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분청사기 - 정리

2016. 1. 28. 04:00도자 이야기



       3. 분청사기



    3-1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조선 시대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세종때 도자기자기소 사기소 그냥 사기와 자기를 혼용해 썼다. 일제 시대에는 주로 분청자(粉靑瓷)라고 불렀다. 청자에 흰 분을 발라 구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분청사기는 원래 청자에서 출발한다. 청자 태토를 그대로 사용한 위에 백토로 분단장을 하듯이 분장(粉粧)을 하고 투명한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다. 따라서 분청자라는 용어도 틀린 용어는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은 분청사기의 특징인 색깔을 유심히 관찰하며 보다 정확한 이름을 찾았다. 분청사기는 백토로 분장한 뒤에 문양을 나타낸 경우가 많은데 문양을 긁어낸 바탕에는 회청의 청자 바탕색이 그대로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砂器)라는 말을 찾아냈고 이를 줄여 분청사기(粉靑沙器)로 표기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분청사기란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다.  
 


   분청사기가 탄생한 것은 고려의 상감청자의 몰락과 연관이 있다. 상감 청자에 문양을 넣는 일은 매우 복잡한데 고려후기 청자가 대량생산되는 시기를 맞아 문양이 대범해지고 간략해지기 위해서 새로운 제작 방법이 필요했다. 분청사기는 시기적으로 이때에 등장했다고 설명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 관영이었던 강진이나 부안 가마의 사기장들이 고려 왕조의 붕괴로 인해 전국에 흩어지는 과정에  제작 기법이 간소화되면서 탄생했다고도 한다.


   분청사기는 청자 태토에 백토 분장을 했기 때문에 사기장들은 보다 투명한 유약을 찾아 나섰다. 전문가에 따르면 대개 청자 유약에 많이 쓰이는 소나무 재에 장석과 석회석, 점토를 섞어 썼다고 한다. 강경숙 교수『분청사기 연구』를 보면, 분청사기 유약실험에는 장석, 소나무재,점토를 25 : 5 : 2로 섞었을 때 가장 보기 좋은 분청사기색이 나왔다고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인화문 분청사기의 일부가리켜 미시마(三島)라고 부른다. 미시마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 일본에서는 경상남도 거제도 일대의 조선시대에 삼도라고 불리웠는데 이곳을 통해 일본에 전해진 도자기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설이 있다. 또 한편에서는 일본 미시마 진자(三島神社)에서 만들어썼던 달력은 멀리서 보면 인화문 분청사기의 하단에 보이는 짧게 내려그은 문양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청자상감 국운문 편병(靑磁象嵌菊雲文扁甁) 13세기 높이 32.9cm 개인 소장 




 

분청사기 상감조노문 매병(粉靑沙器象嵌鳥蘆文梅甁)

15세기전반 높이 33.0cm 호암미술관      





    3-2 분청사기 흐름


 

   분청사기는 고려의 상감 청자가 쇠퇴하면서, 다른 말로 바꾸면 대량 생산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도자기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태토가 조잡하고 두께가 두껍고 투박하며 색깔도 암록색을 띤 것들이 많다. 조선의 건국 초기에는 백자가 그다지 많이 제작되지 않아 대부분이 분청사기가 사용됐다. 학자에 따라서는 15세기초 조선에서 만들어진 도자기의 100개중 95개가 분청사기였다고도 설명한다. 그리고 또 이들 대부분이 상감문양이나 인화문으로 장식된 분청사기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선의 사회적 기틀이 안정되는 15세기중반 이후가 되면 명나라 백자의 영향을 받아 적극적으로 백자를 만들게 되면서 분청사기 역시 고려 계통의 기술인 상감 기법이나 인화 기법이 쇠퇴하게 된다. 대신 겉모양으로 보아 백자와 닮아 보이는 귀얄 귀법은 크게 유행했다.


   그리고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이 되면 왕실 도자기는 분청사기에서 완전히 백자로 바뀐다. 이 시기에 분청사기는 귀얄 기법이 사라지고 덤벙(담금) 기법에 의한 백자화가 나타난다. 특히 이 무렵 계룡산에서는 독특한 회화적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철화(鐵畵) 분청사기가 등장한다. 그후 1600년이 되면 분청사기는 완전히 맥이 끊기면서 백자의 전성시대가 된다.





