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상징의 숲](2회) 호랑이는 산신(山神)으로 나라의 수호신(中) / 월간미술

2016. 1. 26. 01:13美學 이야기




민화, 상징의 숲 - 월간미술 연재 (9)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2014.05.13 14:54
http://blog.daum.net/ilhyangacademy/607               




(2회)  호랑이는 산신(山神)으로 나라의 수호신(中)






  호랑이는 우주의 기운이 응집된 사신(四神) 가운데 영화된 존재들 가운데 백호(白虎)임을 조형분석을 통해서 밝혀보았으나, 이 문제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고 인식의 문제이므로 좀 더 다루어 보려 합니다. 이에 앞서 한국문화에서 호랑이가 차지하는 위상을 회복하여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바보 호랑이’로 까지 폄하된 산신(山神)의 위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앞 회에서 호랑이가 아기 호랑이들을 거느리는 도상을 다루었지만, 그 상징은 설명하지 안했습니다. 그저 어미 호랑이와 아기 호랑이들이 장난치며 노는 정도로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식물모양 영기문(靈氣文)이 끊임없이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듯이, 고대 조형들에서 청룡이나 백호나 봉황 등이 항상 아기들과 함께 있음으로써 생명생성의 과정의 상징을 형이상학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대의 작품들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으나 그 형이상학적 의미를 설명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용은 무한히 용이란 위대한 생명력을 낳습니다.


  전라남도 진주 지방에 많다고 하여 <진주 호랑이>이라고 부르는 도상과 흡사한 민화가 또 있지만 양식은 전혀 다릅니다. 일본 시즈오까 세리자와케이스케(靜岡市立美術館) 미술관 소장품(도 1-1, 1-2, 1-3: 종이바탕, 60x40센티미터)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민화이지만 그 상징적 표현은 가장 뛰어납니다. 즉 우선 눈을 보면 둥근 눈 안의 동공(瞳孔)이 다른 그림과 달리 3중(重)의 동심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량보주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눈으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발산합니다. 여러 글에서 무량보주를 나타낸 용의 눈을 다루어온 것처럼 용의 속성을 지닌 백호의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줄무늬 영기문, 턱 밑의 보주와 파동, 견갑골 부근에 밀집한 보주들과 줄무늬 영기문, 무릎의 제1영기싹 영기문, 꼬리 끝의 무량보주 등 마치 앞 회의 작품들을 보고 흉내 낸 것 같지만, 어미 백호와 아기 백호들이 영기문의 집합체임을 더욱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입니다. 이 그림에는 소나무에 까치가 없습니다. 어느 다른 호랑이 그림들에는 까치가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심지어 다섯 마리, 그리고 한 마리도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까치는 가쁜 소식 전해준다는 원래의 뜻만이 겨우 남아있을 뿐 그리 필요불가결의 요소는 아니고, 호랑이와 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소나무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글씨로 보아 부적(符籍)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도 1-1.일본 시즈오카 민예관 소장







도 1-2. 부분





도 1-3. 부분






   민화를 흔히 그림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린 잘 못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원근법의 무시, 대소(大小)의 극적인 대비, 불합리한 구도 등, 조형의 원리를 무시한 그림입니다.  거기에서 생기는 익살, 대담한 구도, 동심 어린 표현 등 긍정적 평가도 따릅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따라야 합니다. 지난번의 그림은 잘못된 그림이 아니라 원근법을 무시하고 대소 대비도 무시한 대담한 양식의 비현실적 그림으로 새로운 장르를 열어 보이는  <민화양식>이라 부르려합니다. 그 개념은 연재하는 동안 정립될 것입니다. 민화는 현실을 잘못 그린 것도 아니고 현실을 익살스럽게 그린 것도 아닙니다. 민화는 첫 회에 분석한 것처럼 현실을 표현한 것도 아니고 현실을 도피한 것도 아닙니다.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처럼 일체의 표현원리를 무시하고 그린, 현실이 아닌 영화된 세계를 그린 것입니다. 영화된 세계란 이상적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이상세계 표현에는 불교회화에서처럼 일반적 표현원리를 과감히 탈피함으로써 현실세계가 아니란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고구려 무덤벽화나 불교회화나 민화를 통틀어서 다루고 있는 만큼 <민화양식>이라 일단 부르려합니다. 그러므로 민화양식이란 사대부나 화원의 그림과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민화 양식은 매우 풍성한 상징의 숲입니다. 그러나 사대부나 화원의 그림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상징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무덤벽화나 불교회화와 민화는 숭고한 상징의 숲이어서 앞으로 우리는 그 신선하고 아름다운 그러면서 충격적인 상징의 숲을 거닐며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조형미술의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호랑이 가족을 보고 흔히 ‘자손번창’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영화된 조형이므로 ‘생명생성의 과정’을 표현한 숭고한 조형의 세계입니다.


