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7) 한재용 - 한남자의 인생을 바꾼 ‘매혹(魅惑)’

2016. 1. 26. 02:30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7) 한재용 - 한남자의 인생을 바꾼 ‘매혹(魅惑)’ 

       

2015/10/09 04:30 등록   (2015/10/09 04:30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매혹(魅惑)되다
매료(魅了)되다

무언가에 매료되어 정신을 홀리게 하다. 매혹, 난데없는 이 홀림은 도깨비 魅자를 쓰고 있다. 한 인간이 무언가에 매혹되면 평생을 허비하기도 하고, 인생을 탕진하기도 한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을 홀리게 하는가?

예술가들에겐 끝없는 이상향, 범인(凡人)들에겐 좋은 차와 넓은 집, 아이들은 과자와 장남감, 미인들은 보석.

우리들은 매일매일을 또는 평생을 무언가에 홀리며 살아간다.





여기 한 남자의 인생을 바꾼 ‘홀림’이 있다.

한재용 화가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노점상에서 헌책을 팔고 있었다. 어느날 무료해서 우연히 펼쳐 본 에드바르드 뭉크’ 화집. 그 속에서 ‘절규’를 보고 그는 순간 아득해졌다고 했다.

어떻게 그림 한장이 한권의 책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그림이 말해주는 한 화가의 人生을 보고는 완전히 매혹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도 미술을 접해보지 못했지만 수십년의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전업조차 망각한 채 그림에 홀려버렸다. 한때는 부산 마린시티에서 고급가구점을 두 군데 경영하기도 했지만,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폐업을 하였다.

요즘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최소한의 생활고는 해결하고 작품활동에만 매진한다고 했다. 언제 술 한잔 하자고 청을 하니, 매주 수요일 오전에 시간이 나니 그때 함께 마시자고 하셨다.














그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것은 삶에 대한 다양성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화려하고 낭만적인 해운대 같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면 활기찬 관광객들 뒤편에는 좋은 시절을 다 보낸 황혼의 노인들이 쓸쓸히 벤치에 앉아있고, 선탠을 하는 연인들과 비키니 여인의 엉덩이를 남자가 만지고 있는 가운데, 땀에 흠뻑 젖은 배달원이 짜장면을 전해주고 있다. 또 BMW를 탄 젊은이의 뒤로 오토바이 배달원이 따라가고 있다.

단순하고 쾌활한 그림들 같지만 삶의 짙은 페이소스가 숨어있는 작품들이다.




괴성을 지르며 즐겁게 바나나 보트를 타고 있는 행류객들과 매일 수십번씩 보트를 몰아야 하는 남자의 일상.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하는 관광객들 틈에서 악에 바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

유유히 노니는 시민들과 장사를 하는 상인들, 엄마 손을 잡고 구경하는 아이들, 이 모든 사람들이 한데 섞여 이 세계는 굴러간다. 작가는 순대속처럼 똘똘 뭉친 다양한 사람들이 굴러가는 이 세상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이 세상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작가는 사람과 사람이 뒤섞여 피워내는 풍경들의 해학을 멋지게 포착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울증이 재발해 기분이 좋은 날은 한없이 붓이 날라다니고, 우울한 날은 꼼짝않고 칩거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 혼자만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반복되었을까? 그러나 그는 그 시간마저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화가 ‘폴 고갱’의 노스텔지어는 타히티 섬이었다. 한재용의 노스텔지어는 해운대라고 말한다.
앞으로 십년은 해운대를 그릴거라고 그는 말했다. 아름다운 매혹에 빠져 인생의 후반을 그림에 송두리째 바친 만큼, 앞으로도 그의 작품이 해운대의 폭죽처럼 아름답게 빵빵 터지길 기원한다.






· 한재용

·
개인전 6회
· 부산미술대전, 목우회전 입선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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