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종황제가 선물하신 투구

2013. 5. 14. 23:38우리 역사 바로알기

 

                                                                                              by  천지님

 

 


백두산 천지

 

[ 과거현재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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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2013-02-17

 

위 사진은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 스님이 미국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발견한

19세기 조선시대 대원수의 투구와 갑옷이라 합니다.

 

기사출처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0217_0011848145&cID=10104&pID=10100

 

 

 

 

이렇게 투구 꼭대기가 형입니다.

 

 

 

 

 

 

 

 

 

 

 

 

 

 

 

 

위 사진은 고종황제가 러시아에 선물한 것인데 (현재 러시아 표도르대제박물관 소장)

대한제국군의 총사령관이 쓰던 것을 똑같이 만들어서 러시아에 선물한 것이라 합니다. 

 

역시 투구 꼭대기가 형이고

 

봉황(鳳凰)용(龍)이 나오죠.

 

 

[ 조(朝) - 금문(金文) ]

 

                        

 

 

[출처 -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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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 조(朝)자의 고대형에서

 

 

 

이러한 형상이 나오는데

 

 

 

위에서 나온 대한제국군 총사령관 투구의 꼭대기와 형상이 상통하죠.

 

 

삼국유사 단군신화(사실은 단군사화(史話))에

" 단군(壇君)이 ... 후에 다시 아사달로 돌아와서 산신(山神)이 되었다." ( 壇君 ... 後還隠於 阿斯逹 爲山神 )

하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산신(山神)산(山)은 한라산, 백두산같은 자연 산(마운틴)이 아니고

[고대한국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를 뜻하는 것이라 하겠으며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란 무엇인가 (간략정리)  <- 관련글

 

 

『삼국사기』에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 의 집이다. (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 )" 라는 말이 나오듯이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는 선인(仙人)이시라 존칭되었으며

선(仙)자에서 의 형태는 '그냥 사람 형태'가 아니라 [예의를 갖추는 사람의 형상]인데  

즉 사람 人이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절을 하는 모습)이고

즉 그것은 [고대한국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앞에서 사람들이 하늘(天)앞에 예의를 갖추는 모습.

 

선도(仙道)라 하는 것이 원래 자연 산(마운틴)의 종교라는 개념 보다는

[고대한국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의 종교라 하겠으며

 

그래서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선인(仙人) , 산신(山神)으로 존칭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에는 [산신각(山神閣)]이라는 고유의 건물이 있죠. 

 

 

                                 [산신각(山神閣)]의 그림들

 

[산신각(山神閣)]은 절(불교 사찰) 안에 있는 것도 있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있는데  

 

[산신각(山神閣)]은 원래는 자연 산(마운틴)의 산신령을 모시는 전각이라기보다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을 모시는 전각이라 하겠습니다.

 

- 물론 경우에 따라 자연 산(마운틴)의 산신령을 모시는 [산신각(山神閣)]도 있다 봅니다.

 

 

 

위 그림의 경우 이 산신각이 자연 산(마운틴)의 산신령을 모시는 산신각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으며 

고대한국의 지도자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삼국유사 단군신화(사실은 단군사화(史話))에 보면

단군조선이 古조선이라 표기되어있는데

여기서의 가 단지 '옛날'이라는 의미로만 사용되었을까요.

 

 

古 - 갑골문 ]

                      

 

 

자의 갑골문은 위와 같은데

 

을 나타내려한 것이라 할 수 있겠으며

 

 

조(朝)자의 고대형의

 

 

이와같은 모습도

을 나타내려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니

 

古 자와 조(朝)자가 나타내려 하는 바가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옛날의 조선을 [조선(朝鮮)]이라 한 것은

단지 옛 조선이라는 뜻이 아니라

古 자가 원래 고대한국을 뜻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 - 금문 ]

                                  

 

 

 

의 금문(金文)들 역시

을 나타내려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위 글자들의 아래부분이

 

이러한 아사달문양의 아래부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사달문양과 청룡언월도 <- 관련글

 

 

와 같은 뜻의 글자가 故 이죠.

