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지 요약 / 박현 선생 강해

2013. 5. 14. 11:37우리 역사 바로알기

 

 

 

 

         김은수 선생 역

이 글은 그간 겨레의 역사와 사상의 뿌리를
찾는 데 전념해 온 사학자 박현 선생이
조계사 교육원에서 열고 있는 부도지 강의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 겨레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부도지에서 우리는 한민족 고유의 독특한 역사관과
인간 이해, 그리고 참된 인간 본성을 향해 가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이상을 만날 수 있다.

1980 년대 겨레 지성사에 다시 등장한 《한단고기》는 우리의 정신과 역사를 다시 보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한단(桓檀)시대의 사상과 그 역사의 장엄함은 겨레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개인이나 단체에 큰 위안과 격려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단고기》는 올바르게 계승되지 못한 채 좌우 편향에 빠져 있지는 않는가!
  우 편향이라 하면, 우리 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에게 여전히 《한단고기》는 위서(僞書)로 낙인찍힌 채 역사 뒤편의 이야기로 대우받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좌 편향이라 하면, 한단고기의 내용에 대한 구체성을 아직도 학문과 실천으로 정립시키지 못한 채 견강부회(牽强附會)만 하는 겨레운동 진영에 대한 말이다.
  21세기가 되면서, 겨레 지성사에는 그와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먼저, 그 책에 등장하는 주요한 개념들이 유행하고 나섰다. ‘마고’와 ‘율려’는 겨레 정신사에 대한 강연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고, 그 내용과 이름을 따서 만든 책도 출간되었다. 특히 율려는 민족운동을 위한 사상적 근간으로 제시되는가 하면, 급기야는 그와 관련한 단체도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개념을 담고 있는 《부도지》란 책은 아직도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세간에서 유행하고 있는 율려에 대한 풀이는 뜬구름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어디에서도 율려의 구체성을 찾을 수가 없다. 《부도지》도 《한단고기》와 같은 운명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겨레 지성사의 정식 교재로 채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는데 두 책 모두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를 못했던 것이다.


한민족의 최고(最古) 비서(秘書) 《부도지》
  《부도지》는 우리 나라에서 그 기록 연대가 가장 오래된 책이다. 《부도지》는 충렬공(忠烈公) 박제상(朴堤上) 선생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부도지》는 상·중·하 각각 5지(誌)씩 해서 15지로 구성된 《징심록》15지(誌) 가운데 제 1지이다.
  조선 세조 이전까지는 이 책의 내용이 상당히 널리 세상에 알려져 왔던 것 같다. 고려 태조 왕건은 사람을 보내 부도의 일을 상세하게 물었다고 했으며, 강감찬 장군도 여러 차례 영해를 방문하여 물은 바가 있었고, 세종대왕은 그 후예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성균관 옆에서 거주하게 하며 특별한 대우를 했다. 그리고 김시습 선생은 훈민정음 28자가 이 《징심록》(澄心錄)에서 나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기를 든 이후 《부도지》는 영해 박씨의 몰락과 함께 수난을 겪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징심록》의 15지 가운데 지금까지 그 원문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부도지》 뿐이다. 그 원본은 박제상의 후손으로 동아일보 기자였던 박금 선생이 한국전쟁 때 월남하면서 그의 출생지인 북한 문천 땅에 남겨두었다고 한다. 오늘날 전해지는 《부도지》는 1953년경에 그가 기억을 되살려 재생한 것을 판본으로 삼아 1986년 김은수 선생이 평역한 책이다. 그래서 《부도지》는 《한단고기》보다 더한 위서 시비에 걸려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부도지》는 영해 박씨 문중에서 가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가 자료로 삼고 있는 것도 영해 박씨의 후손인 박현 선생이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강의하고 계시는 내용과, 그리고 그 강연자료를 정리해 출판 준비중에 있는 《부도지》(박현 풀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박현 선생이 배우고 익힌 《부도지》의 내용은 박금 선생의 그것과 문장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크게 틀리지 않는다. 다만 전통선가 공부를 어려서부터 배운 경험을 바탕에 두고 익힌 것이라, 박현 선생의 《부도지》 내용은 구체적이면서 일관성이 돋보인다.


