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기행

2015. 6. 18. 11:34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서촌 기행

20150613  토요일 , 맑음

 

- 한국식물연구회 6월 수시탐사에서 ......

 

 

 

 옥인동 시인 <이상의 집>에서 ......

 

 

 

 

 

 

 

 

 

 

 

 

 

 

 

 

1930년대 대표작 - 이상의 날개 전문 1930년대 / 일제강점기 소설

2014.11.2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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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기력한 한 남자의 일상과 고뇌를 그린 작품이에요.

 

이상의 <날개 >전문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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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 ( 李  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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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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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 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 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 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열자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만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 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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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로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놓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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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 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 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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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 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험이 되오?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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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 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을 알 길이 없다. 33번지 18 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18 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가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도오랑내, 뜨물내, 비눗내.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들의 문패가 제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이 18 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이라는 것이 일각이 져서 외따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한길이나 마찬가지 대문인 것이다. 온갖 장사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를 열고 방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33번지 대문에 그들 18 가구의 문패를 몰아다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각 미닫이 위 백인당이니 길상당이니 써 붙인 한곁에다 문패를 붙이는 풍속을 가져 버렸다.

내 방 미닫이 위 한곁에 칼표 딱지를 넷에다 낸 것만한 내---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도 이 풍속을 좇은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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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아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이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 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이 33번지 18 가구 속에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 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18 가구에 각기 빌어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가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지붕 밑 볕 안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 아니 그 꽃에 매어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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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은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쳐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이 절대적인 내 방은 대문간에서 세어서 똑 일곱째 칸이다. 럭키 세븐의 뜻이 없지 않다. 나는 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훈장처럼 사랑하였다. 이런 이 방이 가운데 장지로 말미암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그것이 내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누가 알랴?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 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 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드는 방이 아내 방이요, 볕 안드는 방이 내 방이요 하고 아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 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조그만 돋보기를 꺼내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를 꺼내 가지고 그을려 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점에 모아가지고 그 초점이 따근따근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을리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 이르는, 고 얼마 안 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큼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놓인 그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본다. 고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구멍을 내 코에 가져다 대고 숨 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 본다.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 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 그러나 그 것은 분명하지 않다. ? 아내의 체취는 여기 늘어섰는 가지각색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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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였다. 내 방이 벽에 못 한 개 꽂히지 않은 소박한 것인 반대로, 아내 방에 는 천장 밑으로 쫙 돌려 못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걸렸다. 여러 가지 무늬가 보기 좋다. 나는 그 여러 조각의 치마에서 늘 아내의 동체와, 그 동체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포우즈를 연상하고 연상하면서 내 마음은 늘 점잖지 못하다.

그렇건만 나에게는 옷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 옷을 주지 않았다. 입고 있는 골덴 양복 한 벌이 내 자리옷이었고 통상복과 나들이옷을 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이넥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통한 내 내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다 빛이 검다. 그것은 내 짐작 같아서는 즉 빨래를 될 수 있는 데까지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허리와 두 가랑이 세 군데 다 - 고무밴드가 끼어 있는 부드러운 사루마다를 입고 그리고 아무 소리없이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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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손수건 만해졌던 볕이 나갔는데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요만 일에도 좀 피곤하였고 또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내 방으로 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그만 내 방으로 건너간다. 내 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한번도 걷은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잠은 잘 오는 적도 있다. 그러나 또 전신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적도 있다. 그런 때는 아무 제목으로나 제목을 하나 골라서 연구하였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 없고, 한잠 자고 깨인 나는 속이 무명헝겊이나 메밀껍질로 띵띵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나는 그러나 그런 이불 속의 사색 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대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는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 보다는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 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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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 시나 네 시쯤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18 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18 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내 아내만 못하였다.

열한 시쯤 해서 하는 아내의 첫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 해서 하는 두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아내에게 직업이 없었다면 같이 직업이 없는 나처럼 외출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 것인데- 아내는 외출한다. 와출할 뿐만 아니라 내객이 많다.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종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만 된다.

불장난도 못한다. 화장품 냄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 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오십전 짜리 은화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에 써야 옳을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 두고 두고 한 것이 어느 결에 모여서 꽤 많아졌다 어느 날 이것을 본 아내는 금고처럼 생긴 벙어리를 사다 준다.

나는 한 푼씩 한 푼씩 그 속에 넣고 열쇠는 아내가 가져갔다. 그 후에도 나는 더러 은화를 그 벙어리에 넣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게을렀다. 얼마 후 아내의 머리 쪽에 보지 못하던 누깔잠이 하나 여드름처럼 돋았던 것은 바로 그 금고형 벙어리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증거일까. 그러나 나 는 드디어 머리맡에 놓았던 그 벙어리에 손을 대지 않고 말았다. 내 게으름은 그런 것에 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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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암만 깊이 들어가도 비오는 날만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때 나에게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했다. 내객들은 장지 저쪽에 내가 있는 것을 모르나 보다. 내 아내와 나도 좀 하기 어려운 농을 아주 서슴지 않고 쉽게 해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를 찾은 서너 사람의 내객들은 늘 비교적 점잖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자정이 좀 지나면 으레 돌아들 갔다.

그들 가운데에는 퍽 교양이 얕은 자도 있는 듯 싶었는데, 그런 자는 보통 음식을 사다 먹고 논다.

그래서 보충을 하고 대체로 무사하였다. 나는 우선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보다.

   아내는 늘 진솔 버선만 신었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을 짓는 것을 나는 한번도 구경한 일은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때면 내 방으로 내 조석 밥을 날라다 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나와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밥은 분명 아내가 손수 지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은 없다. 나는 늘 웃방에서나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모이를 넓적넓적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더러 없지 않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었다. 영양 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의 뼈가 불쑥불쑥 내어 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 차를 돌쳐 눕지 않고는 여기저기가 배겨서 나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이불 속에서 아내가 늘 흔히 쓸 수 있는 저 돈의 출처를 탐색해 내는 일변 장지 틈으로 새어나오는 아랫방의 음성은 무엇일까를 간단히 연구하였다.

나는 잠이 잘 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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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았다. 아내가 쓰는 그 돈은 내게는 다만 실없는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 모를 내객들이 놓고 가는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왜 그들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왜 내 아내는 그 돈을 받아야 되나? 하는 예의 관념이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예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혹 무슨 댓가일까? 보수일까? 내 아 내가 그들의 눈에는 동정을 받아야만 할 한 가엾은 인물로 보였던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으레 내 머리는 그냥 혼란하여 버리고 버리고 하였다. 잠들기 전에 획득했다는 결론이 오직 불쾌하다는 것 뿐이었으면서도 나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 보거나 한 일이 참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대체 귀찮기도 하려니와 한잠 자고 일어나는 나는 사뭇 딴 사람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만 두는 까닭이다.

   내객들이 돌아가고, 혹 외출에서 돌아오고 하면 아내는 간편한 것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내 방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불을 들치고 내 귀에는 영 생동생동한 몇 마디 말로 나를 위로하려든다. 나는 조소도 고소도 홍소도 아닌 옷음을 얼굴에 띠고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는 방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아내는 능히 내가 배고파하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러나 아랫방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나에게 주려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나를 존경하는 마음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적이 마음이 든든한 것을 좋아했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귀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 머리맡에 아내가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고 금고형 벙어리 속에 은화가 얼마 만큼이나 모였을까? 나는 그러나 그것을 쳐들어 보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의욕도 기원도 없이 그 단추구멍처럼 생긴 틈바구니로 은화를 떨어뜨려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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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 같이, 왜 아내는 나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같이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고것이 내 손가락 닿는 순간에서부터 고 벙어리 주둥이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것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달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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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넣어 버렸다. 그 때 벙어리 속에는 몇 푼이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고 은화들이 꽤 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지구 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 바삐 내려 버리고 싶었다.

