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와 나무꾼의 대화 - <어초문답도>

2015. 12. 21. 05:20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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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와 나무꾼의 대화 - <어초문답도>

 

 

      이명욱(李明郁)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17세기


 

 

 

                                                    이명욱(李明郁)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17세기 지본담채 173x94.6cm 간송미술관  

 

 

 

 

 

어부와 나무꾼(漁樵).


   ‘어부’와 ‘나무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화, 우화,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 캐릭터이지요.
옛 어르신들의 고귀하신 말씀에도 이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대답하는 그림인 어초문답도
오른쪽 인물이 어부로, 한 손에 물고기를 다른 한 손에는 낚싯대를 들고 있으며,
허리춤에 도끼를 차고 있는 왼쪽 인물이 초부입니다.

 

 

   중국의 문학작품 속에서 어부와 초부는 종종 복잡한 세상을 피해 유유자적하며 숨어 사는 은자의 표상으로 등장하는데,
그림의 주제가 되는 원전인 화인(畵因)으로
송대 소옹(邵雍)의 저서 『어초문답』, 고금곡(古琴曲) 중의 『어초문답』, 원곡(元曲) 중의 『어초기』 등이 언급됩니다.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도연명『도화원기』를 시로 읊은 당나라 왕유(王維, 701-761)『도원행桃源行』에도

어초’가 등장합니다.
도화원기에서는 어부가 도원을 다녀오지만(스마트K 회화이야기 “도원도” 참조)
도원행에서는 초부가 도원을 방문하고, 그곳 도원에서 사람들의 생활 모습 속에 어부와 초부가 함께 등장합니다.


    “해질녘에 어부와 초부가 물길타고 들어온다” (薄暮漁樵乘水入)


세상의 복잡한 일을 떠난 평화로운 모습을 상징하는 정도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옛글에서 어부와 초부를 볼 수 있지만 몇 가지만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식(蘇軾 1036~1101)『전적벽부前赤壁賦』(두 번 쓴 적벽부 중 먼저 쓴 것)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況吾與子,魚樵於江渚之上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어부와 초부 노릇을 하며
侶魚蝦而友麋鹿                  물고기나 새우를 짝하고 사슴들과 벗함이라
駕一葉之扁舟                     일엽편주에 몸을 담아
舉匏尊以相屬                     바가지 술잔을 서로 권하며
寄蜉蝣於天地                     하루살이같이 천지간에 기탁하고 있으니,
渺滄海之一粟                     바로 그 아주 작음이 푸른 바다의 한 톨 좁쌀이라,
哀吾生之須臾                     실로 우리 삶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羡長江之無窮                     장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하도다.

 

 

****

큰 사슴 미 단어장 추가
1. 큰 사슴 2. 눈썹(=) 3. 물가(=) 4. 궁궁이(-: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5. 죽, 미음(: 푹 끓여 체에 걸러 낸 걸쭉한 음식)(=) 6. 부서지다 7. 짓무르다(채소나 과일 따위가 너무...

 

 

   이 송나라 때부터 어부와 초부가 속세를 피해 고상한 대화를 하는 은자의 대명사로 떠오른 듯합니다.

소강절(邵康節 1011~1077)도 소동파와 비슷한 시기의 사람으로 이분이 지은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드디어 어부와 초부가 세상의 이치에 대한 철학적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어초문대魚樵問對」)

 

 

漁者垂釣于伊水之上。樵者過之,弛擔息肩,坐于磐石之上,而問於漁者
어부가 물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무꾼이 그 옆을 지나가다

짊어진 짐을 벗어놓고 너럭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어부에게 물어 가로되
...


乃析薪烹魚而食之飫,而論《易》
땔감을 쪼개어 물고기를 구워먹으면서 易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漁者與樵者遊于伊水之上。漁者歎曰
어부와 초부는 같이 伊水가에서 노닐었는데, 어부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


漁者謂樵者曰 “子知觀天地萬物之道乎?”
樵者曰 “未也。願聞其方。”
漁者曰 “夫所以謂之觀物者...
어부가 초부에게 말하기를 너는 천지만물을 보는 道를 아느냐.
초자가 말하기를 아직 모른다하고 그 방도를 듣기 원하자
어부가 말하기를 무릇 소위 말하는 관물이라는 것은.
...


길게 세상을 보는 이치에 대하여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그림에서 등장하는 어부와 초부는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이들은 단순한 어부와 초부가 아니고 숨은 현자(賢者)입니다(속된 말로 일반인 코스프레?).
이분들이 묻고 대답하는 것은 오늘의 수확량이나 내일의 날씨 이야기가 아닌 것이지요.

 

 

   홍득구가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도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홍득구 <어초문답도> 

지본채색 37x29cm 간송미술관

 

 


   송나라 이후에는 이러한 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어초문답도가 그려졌다고 합니다.

