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8) 한창현 - 소년은 늙지 않는다

2016. 1. 26. 02:48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8) 한창현 - 소년은 늙지 않는다 

     

                    2015/10/12 9:01등록   (2015/10/12 12:47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여기 추석(秋夕)과 같은 풍성한 그림이 있다.
황금색 들판 사이를 가로지르는 고향으로 가는 자동차, 수줍어 나무 뒤로 몸을 숨긴 소년과 소녀, 추수를 끝낸 들판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농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그리운 고향의 모습이다.

고향은 그리움의 대명사이다. 언제든지 포근하게 받아줄것 같고, 세파에 지친 몰골로 되돌아가면 신발도 미쳐 신지 못한 늙은 내어머니가 달려나오며 "에구, 내새끼"하며 안아줄것 같은 푸근함의 대상.

그러나 그 고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지자체의 각종 도시개발에 고향의 산천이 밀려나면서 그리던 고향은 역사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 언저리에서 아직 떨치지 못한 미련과 그리움으로 고향을 그리는 남자가 있다.

한창현은 빙어라는 호(號)를 사용한다. 물고기 빙어처럼 투명하고 거짓없는 자아를 표현하는 뜻이다. 작품은 작가의 페르소나이다. 화가의 맑은 감성과 따스한 가슴은 그림으로 오롯이 되살아난다. 그는 화가이자 시인이다. 그림을 그리며 시도 쓴다.

그림처럼 시가 아름답고 고운것만은 아니다. 영원한 사랑을 기리는 '그대 사랑을 믿습니다'라는 시도 있는가하면, 작가로서의 고뇌와 철학을 담은 '흰 캔버스'나 '상념의 낙서'같은 시도 있다. 스펙트럼의 넓이와 깊이가 엄청난 작가이다.





그대 사랑을 믿습니다

그대 아픔과 슬픈 눈물 닦고서
부서진 영혼과 주름진 세월 지우고
세상일을 내 뜻대로만 이룰 수 없지만
인색한 넋두리는 그만 내려놓고
풀잎이슬 뿌린 투명한 식탁 위에
고운 서정시처럼 행복한 눈빛으로
확신받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채워가면서
당신의 사랑을 받고 주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느낌 그대로
행복을 간직하고 느끼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당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대 편지 글 위에 씨앗을 뿌려
땀의 무게로 빵을 굽겠습니다.

내게 전한 그 말을 다 믿으렵니다
지금 나눈 고백을 언약식으로 믿고
아! 영원히, 그대 사랑을 믿습니다.






황금 물고기

물고기 한 마리가
밤바다에서 지느러미로 침묵을 털고
억급의 그리움으로 울었다

외줄에 마지막 영혼을 흔들며
소리내어 울지 못한 쓸쓸함으로
절벽을 기어오르며 울었다

어제의 상처
내일의 두려움을 풀어놓고
모천 회귀의 분노를 호소하다가
소금 별 소리는 물 비늘을 토하며
돌탑을 쌓은 무명인으로 울었다

흐르는 새털구름도 날개가 젖어
무거운 넋두리를 등에 엎고
불어터진 하늘을 껴안고 울었다

주소 없는 산사에 새벽
그대는 서쪽 하늘로 산책을 떠나고
그리움은 기지개 켜는 안개 바다에서
긴 기다림으로 홀로 울고 있다
황금물고기 황금물고기!









무지개

소낙비 줄행랑치니
흰 구름은 몸짓을 부풀리고
꽃바람은 소리없이
아름답게 우아하게
혹은 단아함으로 옷고름을 풀었다.
허공에 일곱 색깔 프리즘
고혹한 눈짓으로
하늘바다에 황홀경을 피운다.

사랑의 세레나데가 완성될 즘
숲의 나무들도 바람결에 옷깃 여미며
그대의 향기로 그리움 피었다
반원형의 파스텔화 그대는
일곱 색깔의 젖은 영혼이었다.







상념의 낙서

절대 고독 속에 작은 사각 방
온몸으로 영혼 태운 촛불 아래에서
꽃비의 장난질에 가슴을 추행당하며
난 그대의 강을 거슬러 올랐지만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은 강가에서
홀로 나무 그네를 탄다

나무의자 아래로 잎사귀 하나 떨어지니
날아가는 접동새가 말을 건다
여보세요, 죽은 시인의 꿈을 꾸는 양반
예술가는 다른 곳을 볼 줄도 모르시오
왜 달아난 파랑새만 찾으시오

꽃비 내리는 그대의 강에서
나무 그네를 타며 호수만 바라보았다
담배를 깊게 빨고 나서, 이보게 접동새
저 강에는 내 사랑 파랑새가 살았었지
절절했었고 행복했던 첫 키스의 향...
사랑과 아픈 이별도, 내 삶도 모두 있었지.

영혼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나뭇가지에 상념의 낙서를 새겨 놓으니
사망 신고한 우울증은 홀로 그네를 탄다.






솟대

벙어리 냉가슴 홀로 삭이며
소리 내어 울어보지 못한
그대가 묵언 수행을 한다

하늘 끝점에 날개를 접고.
무상무념의 허공만 바라보는
눈물의 아픔이 앉아 있다

천상의 날개짓을 버린 채
새털구름 속으로 비상하지 않는
그리움의 상처를 지키고 있다

천년을 하루 같은 침묵으로
사랑의 눈썹달을 그려 놓은 채
절대고독을 쪼아 물고
일편단심 망부석의 새가 있다.







