라져 건너가서 걸식하곤 하였다. 마침내 항하강의 신은 부처님을 찾아가 호소하니 부처님께서는 필릉가바차에게 참회하여 사과하도록 이르셨다. 그러자 필릉가바차는 두 손을 합치고 말했다.

    소비야(종년아) 화내지 마라 지금 너에게 사과한다.”

    하니 이때에 대중이 크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무슨 사과가 다시 꾸짖는가

    하였다. 부처님께서 항하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필릉가바차가 손을 모으고 사과하는 것을 보았느냐 사과는 오만이 아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악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오백세에 걸쳐 항상 바라문가에 태어나서 항상 고귀하여 다른 사람을 경천輕賤(마음으로부터 경멸하는 것)하였다. 본래 습관이 되어 입으로 말할 뿐이며 마음에는 교만이 없다. 이같은 모든 아라한은 비록 번뇌를 끊어도 여습이 남았다.”하였다.

     

    (14)박구라薄拘羅 : 장수제일

    -박구라는 나한羅漢의 이름이며 용모가 아리따우므로 선용善容이라 번역한다.

    -수명 160세 까지 생존 동안 병도 없고 중간에 요절夭折함도 없었으니 그에게는 5가지 죽지 않는 과보가 나타났다고 전한다.

    5가지 죽지 않는 과보 -계모가 어린 그를 불에 달군 쟁반과 가마 속에 넣은 일이 있고, 물속에 빠진 일이 있고, 물고기에 먹힌 일이 있고, 칼로 내리친 일이 있었으나 어느 경우에도 죽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법화문구2박구라는 번역하여 선용善容·대비성大肥盛이라 함. 색모色貌가 단정하므로 善容이라 한다.

    현응음의29박구라는 번역하여 善容. 하나를 죽이지 않는 계를 가지加持하면 다섯 번 죽지 않음을 얻는다.

    증일아함경과거세에 불살계不殺戒를 지킨 까닭에 91겁 동안 목숨이 중간에 요절되지 않았으며 과거세에 어떤 스님에게 아려륵과를 보시한 까닭으로 몸에 항상 병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박구라경나는 이 정법율 가운데서 도를 배운지 80년에 병든 일과 잠깐이라도 두통한 일이 없었으며 약을 먹거나 한조각 가리륵訶梨勒을 먹은 기억이 없다.

     

    -박구라는 몸을 고요하기를 바라 항상 한가한 곳에 거처하여 여러 사람 속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눈으로는 현·따위 빛깔을 보고자 바라지 않았으며, 귀로는 세속의 소리를 듣고자 바라지 않았으며, 코로는 세속의 냄새를 맡고자 바라지 않았으며, 혀로는 일찍이 사람들을 상대해 한 두 마디 말도 이야기하려 들지 않았으며, 마음은 늘 선정에 들어 산란함이 없었다. 심지어 죽은 다음의 그의 유골을 모신 사리탑까지도 고요한 것을 바랐다고 한다.

     

    증일아함경수명이 극히 길어 중간에 요절하지 않았으며, 항상 한가히 있기를 바라서 여러 사람 속에 거처하지 않는 점에서는 박구라가 으뜸이다.

    박구라경박구라가 이렇게 말했다. “제현諸賢이여 나는 80년 동안 결가부좌했고 일찌기 벽이나 나무에 기댄 일도 없다.”

    분별공덕론4아난이 박구라에게 왜 남을 위해 설법하지 않는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내가 변재와 지혜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고요함을 스스로 즐기고 시끄러움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15)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 :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하고

    -부처님의 10대 제자. 대슬大膝이라 번역하니 사리불의 외삼촌이다. 변재가 있어 능히 난문難問에 답하였다.

    -나면서부터 손톱이 길었으므로 장조범지長爪梵志라 불렀다.

    장조범비청문경長爪梵志請問經 -장조범지가 와서 부처님께 32상의 업인業因을 물었는데 부처님이 낱낱이 대답하시니 그가 믿고 좋아하여 8八戒를 받은 것을 기록한 것.

