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1) 어느 무명화가의 쓸쓸한 ‘죽음’
2016. 1. 27. 23:51ㆍ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1) 어느 무명화가의 쓸쓸한 ‘죽음’
2015/10/19 14:52 등록 (2015/10/19 14:52 수정)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19/yXBs1Ol6u5a7mIJlJW7fp6DZ2dY4hv1fcc5BdiaI-1445233315.jpg)
▲ 이동국 _ 별밤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나는 간다, 모든 것을 사랑했으므로 아낌없이 버리고 나는 간다"
얼마 전에 카카오톡의 프로필에 이동국 화백이 써놓은 문장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이 문장에 의아해했지만, 주변머리 없는 나는 곧 잊어버렸다.
이틀 후에 선생의 아들에게서 선생의 부음(訃音)을 문자로 전달받은 순간 아득해졌다. 아!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십년 이상을 세대차를 넘어 우정으로 이어진 끈을 그쪽에서 먼저 놓아버린 것이었다.
내게는 인사조차 고하지 않고.....
몸이 자꾸 아프다고 했다. 선생은 술을 마시면 곡기(穀氣)를 끊어버린다. 며칠간 소주와 막걸리만 마신다. 건강한 사람도 며칠만 그리하면 몸이 성할리 없는데, 선생은 평생을 그러기를 일삼았다.
이동국 선생은 생전에 무기(无己) 무공(无功) 무명(无名)한 사람이었다. 타인과의 교류에 아집이 없었고, 명예나 이름을 알리는 일에도 뜻이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벗과 나누는 막걸리 한잔에 파안대소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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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돌아가시기 두 달전에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일주일간 전시회를 가졌다. 내쪽에서 먼저 제안한 일이었다. 선생은 작품이 많이 팔리면 그 돈으로 바다에 작은 집을 하나 사서 평생 그림만 그리다 죽겠노라고 하였다.
나는 점심때마다 선생과 밥을 먹으며 정확하게 소주 두 잔씩만 마셨다. 낮술은 체질에 맞지 않았지만 선생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였다. 선생은 아침부터 술을 드신 상태로 취기의 유지를 위해 드문드문 술잔을 놓지 않았다.
나는 점심때마다 선생과 밥을 먹으며 정확하게 소주 두 잔씩만 마셨다. 낮술은 체질에 맞지 않았지만 선생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였다. 선생은 아침부터 술을 드신 상태로 취기의 유지를 위해 드문드문 술잔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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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살벌함과 인간과의 교류에서 늘 약자였던 선생은 모든 걸 버리고 바다로 떠나고 싶다고 수시로 말씀하셨다.
작은집을 사서 작업실로 꾸미고, 그림을 그릴테니 멋진 기획전을 열 준비를 하라고 호언장담도 하였다. 나는 그저 선생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끔씩 추임새만 넣을 뿐이었다.
"우리들은 아웃사이더이다. 윤선생도 나처럼 어리석고 약아빠지지 못한 사람이니 정리해서 나 따라 바다로 오소"라는 말도 하였다.
지금도 선생의 육성이 들려오는듯하여 가슴이 아프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19/xO0Bi56EQmIeL270R8IuZWiU975BSpfgTP3mAvWB-1445233566.jpg)
무엇이 심약한 선생을 그렇게 아프게 내몰았을까.
헤겔은 "타자에 의해서 자아가 규정된다" 라고 하였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암시하는 말이다. 삶이 지치고 힘들때,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을때 내가 가끔 생각하는 문장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기 위해 옳지 않은 일에 억지로 공감해야 할 때도 있고, 거짓으로 삶을 포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가. 위선이 없는 진실이 때로는 나를 헤치는 양날의 칼이 된다. 선생의 곱고 여린 심성으론 이 세계에 적응하여 살아내기가 힘겨웠을 것이다.
헤겔은 "타자에 의해서 자아가 규정된다" 라고 하였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암시하는 말이다. 삶이 지치고 힘들때,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을때 내가 가끔 생각하는 문장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기 위해 옳지 않은 일에 억지로 공감해야 할 때도 있고, 거짓으로 삶을 포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가. 위선이 없는 진실이 때로는 나를 헤치는 양날의 칼이 된다. 선생의 곱고 여린 심성으론 이 세계에 적응하여 살아내기가 힘겨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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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가지고 있는 자화상 중에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선생이 가장 좋아하던 자화상이다. 입술에 핏기가 없는걸로 미루어 이미 생을 마감할 것을 유추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육신에서 피어나는 파랑나비. 선생은 '장자의 나비'를 자주 인용했다. 본인이 나비인지, 나비가 본인인지.
욕심도 없고 섬세한 비즈니스 감각도 익히지 못했던 그는 작업에만 며칠씩 몰두하다가, 화랑에서 초대전을 열어주면 그때 판 작품비로 다음 전시 때까지 근근이 생활했다.
생활이 어려워 이리저리 돈을 꾸었고, 독촉하는 전화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도 몇 번 보았다. 그저 선생은 장자의 나비처럼 현실을 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욕심도 없고 섬세한 비즈니스 감각도 익히지 못했던 그는 작업에만 며칠씩 몰두하다가, 화랑에서 초대전을 열어주면 그때 판 작품비로 다음 전시 때까지 근근이 생활했다.
생활이 어려워 이리저리 돈을 꾸었고, 독촉하는 전화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도 몇 번 보았다. 그저 선생은 장자의 나비처럼 현실을 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生이 현실인지, 꿈인지, 꿈이라면 깨어나고 싶지 않았을지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그의 너털웃음과 실없는 농담들, 술자리마다 반복되던 그의 지난 추억들, 아쉽게도 모두가 나비처럼 저 멀리 떠나버렸다.
저승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부디 생활고와 물감값을 걱정하지 말고, 선생이 가장 사랑했던 바다를 마음껏 바라보며 평화롭게 소요유(逍遙遊)하시길 바란다.
선생님 부디 안녕히.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19/w89A0F0QBCDiJ8bc7NzO3L2Hj0Y1I2u2oz7l62Hn-1445233670.jpg)
- 이동국 화백 -
· 부산공예고등학교
· 부산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 개인전 21회
· 2015.8.24 작고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19/pmMC8p5k880amG4EJfuUF6wK2s46C3Kf0Dq5O4X3-1445233750.jpg)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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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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