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죽순을 읊다[詠家筍] / 다산, 육원중, 윤외심

2016. 1. 12. 05:04茶詩

 

 

1. 우세화시집
 
   기묘년 춘계(春季)에 내가 학사(學士) 윤외심(尹畏心)이 송파(松坡) 집에 들러 이틀 밤을 묵고 시집(詩集) 두 권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중에 세화집(細和集)이라 이름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대체로 운도(雲濤) 육원중(陸原仲)의 시를 화운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외심을 생각할 때마다 그 운을 따라서 지어 이를 다 짓고는 이 시집을 우세화(又細和)라 이름하고서 후일에 서로 만나 함께 보고 한번 웃음거리로 삼기를 기다리는 바이다. 그러나 운도의 시가 그리 취할 만한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외심이 그 시를 화운한 것은 자못 궁곤하고 개결함이 서로 비슷한 데에 느낌이 있어서 그랬던 듯하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화운하는 것은 곧 외심의 시를 화운하는 것이요 운도의 시에는 미칠 겨를이 없으니, 사무진(謝茂秦 무진은 명 나라 시인 사진(謝榛)의 자)이 이른바 “살아 있는 한 노남(盧枏)은 구해줄 줄 모르면서 이내 천 년 위로 올라가 굴원(屈原)을 슬퍼하고 가의(賈誼)를 조위한다.”고 한 격이다. 이 해 6월에 백분(伯奮)은 제한다.
 
[주D-001]육원중(陸原仲) : 명 나라 때의 시인 육과(陸果)를 말함. 원중은 그의 자, 그는 곤궁하면서도 성품이 개결하였다 한다.
[주D-002]노남(盧枏) : 명(明) 나라 사람으로 재주가 높고 특히 시에 뛰어나서 사진(謝榛)과도 교의가 깊었는데, 일찍이 현령(縣令)에게 거슬러서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하였고, 평생 동안 뜻을 펴지 못하고 죽었다.

 

 

          윤외심(尹猥心) :   다산의 친구 윤영희(尹永僖)의 자가 외심(猥心)임. 정조 1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校理) 등을 역임.

          다산과 평생 동안 가까운 친구였음. 다산이 귀양가기 전 시회(詩會)모임인 죽란시사에서 외심 윤영희, 남고 윤지범, 금리 이유수,

          무구 윤지눌 등과 시모임을 가졌다.  죽란시사는 초계문신 출신 15명이 모여 죽란서옥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다산의 귀양 중에도

          우정을 잃지 않았던 진정한 벗들이다.

              두릉시사는 해배 이후에 마재에 정착한 다산과 그의 아들 정학연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해거도인 홍현주, 자하 신위, 박용보,

          초의, 김매순 등과 주로 두릉과 홍현주의 집, 수종사, 청량산방 등지에서 시모임을 가졌다.
           

 

        

6. 집의 죽순을 읊다[詠家筍]
 

                                                          冽樵  丁若鏞

 

탐하는 입을 가지고 새 차를 마시지 말고         莫將饞口新茶
정원 대의 벽옥 같은 움을 좋이 먹어라            好喫庭筠碧玉
죽순으로 시름겨운 사람 배를 채우는 것이      留與騷人充一飽
대부 집의 화려한 자리 만든 것보다 낫다오     勝爲華簀大夫家


세상 사람의 속된 병은 삶과 함께 생기나니     時人俗病與生生
대만이 치유할 수 있단 말은 실답지 않네        惟竹能醫語不情
듣건대 도화미로 장차 밥을 짓는다 하니         聞說桃花將作飯
죽순을 삶아 먹는 것은 이치가 자명하구려      籜龍燒食理還明

 

 

                                            운도(雲濤) 육과(陸果)
 

누가 촌노인에게 새 차를 시험하게 하였나         誰令野老試新茶
비 뒤의 푸른 대엔 몇 치의 움이 자랐는데          雨後蒼筠幾寸芽
하나를 가져다 먹으매 좋은 맛 푸짐해라 /          一個點來淸味足
위천의 천 이랑 대는 다 누구의 것인고              渭川千畝是誰家


여름에 와서 어찌하여 그리도 파리해졌는고       入夏因何太瘦生
차군은 고기처럼 다정하지를 않네그려              此君不似肉多情
푸른 구름 적시는 한 가닥 산 샘물을 떠다가       山泉一注靑雲濕
청풍 아래 죽순 삶으며 밝은 달을 구경하네        爛煮淸風看月明

 

이상은 원중의 시이다.