이불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나는 고 은화를 고 벙어리에 넣고 넣고 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나는 아내가 손수 벙어리를 사용하였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벙어리도 돈도 사실은 아내에게만 필요한 것이지 내게는 애초부터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었으니까 될 수만 있으면 그 벙어리를 아내는 아내 방으로 가져 갔으면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가져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내 방으로 가져다 둘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 즈음에는 아내의 내객이 워낙 많아서 내가 아내 방에 가 볼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변소에 갖다 집어 넣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아내의 꾸지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돈은 돈대로 머리맡에 놓고 가지 않나! 내 머리맡에는 어느덧 은화가 꽤 많이 모였다.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는 알 길이 없었다. 쾌감, 쾌감, 하고 나는 뜻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꼈다.

아내는 물론 나를 늘 감금하여 두다시피 하여 왔다. 내게 불평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중에도 나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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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내의 밤 외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거리에서 잊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나온 은화를 지폐로 바꾼다. 오 원이나 된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목적지를 잃어버리기 위하여 얼마든지 거리를 쏘다녔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리는 거의 경이에 가까울 만큼 내 신경을 흥분시키지 않고는 마지 않았다. 나는 금시에 피곤하여 버렸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까닭을 잃어버린 채 이 거리 저 거리로 지향없이 헤매었다. 돈은 물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쓸 아무 엄두도 나서지 않았다. 나는 벌써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나는 과연 피로를 이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가까스로 내 집을 찾았다. 나는 내 방을 가려면 아내 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아내에게 내객이 있나 없나를 걱정하면서 미닫이 앞에서 좀 거북살스럽게 기침을 한번 했더니, 이것은 참 또 너무도 암상스럽게 미닫이가 열리면서 아내의 얼굴과 그 등 뒤에 낯설은 남자의 얼굴이 이쪽을 내다보는 것이다. 나는 별안간 내어 쏟아지는 불빛에 눈이 부셔서 좀 머뭇머뭇했다.

나는 아내의 눈초리를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체하는 수 밖에 없었다.

? 나는 어쨌든 아내의 방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안 되니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는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암만해도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걸을 때는 몰랐더니 숨이 차다. 등에 식은땀이 쭉 내배인다. 나는 외출한 것을 후회하였다. 이런 피로를 잊고 어서 잠이 들었으면 좋았다. 한잠 잘 자고 싶었다.

얼마동안이나 비스듬히 엎드려 있었더니 차츰차츰 뚝딱거리는 가슴 동계가 가라앉는다. 그만 해도 우선 살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들쳐 반듯이 천장을 향하여 눕고 쭈욱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가슴의 동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랫방에서 아내와 그 남자의 내 귀에 도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기척이 장지 틈으로 전하여 왔던 것이다. 청각을 더 예민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아내와 남자는 앉았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고 일어서면서 옷과 모자 쓰는 기척이 나는 듯하더니 이어 미닫이가 열리고 구두 뒤축 소리가 나고 그리고 뜰에 내려서는 소리가 쿵 하고 나면서 뒤를 따르는 아내의 고무신 소리가 두어 발짝 찍찍나고 사뿐사뿐 나나 하는 사이에 두사람의 발소리가 대문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내의 이런 태도를 본 일이 없다. 아내는 어떤 사람과도 결코 소곤거리는 법이 없다. 나는 웃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웠는 동안에도 혹 술이 취해서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내객들의 담화는 더러 놓치는 수가 있어도 아내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말소리는 일찌기 한마디도 놓쳐 본 일이 없다.

더러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있어도 나는 그것이 태연한 목소리로 내 귀에 들렸다는 이유로 충분히 안심이 되었다.

그렇던 아내의 이런 태도는 필시 그 속에 여간하지 않은 사정이 있는 듯 시피 생각이 되고 내 마음은 좀 서운했으나 그보다도 나는 좀 너무 피로해서 오늘만은 이불 속에서 아무 것도 연구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잠을 기다렸다. 낮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문간에 나간 아내도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흐지부지 나는 잠이 들어 버렸다. 꿈이 얼쑹덜쑹 종을 잡을 수 없는 거리의 풍경을 여전히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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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몹시 흔들렸다. 내객을 보내고 들어온 아내가 잠든 나를 잡아 흔드는 것이다. 나는 눈을 번 쩍 뜨고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나는 좀 눈을 비비고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노기가 눈초리에 떠서 얇은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좀처럼 이 노기가 풀리기 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벼락이 내리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쌔 근 하는 숨소리가 나면서 부스스 아내의 치맛자락 소리가 나고 장지가 여닫히며 아내는 아내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몸을 돌쳐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개구리처럼 엎드리고 엎드려서 배가 고픈 가운데도 오 늘 밤의 외출을 또 한 번 후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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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나는 사실 밤이 퍽으나 이슥한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네 말마따나 자정 전인지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무 피곤하였다. 오래간만에 나는 너무 많이 걸은 것이 잘못이다.

내 잘못이라면 잘못은 그것 밖에 없다. 외출은 왜 하였더냐고? 나는 그 머리맡에 저절로 모인 오 원 돈을 아무에게라도 좋으니 주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잘못이라면 나는 그렇게 알겠다. 나는 후회하고 있지 않나? 내가 그 오 원 돈을 써 버릴 수가 있었던들 나는 자정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복잡하였고 사람은 너무도 들끓었다. 나는 어느 사람을 붙들고 그 오 원 돈을 내어 주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좀 쉬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 짐작 같아서는 밤이 어지간히 늦은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불행히도 자정 전이었다는 것은 참 안된 일이다. 미안한 일이다. 나는 얼마든지 사죄하여도 좋다. 그러나 종시 아내의 오해를 풀 지 못하였다 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사죄하는 보람은 그럼 어디 있나? 한심하였다.

한 시간 동안을 나는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불을 홱 젖혀 버리고 일어나서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비칠비칠 달려갔던 것이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오 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 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33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해가 들창에 훨씬 높았는데 아내는 이미 외출하고 벌써 내 곁에 있지는 않다. 아니! 아내는 엊저녁 내가 의식을 잃은 동안에 외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조사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전신이 찌뿌드드한 것이 손가락 하나 꼼짝할 힘조차 없었다. 책보보다 좀 작은 면적의 볕이 눈이 부시다. 그 속에서 수없이 먼지가 흡사 미생물처럼 난무한다. 코가 콱 막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낮잠을 자기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코를 스치는 아내의 체취는 꽤 도발적이었다. 나는 몸을 여러번 여러번 비비꼬면서 아내의 화장대에 늘어선 고 가지각색 화장품 병들의 마개를 뽑았을 때 풍기는 냄새를 더듬느라고 좀처럼 잠은 들지 않는 것을 나는 어찌하는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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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디다 못하여 나는 그만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서 내 방으로 갔다. 내 방에는 다 식어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내 방에는 다 식어 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내 모이를 여기다 두고 나간 것이다. 나는 우선 배가 고팠다. 한 숟갈을 입에 떠 넣었을 때 그 촉감은 참 너무도 냉회와 같이 써늘하였다. 나는 숟갈을 놓고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룻밤을 비었던 내 이부자리는 여전히 반갑게 나를 맞아 준다. 나는 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 번에는 참 늘어지게 한잠 잤다. ----

내가 잠을 깬 것은 전등이 켜진 뒤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보다.

