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산거영(六老山居 咏)』에 보이는 차시 - 정민교수

2015. 6. 10. 16:40茶詩

 

 

 

 

 

      

『육로산거영(六老山居 咏)』에 보이는 차시 - 정민교수| 차문화논문

 

명전 | 조회 52 |추천 0 | 2010.12.17. 14:26

 

『육로산거영(六老山居咏)』에 보이는 차시


『육로산거영』은 1818년, 원나라 승려 석옥(石屋) 청공(淸珙, 1272-1352)의 「산거(山居)」시 24수를 다산과 수룡(袖龍) 색성(賾性1777-?), 철경(掣鯨) 응언(應彦, ?-?), 침교(枕蛟) 법훈(法訓, ?-1813), 철선(鐵船) 혜즙(惠楫, 1791-1858) 등 다섯 사람이 차운하여 함께 묶은 시집 이름이다. 금명(錦溟) 보정(寶鼎, 1861-1930) 스님의 『백열록(柏悅錄)』에도 같은 글이 다소 다른 방식으로 전재되어 있다. 이밖에 다산이 친필로 초의(艸衣) 의순(意洵, 1786-1866)에게 적어준 시첩과 서문이 별도로 전한다. 『육로산거영』에는 차시가 여러 수 실려 있어, 당대 승려들의 차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여기 실린 다산의 시 24수는 『다산시문집』에도 빠져있는 일시(佚詩)여서 자료 가치가 높다.
당시 백련사의 여러 승려들이 경쟁하듯 원나라 승려 석옥 청공의 시를 차운한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석옥 청공을 거쳐 태고 보우로 이어진 선종의 법맥에서 정통성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 이들 자료는 우리나라 선맥(禪脈)의 계보와 종통(宗統) 의식을 헤아리는데 매우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앞선 글에 미루고, 이 글에서는 『육로산거영』에 수록된 차와 관련된 시만을 간추려 소개하겠다.


『육로산거영』의 구성과 차시

『육로산거영』은 36장으로 된 필사본 1책이다. 첫면에 철경 응언이 1818년 7월 16일에 쓴 「석옥선사율시봉화서(石屋禪師律詩奉和序)」가 실려 있어 앞뒤 경과가 짐작된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선종의 계통은 여러 번 이어졌다 끊어지곤 했다. 고려 말에 태고(太古) 보우(普愚, 1301-1382) 화상이 직접 중국에 들어가 청공에게서 법을 얻었다. 이를 이어 이후 7세 동안 이어져서 부용(芙蓉) 영관(靈觀, 1485-1571)에 이르러 두 가지가 나란히 나와 마침내 이처럼 번성하게 되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내가 외전(外典)을 보니 근본에 보답하는 제사는 그 조상이 나온 곳으로 하였다. 태고 스님이 이미 승가의 큰 조상이시라면 석옥도 제사를 올림이 마땅치 않겠는가? 예법이 같다고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장주(長洲) 고사립(顧嗣立)이 석옥의 시 30여수를 가려 뽑아 해외에까지 흘러 전하였다. 그 「산거잡시」에 율시와 절구가 각 12수인데, 마음의 운치가 맑고도 아득하고 음조가 해맑아 밝았다. 하루는 다산을 뵙고 함께 이 시에 화답할 것을 의논하였다. 다산께서 말씀하셨다. “나와 자네는 모두 산에서 사는 사람일세. 산에 사는 즐거움은 사는 사람만 아는 법이지.” 인하여 차운하여 한 질을 이루었다. 학인으로 암자에 있던 자가 따라서 이를 화답하고, 그 중 좋은 것을 가려서 또 약간 편을 기록한다.
무인년(1818) 가을 7월 16일, 아암 문인 철경이 적는다.
(吾東禪系, 屢續屢斷. 高麗之末, 太古普愚和尙, 身入中國, 得法於淸珙. 嗣玆以降, 七葉蟬聯, 以至於芙蓉, 雙枝騈出, 遂如是蕃茂. 豈不休哉. 余見外典, 報本之禘, 其祖之所自出. 太古旣僧家之大祖, 則石屋非所宜褅乎? 非曰禮同, 理則然耳. 長洲顧嗣立, 選石屋詩三十餘首, 流傳海外. 其山居雜詩長短各十二首, 心趣淸夐, 音調瀏亮. 一日謁茶山, 議共和之. 茶山曰: “吾與若皆山居者也. 山居之樂, 居者知之.” 因次韻成帙. 學人在菴者, 從而和之, 選其佳者, 又錄若干. 戊寅秋七月旣望, 兒菴門人掣䲔題.)