 

 

                                                     윤외심(尹畏心)

 

노자는 일찍이 차 마시는 건 알지 못하고           老子未嘗識啜茶
생동하는 뜻 빙자하여 새 움만 완상하는데         只憑生意玩新芽
듣건대 강남엔 죽순이 많지 않다고 하니            江南聞說無多筍
부귀한 집으로 모두 베어 가기 때문이라오         斬伐都歸富貴家


차군은 의당 첫물에 난 것이 좋거니와               此君須要上番生
봉과 용고기 삶는 건 너무도 무정하여라            炮鳳烹龍太沒情
육씨 선배의 오직 한 가지 죄를 말하자면           可道陸先惟一罪
풍월을 온통 가져다 광명을 희롱함일세             盡將風月弄光明

 

이상은 외심의 시이다.
 

[주D-001]대만이 …… 말 : 대[竹]가 사람의 속된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뜻으로 소식(蘇軾)의 〈녹균헌(綠筠軒)〉 시에 “고기 없이 밥은 먹을 수 있으나 대가 없이는 지낼 수 없네. 고기를 못 먹으면 사람이 파리해지고, 대가 없으면 사람이 속되어지는데, 파리해진 건 살찌울 수 있으나, 선비의 속됨은 치유할 수 없다오.[可使食無肉 不可居無竹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도화미(桃花米) : 오래 묵어서 붉게 변질된 쌀을 이름.
[주D-003]차군(此君) : 대[竹]의 별칭. 진(晉)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대를 일러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이 지낼 수 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4

 

 

 

 

시(詩) 우세화시집(又細和詩集) [1] 제7권 / 다산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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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면채(尹冕采)의 뇌(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역대명문집성 뇌(誄)

낙민 | 2015.12.16. 22:15

 

 

윤면채(尹冕采)의 뇌(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나의 벗 윤외심(尹畏心 외심은 영희(永僖)의 자(字))이 그의 아들 면채(冕采)를 여의고서, 그의 효순(孝順)하고 단방(端方)한 행동과 뛰어나고 영오(穎悟)한 식견을 기술하여 그의 광지(壙誌)로 하였다. 그 뒤 그 부본(副本)을 나에게 부치면서, 한마디 말을 빌려 무덤을 빛내려 한다고 하였다. 아아, 이것으로 외심의 슬픔이 간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말을 빌려 장차 어디에 쓰겠으며, 무엇이 무덤을 빛낼 수 있으랴마는, 이렇게 한 것은 그가 슬픔과 억울함을 억제하지 못한 탓이다. 말을 듣고서 슬퍼하는 사람은 애오라지 그 슬픔을 하소연할 뿐이다. 이미 그 아버지가 기록하였는데, 내가 또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그 지(志)를 읽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사사로운 슬픔은 외심이 슬퍼하기 때문에 따라서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15세 때 서울에 유학(游學)하면서 육경(六經)이 안신입명(安身立命)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알았고, 규장각 월과문신(奎章閣月課文臣)에 소속되어서는 육경의 밭[田]에 오히려 버려진 이삭 다발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바빠서 힘을 쏟지 못하였다. 한번 유랑한 이래로 하늘이 나에게 오래도록 한가한 시간을 내려 주었으므로 잠심(潛心)하여 구색(究索)한 지 12년 동안 저술한 육경에 대한 심해(心解)의 설이 2백여 권이나 된다. 이것을 정밀하게 갈고 닦았으며 거칠고 잡스러운 설을 하려 하지 않았으니, 거의 성인의 정을 천고에 밝히고 나라의 빛을 사방에 더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머리는 빠지고 이(齒)는 성글어졌으며, 온몸에 병이 사무쳐서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나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사한(詞翰)에만 마음을 쏟고 경술(經術)은 좋아하지 않았고, 형님의 아들인 학초(學樵)가 성품이 침착하고 구색하기를 좋아하여 어렸을 때부터 경전에 뜻을 두었다. 그래서 나는, 건연(巾衍)에 간직된 책을 지킬 사람이 있다고 여겼더니만 하늘이 남겨주지 않아 학초마저 요절하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오직 외심만이 경술을 좋아하였는데, 면(冕)이 그 서통(緖統)을 이어서 그가 《시경》의 식미편(式微篇)과 간모편(干旄篇) 그리고 거린편(車隣篇)을 논하는데 안광(眼光)이 달빛과 같았으니, 진실로 의발(衣鉢)을 서로 전수할 만하다고 하겠다. 아아, 면도 또 요절하였으니 나는 외심이 그 아들을 잃는데 대해 곡하는 것에 슬퍼할 겨를이 없고, 깊이 나의 사사로움을 곡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두임(杜林 정약용 자신을 비유)ㆍ가휘(賈徽 윤외심을 비유)의 때에 가규(賈逵 윤면채를 비유)를 보전할 수 없었으니 슬프다, 어린 사람은 어른의 뇌(誄)를 지을 수 없다. 나는 너보다 얼마쯤 먼저 났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뇌는 다음과 같다.