아니! 돌아왔다 또 나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상고하여 무엇하나?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밤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돈 오 원을 아내 손에 쥐어 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몰랐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 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또 엊저녁에 그 돈 오 원 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주어 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또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쳐넣어 버린 것도 후회하였다. 나는 실없이 실망하면서 습관처럼 그 돈 오 원이 들어 있던 내 바지 포켓에 손을 넣어 한번 휘둘러 보았다. 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이 원 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골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 또 거리로 나섰다. 나서면서 나는 제발 시간이 화살 단 듯해서 자정이 어서 홱 지나 버렸으면 하고 조바심을 태웠다. 아내에게 돈을 주고 아내 방에서 자 보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좋았지만 만일 잘못해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내의 눈총을 맞는 것은 그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저물도록 길가 시계를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또 지향없이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러나 이날은 좀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좀 너무 더디게 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경성역(京城驛) 시계가 확실히 자정을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하였다. 그날은 그 일각대문에서 아내와 아내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섰는 것을 만났다. 나는 모른 체하고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내도 들어왔다. 와서는 이 밤중에 평생 안 하던 쓰레질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눕는 기척을 엿보자마자 나는 또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가서 그 돈 이 원을 아내 손에 덥석 쥐어 주고 그리고---하여간 그 이 원을 오늘 밤에도 쓰지 않고 도로 가져온 것이 참 이상하다는 듯이 아내는 내 얼굴을 몇번이고 엿보고---아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 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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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도 내가 잠이 깨었을 때는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내 방으로 가서 피곤한 몸이 낮잠을 잤다. 내가 아내에게 흔들려 깨었을 때는 역시 불이 들어온 뒤였다. 아내는 자기 방으로 나를 오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아내는 끊임없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내 팔을 이끄는 것이다. 나는 이런 아내의 태도 이면에 엔간치 않은 음모가 숨어 있지나 않은가 하고 적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의 하자는 대로 아내의 방으로 끌려 갔다. 아내 방에는 저녁 밥상이 조촐하게 차려져 있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면 나는 이틀을 굶었다. 나는 지금 배고픈 것까지도 긴가민가 잊어버리고 어름어름하던 차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최후의 만찬을 먹고 나자마자 벼락이 내려도 나는 차라리 후회하지 않을 것을. 사실 나는 인간 세상이 너무나 심심해서 못 견디겠던 차다. 모든 것이 성가시고 귀찮았으나 그러나 불의의 재난이라는 것은 즐겁다.

나는 마음을 턱 놓고 조용히 아내와 마주 이 해괴한 저녁밥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밥을 먹은 뒤에도 나는 말이 없이 부스스 일어나서 내 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아내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나는 벽에 기대어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그리고 벼락이 떨어질 테거든 어서 떨어져라 하고 기다렸다.

오 분! 십 분!

그러나 벼락은 내리지 않았다. 긴장이 차츰 풀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덧 오늘 밤에도 외출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은 확실히 없다. 오늘은 외출하여도 나중에 올 무슨 기쁨이 있나? 내 앞이 그저 아뜩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렀다. 금시 먹은 밥이 목으로 자꾸 치밀어 올라온다. 메스꺼웠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 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는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 보다.

왜 없느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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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더니 아내가 또 내 방에를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아마 이제서야 벼락이 내리려 나보다 하고 숨을 죽이고 두꺼비 모양으로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떨어진 입을 새어나오는 아내의 말소리는 참 부드러웠다. 정다웠다. 아내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란다.

나는 실없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람의 속을 환하게 들여다보는고 해서 나는 한편으로 슬그머니 겁도 안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내게 돈을 줄 생각이 있나보다, 만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은 일일까. 나는 이불 속에 뚤뚤 말린 채 고개도 들지 않고 아내의 다음 거동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옜소'하고 내 머리맡에 내려뜨리는 것은 그 가뿐한 음향으로 보아 지폐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오늘을랑 어제보다도 늦게 돌아와도 좋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그 돈이 무엇보다도 고맙고 반가웠다.

어쨌든 나섰다. 나는 좀 야맹증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밝은 거리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는 경성역 일 이등 대합실 한곁 티이루움에를 들렀다. 그것은 내게는 큰 발견이었다. 거기는 우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안 온다. 설사 왔다가도 곧 돌아가니까 좋다. 나는 날마다 여기 와서 시간 을 보내리라 속으로 생각하여 두었다. 제일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리라는 것이 좋았다. 섣불리 서투른 시계를 보고 그것을 믿고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가 큰 코를 다쳐서는 안된다.

   나는 한 복스에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마주 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 잔 커피가 즐거운가 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 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 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티이루움들의 그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들리는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 소리가 모오짜르트보다도 더 가깝다.

나는 메뉴에 적힌 몇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번 읽었다. 그것들은 아물아물하는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거기서 얼마나 내가 오래 앉았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객이 슬며시 뜸해지면서 이 구석 저 구석 걷어치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아마 닫는 시간이 된 모양이다. 열한 시가 좀 지났구나, 여기도 결코 내 안주의 곳은 아니구나, 어디 가서 자정을 넘길까? 두루 걱정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섰다. 비가 온다.

빗발이 제법 굵은 것이 우비도 우산도 없는 나를 고생을 시킬 작정이다. 그렇다고 이런 괴이한 풍모를 차리고 이 홀에서 어물어물하는 수도 없고 에이 비를 맞으면 맞았지 하고 그냥 나서 버렸다.

대단히 선선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골덴 옷이 젖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속속들이 스며들면서 추근거린다. 비를 맞아 가면서라도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거리를 돌아다녀서 시간을 보내려 하였으나, 인제는 선선해서 이 이상은 더 견딜 수가 없다. 오한이 자꾸 일어나면서 이가 딱딱 맞부딪는다. 나는 걸음을 늦추면서 생각하였다. 오늘 같은 궂은 날도 아내에게 내객이 있을라구?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집으로 가야겠다. 아내에게 불행히 내객이 있거든 내 사정을 하리라. 사정을 하면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아 주겠지.

부리나케 와 보니까 그러나 아내에게는 내객이 있었다. 나는 너무 춥고 척척해서 얼떨김에 노크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나는 보면 아내가 덜 좋아할 것을 그만 보았다.

   나는 감발자국 같은 발자국을 내면서 덤벙덤벙 아내 방을 디디고 내 방으로 가서 쭉 빠진 옷을 활활 벗어 버리고 이불을 뒤썼다. 덜덜덜덜 떨린다. 오한이 점점 더 심해 들어온다. 여전 땅이 꺼져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제법 근심스러운 얼굴이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여전히 으스스 춥고 또 골치가 아프고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 씁쓸하면서 다리 팔이 척 늘어져서 노곤하다. 아내는 내 머리를 쓱 짚어 보더니 약을 먹어야지 한다. 아내 손 이 이마에 선뜻한 것을 보면 신열이 어지간한 모양인데 약을 먹는다면 해열제를 먹어야지 하고 속 생각을 하자니까 아내는 따뜻한 물에 하얀 정제약 네 개를 준다.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널름 받아먹었다. 쌉싸름한 것이 짐작 같아서는 아마 아스피린인가 싶다.

나는 다시 이불을 쓰고 단번에 그냥 죽은 것처럼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콧물을 훌쩍훌쩍 하면서 여러 날을 앓았다. 앓는 동안에 끊이지 않고 그 정제약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에 감기도 나았다. 그러나 입맛은 여전히 소태처럼 썼다.

   나는 차츰 또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아내는 나더러 외출하지 말라고 이르는 것이 다. 이 약을 날마다 먹고 그리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는 것이다. 공연히 외출을 하다가 이렇게 감기가 들어서 저를 고생시키는게 아니란다. 그도 그렇다. 그럼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 약을 연복하여 몸을 좀 보해 보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날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이나 낮이나 잤다. 유난스럽게 밤이나 낮이나 졸려서 견딜 수 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잠이 자꾸만 오는 것은 내가 몸이 훨씬 튼튼해진 증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아마 한 달이나 이렇게 지냈나보다. 내 머리와 수염이 좀 너무 자라서 후틋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내 거울을 좀 보리라고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나는 아내 방으로 가서 아내의 화장대 앞에 앉아 보았다. 상당하다. 수염과 머리가 참 상당하였다.

오늘은 이발을 좀 하리라고 생각하고 겸사겸사 고 화장품 병들 마개를 뽑고 이것저것 맡아 보았다. 한동안 잊어버렸던 향기 가운데서는 몸이 배배 꼬일 것 같은 체취가 전해 나왔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속으로만 한 번 불러 보았다. "연심이---"하고…… 오래간만에 돋보기 장난도 하였다. 거울 장난도 하였다. 창에 든 볕이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면 오월이 아니냐.