     

    -그는 본래 도리를 논할 때 마다 누이(사리불의 어머니)에게 이겼던 것이나, 누이가 임신한 다음부터는 논해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누이가 잉태한 아이의 슬기로움을 알아 (중략) 경 읽기를 쉬지 않으니 열중한 나머지 손톱을 깎을 틈도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장조범지라 불렀다. 드디어 배움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으나 장성한 조카가 부처님 제자가 된 것을 알고 부처님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변재를 패배함을 인정하고 마하구치라는 곧 머리를 떨구어 굴복해 법안정法眼淨을 얻었고 이때 사리불은 부처님을 부채질해드리고 있다가 외숙의 부처님과 논하는 것을 듣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증일아함경사변재四辯才를 얻어 논난論難하는 상대를 만나 능히 대답할 수 있는 점에서 볼 때 구치라가 으뜸이다.

     

    -또 남방의 천왕 비류복차毘留匐叉가 항상 찾아 시봉들었다 한다.

    (16)난타難陀 : ?

     

    (17)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 : 염희豔喜라 함.

    -석존의 배다른 동생으로 마하파사파제의 아들. 번역하여 염희豔喜라 함.

    -49일에 태어나 키가 커서 부처님보다 짧기가 사지四指의 길이였고 용모가 매우 뛰어나 모르는 사람들은 부처님 오신다고 수군댔다.

    -그의 아내 손타라의 아름다움에 빠져 출가를 싫어하므로 부처님이 방편으로 설화說化(천상의 즐거움과 지옥의 괴로운 모양을 보여 주어 그를 인도함.)하여 아라한과를 얻게 함.

     

    광택법화경소1손타라난타는 불의 소제小弟이다. 그가 속가에 있을 적의 부인의 이름은 손타라이다. 이제 그 부인의 이름을 들어서 표함으로서 이 사람이 소제小弟임을 알게 한 것이다.

     

    현찬1손타라난타는 번역하여 염희豔喜이니 손타라를 잘 못 쓴 것이다. 이란 처호妻號이니 미색美色이 단엄端嚴하여 비할 수 없는 것을 염이라 하며, 는 자명自名이다. 간전목우난타簡前牧牛難陀이므로 염희艶喜라 하며 염의 희이기 때문이다. 이는 의 친제親弟로 신장은 152이다. 이 본성本城에 이른지 이틀 만에 이를 제도하였다.

     

    (18)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 : 설법제일

    -10대 제자 가운데 설법을 제일 잘하는 아라한이다.

    -부루나는 만원滿願이라 번역하고, 미다라족彌多羅族 여자의 아들인 부루나라는 뜻.

    만원滿願 -아버지가 만강滿江에서 범천梵天에 기도해 자식 낳기를 바라다가 바로 강물의 차는[滿] 것을 만났고, 어머니는 자다가 칠보七寶의 그릇에 보배를 가득 담아가지고 아이가 어머니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들을 배었다. 이리하여 아버지의 소원이 찰 수 있었으니 온갖 소원이 이루어진 점을 쫒아 滿願이라 한 것이다.

     

    -국사이자 대부호바라문의 아들로 부처님과 생년월일이 같음. 용모 단정하고 총명하여 삼위타三韋陀등 제논諸論을 해석 해탈을 구하였다. 실달태자가 출성한 밤 붕우朋友30인과 함께 출가하여 고행정진苦行精進 마침내 사선오통四禪五通을 얻었음.

    -처음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증하고 뒤에 법화法華의 인연주因緣周의 설법을 듣고 소승에서 대승으로 회향하여 오백제자수기품에서 미래에 성불할 수기를 받고 호를 법명여래法明如來라 하였음.

     

    증일아함경우리 아버지 이름은 만滿자요, 우리 어머니 이름은 자니 그래서 여러 범행인梵行人들이 나를 불러 만자자滿慈子라 한다. 또 능히 널리 법을 설하여 진리의 뜻을 분별하니 滿願子비구가 바로 이 사람이다.

    묘법연화경<수기품>부처님이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이 부루나미다라니자를 보아라 내가 늘 그를 설법하는 사람 중에 최제일이라고 한다.

    묘법연화경<수기품>무량아승지겁을 지나 차토此土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니 호를 법명여래法明如來라 한다.

     

    (19)수보리須菩提 : 해공제일

    -십대제자의 하나. 사위성의 장자 구류의 아들. 부리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그 이름을 부리(Bhuti)라고 한다.