부도(符都), 천부(天符)의 도시이자 단군 조선의 수도
  《부도지》란 한마디로 ‘부도’에 대한 기록인데, 그렇다면 부도란 무엇일까? 한자로 ‘符都’로 되어 있어서 이를 두고 ‘천부(天符)의 도시’라고 하기도 하고, 또한 거기에 구체적으로 ‘단군 조선의 수도’를 말한다는 해석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역사적 혹은 문학적 상상력에 의존한 풀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 《부도지》에 나오는 고유한 명사들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음가체계를 복원해서, 그것에 바탕을 둔 의미 체계로 풀어야만 올바른 개념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특히 한자로 정리되어 있는 고유명사들은 대부분 음차나 훈차로써 차용된 표현들이다. 부도만이 아니라 마고도 음차된 경우에 해당하고, ‘짐세’(朕世)의 경우는 훈차로써 그 의미를 살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미 일반화된 명사들도 구체성을 가지고 이해해야만 한다. 가령,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라 하는 개념 외에도, 대성(大城)·음(音)·여(呂)·율(律) 등에 대해서 그렇게 해야한다. 개념에 대한 구체성이란,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모두 담아내야 하는 것이고, 인간의 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진술을 말한다.
  《부도지》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고한어’(古韓語)라는 하나의 도구가 필요하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한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박현 선생은 고한어를 단지 언어학이 아니라 인간학이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체계를 전통적으로 ‘정언’(正言)이라고 했다 한다.
  정언의 체계에 기초를 둔 고한어(古韓語) 연구에 따르면, ‘부도’는 순수한 옛 우리말로서 본래는 ‘뷔더’였고, ‘바이더’, ‘바이다’ 등으로 쓰였던 말이다. 역사적으로 ‘배달’(倍達)이라는 한자어로 음차된 말이 바로 ‘바이다’였다. 실제로 《부도지》는 그런 부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즉 《부도지》에서 말하는 부도의 세계는 추상이나 신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우리 역사에 있어서 구체로서 있었던(있는) 세계다.
  뷔더의 ‘뷔’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부’나 ‘바’라는 말과 같다. 모두 ‘밝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는 우리말 ‘아바(버)지-밝음으로 이끄시는 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끌다’ ‘중심이 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더’와 ‘도’는 우리말에서 터와 같다. 그러므로 ‘뷔더’는 중심적인 곳, 밝은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부도지》에는 뷔더라는 세계 이외에 또 다른 세계가 설정되고 있다. 뷔더를 중심으로 또 다른 세계와의 연관성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부도의 세계와 마고의 세계 그리고 우리의 현상의 세계다. 이 세 세계 사이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부도를 설명해 가고 있는 것이 바로 《부도지》다.
  《부도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3개의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데, 마고의 세계와 인간의 현실세계 및 부도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 마고(참된 사랑이란 뜻)의 세계는 사람이 태어난 첫 출발점이자 사람이 돌아갈 마지막 목표점이다. 둘째는 말 그대로 고통스런 인간의 현실 세계다. 셋째, 부도의 세계는 마고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세운 공동체다.


“마고로부터 궁희와 소희,
그리고 이들로부터 난 사천인(四天人)의 그림은
동양학에 자주 나오는 무극으로부터 양의와 사상의 체계와 같다.
밖에 있는 여덟 개의 궁(宮)이 팔려(八呂)다.
율(律)은 마고와 팔려 사이의 간계에서 형성된 흐름을 말한다.”