   나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한 번 켜 보고 아내 베개를 내려 베고 벌떡 자빠져서는 이렇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참 세상의 아무것과도 교섭을 가지지 않는다. 하느님도 아마 나를 칭찬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실로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최면약 아달린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흡사 아스피린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열어 보았다. 꼭 네 개가 비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네 개의 아스피린을 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나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 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이렇게 나는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 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별안간 아뜩하더니 하마터면 나는 까무러칠 뻔하였다. 나는 그 아달린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산을 찾아 올라갔다.

   인간 세상의 아무것도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걸으면서 나는 아무쪼록 아내에 관계되는 일은 일 체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길에서 까무러치기 쉬우니까다. 나는 어디라도 양지가 바른 자리를 하나 골라 자리를 잡아 가지고 서서히 아내에 관하여서 연구할 작정이었다. 나는 길가의 돌 장판, 구경도 못한 진개나리꽃, 종달새, 돌멩이도 새끼를 까는 이야기, 이런 것만 생각하였다. 다행히 길 가에서 나는 졸도하지 않았다.

거기는 벤치가 있었다. 나는 거기 정좌하고 그리고 그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머리가 도무지 혼란하여 생각이 체계를 이루지 않는다. 단 오 분이 못가서 나는 그만 귀찮은 생각이 번쩍 들면서 심술이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아달린을 꺼내 남은 여섯 개를 한꺼번에 질겅질겅 씹어먹어 버렸다. 맛이 익살맞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벤치 위에 가로 기다랗게 누웠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그 따위 짓을 했나, 알 수가 없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나는 게서 그 냥 깊이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바위 틈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 하고 언제까지나 귀에 어렴풋이 들려 왔다.

   내가 잠을 깨었을 때는 날이 환히 밝은 뒤다. 나는 거기서 일주야를 잔 것이다. 풍경이 그냥 노오랗게 보인다. 그 속에서도 나는 번개처럼 아스피린과 아달린이 생각났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마르크,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아내는 한 달 동안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그것은 아내 방에서 이 아달린 갑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다.

무슨 목적으로 아내는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 놓고, 그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 그러나 또 생각하여 보면 내가 한 달을 두고 먹어 온 것이 아스피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무슨 근심되는 일이 있어서 밤이면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정작 아내가 아달린을 사용한 것이나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참 미안하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큰 의혹을 가졌다는 것이 참 안됐다.

   나는 그래서 부리나케 거기서 내려왔다. 아랫도리가 홰홰 내어 저이면서 어찔어찔한 것을 나는 겨우 집을 향하여 걸었다. 여덟시 가까이였다.

나는 내 잘못된 생각을 죄다 일러바치고 아내에게 사죄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급해서 그만 또 말을 잊어버렸다. 그랬더니 이건 참 큰일났다. 나는 내 눈으로 절대로 보아서 안될 것을 그만 딱 보아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만 냉큼 미닫이를 닫고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진정시키느라고 잠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기둥을 짚고 섰자니까, 일 초 여유도 없이 홱 미닫이가 다시 열리더니 매무새를 풀어헤친 아내가 불쑥 내밀면서 내 멱살을 잡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지러워서 게가 나둥그러졌다.

그랬더니 아내는 넘어진 내위에 덮치면서 내 살을 함부로 물어뜯는 것이다. 아파 죽겠다. 나는 사실 반항할 의사도 힘도 없어서 그냥 넙적 엎드려 있으면서 어떻게 되나 보고 있자니까, 뒤이어 남자가 나오는 것 같더니 아내를 한아름에 덥석 안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다소곳이 그렇게 안겨 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 여간 미운 것이 아니다. 밉다.

아내는 너 밤새워 가면서 도둑질하러 다니느냐, 계집질하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이것은 참 너무 억울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너는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려던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 번 꽥 질러 보고도 싶었으나, 그런 긴가민가한 소리를 섣불리 입밖에 내었다가는 무슨 화를 볼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억울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우선 상책인 듯시피 생각이 들길래, 나는 이것은 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툭툭 떨고 일어나서 내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원 몇십전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 밑에다 놓고 나서는, 나는 그냥 줄달음박질을 쳐서 나와 버렸다.

  

   여러번 자동차에 치일 뻔하면서 나는 그래도 경성역으로 찾아갔다. 빈자리와 마주 앉아서 이 쓰디쓴 입맛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으로나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 들여 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뜩하였다. 나는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 하면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면서…….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도 생겼다. 작은놈은 작은놈대로 큰놈은 큰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이 따뜻하다.

   나는 또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스피린과 아달린.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아내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둑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 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 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끝.

                                                   ( 1936년 作)

 

 

- 네이버 블로그 <우리나라 이야기 >

 

 

 

 

 

 

 

 

 

 

 

 

 

 

이상-날개 줄거리

  이상- 날개

이상이 쓴 날개라는 책의 줄거리와(요약 좀 너무 짧진 않게) 작품해설

좀요ㅜ 학교 숙제라 수업시간에 발표할 거라서요..

 

1.줄거리

2.작품해설

 부탁드립니다...

익명 | 2009.05.24 18:10 수정됨 | 신고

 




 


1개의 답변

답변

 

1. 줄거리
  •  
       구조가 흡사 유곽과 같은 집--그런 집들 속에 여러 가족이 살고 있는데, 내 방은 아내의 방을 거쳐 미닫이를 열어야 들어설 수 있다. 내 방은 항상 음침하다. 나는 밤낮 잠을 잔다. 아내에게는 매일같이 손이 온다. 아내가 외출을 하면 나는 그 틈을 타서 아내 방을 구경할 뿐이다.

     

     내가 잠을 자고 있으면 아내는 손이 두고 간 돈 중에서 은화 한 푼을 내 머리맡에 놓고 간다. 어느 날 나는 아내가 사다 준 벙어리에 모아 둔 돈을 몽땅 변소에 던져 버렸다. 벙어리에 돈을 넣는 것이 권태로웠기 때문이다.

     

       하루는 나는 거리로 나갔다. 번화한 거리를 걸으니 곧 피곤했으므로 생각하는 일조차 힘겨워 곧 되돌아왔다. 아내의 방문을 열어 보니 손이 와 있었다. 죄의식이 휘몰아쳤다. 밤이 깊어서 그 손은 떠났다. 나는 아내 방에 들어가서 낮에 얻은 은화와 바꾼 지폐를 도로 쥐어 주고 아내 방에서 처음으로 잠을 잤다. 며칠 뒤에도 그렇게 했다.

     

       삼일 후엔 아내가 미닫이를 열고 먼저 나를 이끌었다. 조촐한 음식까지 차려 두었었다. 나는 어떤 선고가 내리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다음날부터 나는 아내의 방이 몹시 아쉬웠다. 그러나, 내게는 돈이 없었으므로 울고 있었더니 아내는 돈을 주며 자정이 넘거든 돌아오라 했다.

     

       그날 밤 나는 비를 함빡 맞아 기어코 감기로 앓아 눕고 말았다. 나는 그 후 얼마 동안 아내가 주는 약을 먹고는 잠들곤 했다. 며칠 후 나는 아내의 경대 위에서 최면약을 발견했다. 감기 약이라면서 주던 약에 틀림없었다. 나는 몹시 서운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산으로 갔다. 나는 그 약을 먹고는 잠들고 말았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 아내의 방을 지나려다 기어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내는 내 멱살을 쥐고 나를 덮치고 물어뜯었다. 나는 거리로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쓰꼬시(和信百貨店)로 갔다. 나는 거기서 스물 여섯 해를 회고했다. 피로와 공포 때문에 오탁의 거리를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굽어보니 현란한 현실 속에 사람들이 수선을 떨고 있다. 현란을 극한 정도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자꾸나. 나는 이렇게 외쳤다.

