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의 부도지 外

2013. 5. 14. 11:20우리 역사 바로알기

 

 

 

                                                                                                                     2013.4.18.게재

 

 

신라 박제상(朴堤上/365~419?)의 <부도지>에서 나타난 마고신화(麻姑神話)는 단군신화 이전의 창세기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天山(키르키즈스탄국  Mt.Taighar Shyngy)  天池(이식쿨 호수)를 우리 한민족의 기원지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 사학계에서 위서의 논란이 없지 않으나, 편의상 아래에 참고자료를 첨부하오니 관심이 있는 분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2011년 11월 18일  MB의 방미행사로 열린 시카코  총영사관 주최 개천절 4343주년 기념행사  중 <오두>라는 분의

 

강연 원고입니다.   분석 평가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작성된 것으로 한민족 고유신화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확대 기도의

 

편린을 볼 수 있으니 이 점을 감안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해석상에도 일부의 오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 (()) .........

 

 

 

 

<부도지(符都誌)> 마고할미신화의 기독교적 영향

- 환인 환웅 웅녀는 모계 여신 계보 -

 

 

웅녀신화의 계보는 모계로서 환인 환웅 웅녀는 모두 여신들이다. 단군신화는 남성지배시대에 남성화시킨 결과이다. 단군신화는 웅녀가 주인공이다.

 

바이블의 창세기도 비잔틴 지역에 남아 있는 소피올로지 신화에서 여신 창조주에 이어져 있다. 이와같은 바이블의 에덴동산의 4개의 강으로 사방이 뻗은 오방사상은 동아시아의 사천(四川) 명당 오방사상에 이어져 있다.

 

중국 고전으로 <이아(爾雅)>는 십삼경(十三經 : 주역, 서경, 모시,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논어, 효경, 이아, 맹자)의 하나로서, 가장 오래된 동양의 자전(字典)이다.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의 문자를 추려 19편으로 나누고, 자의(字義)를 전국(戰國)·진한대(秦漢代)의 용어로 해설한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아(爾雅)>의 사극(四極) 편에는 사극이 나오는데 오방사상의 한 면모이다. 

 

 "동쪽으로 태원(泰遠)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빈국(邠國)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복연(濮鉛)에 이르며 북으로는 축율(祝栗)에 이르는데 이를 4극(四極)이라 한다. 호죽(觚竹), 북호(北戶), 서왕모(西王母), 일하(日下)를 4황(四荒)이라 한다. 구이(九夷), 팔적(八狄), 칠융(七戎), 육만(六蠻)을 4해(四海)라 한다."

 

 

<부도지>에도 오방사상으로 풍수가 그려져 있다. <부도지>는 위서로 논란이 있는 사료이다. 그래도 그 안에 있는 마고신화는 전래의 여신신화를 기록했을 개연성도 있다. <부도지>는 필자의 해석의 결과 19세기 20세기의 서양 기독교 문화인 바이블 창세신화와 노아방주 신화의 영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기독교문명을 접한 토착 신화들이 신화적인 합류현상으로 표현되는 '위서'의 경우가 세계 도처에 있다. 미국의 인디안 신화에도 바이블을 모방한 신화가 논란에 휩싸여 있다 (필자의 앞선 글에서 소개). 미국의 몰몬경 또한 바이블과 혼합시킨 파생 경전이기도 하다.

 

중국의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의 난에서도 바이블의 기독교와 토착 중국적 종교의 조합이었다. <부도지>는 근대 코리안들이 서양의 기독교 신화의 영향으로 토착 여산신 문화를 조합시킨 것이라 필자는 해석한다. 아래에 <부도지> 기록의 마고신화에 대한 필자의 구체적인 해석에서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부도지>에 나오는 마고신화는 마고산성이자 마고할미를 다루고 있다. 그

마고할미성에는 황색, 청색, 백색, 흑색이 등장하는데 적색이 따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태양의 여신을 의미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할미산성들은 오방사상에 적용하여 그 지역의 사방 네 곳과 입체적으로 발굴할 수도 있다.

 

 

마고신화에서 우주의 음악이 율려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여산신들은 노래와 악기 연주에 이어져 있다. 서양의 요들송도 뮤즈와 연관한 여산신의 노래에서 시작되며 감은사 석탑에서 나온 유물에서 네 신선의 사선도는 악기를 다루고 있다.

 

<부도지>의 마고신화는 율려가 부활하자 두 딸 궁희와 소희를 출산했고, 두 딸은 다시 여덟 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들이 바로 황궁, 청궁. 백소, 흑소족이다. 전통 무당들은 여무당이 다시 여무당을 낳아 계보를 이어나가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뮤즈나 인도의 마트리카 여신도 7 또는 9 자녀 이야기가 있으며, 우리 민족의 바리공주 신화에서 일곱아들이나 <삼국유사> 처용신화에서 처용이 동해용왕의 7 아들 중의 막내라고 표현한 숫자들은 모두 '용녀' 신화와 함께 여신 신화에 이어져 있다.

 

동진(東晉) 시대의 신선도의 비조인 갈홍(葛洪 283-343?)이 저술한 <신선전(神仙傳)>에는 마고에 대한 기록이 있다.

麻姑 謂王方平曰  自接待以來 見東海三變爲桑田 向到蓬萊 水乃淺於往者略半也. 豈復爲陵乎. 王方平 曰 東海 行復揚塵耳.  
 
마고(麻姑)라는 선녀가 신선 왕방평(王方平)에게 말했다. "곁에서 모신 이래 저는 동해가 세번이나 뽕나무밭으로 바뀌는 것(상전벽해)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봉래(蓬萊)에 갔더니 바다가 다시 얕아져서 이전의 반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또 언덕이 되려는 것일까요?" 왕방평이 대답했다. "동해가 다시 흙 먼지를 일으킬 뿐이라네." 

더불어 <신선전(神仙傳)>에는 한(漢)나라 환제(桓帝)시대 신선인 왕원(王遠)과 함께 마고가 채경(蔡經)의 집에 강림하여 연회를 베풀고 신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마고는 손톱이 길어, 채경이 등이 가려워할 때 긁어주었다는 것은 마고가 채경의 손녀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일까.

