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문화와 차(茶) 생활

2015. 6. 5. 02:23차 이야기

 

 

      

선비 문화와 차(茶) 생활

 

글   이우보인

  

Ⅰ.


고려나 조선시대 선비들의 시문에는 차 생활과 함께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시가 많다. 선비란 양반 계층으로서 대체로 유가의 학자들을 지칭하는 호칭인데, 이들은 당대의 문화를 계승 유지하는 지성인들이요, 아울러 그 시대의 정치·사회를 담당하는 지배 계층이기도 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면 한편으로는 학문을 하거나 묘당에 들어 출사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물러나 자연과의 교호를 동경하였는데, 이 유유자적하는 자연과의 삶이 정신의 본체(體)를 이루었고 외형으로서의 문화는 그 작용(用)이었다. 역사에서, 정치에서, 철학에서, 많은 경우에 우리들은 그들이 움직여 이루어놓은 문화의 동용(動用)을 중시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문화를 가능케 하는 고요한 정신적 경지인 정체(靜體)야 말로 본질적 부분이며 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 정체의 생활은 늘 자연과 더불어 운위되고 있으며 자연의 생활에서는 늘 차가 운위되고 있음도 아울러 볼 수 있다.


Ⅱ.


몇 수의 시문들을 살펴보아도 이들의 삶에서 차 생활과 함께 이루어지는 정체(靜體)의 모습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나라에 보답한 공도 없는 늙은 서생

차 마시는 버릇만 들어 세상 물정 모르고

인적 드문 집에 홀로 누워 눈 내리는 밤

즐겨 듣느니 돌솥의 솔바람 소리


報國無效老書生   喫茶成癖無世情

幽齋獨臥風雪夜   愛聽石鼎松風聲


이 시는 고려 말 포은 정몽주의 <돌솥에 차 달이기>(石鼎煎茶)라는 시이다. 포은이 왜 나라에 공이 없는 사람인가? 그는 고려 왕조의 한 시대를 담당했으며 왕조의 마지막 운명과 자신의 명운을 함께 했던 이가 아닌가? 그러나 그의 흉중에는 왕조에 더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함을 회한으로 삼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집의 한 구석에서 눈 오는 밤 홀로 돌솥에 물을 끓여 차를 달이는 모습, 바로 이것이 정몽주라는 인간의 가장 사적인 면모가 아닐까?


일찍이 세간의 가치를 좇아 동서로 달렸더니

십년 마른 배가 굶주려 솔개처럼 울어댄다.

아이 불러 와 차 달이니 해질 무렵의 강은 차갑고

묵은 허파의 갈증과 심화의 근원을 치료하네.

모든 근심 차츰 비워지고 텅 빈 마음 밝아지니

날은 아직 남았지만 검은 책상에 책 들여다보기를 그쳤네.

동화문 밖에서는 사람들 시비 다투고들 있겠지만

왁자지껄 귀 따가운 소리 같은 건 이미 들리지 않네.


曾向世間馳東西   十年枯腹飢鳶啼

呼童煮茗暮江寒   醫我渴肺心火低

百慮漸齊虛室明   日長烏几收視聽

東華門外競是非   呶呶聒聒不聞聲


이 시는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의 <은 솥에 차 달이기>(銀鐺煮茗)라는 시이다. 차란 이런 것이다. 추강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만년에 단종의 복위 운동과 소릉 복원의 상소로 파직되어 유랑생활을 하였던 사람이다. 이런 생애를 산 추강도 한 잔의 차와 함께 그 모든 파란만장을 다 잊어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산의 정자엔 쌓아 둔 책 없고

오직 꽃이 경전이요, 물이 경전일 뿐

새로 비 내린 뒤의 귤 숲이 자못 아름다워

바위 샘물 손으로 떠 찻병을 씻는다.


都無書籍貯山亭   唯是花經如水經

頗愛橘林新雨後   巖泉手取洗茶甁


이 시에서 다산은 책 읽기에 몰두하기는커녕 주위에 핀 들꽃과 차 달이는 맑은 물을 더 사랑하고 이것들이 자신에게는 경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를 보면 비온 뒤의 남도 차밭의 정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가 실제 보다 더 아름답게 전달되어 오는 느낌이다. 손수 옹달샘의 물을 떠 차 도구를 씻는 다산의 귀양 생활은 오히려 오늘날 우리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웰빙’의 생활 바로 그것이 아닌가?