     
     
    2. 작품해설

       날개는 한 인간이 외부세계로 부터 단절된 개인의 암울한 일상을 그린 것이다.
    이는 소설 첫부분에서 '나는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는 구절이 나와 화자인 '내'가 고립되고 소외되어 있는 개인임을 밝힌다.
    이런 인간관계는 공동체적 의식이 소멸된 근대 도시사회 특유의 인간관계이다.
    근대사회에서는 인간이 소외와 고립이라는 현상이 생겨 나며,자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짐과 함께 심할 경우 정신분열 현상의  증후까지도 나타난다. 날개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근대사회의 특수한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외부의 세계,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도 맺지않는다. 그에게는 이름이 없고 (끝까지 소설에서 밝혀지지 않고),

       개인으로서는 역사가 없고 ,직업이 없으며,생활도 없다. 그를 외부의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끈은 아내이다.

       아내가 매개 역할을 하고 있을 때에만, '나'는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에 관심을 가진다. 은화를 모아다 아내에게 주면 그의 방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기 전에는 은화란 주인공에게 반짝거리는 장난감 이상이 아닌 것이다. (돈을 장난감으로 취급하는데서 보이 듯, 그의 사물의 일상적 용도나 가치를 뒤집는다. 그의 세계에서는 가치가 전도되어 나타나며,이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의 '사회적 가치가 아닌 본래적 가치'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나'와 아내의 관계라는 것도 서로 다른 방에서 서로 다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아내는'나'남편으로서라기 보다는 식객으로서 대우한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은, 아내의 매춘에 의해 먹고사는 무기력한 인간이다. 그는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그의 욕망은 모두 아내를 향하는 왜소한 것이다. 다른 어떤 욕망이나 이상은 그에게 남아있지 않다. 아내에게 수모를 당하고 거리로 나왔을 때, 미쓰꼬시 옥상에서 '나'는 문득, 날고 싶어진다. 이상과 욕망을 되찾고 자신의 날개로 '한번만 더' 날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소설 전반에서 드러나듯,그의 자아는 이미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미쓰시꼬 옥상에서 날아보겠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그에게 의미하는 것은, 비상이 아니라 죽음이다.

    즉 '나'에게는 애초에 ,죽음에의 은밀한 욕망 역시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2009.05.24 18:10 | 신고 

- 다음 Tip 답변자료에서 ......

 

 

 

 

 

 

 

이상이 살던 집은 아니나 , 그를 기리는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 기생 금홍이와 살면서 다방을 하던 집의 연출인가?

 

 

 

 

시인 이상 <건축무한육면각체>를 해석한다면... 독서 / 취미

2009.09.1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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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金海卿)
(1910년 8월 2o일 – 1937년 4월 17일)
학력: 경성고등공업하교 건축학
수상: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경력:
1934 구인회 회원,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기사
주요작품:
이상한 기역반응(0000), 오감도(烏瞰圖), 날개,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建築無限六面角體
부제: 신기한 것들이 있는 상점에서

- 이 상 (李 箱) -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
사각이 난 원운동의 사각이 난 원운동의 사각이 난 원.
비누가 통과하는 혈관의 비눗내를 투시하는 사람.
지구를 모형으로 만들어진 지구의를 모형으로 만들어진 지구.
거세된 양말. (그 여인의 이름은 워어즈였다)
빈혈면포. 당신의 얼굴빛깔도 참새다리 같습네다.
평행사변형 대각선 방향을 추진하는 막대한 중량.
마르세이유의 봄을 해람한 코티향수가 맞이한 동양의 가을.
쾌청의 하늘에 봉유하는 Z백호. 회충양약이라고 쓰어져 있다.
옥상정원. 원후를 흉내내고 있는 마드무아젤.

 

만곡된 직선을 직선으로 질주하는 낙체공식.
시계 문자반에 XⅡ에 내려진 두 개의 젖은 황혼.
도아의 내부의 도아의 내부의 조롱의 내부의 카나리아의 내부의 감살문호의 내부의 인사

식당의 문간에 방금 도착한 자웅과 같은 붕우가 헤어진다.
검정 잉크가 엎질러진 각설탕이 삼륜차에 실린다.

 

명함을 짖밞는 군용장화. 가구를 질구하는 조화금련.
위에서 내려오고 밑에서 올라가고 위에서 내려오고 밑에서 올라간 사람은 밑에서 올라가지 아니한 위에서 내려오지 아니한 밑에서 올라가지 아니한 위에서 내려오지 아니한 사람.
저 여자의 하반은 남자의 상반에 흡사하다. (나는 애처로운 해후에 애처로워하는 나)
사각이 난 케-스가 걷기 시작이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라지에-터의 근방에서 승천하는 굳빠이.
바깥은 비. 발광어류의 군집이동.

<건축무한육면각체>를 해석한다면…

ㅡ 수많은 육면체가 결합된 형태로 이루어진 현대 건축의 기하학적 모형을 상징하는 말

 

 

화점 건물의 구조와 내부 진열대의 구조를 평면 기하학적으로 묘사.


백화점의 내부로 문을 밀거나 열고 들어가는 과정을 묘사.

 

백화점 진열대 안에 늘어놓은 비누를 마치 혈관을 통과하는 것처럼 묘사.
지구본이 진열대 위에 놓여 있음.

‘워어즈’란 상표의 여성용 양말.
속이 비치는 얇은 천으로 되어 있는 여성용 양말.
백화점 내부의 한가운데에 2층으로 오르는 층계가 길게 나 있는 모습.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제 코티향수가 경성까지 들어와 있음을 말함.

 

당시 비행기의 대명사 ‘Z백호’. 회충약 선전을 위해 비행기 모형이 사용되었음.
상품 광고를 위해 포즈를 취한 모델의 모습을 원숭이를 흉내내고 있다 설명.

옥상 위세서 건너편의 길거리를 내려다보는 것을 말함.

건너편 건물의 시계바늘 두 개가 황혼 속에 어릿하게 보이는 광경을 묘사.
길 건너 건물 안 풍경이 작은 새장 모습으로 비침. 카나리아는 그 안의 사람.

길 건너 식당 입구까지 나온 남녀가 문 앞에서 헤어지는 모습을 보임.

 

차에 싣는 상자가 마치 검정색 잉크처럼 까맣고 네모난 각설탕처럼 보임.
높은 옥상에서 내려다보아 길거리에 있는 전단 등이 명함처럼 작게 보임.
길을 걸어가는 남자들의 구둣발, 치장한 여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음.
백화점 내부에서 아래위 층을 층계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

 

 


층계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서로 지나치는 순간의 모습.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승강기(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모습을 말함.

 

승강기 근처에 방열기. 승강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승천’한다고 표현.
백화점을 나와 비 오는 거리에서 헤드라이터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 무리.

 

 

   화신백화점의 옛날 모습          

배경: 천재 시인 이상이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技手)로 발령받은 후 1932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시이다.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을 모티브로 하여 현대적인 백화점인 건물 구조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추상화했으며,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과 상품광고 등에 대해 매우 감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새로운 상품들이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는 백화점이라는 곳을 시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백화점은 모든 산업 생산품이 한 곳으로 집결되어 상품으로 소비되는 현대적인 대중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 백화점의 모든 장식과 상품 진열과 광고와 선전물들은 그 자체가 스스로 말을 건내듯 자신을 드러낸다.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화장품의 향기, 광고 문안,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애드벌룬,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광고 전단지들, 이 층을 오르내리는 숱한 사람들, 그리고 빗속을 달리는 자동차, 바쁜 걸음으로 거리를 달리는 여성들… 더 이상 거론하기조차 가슴 벅찬 이 도회의 한복판 앞 거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백화점 광고판처럼 그려진다.
- 권영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교수

 

 

 

 

출처: CharLotte + culture 시가 있는 휴식 (2009.09)

 

 

우연히 책자에서 읽어 본 시인데... 대체 무슨 뜻인지... 권영민 교수의 해석이 없었다면 끝내 이해하지 못했을 껍니다.

이상이란 시인을 잘 알 지는 못하지만 <이상문학상>이란게 있는걸 보면 그는 정말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는 듯!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하지 않았다면 한국문학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아쉽다...

 

망아

 

 

 

 

모바일글 <오감도> 이상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낙서장

2013.12.06.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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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감도
                                                             이상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
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좋소.)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 네이버 블로그 <졸려> 간지의끝 님의 자료 중에서 전재 ......