  
분청사기 인화문 태항아리(粉靑沙器印花文胎壺)

15세기전반 높이 35.8cm 호암미술관 





 분청사기 귀얄문 발(粉靑沙器귀얄문鉢)

16세기 높이 14.8cm 국립중앙박물관 






     3-3 분청사기 상감기법


 

   분청사기의 상감기법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양을 나타내고 싶은 곳에 백토(白土)나 자토(赭土, 구우면 검은색으로 나타난다)를 넣은 것이 상감의 기본적인 기법이다. 분청사기에는 이런 기본적인 상감기법은 물론 고려의 상감기법에서 나오는 역상감이나 면(面)상감 등의 기법이 고루 사용되고 있다. 고려 시대에 사용된 상감 기법과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에 보이는 상감기법 사이에 보이는 큰 차이는 후자가 대범하고 매우 자연스럽다게 표현돼 있다는 점에 있다.





 분청사기 상감용문 항아리(粉靑沙器 象嵌龍文 壺) 

15세기전반 높이 49.7cm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상감모란문 매병(粉靑沙器 象嵌牧丹文 梅甁)

15세기 높이 28cm 보물 239호 영남대 박물관






     3-4 분청사기 인화기법


 

   태토로 형태를 잡은 뒤에 도장을 찍고 그 홈에 백토를 발라넣고 구워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상감 기법에서 일일이 문양을 파는 수고를 덜기 위해 도장을 찍고 것이기 때문에 인화(印花) 기법은 상감의 간소화, 도구화라고도 할 수 있다. 백토를 넣는 방법은 흔히 붓으로 백토를 홈에 바르고 마른 뒤에는 백토가 든 홈만 남긴 채 주위를 곱게 벗겨내거나 긁어낸다.


   도장을 찍듯이 그릇 위에 연속된 문양을 나타낸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항아리 문양에도 쓰였으나 당시는 요철 효과만을 기대했고 상감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분청사기의 인화문 기법은 동일한 도장을 수없이 반복해서 찍은 것이 특징이다.

인화문의 종류에는 국화꽃 문양을 찍은 국화문(菊花文), 발을 내려뜨린 것같은 승렴문(繩簾文, 구슬이 연속해 이어져 있는 것 같다고 해 연주문(聯珠文)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동그란 원을 두 개를 새겨 찍은 화관문(花冠文) 등이 있다.


   인화 기법은 위의 문양과 둘 셋이 함께 사용하는 사례도 많이 있다. 또한 짧은 직선 문양을 반복하기도 하는데 이런 짧은 직선의 반복 문양이 든 인화기법의 분청사기는 일본에서 미시마(三島) 라고 부른다. 미시마 진자에서 펴내는 달력의 문양을 먼데서 보면 이처럼 짧은 선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인화문 분청사기에는 특히 접시나 또 관청의 이름, 생산지 이름, 제작 관련자의 이름 등이 함께 새겨져 있는 것이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런 명문은 제작 시기나 생산지를 구별해 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토기 인화문 합(土器印花文盒)

통일신라 8세기 높이 25.5cm 경북대 박물관

 



 
분청사기 인화문 '삼가인수부'명 마상배(粉靑沙器 印花文 三加仁壽府銘 馬上杯)

 15세기 높이 8.3cm 국립중앙박물관



 





    3-5 분청사기 박지기법


 

   박지란 바탕을 벗겨낸다(剝地)는 뜻이다. 먼저 그릇 전체 또는 일부에 백토를 씌운 뒤,  즉 분장한 뒤에 넣고자 하는 문양을 음각으로 새기거나 혹은 문양 이외의 부분을 긁어내고 그 위에 투명한 유약을 발라 굽는다. 그러면 백토가 발린 흰색 부분과 회색의 바탕색이 대조되면 문양이 선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백토를 긁어낸 부분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산화철을 칠해 흑갈색으로 나타낸 경우도 있다. 박지 기법으로 주로 표현한 문양은 모란문, 모란당초문, 연꽃문, 연화당초문, 물고기문양 등이다. 일본에서는 이 기법을 긁어낸다는 의미에서 가키오토시(搔落)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편병(粉靑沙器 剝地鐵彩 牧丹文 扁甁)