이와 별도로 다산은 1818년 1월 5일에 쓴 호암(葫菴)을 수신자로 하는 친필 편지에서 근래 석옥의 시 수십 편을 차운하였다는 언급을 남겼다. 고려 말 태고 보우가 원나라로 가서 석옥 청공의 의발을 전수받았고, 이후 7대를 내려와 부용 영관 스님 대에 이르러, 선맥은 청허(淸虛) 휴정(休靜, 1520-1604) 스님과 부휴(浮休) 선수(善修, 1543-1615) 스님으로 크게 나뉘었다. 철경을 비롯하여 석옥 화상의 시에 차운한 승려들은 모두 휴정과 소요(逍遙) 태능(太能)을 거쳐 아암 혜장으로 이어진 법계에 속한다. 이들은 석옥의 시에 차운함으로써 보본(報本), 즉 자신들의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을 보였고, 이는 나아가 선종의 정맥이 자신들에게로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내 천명하는 의미도 있다.
서문에 이어, 「석옥화상산거잡영장률십이수(石屋和尙山居雜咏長律十二首)를 싣고, 이후 다산· 수룡·철경·침교·철선 순으로 각각 차운작 12수 씩을 수록했다. 철선의 경우는 차운시를 두 번에 걸쳐 모두 24수를 실었다. 이밖에도 그는 「차운증초의이수(次韻贈草衣二首)」, 「차운증하의(次韻贈荷衣)」, 「차해종암운(次海宗庵韻)」, 「송도원지연사(送道圓之蓮寺)」, 「증별서어(贈別鉏漁)」, 「차증달호(次贈達湖)」 2수 등 승려들과의 차운작 6제 8수를 수록하였다. 이어 「석옥선사절구십이수(石屋禪師絶句十二首)」가 다시 나오고, 이를 차운한 다산과 침교의 시 12수를 실었다. 끝에는 「철선대사산거잡음오수(鐵船大師山居雜吟五首)」와 「금강행류관대가서순(金剛行留觀大駕西巡)」시를 실었다.


『육로산거영』에 수록된 석옥 화상의 차시

『육로산거영』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산속 생활의 한적한 아취를 구가하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석옥의 원시 중 율시 3수와 절구 1수에 차와 관련된 내용이 보인다. 차운작에서는 다산이 율시 2수와 절구 1수, 수룡이 율시 2수, 침교가 율시 1수와 절구 1수, 철선이 율시 5수를 남겼다. 차가 언급된 시가 원시를 포함해 모두 16수나 된다. 이들 차시는 지금까지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먼저 석옥 화상의 차시 4수를 읽어본다.

幽居自與世相分 유거(幽居)가 세상과는 절로 나뉘어지니
苔厚林深艸木薰 깊은 숲 두터운 이끼 초목조차 향기롭다.
山色雨晴常得見 비 개인 산빛을 언제나 볼 수 있고
市聲朝暮罕曾聞 아침 저녁 저자 소리 들리는 법이 없네.
煮茶瓦竈燒黃葉 누르시든 잎 태워 와조(瓦竈)에 차 달이니
補衲巖臺剪白雲 바위 누대 옷 깁느라 흰 구름을 마르잰다.
人壽希逢年滿百 사람 나이 백년 채움 만나기가 드물거니
利名何苦競趨奔 명리(名利)로 어이 괴로이 바삐 달림 다투리오.

