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나는 오늘 옛 그림을 보았다

2016. 1. 17. 06:43美學 이야기

 

 

***그림 사진들은 인터넷 파도타기로 보완하였음.



   [서평]    나는 오늘 옛 그림을 보았다  

 


 허균 / 북폴리오

 

 


 



〈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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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환상에의 여행 | 안견의 몽유도원도 |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세종 29년 1447년 어느 날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여행하고 거기서 본 바를 안견에게 설명해 주고 그림으로 그리게 한 것인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조선 최고의 그림이며 한국 회화사 전반에 걸쳐서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도는 산간 마을 (山市晴嵐 산시청람)-1첩,
      연무에 싸인 산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늦저녁 풍경 (煙寺(遠寺)晩種 연사모종)-2첩,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 (瀟湘夜雨 소상야우)-3첩,
      먼 포구로 돌아오는 배 (遠浦歸帆 원포귀범)-4첩,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 (平沙落雁 평사낙안)-5첩,
      동정호에 비치는 가을 달 (洞庭秋月 동정추월)-6첩,
      저녁 노을 물든 어촌 (漁村落照(夕照) 어촌낙조)-7첩,
      저녁 때 산야에 내린 눈 (江天暮雪 강천모설)-8첩


이념화된 산수 자연 | 전 안견의 소상팔경도 | 국립중앙박물관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도는 산간마을 山市晴風
연무에 싸인 산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늦저녁 풍경 煙寺(遠寺)晩種
먼 포구로 돌아오는 배 / 저녁노을 물든 어촌   遠浦歸帆  漁村落照(夕照)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 / 동정호에 비치는 가을달   瀟湘夜雨  洞庭秋月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 / 저녁 때 산야에 내린 눈   平沙落雁  江天暮雪


   동양의 수치는 단순히 자연수를 셈하는 단위가 아니라 삼라만상의 대응과 조화의 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홀수와 짝수는 음양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또한 것은 양인 하늘과 음인 땅에 대응하는 수이다. 역경 '계사상'에서 <하늘의 칠이요 땅은 팔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홀수인 7을 하늘에 짝수인 8을을 땅에 대응시킨 것이다. 팔경의 8이라는 수는 땅과 땅의 속성을 함께 드러내는 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상 팔경도의 풍경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8폭 모두 음의 성질을 가진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우주적인 넓이와 깊이 속에서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가운데 고요와 적막감이 배여 있다. 만물이 생성.분화하기 이전의 궁극적 상태를 도가에서는 도道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도 자체는 어떤 실체도 아니며 이를 청각적으로 표현한다면 고요하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고요의 도에서 움직임이라는 현상이 생긴다. 그러나 그런 사물들의 움직임 끝에 돌아가는 곳은 다시 고요의 세계, 즉 도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고요는 움직임의 근원이요, 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신잠, 탐매도, 견본담채, 43.9×210.5㎝, 국립중앙박물관>

 

<탐매도探梅圖>는 고사高士가 눈길에 매화꽃을 찾아 나서는 정경을 그린 그림이다.

적막감이 감도는 설경을 배경으로 고사가 말을 타고 다리를 막 건너려고 할 때,

문득 뒤따르는 동자의 발걸음이 더디다고 느꼈던지 고개를 돌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동자는 매화를 찾는 주인의 시심詩心이나 조바심 따위는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춥고 피곤한 느낌뿐인 것 같다.


<신잠, 탐매도 부분>
인간과 자연의 불가사의한 도 | 신잠의 탐매도 | 국립중앙박물관


   옛 선비들이 흠모하여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은일처사 가운데 특히 매화와 관련된 인물로 임포(포선)이라는 사람 있다.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자연 속에 묻혀 살다가 뒤에 항주에 돌아와 서호의 고산에 들어 매화를 자식으로 삼고 학을 아내로 삼아 평생 청빈하게 살았다. 또 맹호연이라는 사람은 당나라 호북 양양 사람으로 녹문산에 은둔하여 살았는데 산수자연을 사랑하여 자연미와 정적의 경지를 읊은 시를 많이 남겼는데, 특히 매화를 좋아하여 초봄에 나귀를 타고 설산에 들어가 매화꽃을 찾아다녔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__ 신잠과 기묘사화


 



 이정(李楨)     산수도(山水圖)    화첩 종이에 수묵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이정은 30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조선 중기의 대표적 화가중의 한사람이다.
허균(許筠)이 쓴 이정애사(李楨哀辭)에 의하면 그는 이배련(李陪蓮)을 할아버지로,
이숭효(李嵩孝)를 아버지로 해서 태어났으나.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집에서 그림공부를 했다고 한다.
5살 때 승형(僧形)을 그렸으며 10세에 이미 대성하여 산수. 인물. 불화 등에 모두 능통했고.

1606년에 명사(明使)로 우리나라에 왔던 문인화가 주지번(朱之蕃)으로 부터는 천고에 최성(最盛)이고

해내(海內)에 짝이 드물다"는 절찬을 받기도 하였다.

12엽 으로 이루어진 이 화첩에는 그의 이러한 천재적 면모와 기질이 잘 담겨있다.

그중 4엽만이 소개되었는데, 모두 방일(放逸)한 발묵(潑墨)과 파묵(破墨)의 묘취(妙趣)가 넘치는 일품들이다.

