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5. 04:57ㆍ차 이야기
[[茶道이야기]] 다구도찬(茶具圖贊) 茶 道····· ◈ 綠茶향기 ◈
* 감히 차(茶)에 대한 글을 올려봅니다.
cafe.daum.net/ok002/hEH/1562 글사랑 차향기 동초 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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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구도찬(茶具圖贊)
다성(茶聖) 육우(陸羽 AD 733∼804)는 음다(飮茶)에 필요한 다구(茶具) 24기를 소개하면서, '24가지 기구 중에 한 가지만 빠뜨려도 차(茶)는 폐하게 된다.(二十四器厥一 卽茶廢矣)'고 말하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각각의 다기(茶器)가 가지는 특성에 따른 역할의 중요성과 일관성을 강조하며, '차 끓이는 것이 별천지를 자아내니 하나로서 24가지를 통섭한다(烹茶調弄別有天 一而統之二十四)'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그릇과 수저라는 도구가 필요하듯이, 차를 마실 때도 기구(茶具,茶器)가 있어야함은 당연함에도 이를 특별히 강조한 것은, 최상의 차(茶)를 마신다는 데에 목표를 두고, 각각의 기구가 가지는 개체의 특이성에 더해서 연관성을 가져야하며, 기구사이의 유기적인 긴밀함이 중요하고, 그것으로 이것저것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큰 틀을 이뤄야한다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육우이래로 차를 사랑했던 많은 다인(茶人) 중에, 다구에 남다른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남송(南宋)시대에 심안노인(審安老人)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구 12점을 삽화까지 그려 넣은 다서(茶書)를 짓고 《다구도찬(茶具圖贊)》이라 이름 하였습니다.
《다구도찬(茶具圖贊)》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 사지기(四之器)》의 '그릇에 도를 담는다.'는 정신을 근원(根源)으로 삼았으며, 당시에 성행하였던 점다법(點茶法=말차내기)에 근거해 12점의 다구를 성격에 따라 십이선생(十二先生)으로 의인화하고 그에 걸맞은 관직은 물론이고, 성명(姓名), 자(字), 호(號)를 명기하는 등, 다구의 의미를 활탈(活脫)하게 설명하여, 크게 흥미를 끌뿐만 아니라, 실물을 눈앞에서 보는듯합니다.
《다구도찬(茶具圖贊)》은 팽(烹), 음(飮)에 사용되는 용기에 관한 대표적 자료로서 당시의 주된 팽다, 음다의 다구 12종류를 설명과 함께 그 모양을 그려놓은 귀중한 문헌입니다.
참고로, 《다경(茶經) 사지기(四之器)》는 모두 '8류 24종'의 다구(茶具)를 설명하고 있고, 《다구도찬(茶具圖贊)》에서는 '8류 12종'을 다루고 있습니다. 육우의 자차법(煮茶法)은 미립자 형태의 분말차를 물과 함께 솥에 넣고 끓인 후에 분작(分酌)하여 마시는 것으로, 그 용도에 따랐으며, 큰 틀에서 기구를 다뤘고, 심안노인은 송대(宋代)에 들어와 완성되고 성행하였던 점다법(點茶法=말차내기)에 근거한 기구를 다뤘으며, 이는 차를 갈아 가루로 만들어 다완(多碗)에 넣고 풀처럼 갠 다음 끓인 물을 부어 차선으로 흔들어 마시는 방법에 쓰이는 기구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두 방법이 가지는 독특한 필요성에 의해 취급했던 기구의 종류는, 활용가치에 따른 중요성과 효용성에 의해, 차이가 있음으로 24기가 채워지지 않았더라도, 그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다구(茶具) 십이선생(十二先生)
* 불 피우는 도구
위홍로(韋鴻矑):即茶焙籠 즉, 다배롱
성명=문정(文鼎), 자=경양(景暘), 호=사창한수(四窓閑叟).
