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29>파리 노트르담성당의 무량보주

2016. 1. 24. 01:28美學 이야기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29>파리 노트르담성당의 무량보주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 곳곳의 국화·연꽃 조형 동서양 보편적 상징의 표현


입력 : 2015-08-27 18:00 | 수정 : 2015-09-16 16:03





     서양 미술에는 로제트(rosette)라는 국화같이 생긴 조형이 있다. 문양집에는 ‘장미’항(項)에 로제타 조형이 들어 있다. 실제로 로제트라는 말은 장미(rose)의 축소형이지만 무늬에만 쓴다. 그런데 장미와 로제트는 조형이 전혀 다른데 왜 이런 오류로 혼란을 일으킬까. 








             

   로제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 장미꽃 모양의 다이아몬드 2. 땅 위에 붙어 방사상으로 퍼져 나는 잎. 또는 잎이 그러한 모양으로 나는 식물 3.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 등의 뜻이 있지만 장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세계 학자들이 로제트라고 부르는 조형을 살펴보면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일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화나 연꽃 모양에 가깝다. 그런데 꽃의 모양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국화 모양이고 연꽃 모양이다. 그런데 왜 이런 조형이 세계 곳곳에 보편적으로 있을까. 그렇다면 로제트의 순수 조형은 어느 특수한 식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보편적인 상징을 띠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로제트라는 조형은 고대 아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인도, 한국 등에 널리 퍼져 있다. 그 가운데 고딕 성당의 거대한 투명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로제트 창’이라 부르지 않고 ‘장미 창’이라 잘못 부르고 있다. 즉 장미와 로제트는 전혀 다른데 이처럼 큰 오류는 어찌 된 것일까. 동양에 이르면 같은 조형을 보고 ‘국화’라고 부른다. 그 조형이 만일 보편적인 상징을 띤다면 특정한 장미가 아니듯 특정한 국화가 아닐 것이다. 



●고대 아시리아, 이집트, 그리스에 널리 퍼진 ‘로제트’ 조형 

   어느 날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 무늬’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채색 분석을 하다가 이렇게도 시도할 수 있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용기와 결단성이 없으면 어렵다. 위아래 조형은 다르나 같은 개념이다①. 즉 로제트나 국화 모양은 중앙에 보주가 있고 주변에 보주가 둘려 있는 무량보주가 된다. 그런데 동양에서와 마찬가지로 BC 700~600년 그리스 항아리 그려진 신화 배경에 중앙에 보주가 있고 주변에 보주가 둘려진 무량보주들을 보고 놀랐다②. 조선 불화의 검은 하늘에 있는 무량보주와 똑같았기 때문이다③. 즉 로제트의 채색 분석에서 중앙의 보주와 주변의 보주들만 남기면 무량보주가 되는데 그저 정적인 상태가 아니고 주변으로 무한히 확산하는 역동적인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 된다. 



●채색 분석에서 중앙·주변 보주만 남기면 ‘무량한 확산’

   우리 교육 과정은 지식의 수집에 익숙해 인식의 문제는 등한시하는 것 같다. 인식은 끝없는 체험의 과정이다. 이 연재는 학교 교육 과정에 배우는 것처럼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조형의 인식 과정을 쓰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간혹 중대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감성적 표현을 아니 할 수 없다. 특히 조형예술 분야는 요즘 에피소드 중심의 답사기가 유행하면서 인식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해 가는 것 같다. 위대한 조형예술 작품을 대하면 놀라기도 하고 감동을 느낀다. 인간은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감성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지만, 상대 개념인 이성과 균형과 조화를 지키지 않으면 미술사학은 연구할 수 없다. 감성이 결핍돼 있는 사람은 작품 앞에서 아무 느낌이 없어서 감성적 표현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놀라거나 감동을 받지 않으니 작품의 진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성과 이성의 분별이 어디 있으랴.

   만물생성의 근원인 ‘무량보주’ 라는 용어는 필자가 만들었으나 요즈음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고도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새로이 느낀다. 처음에 이른바 로제트의 조형언어를 채색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직감이지만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긴 잎은 잎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긴 잎 모양의 끝 부분 안에는 완벽한 원이 내재돼 있다는 확신이 들어 원을 그려 채색 분석해 보니 과연 완벽한 원이며 보주였다. 그리고 보니 중앙의 보주에서 많은 보주가 사방팔방으로 확산하는 조형이 아닌가.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해독해도 될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경이를 느꼈다고 해도 증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분명히 증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 있었다.