 

 

[ 故(고) - 금문 ]

 

 

     

 

 

이러한 故(고)의 고대형 중에

 

 

 

이 모양을 보자면

 

 

이 모습은 하늘(天)의 은혜에 감사하면 춤추는 사람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천제단(天祭壇) 앞에서 은혜에 감사하는 춤을 추는 사람의 모습이라 하겠는데

한국인들이 흥이나면 누구나 춘다는 일명 [어깨춤]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고대한국 중심지 천제단(天祭壇) 앞에서 추던 춤이 현대까지 [무의식적으로] 계승되어

한국인들의 기본춤이라 할 [어깨춤]이 되었다는 거죠.

 

[환웅임금]의 신시(神市)의 시(市)와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古   = 

 

황제(黃帝)는 원래 고대한국의 임금을 뜻하는 말  <- 관련글

 

 

 

 

故(고)의 고대형 중에 이러한 모양은

춤추는 사람의 팔에 형태를 달아서

그 사람 (그 곳의) 상징이 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있다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한국사람들이 [호(號)]를 지을 때  자를 참 많이 넣는데

이 또한 단지 자연 산(마운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는 글자가 [천제단]을 뜻하므로 한국의 중심지를 뜻하고 하늘(天)로 통하는 문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겠습니다. 

 

 

 

 

                             산해관(山海關)

 

발해북부에 만리장성이 시작하는 [산해관(山海關)]이라는 유명한 관문이 있는데

말 그대로 산(山)해(海)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뜻이고

이 [산해관(山海關)]은 한국으로 통하는 관문 이라는 뜻이 있으니

산(山)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고

해(海)라는 글자가 들어간 이유는 아래 관련글을 보시면 ...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 관련글

 

 

 

[ 故(고) - 금문(金文) ]                              [ 한(韓) - 금문(金文) ]

 

                                                     

 

 

위처럼  故(고) 한(韓)의 고대형이 상당히 상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겠는데

 

예로부터 한국(韓國)의 한(韓)이라는 글자는 다른 이름으로는 안쓰이고 오직 [나라이름]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고

처음부터 한국(韓國)을 뜻하는 글자로 한(韓)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졌다 하겠습니다.

 

 

 

원래 와 같은 뜻의 글자에 告(고) 라는 글자도 있습니다.

 

 

[ 告(고) - 금문 ]

 

 

                               

 

                  

 

 

 

위 글자들에 아래의 형태가 많이 나오죠.

 

 

 

 

위 형태는 고조선의 상징인 아래 형태와 상통한다 할 수 있으며

 

 

역시 고대한국의 상징인 []를 뜻하는 한자인 [牛(우)]와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 牛(우) - 금문(金文) ] 

 

               

 

 

 

 

 

위 [ 告(고) - 금문 ] 중에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아래부분은

 

 

 

아사달 문양의 위와같은 부분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지니

 

고대형을 보면 와  같은 글자인 告(고)

 

아사달 즉 고대의 한국을 상징하는 글자임이 더욱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갑골문자보다 천년 앞선 동이(한민족) 골각문자 발표  <- 관련글

 

 

 

고구려 임금 중에 고국천왕(故國川王), 고국원왕(故國原王), 고국양왕(故國壤王)이 있죠.

이러한 임금의 존칭은 당대에 붙이는 것인데 (보통 임금의 승하 직후에 정하겠죠.)

이상하게도 ()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이

당시 고구려인들에게 ()라는 말은 단지 옛날이라는 말이기 이전에

자신들의 뿌리 즉 한국의 상징을 나타내는 말이었기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당시 고구려인들은 고구려를 다른 말로 고국(故國)이라고도 불렀다는 얘기가 되겠죠. 

 

여기서의 (고)는 古조선의와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백제 임금 중에는 이왕(爾王), 근초왕(近肖王)이 있죠.

물론 백제에서도 이러한 임금에 대한 존칭은 당대에 붙였을 것인데

()자가 들어가 있는 것은

 

고조선[古朝鮮]의 ()가 단지 옛날을 뜻하기 위해서 붙인 말이 아니라는 것과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즉 고조선 시대와 마찬가지로 3국시대에도

한국인들은 고(古)가 원래 한국을 상징하는 글자 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사진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신라의 금관총금관(국보 제87호)입니다.

