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소리를 복원하는 생황연주가 - 손범주

2015. 12. 10. 09:58율려 이야기

 

 

      

이 달의 불자

 

하늘의 소리를 복원하는 생황연주가 - 손범주

 

 


   김홍도의 그림 중 ≪전당시(全唐詩)≫ 가운데 나업의 생황시를 화제(畵題)로 그린 그림이 있는데, 젊은 남자가 파초 위에 앉아 생황을 부는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라는 작품이다. 적당하게 풀어 헤친 옷자락과 맨다리를 세워 양팔을 받쳐들고 파초잎을 깔고 앉아 생황을 부는 그림…. 방안 가득 달빛이 비치듯 말간 종이 위로 떠오른 그 그림의 한귀퉁이에 단원의 글씨로 앞서 말한 나업의 생황시 '월당처절승용음(月堂悽絶勝龍吟)'이라는 글귀가 있다. 달빛이 비쳐드는 방 안에서 생황 소리는 용의 울음보다 더 처절하다는 내용….

 

   이 그림 속의 남자가 부는 생황(笙簧)은 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역사가 오래된 악기이지만 긴 세월을 거치며 점차 사장(死藏)의 길을 걸어왔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김홍도의 월하취생도,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신윤복의 연당의 여인과 수많은 민화들의 소재로 자주 등장할 만큼 일상에서 많이 연주된 악기였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통일신라 시대에 주조된 '에밀레종'이나 상원사 동종에도 생황이 등장할 만큼 그 역사가 장구함에도 불구하고….

 

   생황은 우리 역사를 통틀어 두 번 부흥되고 있다. 그 한번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박연을 통해서 악기를 새로 복원 작업하여 생황을 많이 부흥시켰으며, 또 한번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악공도 없어지고 악기도 사라져 해마다 중국으로 가는 연행(燕行) 길에 악공들도 함께 유학을 보내 악기 제조법이나 연주기법 등을 배워오게 하였는데 모두 실패하고 수룡음이라는 생소병주곡(笙簫竝奏曲)이 겨우 한 작품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 오늘날 이 시점, 생황 소리를 활발한 음악 활동과 함께 복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손범주 씨이다.


   얼마 전, 그가 동·서양의 악기를 가지고 화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월드음악 실내악단 '오리엔탈리카' 공연에 갈 기회가 있었다. 우연찮게 읽어내려간 신문에서 한번도 그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생황'이라는 단어를 보고 기회를 일부러 만들었다. 그것은 옛그림 속의 생황처럼 그림으로만 정지되어 있던 것을 '살아 호흡하는 소리'로 들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만난 작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공연 당일,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국립국악원으로 향했다. 국악원에 도착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으나, 다른 악기 소리에 파묻혀 도대체 어느 소리가 생황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순간….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외국 작곡가의 '5개의 타악기를 위한 음악'을 승가의 전통적인 법구인 목탁으로 표현한 음악, 그리고 손범주 씨가 작·편곡한 음악들 곳곳에 불교적인 내음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며칠 후, 신문에 난 기사를 의지삼아 사라져가는 생황 소리를 복원 작업하고 있는 '손범주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손범주 씨는 그의 피리 은사이신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재국 교수님께 처음 생황으로 수룡음을 배웠다. 그후 중국으로 유학, 본격적으로 생황을 전공하였다. 그가 생황에 특별히 매력을 느낀 것은 천상의 악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란다. "비천상(飛天像)에도 나타나 있는데, 항상 천녀들이 안고 부는 악기라고 해서 하늘의 소리라고 많이들 표현해요. 믿거나 말거나 봉황의 울음소리라고도 비유를 하고…."

악기가 서역에서 중국을 통해 건너와 중국에서 많이 활성화되었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역사가 깊은 악기이기 때문에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악기라 더욱 매력을 느낀단다.

그는 실생활에서 본인이 겪은 것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많은 곳을 여행하며 메모를 하여 나름대로 생각을 담아 창작을 한다고 한다. 원래 불자 집안으로, 한때 타종교에도 나갔었지만 지금은 불교가 더 편안하다는 그. 예전에도 불교 음악을 만들려고 많이 뛰어다녔으며, 계속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인다.

 

   모든 전통악기들은 악보가 있지만 생황은 현재 그 악보가 전해지는 것이 단소와 함께 연주되는 수룡음 하나 뿐이다. 때문에 그는 모든 작업에 있어 악보도 직접 만들어야 한다. 현재 3년 이상 전통음악에 관계된 곡부터 악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직 가곡이나 종묘제례악 부분은 너무 광범위해서 손도 못 대었단다.

