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 04:37ㆍ美學 이야기
고려 금속공예의 정수 ‘王은 龍이다’ … 그렇다면 용머리잔은 중국에서 왔을까? | |||||||||||||||||||||||||||
김대환의 文響 - 8. 용머리 은잔(銀製龍頭花形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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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용머리 잔의 기원을 중국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나 확실하지 않다. 용머리 은잔은 남북국시대 신라에서 유행하던 앵무새 무늬와 자연의 풀꽃, 구름, 보상화무늬 등을 주제로 조각한 것이어서 적어도 신라말~고려초의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송이 꽃의 몸통에 龍의 머리를 손잡이로 만든 은잔이다(사진①). 이 은잔은 鑄造틀에 부어 성형하지 않고 두꺼운 銀板을 꽃의 전개도 형태로 만든 다음에 꽃잎을 위로 세워 올려서 용접했다. 용머리 손잡이는 별도로 주조해 꽃잎사이의 골에 붙이는 매우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법으로 제작됐으며 꽃잎의 골마다 용접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안타까운 현실은 고려시대 匠人들이 어떤 방법으로 銀板을 만들고 용접을 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제작기법의 확인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탕에 어자무늬를 새기는 이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문양의 또렷한 효과를 보기 위한 것으로, 대개 고급품을 제작할 경우에 치밀하고 정연한 어자문을 바탕에 새긴다. 삼국시대의 금속유물부터 사용된 어자무늬는 남북국시대 신라에서 정점을 이루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후기까지 맥이 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의 金屬工藝室에는 이 遺物과 같은 계통의 용머리 은잔이 전시되고 있어서 좋은 비교 대상이 된다(사진⑤). 이 용머리 은잔 역시 出土地는 알 수 없고 다만 12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머리의 손잡이와 꽃모양 몸통의 상단부, 안바닥의 꽃 부분에 部分鍍金을 했으나 몸통의 형태가 세련되지 못하다. 몸통의 안 바닥과 꽃잎의 상단에는 점열문으로 간략하게 무늬를 찍어 냈으나 조각기술 역시 세련되지 못하다(사진⑥).
일반적으로 용머리 잔의 기원을 중국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나 확실하지 않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고려후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생각돼 왔지만, [사진⑨]의 용머리 은잔은 남북국시대 신라에서 유행하던 앵무새 무늬와 자연의 풀꽃, 구름, 보상화무늬 등을 주제로 조각한 것이어서 적어도 신라말~고려초의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金이나 銀으로 제작된 용머리 잔은 몇 점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두 제작시기가 고려 중기이후로 비정됐으나 [사진⑩]의 출현으로 용머리 잔의 제작시기를 高麗初期로 충분히 올려 볼 수 있게 됐다. 그것은 용머리 잔의 중국기원설을 재검토해야하는 필요성을 숙제로 남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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