 

 

눈에는 광채가 번득이나 / 顧眄有餘

온순한 기운 얼굴에 넘친다 / 順氣溢面

바탕이 이미 아름다운데다 / 旣其質美矣

예악(禮樂)으로 꾸몄으니 / 文之以禮樂

어찌 문질(文質)이 빛나는 군자가 아니랴 / 豈不彬彬乎君子

아, 이 세상 혼탁한 세상이라 / 嗚呼斯世也濁世也

맑은 것이 용납되지 못하니 / 淸斯不容

살아남은 것 찌꺼기일 뿐 / 留者其滓

아, 백관(伯冠)이 오래 살았더면 / 嗚呼使伯冠而壽者

어찌 나를 백세토록 기다리게 하겠는가 / 豈必使余百世之俟

백관이 죽으니 / 伯冠之死

나는 끝났도다 / 吾其已矣

아, 슬프다! 단정한 선비여 / 嗚呼惜哉端士

 

[주]두임(杜林)ㆍ가휘(賈徽)의 …… 가규(賈逵)를 보전할 수 없었으니 : 두임은 후한(後漢) 때 사람. 자(字)는 백산(伯山).《소학(小學)》에 밝았다. 한 나라 왕실에서 교사제(郊祀制)를 의논할 때 모두들 요(堯) 임금을 제사지내야 한다고 의견일치를 보았으나, 두임은 유독 요 임금을 제사지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여 의견을 관철시켰다.《後漢書 杜林傳》가휘도 후한 때 사람. 유흠(劉歆)에게《좌씨춘추(左氏春秋)》를 배우고 겸하여《국어(國語)》와 《주관(周官)》을 익혔다. 또《고문상서(古文尙書)》를 도운에게서 배우고《모시(毛詩)》를 사만경(謝曼卿)에게서 배워《좌씨조례(左氏條例)》20편을 지었다.《後漢書 卷66》가규는 동한(東漢) 때 사람. 자는 경백(景伯). 오경(五經)과《좌씨전》에 통하고 겸하여《곡량전(穀梁傳)》에 대한 오가(五家)의 설에 밝았다. 저서에《경전의고(經典義詁)》 및 《논난(論難)》 1백여 권이 있다. 가규는 순탄이 장수하였으나 윤면채가 가규 같은 인재였으나 요절한 것을 슬퍼한 것이다.《後漢書 卷66》

 

尹冕采誄

余友尹畏心哭其子冕采。爲述其孝順端方之行。超妙穎悟之識。以誌其壙。以其一本崎嶇然寄于余曰。願借一言。以賁泉隧。嗚呼。斯可以見畏心之哀之切而已。借吾言將安用之。又何泉隧之足賁。是其哀冤鬱怫。不知所以裁之。凡可以聞而哀之者。聊以之愬其哀而已。旣其父志之矣。余又何言。然余讀其志。竊有私慟起乎中。非因畏心之哀其子而隨而哀之也。余年十五時。游學京師。則知六經爲安身立命之本。及隷閣課。知六經之田。猶有遺秉。顧悤悤不能致力。一自流落以來。天旣予之以長暇。日月閑矣。潛心究索。十有二年。所著六經心解之說二百餘卷。精研密磋。不敢爲荒蕪雜說。竊庶幾昭聖情於千古。增國光於四方。而髮於是乎短。齒於是乎豁。筋骸沈瘴。今且死亡無日矣。余有二子。皆馳心詞翰。不喜經術。兄子學樵性沈深好究索。自孩提時留心經典。余謂巾衍之藏守者有人。嗟天不遺。樵也夭。顧詹四方。惟畏心雅好經術。而冕也克紹其緖。其論式微干旄車鄰之義。眼光如月。眞可以鈯斧子相授。嗟乎。冕也又夭。余不暇哀乎畏心之哭其子。而深以哭吾私者以此。杜林賈徽之際。不能保賈逵。悲夫。幼不誄長。以吾一日長乎爾。誄曰

顧眄有餘。順氣溢面。旣其質美矣。文之以禮樂。豈不彬彬乎君子。嗚呼。斯世也濁世也。淸斯不容。留者其滓。嗚呼。使伯冠而壽者。豈必使余百世之俟。伯冠之死。吾其已矣。嗚呼惜哉。端士。

 

cafe.daum.net/jangdalsoo/bGYj/12   장달수

 

 

 

 

 

아름다움을 안으로 머금고, 말을 뱉지 않고 쌓아두어 성어

2012.02.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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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축언(含章蓄言)

[요약] (含: 머금을 함. 章: 글 장. 畜: 쌓을 축. 言: 말씀 언)

아름다움을 속에 담아두고 드러내지 않으며, 생각을 속에 넣어두고 말하지 않는 것.