(차를 보관하는 대나무로 짜서 만든 차배로(茶焙爐)를 완문(玩文)으로 말함): 찬(贊)하여 이르기를 축융(祝融)이 하(夏)나라를 맡자 천지의 만물이 타서 녹아버렸다. 불이 곤강(昆岡)을 태우니, 옥과 돌이 모두 탔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으니, 이에 만약 산과 골짜기의 꽃다운 생명들을 심한 고통에 빠뜨린다면, 어찌 그대를 힘이 있다고 하겠는가? 상경(上卿)이라고 부르는 명칭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祝融司夏, 萬物焦爍, 火焰昆岡, 玉石俱焚. 爾無與焉, 乃若不使山谷之英墮于塗炭, 子與有力矣. 上卿之號, 頗者微稱.
*찬(贊)은 풍로를 의인화 하여 화신 축융을 대상으로 한 기도의 뜻이 담겨있다.
*위(韋)는 무두질해 털을 뽑은 가죽인데 종이가 나오기 전에 푸른색 대(竹) 조각으로 엮어 죽간(竹簡)을 만들어 기록했다. 아마 차배로(茶焙爐)는 대로 짜지 않고 단지 이를 엮어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홍로(鴻矑)는 아침 제사를 올릴 때에 쓰는 제례용 그릇. 진(秦)나라와 한초(漢初)에 전객(典客)이라 칭하던 관직을 한무제(漢武帝)때 개칭하였다. 조정의 경축이나 근조를 도와 인도하고 상례(相禮)를 맡았다.
*문정(文鼎)은 차 끓이는 화로.
*사창한수(四窓閑叟)는 차 끓이는 화로에 4개의 창이 있음을 말하는 것. 이것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 사지기(四之器)》에 '풍로는…그 세발사이에 세 개의 창을 내고 밑바닥에 하나의 창을 낸다. 바람이 통하고 재가 떨어지게 함이다.'라는 것에 근원을 두었다.
*축융(祝融,火正)은 여름을 맡은 불의 신.
*곤강(昆岡)은 중국 서쪽의 옥(玉)이 나기로 유명한 산.
*화염곤강 옥석구분(火焰昆岡 玉石俱焚)=우(虞), 하(夏), 상(商), 주(周)시대의 역사적 내용을 기록한 《상서(尚書,書經)》에 나오는 말로 '옥과 돌이 함께 타다.'의 뜻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망한다는 것으로,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함께 난(亂)을 만나게 되면, 착하고 악함에 관계없이 해(害)를 입을 수 있음을 말함.《尚書 胤征篇》『火焰昆岡 玉石俱焚… : 불이 곤강(昆岡)을 태우니, 옥과 돌이 모두 탄다. 임금이 덕을 놓치면 사나운 불길보다도 격렬하다. 그 우두머리 괴수는 죽이고, 협박에 못 이겨 복종한 사람들은 벌하지 않을 것이다. 옛날에 물들어 더러워진 풍속은 오직 새롭게 하리라.』『惟仲康肇位四海. 胤侯命掌六師. 羲和廢厥職,酒荒于厥邑,胤後承王命徂征,告于眾曰: "嗟予有眾,聖有謨訓,明徵定保. 先王克謹天戒,臣人克有常憲. 百官修輔,厥後惟明明. 每歲孟春,遒人以木鐸徇于路. 官師相規,工執藝事以諫. 其或不恭,邦有常刑. 惟時羲和,顛覆厥德,沈亂于酒,畔官離次,俶擾天紀,遐棄厥司. 乃季秋月朔,辰弗集于房. 瞽奏鼓,嗇夫馳,庶人走. 羲和尸厥官,罔聞知. 昏迷于天象,以干先王之誅. 政典曰:'先時者殺無赦,不及時者殺無赦.' 今予以爾有眾,奉將天罰. 爾眾士同力王室,尚弼予,欽承天子威命,火炎昆岡,玉石俱焚,天吏逸德,烈于猛火. 殲厥渠魁,脅從罔治,舊染污俗,咸與惟新.嗚呼!威克厥愛允濟,愛克厥威允罔功. 其爾眾士懋戒哉!"』
* 차 끓이는 도구
탕제점(湯提點)即水注 즉, 수주
성명=발신(發新), 자=일명(一鳴), 호=온곡유로(溫谷遺老).