15세기 높이 20.4cm 일본 네즈(根津)관 




 

 
분청사기 박지조어문 항아리(粉靑沙器剝地鳥魚文壺)

15세기후반~16세기 높이32.8cm 구라시키(倉敷) 민예관






    3-6 분청사기 조화(彫花)기법


 

   조화란 바탕에 선을 새겨서(彫) 꽃과 같은 무늬(花)를 넣는다는 뜻이다. 주로 간단한 문양을 새길 때 사용한다. 백토로 분장한 뒤에 뾰족한 도구로 긁어 문양을 그리는데 백토가 파인 곳에는 바탕이 보이기 때문에 나중에 굽고 나면 흰 백토 분장에 회색선에 의한 문양이 나타나게 된다.


   조화 기법은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흔히 박지(剝地) 기법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 조화 기법으로 그린 문양에는 자연스러우며 추상적인 문양이 많이 들어있어 한국적 미감이 대표한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화라는 말 대신 음각(陰刻) 또는 선각(線刻)이란 말도 쓴다. 특히 일본에서는 선각이란 말을 쓴다.




 
분청사기 조화쌍어문 편병(粉靑沙器 彫花雙魚文 扁甁)

15세기후반 높이 25.7cm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조화유문 항아리(粉靑沙器彫花柳文壺)

15세기후반 높이43. 8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3-7 철화 분청사기(혹은 계룡산)

 

     청자에 산화철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철화 청자가 있듯이 분청사기에도 백토로 분장한 위에 산화철로 간단하게 그림을 그린 것들이 있다. 이를 가리켜 철화 분청사기라고 한다. 이는 단연 철화 청자의 맥을 이은 것이다. 철화 분청사기는 충남 공주 학봉리 일대의 계룡산 산록에 있는 가마에서 많이 구워져 흔히 미술시장에서는, 일제 시대부터 쓰던 이름 그대로 ‘계룡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철화 분청사기는 백토 분장을 할 때 귀얄로 백토물을 바르는게 보통이어서 일본에서서는 에하케메(繪刷毛目)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일본어 하케는 솔 또는 귀얄을 가리키며 하케메는 우리말의 귀얄 문양에 해당한다. 철화 분청사기는 대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식물 잎(초화문)이나 덩굴 같은 것(당초문)을 간단하게 그렸지만 회화성이 매우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분청사기 철화연지조어문 장군(粉靑沙器 鐵畵蓮池鳥魚文 俵壺)

15세기후반~16세기 높이 15.4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분청사기 철화어문 병(粉靑沙器鐵畵魚文甁)

  15~1세기 높이 30.0cm 호암미술관




       3-8 귀얄 분청사기


   귀얄은 원래 풀이나 칠을 바를 때 쓰는 을 가리킨다. 분청사기에 백토를 바르면서 이런 솔을 사용해 쓱쓱 문질러 발랐는데 붓자국이 남지 않도록 곱게 바르지 않고 오히려 붓자국의 거칠고 빠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귀얄 기법을 사용한 분청사기는 포개구워 대량 생산한 막사발에 많이 있다. 이 기법은 박지, 음각, 철화 기법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순수하게 귀얄기법만 사용한 분청사기는 쇠퇴 과정에서 주로 보인다.





분청사기 귀얄문양파수부 호(粉靑沙器 귀얄문 兩把手附 壺)

15~16세기 높이 28.1cm 호림미술관





분청사기 귀얄문 편병(粉靑沙器 귀얄문 扁甁)

15~16세기 높이 22.6cm 호암미술관






       3-9 덤벙 분장기법


 

    덤벙이란 말 그대로 백토를 분장하면서 백토 물에 통째로 ‘덤벙’하고 담갔다는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덤벙이라 의태어 대신 담금 기법이란 말도 쓴다. 어쨌든 백토에 담그는 분장 기법은 귀얄과 같은 자국이 남지 않고 표면이 매우 차분하다. 이때 백토가 두껍게 씌워지면(분장되면) 굽고 난 뒤에 표면이 백자화되어 백자처럼 보인다. 따라서 분청사기가 백자로 대신 되는 쇠퇴기에 많이 보이는 기법이다.