번지듯 스며있는 담묵의 바탕에 거칠고 대담한 묵찰(墨擦)을 가하여 화면에 강한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특히 2.3엽에 보이는 지극히 종일하고 과격한 농묵의 붓질은 마치 파격적인 일품양식의 선종화(禪宗畵)를 대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의 천재적이고 방외인적 기질 등이 가미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흠(申欽)이 이정의 화풍에 대해 인공(人工)의 전륜함을 넘어 신품(神品)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 평도 이정의 묵묘 솜씨를 두고 했던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정(李楨)     산수도(山水圖)    화첩 종이에 수묵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이정(李楨)     산수도(山水圖)    화첩 종이에 수묵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이정(李楨)     산수도(山水圖)    화첩 종이에 수묵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강호 자연에의 동화 | 이정의 산수도 | 국립중앙박물관

 


   옛 선비들이 물과 교섭한 것은 크게 세가지로, 첫째는 물위에 배를 띄우는 것이고, 둘째는 낚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강호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즐기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강호와의 교섭을 통하여 공통적으로 추구하였던 것은 자연에 파묻혀 몰아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돛단배 뒷전에 앉아 있는 주인공은 물위에 배를 띄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기 때문에 노를 젖거나 돛대를 풍향에 따라 조정하는 번거로움은 완전히 포기하고 그저 바람에 돛을 맡기고 물결에 노를 맡겨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어디를 가든지 상관하지 않는다.강물 위에서는 그러한 작위마저 필요없이 흐르는 물결에 배를 맡김으로써 자연에의 동화가 더욱 쉽게 이루어질 수 있어 현실 속의 나라는 존재는 자연에 묻혀 버려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요유의 풍류 | 이불해의 예장소요도 | 국립중앙박물관


   동양화에서는 인물의 여유자적한 모습을 표현하는데 몇 가지의 형식이 있다. 즉, 두 손을 허리 뒤로 하여 뒷짐을 지거나(부수), 두 손을 소매 속에 감추거나(유수), 지방이에 의지하거나(의장), 지팡이를 끌고 가거나(예장) 하는 형식이 그것이다. 그런데 부수, 유수, 의장의 형식은 한 곳에 머물러 계곡의 물이나 먼 하늘을 바라볼 때 많이 쓰는 형식이고, 예장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책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형식이다. __ 소요는 인간이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면서 긴장도, 조바심도 없이 생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기도 하다. 소요의 경지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장자는 '지락'이라는 말로써 적절히 표현하였다.

 

 



겸재 정선, 〈금강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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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이상향 | 정선의 금강전도 | 호암미술관


   도교의 신선설의 신선이 살고 있고 불로초가 자란다 하는 삼신산三神山은 봉래, 방장, 영주의 3山으로 이루어졌다. 여름의 금상산을 봉래산 이라 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금강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도교적 이상 세계였으며, 옛 사람들은 금강산을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탐승하면 사후에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그것이 어려울 땐 그림을 구해 걸어 놓고 간절히 기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금강산은 불교와 도교뿐만 아니라 민간신앙 속에서도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외경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정선(鄭敾)의 동리채국도(東離採菊圖)

 

따라서 노인은 고독과 외로움을 해결하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할려면 노인의 성 생활을 위축시키지 말아야 하고

왜곡된 상식부터 고쳐야 한다고 쓰고 있다. 

 

정선(鄭敾)의 유연견남산도(悠然見南山圖)

 

병들지 않고 건강한 노인이라면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성욕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데, 이 본능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에 노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해결하고,

장수(長壽)와 회춘(回春)을 도와주는 수단이라고 말하고

비뇨기과 전문의들도 성관계는 '젊음과 건강의 샘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화일체의 세계 | 정선의 동리채국도. 유연견남산도 | 국립중앙박물관





오두막을 짓고 인경에 있으나 / 수레, 말소리 시끄러움 없도다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나 / 뜻이 머니 사는 곳도 절로 아득하다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꺽어 들고 /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산 기운은 해가 지니 아름답고 날던 새들 짝지어 깃을 찾아드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거늘 / 하려 할 말을 잊도다   ____  도연명 [飮酒]

   조선 시대의 문학은 당송의 문학, 그것도 도연명의 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도연명은 동진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정절 선생이라 불렀다. 그는 명리를 바라지 않고 독서를 좋아하고 술을 즐겨 마셨으며, 국화 심기를 즐겨 했다고 한다. 집안이 구차하여 한때는 관직에 있었으나 관리란 직책이 자신의 생리에 맞지 않아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은거한 사람이다.

 



<연주담도〉는 금강산의 명승 가운데 하나인 연주담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1788년에 김응환이 그린

〈금강산 관동팔경도첩〉에 실려 있는 그림들 중의 하나이다. 