(탕병湯餠): 찬(贊)을 지어 말하기를 호연지기를 기르고, 물 끓는 소리를 낸다. 중(中)을 잡는 능력으로 성탕의 덕을 도와 손님과 주인의 사이에서 잔을 주고받으며 서로 형제가 되게 하는 공을 세운다. 그러나 끝끝내 밖으로는 불이 붙고 안으로는 뜨거워 익게 되는 우환을 면치 못하니 이 어찌된 연고인고? 養浩然之氣, 發沸騰之聲, 以執中之能, 輔成湯之德, 斟酌賓圭間, 功邁仲叔圍. 然末免外爍之怵, 復有內熱之患, 奈何?
*성이 탕(湯)인 것은 '끓는 물'을 말한다.
*제점(提點)은 송대(宋代)에 각 지방에 두어 사법을 관장했던 기관. 제점은 '들고 점검한다.'는 뜻으로, 맑은 탕병의 용도를 빌어 점다(點茶)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발신(發新)=차의 색깔이 드러난다는 말.*일명(一鳴)=그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형용한 말.
*온곡유로(溫谷遺老)=따뜻한 골짜기에 늙음을 버린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孟子 公孫丑篇》에 맹자와 그의 제자 공손추사이의 문답 중에 나오며, '아무런 사물에도 구애됨이 없이 넓고 풍부한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성탕(成湯)은 이름이 이(履), 천을(天乙), 태을(太乙)이고, 탕은 자(字)이다. 하(夏, BC 22∼19/18세기)를 멸망시키고 상(商=殷, BC 18∼12세기)을 세웠다. 중국 상고(上古)시대 삼황(三皇)의 하나로 불리는 황제(黃帝)헌원씨(軒轅氏)의 후예로 하의 제후(諸侯)였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시조 설(契)의 14세에 해당한다. 당시 하(夏)왕조의 걸왕(桀王)이 학정을 하였으므로, 제후들의 대부분이 유덕(有德)한 성탕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걸왕은 성탕을 하대(夏臺)에 유폐하여 죽이려 하였으나, 재화와 교환하여 용서하였다. 이후 탕왕(湯王)은 현상(賢相), 이윤(伊尹) 등의 도움을 받아 걸왕을 명조(鳴條)에서 격파하여 패사(敗死)시켰다. 그리고 박(亳)에 도읍하여 국호를 상(商)이라 정하였다.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고 13년간 재위하였다. 그가 걸왕을 멸한 행위는 유교에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토벌한 은주혁명(殷周革命)과 함께 방벌(放伐=易世革命)로서 '올바른 혁명의 군사행동'이라 불리고 있다. 《서경(書經) 탕서편(湯誓篇)》은 그때의 군령(軍令)이라 전해진다. 탕왕은 '내가 걸(桀)을 멸하려는 것은 천명(天命)에 의한 것이다.'고 만천하에 선언하고, 주벌(誅伐)에 나섰다. 천명에 의한다는 의미는 덕(德)을 갖춤으로서 천명을 얻는 것이나, 덕을 잃었으니 천명도 옮겨졌다는 논리다.
재미난 일화는 불의 신이며 여름 신인 축융(祝融)까지 탕왕을 도와주었다. 탕왕의 군대가 하(夏)의 도성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이다. 하늘이 탕왕에게 계시를 주었는데, 하나라는 이제 그 덕(德)이 다 되었으므로 불의 신인 축융을 보내 이기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이윽고 축융이 성의 한쪽에 불을 내니 탕왕의 군대는 틈을 놓치지 않고 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걸왕은 남소(南巢)까지 도망가 그곳에서 최후를 마치니 우왕(禹王)으로부터 시작된 하왕조(夏王朝)는 멸망하였다. -위홍로(韋鴻矑)에 '축융(祝融)이 하(夏)나라를 맡자, 천지의 만물이 타서 녹아버렸다.(祝融司夏, 萬物焦爍.)'는 말은 그 때의 일을 상기한 것이다.
* 차를 빻는 도구
목대제(木待制)即茶槌 즉, 다퇴
성명=이제(利濟), 자=망기(忘機), 호=격죽거인(隔竹居人).