석옥 화상의 「산거시」 율시 제 3수다. 세상과 절연된 채 사는 산거(山居)의 자재로움을 예찬했다. 비 개면 산빛이 더욱 푸르러 눈을 씻어주고, 티끌 세상의 잡다한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는다. 그 속에서 지내는 삶은 어떤가? 기왓장을 쌓아 삼면을 막은 와조(瓦竈)에 낙엽을 태워 차를 끓인다. 납의(衲衣)가 낡아 헤지면 흰구름을 잘라 깁는다고 한 표현이 멋스럽다. 백년도 못되는 인생을 어찌 저 명리(名利)의 장(場)에서 다투며 소진한단 말인가. 스님의 조촐한 차생활이 그릴 듯 아름답다.

自入山來萬慮澄 산속에 들고부터 온갖 근심 맑아지니
平懷一種任騰騰 한 종류 평소 마음 멋대로 떠다닌다.
庭前樹色秋來減 뜰 앞의 나무 빛은 가을 들어 줄어들고
檻外泉聲雨後增 난간 밖 냇물 소리 비온 뒤에 커지누나.
挑薺煮茶延野客 냉이 뜯고 차 달이며 들 나그네 맞이하고
買盆移菊送隣僧 화분 사서 국화 심어 이웃 스님 선물한다.
錦衣玉食公卿子 비단 옷에 좋은 음식 공경(公卿) 되어 누린대도
不及山僧有此情 산승의 이 같은 정에 미치진 못하리라.

율시 제 8수다. 티끌 세상을 멀리하고 산으로 들어오니, 온갖 염려가 해맑게 씻겨진다. 마음은 평온하여 걸림이 없다. 가을 되면 단풍 들고, 비 오면 시냇물이 불어난다. 자연스럽지 않은가. 봄이면 들 손님을 맞이하여 냉이 뜯어 국 끓이고, 차를 달여 함께 마신다. 가을에는 국화를 화분에 옮겨 심어 이웃 암자의 스님에게 선물한다. 공경(公卿)도 누리지 못할 호사를 나혼자 누리며 산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다.

細把浮生物理推 뜬 인생 찬찬히 사물 이치 따져보니
輸嬴難定一盤碁 승패 정하기 어려움 한 판 바둑 다름없다.
僧居靑嶂閑方好 푸른 산에 사는 중은 한가로움 좋건만
人在紅塵老不知 티끌세상 사람들은 늙도록 모르누나.
風颺茶煙浮竹榻 흩날리는 차 연기는 대 평상 위로 뜨고
水流花瓣落靑池 꽃잎은 물에 흘러 푸른 못에 지는구나.
如何三萬六千日 어이해야 3만 하고 6천이나 되는 날에
不放身心靜片時 몸과 마음 놓지 않고 한 때라도 고요할까.

율시 제 11수다. 세상의 이기고 지는 싸움은 한판의 바둑과 다를 게 없다. 이기면 어떻고 지면 또 어떤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뜻없는 승부에 목숨을 건다. 사생결단을 한다. 산 중의 이런 한갓진 생활을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바람이 불어 차 연기가 흩날린다. 대나무 평상이 자욱하다. 문득 내다보면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꽃잎이 뜰 연못 위로 떠다닌다. 꽃잎이야 부산스러워도 내 마음은 고요하다. 인생이 길대야 고작 백년이다. 이 36,000일 동안 내가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사는 일, 나는 여기에만 관심이 있다. 세상의 승패는 나와는 무관하다.

滿山筍蕨滿園茶 산엔 가득 죽순 고사리, 동산 가득 차나무라
一樹紅花間白花 한 그루엔 붉은 꽃이, 사이사이 흰꽃일세.
大抵四時春最好 네 계절에 봄철이 그중 가장 좋으니
就中尤好是山家 나아가기 더욱 좋긴 산 속의 집이라네.