정좌(靜坐)의 곳에 차가 반쯤 남았으나

향기는 오히려 처음과 같고,

묘용(妙用)의 때에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스스로 핀다.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이 시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다도의 삼매경을 노래한 시이다.

정좌(靜坐)의 곳이란 곧 우리 마음의 미발(未發)의 고요한 본체를 함양하기 위한 경(敬)을 하는 자리이다. 그곳에서는 차를 반쯤 마셨으나 차향은 오히려 처음처럼 늘 향기롭다. 참으로 심(心)의 미발지중(未發之中)을 올연히 심득하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네 사람들 사이도 이와 같이 반쯤 사귀었으나 그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처음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미발지중의 심체(心體)가 이발(已發)하여 모두 마디에 맞는(發而皆中節) 묘용(妙用)의 때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며’, ‘하늘엔 소리개 나르고, 못에서는 물고기 뛴다’(鳶飛於天, 魚躍于淵)는 말이다. 곧 천지 만물이 그 자리를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실제로 찻 자리가 바로 이런 곳이다.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李尙迪)은 <찻물 푸기>(挹茶)라는 시에서 이와 같은 다선삼매(茶禪三昧)의 경지를 매우 또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은 주발로 찻물을 긷는데

어찌 그리 많은 거품 이는지

둥근 빛 구슬처럼 흩어지는데

하나의 구슬마다 하나의 부처님이네.

덧없는 인생은 손가락 튕기는 찰나인데

천억의 몸이 하물며 황홀하랴.

천수천안 열리는 것이

마치 머리털 나누어지듯 하는구나.

깨달음의 곳에서 문자 사라지고

참선의 때에 부처가 선다.

누가 부처며 누가 중생인가

아(我)가 없는데 물(物)이 있겠는가.

항하(恒河)의 모래알 같이 많은 중생

제도하는 데에 꼭 뗏목 부를 필요 없다.

거품꽃 같은 인생 한 번 부는 그림자요

공(空)과 색(色)의 이 세상이 한 조각 달과 같다.

삼생(三生)의 삶이 금 좁쌀의 그림자이니

좌망의 때에라도 어찌 올올(兀兀)할 수 있으랴.

만 가지 인연이 본진이 아닐진대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에 화를 내랴.

경전(經傳)에서는 육우의 가르침을 전하고

시가(詩歌)에서는 옥천의 법기(法紀)를 노래한다.


小盌挹茶水    千漚何蕩發

圓光散如珠    一珠一尊佛

浮生彈指頃    千億身况惚

如是開手眼    如是分毛髮

悟處齊點頭    參時同竪佛

誰師而誰衆    無我亦無物

茫茫恒河沙    普渡非喚筏

泡花幻一噓    空色湛片月

三生金粟影    坐忘何兀兀

萬緣了非眞    焉喜焉足喝

經傳陸羽燈    詩呪玉川鉢


이 시에서 이상적(1804-1865)은 유가이면서도 불도에 매우 깊은 온축이 있음을 보이고 있으며, 차학(茶學)의 시조인 다성(茶聖) 육우(陸羽)와 우리나라의 다인들이 가장 많이 읊조리는 ‘칠완가’(七碗歌)의 작자인 노동(盧仝)의 이름까지 거명하고 있다. 이상적은 역관(譯官)을 지낸 집안의 서얼 출신이었으나 학문과 어학이 출중하여 역관으로 전후 열두 차례나 청나라를 다녀왔으며 중국에서 시가집을 낼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시를 썼다. 이 시에서 그는 차를 끓이기 위해 물을 길으면서, 흩어지는 그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바로 부처라고 부르고 있는데 구구절절 이 보다 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를 구상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산방은 맑고 고요한데 밤은 어찌 긴가?

한가로이 등불 돋우며 땅바닥에 눕는다.

때론 땅화로에 의지하니 배불러 좋고

손님 올 땐 다시 일어나 찻물 달이네.