(떡차를 으깨는 다듬잇돌과 방망이): 찬(贊)하여 이르기를 위로 뭍 별자리에 응하여 아래로 만백성을 제도한다. 성정이 강직하고 꺾이어도 굽히지 않아 모난 것을 따르고 둥근 것을 버리는 무리들로 하여금 그 몸을 보존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좋은 게 좋다고, 법조((法曹=연자)를 보좌하지 못하고 추밀(樞密=체)을 자뢰(資賴=밑천으로 삼음)하지 못하면 또한 능히 그 공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上應列宿, 萬民以濟, 秉性剛直, 墔折强硬, 使隨方逐圓之徒不能保其身. 善則善矣, 然非佐以法曹, 資之樞密, 亦莫能成厥功.*성이 목(木)씨 인 것은 재질이 나무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대제(待制)는 당태종(唐太宗)때 서울의 오품이상 관리에게 중서성과 문하성 두 성에 윤번으로 당직하게해서 사람들의 방문을 대비하게 했으며 송(宋)에 이르러 용도각대제(龍圖閣待制), 천장각대제(天章閣待制)등으로 각 전각에 모두 대제의 관리를 두어 문물을 전수(典守)케 하였다.
*위로 별자리(列宿)에 응한다는 것은, 방망이로 맞으면 불이 번쩍한다는 것을 두고 말해 백성에 대한 일처리를 빗대 말하는 것인 듯하다. 《史記 天官書》에도 '하늘에는 열수(列宿)가 있고, 땅위에는 주역(州域)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고대의 경세제민(經世濟民)에는 별자리와의 관계를 중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금법조(金法曹)即茶碾 즉, 다연
성명=연고(硏古)/역고(轢古), 자=원개(元鍇)/중견(仲鋻), 호=옹지구민(雍之舊民)/ 화금선생(和琴先生).
(연륜을 세워 굴려 구시통으로 길게 우묵한 연반(碾盤) 안에서 반환하며 바퀴 날로 가는 금속제 차 연자. 찻잎을 으깨 가루를 내는 약연): 찬(贊)하여 이르기를 부드러우나 기죽지 않고, 강건하나 드러내 보이지 않으며, 둥근 기계를 운용하여 하나같이 모두 법도가 있어서, 강하고 질긴 것들로 하여금 궤도를 어기거나 바퀴자국을 벗어나지 않게 하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柔亦不茹, 剛亦不吐, 圓機運用, 一皆有法, 使强硬者不得殊軌亂轍, 豈不韙歟?
*성이 금(金)씨 인 것은 금속류로 만들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법조(法曹)는 당송대(唐宋代)에 형옥과 송사를 맡은 지방에 설치한 기관명.
*약연(藥硏)은 배 모양에 가운데 홈이 파인 기구로 한방에서 덩어리로 된 약을 부숴 가루를 만드는데 쓰인다. 단단한 나무나 돌 또는 쇠에 도끼자국 모양으로 홈을 파서 만들었다. 연발(碾鉢)이라고도 한다. 약연 안에 약재(藥材)를 넣고 갈 때는 연알로 눌러 부순다. 연알은 바퀴모양의 쇠바퀴로 대략의 크기는 지름은 9.5cm, 가장 두터운 곳의 너비가 1.6cm정도 된다.
석전운(石轉運)即茶磨 즉, 다마
성명=착치(鑿齒), 자=천행(遄行), 호=향옥은군(香屋隱君).
(돌로 된 차마(茶磨), 그림에는 선전식(旋轉式)의 두부콩 가는 맷돌. 마(磨)의 뜻은 절구, 연자는 물론이고 갈고 으깨는 통칭이다): 찬(贊)하여 이르기를 굳건한 바탕을 안고 곧은 마음을 품고 있으며 영화(英華)를 씹으며 행실을 두루 하여 게으름이 없다. 산에서 따는 이로움을 알선하고 조권(漕權)의 권한을 맡아서 스스로 순환하여 바른 자세로 타인에게로 나아가니 비록 죽을 때까지 행하더라도 원망의 말을 듣지 않으리라. 浦堅質, 懷直心, 噉嚅英華, 周行不怠. 榦摘山之利, 操漕權之重, 循環自常, 不舍正而適也, 雖沒齒無怨言.
*성이 석(石)씨 인 것은 차맷돌이 돌로 되었음을 말한다.