   백토물에 덤벙할 때 그릇을 거꾸로 들고 담그기 때문에 굽 언저리는 백토가 묻지 않는 게 보통이다. 또 덤벙 기법으로 백토를 뭍힌 후 가마 속에 넣어 구우면 고온에 백토의 일부가 녹아 내리며 백토를 바르지 않은 곳에 자국을 남기게 된다. 이 흔적은 그 자체로 추상 문양처럼 보여 분청사기의 자연스러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분장 기법의 분청사기는 국내 미술시장에서 일본말에서 유래한 고비키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본어 고히키(粉引)가 방언화된 말로 사실은 국적 불명이다. 고히키는 덤벙 기법이 마치 도자기에 분가루를 덮어씌운 듯이 온통 희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후키(粉吹)라는 말도 쓴다.

 




 
분청사기 덤범병(粉靑沙器粉引甁)

16세기 높이 18.5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노지승)




 

 
분청사기 덤벙문우형제기(粉靑沙器粉引牛形祭器)

16세기 높이17.9cm 호암미술관 

 



       3-10 관청명 분청사기


 

   조선초기 분청사기는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져 왕실에 진상되었던 까닭에 처음부터 사용처가 정해져 있었다. 또 진상되는 도중에 사사롭게 빼내서 사용하는 금하기 위해 제작하면서부터 사용처를 새겨 넣으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분청사기에 새겨진 관청 이름, 즉 관사명(官司銘)은 분청사기의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즉 조선시대 초기의 관청은 업무의 종료 혹은 변화에 따라 한시적으로 설치된 같은 것들이 있다. 따라서 해당 관청이 존재했던 시기가 바로 그와같은 관청명이 쓰인 분청사기의 제작 시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관청명은 문양과는 다른 인문학적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수집가나 애호가의 큰 관심을 끌기도 한다.  


   분청사기의 관청이름은 우선 공안부(恭安府), 경승부(敬承府), 인녕부(仁寧府), 인수부(仁壽府), 덕녕부(德寧府) 등과 같이 세자나 왕실 종친들이 살던 곳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왕실과 직접 관련된 관청으로 내섬시(內贍司, 음식 관리), 예빈시(禮賓司, 접객 관리), 장흥고(長興庫, 물품 관리), 사옹원(司饔院, 궁중연회 관리) 등도 있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관청 이름은 11개 정도이다.




 
분청사기 인화문 '성안장흥고'명 접시(粉靑沙器 印花文 成安長興庫銘 匙)

15세기 높이 3.3cm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인화문 '진해인수부'명 접시(粉靑沙器 印花文 鎭海仁壽府銘 匙)

15세기 높이3.3cm 국립중앙박물관






       3-11 지방명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각 지방에서 왕실에 바치는 공물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릇 밑바닥에 제조 지방을 밝혀 놓은 것들이 종종 있다. 이들 지방이름은 분청사기가 제작 지방은 물론 그 지방에서 제조된 분청사기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현재 제작지와 관련된 지방 이름은 약 30군데 정도가 파악돼있다. 
 
    경주, 경산, 밀양, 금산, 무장, 영천, 성주, 양산, 언양, 예안, 울산, 울진, 진주, 창원, 협천,삼희, 진해, 청도, 함한, 군위, 고령, 의령, 선산, 김해, 곤남, 의흥, 해주, 삼척, 광주 등지이다.


   또 제작지와는 무관하지만 지명과 관련있어 보이는 명문이 7~8종류가 확인돼있다. 한산(漢山), 금산(金山), 미산(未山), 동산(瞳山), 단산(耑山), 산(山), 광(光) 등인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의미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분청사기 인화문 김해명 잔(粉靑沙器 印花文 金海銘 盞)

15세기 입지름 11.5cm 호암미술관







    3-12 분청자기 편병


 

   큰 병을 물레로 성형한 다음, 병 양쪽을 눌러서 평편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편병이라고 부른다.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고 백자에도 편병이 있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것을 보면 분청사기 편병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같은 편병이라도 시대에 따라 그 형태가 조금씩 틀린 것이 보통이다. 토기와 청자에 보이는 편병은 목이 짧고 동체가 긴 병을 양쪽에서 두드려 몸통 일부를 약간 편평하게 만든 정도였다. 조선시대 초기에 약간 등장하고 마는 조선백자 상감 편병은 접시 두 개를 포개 만든 것처럼 날렵해 측면의 폭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18세기 이후에 자주 보이는 백자 편병은 균형있게 납작하게 눌러 앞뒷면이 완전한 원형을 이루고 있다.