山房淸悄夜何長   閑剔燈火臥土床

賴有地爐偏饒我   客來時復煮茶湯


이 시는 역시 생육신의 한 분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시이다. 그는 불교에도 깊이 귀의해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절간에 들어 맨 땅(土床)에 등을 대고 자면서도 방바닥을 파서 만든 화로(地爐)에 물 끓여 달인 차를 마시는 일만이 즐거움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먼 데서 나를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또 이럴 때면 어찌 차 한 잔 다시 끓이지 않겠는가?


한재(寒齋) 이목(李穆)은 《다부》(茶賦)라는 글에서 차 마실 때 정신의 경계가 어느 정도에 이르게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한 잔을 마시니 굶주린 창자를 촉촉히 적시고

두 잔을 마시니 정신이 상쾌하여 신선이 되는 듯싶고

석 잔을 마시니 병든 몸 깨어나 두통이 낫고, 속세를 멀리하여 호연지기가 길러지며,

넉 잔을 마시니 씩씩한 기운이 일어나 근심 분노가 사라지고........

다섯 잔을 마시니....... 현허(玄虛)에서 상제(上帝)를 알현하는 듯하고

일곱 잔은 채 절반도 안 마셨는데 맑은 바람이 옷깃에서 일어나 천상계가 열리고 봉래산이 발치에 있는 듯하다.......


啜盡一椀, 枯腸沃雪. 啜盡二椀, 爽魂欲仙. 其三椀也, 病骨醒, 頭風痊, 心兮! 若魯叟抗志於浮雲, 鄒老養氣於浩然. 其四椀也, 雄豪發, 憂忿空. 氣兮! 若登太山而小天下, 疑此俯仰之不能容. 其五椀也, 色魔驚遁, 餐尸盲聾. 身兮! 若雲裳而羽衣, 鞭白鸞於蟾宮. 其六椀也, 方寸日月, 萬類蘧蒢. 神兮! 若驅巢許, 而僕夷齊, 揖上帝於玄虛. 何七椀之未半, 鬱淸風之生襟, 望閶闔兮, 孔邇隔蓬萊之蕭森.


차를 한 잔 두 잔 마시다 일곱 잔 정도에 이르면 옷깃에서 스스로 바람이 일어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하늘을 날아오르다가 이윽고 천계에 올라 저 밑으로 봉래산을 굽어보게 된다는 이 글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과장된 듯이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차 생활을 오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지를 이해하고 있으며 또 늘 누리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의 시책에 좀 역행하는 발언이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차 타고 배 타고 금강산 가지 않아도 방안에서 차를 몇 잔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일이 되지 않겠는가? 모르긴 해도 《맹자》에 “모든 것은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萬物皆備於我矣)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지 몰라.......


Ⅲ.


이상에서 몇 수 살펴 본 고려, 조선조의 선비들의 시문을 보면 선비 문화의 ‘정체’(靜體) 부분에는 한결같이 소박함과 낮춤, 그리고 자연과 벗함을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또 그 곁에 늘 차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담담하고 소박함을 추구하는 선비들의 이상은 항상 차 생활과 함께 영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차는 이들의 삶을 일탈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 고아한 기풍으로 가꾸어 주었던 것 같다.

만일에 이 때 그 곁에 다른 기호물이 있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차를 대신해서 무엇이 있으면 그럴듯할까?

담배?

영 아니지 않은가?

술?

술은 너무 진하고 무겁다. 인간이 마시는 기호음료 가운데 사회적 기능이라는 면에서만 보면 술도 차만 못지않다. 그러나 술은 너무 강렬하고 비상한 흥분을 수반하므로 그것을 마실 때에는 노소간에, 남녀간에, 붕우간에 금기나 제약이 많이 따른다. 어떤 이는 “취해 보아야 바야흐로 술이 진한 것인 줄 알고, 사랑해 보아야 정이 무거운 것인 줄 안다.”(醉過方知酒濃, 愛過才知情重)고 하여 술과 사랑을 병칭하였지만 역시 술은 정신의 진하고 무거운 부분과 관련해 있다. 이렇게 무거워서야 어찌 정신의 담담한 ‘정체’(靜體)의 역할을 도울 수 있겠는가? 차는 맑고 담담한 정신의 본래 면목을 찾고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게 하고 젖어들게 함으로써 술을 훨씬 넘는 풍격을 지닌다.