 

신라 역시 형태를 상징으로 하여 고대한국의 전통을 강력하게 표방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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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각에 호랑이와 함께 모신 산신 할아버지는 단군이 맞는가?

      환인(桓仁 : 환한 사람 :밝음 : 태양신 ) 즉 마고신화에 나오는 호랑이 토템족인 맥(貊)족의 환인과 환웅(桓雄) 할아버지를 후대에 산신화하여 모시는 것이 아닌가?

 

          환웅(桓雄)의 웅(雄)자를 곰 웅(熊)과 발음이 같다고 하여 서로 혼동하여 일어난 일로 보인다.  물론 요하문명시에도 예맥족의 국가지도자를 환검<단군(檀君)>이라고 하였다면 산신각이나 성황당의 산신은 단군 할아버지라 함이 마땅하나, 산신이 고조선의 단군 왕검이라 한정하여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고조선족은 곰 토템족이였으므로 산신 옆에는 호랑이 대신 곰이 그려져 있어야 한다. 산신도에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것은  호랑이 토템족인 예맥족이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부여국을 건국하였고, 부여의 한 갈래인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등 백제,신라 삼국이 예맥의 후예들이 건국하였으므로 산신각에 모셔져 있는 산신은 환인,환웅 또는 환검(단군) 중의 한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절에 있는 삼성각 중에서도 일부 사찰에서 호랑이와 세분의 산신이 따로 모셔져 있는 이유는  환인,환웅, 환검(단군)을 산신화한 우리민족 고유의 신앙을 불교가 수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절에 있는 삼성각에는 산신,칠성(북두칠성)과 독성이 모셔져 있다고 하고, 당호도 산신각,칠성각 ,독성각이라 하여 따로 불리거나(경기 봉선사의 예 : 한 당우에 세분을 모시고 있으나 출입문에는 따로 세개의 현판이 걸려 있슴),한 산신각 내에 탱화를 각각으로 그려  산신탱,칠성탱, 독성탱으로 따로 모시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재 독성(獨聖)은 천태산(天台山)에서 수행하던 나반존자라고 하나, 이말이 옳은지 또는 환인, 환웅, 환검(단군) 중의 한분을 산신화한 것인지는  앞으로 더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육당 최남선은 나반존자를 단군이라 하였으나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

 

 

<자료>


홀로 도를 깨친 나반존자(那畔尊者)


 

공부를 하는 사람이나 도를 닦는 수행자나 모두 스승은 꼭 있기 마련이다.

스승 없이 홀로 도나 학문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홀로 공부해서 훌륭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연각(緣覺)을 이룬 성자가 있다.

바로 나반존자이다.

 

독성(獨聖)이란 독수성(獨修聖), 또는 독각성(獨覺聖)을 줄인 말로, 한국 불교에서만 숭상하는 신앙의 대상 가운데 하나로써 ‘나 홀로 수행하여 깨달은 성인’라는 뜻으로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성자들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되었으나, 독성상은 대개 나반존자(那畔尊者) 한 분을 지칭하는 만큼 독성을 고유명사로 볼 수도 있다. 독성은 조각상보다 그림 형태로 봉안되는 경우가 많으며, 형상은 대개 기개가 장대한 선풍도골의 노인이 하얀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있으며, 눈썹은 매우 길며 미소를 띠고 폭포수 흐르는 깊은 산 고목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옛날 그는 혼자서 도를 깨치겠다는 큰 꿈을 안고 홀로 천태산(天台山)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바위 위에 정좌하고 깊은 정(定)에 들어가서,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은 것처럼 해가 뜨고 지는 것, 철따라 잎이 피고 지는 것, 봄에 꽃피고, 가을에 익는 열매 등 변함없이 운행되는 우주의 운행을 보고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서 만고에 빛나는 성자가 되었다.