*전운(轉運)은 전운사를 말하는 것으로 남송에 와서는 조사(漕使)라 했으며 조세를 독촉 징수하고 금전과 양식의 출납을 맡아 위에 바치고 조운하는 등의 권한을 맡았다. 송초(宋初)에는 군수품을 이바지하는 것을 맡았으나, 태종(太宗)이후에는 전운사의 업무가 점차 각 지방장관에게 이관되면서 각 고을의 관리를 감찰하고 관리의 위법과 민폐정황을 조정에 보고하게 되었다.
*향옥은군(香屋隱君)은 차를 갈아 차향 가득한 누옥에 은거함을 뜻함.
종종사(宗從事)即茶刷 즉, 다쇄
성명=자불(子弗), 자=불유(不遺), 호=소운계우(掃雲溪友).
(종려나무로 꼰 새끼로 맨 빗자루 또는 가루털개): 찬(贊)하여 이르기를 공문(孔門)의 학식 높은 제자들도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사람들을 응대하는 일을 당하여 이런 것들을 일의 말류라고는 하나 또한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물며 이미 흩어진 것들을 모으고, 버려진 것들을 수습하여 한 마디 터럭을 움직여서 온갖 티끌을 날리지 않게 하니 그 공이 또한 훌륭하도다. 孔門高弟, 當泄掃應對, 事之末者, 亦所不秉, 又况能萃其旣散, 拾其已遺, 運寸毫而使邊塵不飛, 功亦善哉.
*성이 종(宗)인 것은 종려나무 종(棕)자와 비슷한 음이며, 차 빗자루를 종려나무의 갈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종사(宗事)는 한(漢)의 제도에 주(州)의 자사를 돕는 관리로 별가, 치중, 주부, 공조 등을 모두 종사사라 일컬었으며, 위진(魏晋) 이후 모두 주(州)에서 스스로 임면했다. 송대(宋代)에 폐했다.
*자불(子弗)의 자(子)는 미칭이요, 불(弗)은 곧 먼지 털 불(拂)자와 어울리는 글자다.
*호를 소운(掃雲)이라고 한 것은 찻가루를 턴다는 뜻이다. 송대(宋代)에는 차가 흰 것(백차白茶)을 좋아했기 때문에 구름 운(雲)자에 비유한 것이다.
* 차의 양을 재는 도구
라추밀(羅樞密)即羅合 즉 라합
성명=약약(若藥), 자=전사(傳師), 호=사은료장(思隱寮長).
(말차가루를 곱게 치는 체): 찬(贊)하여 이르기를 기계를 다루는 일은 치밀하지 않으면 해를 입는다. 지금 높은 것은 억제하고, 낮은 것은 드높여, 정밀하고 조잡한 것이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어려워한다. 어찌 세밀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시끌벅적한 것을 섬기는가? 애석하도다. 機事不密則害成, 今高者抑之, 下者揚之, 人其難諸. 奈何矜細行而事喧? 惜之.
*성이 라(羅)인 것은 체의 그물이 촘촘한 비단으로 만든 것을 뜻한다.
*추밀(樞密)은 송(宋)대 최고 군사기관으로 기밀명령의 출납 등을 맡아 중서성과 함께 군정의 큰 권한을 나누어 맡았다.
* 물 뜨는 도구
호원외(胡員外)即瓢杓 즉, 표표
성명=유일(惟一), 자=종저(宗杵), 호=저월선옹(貯月仙翁).
(조롱박으로 만든 물바가지): 찬(贊)하여 이르기를 내면의 법도에 두루 하면서도 그 한가로움을 잃지 않는다. 움직이고 고요한데에 한 결 같이 법도가 있어서 그 성정이 탁연하다. 맺혀있는 근심을 능히 모두 부술 수 있다. 비록 가운데가 비었으나 밖으로는 능히 그 기능이 다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정미함에 있어서는 원만한 선비의 바람에 다소 부족함이 있다. 周旋中規而不逾其閑, 動靜有常而性苦其卓. 都結之患悉能破之, 雖中無所有而外能硏究, 其精微不足以望圓機之士.