그런데 어찌하여 차가 이와 같이 화합과 젖어듦의 매개물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차의 담담하고 소박한 그 맛이 모든 맛의 근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오색(五色)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五音)은 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 오미(五味)는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고 하여 담담함과 소박함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의 식생활은 어떤가?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들을 너무 많이 먹어 건강을 오히려 해롭히고 있으며, 몸을 위해 먹은 그 음식들로 인해 오히려 심각한 영양 불균형과 비만으로 병들거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에는 당연히 싱겁고 담담함이 더 긴요한 작용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고지질의 뻑뻑한 피가 온몸의 혈관을 탁하게 흘러 다니고 있을 현대인의 몸에 콜라나 커피를 섭취시켜야 할 것인지, 아니면 담담하고 맑은 차를 주입시켜야 할 것인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지 않은가?

 

커피나 탄산음료에 길들여진 입맛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처음 차를 마셔보고 그것이 아무 맛이 없다는 데에 적이 놀라는 모습을 자주 대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직 담미(淡味)의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차인(茶人)들은 차는 적어도 백 잔은 마셔 보아야 그 맛을 조금 알게 된다고 말하게 되는데, 그만큼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의 입맛이 속된 말로 “갔다.”는 표현에 알맞을 것이다.

이럴 때 담담한 맛의 차가 들면 딱 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려면 단순히 혀끝에서 느끼는 맛이 아니라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실은 혓바닥에 아무 맛이 없는 것 같은 차에 사실은 다섯 가지 맛이 다 들어 있다. 《중용》에 “사람마다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 없지만 진정 그 맛을 아는 자 드물다.”(莫不飮食者鮮能其味)고 하는 표현이 딱 맞다. 선현들 가운데에는 이 담담한 맛의 차를 “솥에서 나는 음식 가운데 육청(六淸)의 으뜸”이라 한 이도 있고, 차의 그 담담한 맛을 “감로(甘露)보다 달고 제호(醍醐)보다 진하다.”고 표현한 이도 있는데 이것은 결코 터무니없는 과장이나 허장성세가 아니다. 필자도 어쩌다 늦은 밤 공부하다 혼자 차를 다려 마시면서 참으로 심신(心身)이 성성(惺惺)하고 삶이 고맙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은데 이것은 그 시간에 그 어떤 다른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Ⅳ.


요즘 와서 부쩍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비교적 근래에 나온 단어가 아닌가 싶지만 삶의 질을 높이고 싶은 인간의 욕구에 가장 절실한 개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웰빙의 내용을 들어보면 대개는 식생활, 주거생활 등에 관한 것으로서 선인들이 해 온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하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웰빙이란 단순히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쓰느냐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어떻게 사느냐에 관한 다분히 철학적인 코드이다. 차는 겉으로 보면 그냥 나뭇잎을 말려서 끓인 물에 우려먹는 일일 따름이다. 그러나 차에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는 진짜 웰빙의 공능(功能)이 있다.

 

원래 차를 우려 마시는 법은 중국에서 맨 먼저 개발되었다. 육우의 《다경》(茶經) <칠지사>(七之事) 편에 보면 《신농본초》(神農本草)나 《이아》(爾雅)에서부터 시작하여 차를 마시는 40여 사(事)의 고사를 기재하고 있는데, 이 고사들은 우리들에게 차 생활에 관한 많은 일화를 전하는 동시에 다도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가감 없이 던져주고 있다.