금강산 연주담도는 김응환과 그의 일행이 금강산을 직접 유람한 후에 그린 그림이다.
실제의 경치를 그린 그림이지만 중요한 것은 화면의 경치가 실제와 닮았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산수간에서 즐기는 풍류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강산 유람의 풍류 | 김응환의 연주담도 | 개인소장


 

죽장망해 단표자로 천리강산 들어가니 / 폭포도 좋거니와 여산이 여기로다
비류직하 삼천척은 옛말로 들었더니 의시은하낙구천은 과연 헛말이로다
그 물이 유도하여 진금을 씻은 후 / 석경의 좁은 길로 한 곳을 내려가지
저익은 밭을 갈고 사호 앉아서 바둑을 둔다 / 기산을 넘어 들어 영수로 내려가지니 
소부는 어이하여 팔 걷고 귀를 씻고 / 허유는 무삼일로 소고삐를 거사렸노.
창랑가 반겨 듣고 소리 좇아 내려가니 / 엄릉탄 여울물에 고기 낚는 어옹하나
양의 옷 떨떠리고 벗을 줄을 모르더라... / 석양천에 촌려로 돌아오니
청풍은 서래하고 명월은 만정이라 / 강산풍경이 이러하니 금지할 이 뉘있으리
어와 벗님네야 빈천을 한치 말고 / 지락하여 지내보세

   옛 사람들이 즐겼던 강산 유람이라는 것은 오늘날에 말하는 관광과는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관광이 단순히 경치를 보는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유람은 산수 간을 노니면서 자연의 법도를 따라 인생을 관조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는 것을 중요시 한다. 중국의 유명한 문장가 손작도 그의 <천태산부>에서 산수를 유람하는 풍류의 경지를 "몸은 조용하고 마음은 한가하다"라는 말로 함축해 표현했듯이 유람은 부드럽고 수동적이며 긴장이 풀린 누그러진 유희이며, 극성스러움과 조급함이 필요 없는 풍류놀이인 것이다. __ <연주담도>는 1788년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그린 그림이고 이때 강세황김홍도가 동행했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
지조와 절의의 상징형 | 김정희의 세한도 | 개인소장


   <세한도>는 추사가 '윤상도의 옥'에 관련되어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인 1844년에 그린 그림이다.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한 처지에 있는 자기에게 사제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 준 제자인 역관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에게 답례로 그려 준 것이다. <세한도>는 탐욕과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오직 지조와 의리를 지키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유학자 추사가 이상적인 지킨 사제간의 의를 추운 겨울의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주었지만 그림에 담긴 뜻으로 본다면 그것은 단순한 답례품이라기보다 그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잘못된 세태, 즉 지위와 권세가 있을 때면 방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관직에 물러나면 누구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기회주의적 세태에 대한 비판이자 시위인 것이다.

 

 





전기-계산포무도
한국적 소산자기 | 전기의 계산포무도 | 국립중앙박물관


   <계산포무도>는 서양화가의 화면에서는 우선 그려야 하는 하늘과 물이 그려져 있지 않다. 붓이 지나가 산이 그려지면 그 위쪽은 하늘이 되고, 앞쪽에 언덕과 풀을 그리면 산과 그 사이의 여백이 저절로 물이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서툴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삽상한 건강미를 느낀다.

 




송계한담도 / 김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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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한담도 / 김수철

김수철, 〈송계한담도〉, 종이에 수묵담채, 33.1×44㎝, 간송미술관. 조선 말기의 화가 김수철이 그린 산수인물화이다.

물가의 소나무숲 그늘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인물들을 간결한 구도와 산뜻한 색채로 그렸다.

출처 © 한국문화재사진연구소 | 이미지 사이즈 960x693 |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연회귀의 심성 | 김수철의 송계한담도 | 간송미술관


   <송계한담도>에 나타난 일련의 소나무는 상징화, 인격화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소나무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나무 아래에서 서거나 앉은 자세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섯 선비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인간'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흐르는 물과 같고, 소나무와 같다. 완전히 자연 형성의 일부이다. 군데군데 서 있는 나무의 일종이다. 인물도 소나무와 바위와 냇물과 마찬가지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처럼 옛 화가들이 대규모의 자연 속에 있는 조그마한 인물이나 소규모의 자연 속에 있는 인물이나 모두 자연의 일부로 그리는 것은 물아일체를 염원하는 자연회귀의 성향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__ 동양에서는 가장 으뜸인 것이 天이고, 천에서 地가 생기고, 다음에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의 존재를 천지의 자연에 환원하는 신뢰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나 짐승, 벌레나 물고기를 자연의 일부로 그리는 것처럼 인물도 자연의 일부로 그린다.

 


이경윤, 「수하취면도」31.2 x 24.9 ㎝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취락과 망아가 동경심이 '취면'의 모습을 통해 표현된 그림이다.

취흥 속의 백일몽 | 이경윤의 수하취면도 | 고려대학고 박물관


   윤선도는 술을 마시되 덕이 없으면 亂하고, 주흥을 즐기되 예를 지키지 않으면 雜되기 때문에, 술을 마실 때에는 덕과 예를 갖춘 바른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음주는 난잡과 주망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술은 인생의 덧없음을 바로 보고 자연의 섭리를 관조하는 경지에 이르는 선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기에 조선의 시인 묵객들은 은일한 생활과 풍류의 동반자로 술을 함께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와 은사들은 자연 속에서 홀로 즐기다가 그 자리에서 낮잠에 빠져드는 것을 즐겨 했다. 다 같은 잠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낮잠은 밤잠과 다른 의미가 있었다. 밤잠은 인간의 습성화된 생리현상 이상의 다른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던 반면에 낮잠은 다분히 풍류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있었다. 그래서 낮잠을 잔다고 하지 않고 즐긴다고 했던 것이다. 낮잠을 즐긴다는 것은 세상 영욕을 잠시라도 잊고 자유롭고 거리낌없는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낮잠을 즐기되 집안의 안락한 잠자리가 아니라 호젓한 나무 그늘 아래나 정자 위에서 문득 잠에 들어가야 제격이라 하였다. 더구나 낮잠을 자면서 꾸는 백일몽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망아의 경지로 은일자들의 즐겨 해 마지않았던 것이었다.