*성을 호(胡)로 한 것은 호리병 호(葫)자와 그 음이 같으며 조롱박(葫藘)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원외(員外)는 원외랑(員外郞)으로서 정관 이외의 관원으로 육조시대부터 원외랑이 있어 낭중과 구별되었으며 돈으로 살수도 있었다. 원외는 밖이 둥글다(外圓)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이 그릇의 외형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호원외(胡員外)는 《茶經》의 표주박(瓢)을 말한다.
*저월선옹(貯月仙翁)=달을 긷는 신선이란 뜻이며, 소식(蘇軾)의 詩 '大瓢貯月歸春瓮, 小勺分江入夜甁.'에서 연유.
* 차 달이는 도구
축부수(竺副帥)即茶筅 즉, 다선
성명=선조(善調), 자=희점(希點), 호=설도공자(雪濤公子).(죽선)
수양산에 굶주린 사내(백이∙숙제)가 있어 의연히 군대(周武王의 상商=殷 토벌군, 殷周革命)와 맞설 때 바야흐로 금 솥에 물 끓어올랐으나 능히 그 끓는 물 더듬는 자 드물었다. 그대의 청절이 홀로 자신을 시험하니 어려움에 임하여 그대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사람 없도다. 首陽餓夫, 毅諫于兵沸之時, 方金鼎揚湯, 能探其沸者幾稀. 子之淸節, 獨以身試, 非臨難不願者疇見爾.
*성을 축(竺)으로 한 것은 차선을 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수(副帥)는 송(宋)대 무관(武官)의 하나. 이것은 잔이 아닌 솥에 말차를 삶음으로 차솔에 넣어 젓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선조(善調)는 물건의 기능.
*희점(希點)은 '탕을 저어 점을 일으키는(湯提点)' 일에 종사함을 말함.
*설도공자(雪濤公子)=눈같이 흰 파도와 같은 공자. 설도(雪濤)는 차선이 차탕을 격불(擊拂=휘젓기)하여 무노리(거품)를 일으키는 모습의 비유.《다신전(茶神傳) 색(色 : 차의 빛깔)篇》에서 설도(雪濤)에 대해 말하고 있다.《茶神傳 色篇》『차는 맑고 푸르른 것이 가장 좋고, 무노리는 여린 쪽빛에 하얀 빛이 도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며, 누렇고(黃), 검고(黑), 붉고(紅), 어두운(昏) 빛깔은 품위가 낮아서 차의 품격에는 들지 못한다. 찻잔에 하얀 구름과 같은 무노리가 떠오르는 것이 위이고, 파르스름한 무노리는 중간이며, 누르스름한 무노리는 아래이다. 깨끗한 샘물을 활활 타는 불로 차를 달이니 현묘(玄妙)한 공교(工巧)요, 좋은 차에 잘 저은 무노리(雪濤)를 내어 잔에 받아내니 절묘한 기예(絶技)이다.』『茶以淸翠爲勝, 濤以藍白爲佳, 黃黑紅昏俱不入品. 雪濤爲上, 翠濤爲中, 黃濤爲下. 新泉活火煮茗玄工, 玉茗氷濤當杯絶枝.』
*《사기(史記) 伯夷列傳》에 백이(伯夷)에 대한 고사(故事)가 쓰여 있다. 『-전략- 전(傳)하는 바에 의하면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는 아우인 숙제를 후사(後嗣)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아버지가 죽게 되자 숙제는 형 백이에게 양위하려고 했다. 그러자 백이는 "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아버님의 명이다." 하고 끝내 국외로 도망가 버렸다. 숙제도 또한 제위에 오르기를 즐겨하지 않아 도망해 버렸으므로 고죽국 사람들은 중자(中子)를 군주로 세웠다. 그 후 백이, 숙제는 서백창(西伯昌, 후에 周의 文王)이 노인을 따뜻하게 대한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의탁하려 하였으나 막상 이르고 보니 그는 이미 죽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부왕(父王)의 목주(木主)를 받들어 문왕(文王)이라 칭하고 동쪽 은(殷)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려 하였다. 백이,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들고 간(諫)하였다. "부왕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전쟁을 하려고 하니 이 어찌 효(孝)라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의 몸으로 군주를 시살(弑殺)하려고 하는데, 이 어찌 인(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무왕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이 이 두 사람을 베려고 하였으나 태공망(太空望)이 이를 말리고 그들을 부축하여 데려 가게 하였다. 무왕이 은을 평정하니 천하의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주(周)의 녹봉을 먹으려 하지 않았으며, 수양산(首陽山)에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캐 먹으며 연명하다가 끝내 굶어 죽었다. -후략-』*은주혁명(殷周革命) : 제후였던 주(周) 무왕(武王)이 발병(發兵)하여 은(殷)을 멸망시킨 사실(史實)로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있다.<관련부분 요약>『11년 12월 무오일(戊午日)에 대군을 거느리고 맹진(盟津: 지금의 하남성 맹현(孟縣) 남쪽)에서 황하를 건너 상(商=殷)나라 도성 남쪽에 있는 목야(牧野,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지현부근이라고 추정)까지 진군하였다. 은(殷)의 주왕(紂王)은 군사 70만으로 대적하였으나 목야에서 크게 패하였다. 주왕은 불 속에 빠져 자살하고, 은왕조(殷王朝)는 멸망하였다.』
* 차 마시는 그릇
칠조비각(漆彫秘閣)即盞托 즉, 잔탁
성명=승지(承之), 자=역지(易持). 호=고대노인(古臺老人).