●크노소스 궁전 천장에는 백제 동하총과 똑같은 연꽃

   크레타의 수도 라클리온에서 5㎞ 남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크노소스 궁전은 BC 1700년 건축됐으며, BC 1400년까지 이용됐다. 그 스타코 천장에는 놀랍게도 백제의 수도 웅진(공주) 능산리 왕릉 군 가운데 하나인 동하총(東下塚) 천장과 똑같이 연꽃같이 보이는 무량보주가 영기문과 하나가 돼 소용돌이치고 있다④, ⑤. 그리스 것은 양식화됐고, 백제 것은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되 영기문은 형태는 다르나 모두 제1영기싹의 변형일 뿐이다. 크노소스 궁전이나 백제의 무덤이 모두 영기문에서 무량한 보주가 확산해 소우주인 궁전에 대생명력이 가득하고, 역시 소우주인 백제 왕릉 안에서 우주의 대생명력이 보주로 형상화돼 가득 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 놀랍다.

   고구려 무덤벽화 천장에는 대부분 큰 연꽃이 그려져 있다. 왜 천장에 연꽃이 그려져 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으며 아무도 의문을 제시한 사람도 없었다. 일본 학자들은 천장에 그려져 있으니 하늘에 있는 연화, 즉 천연화(天蓮花)라고 불렀고 아무 설명도 하지 못했으며 우리도 그 용어를 따랐다. 그러나 그 조형들을 수없이 그려 보고 채색 분석하면서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고 해독하고 나니 이 소우주인 무덤 안에 대우주의 대생명력을 보주가 가득하도록 천장에 조형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연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기와를 연구한 필자는 의문점이 많았다. 조형상의 연꽃잎에서는 한 개 혹은 두 개의 타원체 혹은 구체(球體) 모양이 생겨나고 있는데, 일본학계에서는 돌기가 하나 있으면 단판(單瓣·하나의 꽃잎)이라 부르고⑥, 두 개가 있으면 복판(複辦·많은 연꽃잎)이라 부른다⑦. 그런데 그 얇은 연잎에 그런 팽만감 있는 돌기가 따로 한 개 혹은 두 개가 있을 리 없으며, 그대로 쓸 것이면 복판도 쌍판(雙瓣)이라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돌기는 하나이거나 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기와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 한국의 기와 전공자는 일본의 엄청난 연구 성과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와의 조형과 상징의 본질이 새로이 밝혀진 지금 수백 년 연구 성과는 물거품이 돼 버리고 만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와당 가운데 통일신라 월지 출토 수막새 조각은 연잎이 아예 없고 중앙에 보주가 있으며, 주변이 보주들로만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중국 북제와당을 보고는 더욱 그런 조형이 완벽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은 불교미술 연구의 대전환점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이런 기와들로 단판이나 복판이라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됐다. 더 나아가 넓은 잎 전체가 풍만해지면서 보주화하는 조형도 눈에 새로이 인식하게 됐다. 연꽃의 씨앗들만 보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뜻밖에 연잎들도 모두 보주화해 가는 과정을 찾아내면서 큰 놀라움에 흥분했다. 이것은 세계미술사학 연구사에서 중대한 발견이기 때문이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도 같은 조형

   중국 수나라 석불연화대좌를 보면 넓은 연잎에서 각각 두 개의 보주가 생겨나는 듯하다. 이것을 복판이라 했으니 그 말 자체가 틀리다. 필자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공부하면서 높이 5m에 이르는 드높은 석등을 매일 대하면서도 하대의 연잎에서 큰 반구형 보주가 생겨나는 것보지 못했다. 그것이 보주로 보인 것은 보주가 무엇인지 밝히고 난 다음이었다. 

지난봄 건축학회 발표차 프랑스에 갔을 때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경악했다. 1190년 완성된 초기 고딕 양식의 웅장한 대성당 천장 바로 밑 부분에 화려하고 큰 영기창의 조형은 거대한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었으며, 보주마다에서 성스런 조형들이 화생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⑧. 그 조형을 단순화해 채색 분석하여 보니 와당에서 일어나는 보주의 무량한 확산과 똑같지 않은가⑨. 그 성당의 여러 장미창(Rose Window·실은 ‘보주창’이라 불러야 한다)은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보주의 무량한 확산을 보여 주는 조형이었다.



●그리스 문명 이전의 미케네 문명 발굴품, 한국 와당과 유사

   그러면 서양에서는 언제부터 무량보주 혹은 보주의 무량한 확산의 조형이 만들어졌는가. 지난해 여름 아테네 국립박물관에서 그리스 문명 이전의 미케네 문명 발굴품을 보면서 완벽한 금제 무량보주 조형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런 금제 조형이 만들어진 곳은 그리스 남부 아르골리스의 선사시대 도시 티린스다. 이 문명은 BC 1400~1200년 절정을 이루었는데 출토품에서 눈을 의심할 만큼 우리나라 와당의 무량보주와 똑같은 조형을 보았다10.  