 

도교에는 7월 7일날 주방의식에 연관하여 마고할미가 강림한다는 신앙이 내려온다. 삼신할미가 부엌신이 된 배경을 보여준다. 청나라 때인 1866년 중간한 전 12권의 <마고산지(麻姑山志)>에는 마고할미 그림이 있다.  

 


*<마고산지(麻姑山志)>. 청대 1866년.

 


*마고화상. <마고산지(麻姑山志)> 청대.


중국에서 마고할미는 신선의 반열에서 모셔지고 그 근거지는 현재 강서성에 있는 마고산이라고 주장한다. 

 

지리산에서 전하는 마고할미 이야기는 가야산 정견모주와 같은 여산신 신화이다. 개양할미라고 불리는 전북 부안의 마고신화도 8명의 딸을 낳아서 7명은 팔도로 보내고 막내딸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도지>는 《징심록》 15지 가운데 제1지이다. 박제상 선생의 아들 백결선생이 <금척지(金尺誌)>를 지어 15지에 더해지, 김시습 선생이 <징심록 추기>를 써서 모두 17편으로 된 책이 《징심록》이다.

 

《징심록》은 1953년(단기 4286년) 박금 선생의 사본으로 처음 알려졌다고 한다. <금척지>가 백결선생의 실제 작품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전하는 말을 따르면 신라의 박제상은 천부경을 아들인 백결선생 박문량에게 전하였고, 백결선생 박문량은 신선사 마애불상들이 있는 단석산 깊은 곳에서 이를 해독하여, 다시 아들 박마령간에 전하였으며, 아들 박마령간은 이 천부의 이치를 김유신에게 가르쳐서 김춘추와 삼국을 통일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천부경이 금오신화의 저자인 매월당 김시습이 이를 풀이한 <금척지>가 영해 박씨 문중에 전해 내려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금척지'의 금척에 대하여 논한 바 있다. 

 

여기에서 <부도지(符都誌)>를 살펴보면 근대 서양문명의 영향과 함께 동아시아의 경전의 조합 현상의 하나가 <부도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의 결과이다<부도지(符都誌)> 원문 내용과 함께 *로 표시하여 필자의 주석을 첨부했다.

 

 

《징심록(澄心錄)》의 <부도지(符都誌)> 에 나타나는 기독교적 영향

 

제1장 (第一章)

 
麻姑城은 地上最高大城이니 奉守天符하야 繼承先天이라,

 

마고성은 마고할미의 할미산성을 앞세운다. 성은 산 여신의 산 그 자체를 말한다. 산신은 여산신이었다. 가야산 정견모주는 가야산 그 자체이다.

 

成中四方 有四位天人 堤管調音 長曰 黃穹氏 次曰 白巢氏 三曰 靑穹氏 四曰 黑巢氏也.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을 쌓아 놓고, 음(音)을 만드니, 황궁(黃穹)씨, 백소(白巢)씨, 청궁(靑穹)씨, 흑소(黑巢)씨였다.
 

*바이블의 창세기는 빛이 먼저 나오지만, 마고할미 신화는 소리가 먼저 나온다.
 요한복음의 빛은 창세기의 빛의 재현이다. 그러나 먼저 요한복음 그 자체가 '소리' 즉 복음이다.

 

신의 조화로서 소리와 빛은 언제나 함께 등장하되 소리가 먼저였다는 것이

 바이블에서도 "빛이 있으라 하시매"라고 하여 소리가 먼저였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필자의 앞선 글 참조.


무속의 오방사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붉은 색은 태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태양의 여신과 산신은 산에서 떠서 산으로 지는 서왕모 여신에서도 볼 수 있다.

 
兩穹氏之母曰穹姬 兩巢氏之母曰巢姬 二姬 皆麻姑之女也.

麻姑 生於朕世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穹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巢姬)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었다. 
 

*여기에서 궁씨는 하늘을 말하고 소씨는 신의 메신저인 새 토템의 둥지를 의미한다. 궁희와 소희 두 여신은 <황조가>에서도 유사하게 남아 있다.

 

喜怒之情 先天爲男 後天爲女 無配而生二姬 二姬 亦受其精 無配而生二天人二天女 合四天人四天女.


마고는 짐세(朕世)에서 태어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의 정을 받아,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았다. 합하여 네 천인과 네 천녀였다.

 

*단군신화에서 배우자 없이 환인의 아들 환웅이 웅녀와 합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환웅 자신이 웅녀였다.  

 

제2장(第二章)

先天之時 大成 在於實達之上 與虛達之城 並列 火日暖照 無有具象 唯有八呂之音 自天聞來 實達與虛達 皆出於此音之中 大城與麻姑 亦生於斯 是爲朕世.
 
선천(先天)의 시대에 마고대성(麻姑大城)은, 실달성(實達城)의 위에, 허달성(虛達城)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 여(呂)의 음(音)만이 하늘에서 들려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도, 또한 이 음(音)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朕世)다.

 

*아사달의 달, 달구벌의 달은 모두 하늘의 달이자 땅을 의미하면서 닭(달구)으로 표현되는 난생신화에 이어져 있다. 여기에서 8여란 팔선과해도에서 보듯 여덟신선을 의미한다. 팔괘 등이 모두 하도낙서 등에서 나타나는 8이며 고조선 팔조금법 이나 오늘날까지 남아진 팔도 구분이 모두 이에 해당하는 산신들의 팔을 의미한다. 팔경이라는 말 속에는 팔여사신의 의미가 있다.

朕世以前則律呂幾復 星辰已現. 朕世幾終 麻姑 生二姬 使執五音七調之節. 城中에 地乳始出 二姬又生四天人四天女 以資其養 四天女 執呂 四天人 執律.
 
짐세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星辰)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할 때, 마고가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아, 두 딸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아보게 하였다. 성중(城中)에 지유(地乳)가 처음으로 나오니, 궁희와 소희가, 또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 천녀에게는 여(呂)를, 네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 하였다.