 


무현금의 풍류- 傳 이경윤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

무현금의 풍류 | 이경윤의 월하탄금도 | 고려대학교박물관


   풍류에는 여러 사람과 더불어 즐기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호젓한 장소에서 혼자 즐기는 풍류가 있다. 그런데 혼자 즐기는 풍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거문고였다. 거문고가 詩, 酒와 함께 풍류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것이 선비들에게 있어 단순한 악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문고를 금琴이라고 하는 것은 군자가 바른 것을 지켜서 스스로 금禁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즉,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른 뜻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선한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서 사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현 군자들은 거문고를 타면서 항상 조심하고 스스로 느껴 사악한 것과 금할 것을 조절하였다고 한다.

 




전(傳) 이경윤, 고사탁족도, 비단에 담채, 27.8×19.1cm,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傳) 이경윤, 고사탁족도, 비단에 담채, 27.8×19.1cm,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격수양과 출처지리 |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 국립중앙박물관


   선비들이 특별히 <탁족지유>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는 중국의 고전인 <초사>의 내용과 관련이 깊은 것이다. <초사> '어부편'을 보면 어부와 굴원 사이의 문답을 서술한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  즉, 창랑의 물이 맑다는 것은 도의와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말함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다는 것은 도의가 무너진 어지러운 세상을 비유한 말로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세상이 올바를 때면 나아가 벼슬을 한다는 뜻이요, 발을 씻는다는 것은 풍진에 찌든 세상을 백안시하고 은둔하며 고답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조선의 선비들은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강과 계곡에서 <탁족지유>의 풍류를 즐겼다. 그들은 탁족놀이를 하면서 아득한 옛날 '청랑가'를 통해 어부가 말했고, 성현들이 해석한 '탁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자신도 그런 경지에 들어 있음을 자부하기도 했다.

 


제목 : 윤두서 송하관폭도
설명 : 윤두서(尹斗緖)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비단 바탕에 수묵, 18.5×19 cm, 윤영선 소장.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물과 인간의 본성 | 윤두서의 송하관폭도 | 윤씨종가(윤영선) 녹우당


   조선 초의 선비인 권근 [양촌집] <고간기>에서 물의 본성과 인간의 천성에 대해 말하되 "사람의 천성이 선함은 물의 성질이 맑음과 같은 것이다. 천성이 본래 선한 것이지만 악이 생기는 것은 물욕이 유혹하기 때문이요, 물이 본래 맑은 것이지만 흐르게 보이는 것은 오물에 더럽혀져서이니 그 악을 버리고 선을 보존한다면 사람들의 성품이 그 시초대로 회복되는 것이요, 그 흐린 것을 없애고 맑은 것을 솟게 하면 물의 성질이 정상을 찾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물의 본성을 수기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또 물중에서도 특히 계곡의 물이 가장 좋다고 했는데, "천하의 물은 못의 작은 것이나 강이나 바다의 큰 것이 모두 다 물이지만, 못은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모든 오물이 모여 더러워지기 쉽고, 강과 바다는 양이 크기 때문에 흐린 것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므로 다극히 맑을 수 없으니, 극히 맑은 것은 오직 산에 있는 계곡 물 뿐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함윤덕(咸允德) 그림 / 정몽주(鄭夢周, 1337년 ~ 1392년) 시
나귀 등 위의 시상과 소요유 | 함윤덕의 기려도 | 국립중앙박물관


   <귀전록>에서 구양수시문을 구상하는 데 가장 좋은 분위기 세 가지를 들었는데, 그 첫 번째가 당나귀의 등 위에 앉아 있을 때이고, 두 번째가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이며, 세 번째가 뒷간에 앉아 있을 때라고 했다. 기려행은 시상의 시각적 상징형으로서뿐만 아니라 선비들의 풍류 생활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당나귀를 타고 거가나 걸어서 가거나 간에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간다면 그것은 단순한 걸음이나 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당나귀를 탄 <기려도>의 주인공은 어떤 가야 할 곳을 정해 놓고 있지 않다. 그저 목표없이 서성이는 기려행은 그 자체가 목적이요 즐김의 대상인 것이다. 이것이 소를 타고 산책하는 기우행의 풍류 정신과도 통한다.

 



자연과 하나 되는 청담(淸談)의 세계, 고기잡이 / 옛 그림에서 보는 민속문화
산수간의 청담 | 이명욱의 어초문답도 | 간송미술관


 

   이율곡은 그의 <동호문답>에서 벼슬로부터 물러나 혼자 있는 선비의 유형을 세 가지로 들었는데, 첫째는 '천민天民'이라는 것으로 강태공과 같은 이를 말하는 것이니, 큰 포부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를 만나지 못했을 때에 조금도 세상에 동경하는 것이 없고 욕심도 없는 사람이고, 그 다음은 '학자學者'라는 것으로 자기 능력이 불충분한 줄 알아서 좀 더 자기 수양에 열중하고 구태여 벼슬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요, 그 다음이 '은자隱者'로서 허유나 소부, 그리고 엄자릉과 같은 이를 말하는 것이니 처음부터 세상에 관심이 없고 혼자 깨끗하게 살려고 하는 초연주의자라는 것이다.