나반존자의 스승은 하늘의 뜬 구름이요, 자연이 불어주는 바람이요, 소리 없이 흐르는 물이요, 계절 따라 우는 숲속의 풀벌레들이었다. 그야말로 자연그대로가 스승이었던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대자연의 운행이며 철마다 변하는 무상한 산천의 경치가 모두 그의 스승이었다. 자연의 법칙(순리)대로 따르고, 흐르는 대자연이 모두 그의 스승이었던 셈이다.

 

불교에는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는 나한들이 많지만 독성만큼 성격이 모호한 인물도 드물다. 전해지는 내용에 의하면, 독성은 혼자 수도해 도를 깨친 후 말세중생(末世衆生)의 복전(福田)으로 나타난 분으로 파악되기도 하고, 16아라한 가운데 한 분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독성을 단군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또 명칭에 대하여는 나반존자의 ‘나반’은 ‘나한’이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주간불교 기사>

 


운문의 연꽃화심, 나반존자 원력 서린 곳



10일 저녁 해가 어슴푸레 질 무렵 무박 2일간의한국석불선양회 제47회 석불참배기행을 가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경북 청도 호거산 운문사와 사리암이 이번 석불참배기행의 목적지였다. 저녁 9시 30분 동대문에서 출발한 버스는 밤새 달려 다음날 새벽 3시 운문사에 도착했다.


 


벚꽃 만개한 길 끝에서 만난 美


입제법회 후 잠들었던 기자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운문사 주차장에 차가 멈춘 후였다. 잠이 덜 깬 채 버스에서 내리자 찬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청량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시선을 옮기자마자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고요한 어둠 속에 홀로 빛을 발하는 가로등 옆으로 벚꽃나무 수십 그루가 만개한 채 아름다운 자태를 뿜어내고 있었다. 더구나 청정도량 운문사로 향하는 길에는 운문사만의 향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새벽 3시 30분, 운문사 새벽예불에 참여할 수 있었다. 2백여 명의 비구니 학인들이 한 목소리로 예불을 올리는 아름다운 모습에 재가불자들 역시 신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삿된 것을 여의는 ‘사리암’


운문사 새벽예불을 마친 일행은 40여 분 가파른 산길을 숨가쁘게 올라 산내암자 중 하나인 사리암을 참배했다.
‘삿된 것을 여읜다’는 뜻을 지닌 사리암은 ‘세상의 온갖 때 묻은 것을 떨쳐버리고 일심으로 기도한다면 기도의 감응으로 나반존자가 던져주는 돌을 받아 쥘 수 있다’고 전해온다. 천태각에 모셔져 있는 나반존자는 일명 빈두로존자라 한다. 16아라한 중 한 분으로 흰 머리칼과 긴 눈썹의 인자한 모습이다. 부처님의 하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 마리산에서 부처님 열반 후 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말세중생을 제도하는 대원력을 세웠다고 전해온다.
고달픈 중생사가 괴로운 탓일까. 사리암은 기도를 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찾아오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나반존자 기도도량이다.
각자 마음에 담은 기도를 드린 후 다시 운문사로 발걸음을 떼었다. 새벽의 고요함과는 대비되는 활기찬 운문사 도량이 정겨웠다.
운문사는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호거산(虎踞山) 아래 자리잡은 고색창연한 천년고찰이다. 남쪽 운문산·북동쪽 호거산·서쪽 억산과 장군봉 그리고 이들이 이룬 높고 낮은 봉우리가 돌아가며 절을 감싸고 있다. 그 모양이 연꽃 같다고 하여 운문사를 연꽃의 화심(花心)에 비유한다.


 


고색창연한 천년고찰 운문사


운문사 대웅보전에서 간단한 예불을 올리고 도량 곳곳을 둘러보았다. 비로전의 악착보살·오백전의 오백나한·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쳐진 소나무 그리고 작압전의 운문사석조여래좌상 등 어느 곳 하나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운문사석조여래좌상은 보물 제317호로 지정된 높이 63cm의 신라말기 제작으로 추측되는 석조여래좌상이다. 화강석으로 이뤄져 있으며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춘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다. 그러나 1941년 이전할 때 문화재적 가치를 상실해 원형을 되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석조여래좌상 양 옆으로는 보물 제318호인 사천왕석주가 좌우로 안치돼 있다.