(칠하고 새긴 나무로 된 잔탁盞托): 찬(贊)에 이르기를 위태로워도 붙들어 주지 않고, 엎어져도 부축해주지 않는다하면 나는 이런 것을 믿지 못한다. 활 끝을 잡는 뜨거운 우환이 있어도 오목한 집의 뚜껑이 없으니, 의당히 보배로운 글을 도와 군자에 친근함이라.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吾斯之未能信. 以其弭執熱之患, 無坳堂之覆, 故宜輔以寶文而親近君子.
*복성(復姓)이 '칠조(漆彫)'인 것은 외형의 아름다움을 형용한 말.
*칠조비각(漆彫秘閣)=검은 독수리가 사는 신비한 누각
*역지(易持)=하늘을 담고 있다
*고대노인(古臺老人)=옛 누마루 높은 곳에 앉은 노인
*비각(秘閣)의 원래 의미는 군주의 장서를 보관하는 곳. 비관(秘館), 비부라고도 불렀다. 송대에 직비각(直秘閣)이란 관직을 두었다.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의 첫장에 '危而不持…'과 같은 뜻의 글이 나온다. 여기에서 공자는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계씨의 전횡을 비판하면서, 그 무단 침략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염유와 계로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하된 자는 목숨을 걸고라도 잘못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문장 가운데 나오는 비유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범이나 외뿔소가 우리를 뛰쳐나와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면, 그것은 범이나 외뿔소의 책임이 아니라 당연히 우리를 관리하는 자의 잘못이기 때문이다.《論語 季氏篇》『危而不持 顚而不扶… : 위태로워도 붙들어 주지 않고, 엎어져도 부축해주지 않는다하면, 그러한 사람을 어디다 쓰겠느냐? 그리고 또한 네 말도 잘못이다. 범이나 외뿔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귀갑(龜甲)이나 옥(玉)이 궤 안에서 깨졌다면 이는 누구의 잘못이냐?』『季氏將伐顓臾. 冉有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夫顓臾, 昔者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爲.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皆不欲也. 孔子曰, 求, 周任有言, 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 且爾言過矣. 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도보문(陶寶文)即茶盞 즉, 다잔
성명=거월(去越), 자=자후(自厚), 호=토원상객(兎園上客).
(토끼털무늬 흑유도자기 찻종지): 찬(贊)하여 말하기를 강의 모래톱에서 나왔으나 아무런 고통과 이지러짐이 없다. 씨줄과 날줄의 상징이요, 강유의 이치를 지니고 있다. 포대기 가운데 싸였어도 자신을 비워 타물을 기다린다. 외모를 꾸미지 않고, 그 지위가 비각(秘閣)보다 높으니 마땅히 부끄러움이 없도다. 出河濱而無苦窳, 經緯之象, 剛柔之理, 炳其繃中, 虛己待物, 不飾外貌, 位高秘閣, 宜無愧焉.
*성이 도(陶)이니 당연히 그 재질이 도자기이다.