연꽃의 꽃잎이 씨앗과 더불어 보주화돼 갈 뿐만 아니라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는 개념을 얻어 가는 과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동서양의 작품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세계 조형예술의 많은 부분이 풀리는 감동적인 시간들이었다. 대우주에 가득 찬 보주를 ‘보주에서 무량하게 확산하는 조형’으로 표현한 것은 동서양이 같았으나, 수천 년 동안 이 모든 무지와 오류들이 축적돼 온 것은 지금까지 보주의 개념을 알아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에서 알아낸 보주이기에 용의 본질을 모르면 세계 조형예술은 풀리지 않는다. 서양에는 동양에서와 같은 용은 그리 많지 않으나 용성(龍性)을 지닌 조형들은 많기 때문에 ‘세계의 조형예술, 용으로 읽다’ 라는 연재의 표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서양에는 서양인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용성을 지닌 조형들이 너무나 많아서 필자가 하나하나 소개해 나가는 동안 여러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놀라움이란 철학의 시작이며, 인식의 극치에서 큰 놀라움을 체험한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서울신문









서울신문- 세계의 조형예술, 용으로 (36)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2015.08.29 16:47



(29) 무량보주의 발견과정



  서양미술에는 ‘로제트’라는 국화같이 생긴 조형이 있다. 그런데 문양집에서는 장미의 항(項)에 로제타의 조형이 들어 있다. 실제로 rosette라는 말은 rose(장미)의 축소형이지만 무늬에만 쓴다. 그런데 장미와 로제트는 조형이 전혀 다른데 왜 이런 오류를 범하며 혼란을 일으킬까. 로제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①장미꽃 모양의 다이아몬드 ②[식물] 땅 위에 붙어 방사상으로 퍼져 나는 잎. 또는 잎이 그러한 모양으로 나는 식물. ③[건축]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 등의 뜻이 있지만 장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세계의 학자들이 로제트라고 부르는 조형들을 살펴보면,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을 일컫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국화모양이나 연꽃모양에 더 가깝다. 그런데 꽃들의 모양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국화 모양이고 연꽃 모양이다. 그런데 왜 이런 조형들이 세계 곳곳에 보편적으로 있을까? 그렇다면 보편적인 로제트의 순수조형은 어느 특수한 식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보편적인 상징을 띠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 1. 기원 전 고대 아시리아,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등 공통된 무량보주 조형들. 

아래 무늬는 그리스 것.

 부주의 표현원리를 알면 다양하게 분석을 시도할 수 있다..



   이른 바, 로제트라는 조형은 고대 아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인도, 한국 등, 널리 퍼져 있다. 그 가운데 고딕 성당의 거대한 투명한 원형 스테인 창을 그들의 용법을 따라서 ‘로제트 창’이라 부르지 않고 ‘장미창’이라 잘못 부르고 있다. 즉 장미와 로제트는 전혀 다른데 이처럼 큰 오류는 어찌된 것일까. 동양에 이르면 같은 조형을 보고 ‘국화’라고 부른다. 그 조형이 만일 보편적인 상징을 띤다면, 특정한 장미가 아니듯 특정한 국화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어느 날,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무늬’를 골몰히 뚫어지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침내 채색분석을 하다가 이렇게도 시도할 수 있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용기와 결단성이 없으면 어렵다. 위아래 조형은 다르나 같은 개념이다.(도 1) 즉 로제트나 국화 모양은 중앙에 보주가 있고 주변에 보주가 둘려 있는 ‘무량보주’가 된다. 그런데 동양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원 전 700년 ~ 600년경의 그리스의 항아리에 그린 신화 배경에 중앙에 보주가 있고 주변에 보주가 둘려진 무량보주들을 보고 놀랐다.(도 2, 도 3) 왜냐하면 조선 불화의 검은 하늘에 있는 무량보주와 똑같았기 때문이다.(도 3) 즉 로제트의 채색분석에서 중앙의 보주와 주변의 보주들만 남기면 필자가 용어로 만든 <무량보주>가 되는데 그저 정적(靜的)인 상태가 아니고 주변으로 무한히 확산하는 역동적인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 된다.