   이 그림을 감상하는 선비들은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강태공이나 엄자릉 같은 은자들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연상했을 것이다. 이 점은 조선 시대의 수많은 시가를 통해서도 드러나듯이 여유롭게 소를 타는 풍류를 말할때면 노자의 행적과 견주어 보기 십상이고, 강물 위에서의 시흥과 취락을 노래할 때는 이백을, 당나귀 타는 풍류를 말할 때는 두보를 들먹이고, 산수간의 한가한 생활을 말할 때는 유.소부를, 초봄에 매화꽃 즐기는 풍류를 말할 때는 설중매를 찾아나섰다는 맹호연을 거론하는 것이 등이 모두 이런 예라 할 것이다.


 

 



겸재 정선 필 조어도 . 어주도(謙齋鄭敾筆 釣魚圖 . 漁舟圖)
출처지리의 이상 | 정선의 조어도 | 국립중앙박물관


   강태공은 본명이 여상으로 태공망이라고도 부른다. '강태공의 곧은 시'라는 말이 있듯이 큰 뜻을 품고 낚시를 하면서 무위한 생활을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엄자릉은 후한 사람으로 어려서 광무제와 동학하였는데, 광무제 즉위 후 간의대부로 불렀으나 이를 마다하고 부춘산에 들어가 밭 갈고 낚시하며 소일하였다 한다.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실현코자 하는 의지로 관에 나아가는 것을 <출出>이라 하고, 정의가 통하지 않을 때면 관직을 버리고 자연 속에 은둔하여 자족과 절의를 지키는 것을 <처處>라고 한다면 강태공의 낚시질은 <출>의 의미를 지닌 것이고, 엄자릉의 낚시질은 <처>의 경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선인기우 仙人騎牛, 단원 김홍도
초세와 은일의 세계 | 김홍도의 선인기우도 | 개인소장


   전하는 바에 의하면, 중국 주나라 강왕 시대에 노자는 당시 어지러운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펴려고 했으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하자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서역으로 떠나갔다. 이 때 푸른 소를 타고 갔는데 서역으로 통하는 관문인 지금의 하남성 영보현 남서의 함곡관을 지날 때였다. 서광을 배경으로 푸른 소를 타고 지나가는 노자를 보고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고 직감한 문지기 윤희가 그에게 교훈될 말을 청하니, 노자는 <도덕경> 오천여 마디의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한다. 이렇게 탄생한 <도덕경>은 후세 선비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와 더불어 소를 타고 인간 세상을 떠난 노자의 행적은 초세와 은일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단원 김홍도의 "타작도"
해학과 중용의 미학 | 김홍도의 타작도 |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타작도>는 갈등 관계에 있는 농부들과 마름을 그렸으되 둥글넓적한 얼굴에 동글동글한 눈매를 지닌 농부들의 얼굴은 밝고 소탈하며,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마름의 표정 또한 덤덤하고 유연하다. 투쟁보다 중용, 갈등보다는 조화를 신봉하는 마음이 해학 정신이다. 해학 정신은 또한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대범함을 추구하는 마음, 즉 미래지향적인 생명력이다. <타작도>를 지배하고 있는 활달하고 건강한 분위기는 중용과 조화를 신봉하는 해학 정신과 사실보다 절대적 진실을 추구하는 관조의 태조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용과 해학의 차원에서 보면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없고, 관조하는 태도로 사물을 보면 절대 평등과 조화만이 있을 뿐이다. <타작도>의 바탕에 깔려 있는 중용과 해학의 정신은 화원 김홍도 스스로가 깊은 사색을 통해 터득한 것이라기 보다는 전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살아 온 한국인들이 선천적으로 터득하고 공유했던 생활철학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단원미술관 김홍도 풍속도2 - 풍속화첩, 기로세연계도
사대부와 서민들의 잔치마당 | 김홍도의 기로세연계도 | 개인소장


   계회는 기로회에 등록된 사대부들의 친목과 예우를 위해 벌이는 잔치이고, 계회도는 그 행사의 내용을 기록하여 대대손손 전승하기 위해 그려지는 그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사에 참여한 기로들의 주문에 따라 권위와 위엄과 기교가 앞선 그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같은 목적에서 그려진 <기로세연계도>는 김홍도의 붓질을 만나 그 분위기가 일신되어 버렸다. 고상하다든지 권위가 있다든지 하는 느낌보다도 구수하고 익살스러운 표현이 앞서 있다. 화가 김홍도의 그림도 산수화나 신선도 같은 본격적인 작품에는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익살이나 구수함보다는 높은 품위와 그의 영감에서 오는 세련된 아름다움이 앞서 있다. 그러나 그가 한 번 그림의 대상을 이러한 흥겨운 잔치의 생태 속에서 잡으면 익살과 흥겨움이 붓끝과 그의 가슴 속에서 용솟음쳤던 것이다. 이것은 단원이 서민사회의 생태를 너무나 잘 보고 잘 알고 또 사랑했던 까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혜원 신윤복 "월하정인도"
숨김없는 사랑의 정념 | 신윤복 월하정인도 | 간송미술간


   당시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읽혀졌던 <춘향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당시의 음풍의 정도가 어떤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남녀상열지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용의 선정성은 이미 상식 수준을 넘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단순한 기강의 문란이라기 보다는 시민들의 자아 발견에 따른 일종의 파급 현상이라고 보아야 옳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월하정인>과 같은 에로틱한 그림이 태어날 수 있었고, 또한 서민들 사이에서도 그런 그림들이 공개리에 애용될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은은함과 강직한 멋, 묵죽화의 대가 탄은 이정


탄은 이정(李霆 1554~1626)은 세종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이다.