운문사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낸 석불선양회 회원들과 함께 용암온천에 들렸다. 마음의 때를 씻어냈으니 몸의 때도 씻어내자는 이귀인 회장의 배려였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 후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 비록 윤달 3사 순례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한 광명을 입은 듯한 회원들의 밝은 모습을 뒤로 한 채 4월의 석불친견순례 법회를 마무리 했다. 


경북 청도=서경혜 기자


◎ 운문사는…
〈운문사사적〉에 의하면, 557년(진흥왕 18년)에 한 신승(神僧)이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우(道友)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동쪽에 가슬갑사·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남쪽에 천문갑사(현 운문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그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운문사는 608년 (진평왕 30) 원광국사의 제1차 중창 이후 1913년 고전(古典)선사의 제7차 수보·비구니 금광(金光)스님과 수인(守仁)스님의 중창불사 등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쳤다. 1977~1998년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 등 각 전각의 신축·중수로 경내의 면모를 한층 일신해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다.
운문사는 1958년 교단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을 개설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해 승려교육과 경전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현재 2백60여 명의 비구니들이 이곳에서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고 있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제천 금강사 금강선원> 

 

나반존자는 홀로 산속에서 공부하면서 만세복전이 되어 미래 미륵불이 탄생할때까지 기다리는 빈두로 존자를 말한다.

발차국 구사미성 보단의 아들로 일찍이 출가하여 여러 곳으로 다니며 전도하였다. 부처님 성도 후 6년 왕사성에 왔다가 신통 경연대회에 나가 패배함으로써 여러 외도들의 조소를 받았다.

부처님의 지시로 다시는 신통을 부리지 아니했으나, 여러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었음으로 '주세웅진 대아라한'이라는 별명을 받았다.

머리카락이 희고 눈썹이 긴 모양을 하여 마치 한국인의 신선처럼 인식되었으며, 대승불교에서는 문수보살을 제일 상좌로 치는 대신에 근본불교에서는 빈두로존자를 제일 상좌로 모셨다.

중국 동진의 도안스님이 지극히 신앙했고, 송나라 때(471) 법현 법경 등이 처음으로 그 형상을 그려  공양함으로써 독성 또는 나반존자로 알려졌다. 나반이란 홀로 공부하는 성현이라는 뜻이다.

 

 

나반존자 [那般尊者]  

요약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된 사람.

본문

사찰에서는 독성각(獨聖閣)에 모셔지며 산신·칠성과 함께 삼성각에 모셔지기도 한다. 남인도 천태산(天台山)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 잎이 피고 지는 것, 봄에 꽃이 피는 것, 가을에 열매가 맺는 것 등 변함없이 운행되는 우주의 법칙을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 삼명(三明)과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능력을 지녔다. 삼명은 전생을 꿰뚫어 보는 숙명명(宿明明), 미래를 보는 천안명(天眼明), 현세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명(漏盡明)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으로 자리이타, 곧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므로 중생의 공양을 받게 되었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부처의 제자가 된 나한으로 말법시대에 출현하여 중생들을 교화한다고 하나 부처의 제자 중에는 그의 이름이 없고, 이름을 거론한 경전도 없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의 문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육당 최남선은 단군신앙에서 생겨난 우리나라 고유의 신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무리가 따른다. 우리나라에 독성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693년(숙종19)이며, 18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찰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또 다른 설로 십육나한 중 한명인 빈두로존자로 보기도 한다. 흰 머리와 흰 눈썹 등 외모상 비슷한 점이 많고 신통력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법시대에 나타나 미륵불이 오기 전까지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재앙을 없애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였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말에 나반존자 신앙이 더욱 성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험이 큰 성인이나 성격이 매우 엄하고 무서워 공양을 드릴 때는 목욕재계는 물론이고 공양물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찰 전각에는 대개 그림으로 모셔진다.