이명욱어초문답에 등장하는 인물은 중국 옷차림을 하고 있고 중국의 어초문답도들과 비슷한 구도인데 반해,
겸재 정선그림에는 지게도 등장하고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도 유행한 적 있던 학창의를 입고 있으며
구도도 이명욱의 어초문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선 <어초문답도>

 33x23.5cm 간송미술관

 

 

 

   나무꾼은 산수 자연을 좋아하는 지자(智者), 어부는 강호 자연 속에서 세월을 낚는 인자(仁者)의 상징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공자님 말씀을 따라 생각해 보면 물을 좋아하는 어부가 지자,

산을 좋아하는 초부가 인자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智者樂水 仁者樂山).

 

 


 


이인상 <어초문답도>

지본담채 26.5x60.5cm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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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지(益之) 이명욱(李明郁)
조선 중기의 화원 화가. 화원 한시각(韓時覺)의 사위. 산수, 인물을 잘 그려 이징(李澄) 이후 최고라는 찬사는 들었으나 요절했다. 유작으로 <어초문답도> 한 점만 전한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5.12.21 04:34

 

 

 

 

 

소강절 이야기(18) 
 
 
어초문대 
 
어부와 나무꾼(漁樵).
내륙은 나뭇꾼 바닷가는 어부가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 직업이자 일상적 보통 사람을 지칭한다
가끔은 평범을 가장한 비범한 도인으로 때로는 풍진 세상의 험난함을 피해서

은둔자의 삶을 어부와 나무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강절의 어부와 초부는 세상의 이치에 대한 철학적 대화를 한다
물을 좋아하는 어부가 지자,
산을 좋아하는 초부가 인자가 아닐까
(智者樂水 仁者樂山).
 
 
皇極經世書(황극경세서) 7篇
外書篇(외서편)
[漁樵問對(어초문대)] 

 
漁者垂釣于伊水之上。樵者過之,弛擔息肩,坐于磐石之上,而問於漁者
어부가 물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무꾼이 그 옆을 지나가다 짊어진 짐을 벗어놓고 너럭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어부에게 물어 가로되... 
 
乃析薪烹魚而食之飫,而論《易》
땔감을 쪼개어 물고기를 구워먹으면서 易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漁者與樵者遊于伊水之上。漁者歎曰
어부와 초부는 같이 伊水가에서 노닐었는데, 어부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 
 
漁者謂樵者曰 “子知觀天地萬物之道乎?”
樵者曰 “未也。願聞其方。”
漁者曰 “夫所以謂之觀物者...
어부가 초부에게 말하기를 너는 천지만물을 보는 道를 아느냐.
초자가 말하기를 아직 모른다하고 그 방도를 듣기 원하자
어부가 말하기를 무릇 소위 말하는 관물이라는 것은.
... 
 
세상을 보는 이치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다  
 

樵者曰(초자왈): 나무꾼이 말하기를
人有禱鬼神而福者
사람이 귀신에게 빌어서 복을 구할려고 하는데 
 
福可禱而求耶
복을 기도하여 구할 수가 있습니까 
 
求之而可得耶
그리고 구하고 얻을 수가 있습니까 
 
敢問其所以
외람되게 그 연유를 물어 보고자 합니다

曰 語善惡者 人也
고기잡이가 대답하기를
선과 악을 말 하는 것은 사람이고 
 
禍福者 天也
화와 복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天道福善而禍淫
하늘의 도는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는 재앙을 내리는데 
 
鬼神其能違天乎
귀신이 하늘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自作之咎固難逃已
자신이 스스로 지은 허물은 참으로 피하기 어려운 데 
 
天降之災 禳之奚益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어찌 없애달라고 빌어서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脩德積善 君子常分安有餘事於其間哉
덕을 닦고 선을 쌓는 것은 군자가 늘 하는 직분인데 어찌 그 여가의 일과 그사이에 별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樵者曰
나무꾼이 말하기를 
 
有爲善而遇禍
착한 일을 했는데 재앙을 만나고 
 
有爲惡而獲福者 何也
나쁜 일을 했는데 복을 받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漁者曰
고기잡이가 말하기를 
 
有幸與不幸也
여기에는 행복과 불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幸不幸 命也
행복과 불행은 운명이고 
 
當不當 分也
당하고 안 당하는 것은 인연이며 즉 자기가 하는 직분인 연분입니다 
 
一命一分 人其逃乎
운명과 연분을 사람으로서 어떻게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曰 何謂分何謂命
나무꾼이 묻기를 무엇을 연분이라 하고 무엇을 운명이라고 합니까