 

* '율려(소리)'가 별(빛)을 만들었다는 것은 바이블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 하시매(소리) 빛이 있었다"는 것과 상통하는 신화적인 교호가 있다.

 

제3장 (第三章)

後天運開 律呂再復 乃成響象 聲與音錯 麻姑 引實達大城 降於天水之域 大城之氣 上昇 布幕於 水雲之上 實達之体 平開 闢地於凝水之中 陸海 列 山川 廣圻.
 
후천(後天)의 운(運)이 열렸다. 율려(律呂)가 다시 부활하여, 곧 향상(響象)을 이루니, 성(聲)과 음(音)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實達大城)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트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의 위로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에 땅이 생겼다. 땅과 바다가 나란히 늘어서고, 산천(山川)이 넓게 뻗었다.

 

*물 가운데서 땅이 생겼다는 것은 세계의 대부분 창세신화와 일치한다.

於是 水域 變成地界而雙重 替動上下而斡旋 曆數始焉.
以故 氣火水土 相得混和 光分書夜四時 潤生草木禽 全地多事.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 또 여러 차례 변하여, 수역(水域)과 지계(地界)가 다 함께 상하가 바뀌며 돌므로, 비로서 역수(曆數)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빛이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초목(草木)과 금수(禽獸)을 살찌게 길러내니, 모든 땅에 일이 많아 졌다.

*물과 땅이 상호 도는 것으로 표현된 것에서 태극사상을 볼 수 있다.


於是 四天人 分管萬物之本音 管土者爲黃 管水者爲靑 各作穹而守職 管氣者爲白 管火者爲黑 各作巢而守職 因稱其氏. 自此 氣火共推 天無音冷 水土感應 知無凶戾此 音象 在上 常時反照 響象 在下 均布聽聞姑也. 
 
이에 네 천인이 만물(萬物)의 본음(本音)을 나눠서 관장(管掌)하니, 토(土)를 맡은 자는 황(黃)이 되고, 수(水)를 맡은 자는 청(靑)이 되어, 각각 궁(穹)을 만들어, 직책을 수호 하였으며, 기(氣)를 맡은 자는 백(白)이 되고, 화(火)를 맡은 자는 흑(黑)이 되어, 각각 소(巢)를 만들어, 직책을 지키니, 이것으로 인하여 성(姓氏)이 되었다. 이로부터 기(氣)와 화(火)가 서로 밀어, 하늘에는 찬 기운이 없고, 수(水)와 토(土)가 감응(感應)하여, 땅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는 음상(音象)이 위에 있어, 언제나 비춰주고, 향상(響象)이 아래에 있어, 듣기를 고르게 해 주는 까닭이었다.

 

*오행사상을 보여준다. 소(巢)란 여신의 날개달린 조두인신의 둥지를 의미한다. 주로 독수리 등의 산꼭대기에 사는 큰 새들의 화신으로 여산신을 숭배했다.

 
제4장 (第四章)

是時 管攝本音者 雖有八人 未有修證響象者故 萬物 閃生閃滅 不得調節. 麻姑 乃命四天人四天女 辟脇生産 於是 四天人 交娶四天女 各生三男三女 是爲地界初生之人祖也. 其男女 又復交娶 數代之間 族屬 各增三天人.
 
이 때에, 본음(本音)을 관섭(管攝)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었으나, 향상을 수증(修證)하는 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어 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마고(麻姑)가 곧,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出産)을 하게 하니, 이에 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삼남(三男) 삼녀(三女)를 낳았다. 이가 지계(地界)에 처음 나타난 인간의 조상(人祖) 이었다.

 

*사천왕상 또는 사신도는 사천녀 또는 사선녀의 변이된 표현이다. 여기에서 삼남삼녀 이야기는 노아홍수신화에서 노아의 자녀와 일치한다.

 
自此 十二人祖 各守城門 其餘子孫 分管響象而修證 曆數始得調節. 城中諸人 稟性純精 能知造化 飮啜地乳 血氣淸明. 耳有烏金 具聞天音 行能跳步 來往自在. 任務己終則遷化金塵而保己性體 隨發魂識而潛能言 時動魂體而潛能行 在住於地氣之中 其壽無量.

 
그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여, 몇 대(代)를 지내는 사이에, 족속(族屬)이 불어나, 각각 3000명의 사람이 되었다. 이로부터 12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城門)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은 향상(響象)을 나눠서 관리하고, 수증(修證)하니, 비로서 역수(曆數)가 조절되었다. 성중(城中)의 모든 사람은, 품성(稟性)이 순정(純精)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血氣)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으므로, 내왕(來往)이 자재(自在)하였다. 임무를 마치자, 금(金)은 변하여 먼지가 되었으나, 그 성체(性體)를 보전하여, 혼식(魂識)이 일어남을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 말을 하고, 백체(魄體)가 때에 따라 움직여, 형상을 감추고도 능히 행동하여, 땅 기운(地氣) 중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壽命)이 한이 없었다.

 

*3천이라는 숫자는 삼천궁여 등의 표현에도 있듯이 신화적이면 여신 신화에 이어져 있다. 12시조는 12지신을 말하며 그리이스 신화의 12신이나 바이블의 야곱의 12아들인 12부족신과 일치한다.

 

제 5장 (第五章)

白巢氏之族 支巢氏 與者人 往飮乳泉 人多泉少 讓於諸人 自不得飮而如是者五次. 乃歸而登巢 遂發飢惑而眩倒 耳嗚迷聲 呑嘗五味 卽巢欄之蔓籬萄實. 起而偸躍 此被其毒力故也.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차례나 되었다. 곧 돌아와 소(巢)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졌다. 귀에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 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였다.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력(毒力)의 피해 때문이었다.