   이 어린이 그림 같은 호랑이 가족은 누가 그렸을까요? 어리숙 하고 호랑이가 전혀 무섭지 않고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자세히 보면 못 그린 그림입니다. 그러나 세부를 살펴보면 앞 서 분석하며 설명한 그림보다 훨씬 더 영화시킨 그림임을 안다면 오히려 경이를 느낄 것입니다. 눈을 이렇게 무량보주로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 호랑이 그림 가운데 유일한 작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그림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영화(靈化)의 방법을 철저히 파악하고 그렸을까요?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어느 전문화가가 그린 것을 보고 흉내 내었을까요? 놀라운 것은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독창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동심(童心)의 세계에서 인간의 유전적으로 잠재하여 있는, 근원적인 진리의 표현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구려 벽화에서 느끼는 경이와 같은 것을 민화들에서도 똑같이 느낍니다. 그러므로 민화를 연구하려면 고구려벽화의 연구가 선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종래의 연구 성과로는 풀리지 않고 내가 해독한 고구려벽화의 조형언어를 익혀야 합니다. 학교의 ‘교육과정’이란, 상상력을 상실하는 과정이고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의 좁은 테두리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이루어진 조형미술의 올바른 연구는 인간의 무의식계를 넓히는 과정이고 영성(靈性)을 되찾는 과정의 작업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근원적 조형정신이 화려하게 부활한 민화의 연구가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호랑이는 산신(山神)입니다. 악마를 물리치는 위대한 신입니다. 석가모니나 예수가 악마를 퇴치하듯 호랑이는 악마를 물리칩니다. 그러나 세속적이 되어 잡귀를 쫓는 현세이익적 벽사의 기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도 다른 호랑이처럼 위아래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입을 크게 벌리며 혓바닥을 보이며 포효(咆哮)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자후(獅子吼)란 말을 쓰고 있는데 실제로 사자가 포효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설법을,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엎드리게 하는 사자의 울음에 비유하여, 그 위엄 있는 설법을 듣고 모든 악마가 굴복하여 귀의한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로 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호랑이의 포효는 모든 악마를 쫓는 사자후입니다. 리움 미술관에는 고(故) 조자용 선생이 가장 아끼던 호랑이가 소장되어 있는데 추상화가 기가 막혀서 피카소 호랑이라고 부르곤 했지요.(도 2-1, 2-2:) 이상의 것들과 모두 같은 양식입니다. 무릎의 면(面)을 된 제1영기싹이 인상적입니다. 거기에서 네 다리가 생깁니다. 머리와 앞가슴에는 둥근 보주가 밀집하여 있습니다. 표범의 둥근 원이 아닙니다. 그 둥근 원을 승화시켜 보주로 삼아 영적인 존재로 되게끔 부여한 것입니다. 또 다른 리움미술관의 호랑이를 다루어 보면 호랑이가 현실적으로도 영물이므로 조형적으로 더욱 영화시켜 사자후하는 모습으로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도 3-1, 3-2, 3-3) 나는 이를 포악대소상(暴惡大笑相)이라 부르려고 합니다. 원래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 觀音菩薩)의 머리 주변 여러 얼굴 가운데 앞에서 보이지 않는 뒤면에 큰 얼굴이 있는데 표정이 포악한 모습이지만 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 웃음을 짓는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자비스러운 관음보살의 참된 모습이라고 생각하여 일찍이 주목하여 왔습니다. 우리가 아는 용의 웃는 듯한 모습도 자세히 보면 포악대소상입니다. 용의 포악대소하는 모양이 호랑이의 입에서 빌린 것임을 호랑이의 실제 모습에서 깨달았으므로 호랑이의 포효도 사자후입니다. 그 포효가 악마를 물리치는 여래의 사자후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산신(山神)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마에는 큰 원이 있는데 빨간색으로 칠했으며 그 큰 보주로부터 줄기 무늬 영기문이 사방으로 발산하는 것으로 보아 보주임에 틀림없습니다. 역시 작은 보주들이 머리에 밀집해 있습니다. 





도 2-1. 리움 미술관







도 2-2.. 채색분석






도 3-1. 리움 미술관






도 3-2. 머리 부분








도 3-3. 채색분석(밑그림 및 채색분석- 강우방



   그리고 포악대소상이 나타내는 분노란 것은 기운이 충만할 때 나타내는 조형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불상이나 최고의 신(神)인 용이나 호랑이가 분노의 모습으로 스스로도 영기가 충만하지만, 우주를 영기로 충만케 하기 때문에 주어진 화면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그런데 호랑이 그림 가운데 모든 것이 그런 것이 아니지만 화면 가득히 채우는 그림이 꽤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특히 불화는 빈틈없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불화의 조형은 일체가 영기문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즉 우주에 충만한 기운을 나타내기 위하여 화면 가득히 영기문으로 채웁니다. 마찬가지로 호랑이라는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그 가운데 개인 소장 한 작품을 보여드립니다.(도 4-1, 4-2: 115x68센티미터) 이 그림은 화면 가득히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데 너무 압축되어 하면 밖으로 튀어나가려 합니다. 얼굴의 분노상도 포악대소상이지요? 우주의 엄청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걸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꼬리 부분이 잘려 있지만 뒤로 돌아 왼쪽 구석까지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도 4-1. 개인 소장