   우선 일차적으로 영산회상과 많이 쓰이는 음악들의 악보집을 내고, 생황의 종류, 역사 부분을 자세하게 서술하여 작곡가나 초보자도 그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양의 악보 형식과 전통악보 두 가지 모두 싣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나름대로의 많은 작품활동을 해 오고 있었다. 그 첫번째 작품이 비천(飛天)이었다. 이 음반은 인도악기 시타르(sitar)와 항아리, 특수악기, 서양악기와 함께 생황 소리를 녹음하였다.

현재 그는 두번째 작품으로 천음(天音)을 준비하고 있다. 왜 천(天)이라는 글자를 음반마다 타이틀로 사용하느냐고 묻자 '천'이라는 글자 만큼 생황의 소리를 잘 표현하는 글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화답하는 손범주 씨. 빠르면 올해 나오고, 늦으면 내년 봄쯤 나온다는 그의 다음 작품을 이른봄 돋아나는 파릇한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급하게 기대해 본다.

취재 / 신위현

 

月刊 佛陀 월간 붓다

Monthly Magazine Buddha
2545 11 4334 2001

 

 

 

 

 

 

 

허무(虛無) - 손범주의 생황연주| ♪· · · · · 국 악·퓨전음악

 

리브가
| 조회 167 |추천 0 | 2008.12.26. 11:32

 

 

 

 

허무(飛天)

 

생           황 : 손 범 주

신 디 사 이 저 : 한 은 경

 

'울밑에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의 선율이 떠오른다. 생황과 신디사이저의 반주로 연주되는 이 곡은 제목 <허무>가 주는 느낌 그대로 허무하다. 주제선율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국립국악원 연주원이자 21세기피리음악연구회와 월드음악실내악단 orientallica의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피리연주가 손범주가 기획, 작곡, 연주한 음반 「비천(飛天)」이 서울음반에서 나왔다.

 

이 음반은 같은 월드음악실내악단의 맴버로 활동중인 김창수(서울대 작곡과 졸업, 인도 성악 및 기악 10년간 수학)와 김경수(연세대 졸업, 세계타악기 연주가)가 참여하여 함께 만든 음반이다. 이들은 3년전부터 orientallica라는 이름의 실내악단을 결성하여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금년 12월 창단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 악단은 한국, 중국, 인도, 일본 등 동양의 여러 악기를 바탕으로 각 국의 전통음악을 새롭게 해석하여 세계적 보편성을 확보한 월드뮤직을 만들어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월드뮤직은 기존의 정형화된 음악적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음악적 환경 속에서 탄생되는 새로운 음악인데, 작곡기법을 중시하는 테마위주의 전통적인 창작품이 아니라 듣기에 편안한 즉, 수용자 중심의 음악 생산에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작곡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생산된 '강요된 음악'이 아니라 수용자들의 요구에 의한 '선택된 음악'을 생산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즉 현대인의 복잡하고 고단한 삶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휴식 같은 음악'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선(禪)에 대한 관심이 열병과 같이 전 세계에 급속도로 확산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명상음악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명상음악들은 대개 전자악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 자연의 소리와는 거리가 있는 음악들이 대부분이다. 호흡을 통해 우주의 기를 모아 태초의 자연인 상태로 돌아가자는 선(禪)에서 이러한 전자음향에 의한 음악을 통해 명상의 깊은 단계로 몰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연의 재료로 만든 악기야말로 자연의 소리, 즉 우주의 소리를 담은 태초의 소리가 아닐까? 자연의 재료에 바탕을 둔 동양의 악기와 가식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발성(發聲)에 의한 인성(人聲)을 담고 있는『비천』은 자연의 소리에 목말라있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마음을 열어 위로하며 편안한 안식을 주기에 제격이다.

이 음반은 손범주가 중국에서 배운 생황을 중심으로 인도의 시타르, 땀블라. 우리의 피리, 대금, 소금, 단소 등과의 화음에 중점을 두었다. 본래 생황은 『삼국사기』, 『악학궤범』 등 우리 나라 옛 악서는 물론 중국의 『수서』, 『구당서』등에도 나오는 유서 깊은 악기이다. 이 음반에 사용되는 생황은 24관 생황으로 중국에서 개량된 것으로 이것을 손범주가 우리음악을 연주하기 알맞게 다시 음고를 조절하여 만든 것이다.