   분청사기 편병의 경우는 이러한 흐름 속에 있지만 특징적인 두가지 제작 방식을 보인다. 하나는 청자 편병과 같은 것으로 먼저 원형 병을 만들어 앞 뒤를 조금씩 두드려 만든 것과 처음부터 앞 뒷면과 측면을 따로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이 경우 물론 주둥이와 굽은 나중에 붙인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방식으로 제작한 편병의 측면은 비교적 넓은 띠 모양을 하고 있어 이곳에 커다란 부속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게 보통이다.




 
청자 상감운용문 편병(靑磁 象嵌雲龍文 扁甁)

13세기후반 높이 25.0cm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상감초화문 편병(白磁 象嵌草花文 扁甁)

1466년 높이 22.1cm 호암미술관




 
분청사기 박지연어문 편병(粉靑沙器 剝地蓮魚文 扁甁)

15세기 높이 22.7cm 호림미술관 국보 179호




 
백자 철화해문 편병(白磁 鐵畵蟹文 扁甁)

17세기 svh이 23.1cm 선문대 박물관





       3-13 분청자기 자라병

 

   병 모습이 마치 자라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라등이 부풀어 오른 듯한 넓적한 몸체 한쪽에 자라목처럼 보이는 주둥이가 달려 있다. 야외에서 술이나 액채를 담는 용기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의 토기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특히 조선시대 초기인 15, 16세기경의 분청사기에 많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이를 평병(平甁)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粉靑沙器 剝地鐵彩 牧丹文 平甁)

15세기 지름 23cm 국보 260호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철채모란당초문 자라병(粉靑沙器 鐵彩 牧丹唐草文 平甁)

15~16세기 높이 14.1cm 호암미술관







     3-14 분청자기 제기


 

   제기(祭器)는 중국에서도 그 원형은 청동기였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 사회는 제례를 매우 중시했다. 따라서 왕실과 민가를 막론하고 많은 제사가 치러졌으며 아울러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도 다수 제작됐다.


   조선시대 초기 왕실에서 사용하던 제기는 대부분 동(銅)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동의 수급이 여의치 않자 분청사기 그리고 백자 등으로 대체되었다. 청자 가운데 제기로 분류할 수 것은 향로 정도뿐이다. 그러나 이 향로 역시 불전에 향공양(香供養)을 받치는 용구였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제기라고 말하기 힘들다.


   세종실록 오례의의 ‘제기도설’ 에는 각종 제기의 종류가 간략한 설명과 그림이 실려 있다. 분청사기로 만든 제기도 이 제기 도설에 나오는 종류들이 다수 보인다. 분청 기기에는 특히 덤벙 분장을 한 것이 많이 있다. 보(簠)는 곡식을 담는 제기의 일종이며 소의 모습을 한 희준(犧樽)은 고대에 제사의 희생으로 소를 사용했던 것을 도자기로 형상한 것인데 제사 때에는 술을 담는 용기로 사용했다.





 
분청사기 덩벙문 보(粉靑沙器 粉引 簠)

16세기 높이 13.6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분청사기 상감선조문 보(粉靑沙器 象嵌線條文 簠)

15세기중반 높이 16.2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3-15 장군

 

   장군은 물이나 술 등을 담거나 옮기는데 쓰였던 용기이다. 물레를 돌려 길쭉한 병을 만들고 이를 옆으로 뉘이고 몸통 쪽에 주둥이를 단 것이다. 장군은 삼국시대 질그릇에도 그 형태가 보여 오래 전부터 액체를 담아 옮기는 도구로 쓰인 듯하다.


   분청사기에는 특히 장군이 많다. 또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은 매우 자연스럽고 해학적인 점이 특징이다. 일본에서는 쌀이나 숯가마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가마나 섬을 가리는 말인 표(俵)자를 써서 가마형 항아리라는 의미로 효코(俵壺)라고 부른다.

