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상징의 숲] (3) 백호와 청룡, 한국 민족정신의 위대한 혼(魂) / 월간미술

2016. 1. 26. 01:34美學 이야기



       민화, 상징의 숲 - 월간미술 연재 (9)


                  

한점 2014.05.31 18:12
http://blog.daum.net/ilhyangacademy/608               
                   



월간미술 6월호 제 3회

  

백호와 청룡, 한국 민족정신의 위대한 혼(魂)





   바보 호랑이가 만물생성의 근원이라고 말하니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용이 최고의 신(神)이었으며, 고대의 호랑이 그림은 백호로서 용의 모습에 근접하게 하여 만물생성의 근원으로 삼아, 용과 함께 최고의 신으로 경배하였습니다.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박수용 님의 『시베리아의 위대한 혼』(김용사, 2011)과 『征虎記』(야마모토 다다사브로 씀, 大參社, 1918년. 이은옥 번역, 에이도스, 2014년)를 정독하며 깊이 감명을 받았으며 호랑이가 어떤 신령스러운 존재인가 절감했습니다. 호랑이는 평생 좀처럼 만나기 어려우나 항상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공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멸종되어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아직 연해주에 ‘우수리 호랑이’, 혹은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불려 지며 300 마리쯤 남아있지만, 국경이 없었을 때는 장백산맥과 백두대간이 이어져서 ‘조선 호랑이’로도 불리며 자유스럽게 다녔었습니다. 


  새해 첫날에 백호와 청룡을 그려서 세화(歲畵)를 삼은 까닭은 만물생성의 근원인 영화된 호랑이와 청룡을 같은 경배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청룡이라 해도 오행사상에 비롯한 관념적인 색이므로 푸르게 용을 그린 적은 없습니다. 일본에 푸른 용이 있는데 그것은 오행사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백호라 해도 흰 색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백호는 청룡과 마찬가지로 새해 한 해를 영화시키고 정화시키려는 염원이 있었고, 세속적으로 말하면 풍요한 한 해를 비는 마음에서 그리 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단지 잡귀를 막기위한 문배(門排)가 아닙니다. 


   단지 첫 해 한 달 만을 위하여 그렸다면 중국처럼 판화로 찍어서 대문에 붙이고 한 달 후에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호랑이 그림은 ‘민화양식’으로 즉 추상적이고 무늬모양의 조형으로 그리되 상당히 수준 높은 그림으로 그려서 몇 년이고 보관하며 새해에 집을 장엄했을 것이며, 단지 민간에서만 유행한 것이 아니라 사대부의 대문도 장엄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궁중에서도 사용했을 것입니다. 왕이 신하에게 세화를 그려서 하사했다는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민화란 서민에 한 한 것이 아니라 궁중과 사대부들 사이에도 유행하였던 ‘민화양식’의 그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민화양식의 그림과 민중 사이에서만 유행하였던 민화와는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표현방법은 속성이 같으므로 함께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학자들이 정의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그들의 국민성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조형성 때문에 '불가사의한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조형과 상징 모든 것을 읽을 수 없어서 한 말입니다. 한국회화사 전체를 올바로 보지 못하면 민화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회화사의 주류는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로 보아, <고구려 벽화>, <고려와 조선시대의 불교회화>, 그리고 <사대부와 화원 그림>, 더 하여 <민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회화사는 사대부와 화원의 그림>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민화>란 말은 지금으로서는 그대로 씁니다만, 세계에서 이렇게 독창적 조형성을 띤 엄청난 양의 민화를 남긴 나라는 없습니다.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하자"고 주장한 일본학자의 입김에서 이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일본 학자의 말 때문에 우리의 민화 연구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화원들도 그렸고 사대부들도 즐겼습니다. 지금까지의 민화에 대한 설명은 그릇된 내용도 많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 민화가 점점 혼란스럽게 연구되고, 요즈음 대두하는 '민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그 표현 원리와 상징을 모르기 때문에 그릇된 민화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민도가 높아져야 민화의 가치도 높아질 것입니다.


   호랑이 그림을 보면 줄무늬만으로 표현한 것이 있고, 표범을 그린 것이 있는가 하면, 호랑이의 줄무늬와 표범의 둥근 무늬를 함께 혼합하여 그린 호랑이가 있는데, 민화의 호랑이 가운데에는 두 가지 무늬를 함께 표현한 그림이 대부분입니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는 줄무늬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화에 나타나는 호랑이의 세계가 아닙니다. 김홍도는 결코 민화양식으로 그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호랑이는 혼혈일까. 혼혈인 호랑이가 실제로 1917년 전남에서 잡혔습니다. 수호(水虎)라 부르는데 100년에 한 번 나타날 만큼 드믄데 호랑이만큼 크다고 하며, 일반적 표범 무늬와 조금 다른 둥근 점무늬가 온몸에 있어서 표범과 비슷합니다. 줄무늬와 둥근 무늬는 영기문(靈氣文)으로 승화된 것이므로 영적인 백호를 표현할 때 두 가지 영기문을 함께 그리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두 가지 무늬가 섞여서 영기문으로 승화된 백호! 그래서 그런 백호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도 1-1. 돈황 막고굴 제 428호굴 천정 벽화의 백호.