차생활은 중국에서는 당대(唐代)에 매우 번성하였고 이후 송대(宋代)와 명대(明代)를 거치면서 계속 개발되었으며 그때마다 독창적인 다법(茶法)이 아울러 형성되었다. 당대에는 떡처럼 뭉쳐 말린 차를 부수어서 주전자에 넣고 끓여서 마시는 ‘자차’(煮茶)의 법이 일반적이었으나, 송대에 이르러서는 차를 아주 미세한 가루로 만들어 사발에 물과 함께 넣어 세차게 저어서 거품을 일게 하여 마시는 ‘점차’(點茶)의 법이 성행했다. 명대에 이르러서는 끓인 물을 다관(茶罐)에 붓고 거기에다 말린 차 잎을 넣어 우려 마시는 ‘전차’(煎茶)의 법이 이루어졌다. 이는 시대에 따라 도자기의 발달과도 맥을 같이 하였으며 여타의 생활 여건의 변화와도 긴밀한 연관관계에 있었다. 차는 각 시대의 주요 무역상품이었으며 정부의 전매 수입의 효자 품목이기도 했다. 대체로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차는 기본적으로 기호음료였으며 약효를 목적으로 하기도 했다. 또한 정신적 일탈과 대인관계의 매개 음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은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차를 받아들여 신라, 고려, 조선조를 거쳐 오는 동안 각 시대의 문인아사(文人雅士)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웰빙의 문화 음료로서 역할했다. 차는 수준 높은 음료로 대접받아 귀족층의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었으며 왕궁이나 사대부가에서는 제사용 음료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오늘날 정월 초하루나 기제사 등에서 낮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이름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사찰에서도 불전에 공양하는 헌다(獻茶)의 음료로 사용했고 승려들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동안 일제의 조직적인 한국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의 차 문화 전통은 맥이 끊어질 정도의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의 차 문화는 헤이안(平安) 시대에서 무로마찌(室町)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받아 가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전국 시대가 끝나고 중앙집권적 막부시대가 개시되자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무지하고 포학한 상류계층인 지방의 무인(武人)들을 유화시키기 위한 정신적 지도의 목적으로 차회(茶會)를 열었다. 중국의 끽다법을 모방한 초기의 일본 차 문화는 거대하고 화려한 차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가마꾸라(鎌倉)에서 무로마찌 시대에 이르는 동안의 탁월한 몇몇 차 문화 지도자들은 한국의 자연미와 소박미를 숭앙하는 ‘와비’(わび)의 다도(茶道)를 확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일본 차 문화의 원형이 되었다.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먹거리와 약용의 목적으로도 차를 연구하여 오늘날의 일본인들은 일상의 생활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료로 취급함과 동시에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문화로 자랑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다시 음차(飮茶)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차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은 아직 일반적이지 못하고, 더욱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차 생활은 여성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오히려 술과 담배, 인스턴트 외식에 찌들고, 격무와 골치 아픈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남성들에게 훨씬 더 절실한 것인데도 말이다. 차 생활을 하면서 부차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전통 문화 전반에 걸친 그윽한 온윤(溫潤)은 차치하고서라도........

 

차는 건강에 매우 좋은 마실 거리이다. 다성(茶聖) 육우(陸羽)는 “날개로 나는 새나 털 달린 짐승이나 입을 벌려 말하는 사람, 이 세 종류는 다 같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면서 먹고 마시면서 살아왔다. 마신다는 것의 의미가 실로 오래되었다. 목마른 것을 구제하려면 장(漿)을 마시고, 분노를 털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마음이 어둡고 침침한 것을 화창하게 하려면 차를 마신다.”(《茶經》〈六之飮〉)고 했다. 육우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먹고 마실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 지 안다. 그런데도 바쁜 현대인들은 건강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인스턴트 음식이나 패스트푸드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요즘 들어 웰빙을 부르짖으면서 자연식과 정성을 들여 조리한 슬로우푸드(slow food)를 많이들 찾고 있는데 이런 슬로우푸드의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차이다. 차는 농사짓고 만드는 과정이 매우 길고 정교하며, 만들고 다려 마시는 과정이 매우 느릿느릿하면서 대단한 정성이 요구되는 음식이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친자연적인 음식 문화이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실제로 친자연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도 그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예전에는 문밖으로 나가면 언제나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가 있었고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청풍(淸風)과 명월(明月)을 병풍처럼 두르고 살 수가 있었으나 요즈음은 쉽게 그럴 수가 없는 형편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그런 생활을 하려면 오히려 고비용의 호사로운 생활로 변해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소박함을 숭상하는 현대의 선비는 소극적으로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자연을 누리려는 것 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연을 보호하고 자연을 되살리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만 한다. 나는 그러려면 우리들의 마음에 먼저 자연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차 생활은 바로 우리의 마음과 삶에 자연을 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선비들이 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짐과 동시에 차 생활을 같이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 자연스럽게 그러한 동질성도 형성되리라고 생각한다.


Ⅴ.