도 2-1. 그리스 도기, 아테네 출토, BC. 600년 경



도 2-2. 그리스 도기, BC. 700년 경






도 3. 지장시왕도, 조선시대, 불미술박물관 소장



도 3. 확대



  우리는 교육과정에서 지식의 수집에 익숙해 있어서 인식의 문제는 등한시하는 것 같다. 인식은 끝없는 체험의 과정이다. 이 연재는 학교 교육 과정에 배우는 것처럼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조형의 인식과정을 쓰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간혹 중대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감성적 표현을 아니 할 수 없으니 독자들께 양해 바란다. 특히 조형예술은 요즘 에피소드 중심의 답사기의 유행으로 오히려 인식 면에서는 퇴보해 가는 것 같다. 위대한 조형예술 작품을 대하면 놀라기도 하고 감동을 느낀다. 인간은 감성이라는, 삶을 풍부히 만드는 것을 지니고 있으나 상대개념인 이성과 균형과 조화를 지키지 않으면 미술사학은 연구할 수 없다. 감성이 결핍되어 있는 사람은 작품 앞에서 아무 느낌이 없어서 감성적 표현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놀라거나 감동을 받지 않으니 작품의 진위를 구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성과 이성의 분별이 어디 있으랴.


   만물생성의 근원인 <무량보주>라는 용어를 필자가 만들었으나, 요즈음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고도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새로이 느낀다. 처음에 이른 바 로제트의 조형언어를 채색분석하기 시작하면서 직감이지만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긴 잎은 잎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긴 잎 모양의 끝부분 안에는 완벽한 원이 내재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어 원을 그려서 채색분석하여 보니 과연 완벽한 원(圓)이며 보주였다. 그리고 보니 중앙의 보주에서 많은 보주가 사방팔방으로 확산하는 조형이 아닌가.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해독해도 될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경이를 느끼면서도 증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분명히 증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있었다. 


도 4-1. 크노소스 궁전의 또 다른 스타코 천정. 

어딘지는 모르나 천정무늬에는 다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큰 무량보주를 배치. 

기원 전 1500년




도 4-2. 크노소스 궁전 천정 영기문 채색분석.


 크레타의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5km 남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크노소스 궁전은 기원전 1700년에 건축되었으며, 기원전 1400년까지 이용되었다. 그 스타코 천정에는 놀랍게도 백제의 수도 웅진(공주) 능산리 왕릉 군 가운데 하나인 동하총(東下塚) 천정에 똑같은 연꽃같이 보이는 무량보주가 영기문과 하나가 되어 소용돌이치고 있다.(도 4-1, 도 4-2, 도 5-1, 도 5-2.) 그리스 것은 양식화되었고, 백제 것은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되 영기문은 형태는 다르나 모두 제1영기싹의 변형들일 뿐이다. 크노소스 궁전이나 백제의 무덤의 경우 모두 영기문에서 무량한 보주가 확산하여 소우주인 궁전에 대생명력이 가득하고, 역시 소우주인 백제 왕릉 안에서 우주의 대생명력이 보주로 형상화되어 가득 차고 있는 공통점이 있어 놀랍다.


도 5-1. 부여 능산리 東下塚 1호분  천정 벽화.

도 5-2. 부분 채색분석




  고구려 무덤벽화 천정에는 대부분 큰 연꽃이 그려져 있다. 파악하기 쉬운 채색분석한 사진만 올린다(도 6, 도 7.) 처음부터 왜 천정에 연꽃이 그려져 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으며 아무도 의문을 제시한 사람도 없었다. 일본 학자들은 천정에 그려져 있으니 하늘에 있는 연화 즉, 천연화(天蓮花)라고 불렀고 아무 설명도 하지 못했으며 한국도 그 용어를 따랐다. 그러나 그 조형들을 수없이 그려보고 채색분석하면서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고 해독하고 나니, 이 소우주인 무덤 안에 대우주의 대생명력을 보주가 가득하도록 천정에 조형화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연꽃이 아니었다!