도 1-2. 채색분석









도 1-3. 영기문의 전개(강우방)






   여래를 형상으로 보지 말라고 했듯이 백호와 청룡도 현실의 형상으로 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중국 돈황 막고굴 제 428굴 천정 벽화에서 백호의 몸으로부터 보주와 면(面)으로 된 제3영기싹 영기문이 발과 다리와 꼬리, 그리고 등과 얼굴에서 발산하는 도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도 1-1, 도 1-2, 1-3) 더구나 입에서 제1영기싹 영기문이 나옵니다. 이 도상은 백호가 더 이상 현실의 호랑이가 아니라 신령스러운 용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도 2. 백호, 삼성 리움미술관 소장





도 3. 청룡, 삼성 리움미술관 소장




  삼성 리움미술관 소장 백호와 청룡 한 짝은 그림이 어수룩하여 웃음을 자아내나 백호는 엄연히 줄무늬와 둥근 점 영기문이 함께 있는 신령스러운 존재입니다.(도 2, 도 3) 가나화랑 소장 백호-청룡 한 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역시 백호그림도 청룡그림처럼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백호의 얼굴을 확대하여 보면 눈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올 듯 그렸으며 박력 있는 영기문은 대단합니다. 용도 마찬가지입니다.(도 4, 도 5) 용의 얼굴과 거리를 두고 보주가 있으며 영기문이 위로 발산하고 있습니다. 백호는 아쉽게도 용에 못 미쳐서 보주가 입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몸에서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서 줄무늬 영기문과 함께 보주 영기문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용은 구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기문에서 화생하는 광경입니다. 아, 용과 보주의 본질을 인식해야 하는데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용과 보주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을 차단해 버립니다. 용은 영기문의 집적으로 우주에 충만한 생명력을 용 모양으로 표현한 것이며, 보주 역시 그 대생명력을 압축한 조형입니다. 그 변주는 끝이 없어서 인식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도 4-1. 가나 화랑 소장, 백호, 100x 60센티





도 4-2. 가나 화랑 소장, 백호, 100x 60센티.







도 5-1. 가나화랑 소장. 가나화랑 소장, 100x 60센티









도 5-2. 가나화랑 소장. 가나화랑 소장, 100x 60센티.





  개인 소장 백호와 청룡의 한 짝은 기세가 대단합니다.(도 6, 도 7) 백호는 털이 모두 영기문으로 날카롭게 뻗쳐나가고 있습니다. 용의 등에는 무수한 빨간 둥근 보주들이 연이어 있습니다. 원래 용은 무량한 보주의 집적인데 이렇게 간단히 표현합니다. 실은 비늘도 모두 보주여서 무수한 흰 점들을 표현하여 비늘이 보주임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용을 둘러싼 구름 같은 것은 자세히 보면 모두 영기문입니다. 제1영기싹을 갖가지로 변주하여 그 영기문에서 용이 화생하는 것입니다. 즉 ‘용(龍)의 영기화생(靈氣化生)’입니다. 백호는 주변에 그런 영기문이 없지만 몸 자체에 영기문을 부여하고 몸의 부분 특히 얼굴을 영화시켜 스스로 영기화생합니다.





도 7. 백호, 개인 소장





도 8. 청룡, 개인 소장



   이처럼 용의 등에 보주를 연이어 두는 것은 백호에서도 보입니다. 개인 소장 ‘양쪽에 백호와 용을 두는 병풍형식’에 보이는 백호입니다.(도 9) 백호의 등에 연이은 보주와 몸의 줄무늬 영기문과 복부의 보주 영기문이 대단합니다. 이렇게 용의 등에 보주를 연이어 두는 것은 조선시대 동종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부여 무량사(無量寺) 범종을 1636년 정우스님의 작품으로 용뉴의 용 등줄기에 보주가 연이어 있습니다.(도 10) 그런 용의 조형을 백호가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은 백호를 청룡과 어깨를 견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도 9. 백호. 개인 소장