 시서화에 능했는데 특히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묵죽 화가로 꼽힌다.

그는 풍죽(風竹), 설죽(雪竹), 우죽(雨竹) 등 다양한 대나무를 화폭에 옮겼다.

그의 묵죽화는 절제 속에서 긴장과 생동감이 조화를 이루고 명암의 대비가 두드러지며

마치 서예의 획을 보여 주는 듯 힘이 넘치고 아름답다.

탄은 이정의 <풍죽도>는 어몽룡의 월매도와 함께 오만원권 지폐의 뒷면 배경그림으로 채택되었다.


겨울의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곱게 피어난 아름다운 매화(梅花),

척박한 땅에서도 고운 자태와 멀리 퍼지는 그윽한 꽃향기를 지닌 난초(蘭草),

늦가을의 서리를 이겨내고 소담스럽게 때로는 화사하게 자신을 피우는 국화(菊花),

연약해 보이지만 바람에 흔들려도 결코 꺾이지 않는 절개를 가진 대나무(竹).

이 네 가지를 소재로 한 그림이 바로 사군자화(四君子畵)다.

선비들은 이 네 가지에서 군자의 도리를 찾았고,

문인들은 ‘문자의 시작은 그림의 형상과 같다’는

서화동법(書畵同法)을 통해 사군자를 시·서예·그림에 담아왔다.

 그 중에서도 곧게 자란 대나무가 지닌 자연의 멋을 표현한 묵죽화(墨竹畵)는

불교를 국교로 했던 고려 때부터 고승과 사대부들이 청빈함과 절개를 지키려는 의미로 즐겨 그렸다.

유교가 중심이 된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선비가 지켜야 할 정신과 곧은 마음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설죽도〉이정, 견본수묵, 30.3 X 35.5cm, 간송미술관 소장
묵죽화의 대가인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54~1626)

조선시대 중기, 선조에서 인조로 이어지는 기간에 활동했다.

이 시기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사색당쟁으로 인한 정치적 어려움이 있던 때라

사대부들은 글과 그림으로 심신을 달랬다.

초기의 묵죽화에서는 필법에 따르는 의식적 표현이 보였다면,

이정의 묵죽화는 바람을 타는 풍죽(風竹),

눈 맞은 설죽(雪竹),

이슬 맞은 노죽(露竹),

새로 파릇하게 나온 신죽(新竹) 등

대나무의 형태를 관찰해 회화성과 서예성을 조화롭게 살렸다.

탄은 이정은 자연의 생동감을 수묵(水墨)으로 잘 표현한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대나무 화가’였다.

그의 독자적 화풍은 후대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고,

화원을 선발할 때도 시험과목 중에서 묵죽에 가장 높은 가산점을 줄 정도로

대나무 그림은 보편적이고 인기가 있었다.  

국문학자 조윤제는 ‘은근과 끈기’라는 수필에서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자연의 미처럼 은근하고 끈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은근함은 여운이 있어 내내 향기롭다.”고 했다.
군자의 풍모와 서권기 | 이정의 풍죽도 | 간송미술관


   <풍죽도>에서는 바람을 맞이하는 쪽의 대나무 잎은 사필경아식(네 잎을 까마귀가 놀라 날개를 펴고 달아나는 모양으로 그리는 방식), 그 반대쪽 대나무 잎은 첩분자식(한자의 分자를 여러 개 겹친 모양으로 그리는 방식)과 삼필개자식(*를 풀어 쓴 방식)의 형식을 취하였다. 이처럼 대나무 잎을 그릴 때 한자의 필획을 차용하는 것은 동양화 특유의 서화일체 사상과 관계가 깊다. 서예가로 유명한 조맹부는 서화일체를 강조하면서 "바위는 비백법으로 나무는 전서체로, 대나무를 그리는 데는 반드시 팔분법, 즉 예서의 일체를 통달해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것을 잘 이해한다면 서화는 원래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신사임당(1504-1551) <초충도>



순수한 자연애, 소박한 아름다움 | 사임당 신씨의 초충도 | 국립중앙박물관


제1폭 수박과 들쥐                /    제2폭 가지와 방아개비
제3폭 오이와 개구리             /    제4폭 양귀비와 도마뱀
제5폭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    제6폭 원추리와 개구리
제7폭 어숭이와 개구리          /    제8폭 산차조기와 사마귀

 

 

[ 조충도 – 어숭이와 개구리 (16세기초) ]
대부분 섬세하고 선명한 필선으로 묘사하여 여성 특유의 청초하고 산뜻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죠.