 

 

 

 

 

 

 

 

< 書 評 > 

 이상문학회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행성의 책 2013/06/23 13:47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책값이 좀 세긴 하지만 지난주에 나온 한국문학 관련서로 가장 탐나는 책은 이상문학회에서 기획한 <오감도> 전작 해석집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수류산방, 2013)다. 소개는 이렇다.

 

이상문학회가 기획하고 수류산방이 펴낸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이상의 <오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는 이상 시의 핵심으로 지목되지만 한국 문학사상 가장 난해하다고 평가되는 <오감도> 연작 15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전작 해석집이다. 이를 위해 이상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대표적 현역 문학평론가와 한국 문학 연구자 17명이 한 책에 모였다.

 

 

필진은 김인환, 황현산 등 원로로부터 신형철, 조연정, 함돈균 등 소장 평론가/연구자까지 두루 망라돼 있다. 이 중 함돈균, 신형철 평론가의 박사학위논문이 이상 연구인 것으로 아는데, 함돈균의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 이상 시적 주체의 윤리학>(수류산방, 2012)가 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이상 연구도 기대가 된다. 소장 연구자들의 논문모음으로는 <이상 문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역락, 2006)이 있었다.

 

 

 

 

 

이상 연구와 관련하여 내가 처음 읽은 책은 고은의 <이상 평전>(청하, 1992; 향연, 2003)과 함께 김윤식 교수의 책들인 듯싶은데, <이상 연구>(문학사상사, 1987), <이상문학 텍스트 연구>(서울대출판부, 1998), <이상의 글쓰기론>(역락, 2010) 등이 거기에 속한다(<이상 연구>가 절판된 건 유감이다). 김윤식 교수가 엮은 문학사상사판 이상문학전집(전5권)이 내가 처음 구비한 전집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절판된 듯싶다.  

 

 

 

이후에 나온 전집으론 김주현, 권영민 교수가 각각 엮은 전집판이 있다. 각각 <정본 이상 문학전집>(소명출판, 2009, 전3권)과 <이상 전집>(뿔, 2009, 전5권)이다(뿔에서 나온 전집은 일부 품절 상태다).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판본이건 전집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이상적인 이상 독자에 대열에 들어가볼 수 있겠다. 소설에 한정하면 권영민 교수가 엮은 <이상 소설 전집>(민음사, 2012)이 요긴하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권영민 교수의 <이상 문학의 비밀 13>(민음사, 2012), 김민수 교수의 <이상 평전>(그린비, 2012), 그리고 신범순 교수의 <이상의 무한정원 삼차각나비>(현암사, 2007)까지 꼽아볼 수 있다. <13인이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란 제목에 괜히 마음이 들떠 생각나는 책들을 적어보았다...

 

2013.3 인터넷 서평가 로쟈 <로쟈의 서재> http://blog.aladin.co.kr/mramor/6222321

 

 

티스토리 <시민행성> 자료 중에서 전재 ......

 

 

 

 

 

 

 

 

홍차용 찻그릇 전문점 쇼윈도우

 

 

 

 

 

 

홑왕원추리

 

 

 

 

 

러시안 목조인형 전문점

- 나무인형 여러개가 내부에 들어있는 <마트로시카>와는 다른 종류 같다.

 

 

 

 

화가 박노수 선생님의 저택 ->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옥인동 168-2  <박노수> 문패글씨가 멋지다

이 집은  원래 일제 때 친일파였던 윤덕영이 그 딸을 위해 지은 집이다.

한옥의 양식과 중국식 서양식 건축양식도 빌어와, 어떻게 하면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고심했던,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녹아있는 집이다.

1972년부터 동양화가 박노수선생이 살았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안평대군과 효령대군이 살던 <비해당>집터가 있고

그곳에 이르기 위한 <기린교>가 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산이 늠름하게 버틴 그곳-

 

 

 

 

 

인물

박노수 화가, 대학교수
생몰
1927년 2월 17일 (충남 연기군) ~ 2013년 2월 25일 (향년 86세)
가족
손녀 이민정(외손녀: 탈렌트, 여배우)
학력
서울대학교 회화학 학사
수상
1955 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외 1건
경력
195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외 1건

 

 

 

 

원로 한국화가 박노수는 봄을 기다리는 소년이다

뉴시스 | 유상우 | 입력 2010.03.17. 10:29

【서울=뉴시스】유상우 기자 = 선명하고 투명한 색채, 대담한 구도와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한국화의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박노수(83) 화백의 특징이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배순훈) 덕수궁미술관이 박 화백의 작업세계를 조명한 대규모 회고전 '봄을 기다리는 소년'을 연다.

화면에 등장하는 '소년'은 작가의 주요 소재다. "꿈을 좋아하던 소년시절은 영 가버렸는데도 봄을 맞이하려면 반드시 되살아오는 소년의 마음, 봄을 기다리며 초조해하는 나의 가슴은 신비스런 오색의 꿈으로 찬란하다"는 작가다.

 

 "봄 '은 작품의 맑고 순결한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작품 속 흰색과 청색의 극적 대비, 여백은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물오른 봄처럼 서서히 드러나는그 맑은 기운이 감돈다.



   충남 연기 출신인 작가는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김용준, 이상범, 장우성을 사사했다. 1953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국무총리상을 시작으로 1955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대한민국예술원상, 5·16 민족상, 은관문화훈장,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작가의 미술 입문기는 광복 이후 일본색을 배제하고 한국화단의 정체성을 찾아가던 무렵이다. 채색과 수묵을 절제된 색채와 간결한 선묘로 융합시켜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성을 구현했다. 과거와 현재,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뛰어 넘는다. 단절되려는 전통의 맥을 끌어내 현대적으로 해석, 한국미술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작가는 건강이 좋지 않다. 2003년 1월3일 갑자기 쓰러져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생활해 왔다. 처음 병명은 뇌수종이었는데, 요즘은 뇌병변으로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

   전시와 함께 1950년 이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과 인터뷰 기사, 에세이 등을 엮은 수필집 '화필 인생' 출간됐다. 책 속에 담긴 작가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진지한 모습으로 넥타이를 맨 깔끔한 정장 차림이다.

   작가의 제자인 이철주 교수(69·중앙대 한국화)는 "선생님은 정자세로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으로 그림을 그렸다"며 "특히 자신에 엄격하고 흐트러진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올곧은 선비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화와 드로잉 등 대표작 100여점이 출품됐다.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영상물과 재현한 작업실, 1970~80년대 출판된 잡지표지 등도 있다.

  명사 대담회 '미술관에서 만난 이준익 감독'(21일 오후 3시), 큐레이터 등 전문인 대상 프로그램 '작가 박노수를 논하다'(27일 오후 2시), 박노수 고가(古家) 및 작업실 탐방(4월10일 오후 2시), 작은 음악회 '피리부는 소년'(4월 10~11일)도 함께 준비돼 있다.

전시는 17일부터 4월18일까지다. 02-2188-6000
< 사진 > 1988년 작 '산'
swryu@newsis.com

 

 

 - <뉴시스> 기사 중에서 ......

 

 

 

 

남정(藍丁) 박노수| ◈─…… 한 국 화

정인성 | 조회 188 |추천 0 | 2008.09.17. 23:45



남정(藍丁) 박노수
맑고 청신한 색채

 

 

 



 

 

 



 

 

 



 

 

 



 

 

 


 

 

 


 

 

 


 

 

 

 


 

 

 


 

 

 


 

 

 


 

 

 


 

 

 


 

 

 


 

 

 



 

 

 


 

 - 다음 카페 <정인성의 그림세계>

 

 

 

 

고예독왕’ 고집한 쪽빛 채색화가 박노수화백 별세 /헤럴드경제 | 입력 2013.02.26. 09:32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푸른 빛이 싱그러운 채색 산수화로 널리 알려진 남정(藍丁) 박노수 화백이 25일 오후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해방 후 한국화 1세대 작가로, 일평생 '고예독왕(孤詣獨往)'을 외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했다. '고예독왕'은 작가의 길이 외롭고 험하다는 뜻.