 

*젖이 흐르는 샘이란 바이블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일치한다. 수렵시대 목축신화의 한 흐름이다. 萄實(도실) 즉 포도란 바이블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또는 20세기 중반의 기록으로서 위서라면 더욱 서양문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乃降巢闊步而歌曰浩蕩兮天地 我氣兮凌駕. 是何道兮 萄實之力. 衆皆疑之 支巢氏曰眞佳 諸人 奇而食之 果若其言. 於是 諸族之食萄實者多. 

 

곧 소(巢)의 난간에서 내려와 걸으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이 어찌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로다" 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소씨의 말을 의심하였다.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 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많이 먹었다.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에 제족이 포도를 많이 먹었다.

 

*수렵시대에 머루나 포도는 힘을 일으켜주는 당분을 제공했다. 노아홍수 신화에 이어지는 신화에도 포도주를 마신 뒤 자손을 연결하는 내용이 있다. 포도에 대한 경계심까지 일치한다.

 

第六章 (제 6장)

白巢氏之諸人 聞而大驚 乃禁止守祭 此又破不禁自禁之自在律者也.
此時 食實之習 禁祭之法 始 麻姑閉門撤冪.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금지하고 지키니(수찰:守察),
이는 금지하지 아니하더라도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를 덮고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已矣 食實成慣者 皆生齒 唾如蛇毒 此 强呑他生故也. 設禁守祭者 皆眼明 視似梟目 此 私公律故也.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수렵시대의 송곳니(Fang)와 뱀의 독이 두려운 잔재이다. 여기에서 금기의 열매를 먹어 눈이 밝아졌다는 것에서도 바이블의 내용을 모방한 것이 보다 분명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以故 諸人之血肉 化 心氣 酷變 遂失凡天之性. 耳之烏金 化作兎沙 終爲天聲 足重地固 步不能跳 胎精不純 多生獸相. 命期早熟 其終 不能遷化而 此 生命之數差惑痳縮故也.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피와 살(혈육)이 탁(濁)해지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만물을 생성하는 원기(태정:胎精)가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되었다. 사람의 수명(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변하여 바뀌지(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바이블의 타락론이 그대로 수용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第八章

已矣. 出城諸人中悔悟前非者 還到城外 直求復本 此未知有復本之時所故也. 乃欲得乳泉 掘鑿城廓 城址破損 泉源 流出四方. 然 卽化固土 不能飮啜. 以故 城內 遂乳渴 諸人 動搖 爭取草果 混濁至極 難保淸淨.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復本)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헤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 지극하여, 청정(淸淨)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젖샘은 샘물로서 여산신을 의미하는 산정의 우물을 의미한다. 고구려 건국신화의 오녀산성 등의 산정 우물은 이러한 젖 즉 여산신의 젖샘으로 보았던 것이다.  

黃穹氏 爲諸人之長故 乃束身白茅 謝於麻故之前 自負五味之責 立誓復本之約이. 退而告諸族曰五味之禍 反潮逆來 此出城諸人 不知理道 徒增惑量故也. 淸淨已破 大城將危 此將奈何.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여러 종족(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꺼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치와 법도를(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어리석음(혹량:惑量)이 불어 났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是時 諸天人 意決分居 欲保大城於完全 黃穹氏 乃分給天符爲信 敎授採葛爲量 命分居四方. 於時 靑穹氏 率眷出東間之門 去雲海洲 白巢氏 率眷出西間之門 去月息洲 黑巢氏 率眷出南間之門 去星生洲 黃穹氏 率眷出北間之門 去天山洲 天山洲 大寒大險之地. 此 黃穹氏 自進難 忍苦復本之 盟誓.

이 때에 천인(天人)들이 나누어 살기로(분거:分居)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고자 하므로, 황궁씨가 곧 천부(天符)를 신표(信標)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노아방주 이후 바벨탑 이야기와 같은 전개를 보여준다. 사람의 욕심으로 하늘에 닿으려 바벨탑을 쌓다가 서로 언어가 달라 뿔뿔이 흩어졌다는 바이블 스토리가 반복되어 있다. 여기에서 천산주의 위험한 땅이란 바이블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땅을 나누어 헤어질 때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고 롯은 위험한 소돔 고모라 지역으로 가는 것과 일치한다.

제 9장 (第九章)

分居諸族 繞倒各洲 於焉千年. 昔世出城諸人之裔 難居各地 其勢甚盛. 然 殆忘根本 性化猛獰 見新來分居之族則作群追跡而害之. 諸族 已定住 海阻山隔 來往 殆絶.


(마고성을 떠나) 분거한 모든 종족들이(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지소씨 제족)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섞여살아(잡거:雜居),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러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착하여 거주(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야곱의 12부족간의 투쟁을 이렇게 분거족과의 갈등으로 보여주고 있다.

於時 麻故與二姬로 修補大城 注入天水 淸掃城內 移大城於虛達之上. 是時 淸掃之水 大漲於東西 大破雲海之地 多滅月息之人. 自此 世界之重 變化 曆數生差 始有朔昄之象.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

 

*노아홍수심판의 한 모방이다.

 

제 10장 (第十章)

黃穹氏 到天山洲 誓解惑復本之約 告衆勸勉修證之業. 乃命長子有因氏 使明人世之事 使次子三子 巡行諸洲. 黃穹氏乃入天山而化石 長嗚調音 以圖人世惑量之除盡無餘 期必大城恢復之誓約成就. 於是 有因氏 繼受天符三印 此卽天地本音之象而使知其眞一根本者也.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 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복본(復本)이란 조상들의 고향을 의미하는 이른바 '본관'의 '본'이며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사극의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 또한 그런 배경의 칭호이다. 황궁씨가 천산(앞서 소돔 고모라의 위험한 지역에 대비했다)에서 돌이 되었다는 것은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과 같다. 사실상 롯의 아내란 여신이며 여기에서는 황궁여신이다. "천지본음"이란 바이블의 '복음'을 모방한 것이다.