    -선현善現·선길善吉·선업善業 · 공생空生 등이라 번역함.

    -온갖 법이 공한 이치를 깨달은 첫째가는 이. 일명 순야다舜若多라 함은 그가 탄생할 때 창고, 상자, 기구 등이 텅 비었다는데서 유래함.

    증일아함경에 전기가 있음.

    -기원정사에서 석존을 만나 그 자리에서 제자가 됐다. 아라한과를 증득한 수보리는 공리空理에 능통하여 해공제일이라 일컬어졌다.

     

    묘법연화경<비유품>에서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비유를 듣고 개삼현일開三顯一의 요지了知영해領解하고 <신해품>에서는 장자궁자의 비유에 의하여 영해의 요지를 논술했다.

    영해領解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 회득會得하는 것을 말한다.

     

    묘법연화경<수기품>에서 명상여래名相如來라 수기를 받고 항상 허공에 거처하여 대중에게 설법한다고 했다. 이는 수승한 까닭에 허공에 거처함이요. 모든 현상은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는 의미에서 텅빈 허공에 거처함이요. 理法하기 때문에 體空觀이다.

     

    (20)아난阿難 : 다문제자

    -십대제자의 하나. 다문제일多聞第一로 그 총명이 놀라웠다.

    -부처님 성도하던 밤에 태어나 거듭되는 경사로 인해 환희라 이름 지어줌.

    -백반왕의 아들로서 부처님의 종제(사촌동생)이며 제바달다가 친형이다.

    -출가 후 수행하는데 미남인 탓에 여자의 유혹이 여러 번 있었으나 지조가 굳어 몸을 잘 보호하여 수행을 완성함.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어 부처님을 25년 동안 시봉하면서 일체불법을 수지함.

     

    -결집시 삼장三藏을 결집할 때 아난에게 경장經藏을 결집하도록 하였다.

    삼장을 결집할 때 -부처님 열반 후 결집시 아난존자는 그때 까지 아직 성과聖果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섭존자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사형師兄에게 법을 전하실 때 금란가사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신 것이 있습니까?”

    아난아

    문 밖에 찰우刹竽대를 꺾어버려라.”하였다. 그러나 아난은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간절히 생각한지 사흘 만에 크게 깨치고 나서 회의에 참석하여 경의 결집을 완성하였다. 그 후 가섭존자로부터 법을 받아 부법장 제2가 되었고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법을 전하였음. 부법장인 24.

     

    증일아함경나의 성문 가운데 제일비구는 때를 알고 사물에 밝으며 모든 것에 의심이 없고 기억한 바를 잊지 아니하며 다문多聞하고 잘 참고서 윗사람을 받드니 아난 비구이다.

     

    (21)라후라羅睺羅 : 밀행제일

    -십대제자의 하나. 밀행제일이다.

    -복장覆障 · 집월執月이라 함. 부처님의 적자嫡子이다.

    -탁배托胚한지 6년이 되어 석존께서 성도하던 날 밤에 태어남.

    -라후라라 함은 애물碍物이라는 뜻. 세존께서 출가하여 수도하려함에 아들을 낳자 수행에 방해가 된다 하여 이같이 이름하였다 고 함.

     

    -부처님이 성도 후 6년째에 가비라성에 돌아갔을 때 야수다라는 라후라를 시켜 부처님께 환희환을 바치게 하니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중속에서 곧바로 그것을 들고 부처님께로 가서 바치었다. 야수다라는 이로 인해 비방을 그치게 할 수 있었다. 무릇 그녀에게 쏠리던 비방은 아들이 있기 때문이었으니 그러므로 覆障이라 한 것이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있으면서 목련존자를 가비라성에 보내어 야수다라에게 라후라를 위해 사리불을 화상으로 또 목련존자를 교수사로 삼아 그를 제도하여 사미로 삼게 하니 그때 나이가 15세였다. 정반왕이 이에 연민을 느껴 동자 50인으로 하여 그 라후라를 따라 출가하게 하였다. 사리불을 따라 수행했으며 철저히 금계(250)를 수지하여 밀행을 행하였다.

     

    -후에 도를 지극히 닦아도 이루어지지 않자 부처님께 여쭈었다.