《부도지》에 나타난 인간 탄생과 인체 운행의 비밀
  《부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여기에 기록된 역사가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와는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는 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의 나열로 되어있다. 거기에는 이미 사람이 전제되어 있고, 전제된 사람이 밖으로 펼치는 활동을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측면으로 나누어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객관화된 시간과 공간이라는 함수를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다.
  그러나 《부도지》의 역사는 선분으로 이어져 오던 일반 역사의 흐름을 횡(橫)으로 갈라놓고 있다. 《부도지》가 다루고 있는 역사는 사람에 대한 역사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것도 인간이 나와 너로 구분되어 개별화된 주체로 활동하기 전부터, 나와 너를 넘어서 있는 인간 자체의 역사를 먼저 다루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생겨났으며,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몸을 갖추게 되었으며, 또 그 몸은 어떻게 운행되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황당할 수도 있지만, 이 기본적인 역사에는 우리 인간의 탄생의 비밀이 있고, 우리가 탄생해서 몸을 갖추게 된 과정이 있고, 몸을 갖추어서 몸을 움직여 가는 실제 내용이 있다. 사람을 하늘이라고 여겼던 우리 겨레의 전통적인 인간관의 구체적인 근거가 무어냐고 물으면, 바로 《부도지》에 기록된 인간의 역사를 가지고 충분히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구태여 분류하면 전통선가적인 역사관이라 할 것이다. 사람을 본말(本末)과 선후(先後)의 체계로 이해하고 있는 선가(仙家)에서는 어디서 어떻게 사람의 뿌리라고 하는 하단전이 형성되었으며, 이 하단전(고한어로는 바라돌)으로부터 인체가 형성되어 운행되는 과정과 기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제의 원리로서 빛과 열이라는 두 요소(《부도지》에서는 이를 ‘화일’(火日)이라 한다)와 소리에 대한 원리적인 설명이 있다.
  서양의 《실낙원》. 성경에 비견되는 겨레의 창세기
  그러므로 《부도지》는 우리가 알고 있지 못했던, 그 동안 현실 역사의 뒷면 혹은 전제로 있었던 우리 겨레의 선가 문화를 근본적으로 다시 이해하게 해주는 전적(典籍)이 된다. 《부도지》의 내용 가운데 1장부터 4장까지는 인간 이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실낙원’이라는 소설이나 ‘구약’의 창세기를 떠올릴 수도 있는데, 그래서 이 내용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그 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마고는 궁희와 소희를 낳고, 다시 이들은 황궁씨와 청궁씨 그리고 백소씨와 흑소씨를 낳는다. 이 넷은 사천인(四天人)이 되어 성중의 사방의 자리를 맡는다. 이 과정은 동양학에서 말하는 일이 이를 낳고, 이가 사를 낳는 흐름과 일치한다. 그리고 궁희와 소희는 다시 각각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아 팔려(八呂)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것은 하늘을 계승한 인간의 몸이 그 구체성으로서 방위를 갖추고 기관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사천인은 전통 사상인 사대(四大)와 통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정(精)이라고 하는 존재를 구성하는 최소의 요소존재를 부르는 개념을 분류하는 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사대가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분류한 것이라면, 오행(五行)은 요소존재의 운동 흐름을 중심으로 분류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수행세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하단전’(下丹田)의 구체적인 체계를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단전의 구성(대성)과 함께 그 운행을 맡아보는 주체(마고)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팔려라는 기관이 몸 안에 형성되어 이룬 ‘짐세’(朕世)라고 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마음이 육체와 만나 몸이라는 체계를 형성해 가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있다. 이에 대한 것이 5장부터 8장까지의 내용이다. 물론 상징을 넘어선 눈과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지만. 그리고 9장부터 16장까지는 다시 마고로 돌아가기 위한 부도 건설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17장부터는 부도파괴 및 붕괴사를 다루고 있다.