   서울대 미대를 나온 박 화백은 1955년 국전에서 '선소운(仙簫韻)'이라는 작품으로 수묵채색화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수묵만을 중시하는 화단 경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먹과 채색을 두루 사용하며 개성적인 회화를 선보였다. 서울대 미대 교수,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회장을 역임했으며, 5.16민족상(1994년), 은관문화훈장(1995년)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신애 여사와 아들 찬규(카이스트 교수), 민규(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씨 등 2남4녀가 있다. 배우 이민정 씨가 고인의 외손녀이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02-2227-7500.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강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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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꽃피는 서울상 >을 받은 근린상가 건물

 

 

 

 

 

 

 

 

 

 

 

주택 마당에 농익은 앵두

 

 

 

 

 

시인 윤동주 하숙집 터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후배인 정병욱과 함께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金松 1909 ~ 1988)의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대표작 < 서시>,<별을 헤는 밤>,(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등

주옥 같은 시상을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집터가 소설가 김송의 집이였다.

 

 

 

 

 

 

 

 

 

별 헤는 밤 | 좋은사랑 글

 

이무기 2008.07.02 15:37





 

별 헤는 밤 - 윤동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Serenade To Summertime (여름날의 세레나데) Paul Mauriat

 

 

 

 

★윤동주 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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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尹東柱]

 

출생: 1917. 12. 30, 북간도 명동촌
사망: 1945. 2. 16, 일본 후쿠오카[福岡]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아명은 해환(海煥). 교회 장로이면서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영석(永錫)과 어머니 김룡(金龍) 사이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으며,

 중국의 관립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 송몽규·문익환도 이 학교에 입학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 〈공상〉을 발표했다.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뒤

2년 후배인 정병욱(鄭炳昱)과 남다른 친교를 맺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송몽규는 3월 10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고,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윤동주 시모음★

http://blog.daum.net/chb695258/1498

위를 클릭하여 보세요 

 

Ronnie McDowell (1950.3.25 미국 . 컨츄리 송 가수).
 

 

  
http://blog.daum.net/cjkim826

정2

http://blog.daum.net/hjkim8260

blog.daum.net/hjkim8260/2571   청정2블로그  청정님의 글 중에서 전재 ......

 

 

 

 

 

갤러리 서촌재

 

 

 

 

 

실크로드 박물관

 

 

 

 

 

 

 

 

 

 

 

줌으로 당겨 본 인왕산

 

 

 

 

옥인제일교회

전깃줄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지중선화 필요함)

 

 

 

 

 

수성동 계곡 - 조선조 중기 이후 사대부들이 물소리(水聲)를 들으며,

시회(詩會)와 다회(茶會)를 자주 열던 인왕산 동쪽 골짜기

 

 

 

 

 

겸재 정선의 한국진경산수화

<수성동 계곡 水聲洞 溪谷> - 한지에 수묵담채

 

 

인왕산 수성동 계곡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인왕산 수성동 계곡
(仁王山 水聲洞 溪谷)
대한민국 서울특별시기념물
종목 기념물 제31호
(2010년 10월 21일 지정)
면적 10,097.2㎡
소유 공유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179-1외 8필지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인왕산 수성동 계곡(仁王山 水聲洞 溪谷)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왕산에 있는 계곡이다. 2010년 10월 21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1]

 

 

지정 대상[편집]

  • 돌다리 1기
  • 수성동 계곡부 및 토지 : <인왕산 길> 아래 인왕산 계곡 상류부터 하류 복개도로 전까지의 계곡 및 토지 9필지 /총 10,097.2㎡

지정 사유[편집]

   현 옥인아파트 일대는 조선시대 수성동(水聲洞)으로,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고,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도 등장하며, 당시의 풍경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전통적 경승지'로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이 일대가 조선후기 중인층을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주 무대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며, 계곡 아래에 걸려 있는 돌다리는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고,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보존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점에서 교량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다. 따라서 돌다리를 포함하여

남아 있는 계곡부 전체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옛 수성동의 수려했던 경관 자체를 보존하고자 한다.

조사 보고서[편집]

   수성동은 누상동과 옥인동의 경계에 위치한 인왕산 아래 첫 계곡으로 조선시대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 이라 하여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으며, 수성동의 '동(洞)'은 현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동'이 아니라 ‘골짜기’․‘계곡’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현재 철거된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 자리에서 복원된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총 190.8m, 폭은

최대 26.2m, 최소 4.8m에 이르며 하류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돌다리가 1기 남아 있다.

   그 옛날 인왕산의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옥류동(玉流洞)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물줄기가 기린교에서 합수되어

청계천으로 흘렀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옥같이 맑게 흐르던 "옥류동 계곡"은 콘크리트로 덮여 주택가로 변했지만,

수성동 계곡은 옥인아파트 철거 후 옛 모습을 되찾아 여전히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들리고 있다.

수성동은 조선시대 도성안에서 백악산 삼청동과 함께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답기로 첫 손가락에 꼽혔고,

조선후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한경지략』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고,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의 집 터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 『한경지략』 - 명승(名勝) - 수성동(水聲洞)

水聲洞 在人王山麓 洞壑 幽邃 有泉石之勝 最好 暑月 遊賞 惑云此洞 匪懈堂(安平大君 瑢蹟也) 舊基也有橋名麒麟橋

“수성동은 인왕산 기슭에 있으니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여 시내와 암석의 빼어남이 있어 여름에 놀며 감상하기에

마땅하다. 혹은 이르기를 이곳이 비해당 터(안평대군 이용의 옛 집터)라 한다. 다리가 있는데 기린교(麒麟橋)라 한다.”

 

   수성동 계곡 이곳저곳에는 조선시대 저명한 인물들과 그에 얽힌 유적들이 널리 분포하였는데, 이들의 이야기가 옛 시와 그림

속에 남아,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은 자신이 나고 자라 평생 살던 터전인 백악산과 인왕산 아래 장동(壯洞) 일대를 8폭의 진경,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으로 남겨 놓았는데 인왕산 일대 <수성동>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그림을 보면 거대한 바위 사이로 급한 개울이 흐르고 주변에는 암석이 수려하며, 계곡에는 장대석을 두 개 맞댄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있는데, 선비들은 한가로이 풍경을 즐기고 있다. 오늘날 인왕산 수성동 풍경의 원형이 18세기 겸재 정선의 회화 속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성동 계곡은 옥인아파트 조성 시 계곡의 암반부가 일부 복개도로로 변하는 등 경관이 일부 훼손되었으나, 조선시대 겸재 그림

속 인왕산과 계곡부의 전체적 풍경을 매우 양호하게 유지하고 있고 현재 훼손된 경관을 회복하기 위해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옛 모습을 복원하였다.

   또한 이 일대는 조선후기 중인층을 중심으로 저명한 시사(詩社)가 결성되어 18~19세기 위항문학[2](委巷文學)을 꽃피웠던

곳으로 문학사적으로도 대단히 의미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모임(詩社)은 당시 양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문학이

중인층을 비롯한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규장각 서리 출신으로 위항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존재 박윤묵은 평민시인 천수경(千壽慶)․왕태(王太)․장혼(張混)․

김낙서(金洛瑞) 등과 어울려 옥계시사(玉溪詩社)를 결성하고, 천수경의 송석원(松石園), 장혼의 이이엄(而已广) 등에

모여 함께 시회를 즐겼는데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문집 『존재집(存齋集)』에 자세하게 글로 남겼다.