석옥의 절구 제 1수다. 봄이 왔다. 산자락 비탈마다 죽순이 우쩍우쩍 돋아나고, 고사리가 작은 손가락을 편다. 동산 가득 차나무에 새싹이 돋는다. 그 사이로 심심할까봐 붉고 흰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 무늬를 만든다. 이 화창하고 아름다운 봄날을 어디서 누릴까? 이 조촐한 산속 집보다 더 호사스런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상 네 수의 시에서 보듯, 석옥 청공은 자신의 산거 생활의 동반자로 늘 차와 함께 지냈다. 와조(瓦竈)를 갖춰 낙엽으로 차를 달이고, 손님을 청해 차를 대접하며, 대나무 평상 위에서 차를 즐기면서 산 속 삶의 한갓진 운치를 깊이 호흡했다. 산거의 주변은 온통 차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산의 차시

다산의 차운시에도 모두 3수에서 차 관련 언급을 볼 수 있다. 차례로 읽어본다. 먼저 율시 제 4수다.

雨歇山庭露白沙 비 개인 산 뜨락에 흰 모래가 드러나고
矮簷一半裊垂蘿 낮은 처마 절반쯤 송라(松蘿)가 드리웠네.
採黃心急看蜂沸 꽃가루 딸 마음 급해 꿀벌은 잉잉대고
籍碧痕留覺麝過 이끼 위에 남은 자국 노루가 지난 게지.
屋後巡園新筍密 집 뒤란 동산 둘러 새 죽순 빽빽하고
溪邊移席落花多 시냇가 자리 옮겨 지는 꽃잎 많구나.
岩扉客去渾無事 바위 사립 손님 가자 아무런 할 일 없어
茶碾旋旋手自磨 차맷돌을 빙글빙글 손수 직접 갈아본다.

다산초당의 고즈녁한 풍경을 노래했다. 비가 개자 뜨락에 흰 모래가 드러난다. 키작은 처마에는 송라 넝쿨이 반쯤 드리워 하늘댄다. 꽃가루를 탐낸 꿀벌들은 공연히 조바심이 나서 잉잉댄다. 이끼 위에 또렷이 찍힌 건 노루 발자국. 집 뒤편 동산 둘레에선 여기저기 죽순이 돋는다. 우후죽순이라더니 기세가 자못 장하다. 나는 냇물에 떠내려 오는 지는 꽃잎을 보려고 냇가로 자리를 옮겨 가서 앉는다. 적막하던 산집에 손님 마저 떠나고,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 공연히 마음이 스산스러워, 차나 한잔 해야지 싶어 떡차를 꺼내 차맷돌에 직접 갈아본다. 가루로 날리는 덩이차를 보노라니 마음 속에 맺혔던 공연한 생각들도 뭉글뭉글 풀어진다.

杞籬芋坎盡規模 갯버들 울, 토란 구덩이 규모에 꼭 맞으니
誰作寒岩小隱圖 한암(寒岩)의 소은도(小隱圖)를 누가 그려 놓았나.
磽土舊治成沃壤 메마른 흙 오래 만져 비옥한 땅 되어 있고
石泉新鑿近香廚 돌 샘물 새로 파니 부엌에 가깝구나.
山中地凍松猶摘 산중에 땅 얼어도 솔방울을 외려 따고
冬至霜深菊始枯 동지라 무서리에 국화가 시드누나.
淸掃兩庭無一物 두 뜨락을 다 치워서 물건 하나 없는데
牆根安揷煮茶鑪 담장 밑에 차 화로만 꽂아서 앉혔다네.

이어 율시 제 12수를 읽어보자. 갯버들을 쪼롬이 심어 울을 삼았다. 움푹 패인 습지엔 토란을 심었다. 한암소은도(寒岩小隱圖)의 풍경이 이곳과 다를 게 없다. 거칠어 쓸모 없던 흙은 오래 거름을 주어 기름진 땅이 되었다. 부엌 곁에는 돌샘물을 새로 팠다. 달고 찬 샘물이 쟁글쟁글 솟는다. 산중이라 추위에 땅이 꽁꽁 얼어도, 솔방울을 따서 땔감으로 쓴다. 동지 무서리에 국화도 더는 못 견뎌 차게 얼었다. 양켠의 뜨락은 이제 빗자루로 쓴 듯이 아무 것도 없다. 봄에서 가을까지 피고지던 꽃들도 자취가 없다. 다만 담장 아래 앉혀둔 차 달이는 화로만 그대로 꽂힌 채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다산이 다산 4경 중에 하나로 꼽았던 다조(茶竈)를 언급한 내용이다. 지금 다산초당 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반석은 애시당초 다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넓적돌이다. 다산의 차 화로는 물고기 입처럼 아래 쪽에 구멍이 우멍하게 뚫린, 벽돌로 쌓아 담장 밑에 붙박아둔 물건이었다. 그 위에 차솥을 얹어 물이 끓었다.