 

 

 

 

 

 

생황 연주 되살리는 국립국악원 손범주씨
'봉황의 울음 소리'다시 울려 퍼지게 25일 '종묘제례악' 무대서 정격연주 나서

 

한국일보 2004-10-22


   생황은 국악기 중에도 비교적 낯설다. 에밀레종에 새겨진 비천상에서 천녀가 연주하는 악기, 영화 ‘취화선’에서 화가 장승업의 여인이 불던 악기가 바로 생황이다. 금속제 떨림판이 붙어있는, 길이가 서로 다른 대나무 관을 울림통에 꽂아 입으로 부는 이 악기는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성을 낼 수 있는 악기로, 그 구조나 원리가 서양의 파이프오르간과 닮았다. 소리가 신비롭고 이국적이어서 ‘하늘의 소리’ ‘봉황의 울음’에 비유되곤 한다.

 

   생황은 아주 오래된 악기다. 중국에서는 3400년 정도, 우리나라에서는 문헌기록상 1700여년의 역사를 지녔다. 조선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나라의 큰 행사 특히 문묘나 종묘의 제례음악에서 반드시 쓰이던 것이지만, 지금은 ‘수룡음’ ‘염양춘’ ‘영산회상’ 같은 몇 곡만 남아있다. 생황의 전승이 원활치 못했던 까닭은 악기제작법, 음정 조절, 다른 악기와의 합주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시절 아악을 정비할 때, 이 국가적 음악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였던 음악학자 박연이 생황의 원형, 즉 바가지 울림통의생황을 복원했지만, 바가지라는 게 워낙 잘 깨지는데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차례로 겪는 동안 많은 악사와 악공, 악기가 소실되면서 맥이 거의 끊어졌다.

 

   18세기 들어 청나라에서 생황이 많이 수입되면서 선비들의 풍류방을 중심으로 사랑받는가 싶더니 다시 잊혀져 오늘에 이른다.

 

 

 

 

   국립국악원에 몸담고 있는 연주자 손범주(42)씨는 생황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다. 대금이나 피리 연주자들이 부수적으로 익히던 생황을 10여년 간 중국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배웠다. 생황 연주법 뿐 아니라 제작법, 역사와 음악까지 깊이 공부했다.

 

그가 종묘제례악에서 사라져버린 생황의 자리를 되찾는 뜻 깊은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25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국립국악원의 여러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생황이 포함된 종묘제례악을 연주한다. 다른 악기 소리들을 이어주고 감싸주며 받쳐주어 더욱 풍성한 소리를 빚어내는 생황의 역할을 재발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는 이번 공연을 ‘생황의 원형을 복원했던 박연 선생과 만나는 자리’로 표현한다. 500년 박연 선생이 했듯 오늘날 자신이 복원한 생황으로 종묘제례악의 빈 자리를 채워넣는 작업이라는 뜻에서다.

 

서양음악으로 치면 옛 음악을 당시 악기와 편성, 주법으로 복원하는 이른바 정격ㆍ원전연주에 해당되는 공연이다. 생황의 빈 자리를 복원하고 오늘의 음악, 오늘의 악기로 보급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고 있는 그는 생황이 있던 옛 음악을 찾아서 되살리는 한편, 생황을 위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할 계획도 갖고 있다.

 

 

 

 

 

생황(笙簧)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관악기의 하나로 몸통은 본래 바가지[匏]로 만들었으나, 요즈음은 나무로 만들고, 몸통 위에 가느다란 대나무 관을 꽂는데, 관의 아래 부분에 얇은 쇠청(金葉, reed)을 단다. 몸통에 붙은 취구에 입을 대고 숨을 내쉬거나 들여 마실 때 쇠청이 떨려 하모니카 비슷한 소리를 내는데, 동시에 두 소리 이상을 낼 수 있다. 옛날에는 죽관(竹管)의 수에 따라 화(13관)·생(17관)·우(36관) 등으로 구분하였으나, 조선 후기부터 17관의 생황이 주로 쓰이는데, 관 하나는 윤관(閏管)이라 소리내지 않으므로, 그 음역은 12율4청성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백제음악에 사용된 기록이 보이며, 상원사 동종의 부조에도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와 조선 초기에는 중국에서 들여오기도 하였으나, 세종 때에는 국내에서 제작하기도 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궁중의 제례의식에 사용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가곡 등의 반주에도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독주악기로 사용되지 못하고 단소와의 2중주에 주로 쓰인다.

 

 

허무(虛無) - 손범주의 생황연주

 

 

 
 - 다음 카페 <아련한 추억 속에 음악> 리브가 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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