『존재집』에서 박윤묵은 수성동의 풍경을 '조물주와 더불어 이 세상 바깥에서 노니는 듯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 박윤묵의 <존재집(存齋集)> 23권 - 遊水聲洞記

洞多水。以水聲名。迺西山之口也。庚午夏。大雨數十日。川渠漲溢。平地水深三尺。余朝起跣足着屐。衣雨衣携一壺酒。

與數三同志者入洞。至石橋邊。上下一望。應接殆不能暇。溪澗之勝。泉瀑之壯。怳與舊日 觀大有異焉。凡西山之水。

或橫流或倒流。或折而復流。或掛匹練。或噴亂珠。或飛於絶壁之上。或灑於松 翠之間。百谷千流。不一其狀。

皆到水聲之洞然後。始成一大流。裂山倒壑。衝崖轉石。如万馬之爭騰。如疾雷之暴發。其勢不可遏也。其深不可測也。

其中霏霏如也蕩蕩如也。時飛沫濺衣。凉意逼骨。魂淸神爽。情逸意蕩。浩然如與造物者。遊於物之外也。遂大醉樂極。

散髮長歌。歌曰西山之上雨床床兮。西山之下水 湯湯兮。惟此水是吾鄕兮。徜徉不忍去。物與我而俱相忘兮。歌闋相顧而起。

天忽開霽。西日已在山。

 

   수성동(水聲洞)은 물이 많아 물소리라는 뜻의 수성으로 이름이 붙었는데 곧 인왕산 입구다. 경오년(1810) 여름 큰 비가

수십 일이나 내려 개울물이 불어 평지에도 물이 세 자 깊이나 되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맨발로 나막신을 신고 우의를 입고서

술 한 병을 들고 몇 명의 동지들과 수성동으로 들어갔다. 돌다리 가에 이르니 아래 위쪽의 풍경을 바라보느라 다른 데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다. 개울이 빼어나고 폭포가 장대하여 예전에 보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대개 인왕산의 물은 옆으로 흐르기도 하고 거꾸로 흐르기도 하며 꺾어졌다 다시 흐르기도 한다. 벼랑에 명주 한 폭을

걸어놓은 듯한 곳도 있고 수많은 구슬을 뿜어내는 듯한 곳도 있다. 가파른 절벽 위에서 나는 듯 떨어지기도 하고 푸른 솔숲

사이를 씻어내듯 흐르기도 한다. 백 개의 골짜기와 천 개의 개울이 하나도 똑같은 형상을 한 곳이 없다. 이 모든 물이

수성동에 이르게 된 다음에야 하나의 큰 물길을 이룬다. 산을 찢을 듯, 골짜기를 뒤집을 듯, 벼랑을 치고 바위를 굴리면서

흐르니 마치 만 마리 말들이 다투어 뛰어오르는 듯하고 우레가 폭발하는 듯하다. 그 기세는 막을 수가 없고 그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으며, 그 가운데는 눈비가 퍼붓는 듯, 자욱하고 넘실거린다. 때때로 날리는 포말이 옷을 적시면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들어와 혼이 맑아지고 정신이 시원해지며 마음이 편안하고 뜻이 통쾌해진다. 호탕하여 조물주와 더불어

이 세상 바깥으로 노니는 듯하다. 마침내 술에 만취하여 즐거움이 극에 달하였다.

이에 갓을 벗어 머리를 풀어헤치고 길게 노래하노라.

 

인왕산 위에 비가 쏴하고 내리면
인왕산 아래에 물이 콸콸 흐른다네.
이 물이 있는 곳 바로 나의 고향이라
머뭇머뭇 차마 떠나지 못한다네.
내 풍경과 함께 때를 씻고 나서
노래 부르고 돌아보면서 일어나니
하늘은 홀연 맑게 개고
해는 하마 서산에 걸렸네.

   한편 계곡 하류에 , 걸려 있는 돌다리(길이 3. 8m, 폭 0.9m)는 장대석 2개를 잇대어 만들었는데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고 도성(都城)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 보존된 다리이며, 또한 통돌로 만든 가장 긴 다리라는 점에서

교량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어 약 190.8m에 달하는 계곡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기로 하였다.

이 돌다리는 현재까지 각자(刻字) 등이 발견되지 않아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기린교"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경지략』등 조선후기 역사지리서에 실린 기록들과 겸재의 그림 등을 고려할 때 "기린교(麒麟橋)"로 추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왕산 수성동(水聲洞)은 조선 후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와 『한경지략(漢京識略)』

등에 '명승지(名勝地)'로 소개되고,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도 등장하며, 조선 후기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주무대로

당시의 풍경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전통적 경승지'로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옛 돌다리를 포함하여

남아 있는 계곡부 전체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옛 수성동의 수려했던 경관 자체를 보존하고자 한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이동 서울특별시고시 제2010-366호, 《서울특별시 기념물 지정 고시》, 서울특별시장,

                   서울특별시 시보 제3005호 181쪽, 2010-10-21

    2.이동 위항문학 : 조선 후기 중인·서얼·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학.

참고 자료[편집]

 

 

= 위키 백과 자료 중에서 ......

 

 

 

 

 

 

일조(一朝)의 궁궐이야기
一朝의 궁궐 사랑!


   21대 영조 임금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던 겸재 정선이 1759년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50년이 된다. 조국의 산하를 아름답게 표현한 겸재 정선은 특유의 [진경산수화]를 완성하여 한국인의 추앙을 받는 산수화의 대가이다.

 

   빼어난 시감(視感)을 지닌 겸재는 종전까지 머리 속으로 상상한 풍치를 관념적으로 그려냈던 산수화의 형태에서 벗어나, 전국을 유람하며 요소요소에 펼쳐있는 우리 산천의 풍경을 직접 사생하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하였다.

 

   원래 정선의 집안은 광주(光州) 중심으로 활동한 지방 사대부가였으나 수대(數代) 전에 서울로 옮겨왔고, 정선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20세에 이웃에 사는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으로 관직을 시작하여 나중에는 지방의 현감(縣監)에 이르렀고, 임지의 산천을 유람하며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를 즐겨 그렸으나, 나이 30세를 넘기면서 조선 독자적인 산수화의 특징을 살린 진경화(眞景畵)에 빠지기 시작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산수화(山水畵)자연의 경치를 주제로 그린 조선 고유의 한국화를 말하는데, 인물이나 , 와 함께 사계절의 풍광에 맞추어 그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산수화는 을 수묵으로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다.

 

   그는 실제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산천의 특색을 남종화법으로 그려 진경 산수화풍의 새로운 화풍을 수립하였는데, 금강산과 영남지방 및 서울 근교일대를 다니면서 산천의 특색을 남종화법을 토대로 표현하여, 새로운 화풍을 이룩함으로써 전통적인 실경산수화의 기법을 바꾸어 독자적인 [진경산수화]의 정형을 수립하게 된다.

 

  겸재 정선은 안타깝게도 시와 문장에 소질이 부족하여 화폭에 한두 개의 낙관만을 남긴 채, 그림의 제목이 없는 것이 이채롭다.

노후에도 여행을 즐겨 금강산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일대에 그치고 말았다.

 

   이와 같이 겸재 정선은 초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화풍으로 새로운 경지를 만들었고, 만년에는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리며 위대한 걸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84세에 생애를 마친다.

 

   가장 한국적인 산천의 모습은 고향의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한국만의 [진경산수화]를 그려낸 겸재는, 외세 문화로 가려져 멀리 있는 우리의 고향을 우리들 가슴 안으로 되찾아 주는 선인이다.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다.

 

(사진은 가능한 일부 작품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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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상정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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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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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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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조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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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곡유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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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계유택>

 

2010-05-31 20:26 2010-05-31 20:26

 

블로그 <yourstage>이효일 선생님 글 중에서 전재 ......

blog.yourstage.com/hyo4401/entry/%EA%B2%B8%EC%9E%AC-%EC%...

 

 

 

***** 한국식물연구회 유만선 부회장님의 <명작의 산실 인왕산> pdf(526B) 1부 :

http://wwl1754.daum.net/Mail-bin/view_submsg3.cgi?TM=jOi5o%2BGuQw0dGRtQ3R3ewkehN5kXBt4p7OAuJyGMOYXlCAVPXrMQm1bm1DZg7%

2FvXKrZEnvgiUNe1X2CluKZpzI2apkwwKrFv3dOg9yspGYeMP4utw151l5z6PekFDT5ilYzoH7pky2uVi3kLJZC44Tm307BWdy0Qn8Qxs19md9JGqtiwsd5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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