모닝커피

숙취에 비틀거리는 햇살이
첫날밤 그 아침처럼 부끄러운 듯
흐트러진 이불속까지 숨어올 때
풀잎이슬 뿌린 아침 식탁에 앉아
각설탕도 하얀 프림도 넣지 않고
태초의 그대 느낌과 사랑만으로
한 잔의 커피를 가슴으로 마셨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 향은
그대 향으로 가슴을 흥분시키고
망부석 같은 잠든 영혼을 깨운다.
까칠해진 얼굴 표피 깊은 곳까지
상큼한 자연의 향으로 스며들어
초록빛 아침을 오색찬란하게 한다.

유치찬란한 어젯밤 기억을 지우고
아름다운 오늘의 사랑을 설계하며
그리움 속에 고운 평화를 즐기는
그대 향기로 피어난 모닝커피는
워즈워드의 무지개를 그려놓았다








탈출

독수리는 독수리가 할 일 있고
참새는 참새의 할 일이 존재하는데
독수리 참새도 아닌 닭처럼 서성이며
푸줏간에 밥그릇을 채우기 위해
가슴 없는 눈빛으로 출근하는 남자

유년기 꿈 꾼 꽃집 사장님
청소년기 이상이었던 레스토랑 주인
학사모 벗고 희망했던 산장지기
잠에서 깨어나 꿈의 그림자를 찾아보니
꿈조차 사라진 빈들에 홀로 걷고 있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하나로
거창하지도 않은 자격증을 부여받고
낮에는 교육자 밤에는 쓸쓸한 술꾼
화가 혹은 시인 또는 잡동사니 예술가

그 어느 날 낮과 밤이 거꾸로 변하더니
올가미에 목줄을 달아 눈치껏 기생하며
쌓여만 가는 상념은 번민의 두께로 변했다
거미줄로 장식된 작업실의 구멍 난 파렛트
분열된 자화상은 거울 속에서 절망했었다
빠삐용이란 시 힌편을 가슴에 걸어두고
영화 속에 감독과 주인공으로 거듭 태어나
학대하고 구박한 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석양의 태양이 땅끝에 어눌한 턱걸이 할 때
낯선 도망자의 얼굴로 탈출을 기획했다







흰 캔버스

고향의 일기장 속에
괜찮은 색으로 붓터치를 찍으며
땅따먹기 추억을 지우며 살고 싶다

변명 많은 문학잡지 속에
적당한 시어로 발자국을 남기고
그대의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살고 싶다

늘 같은 장소 구석진 곳에서
담배 한 모금에 몽롱해진 두 눈
무거운 외로움을 커피 잔 속에 담아
별 볼일 없는 껍질뿐인 상념을 마신다

그대가 떠나간 광장에 홀로 남으면
한 줄의 선도 긋지 못한 새벽까지
멍텅구리 시계가 중노동 중이다
윤곽선 없는 아우성은 몸을 휘감고
첫날밤의 불면의 이유가 메아리친다
그대의 가시 돋힌 독선과 고집으로
우유빛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 흰 캔버스







엄마가 참 보고싶다

순정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연분홍빛 복숭아 같은 봉우리를
작은 조막손 품에 넣고
꼬물거렸던 착한 기억

마르지 않는 샘의 수액을 빨고
젖꼭지 물고 입안 가득한 행복
세상에서 가장 깊은 잠을 잤었다

순백의 청아함에 푹 빠져
아기의 까만 눈동자를
침묵으로 지킨 당신이 그립다

언젠가, 꽃과 화초를 가꾸며
사랑뿌린 앞마당 꽃밭에서
나무 뒤에 숨어 숨바꼭질하며
자식의 이름을 불러주시던 당신

눈썹 달빛에 반사된 이파리처럼
빨간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 떠올라
늦은 밤 홀로 소주에 취한 이 밤에
울 엄마가 참 보고 싶다.





한창현의 그림과 시를 읽다보면 지나간 시절의 그리운 추억속으로 깊이 매몰된다. 오랜 친구가 반가운 것은 함께 공유할 추억도 있지만, 지난 날의 '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시절, 그 시대의 우리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늙는 것이 죄(罪)는 아닐진데 왜 나이가 들면 세상의 이목에 신경을 쓰고, 자신을 움츠리는 것일까?
거리낄 것 없는 청춘은 당당하고 자유롭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나이든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심성이 많아질 뿐이다."

나이든 꼰대가 되고싶진 않다. 비록 육신은 늙더라도 정신만은 영원히 청년으로 깨어있고 싶다.
한창현의 소년은 늙지 않는다. 육신이 세월과 함께 퇴행할 뿐, 소년은 그의 가슴속에 늘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있다.





· 한 창 현(韓 昌鉉)  HAN, CHANG - HYUN

·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 개인전 및 15회 초대전(서울 대구 )

· 해외전 및 교류전

- 마드리드 한국미술만남전(토이즌갤러리, 스페인)
- 한국.독일 현대미술전(빌리브란트갤러리, 베를린)
- 스톡홀롬 현대미술전(아리아든갤러리, 스웨덴)
- 한국. 중국 미술교류전(대중시민화중심관, 중국)
- 천진미술학원 초대 계명전(천친 갤러리 중국)
- 밀라노.대구 국제미술교류전(문화예술회관. 이탈리아)
- 미술과 영혼 초대전(카이로 미술관. 이집트)
- 한국. 일본 작가 초대전( E 갤러리. 일본)
- 대구-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교류전(2006.문화예술회관. 러시아)
- 중국 강소성 미술교류전(.문화예술회관. 중국)

· 현재 : 한국미술협회, 별마을 문학회 동인. 대구시미술대전 초대작가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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