도 6. 삼실총 천정 벽화



도 7. 안악 2호분 보주 확산




  오래 동안 기와를 연구하여 온 필자는 의문점이 많았다. 조형 상의 연꽃잎에는 한 개 혹은 두 개의 타원체(橢圓體) 혹은 구체(球體)의 모양이 잎에서 생겨나고 있는데 일본학계에서는 돌기가 하나 있으면 단판(單瓣:하나의 꽃잎)이라 부르고(도 8-1), 두 개가 있으면 복판(複辦: 많은 연꽃잎)이라 부른다.(도 8-2) 그런데 그 얇은 연잎에 그런 팽만감 있는 돌기가 따로 한 개 혹은 두 개가 있을 리 없으며, 그대로 쓸 것이면 복판도 쌍판(雙瓣)이라 불러야 한다. 왜냐 하면 그런 돌기는 하나이거나 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기와 연구가 가장 활발하고 한국의 기와 전공자는 일본의 엄청난 연구 성과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와의 조형과 상징의 본질이 새로이 밝혀진 지금 수 백 년 연구 성과는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와당 가운데 통일신라 월지 출토 수막새 조각은 연잎이 아예 없고 중앙에 보주가 있고 주변에 보주들로만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랐고(도 8-3), 중국 북제의 와당을 보고는 더욱 그런 조형이 완벽하여 눈을 믿을 수 없었다.(도 8-4) 이것은 불교미술 연구의 대 전환점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상의 기와들은 단판이나 복판이라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더 나아가 넓은 잎 전체가 풍만해 지면서 보주화(寶珠化)하는 조형도 눈에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다. 연꽃의 씨앗들만 보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뜻밖에 연잎들도 모두 보주화여 가는 과정을 찾아내어 큰 놀라움에 흥분했다. 이것은 세계미술사학 연구사에서 중대한 발견이기 때문이다.



도 8-1. 백제




도 8-2 월지 출토






도 8-3. 월지 출토






도 8-4. 중국 북제




도 8-4-1. 채색분석




  중국 수(隋)나라 석불의 연화대좌를 보면 마치 넓은 연잎에서 각각 두 개의 보주가 생겨나는 듯하다. 이것을 복판이라 했으니 그 말 자체가 틀리다.(도 9-1) 필자는 경주박물관에서 공부하면서 높이 5미터에 이르는 드높은 석등을 매일 보면서도 하대의 연잎에서 큰 반구형 보주가 생겨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이 보주라고 보인 것은 보주가 무엇인지 밝히고 난 다음이었다.(도 9-2) 



도 9-1. 중국 수나라 불상 대좌




도 9-2. 석등 대좌, 통일신라시대



  지난 봄 건축학회 발표 차 프랑스에 갔을 때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 글라스를 보고 경악했다. 1190년에 완성된 초기 고딕 양식의 웅장한 대성당의 천정 바로 밑 부분에 화려하고 큰 영기창(靈氣窓)의 조형이 거대한 보주의 무량한 확산으로 보이며 보주마다에서 성스런 조형들이 화생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도 10-1.) 그 조형을 단순화시켜 채색분석하여 보니 와당에서 일어나는 보주의 무량한 확산과 똑같지 않은가.(도 10-2) 그 성당의 여러 장미창(薔微窓: Rose Window: 실은 ‘보주창’이라 불러야 한다)은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보주의 무량한 확산을 보여주는 조형이었다. 



도 10-1. 노트르담 대성당의 보주의 무량확산 보주창(필자 촬영)




도 10-2. 노트르담 사원 장미창 단순




  그러면 서양에서는 언제부터 무량보주 혹은 보주의 무량한 확산의 조형이 만들어 졌는가? 지난 해 여름 아테네 국립박물관에서 그리스 문명 이전의 미케네 문명 발굴품들을 보면서 완벽한 금제 무량보주의 조형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런 금제 조형이 만들어진 곳은 그리스 남부 미케네문명의 중심은 아르골리스의 선사시대 도시 티린스(Tiryns)다. 기원전 1400년~1200년에 문명의 절정을 이루는데 그 출토품에서 눈을 의심할 만큼 우리나라의 와당의 무량보주와 똑같은 조형을 보았다.(도 11.) 



도 11. 미키네 금제 무량보주



  연꽃이 씨앗과 더불어 꽃잎도 보주화되어 갈 뿐만 아니라,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는 개념을 얻어가는 과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동서양의 작품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세계 조형예술의 많은 부분이 풀려지는 감동적인 시간들이었다. 대우주에 가득 찬 보주를 <보주에서 무량하게 확산하는 조형>으로 표현한 것은 동서양이 같았으나, 수 천 년 동안 이 모든 무지와 오류들이 축적되어온 것은 지금까지 보주의 개념을 알아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에서 알아낸 보주이기에 용의 본질을 모르면 세계 조형예술은 풀리지 못한다. 서양에는 동양에서와 같은 용은 그리 많지 않으나 ‘용성(龍性)을 지닌 조형들’이 많기 때문에 <세계의 조형예술, 용으로 읽다>라는 연재의 표제(標題)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서양에는 서양인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용성을 지닌 조형들이 너무나 많아서 필자가 하나하나 소개해 나가는 동안 여러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놀라움은 철학의 시작이며, 인식의 극치에 이르러 큰 놀라움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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