어숭이꽃을 비롯하여 도라지, 나비, 벌, 잠자리, 개구리, 메뚜기 등 다양한 곤충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나비와 잠자리는 어숭이꽃과 도라지꽃 주위를 맴돌고 있고, 개구리는 땅에 기는 메뚜기보다 허공을 나는 나비에 관심을 보이고 있네요.




[ 조충도 – 가지와 방아깨비 (16세기초) ]
한가운데에 위치한, 보기 좋게 익은 듯한 가지의 빛깔이 참으로 독특합니다.

강한 가지 색을 중심으로 초록색 잎사귀와 붉은 나비, 그리고 아직 익지 않은 하얀 가지의 배치과 그림을 활기차 보이게 하죠.

가지 줄기 아래에 있는 방아깨비까지, 모두 함께 어울어진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 조충도 – 원추리와 개구리 (16세기초) ]
원추리는 산과 들에 군락을 이루어 피고 있는 야생화입니다. 또한 시름을 잊게 해준다는 중국의 고사에도 등장한답니다.

사임당은 화폭 한 가운데에 섬세하게 꽃과 줄기를 그려내고, 그 아래에 개구리를 그려내었고,

꽃의 줄기에 매미가 배를 들어낸 채 달라 붙어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구성이죠?




[ 조충도 – 양귀비와 도마뱀 (16세기초) ]
양귀비, 패랭이꽃, 달개비, 도마뱀, 갑충 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꽃들에 비해 매우 작은 도마뱀이 고개를 돌려 갑충의 거동을 살피는 모습이 재미있네요.

오히려 이 그림에서는 한 가운데 양귀비가 왕인 듯 군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양쪽에 있는 나비들은 그 양귀비를 보필하고 있구요.




[ 조충도 – 수박과 들쥐 (16세기초) ]
이 그림도 수박, 들쥐, 패랭이꽃, 나비, 나방 등 여러 식물과 곤충들이 등장하고 있네요.

특히 들쥐 두 마리가 수박을 파먹어 그 아래 부분이 드러난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쥐와 수박의 크기 비례는 잘 맞지 않는 듯 하지만, 그 때문에 작은 들쥐의 행동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아요.

한가운데서 여유롭게 날고 있는 나비의 화려한 날개가 참 아름답죠?




[ 조충도 – 오이와 개구리 (16세기 초) ]
개구리, 땅강아지, 벌, 오이, 강아지풀 등이 그려져 있네요.

한 가운데 있는 오이의 투명한 빛깔과 표면에 대한 섬세한 표현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개구리는 땅강아지쪽으로 천천히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이 아무래도 잡아먹으려는 듯 하네요.

그림 속에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곤충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 조충도 –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16세기 초) ]
화면의 중앙에 강렬한 붉은 색의 맨드라미가 그림의 주인공인 양 위풍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오른쪽 공중에 나비 세 마리와 오른쪽 아래의 바닥에 세 마리의 쇠똥벌레가 자리를 잡고 있네요.

또한 왼 쪽의 들꽃 네 송이도 그림의 균형을 잘 맞추어 주고 있습니다.




초충도 8폭, 신사임당

제8폭 산차조기와 사마귀







[초상화]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얼굴에 비친 선비 정신 | 윤두서의 자화상 | 해남의 윤씨 종가


   초상화에서는 정신을 묘사하는 것이 얼굴을 묘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얼굴을 가지고 정신을 묘사한다는 말이 성립된다. 한 인물을 놓고 볼때 눈에 보이는 것은 외형이다. 이 외형에 내포하고 있는 신기神氣를 발견하여 그것을 그림으로써 전하는 것을 전신사조傳神寫照라 한다. <자화상>은 전신사조의 묘처를 터득한 초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_ 국보 제240호

 




연담(蓮潭) 김명국의 <달마상>
무애와 무법의 경지 | 김명국의 달마상 | 국립중앙박물관


   <달마상>은 상반신을 짙은 먹색의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는 필선을 사용하여 그렸다. 부리부리한 눈, 텁수룩한 턱수염은 선승 달마의 호탕무애한 성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극도로 절제된 묵선을 단숨에 그어 내린 듯한 힘찬 운필로 처리된 두건과 옷은 禪적인 일취를 짙게 풍긴다. 달마는 중국 선종의 시조인 보리달마로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일찍이 출가하여 반야다라에게 불법을 배워 대승선을 제창하고 스승의 지시에 따라 중국에 가서 선법을 펴고자 노력했던 선승으로 알려져 있다. __ (달마절로도강= 양나라 무제에게 쫒기던 달마가 강변에 늘어선 갈대 한 가지를 꺽어 강물에 띄우고 몸을 훌쩍 날려 갈대를 타고 유유히 강을 건너가는 장면을 표현함)

 

 

 