차 생활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젖어드는 정신적인 경계가 있다. 조화를 중시하는 화’(和)의 정신, 검소한 생활을 즐기는 ‘청’(淸)의 정신, 마음의 진정한 마음다움을 찾고자 하는 ‘경’(敬)의 정신, 매사에 간절함으로 임하려는 ‘성’(誠)의 정신, 사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대하려는 ‘여’(如)의 정신, 강건(强健) 유위(有爲)의 ‘건’(健)의 정신, 적조(寂照) 삼매(三昧)의 ‘적’(寂)의 정신 등등............ 이 같은 동양의 문화 정신들은 차 생활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속에 깃들게 된다.

화(和)의 정신은 감성으로 감동하고 모두가 하나 되는 마음이다. 동양인들은 화의 정신을 중시한다. 동양의 문화 정신은 유교와 도교와 불교 모두 한결같이 화의 정신에 의해 짜여져 있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 옳고 그름이라는 구별의 마음을 뛰어 넘으며, 심지어 죽음과 삶이 하나로 되는 경지가 화의 정신이다.

 

넉넉함을 알고(知足) 매사에 늘 넉넉해 하는(常足) 마음, 이것이 청(淸)의 정신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행복과는 거리가 먼 법이다.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적은 것에 더 행복할 수 있다. 적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그럴 줄 아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같은 삶에서라도 더 진하게 인생을 누릴 줄 아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바로 청의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차 한 잔을 앞에 했을 때 마음이 깨끗해지면서 그 차 한 잔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이런 마음 이것이 바로 청의 정신이다.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가지고, 항상 깨어있게(常惺惺) 하는 것이 경(敬)의 정신이다. 차 생활에는 차와 물과 불과 그릇이라는 사물(物)들이 있으며, 차를 제조하고 물을 긷고 불을 지피고 차를 다리는 일(事)들이 있다. 이러한 사물들에 임하여 중화(中和)를 이루려 전일(專一)하고, 차를 다루는 전 과정에서 언제나 정제(整齊)하고 엄숙(嚴肅)하는 차 생활은 그 자체로서 바로 경이다. 차 생활이란 것이 단순히 ‘말린 나뭇잎을 우린 물 마시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도’(茶道)라고 부를 때 우리는 이미 경의 정신을 운위하게 되는 셈이다. 이 점에서 다도는 흥분과 일탈을 즐기는 주도(酒道)와 매우 대비되는 삶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순간이 있음을 노래했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나 그것이 나에게로 와서 그것과 내가 녹아 같은 것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한 순간에 처한 마음이 바로 여(如)의 정신이다. 프랑스의 작가 생땍쥐페리는 《어린왕자》에서 여우와 왕자가 서로를 ‘길들인다’(apprivoiser)고 하였고, 불교에서는 만물이 '여여(如如)하다'고 표현하는데 차 생활은 근본적으로 그런 정신적 상황을 지향한다.

 

차 생활은 이런 외에도 많은 고귀한 정신적 세계에로 출입케 하는 귀한 경험들을 마련해 준다. 근래에 와서 과학에 의거하여 차에 탄닌․카페인․비타민․아미노산․무기물 등의 성분이 있다 하고, 이들 성분은 ①각성 작용과 흥분 작용을 일으켜 정신을 맑게 하고 ②항염과 세균 발육 억제 작용을 하고 ③고혈압과 동맥 경화의 예방 ④충치 예방과 구취 제거 ⑤해독 작용 ⑥기타 항당뇨성 치료 효과 및 노화 억제 등의 약리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배를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며 약효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차를 마시는 것은 정신과 물질, 나아가 너와 내가 하나로 되는 대동(大同)과 대화(大和)의 세계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며, 맑고 청정한 본래의 마음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언제나 유행(流行)하면서 생성과 변화를 그치지 않는 이발(已發)의 세계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이 처한 환경은 비록 예전과 많이 다르지만 그러나 그 유행의 기틀(機)은 늘 ‘고요한 본체’로서 우리들의 속에 내재해 있다. 차 생활은 오늘날의 선비들에게 이런 고요한 본체를 찾게 해 주는 데에 매우 긴요한 도리가 될 것이다.


                                                                            <동아대 석천 손승길 교수 회갑기념 논문집>(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