[출전]《다산시문집 제19권 서(書)》

 

[내용] 이 성어는 다산시문집 제19권 서(書)윤외심(尹畏心) [영희(永僖)] 에게 보냄이라는 편지에서 연유한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의 오늘의 처지를 감히 옛날 성현들께서 당하셨던 바에 비기는 바는 아니지만, 그 위축되고 궁액(窮厄)을 만난 심정은 현ㆍ불초(賢不肖)가 같은 것입니다. 7년 동안 유락(流落)하여 문을 닫아걸고 칩거하노라니 노비들도 나와는 함께 서서 이야기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낮에 보는 것이라고는 구름의 그림자나 하늘의 빛뿐이고, 밤에 듣는 것이라고는 벌레 소리와 바람에 불리어 나는 대나무 소리뿐입니다. 이런 정적의 생활이 오래되니 정신이 모여져서 옛 성인의 글에 전심 치지(專心致志)할 수 있어 자연히 울타리 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을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함장 축언(含章蓄言)하여 괄낭(括囊)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또 스스로 생각하니 풍비(風痹)에다가 뼈까지 쑤시고 아프니 머지않아 죽을 것인데 끝내 발표하지 않고 속에 넣어둔 채 지하로 들어간다면 심히 성인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온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오직 족하만이 나의 말을 비속하게 여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실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장의 종이에 침울한 심정을 대략 진술하였으니, 족하는 잘 살펴주십시오.

다산시문집 제19권 서(書)윤외심(尹畏心) 영희(永僖) 에게 보냄

 

鏞今日之地。非敢擬之於古聖賢之所遇。若其畏約窮厄之情。則賢不肖之所同也。七年流落。杜門塊蟄。雖傭奴爨婢。莫肯與之立談。晝之所見。唯雲影天光。夜之所聽。唯蟲吟竹籟。靜寂旣久。神思凝聚。得以專心致志於古聖人之書。而竊竊自然以爲窺藩籬之外光耳。誠宜含章蓄言。以守括囊之戒。而又自念風痺骨痛。死亡無日。遂默不宣。含而入地。則負聖人深矣。周瞻一世。唯足下爲能不鄙不棄。玆用咫尺之紙。略疏沈鬱之情。唯足下恕之。

 

 

   다산은 강진 유배 18년간 문 닫고 학문에만 몰두했다.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사색을 거듭하는 동안 고요히 내면에 쌓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는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함장축언(含章蓄言), 즉 아름다움을 안으로 머금고, 말을 뱉지 않고 쌓아두어 괄낭(括囊), 곧 주머니의 주둥이를 묶듯이 온축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그간의 공부에서 얻은 깨달음을 글로 남기지 않는다면 성인(聖人)의 뜻을 저버리는 것으로 여겨져 마침내 책을 저술했다고 술회했다.

 

다산이 초의(草衣) 스님에게 준 친필 증언첩(贈言帖)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주역'에서는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곧을 수가 있으니 때가 되어 이를 편다(含章可貞, 以時發也)'고 했다. 내가 꽃을 기르는데, 매번 꽃봉오리가 처음 맺힌 것을 보면 머금고 온축하여 몹시 비밀스럽게 단단히 봉하고 있었다. 이를 일러 함장(含章)이라고 한다. 식견이 얕고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 겨우 몇 구절의 새로운 뜻을 알고 나면 문득 말로 펼치려 드니, 어찌 된 것인가?”

 

꽃봉오리가 처음 맺혀서 활짝 벙그러질 때까지는 온축의 시간이 필요하다. 야물게 봉해진 꽃봉오리를 한 겹 한 겹 벗겨보면 그 안에 활짝 핀 꽃잎의 모양이 온전히 깃들어 있다. 차근차근 힘을 모아 내면의 충실을 온전히 한 뒤에야 꽃은 비로소 제 몸을 연다. 꽃이 귀하고 아름다운 까닭이다.

 

주인은 씨앗을 뿌리거나 묘목을 심어 물을 주고 거름으로 북돋운다. 풀나무는 비바람을 견뎌내고, 뿌리와 줄기의 힘을 길러, 마침내 꽃 피워 열매 맺는다. 사람도 부모와 스승의 교육을 받고,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역경과 시련을 통해 함양을 더하고, 마침내 내면이 가득 차서 말로 편다. 이런 말은 아름답고 향기롭다. 온축의 시간 없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기만 하면 그 말이 시끄럽고 입에서는 구린내가 난다.

 

옛 사람의 말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부득이(不得已)의 결과였다. 지금 사람의 말은 뜻도 모른 채 행여 남에게 질세라 떠드는 소음의 언어다. 난무하는 정치가들의 빈말, 헛말을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야 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야무지게 오므린 꽃봉오리의 함축을 기대할 수야 없겠지만,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그들의 말에서는 도대체 진심을 느낄 수가 없다.

[정민 한양대교수의 글을 재구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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