落盡油茶始展茶 유차(油茶)가 다 지고서 찻잎이 기(旗)를 펴니
雨前因繼雪中花 우전차가 눈 속 꽃을 인하여 이었도다.
春來海上饒魚膾 봄 오자 바다 위엔 생선 회가 풍족하여
淸飮翻同肉食家 술자리가 육식(肉食)하는 집과 진배 없고녀.

위는 다산의 절구 제 1수다. 유차(油茶)는 동백이다. 동백꽃이 다 지고 나니, 그제서야 차는 일창일기(一槍一旗)의 깃발을 펴기 시작한다. 눈 속에 피던 동백을 이어 우전차의 시절이 돌아온 것이다. 봄철 바다에선 향기 밴 생선들이 잡혀 올라온다. 은빛 회를 실실이 치자, 맑은 술 한 잔에 고기 안주가 부럽지 않다.
다산의 시 세 수는 차맷돌로 떡차를 갈아마시던 정황과, 담장 밑에 붙박아 둔 차 화로, 그리고 차나무를 가꿔 찻잎을 직접 따던 차 생활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 가치가 크다.


수룡 색성과 침교 법훈의 차시

다음은 수룡 색성과 침교 법훈의 차시 4 수를 차례로 읽겠다. 먼저 수룡의 차시를 읽어보자. 수룡은 아암 혜장의 상좌로 있으면서 실제로 다산에게 차를 만들어 드렸던 기록이 『다산시문집』에 보인다. 다음은 그의 율시 제 2수다.

病居誰訪白雲關 병으로 누었어도 백운관(白雲關)을 뉘 찾으리
唯有春風依舊還 봄바람만 변함없이 잊지 않고 돌아왔네.
走馬塵多情刺促 달리는 말 티끌 많아 마음이 다급해도
啞羊禪坐意幽閒 벙어리 양(羊) 가만 앉아 뜻이 정녕 한가롭다.
千重老蔓藏紅瀑 일천 겹의 늙은 넝쿨 붉은 폭포 감추어도
百串香茶産碧山 1백 꿰미 향차가 푸른 산서 나는도다.
哀彼食前方丈饌 슬프다 저 식전(食前)의 방장의 음식들
幾廻寃債積人間 몇 차례나 빚 원망이 인간에 쌓였던가.

흰 구름이 잠긴 산 속 암자에 병들어 누웠다. 아무도 안 찾고 봄바람만 와서 문안을 한다. 사람들은 달리는 말처럼 정신이 없지만, 산 속의 나는 벙어리 양처럼 마음이 한갓지다. 넝쿨은 겹겹이 붉은 폭포를 가리워 숨긴다. 제 6구가 흥미롭다. 1백 꿰미나 되는 향차(香茶)가 이 산에서 난다고 했다. 꿰미에 꿰었으니 떡차임이 분명하고, 1백 꿰미나 되는 향차를 백련사에서 채취한다고 한 것은 이곳의 차밭 규모가 상당했다는 의미다. 향차(香茶)는 향기로운 차일까, 아니면 향을 가미한 차일까? 이 또한 알 수 없다. 1백 꿰미의 향차는 관용적으로 많다는 의미인지, 실제 생산량을 적은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이곳의 차 생산이 상당한 규모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7.8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淄澠二水莫相分 치수 민수 두 물은 서로 분간 안 되는데
何必損蕕獨取薰 어이 누린 풀 버려두고 홀로 향초 취하리.
潭底魚遊明處見 못 아래 노는 고기 밝은 곳서 보이고
竹間鳥語靜中聞 대숲 사이 새 소리는 고요 속에 듣누나.
蔬從隙地能成圃 채소는 뙈기 땅서 능히 밭을 이루고
茶放新煙遠入雲 차는 새 연기 풀어 멀리 구름 드는도다.
世事杳茫春夢裡 세상 일 아득하기 봄 꿈 속 한가진데
云何名利若波奔 파도 같은 명리(名利)를 어이해 말하는가.