    너는 남을 위해 오음의 도리를 설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을 위해 설해주어라.”

    말씀대로 오음을 설해주고 나서 그래도 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너는 남에게 십이입, 십팔계를 설해준 일이 있느냐 설법은 득도의 문이니 도를 얻고자 할진대 남을 위해 법을 설하도록 하라.”

    이리해 라후라는 널리 법을 설하고 나서 그 후에 도를 얻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 覆障이다.

     

    묘법연화경<수학무학인기품>너는 미래세에서 성불하여 호를 도칠보화여래蹈七寶華如來라 할 것이다.

    (22)우바리優波離 : 지계제일

    -부처님의 십대제자중의 하나. 계율을 지키기로 제1인자.

    계를 엄하게 지킨 존자라 해서 지계持戒제일이라고 일컬어진다.

    -우바리는 번역하여 근취近取·근집近執이라고 한다. 나한의 이름으로 실달태자에게 집사執事하던 사람이다. 본행집경53<우바리인연품>

    -인도의 4계급 중 가장 천한 수트라 출신이며 그는 장성해서 석가족 궁중에서 이발사로 일했다. 부처님 성도 후 고향에 돌아오시어 법을 설하시자 석가족의 왕자들이 출가할 때 머리를 깎아주기 위해 부처님 계신데로 갔다. 거기서 모든 왕자들이 출가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출가하고 싶었으나 수트라출신의 천민으로 감히 생각지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것을 아시게 된 부처님께서 아누룻다에게 분부하시어 석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바리의 머리를 깎고 제자로 삼으시었다.

     

    -이는 부처님께서 주장하신 사성평등四性平等을 실천한 것이며 사성제도가 엄격한 당시로서는 큰 결단이며 인권의 선언으로 일대 사회개혁이다.

     

    -1결집시 율장은 주로 우바리가 되뇌어 결집을 하였다.

     

    다음으로 적게 알려진 사람을 열거컨대 학·무학無學이다.

    성자와 범부 사이에는 이해가 성립하지 않거니 또한 많이 알려지고 적게 알려짐을 분별할 일이 아니나 특히 높은 것을 바라고 먼 것을 사모하는 자(성불하기를 바라고 널리 남을 교화코자 하는 것.)는 많이 알려진 성자가 나서서 이끌며, 이름을 감추고 덕을 숨겨 겸손하는 자는 적게 알려진 성자가 나서서 이끌 따름이다. 많이 알려지고 적게 알려진 겉모양을 가지고 그 근본을 상실해서는 안된다.

     

    (1)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破堤 : 부처님의 이모·부처님의 .

    -대애도大愛道·대생주大生主라 번역. 마하부인의 아우로 석존의 이모이며 마야의 사후에 석존을 양육하고 후에 출가하여 불교교단 최초의 비구니가 됨.

    -마야부인이 석존을 낳고 7일 만에 죽었기 때문에 인도의 풍습에 따라 그 동생인 마하파사파제가 대신하여 정반왕의 비가 되어 석존을 키웠다. 그런 다음에 난타를 낳았다. 부처님 아버지 정반왕이 죽은 뒤에 출가를 결심하고 부처님을 3번 만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고 비로소 비구니가 되었다.

     

    묘법연화경<권지품>교담미橋曇彌가 미래에 성불하여 호를 일체중생희견여래一切衆生喜見如來라는 수기를 받았다.

    교담미橋曇彌 -인도 찰제리종족 가운데 한 성. 곧 교답마喬答摩의 여성. 명사로 석가종족의 일반 여자에 통하는 명칭 특히 석존의 이모인 마하파사파제를 일컬음.

    (2)야수다라耶輸多羅 : 부처님의 비.

    -야수다라耶輸多羅·야수타라耶輸陀羅·야술달라耶戌達羅. 번역하여 지칭持稱·구칭具稱이라 함. 구리성주 선각왕의 딸. 석존의 외사촌. 석존이 출가하기 전 실달다태자 때의 비.

    -태자 19세에 맞아 아들 라후라를 낳고 이모 마하파사파제와 5백 석가족의 여자들과 함께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다.

     

    묘법연화경<권지품>에 구족천만광상여래具足千萬光相如來라 수기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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