 

 

 

 

(#) 김천 직지사 그리고 산신각 그리고 나반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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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역사교육원 자료>

경북 김천에 가시면 "직지사"라고 하는 절이 있습니다.

여기에 가면 "성좌각"이 있고
그기에 가면 우리민족 아니 인류의 시조인 "나반존자도" 와 "산신도"가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기가막힌 일이지요.
민족사서를 읽으신 분들은 무슨의미인지 알것입니다.

그곳을 방문하게 되시는 분들은 꼭 이곳을 들리시어 일만년 천손민족의 역사를 기억해 보소서...
보이지 않는지요...이 위대한 우리 조상들의 역사가...

(#-1) 나반존자도



(#-2) 산신도 (= 삼신도)



(#-3) 성좌각 (= 삼성각)



(#-4) 대웅전 (= 한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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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한단고기 / 삼성기  전하편 (원동중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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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 라고하는데
꿈에 천신이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 이다.

옛날 한국이 있었나니 백성은 부유하였고 또 많았다.
처음 한임(하느님)께서 천산(天山:천산산맥 동쪽의 기련산)에 올라 도를 얻으시사 오래오래 사셨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해서 널리 교화 하시니  사람들로 하여금 군대를 동원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음에 혁서한임,고시리한임,주우양한임,석제임한임,구을리한임에 전하고 지위리 한임에 이르더라.
한임은 혹은 단임이라고도 말한다.

(중략)

 

 


 



나반존자


 


노중평



한 사내가 처음 어느 절 마당에 나타났어요.

그가 한 불자에게 물었어요

독성각獨聖閣에 게신 분이 누구입니까?

나반존자입니다.

나반존자는 누구입니까?

천태산에서 혼자 도를 닦아 연각緣覺에 이르신 분입니다


한 사내는 머리를 저었습니다

그는 인류의 조상 나반입니다

 

 

 

나반존자 그는 단군인가?

 

불교신도들은 대체로 나반존자那畔尊者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삼성각三聖閣 또는 독성각獨聖閣에 가서 빈

다.  일부는 독성각의 나반존자가 우리 고유신앙이 불교적 색채를 입은 인물이란 사실을 아는 이도 있다.

 

 

  
        <동국대 독성도>                 <대승사 독성도>

 

 

 그런데 불교인들 중에 불교 경전에서 견강부회하여 불교 나한이라 우기는 분들도 있다.


 미륵하생경에 따르면, 석가모니부처가 열반에 즈음하여 마하가섭, 쿤다다나 존자, 빈두로 존자, 친아들 라

후라 네 명의 큰 제자들에게 천상 도솔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너희들은 입멸하지 말라. 내 불법이 다

할 때까지 남은 후에 입멸하라. 마하가섭은 입멸하지 말고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려라.” 당부하였다.

 

 나반존자는 석가부처가 열반 때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라 부촉한 4명중의 한명 빈두로 존자(범어 '핀돌라

바라드바자'의 음역)를 가리킨다고 우긴다.

 

 나반존자는 불교인물이 아니라, 한민족 고유신앙에서 유래하는 인물이다.  독성각을 불교의 빈두로 존자라

고 하는데, 19세기 이전 불교에 그런 기록이 있는지 알아보라. 일제시대 이전에는 독성각이 단군왕검이라는

설만 있었다.

 

 독성각이 인도 인물이었다면 다른 나라 불교에서도 있어야 하는데, 왜 우리나라만 모시겠는가? "나반'이라

는 용어는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사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나라 당집

신앙에서 모셔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해인사 독성각>                       <해인사 독성각의 내부>


 원래 우리나라에는 하느님을 모시는 신앙이 있었고, 큰 영웅인 환웅을 모시는 대웅전이 있었고, 구월산 삼

성사의 예에서 보듯 삼성(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삼성각이 있었다. 불교가 나중에 전래되면서 대웅전을

 석가부처가 자리잡게 되는 데, 우리 고유의 성인들은 절의 뒤켠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나반존자도 환인, 환웅, 단군과 함께 절의 뒤켠으로 쫓겨나서 홀로 모셔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독성각이 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대로 석가부처가 들어오기 전에, 불교 없이도 홀로 깨쳤다고 해서 독성獨聖인 것은

아니다.