29. 조속 〈조작도〉

천지 조화와 자연의 함축 | 조속의 조작도 | 국립중앙박물관


   동양화에서는 화면상의 영역이나 경물 그 자체에 국한하지 않고 오히려 화면 밖의 보이지 않는 넓은 세계를 중요시 한다. <조작도>에서 뿌리 없는 나뭇가지가 화면 밖에서 들어와 잠시 모습을 나타냈다가 다시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표현은 무한한 상상을 가능케 한다. 나무 뿌리가 나타나 있지 않고 원 둥치가 화면에 생략되어 있다 하더라도 관조 속에서 그 생략을 보충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생략은 결코 화면의 결핍이 아니라 그러한 존재 형식이 시계 밖의 전체 자연을 화면에 편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화면의 깊이와 상상의 폭을 넓혀 그림의 격을 한층 높여 주는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작도> 화면에 나타나는 나무와 새는 자연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은 화면 밖의 광대한 대자연을 함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의 향기를 담아 : 부작란도 - 김정희
김정희의 부작란도
문학과 회화의 갈림길 | | 개인소장


   우리는 화제를 통해 추사가 크지 않은 난 그림 한 장을 통해 <불이>나 <유마의 침묵>과 같은 경지를 말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감상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안다는 것과 직접 느낀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시화일체의 기본 정신은 시와 그림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거나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받쳐 주고 채워 주며 서로를 분명히 해주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작란도>는 화제가 강조하는 내용에 비해 난 그림이 감상자에게 직접으로 호소하는 힘이 약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점을 떠나서 보면 <부작란도>는 화면 전체에 서권기와 문자향이 충만되어 있고, 김정희의 선비다운 교양과 인품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문인화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태초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괴석과 절제미를 담은 허련의 >괴석도<




소치 허련 필 괴석도(小痴許鍊筆怪石圖)
노경의 미 | 허련의 괴석도 | 호암미술관


   "그림을 공부함에 있어서 제일 먼저 암석을 묘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붓을 다루는 방법은 암석보다 더 어려운 게 없고, 또 암석처럼 형태가 완비된 것이 없으니, 암석을 묘사하는 솜씨가 익숙해지면 다른 것은 모두 이에 따라 만족하게 그릴 수 있다." 암석은 모든 형체 중에서 가장 정제된 것이고 천지의 골간이 되는 것이므로 암석을 묘사하는 방법에 정진하면 다른 모든 형체는 이를 근본으로 해서 충분히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렇듯 제일 먼저 암석을 대상으로 연습하라고 가르쳤다.

 

 




맹견도

맹견도

작자 미상. 조선 후기. 98.5㎝×44.2㎝. 종이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10년대 서울 북촌의 어느 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맹견을 소재로 전통적인 재료에 사실성을 높여 주는 명암법과 투시도법은 조선 후기에 전래된 서양화법의 특징 요소다.


서양화법으로 그린 의문의 개 그림 | 맹견도 | 국립중앙박물관


   <맹견도>는 영.정조 시대에 전래된 서양 화법을 배운 조선의 화가가 그린 그림일 가능성도 있고 한편으로는 서양화법을 배운 중국의 어느 화가가 그린 것이 어떤 경로에 의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한가지라도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욕망과 이상, 민화



기쁨과 상서의 예고 - 호작도 까치가 앉아 있는 소나무 아래에 커다란 호랑이를 배치하는 호작도는

민화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유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 나라 고래(古來)의 민속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호랑이는 산신령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나쁜 귀신을 막아 주고 착한 이를 도와주는 영물(靈物)로 여겨져,

정초(正初)에 붙이는 세화(歲畵)의 주요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까치 역시 길조(吉鳥)에 해당하며 일 년 내내 좋은 일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호작도에는 새해의 기쁨과 복된 미래를 기대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기쁨과 상서의 예고 | 호작도

 



 
▲ <괴석모란도 4폭병풍>, 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 <괴석모란도 (부분)8풍병풍>, 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부귀와 장수에의 기원 | 모란도

 

 




그림 9. 황룡 장식. 경복궁 근정전 천장 중앙
경복궁 근정전 천정 중앙 황룡장식

    
그림 10. 황룡 장식. 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 황룡장식


    
그림 6. 서울 숭례문 문로 천장의 용 그림
서울 숭례문 문로 천장의 용그림

    
그림 7. 서울 흥인지문 문로 천장의 용 그림
서울 흥인지문 문로 천장의 용그림


그림 11. 운룡도. 경복궁 사정전 내벽
운룡도 경복궁 사정전 내벽

     
그림 12. 경복궁 건춘문. 문로 천장의 용 그림
황룡 장식. 덕수궁 중화전

 



천변만화의 기운 | 운룡도

 ◈ 작자미상 ◈ 지본채색. 124×68.5cm ◈ 개인소장

 




 ▲ 십장생도(김혜경 作). 해, 구름, 소나무, 바위, 학, 거북, 물, 대나무, 사슴, 불로초 등 10가지 동식물을 그린 민화. 상상 속 선계로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있다.


불로장생과 선계에의 염원 | 십장생도

 

 



해반도도(海蟠桃圖) / 국립중앙박물관

 


오봉산일월도(五峰山日月圖)
나라 융성과 왕권창달 | 오봉산일월도

 

 

 



송학도2
현실적 욕망과 이성 | 송학도

 

 

 



  

  • 화가 : 미상
  • 부제 : 여유로운 삶과 다산에의 염원
    여유로운 삶과 다산에의 염원 | 연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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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도
    산신 신앙과 단군 신화의 자취 | 산신도

     

     


    영세가에서 말하는 요지연도와 서왕모
    신선계에의 동경 | 요지연도




     

     요지군선도

    요지군선도




    윤리문자도
    인과응보의 적선입공 | 윤리문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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