도 10. 무량사 동종(1636년 작) 정우 스님 작, 높이 111센티미터






   고구려 6~7세시 집안 오회분(五盔墳) 5호묘 벽화 천정을 보면 장관이 펼쳐집니다. 각을 줄이며 좁아져 올라가는 천정 가장 중앙에 백호와 청룡이 역동적으로 얽혀서 서로 어울립니다.(도 11-1, 도 11-2) 바로 우주에 가득 찬 대생명력을 이렇게 백호와 청룡을 어울리게 하여 표현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흔히 ‘도 9’의 용과 함께 이렇게 백호와 청룡이 함께 있으면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 하거나 여의주를 두고 빼앗으려고 서로 다투는 이룡쟁주(二龍爭珠) 그림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해석은 용과 보주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정 주변에 보주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고 있는 것은 백호와 용으로부터 무량하게 나오는 보주를 나타냅니다. 청룡의 본질을 모르면 백호의 본질도 알 수 없고 보주의 본질도 알 수 없습니다. 중심부 밖의 네 면에는 역시 두 용이 얽혀있는 역동적 영기문이 있습니다. 네 귀의 삼각형 안에는 각각 중앙에 동심원의 ‘무량보주’(이것에 관해서는 www.kangwoobang.or.kr의 ‘틀린 용어 바로잡기’를 참조하기 바랍니다.)가 있고 연꽃잎 같은 영기잎[靈氣葉]이 있고 사이에 잎이 나와 제3영기싹을 이루는데 만물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잎의 갈래 사이에서 나오는 잎(만물)에서 갖가지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지 않은가! 큰 잎이 아니고 작은 잎에서 영기문이 발산하는 것은 그 조형이  바로 만물생성의 근원인 제3영기싹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즉 중앙의 백호와 청룡에서 발산하는 무량한 보주, 그리고 용과 용으로부터 발산하는 무량한 보주, 그리고 영기화(靈氣花)의 중심에 있는 무량보주 등에서 보주가 무량하게 나와 우주를 보주로 가득 채우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 11-1. 오회분 5호묘 백호와 청룡




도 11-2. 고구려 집안 오회분 5호묘 천정 벽화









도 11-3. 중앙부분







   이처럼 백호와 청룡은 같은 속성을 지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영적(靈的) 존재입니다. 그런 백호와 청룡을 함께 세화(歲畵)로 삼았다면 우리 민족은 대단한 민족입니다. 그러한 우주관을 새해 첫날부터 나타냈다는 것은 장엄한 새해를 웅변하는 것입니다. 설마 그런 큰 상징이 있겠냐고 힐난하는 분들이 반드시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고차원의 우주관과 인생관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일찍이 화엄경(華嚴經)에 의거하여 통일신라시대의 경주 석굴암 예술의 종교적 배경을 다루었을 때 한 원로 선배는 석굴암에 그런 심오한 사상이 깃들어 있을 리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서민도 항상 고전을 읽으며 마음을 닦았습니다. 그림 솜씨는 동심(童心) 어리어 서투를지 몰라도 정신은 드높고 드높았습니다.  

  고구려 쌍영총(雙楹塚) 무덤의 두 기둥을 감싼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필자도 그리 생각했고 모든 학자들이 용틀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려서 채색분석해보니 뜻 밖에 백호였습니다! 기둥은 항상 용과 관련이 있었지 백호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쌍용총 기둥에 백호를 마치 용 같이 표현한 것은 바로 백호와 청룡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도 12)   







도 12-1. 쌍영총 두 기둥










도 12-2. 쌍영총 기둥의 백호.






도 12-3. 쌍영총 기둥의 백호. 팔각기둥의 그림을 펼친 것.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여래를 경배하듯, 호랑이에 대한 신격화와 경배는 호랑이의 위협에 대한 공포 때문일 것입니다. 호랑이의 늠름한 위용과 용맹함과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있어서 세화로 삼은 것입니다. 실제로 호랑이는 보이지 않으나 항상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마치 여래를 보지 못하지만 항상 우리 곁에 계셨듯이. 중국에서처럼 용이 우리나라의 최고의 신이라면, 백호도 최고의 신이 됩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혼입니다. 호랑이를 강자인 탐관오리를 상징하고 약자인 까치가 서민을 상징하여 까치가 호랑이를 비웃는 것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어디에 그런 근거를 두고 허망한 해석을 하며 바보 호랑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재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호랑이가 백호이며 청룡의 속성인 갖가지 영기문을 어느 시대 보다 더욱 민화에서 강조했다면 어느 조형적 성격을 취하겠습니까. 우리 눈에 영기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차원적인 설명을 해온 것이 아닐까요?






  • 一鄕
  • 2014.06.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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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황막고굴의 백호는 흰 색인데 그것은 백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흰 호랑이와 대응하여 흑갈색 호랑이가 있으므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점을 내가 연재에 미처 쓰지 못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강우방 교수님의 글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