 환단고기 삼성기에 보면 나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고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阿耳斯?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삼성기 하)


 나반은 인류 최초의 인물이며, 인류의 아버지이다. 지금부터 5만년전에 바이칼호 근처에서 태어났다. 나반

이 만나 결혼한 여성은 아만이다. 곧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결혼하였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아이사타

(아사달)이었다.


 배달국, 단군조선 이래 한민족의 고유신앙에서 인류 최초의 아버지 ‘나반’을 사당에다 모셔왔던 것이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나반을 모시는 사당은 대웅전 뒤뜰로 쫓겨나, 독성각으로 불리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천태각>                 <천태각 안의 나반존자>


우리나라 나반존자 신앙이 가장 유명한 곳은 청도 운문사 사리암 천태각이다. 조선 헌종 11년(1845년)에 신파대

사가 초창하여 나반존자상을 봉안한 뒤 영험이 있어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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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떤 음악인(작곡가)이 이런 말을 했죠.

" 음악(노래)의 작곡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창작활동이라 얘기되어지는 음악(작곡)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 하는데

 

역사연구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이

발명이 전혀 아니라 100% 발견이며

 

역사적 진실은 즉 과거의 진실은 영원히 조금도 변할 수가 없으며  

누가 무슨 짓을 하여도 그 진실 자체는 영원히 조금도 변조할 수 없는 것이죠. 당연히.

 

예를들어 어제 아침에 해가 동(東)쪽에서 떠올랐다는 과거의 사실 자체는  

영원히 바뀔 수 없는 것이죠.

 

따라서 역사의 변조는 어리석은 일이며

개인도 과거를 돌아보며 잘한 것은 살리고 잘못한 것은 반성하고 고치듯이

그리하여 앞으로의 발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듯이

 

민족사, 세계사도 역시 인류가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돌아보며

잘한 것은 살리고

잘못한 것은 반성하고 고쳐서 

앞으로의 인류의 발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일 것이고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할 수 있겠죠.

 

그리고

[ 달(月)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있다.]는 말이 있듯이

중요한 것은 달(月)을 보는 것이며

그 때의 손가락은 그저 달을 가리키기 위한 용도일 뿐이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든, 나뭇가지같은 것으로 가리키든, 아니면 그냥 말로 가리키든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달(月)을 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역사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언어가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으며

또한 아무리 두꺼운 역사책을 만들어도 역사를 모두 기록할 수는 없을 것이며

만약 모두 기록하고 읽는다 하여도

사람의 언어만으로 역사의 진실이 100% 전달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원래 인간의 언어란 게 불완전, 불충분한 것이니 말이죠.

 

 

 

고조선의 상징이라 할 위 형상은

아주 단순한 모양으로 진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를들어 자동차를 운전할 때

수많은 궤적(루트)를 그리며 운전하지만

자동차로 무한한 수의 궤적(루트)를 그릴 수 있지만

운전자가 사용하는 것은 단지 4가지 

전진, 후진, 좌회전, 우회전이죠.

 

[전후좌우] 이 4가지로

무한한 수의 궤적(루트)를 그릴 수 있죠.

 

( 비행기는 단지 6가지.

[전후좌우]에다가

[상승, 하강]만으로

비행기는 무한한 수의 궤적(루트)를 그릴 수 있죠.)

 

 

 

이러한 모양은 인간이 너무나도 복잡해보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마치 나침반처럼.

 

그래서 서양종교인 카톨릭(천주교)에서도 이러한 모양을 상징으로 쓰고 있는 것이겠죠.

十 형상은 서양에서도 예수시대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상징형상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고

서양에서도 고대부터 이러한 형상이 진리를 상징하는 형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예수교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형상을 쓰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위에 나온 조선왕실 투구에 보면 이렇게

卍 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투구는 고종시대 즉 조선후기, 대한제국시대에 쓰여졌던 것인데

卍 이 들어가 있는 것은

 

卍 이 원래 불교에서 나온 상징이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준다하겠습니다.