有因氏 哀憫諸人之寒冷夜暗 鑽燧發火 照明溫軀 又敎火食 諸人 大悅. 有因氏千年 傳天符於子桓因氏 乃入山 專修禊祓不出. 桓因氏 繼受天符三印 大明人世證理之事 於是 日光均照 氣侯順常 血氣之類 庶得安堵 人相之怪 稍得本能 此 三世修證三千年 其功力 庶幾資於不者也.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 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제 11장 (第十一章) (1편)

桓因氏之子桓雄氏 生而有大志 繼承天符三印 修禊除祓 立天雄之道 使人知其所由. 於焉人世 偏重於衣食之業 桓雄氏 制無餘律法四條 使鰥夫 調節 一曰人之行蹟 時時淸濟 勿使暗結生鬼 煩濟化魔 使人世 通明無餘一障. 二曰人之聚積 死後堤功 勿使陳垢生鬼 濫費化魔 使人世 普洽無餘一憾. 三曰頑邪惑者 謫居於曠野 時時被其行 使邪氣 無餘於世上. 四曰大犯罪過者 流居於暹島 死後焚其尸 使罪業 無餘於地上.又作宮室舟車 敎人居旅.


한(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계불의식을 행하였다(수계제불:修禊除祓) 웅대한 하늘의 도(천웅:天熊)를 수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래한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사람들이(인세:人世)가 의식(衣食)의 일(業)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의 4조(四條)를 제정하여, 환부(鰥夫)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1조는, 사람의 행적(行蹟)은, 때때로 깨끗하게 하여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거롭게 막혀,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툭 트여 장애가 하나도 없게 하라(통명무여일장:通明無餘一障) 2조는, 사람이 살아오면서 모으고 쌓은(취적:聚積) 것은,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사람들이 두루 화합하여 유감이 하나도 없게하라(보흡무여일감:普洽無餘一憾). 3조는, 고집이 세고 간사하고 미혹(사혹:邪惑)한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때때로 그 사옥함을 씻게 하여, 사악한 기(사기:邪氣)가 세상에 남지 않게하라(무여어세상:無餘於世上) 4조는, 죄를 크게 범한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시켜 죽은 뒤에 그 시체를 태워서, 죄업(罪業)이 지상에 남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무여어지상:無餘於地上) 또 궁실(宮室)을 짓고, 배와 차(車)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거주(居住)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라 표현한 것은 남성지배시대 기록의 영향이다.

 

제 12장 (第十二章)

桓雄氏生壬儉氏 時 四海諸族 不講天符之理 自沒於迷惑之中 人世因苦. 壬儉氏懷憂於天下 修天雄之道 行禊祓之儀 繼受天符三印. 敎耕稼蠶葛陶窯之法 布交易稼錄之制. 壬儉氏 啖根吸露 身生毿 遍踏四海 歷訪諸族 百年之間 無所不往. 照證天符修身 盟解惑復本之誓 定符都建設之約 此 地遠信絶 諸族之言語風俗 漸變相異故 俗講天符地理於會同協和之而使明之也. 是爲後日會講之緖 人事煩忙 不講則忘失故也.

환웅씨가 임검(壬儉)씨를 낳았으니 이때에 사해의 제족(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익히지(강:講)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迷惑)속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천웅의 도(天雄之道)를 닦아, 계불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갈고, 심고, 누에를 치고, 칡을 먹고, 그릇을 굽는 법을 가르치고, 교역(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를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가지고,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 하였다. 백년 사이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비추어서(조증:照證) 수신(修信)하고, 미혹함을 풀고 근본으로 되돌아갈 것(해혹복본:解惑復本)을 맹서하며, 부도(符都) 건설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화합(협화: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익혀(講)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후일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배우고 익히는(회강:會講) 실마리가 되니, 사람들의 일이 번거롭고 바빠, 익히지 않으면 (천부의 이치를)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제 13장 (第十三章)

壬儉氏 歸而擇符都建設之地 卽東北之磁方也. 此는 二六交感懷核之域 四八相生結果之地. 明山麗水 連亘萬里 海陸通涉 派達十方 卽九一終始不咸 之其也.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석이 가르키는 방향(자방:磁方)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와 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三根靈草 五葉瑞實 七色寶玉 托根於金剛之臟 遍滿於全域 此一三五七磁朔之精 會方成物而順吉者也. 

 

인삼(삼근영초:三根靈草)과 잣(오엽서실:五葉瑞實)과, 일곱가지 색깔의 옥돌(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 設保壇於四方. 保壇之間 各通三道溝 其間 千里也 道溝左右 各設守關 此取法於麻故之本城.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天符壇)을 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 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劃都坊於下部之休 圖涵澤於三海之周 四律四浦 連隔千里 環列於東西. 律浦之間 又設六部 此爲諸族之率居也. 符都旣成 雄麗光明 足爲四海之總和 諸族之生脉.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삼해(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네 나루(사진:四津)와 네포구(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진(津)과 포(浦)사이에 다시 6부를 설치 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장하고 아름다우며(웅려:雄麗) 빛나고 맑아서(광명:光明)하여 사해를 총화(總和)하기에 충분하였으며, 모든 종족의 삶을 지탱해주는 맥박(생맥:生脈)이었다.

 

제 14장 (第十四章)

於是 移黃穹氏之裔六萬 守之 乃割木作桴八萬 刻信符流放於天池之水 招四海諸族 諸族 得見信桴 次第來潗 大開神市於朴達之林 修禊淨心察干天象 修麻姑之譜 明其族屬 準天符之音 整其語文.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이 (부도에)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 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 황궁씨의 후예 : 마고성에서 천산주로 옮겨 유인씨 → 한인씨 → 한웅씨 → 임검씨의 계보로 이어진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계불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수계정심:修禊淨心)하여, 하늘의 움직이는 모습을 살핀 후, 마고의 계보(系譜)를 살펴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그 말과 글을(어문:語文)을 정리 하였다. 

 

*어문 정리란 가림토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又奠定北辰七耀之位 燔贖於盤石之上 會歌而奉天雄之樂. 諸族 棌七寶之玉於方丈方壺之堀 刻天符而謂之方丈海印 辟除七難而歸.
 