*보문(寶文)의 문(文)자는 무늬 문(紋)자와 통하며, 그릇에 무늬가 새겨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아무런 고통과 이지러짐(苦窳)은 조잡하고 열등하다는 뜻.
*그림에는 흑유잔(黑釉盞)의 토끼털무늬가 세로로 촘촘히 그려져 있다. 보문각은 송조(宋朝) 인종(仁宗)의 어필과 문집 등을 간직해 학사, 직학사, 대제 등을 두었다.
*다잔(茶盞)은 청흑(靑黑)의 고운 토끼털 무늬가 뻗친 것을 가장 높게 평가했는데, 이는 당시 백차(白茶)를 선호하였으므로 이 차의 색을 가장 잘 받쳐주기 때문이다. 《다서와 송대 차문화, 論: 徐銀美(경성대)》
*토원(兎園)=양원(梁苑)이라고도 하며, 한(漢) 문제(文帝)의 넷째 아들인 양효왕(梁孝王)이 만든 별장으로, 특히 정원이 아름다워 많은 빈객들이 그곳에서 즐겼다고 전한다. 현재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에 잔재가 남아 있다. 이 정원은 대단히 호화스럽게 꾸며, 각양각색의 누각이 즐비했고, 호수와 기암괴석, 꽃과 나무가 가득 차 있었고, 짐승까지 놓아길렀다고 전해진다. 경치가 매우 빼어나고 아늑하여 달콤한 휴식이 가능했음으로, 당시의 문사들이 꼭 한 번 묵고 싶어 하는 동경의 장소였다. 사마상여(司馬相如), 매승(枚乘)과 같은 문사들과 함께 화려한 회음(會飮)을 자주 열었으며, 한나라 초기 문화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 청결 도구
사직방(司職方)即茶巾 즉, 다건
성명=성식(成式), 자=여소(如素), 호=결재거사(潔齋居士).
(흰 차수건을 완문(玩文)으로 말한 것): 찬(贊)하여 말하기를 호향(互鄕)의 아들도 성인(公子)이 오히려 그 나아가는데 받아줬다. 하물며 단방하고 질소하며, 경위에 도리를 지니며, 종신토록 진흙에 빠져있으나 물들지 않는 자에 있어서이랴. 이는 공자께서도 더불어 깨끗하고자 할 바이니라. 互鄕之子, 聖人猶且與其進, 況端方質素, 涇渭有理, 終身涅而不緇者, 此公子之所以與潔也.
*성이 사(司)인 것은 사(絲)와 통하는 음이며, 그의 질료(質料)가 사직물(絲織物)이기 때문이다.
*사직방(司職方)은 송대(宋代) 상서성 소속의 사사의 하나로 초기에는 여러 주에서 바친 윤년도와 도경을 관장하고 또 화공에게 여러 고을그림을 모아 전국총지도를 그리게 명해 이로 천하 산천의 험요를 두루 알게 했다.
*결재거사(潔齋居士)=청결하게 하는 용구를 의미.
*논어에 상대 못할 인간들이 사는 동네로 알려진 호향의 아들이 배우러 오니 공자가 받아줬다는 것이 있고, 공자가 좋지 못한 평판이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려는 것을 자로가 못마땅해 하자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희다 않겠느냐 라고 했다는 것.《論語 述而篇》『호향의 사람들은 더불어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인데, 그곳 출신 아이를 공자께서 만나 주셨다. 제자가 의아스러워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침을 받으러 자진해서 나를 찾아온 그 마음을 받아들일 뿐 그가 물러가서 무엇을 하는 것까지 관여할 것은 없다. 굳이 그 아이에게만 심하게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누구든지 자신을 비우고 찾아오면 그 깨끗함을 받아들일 뿐 그 사람의 과거에 무엇을 했던 지나간 일에까지는 힘이 미치지 못한다.』『互鄕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子曰,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人潔己以進, 與其潔也, 不保其往也.』
함순(咸淳) 기사년(AD 1269) 오월 하지 뒤 오일 심안노인 서(書).
우석대학교 평생교육원 다도모임 에 올려진 자료에
그림을 덧붙여서 만든 글입니다.
원글의 출처는 아래입니다. 죽천향_()_
출처 :글사랑 차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 동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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