수룡 색성의 율시 제 3수다. 제 1구는 제환공 때 요리사인 역아(易牙)가 치수와 민수를 물맛만 보고도 알아맞히었다는 고사에서 따왔다. 누린 풀과 향초가 있으면 누구든 향초를 취하듯, 티끌 세상의 명리를 멀리하고 대숲 속의 고요를 택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못에는 물고기가 놀고, 대숲에는 새가 노래한다. 채마밭을 일궈 채소를 가꾸고, 차 달이는 새 연기는 하늘하늘 구름 위로 솟는다. 한 모금 머금어 내리면 산 아래 사바 세상은 봄꿈인양 아득하다.
침교 법훈 또한 다산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 중 하나다. 그는 두 수의 차시를 남겼다. 먼저 율시 제 7수를 읽어보자.

參差石角穴多層 들쭉날쭉 바위에 구멍도 층층인데
蒲鴿分飛各自能 멧비둘기 나눠 날며 각자 절로 능하도다.
攪睡難堪連夜雨 밤마다 빗소리에 잠자기 난감하고
扶衰猶賴古年藤 늙은 몸 해묵은 등나무 지팡이 짚었네.
偶從藉艸班荊地 우연히 자리 깔고 거친 땅 차지하여
欣見焙茶剪芋僧 차를 덖고 토란 베는 스님네를 기뻐 본다.
休怪頭陀受人侮 승려로 모욕 받음 괴이타 하지 말라
汚池自古出荷菱 더러운 연못에서 연꽃이 나오니라.

2구의 포합(蒲鴿)은 두보의 시에 “광주리 기울이자 포합이 푸르러, 눈 가득 낯빛이 화안하구나.(傾筐蒲鴿靑, 滿眼顔色好)”라 한데서 보듯 흔희 청참외의 별칭으로 쓴다. 하지만 여기서는 글자대로 멧비둘기로 푼다. 벼랑에 숭숭 뚫린 구멍에 멧비둘기가 둥지를 틀었다. 그 험한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리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 1,2구다. 빗소리는 잠을 자꾸 깨우고, 쇠한 몸은 등나무 지팡이에 기대고야 바깥 걸음을 한다. 봄을 맞아 차를 덖고 토란대를 자르는 스님을 보면서 문득 차오르는 기쁨을 노래했다. 승려로 천대 받고 모욕을 당하지만, 더러운 진흙 뻘을 뚫고 청정한 연꽃이 떠오르듯, 승려의 삶도 그와 같은 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睡起時時要磑茶 잠 깨어 때때로 맷돌에 차를 가니
春來處處可尋花 봄 오자 곳곳마다 꽃 찾을 수 있구나.
已知此世安身物 이 세상 몸 편히 할 물건 무엇인지 알겠나니
只是山中一艸家 다만 산 속 한 채의 초가집이 그것일세.

침교 법훈의 절구 제 1수다. 잠 깨어 일어나 정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문득 맷돌에 차를 간다. 봄흥을 주체치 못해 꽃 구경 하러 이 골 저 골을 헤맨다. 산속에 오두마니 선 초가집 한 채, 이곳만이 내 삶을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는 복지와 낙원이다.
수룡 색성과 침교 법훈은 아암 혜장의 고제(高弟)로 다산에게서도 배운 바 있는 이른바 전등계(傳燈契)의 일원이다. 다산이 이들에게 써준 글이 여러 편 남아 있다. 수룡은 1백 꿰미의 향차에 대해 적어, 당시 마시던 떡차의 보관 형태와 백련차 차밭의 차 생산량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언급을 남겼다. 침교 또한 승려들이 차 덖는 모습과 차 맷돌에 직접 차를 가는 정황을 기록하여 당시의 차 생활을 증언했다.


철선 혜즙의 차시

수룡 색성과 침교 법훈이 아암 혜장의 고제였다면, 철선 혜즙은 항렬이 하나 아래인 시승(詩僧)이다. 그는 율시 12수를 두 차례 차운하여 24수를 남겼고, 그중 차시가 5수나 된다.