또 북극성(북진:北辰)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제사(전:奠)를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천웅(天雄)의 악(樂)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하여 칠난(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북두칠성 즉 칠성당의 토속종교를 포함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희생물을 구워 제사했다는 것은 바이블의 가인과 아벨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自此 每十歲必開神市 於是 語文同軌 一準天下 人世太和. 仍而(仍以)築城於海隅 奉奠天符 使駐留諸族 舘(館)而居之 爾來千年之間 城隍 遍滿於全域.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반드시 신시를 여니, 이에 말과 글(어문: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사람들이 크게 화합(태화: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을 지어 천부에 제사를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에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바닷가의 성황이란 해신당을 말한다.

 

제 15장 (第十五章) - 1편

又設朝市於澧陽交地之復(腹) 設海市於八澤 每歲十月 行朝祭 四海諸族 皆以方物 供進. 山岳諸族 供之以鹿羊 海洋諸族 供之以魚蚧 乃頌曰 ‘朝祭供進魚羊犧牲五味血鮮休咎蒼生’ 此謂之朝鮮祭.

또 예(澧)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지내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다.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조제(朝祭)에 받들어 올리니(공진:供進), 오미(五味)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창생(蒼生)의 재앙(구:咎)을 그치게 하네“하였다. 이를 가리켜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구약성서의 여호와 신에게 병설하는 제삿상과 유사하다.


是時 山海諸族 多食魚肉 交易之物 擧皆包具皮革之類故 乃行犧牲之祭 使人反省報功也.
 
이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생선과 육(肉)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의 대부분이 절인 어물과 조개와 가죽류였기 때문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하고 조상의 은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揷指于血 省察生命 往血于地 環報育功 次代物而償五味之過  願其休咎 卽肉身苦哀之告白也.
 
손가락에 피를 묻혀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물체가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멎게 하기 위함이다. 즉 육신고충의 고백이었다. 
 

每歲祭詩 物貨輻溱 廣開海市於津浦 除祓禊身 鑑于地理 行交易之法 定其値量 辨物性之本 明其利用.

언제나 새해맞이 제사(세제:歲祭)때에는 물화(物貨)가 폭주하므로 네 나루와 네 포구에 해시를 크게 열고, 몸을 깨끗이 하여, 지리(地理)를 거울 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값과 분량을 정하며, 물성(物性)의 근본을 분별하여 이용하는 법을 밝혔다.

又象鑿符都八澤之形 報賽於曲水之間 會燕而行濟物之儀. 
 
또 부도에 있는 여덟 개의 연못(팔택) 모양을 본떠서 못을 파고, 굽이굽이 흐르는 물(곡수:曲水)의 사이에서 추수감사제(보새:報賽)를 지내고, 모여서 잔치(회연:會燕)하여 모든 물자를 구제하는(제물:濟物) 의식(儀式)을 행하였다.

諸族 取五瑞之實於蓬萊圓嶠之峰 卽栢子也. 謂之蓬萊海松 惠得五幸而歸. 自此 四海興産 交易殷盛 天下裕足. 
 
제족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峯)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으니, 즉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해송(海松)’이라 하여, 은혜롭게 다섯가지 행운(오행:五幸)을 얻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에 산업이 일어나서 교역이 왕성해지므로 천하가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었다.

 

제 16장 (第十六章)

來市者 又取三靈之根於瀛州岱與山 卽人蔘也. 謂之瀛州海蔘 能保三德而歸.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盖人蔘 具其數格 生於磁朔之方者 必長生 以四十歲謂(爲) 一期休眠 二一三期爲一朔而蓄精 經四朔而結子乃化 如是者 非符都之域卽(則)不得也.


대개 인삼이 그 수와 격(수격: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세(歲)를 1기로 휴먼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정기를 쌓고(축정:蓄精), 4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故 曰方朔草 世謂之不死藥 是也. 其或小根 産於符都之域者 皆有靈效故 來市者이 泌求之也.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신령한 효험(영효:靈效)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인삼은 산신신앙에 이어져 있다.

大抵三根靈草人蔘 五葉瑞實栢子 七色寶玉之符印 眞是不咸三域之特産 四海諸族之天惠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符印)은 진실로 불함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하늘의 은혜(천혜:天惠)였다.

 

*잣나무 신앙은 신라시대에도 있었다.

 

제 17장 (第十七章)

是時 陶堯 起於天山之南 一次出城族之裔也. 曾來往於祭市之會 聞 道於西堡之干. 
 
이 때에 도요(陶堯)가 천산(天山)의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 도요는 중국의 삼황오제중 오제의 4번째 제요도당(B.C 2357~2284)을 말한다. 단군신화에서 요순시대를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然 素不勤數 自誤九數五中之理 以爲中五外八者 以一於(御)八 以內制外之理 自作五行之法 主唱帝王之道 巢夫許由等 甚責以絶之.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수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5(中五) 이외의 8은 1이 즉 8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堯乃出關聚徒 驅逐苗裔苗裔者 黃穹氏之遺裔. 其地 有因氏之鄕也. 後代壬儉氏 率諸人出於符都而不在故로 堯乘其虛而襲之 苗裔 逐散去東西北之三方.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의 후손(묘예:苗裔)들을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 묘예(苗裔) : 배달국 치우천왕의 백성들이 묘(苗)로써 중국의 묘족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堯乃劃地九州而稱國 自居五中而稱帝 建唐都 對立符都. 時見龜背之負文 蓂莢之開落 以爲神啓 因之以作曆 廢天符之理 棄符都之曆 此 人世二次之大變.


요가 곧 9주(九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 두번째의 큰 변이었다.

 

*9주란 '홍범구주(洪範九疇)' 등의 칭호에도 있듯이 아홉에 대한 수를 말한다. 이는 하도낙서에서 보이는 구궁사상을 의미하는 제국의 중심사상이다. 오중이란 도읍을 정할 때에 사신도 배치의 중앙을 의미한다.

