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차의 역사

2015. 5. 9. 18:05차 이야기

 

 

 

 

 

      

중국차의 역사 중국차 이야기

2008/09/0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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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의 역사


   중국차의 역사는 신화에 나오는 일화까지 감안한다면 약 5천여년에 달한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일상에서 빼놓을수 없는 7가지를 꼽아서 「개문칠건사(開門七件事)」라고 했습니다. 이안에는 땔나무, 쌀, 기름, 소금, 식초, 장 그리고 차가 들어갑니다. 이렇듯 그들 일상에는 늘 차가 있었고 그래서 이를 두고「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도 생겨날 정도로 차는 생활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기원전 27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신농씨(神農氏)에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는 설이 현재까지는 가장 일반적입니다.

신농은 중국 삼황( 三皇 ) : 고대 중국 전설속에 나오는 세임금) 중의 한명으로, 본초학의 시조이자 오늘날 한방약의 기초를 닦아 놓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에 72가지의 갖가지 풀과 나뭇잎을 직접 먹어 보며 약재를 연구하던 신농은 어느날 독초에 중독되었는데, 우연히 바람결에 날아온 나뭇잎 하나를 씹어 보았더니 해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차였다는것이다. 이처럼 오랜 옛날에 차는 음료가 아닌 약으로 이용되었고 마시는 방법도 지금처럼 물에 우리는 것이 아니라, 생잎을 씹어 복용하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차는 상류 계급에서부터 유행되기 시작하여 서서히 일반인들에게 보급되었다. 남북조 시대에는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는데, 정신을 맑게하기때문에 수행에 도움이 되었던차는 이때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 시대에 들어서 일상음료로 중국 전역에 전파되었습니다.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집필한 시기가 이 시기이며 이때 집에서 차를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차를 사고 마실 수 있는 전문 찻집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문자의 변화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차를 의미하는 글자로「도荼, 가檟, 설蔎, 명茗, 천荈」등이 사용되었으나, 이 시기 이후로는「차茶」자로 통일해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현재와 같은 중국의 주요 차산지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 사용했던 음다법은 지금과는 조금은 달랐습니다.

당나라 시대엔 녹차를 찌고 난후 굳혀서 만든 병차(餠茶)를 다연(茶硏)에 갈아 가루를 내어서 우려 마셨습니다.

송나라에 들어서며 차가 더욱 보편화되었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나 찻집이 생겼으며 술집에서도 차박사라하여 손님에게 차시중을 드는 사람을 두기까지 하였습니다.

차전매제도 실시되었으며 차가 국가 주요 재정수입의 25%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차(餠茶) 대신 단차(團茶)를 주로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몽골의 영향을 받았던 원나라에 이르자 차 역시 몽골화했습니다.

몽골인이 즐겼던 것처럼 차에 향신료나 버터를 넣고 마시는 방법이 보급되었습니다.

명나라에 들어서면서 지금과 같은 음다와 제다의 형태가 대중화되었으며 명태조 주원장이

산차(散茶)를 적극 권장하였고, 차를 찌는 대신 덖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제다법의 변화는
중국 각지에서 새로운 명차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다법이 바뀌자 음다법에서도 변화가 생겼으며 차를 끊이는 대신 우려마시기 시작했으며

음다법이 바뀌니 다구에도 다양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며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기존 다호(茶壺)보다 크기가 작은 자사호(紫沙壺)의 등장이었습니다.

한편 이무렵 중국의 차는 유럽으로도 수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나라때에는 지방도시에도 다관(茶館)이나 다루(茶樓)가 도처에 생기는 등 차문화가 크게

번성하게 되었으며 녹차에 이어 청차도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상류사회에서 차가 유행하면서 홍차와 무이암차, 동방미인

역시 다량으로 수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찻값으로 은(銀)을 지불하였는데,

워낙 수입량이 많아 막대한 양의 은이 유출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영국은 인도의 아편을 중국에

팔아 은을 회수하려 하였고 이러한 갈등이 깊어지면서 아편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청나라는 전쟁에 지면서 붕괴의 길을 걷게 되면서 차산업도 주춤하게 됩니다.

그러나 잠시 주춤했던 중국의 차산업은 20세기에 들어서 발전을 거듭하며 더욱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1950년 안휘성의 기문에 차실험 공장이 세워진 후 운남, 사천 등지에서도 차실험이 이어지면서 중국 차산업은 현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합니다.

1970년도부터는 학술단체를 중심으로 차 관련 과학 분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합니다.

1989년에 이르러서는 전국에 15개의 성급 차학회가 생겨났고, 차나무 품종 개량부터 제다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연구 성과는 다양하게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현대에 들어 다시 부활한 중국차는 전부의 지원과 더불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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