도 4-2. 부분




  일본 구라시키 민예관(倉敷民藝館) 소장 작품은 호랑이의 신격화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매우 훌륭한 그림으로 한국회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민화양식입니다. 놀랍게도 눈이 네 개이고 눈동자는 둥근 보주로 나타냈습니다.(도 5-1, 5-2, 5-3) 눈이 네 개인 것은 중국 한 대(漢代)에 방상씨(方相氏)란 사람이 장례 때 악귀를 쫓았으므로 후에 가면(假面)으로 만들되 눈을 각각 두 개씩 네 개를 뚫었는데 그 까닭은 알 수 없습니다. 입은 가능한 한 크게 벌였는데 긴 혀를 강조하기 위하여 용의 입과 같습니다. 가슴에는 영기문이 있는데 채색분석에서는 붉은 색으로 칠했습니다. 장례식 때 방상씨가 궁궐에서 왕릉까지 가는 길에 제일 앞에 서서 악귀나 잡귀를 쫓기도 하고, 왕릉에 도착해서는 관을 땅에 묻기 전에 먼저 흙을 파놓은 광에 들어가서 창으로 네 귀퉁이를 쳐 광 속 시신이 들어갈 자리의 악귀를 제거하기도 합니다. 그런 벽사의 강력한 조형을 호랑이의 조형에 응용한 것은 기발한 착상입니다. 그림은 기품이 있고 구도가 훌륭합니다. 반차도에 의하면 방상씨는 붉게 칠한 가면을 쓰는데 황금으로 4개의 눈을 만들고 검은 옷과 붉은 치마를 입고 곰 가죽을 걸친 채 창을 잡고 방패를 치켜들고 다닙니다.







도 5-1. 눈이 네 개인 호랑이. 일본 구라시키 민예관






도 5-2. 얼굴 부분.






도 5-3. 채색분석






   그러면 호랑이의 실체를 살펴볼까요? 산악숭배 신앙에서는 우주의 중심이 곧 산입니다. 한국은 산이 많은 자연환경으로 인해 일찍부터 산과 산신을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산에 있으면서 산을 지키고 담당하는 신령(神靈)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물에는 그것을 지배하는 정령이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종의 <山의 精靈>입니다. <숲의 정령>이기도 합니다. 신체(神體)는 호랑이 또는 신선(神仙)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한국에서 산신신앙은 수렵문화 단계에 이미 출현했으며 이때 산신은 산의 일체를 관장하는 ‘자연의 주인’으로 인식했으므로, 신체(神體)인 호랑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산신 할아버지와 호랑이는 둘이 아닙니다. 일본 도쿄 민예관(東京民藝館) 소장 산신도를 보면, 호랑이 몸에서 의인화(擬人化)한 산신이 생겨나고 백호에서 산신이 생겨나는, 산신과 호랑이가 하나인 멋진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호랑이는 불화에서 신선 같은 존재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데 사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 같은 산신이 바로 곧 호랑이, 즉 영화된 백호입니다.(도 6 : 103x71센티미터) 




도 6. 일본 동경 민예관




 고대로부터 우리나라 국가제사의 대상 대부분이 산신이었습니다.『후한서』 「동이전」에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하고 호랑이에게 제사 드리며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고대의 산악숭배 신앙은 집단, 즉 국가·부족·마을 단위 형태의 신앙이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로는 개인과 마을 단위의 신앙으로 변모하게 되어서 호랑이에 신앙이 전 국민적 경배의 대상이 되어 마침내 사찰에서 산신각이 멀리 떨어져 있다가 점점 감히 대웅전 옆에까지 다가갑니다. 마을마다 산신당, 산왕당, 서낭당, 성황당 등을 만들어 산신을 숭배하게 되어 우주의 최고의 신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되었습니다. 최남선은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 로마의 이리처럼 조선에서 신성한 동물의 으뜸은 호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호랑이는 조선 최대의 동물이며 조선인의 생활에 끼친 영향이 크니 그중 신화, 전설, 동화를 통하여 나타난 호랑이 이야기들은 설화세계 최고이며 호랑이 및 호랑이 설화에 대한 민족적 숭앙 또는 기호는 어느 틈에 다른 모든 이야기를 밀어내 버렸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하여 한갓 벽사의 염원으로 축소되어 호랑이가 삼재부적에 나타나서 품격이 현세 이익 적이 되어 버려 맹수로서의 용맹성이 부각되었을 뿐 고차원으로 승화된 백호의 이미지를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만 민화에서 이처럼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다음 회에서는 백호와 청룡과의 관계를 다룰 것입니다.





http://blog.daum.net/ilhyangacademy/607     


프로필 이미지  강우방 교수님의 글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