曰 小人之遇福
고기잡이가 말하기를 소인이 복을 받는 것은 
 
非分也 有命也
연분이 아니고 운명이고 
 
當禍 分也 非命也
소인이 재앙을 당하는 것은 당연히 연분이지 운명이 아니다 
 
君子之遇禍
군자가 재앙을 당하는 것은 
 
非分也 有命也
연분이 아니며 운명이고 
 
當福 分也 非命也
군자가 마땅히 복을 받는 것은 당연히 덕을 베푸고 적선을 한 연분이지 운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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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절(邵康節)

 

 

   우주(宇宙)에 대한 수리(數理) 철리(哲理) 강론 천지 생성 . 역사(歷史) 전개 숫자로 설명 「앎은 강절(康節)의 지식이 있다.」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 관물내외편(觀物內外篇) . 강절관매(康節觀梅)」등의 역저(力著)남겨

 

   지혜와 생각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이고 시인인 소강절(邵康節 1011-1077)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이름은 옹(雍),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 시호는 강절(康節) 이다. 관료로서 사색에 힘썼던 주렴계에 비하여

그는 시정(市井, 인가가 모인 곳, 시가, 거리)의 은둔 철학자였다. 북해의 이지재(李之才)가 공성(共城)을 다스릴 때 소강절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찾아가 『그대는 물리성명지학(物理性命之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강절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는 이 선생을 모시고 하도(河圖), 낙서(洛書), 복회(伏會)의 8괘(八卦)

64괘(六十四卦) 도상(圖像)을 전수 받았다. 지재가 전하는 것은 개괄적인 것이었으나, 소옹은 핵심을 찾고 숨긴 뜻을 찾아내어,

그것의 신기하고 묘한 것을 깨달았고, 철저하고 함축성이 있으며, 광활한 것을 스스로 터득하였다.

 

   소강절은 처음 낙양에 왔을 때, 쑥대나 싸리로 담장을 두고 몸소 나무하고 불을 때서 부모를 공양하였다. 평소에 비록 매우

가난하게 살아도 흔쾌히 즐거움으로 받아들여 그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이 따라 갈 수 없었다. 54세 때에 부친상을 당해서는

몸이 상할 정도로 슬퍼하여 예(禮)를 다했으므로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여공저(呂公著)등이 낙양에 살 때 소옹을 공경하여

항상 함께 지냈으며, 그를 위해 정원과 집을 사 주었다. 그는 해마다 농사지음에 겨우 먹고 입을 정도였다. 그 거처를 「안락와」

라고 이름하고 스스로 그의 호를 안락 선생이라고 하였다.

 

   또 향을 피워 놓고 편안히 앉아서 오후 3∼4시 사이에 술을 서너 동이씩 마셨는데, 조금이라도 취하면 곧 그쳐서 항상 취하게

까지는 마시지 않았고, 흥이 오르면 문득 시를 짓고 스스로 노래했다. 봄.가을이 되면 성중을 유람하였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항상 나가지 않았고, 출타할 때면 한 사람이 말을 몰아 마음먹은 데는 어디든지 갔다고 한다.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는 그의 마차 소리만 들리면 다투어 맞이했고, 어린 아이들이나 하인들이 모두 『우리 집 선생님이

오셨다.』고 말하여 그의 성명을 부르지 않았다. 호사가들은 따로 소옹이 거처하는 집처럼 만들어 놓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그것을 「행와」 라고 불렀다.

 

   사마광이 그를 형으로 섬겼는데 두 사람의 덕성은 향리에서 더욱 흠모 받아 부자 형제들이 서로 조심하도록 하여 『나쁜 짓을

하지 마라. 사마선생이나 소선생님이 알까 무섭다.』라고 하였다. 또 소송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관부로 가지 않고 꼭 소옹에게

갔다. 그의 덕과 기품이 순정하여 바라보면 그의 어질고 현명함을 알겠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과 자리를 두지 않고 여럿이 있을 때도 항상 웃으며 편안하게 하여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그의

착한 점을 즐겨 말하고, 나쁜 점은 숨겼다. 학문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있으면 답해 주고, 억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어리거나 아이들이거나 한번을 대해도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들은 그 덕을 기쁘게 여기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덕화에 감복되었다. 낙양에 인재들이 특히 많았으나 충후(忠厚)한 명성이 천하에 떨쳤다.

 

   그의 인품은 고명(高明)하고 영민 하고 비범하여 천고에 뛰어났으나, 평범하고 심후하여 모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맑으면서도

격하지 않고, 조화로우면서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오래 사귈수록 더욱 그를 존경하고 믿었다. 하남(河南)의

정호(程顥)는 처음 부친을 모시고 소옹을 찾아 종일 예의에 대해 논의하고 물러 나와 『요부(소강절)는 안으로는 성인이요

밖으로는 임금의 학문이다.(堯夫 內聖外王之學也)』라고 감탄했다.