모든 인간이 되돌아가야 할 근원의 이상향, ‘마고’
  《부도지》에서 마고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은 ‘마고성’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상향이 되는 마고성은 어떤 세계일까? 그 세계는 어떻게 시작했으며, 그 세계로 되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부도지》에는 마고성을 일러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라고 하면서, 그 내용도 신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한편으론 인간의 내면 세계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그런 낙원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 대답에서도 인간 내면의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부도라는 공동체를 전제로 해서 말이다.
  마고성은 인간에게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도달해야 할 이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아니, 우리 인간이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장 근원적으로 대답할 때, 인간이 다시 돌아가야 할 원시반본의 고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동양학에서 말하는 ‘명’(命)이며, 인간 내부에 있는 이하라(人太陽)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면 ‘마고’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자로 표기된 麻姑는 단지 우리말의 소리가를 한자로 빌려 쓴 것에 불과하다. 먼저, 박현 선생이 풀어놓고 있는 겨레 옛말 풀이는 MA(진실, 참된)+GO 혹은 GU(사랑) 이다. 그러므로 마고는 우리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뜻이다. 이 어의가 확대되어 사랑의 실질적 담지자인 신(神)으로도 쓰였다. ‘마고’를 가장 큰 신, 진정한 신이라는 의미로 옮길 수가 있다. 옛 우리말인 ‘고임받다’에서 ‘고’는 사랑으로 쓰였고, ‘마’가 진정한 의미로 쓰인 것은 같은 언어권에 있었던 일본어에 남아있다. 지금도 일본어에서 마(ま)는 진정한(眞)이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마고성은 대성이라는 것이다. 대성(大城)은 우리말로 ‘구루’이니, 구루 가운데 가장 높고 지도자격에 해당하는 구루를 말한다. ‘마고 치구루’(마고대성)는 진실한 사랑 가운데 으뜸이 되며 가장 큰 신이라는 것, 이는 《부도지》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상을 말한다.
  《부도지》에서 말하는 마고는 진정한 사랑으로 가득찬 세계이고, 완전한 세계이며, 당위의 세계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되는, 즉 이 당위의 세계와 상반되는 현상의 세계가 존재할 것이다. 마고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 마고의 세계로부터 벗어난 세계가 있다. 부도는 이와 같은 현상 세계를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현상 세계로부터 인간은 기본적으로 마고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것을 《부도지》에서는 ‘복본’(復本)이라고 한다. 바탕이 되는 뿌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마고성에 이르기 위한 공동체의 길
  《부도지》에 나오는 현실의 인간은 늘 불완전하다. 인간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은 부도라는 공동체를 세우고 그 공동체를 통해 완전함을 추구한다. 그 과정이 바로 《부도지》의 역사관인 것이다. 따라서 《부도지》에서는 철저하게 부도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부도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 예를 들어 마고의 세계와 그 세계로부터 나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상당히 신화적인 데 비해 부도가 세워진 다음의 과정은 그래서 철저하게 역사적이다.
  《부도지》에서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철저하게 존중하지만 이 또한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부도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마고로 돌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우리 고유의 공동체주의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인간의 현실세계에서 마고성으로 되돌아가려면 반드시 부도를 거쳐야 하는데, 부도란 자신의 본성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설령 마고성이 열렸다 하더라도 그냥 들어갈 수는 없고 들어가기 위한 방법론이 있다. 이처럼 돌아가는 것을 ‘복본’(復本)이라 하는데, 복본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수증’(修證)으로서, 수증은 우리 겨레 고유의 닦음이다. 또 수증은 이를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바, 그 공동체가 바로 부도다. 이 공동체를 거치지 않고는 결코 복본할 수 없다.”
  이것은 《부도지》의 관점을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부도지》에서 바라보는 부도, 즉 참된 공동체는 인간이 함께 자아를 실현하는 데 그 근본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를 다만 공존의 터전으로만 이해하는 오늘날 이런 관점은 결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더구나 《부도지》에는 그런 참된 공동체, 즉 부도의 운영 원리까지 담겨 있다. 하나하나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그 원리 또한 너무나 시사하는 바가 크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원리는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처럼 우리에겐 미래를 밝힐 사상이 있었고, 그런 사상가가 있었으며, 또 그런 문화가 있었다.

 

 


 

 

글쓴이 서해진 씨는
현재 도서출판 바나리의 대표로 있으며, 월간 《도울도뷔》의 편집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