 

 


 
분청사기 상감모란문 장군(粉靑沙器 象嵌牧丹文 俵壺)

 15세기중반 높이 15.6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분청사기 조화어문 장군(粉靑沙器 彫花魚文 俵壺)

15세기 높이 24.5cm 호암미술관





        3-16 어문

 

   도자기에 물고기 문양이 등장하는 것은 흔히 원나라 청화백자부터 라고 한다. 고려시대 청자에 보이는 물고기 문양은 크게 대접 속에 들어간 물고기 문양이나 매병의 몸체에 그려진 커다란 형태의 물고기 문양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매병에 새겨진 상감기법의 물고기 문양은 고려시대 후기의 청자에 많이 보인다. 분청사기에 등장하는 물고기 문양은 따라서 고려후기의 청자 문양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분청사기에 물고기문양이 등장하는 것은 매병 뿐만 아니라 흔히 술을 담는 옥호춘병(玉壺春甁)이라고 불리우는 기형의 병을 비롯해 합, 편호, 장군, 항아리 등 다양한 도자기에서 골고루 보인다.


   특히 계룡산 기슭에서 구워진 분청사기, 일명 계룡산이라고 불리우는 분청사기에는 철화 기법으로 활달한 필치의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 게 특징이기도 하다. 철화 기법으로 의 문양 감각을 보여준다. 분청사기에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 문양에 대해 그 연원이나 종류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이론은 아직은 없다.

다만 철화기법으로 그려진 분청사기의 물고기는 원, 명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커다란 입과 아가미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분청사기 상감어문 매병(粉靑沙器 象嵌魚文 梅甁)

15세기 높이 25.7cm 부산시립박물관




 
분청사기 조화어문 편병(粉靑沙器 彫花魚文 扁甁)

16세기 높이 22.6cm 국보 178호




 
분청사기 철화어문 병(粉靑沙器 鐵畵魚文 甁)

15~16세기 높이 29.5cm 호림박물관




 
청화백자 연지어조문 항아리(靑華白磁 蓮池魚藻文 壺)

元 14세기 높이 28.2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3-17 버드나무문


 

   분청사기는 모두 지방의 민간 가마에서 제작된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관영 가마와 같은 엄격한 제약이 없다. 물론 그런 점에서 기법적인 면으로 보아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문양이나 형태가 제약이나 규제에서 벗어난 만큼 매우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운 느낌과 분위기를 담고 있다.


   버드나무문은 분청사기의 일부에 그려진 문양을 해석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청자의 포류수금문과 같이 버드나무의 이미지를 100%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선 것처럼 자연스럽게 늘어선 파상문이나 일정하게 반복되는 짧은 선묘를 흔히 버드나무 문양이라고 부른다.




 
분청사기 상감유어문 자라병(粉靑沙器 象嵌柳魚文 平甁)

15세기 높이 11.5cm 호암미술관




 
분청사기 유문 장호(粉靑沙器 柳文 長壺)

15세기후반~16세기초 높이 43.8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3-18 계룡산 초화문


 

   공주 학봉리 일대의 계룡산 자락에서 구워진 분청사기는 백토로 분장한 위에 산화철 안료로 간략한 식물 문양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이런 식물 문양은 특별한 어떤 대상을 사실적으로 옮겨 그렸다기 보다는 머리나 가슴 속에 남아있는 풀과 꽃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자의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다.


   초화문의 분류를 보면 풀 문양이 연속된 것처럼 보일 경우 당초문(唐草文)이라고도 하며 간략한 선이 삐죽삐죽한 풀잎을 연상시키거나 채 넝쿨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초문(草文)이라고 한다. 또 풀줄기 끝에 길죽한 타원형의 이파리가 세조각 붙어있을 때에는 삼엽문(三葉文)이라고 부른다. 특히 삼엽문은 고려 철채청자에 보이는 식물 잎새 문양과 비슷해 인삼엽문(人蔘葉文)이라고도 한다.그리고 고사리처럼 끝이 말려올라간 곡선문양이 직선과 함께 있을 경우 여의두문(如意頭文)이라고 표기한다.