 

 

   또한 소옹은 지혜와 생각이 뛰어나 어떤 일을 만날지 미리 알았다. 정이『그의 마음은 허허롭고 밝아 스스로 그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학자들은 소옹의 뛰어난 앎 때문에 그의 행위를 높이기에 힘썼고 심지어는 소옹에게는 세상을

희롱하는 뜻이 있다고도 말했으며, 또 그가 앞일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소옹은 모든 사물의 소리와 기를 감촉 하여 곧 그

움직임을 보고 그 변화를 안다고도 말했다.「전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세 기운이 밝혔으니 앎은 강절의 지식이

있고 …』 (교법 2장 42절)

 

 

   소옹이 병들자 사마광, 장재, 정호, 정이 등이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물었고 그가 죽으러 하자 정원에게 그의 상사(喪事)를

함께 의논했는데, 소옹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 백을 불러 『여러 사람들이 나를 성

가까이에 장사지내려 하나, 마땅히 선영에 장사하라.』고 말했다. 그의 나이 67세 때(1077년) 세상을 떠나자, 정호가 비명을

썼는데, 소옹의 도는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그 이른바는 편안한 가운데 이루었다. 그의 저서로는 「황극경세(皇極經世)」,

「관물내외편(觀物內外篇)」,「어초문대(漁樵問對)」,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매화역수법(梅花易數法)」 흔히

「강절관매법(康節觀梅法)」이라고 하는 등이 있다.

 

 

 

    그는 30여 년 간 낙양에서 은둔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술수(術數)에서는 사마광의 잠허(潛虛)와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었고,

 낙양의 여러 선비는 소강절로부터 그 자연과 인간에 대해 심오한 수리(數理)와 철리(哲理)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남송(南宋)의 주자(朱子), 주염계, 정명도(程命道), 정이천 함께 강절을 도학(道學)의 중심인물로 간주하였으며, 또한 그는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켜 특이한 수리 철학을 만들었다.

 

   소강절은 천지가 생성된 역사의 전개를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여, 「일원(一元)」 이라는 역사의 생성과정을 고찰하였다.

그는 매일 원은 모두 구체적 세계의 한차례의 생멸(生滅)이고, 시간은 무한한 것이며, 따라서 일원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며,

세계도 부단히 출현하고 소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순환론적 안목은 한대(漢代)의 오덕삼통설(五德三統說)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었다.

 

   일원(一元)은 12回 360運 (12×30), 4320世 (360×12)이며 1世는 30년이므로, 일원은 129,600이 되고 역사는 129,600년을 1주기로

하여 생성, 회전한다. 이것은 실제의 년월일시(年月日時)의 확대였다. 그는 또한 천지인은 모두 물(物)이라고 말하였지만,

그러나 이는 모든 구체적인 사물을 신비적인 최고범주(도,道 혹은 태극, 太極)에 융합해 버리는 수단으로 파악하였다.

도(道) 혹은 太極의 본질은 「정(靜)」, 「무(無)」이며, 또한 신(神)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였다. 일체의 물질적인 것은 모든

신(神)에서 나와서 또 다시 신(神)으로 돌아간다는 말 이였다. 이러한 신(神)은 상제(上帝)란 의미로서 신(神)이며, 또한 인간의

정신이란 의미로서의 신(神)이다.

 

   예컨대 그는 「사람의 신(神)은 곧 천지의 신(神)이다. 」 「도(道)와 일(一)은 신(神)의 강명(强名)이다. 그리고 일심(一心)으로

써 만심을 본다고 하면서도 내 마음으로써 외물을 보고 물(物)로써 물(物)을 보는 것이라 하여 무심(無心)으로 있는 그대로를 볼

것을 강조하였다. 천지의 감응에 제삼자로써 함께 참여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제거한 허명(虛明)한 경지가 필요하며 우리는

자기를 없앰으로써 천지 감응의 생명에 뚫고 들어갈 수 있음을 밝혔다. 또한 천지를 단순히 대상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일기(日氣)의 생성이나 일기생성, 천지감응의 생명은 내 마음을 버리고 물(物)로써 물(物)을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는 「자여음(自餘吟) 격양집」에서 『신생천지후 심재천지전 천지자아생 자여하족신 (身生天地後 心在天地前 天地自我生

自餘何足信)』 (몸은 천지의 뒤에 생기고 마음은 천지에 앞서 있다. 천지는 나로부터 생기고 스스로 저절로 남으니 무엇을 족히

말하리요.) 라고 읊고 있다. 이 시는 인간생성과 의식에 관한 것이며 우리의 마음이 천지에 앞서 있음을 깨달을 때 천지가

나로부터 생겨난다는 시 구절이다. 천지의 조화와 음양의 소장(消長)을 보아 무심의 경지를 깨달았다는 점 즉, 주체의 자유가

존재를 매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