 

조선은 (특히 중기 이후에) 불교를 강력하게 억누른 유교국가인데

卍 이 원래 불교에서 나온 상징이라면 임금의 투구에 쓰는 일은 결코 없었겠죠.

 

 

[ 巫(무) - 금문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卍 은 원래 위와 같은 巫(무)의 고대형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는데

 

巫(무)라는 글자가 언제부터인가 [무당 무]로 읽히며 단지 지금의 무당 정도를 뜻하는 것처럼 오인되고 있으나

 

사실은 원래의 巫(무)는 그런 정도의 뜻이 전혀 아니고

 

세상의 중심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는 모습이라 하겠고 우주의 진리를 뜻하는 글자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설문해자]도

[巫 - 也]

巫(무)는 祝(축)이다 한 것일 것인데

祝(축)은 [축복하다, 경축]할 때 쓰는 글자이고

 

 

지금의 무당은 흉내도 못내는 정도의 높은 차원을 이야기하는 글자가

원래의 巫(무)라 하겠습니다.

 

지금의 여성무당은 고대한국의 [하위직 (말단) 여성 공무원(지금의 동사무소 직원같은 사람들)]을 흉내내는 것 정도의 일이라 하겠는데

말하자면 지금의 불교 여승, 카톨릭(천주교) 수녀처럼 수도자였던 그들은   

고대에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즉 종교와 정치가 하나이던 시대였기 때문에

각 동네에서 선발되어 (또는 파견되어) 그 동네 사람들에게 하늘(天)의 뜻을 전하던 사람들이었다 하겠습니다.

 

물론 그들은 '접신'으로 그리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교 여승, 카톨릭(천주교) 수녀처럼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수도하던 사람들이었고

지금의 대부분의 무당들은 '접신'이라는 비정상적인 저기로 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라 하겠습니다.  

 

원래의 巫(무)라는 글자가 뜻하는 바는 말하자면 석가, 공자, 예수같은 성인들이 직접 천제(天祭)를 지내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고대 세상의 중심이고 정신문명, 물질문명의 시원지인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를 표현한 글자가 원래의 巫(무)라 하겠습니다.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 관련글

 

 

그래서 卍 은 동양에서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예로부터 중요시되었는데

이 형상은 어디선가로부터 나타나 유럽에 선진문명을 전한 [아리안]의 상징문양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아리안의 적통이라 주장하고 싶어했던 히틀러(나치)도 이 문양을 썼죠.

 

 

 

 

[ 亞 - 갑골문 ]

 

 

                   

 

 

아시아를 뜻하는 말인 亞(아)의 갑골문은 위와 같은데

 

서양에서 우리를 아시아로 부르는 것을 음역한 것이지만

亞(아)자가 고대부터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자이기 때문에

이 亞(아)자를 쓴 것이죠.

 

巫(무)亞(아)가 근원적으로 같은 형상이라 하겠는데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고인돌]과 [피라미드]를 동시에 표현하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인돌       -     큰 피라미드

피라미드    -    작은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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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한국 토종 생물들입니다.

출처 - http://xebastian.tistory.com/

 

 

 

 


                                               복수초(福壽草)

 

복수초(福壽草)의 이름은 '보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자가 다릅니다.)

복(福)과 수명(壽命)을 뜻합니다.

즉 복을 받는 것과 오래사는 것을 뜻합니다. 

 

 

 

 

 

큰주홍부전나비

 

 

 

 

 

 

 


단풍마

 

 

 

 

 

 

 

 

한국 어느 절의 방문에 붙은 장식.

 

 

 

 

 

 

 

 

 

 

하늘이 푸른 것은 생명들의 염원이 시퍼렇토록 처절해서인가.

 

 

 

 



 


귤빛부전나비

 

생명은 아무리 작은 녀석들이라도 존엄하다는... 



 

 

 

 

 

 


각시멧노랑나비

 

 

 

 

 

 

 

 

 


갈구리나비

 

한국에도 신기하게 생긴 나비들도 많은가 봅니다

출처 : 백담 그 시절...
글쓴이 : 케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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