一部楞嚴万慮澄 한부의 『능엄경』에 온갖 번뇌 맑아지니
境廖廖處氣騰騰 경계도 해맑아라 기운도 불끈 솟네.
謳和淸癖何時減 구화(謳和)의 청벽(淸癖)이야 어느 때나 줄어들리
妙喜風痾逐日增 묘희(妙喜)의 풍아(風痾)만 날마다 늘어난다.
麝炷香中延野客 사주향(麝炷香) 가운데서 야객(野客)을 맞이하고
龍團烟裡送隣僧 용단(龍團) 연기 속에서 이웃 스님 전송한다.
已知不踏紅塵路 홍진 길 밟지 않음 이미 알고 있거니
怊悵無人會此情 이런 맘 함께 나눌 사람 없음 슬프다.

철선 혜즙의 율시 제 8수다. 『능엄경』을 소리 높여 읽으니 아랫배에서 기운이 불끈 솟는다. 들끓던 번뇌가 흔적도 없다. 3구의 ‘구화(謳和)’는 원문에는 ‘구화(漚和)’라 했으나 바로 잡는다. 노래로 화답한다는 말이다. 시 짓는 벽(癖)만큼은 불법 공부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묘희(妙喜)는 유마거사(維摩居士)의 국토를 가리킨다. 불법에의 향념이 나날이 깊어짐을 말했다. 향 피워 손님을 맞고, 용단차(龍團茶)를 대접 한 후 손님을 배웅한다. 하지만 그나마 찾는 이 없어 내 이러한 깨달음을 나눌 수 없음이 때로 서운하다는 말이다.
다음은 철선 혜즙의 두 번째 율시 제 4수다.

採芳曾不踏溪沙 꽃 캐자고 시내 모래 밟은 적 아예 없어
幽徑還應合翠蘿 그윽한 길 벽라(碧蘿) 넝쿨 하나 되어 막혔으리.
尺霧堪容斑豹隱 지척 안개 얼룩 표범 감추기에 충분하고
長風時化大鵬適 긴 바람은 이따금 대붕(大鵬) 맞게 변화하네.
東峰月向琴照心 동봉 달빛 거문고 향해 마음을 비추이고
北苑茶含鳥舌多 북원(北苑) 차는 새 혓바닥 많이도 머금었다.
天趣從來誰與說 천취(天趣)를 이제껏 뉘와 함께 말하리오
淸狂獨此可消磨 청광(淸狂)으로 이를 홀로 다 써서 없애리라.

냇가로 내려온 적이 없으니, 그 사이에 소롯길은 벽라 덩굴로 막혀 있겠지. 자옥한 안개는 표범을 감추고, 긴 바람은 큰 붕새가 날아가며 일으키는 것처럼 시원하다. 달빛은 거문고 위에 내려앉아 내 마음을 비춘다. 이맘 때면 차밭에는 새 혓바닥 같은 일창일기 첫잎들이 많이도 올라왔겠구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라 오는 이 유현한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으니, 청광(淸狂)으로 혼자 한 세상 건너갈 밖에.

菜圃朝來沆瀣澄 채마밭에 아침 되니 이슬이 해맑은데
六銖衫薄氣騰騰 육수삼(六銖衫)이 얇아도 기운이 솟는구나.
澗過寒雨芳隨歇 찬비가 시내 지나가자 꽃다움도 이우는데
竹受輕霜色轉增 엷은 서리 내린 대는 빛깔 더욱 짙어지네.
幽帙請評玄石老 현석(玄石) 장로께선 유질(幽帙)에 평 청하고
嫩芽見試白蓮僧 백련사 스님은 여린 차싹 시험한다.
半生跌宕靑天外 푸른 하늘 밖에서 반평생 질탕하니
名利區區不用情 명리는 구구하다 마음 쓰지 않으리.

