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걸출한 화가였다"

2016. 2. 2. 01:54다산의 향기



     

"다산은 걸출한 화가였다" 자료 / 보정산방

2010.08.19. 16:55

           http://sambolove.blog.me/15009235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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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면 한국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있다. 다산은 흔히 사상가로만 알려져 있다. 18년이 넘는 유배생활 중 ‘목민심서’ 등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이 그런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그러나 다빈치처럼 그도 거중기를 고안해낸 세계적인 발명가이자 종두법을 처음 주창한 과학자요, 빼어난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현재 10여점이 남아 있다.

   그에 대한 연구가 사상쪽에 치우친 탓에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을 뿐 그는 조선시대 남에게 뒤지지 않는 작가였다. 그가 1813년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 13년째에 그린 매조도(梅鳥圖·고려대 소장)는 걸작이다. 나뭇가지에 핀 매화와 꽃망울, 서로 교차해 앉아 묘한 균형을 이루는 참새의 모습을 담채로 담았다. 이 그림에서는 유배지에서의 참담한 심정을 쓸어내리며 봄날의 ‘눈물날 것 같은 한가로움’을 담담하게 그림으로 승화시킨 다산의 해맑은 풍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이 그림의 하단에 쓰여 있는 발문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적어놓았다. 내가 유배된 지 수년이 흘렀다. 부인이 여섯폭 헌치마를 보내왔는데 해가 묵어 붉은 빛이 바랬다. 이것을 잘라 두 아들에게 보내고 남은 것은 그림으로 그려 딸에게 보낸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부정(父情)이 절절하다. 

   ‘설경산수도’ ‘담묵산수도’ 등 그가 즐겨 그린 산수도는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인 필치로 서정성 짙은 특유의 화풍을 전개해 남종문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여러 곳에서 “서툰 화가들이 기교를 부리면서 뜻만 표현하고 형태는 그리지 않는다”며 당대에서는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 비평을 하기도 했다.

   다산에 대한 본격 연구서는 20여종이 안될 만큼 의외로 빈약하다. 미술 분야는 단 한 권도 없다. 다빈치에 관한 연구는 분야별로 수천종이 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고 하지만 문화의 르네상스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시계바늘처럼 다가 오는 것이 아니다. 다재다능한 조선시대의 천재가 남긴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빛내고 닦는 일. 문화의 세기로 넘어가면서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 경향신문, 199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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