 

<부도지> 25장(第二十五章) 

 

麻姑之事 殆化奇怪 泯滅於虛妄 有戶氏周行諸域 說麻姑之道 天符之理 衆皆訝而不受 然 唯其典古者 悚然起來而迎之 於是 有戶 述本理而傳之. <부도지> 제25장(第二十五章)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남은 흔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며 마고와 천부의 이치를 설명 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옛일을 맡아보는 자(전고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래 이치(본리:本理)를 말하며 그것을 전하였다.

 

*마고할미 신화가 다시 살아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부도지>는 위서이며 그 내용은 전통 산신신앙과 서양의 바이블을 모방한 조합된 이야기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11/11/18)

 

 

 

 

 

 

**** 다음은 역사학자인 <들꽃>님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관을 비판한 글 중의 일부입니다.

 

 

<신채호의 독사신론과 조선상고사 비판>

  (역사가로서 신채호 비판)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우리의 역사는 만주를 무대로 하는 주족(主族)인 부여족이 객족(客族)으로서의 외래족인 중국족과 

토착족인 한족(韓族)을 제압해 간 역사로 보았다 

그가 부여족 주족론을 주장하며 삼한족과 기타 종족을 제압했다는 식의 인식은 

우생학적, 인종주의적 관점에 기반한다. 

이는 일제가 우리를 열등민족으로 본 식민사관과 궤를 같이 한다. 비난하면서 답습하는 경우이다. 

그의 주족-객족론은 부여족 정통론으로서, 

신채호식의 논리라면 흉노족(훈족) 신라가 부여족인 고구려, 백제와 토착족인 한족(韓族)을 제압한 것이 통일신라인 것이다. 

 

역사가로서 신채호는 

“김춘추나 김부식을민적(民賊)’·‘공구(公仇)’로서 가혹한 비판을 했음에도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포기하고 고려를 멸망시키고, 명나라에 대국이라며 사대하고, 

나라 이름도 화령과 조선 중에 명()이 정해준 조선으로 한 것에 대해선 침묵했다. 

일본의 식민사관과 같이 신라비토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혐신라와 맞지않는 

역사적 사건들은 누락시키고 무시하였다.

 

 

 

신채호는 칭제건원과 금국정벌을 주장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묘청의 난)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며 왜곡하여 미화포장하고 김부식을 비난했다.

하지만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준비되지않은, 권력을 향한  퍼포먼스였다.

급하게 하려다 보니, 풍수지리설과 도참설을 이용하여 현혹하였고, 신비한 이적을 조작하고

허풍을 떨다가 발각되어서 인종의 신뢰를 잃게 되니까,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고려사 권 127)

한마디로 묘청은 혁신가라기 보다 수단을 위해선 조작도 서슴치 않는 요승이었다.

신채호의 관점이 진실성이 있었다면,

준비되지 않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자주(自主)퍼포먼스에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 타이틀을 부여해선 안되었다.

거대제국 원()이 쇠락하고 요동이 힘의 공백상태에 있을 때 요동정벌을 포기하고

고려를 멸망시키고, 명나라에서 정해준 나라이름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으로 의미 부여를 하였어야 이중잣대 논란이 없는 진실성

을 가졌을 것이나 그렇지 못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또한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고조선과 부여, 발해역사를 편찬하지 않은 것을 비난했지만,

김부식은 삼국의 역사를 쓴것이지 조선통사를 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신라의 후예 아골타가 세운 북쪽의 금나라가 발해를 이은 나라로 존재하는데,

오늘날의 민족감정이 아닌 그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삼국사기에 발해사를 담는 것은

남의 나라(금나라) 역사를 탈취하는 것으로 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부식은 사대주의자가 아니라 전형적인 유교적 합리주의자로 봐야한다.

 

신채호는 식민사관을 비난하면서도 신라사와 김춘추, 김부식 같은 인물에 대해선

식민사관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이성계에 대해선 이중잣대로 일관한다.

 

신채호 이래로 왜곡된 신라사와 김춘추와 김부식 인물론은 식민사관의 아류이므로

객관적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신채호는 식민사관과 같이 신라사를 죽여서

오도된 민족사관을 세웠기 때문이다.

 

 

 

역사가로서 신채호의 잘못은 만주영토에 대해서도 이중잣대와 논리적 모순을 드러냈다는데 있다.

신라가 당을 요동으로 몰아내고 발해가 만주에서 건국되었음에도 만주상실을 신라때문으로 몰아갔고,

반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요동정벌을 포기하고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에 대해선 침묵하고 외면했다.

논리의 일관성이 없다. 

  

조선상고사에서는 

“부여족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 중시하였고”, 신채호의 저술의 저변에 흐르는 관념은 친백제 성향을 보인다. 조선상고사에서 장수왕의 음모, 신라의 음모 그리고 김유신의 음모라는 단어선택을 봐도 그렇다. 

장수왕과 신라와 김유신의 행위가 음모라면 그 반대편에 섰던 백제의 행위는 정당한것으로 보는 것이다. 

삼백년간 왜놈과 결탁한 백제의 행위는 음모가 아니라 정당행위인가 신채호에게 묻고 싶다. 

역사가로서 신채호의 잘못은 외세, 민족에 대하여 이중잣대를 적용했다는데 있다.

 

신채호가 근대 민족주의 역사관을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제 식민사관의 반작용으로 나타났기에 잘못된 괴이한 민족사관이 되고 말았다. 

그에 따른 논리적 오류와 이중잣대 그리고 실증주의를 강조한것과는 달리 객관성을 상실한 

오도된 내용이 너무나 많다. 특히 오늘날의 혐신라는 신채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역사가로서 신채호의 잘못은,

신라사를 제대로 복원하여 식민사관을 극복해야 하는데 식민사관과 똑같이 신라사를 죽여서 

오도된 민족사관을 세웠던 것이다. 