위는 두 번째 율시의 제 8수다. 채마밭에 이슬 맑고, 찬비에 초록이 시들며, 서리맞아 대나무가 더 푸르러지는 가을의 풍경이다. 5구의 현석(玄石) 장로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6구에서는 백련사의 승려가 여린 차싹으로 차를 끓이는 광경을 노래했다. 푸른 하늘을 닮은 마음, 구구한 명리 따위는 들일 구석이 없다.
이밖에 철선 혜즙의 「차운증초의(次韻贈草衣)」 2수의 두 번 째 시에도 차 따는 모습이 보인다.

一肩壞色坐芳林 한쪽 어깨 저물도록 꽃다운 숲에 앉아
時見含花過異禽 꽃 물고 지나가는 기이한 새 바라본다.
執衽採茶延野客 소매 잡고 차를 따서 야객(野客)을 맞이하고
鑿池貯月印禪心 우물 파서 달을 담아 선심(禪心)을 인(印) 찍누나.
閒蹤不負三生石 한가한 자취 삼생석(三生石)을 저버리지 않았거니
佳句終成百鍊金 고운 싯귀 백련금(百鍊金)을 마침내 이뤘구나.
白拂紅藤香案裡 등나무 향안(香案) 안에 흰 종이 펼쳐내니
毫光爛熳別人吟 다른 사람 지은 시에 백호광(白毫光)이 난만하다.

넋놓고 숲에 앉아 신록을 바라본다. 어여쁜 새가 꽃잎을 물고 지나간다. 날도 어느새 뉘엿하다. 정신을 차리고 소매를 여며 찻잎을 딴다. 이것으로 차를 덖어 손님 대접을 해야지. 연못엔 달빛을 모셔다가 월인천강(月印千江)의 선심(禪心)을 노래해야겠다. 삼생석(三生石)은 당나라 때 승려 원관(圓觀)이 재생하여 이원(李源)과 천축사(天竺寺) 뒷산의 바위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시는 조탁을 거듭해서 마치 백번 단련한 무쇠 같다. 그 시를 꺼내 읽으니 백호광이 뻗쳐나온다.
끝으로 철선의 「차운증하의(次韻贈荷衣)」를 읽어본다.

掃地焚香點發微 땅 쓸고 향을 살라 그윽한 뜻 점검하고
繩牀茶碗漫相依 승상(繩床)에서 찻사발로 편안히 기대었네.
雲誰送汝來簷宿 구름아 누가 널 보내서 처마 밑에 와서 자나
鶴領忘機拂頂飛 학은 기심(機心) 다 잊고 정수리 떨쳐 날아간다.
何恨閻浮隨別轉 작별하고 염부(閻浮)로 돌아감 어이 한하리오
維期兜率會同歸 도솔천에 함께 가길 다만 기약 할 뿐일세.
道交澹泊貧非病 가난은 병 아니라 도(道)의 사귐 담박하니
捫虱談玄對夕暉 이 잡으며 현담(玄談)하다 저녁 볕과 마주하네.

마당을 쓰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과 같다. 향을 피우면 잡념이 사라진다. 그 속에서 미묘한 저울질이 한창이다. 새끼 꼬아 얽은 평상에 앉아 찻 사발 들고 앉았다. 구름 따라 학이 논다. 이승을 떠나 염부제로 돌아가는 것은 안타깝지가 않다. 다만 도솔천에 들기만을 꿈꿀 뿐이다. 이를 잡으며 나누는 현담에 하루 해 저무는 것도 잊었다.
철선의 시에는 용단차와 북원의 작설차, 백련사 승려의 차 맛 감상, 소매를 여며 따는 찻잎 채취, 평상에 앉아 마시는 차의 흥취 등 차생활의 여러 모습이 잘 소묘되어 있다.

이상 『육로산거영』에 나오는 15수의 차시를 차례로 읽었다. 다산의 시는 문집에 누락된 것이고, 다른 스님들의 차시도 여태껏 알려진 바 없던 작품들이다. 또 이들 작품 속에는 석옥 청공에서 태고 보우를 거쳐 자신들에게까지 이어진 해동 선맥(禪脈)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자부도 깃들어 있어, 선종사의 맥락에서도 음미해볼 여지가 크다. 이에 대해서는 별고에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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