 

   계롱산 철화 분청사기에 보이는 이처럼 막힘없고 활달한 표현은 최상의 자연 상태를 최고 가치로 추구하는 일본 다도의 정신을 잘 어울린다고 해서 일본에는 계룡산 분청사기에 대한 애호가와 수집가들이 많이 있다.




 
분청사기 철화초문 대접(粉靑沙器 鐵畵草文 大楪)

15세기후반~16세기전반 구경 17.6cm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철화삼엽문 장군(粉靑沙器 鐵畵三葉文 俵壺)

15세기후반~16세기전반 높이 20.6cm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철화여의두문 병(粉靑沙器 鐵畵如意頭文 甁)

15세기후반~16세기전반 높이 26.5cm 국립중앙박물관






       3-19 분청사기 주요 가마터

 

 

   분청사기 가마터는 약 230곳에 이르며 전국에 고루 분포돼 있다. 대표적인 분청사기 가마터로는 충남 공주 학봉리, 전북 고창, 전남 광주 충효동, 전남 고흥 운대리, 경남 합천 외사리, 경남 밀양 용전리 등이 손꼽힌다.


   흔히 계룡산 가마라고 불리우는 공주 학봉리 가마에서는 16세기 전반까지 철화기법분청사기가 많이 구워졌으며 전북 고창에서는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초에 걸쳐 박지, 조화 기법분청사기가, 그리고 광주 충효동 가마에서는 상감기법 인화기법 분청사기가 다수 발굴되어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이행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충효동 가마는 사적 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흥 운대리에서는 박지 기법조화 기법분청사기가 많이 발굴됐으며 15세기에 분청사기를 구웠던 경남 합천 외사리에서는 ‘삼가인수부(三加仁壽府)’라는 명이 새겨진 도편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경남 밀양 용전리 가마터에서는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초반까지 운영되었으며 이곳에서는 ‘밀양 장흥고(密陽長興庫)’명의 분청사기가 제작됐다.




 
1927년 공주 학봉리 분청사기가마 발굴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사진)





분청사기 인화 고령인수부명 항아리(粉靑沙器 印花 高靈仁壽府銘 壺)

15세기 높이 18.5cm 세카이도(靜嘉堂)문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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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 전 / 호림 박물관 신사분관| 문수회

spark | 조회 75 |추천 0 | 2015.11.25. 08:08



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 – 21세기에 다시 보는 또 다른 전통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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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 – 21세기에 다시 보는 또 다른 전통도자
■ 기간 : 2015. 11. 10(화) ~ 2016. 02. 27(토) 
■ 장소 : 호림박물관 M층 기획전시실

 

   호림박물관은 근대기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해주 백자와 회령도기를 새로운 전시공간에서

여러 분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주 백자는 황해도 해주군 일대에서 생산된 백자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해주 백자는 특히 일제강점기에 옹기로 사용하기 위해 활발하게 제작되었지만

재질은 백자의 형태, 기법을 따르고 있어 독특한 미감을 지니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해주 백자에 표현된 문양은 모란문, 초화문, 어문 등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 장식 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리는 방식은 매우 활달한 필치로 되어 있어 한 폭의 민화를 보는 듯합니다.


한편 회령 도기는 함경북도 회령군 일대에서 제작된 도기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회령 지방의 도기 생산은 고려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고 근대기에

들어서도 제작이 활성화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회령 도기는 짚의 잿물을 유약으로

사용하여 특유의 회청색이 감도는 것이 특징인데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이러한 색감에 반한

일본인들이 ‘영원 불멸의 색’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를 붙일 정도로 애호했다고 전해집니다.

회령 도기에 나타난 강한 원색의 유색은 지금 봐도 세련미가 느껴지며 호림박물관은

해주 백자와 더불어 근대기 우리나라 도자기에 표현된 색채의 향연을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자 합니다.


이번 특별전은 신사분관 지하 M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며 기존 2, 3, 4층 전시실에서는

 <호림 명품 100선展>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표 작품]



크기변환_m층 5468


<백자청화철화어문양파수부대호(해주 백자)>, 20세기 초



크기변환_사본 -m층 10634

<회령유 항아리>, 20세기 초




cafe.daum.net/spark224/i4l5/1053   산마루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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