객관성을 상실하고 논리적 오류투성이의 근대민족사관은 이제 타파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 동북공정을 극복하는 새로운 민족사관의 정립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임나일본부과 삼한정벌론이

실제는 백제가 왜를 한반도에 끌어들임으로써(군사동맹), 

왜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나타난 것을 왜곡조작한 것이고,

그때문에 신라가 광개토대왕에게 구원을 받을만큼 열세에 놓이게 되었음을 밝히고,

이러한 왜의 세력을 축출한 것이 일차적으로 진흥왕이고 

완전히 몰아낸 것이 신라의 삼한일통임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청나라 만주원류고에서는 최종적으로 나당전쟁의 승리로 당이 요동으로 물러나고 발해건국 전까지 신라가 만주와 한반도를 차지한것으로 본다 

신라사에 대한 주체적 관점이 신채호가 아닌 청나라에서 나온 것은 아이러니다 

신라사에 대한 주체적 관점으로 보는 시대구분은 다음과 같다. 

삼국시대 - 통일신라시대(676년 나당전쟁승리 ~ 698년 발해건국전후) – 남북국시대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역사관은 만주와 한반도가 중국과는 다른 공동역사체임을 밝히고 있는 바, 

이는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결국 신라비토에 집중한 신채호의 관점과는 반대로,

신라사에 대한 주체적 복원이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 동북공정을 극복할수 있는 또하나의 

중요한 중심축인 것이다.

 

 

(중략)

 

<모순된 민족, 외세, 영토관념으로, 신채호 이래로 형성된, 거짓논리의 현재의 민족사관이

신라 비토에 충실하여, 통일신라의 강역이 18세기 청나라나 일제 식민사관보다 못한 대동강 이남으로 한정시켜 놓았다.>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통일신라 강역(좌)과 일제의 통일신라 영토(우)>

 

거짓논리의 모순된 민족사관따라 쓰여진,

현재의 국사교과서는 식민사관의 변형으로, 신라 비토에 있어서는 식민사관보다 더하다.

잘못된 민족, 외세, 영토관념을 적용하여 신라 비토에 충실하다.

18세기 청나라 사서 만주원류고는 통일신라의 강역이 발해 건국전까지

한반도와 만주전역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일본 식민사관조차 통일신라의 강역이 압록강 이남이라고 하는데,

자랑스런(?) 우리의 국사교과서는

통일신라(나당전쟁승리부터 발해건국전까지)의 강역을

대동강 이남으로 축소시켜 놓았다.

남의 나라보다 못하다.

지금은 새로운 민족사관과 국사교과서가 필요한 시대이다.

 

일본서기부터 시작된 일본의 식민사관과

현대에 와서 시작한 중국의 동북공정의 핵심중 하나는 신라사에 대한 왜곡 조작이다.

우리역사의 허리에 해당하는 신라사를 비틀어 왜곡 조작하고 자기들 논리에 끼워맞추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저변에는 이를 추종하는 자들이 넘쳐난다.

우리는 유독 신라사에 대해서만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의 관점을 그대로 추종하는 자들이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을 욕하는 위선적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 * 동북공정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중의 하나는 청나라 사서인 만주원류고의 역사관이다.

만주와 한반도는 중국과 다른 공동역사체임을 선언한 만주원류고는 동북공정의 아킬레스건이다. )

( * 임나일본부와 삼한정벌론이 허구임을 밝히고, 동시에 일본측 기록에 나오는

 '신라의 일본정벌론'과 통일신라 강역의 주체적 시각을 교과서에 수록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신라사에 대한 식민사관과 동북공정 추종자들을 극복하고

신라사를 우리의 주체적 관점으로 복원하는 길만이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을 깨트리는 또하나의 중심축임을 알아야 한다.


 


 
케엑 13.04.18. 15:20

Mt. Taighar Shyngy는 호신지(虎神指)라는 뜻의 어변(語變)으로 Tigar(호랑이) God Mind(신의 뜻 : 神指)를 일컷는 듯 합니다.

이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족(虎族)과 웅족(熊族) 중의 호족이 먼저 이식쿨 호수 주변의 天山에서 살고 있다가, 후대에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몽고~만주일대에 터잡고 살고 있었던 웅족(熊族)과의 세력다툼에서 웅족(熊族)이 승리하였다는 신화가 바로 단군신화입니다.

마고신화(麻姑神話)는 천산 천지(이식쿨 호)에 먼저 터전을 이루고 있었던 호족(虎族)의 건국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부도지는 신라 박제상의 저술인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전래 설화 전적을 후대에 집성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케엑 13.04.18. 20:31
호족의 동류(東流)에는 수렵시대에서 목축시대로 오면서 가축의 증가로 인한 초원의 사막화로 인하여 점차적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웅족은 지역 특색에 따라 수렵 목축 농경을 겸하고 있던 세력으로 호족은 경쟁에서 패배하여 웅족에 흡수됩니다.
그리하여 단군의 고조선(古朝鮮)이 건국하게 됩니다.

호족의 천산(타이가 신지산) 생활시대가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선생님의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수두(蘇塗)時代로써
조선(朝鮮) 최초의 나라를 건국한 부여(扶餘 : 불나라)이며, 부리(夫里),부루(夫婁) 또는 품리(稟離)로 표현되기도 하나, 이는 한자(漢字)가
창제 또는 보급되기 전의 이두식 표기법으로 보면 됩니다.
 
 
케엑 13.04.24. 10:54
<부도지(符都誌)>라는 뜻은 <신의 뜻을 받들어 도읍을 정한다> 즉 나라를 세운다라는 의미입니다.
제1장에 나오는 궁(穹)씨는 동굴속에 혈거하면서 사냥을 하던 부족을 뜻히고, 소(巢)씨는 나무로 지은 부루(바닥이 높은 1.5층 집)에 살면서 수렵과 채집을 하던 부족을 의미합니다. 각각의 2부족씩 4개 부족이 연합하여 불나라(부여扶餘 불나라의 이두식 표현으로 후에 동북지방에서 고조선을 계승한 부여와는 다른 나라임)라는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동북방지역인 몽고~만주 일대로 이동 후 호족은 예맥(濊貊)족이라 이름하여,그 후에 이들을 주축으로 고구려(高句麗,桂婁:가운데,高麗,古離,槀離)를
세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