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다시 보는 다산 사상 자료 / 보정산방
2010.08.1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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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초입에서 지금 왜 다산 정약용인가. 다산을 한국 사상사의 한 고봉으로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지금 새 세기의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그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가. 그것은 개혁이라는 문맥이다. 한국은 지금 개혁도상국( Newly Restruturing Countries )이다. IT( Information Technology )혁명을 축으로 하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을 잘 타지 못하면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세계 각국이 구조조정에 필사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개혁이 아니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고 하면 지금의 한국경제에 관한 말 같지만 실은 다산의 문장 속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다.
흔히 다산을 조선후기 실학사상의 위대성자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개혁사상의 위대성자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는 크고 작은 여러 개혁적 사고의 개울물들을 자신의 물줄기 속으로 모아 체계화했고 큰 강물의 출발점으로 이뤄냈다. 그러므로 구한말 장지연 박은식 같은 개혁사상가들은 정다산의 개혁의 강물로 돌아가 그곳에서 재출발하려 했다. 다시 오늘날 21세기 개혁의 흐름 속에서 다산이 이룬 강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그 순수와 정열 그리고 꿈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흔히 다산을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로 대표되는 정치 경제적 개혁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일면적이다. 새로운 정치 경제적 역할을 흐린 정신, 탁한 윤리를 가진 낡은 인간이 수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개혁은 새로운 정신, 새로운 윤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다산이 경학연구에 훨씬 더 많은 정열을 쏟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정치 · 경제적 개혁을 논한 저술과 경학에 대한 깊은 연구로 스스로 "내와 외를 함께 갖췄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의 정치 · 경제적 개혁과 구조조정정책이 새로운 인간, 새로운 윤리의 확립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다산에게 있어서 개혁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중세적 자연의 세계로부터 벗어난 주체적 존재이며 그 주체는 "천"과 직결된 정신의 소유자였다. 여기에서 중세적 자연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주체적 인간의 발견은 중세적 자연질서의 구체적 표현으로서의 봉건적 사회질서의 철저한 폐기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한 다산의 도전은 중세적 세계를 뒷받침하는 주자학에 대한 도전이며 전학문적 생명을 내건 전면전쟁이었다.
그는 주자학의 세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맹의 원시유학의 세계로 회귀하고자 했던 것이며 다시 공맹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공맹의 원시유학의 소재가 되었던 주례나 삼경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 혹은 서학적 재해석 에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자학적 세계 혹은 중세적 세계에서 인간해방의 길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이고 이러한 생존은 인간에게 길을 열어주는 정치 · 경제적 개혁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다산은 음양오행 이기 풍수와 같은 사변적이고 타율적인 논리를 철저히 부정하고 그 논리 위에 성립한 중세적 신분제와 지주제를 개혁대상으로 삼았다. 대신 독립적이고 경험적인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고 합리적으로 일하는 것을 존중하고 그 길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미래를 열어주는 열린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소생산자 소농민 소상인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개혁론이었다. 이러한 개혁사상은 한국의 근대 1백년의 굴절과 양적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21세기의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개혁사상은 정치개혁사상으로 이어져 "하이상"의 논리가 나타나게 된다. 민을 기준으로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권력질서가 중세에 와서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권력질서로 바뀌어졌으나 이제 다시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권력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개혁론이다.
그는 농업이나 수공업의 각 분야별 전문기술자가 농공업관련 행정직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다산은 개인의 자유로운 이윤을 강조하였다. 각 개인이 이윤추구를 위하여 직업과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이동하면 일종의 균형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사람과 물자는 이윤을 추구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며 자유롭게 이동하면 마치 물이 평평해지듯 전국의 시장이 평평해진다는 것이다.
다산과 동시대에 살았던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매개개념을 통해 시장균형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지만 다산은 그러한 매개개념 없이 "물의 비유"로 그치고 만다. 그것이 다산과 애덤 스미스의 차이라면 차이다. 그러나 시장의 수평이라는 균형개념에 도달한 것은 양자가 비슷하다. 서양에 있어서 애덤 스미스가 시장개념의 상징적 발견자라면 다산은 한국에 있어서 시장개념의 상징적인 발견자다. 다산은 전국적인 시장의 성립을 전제로 분업적 생산체계를 강조했다. 사농공상의 분업에 그치지 않고 농업만으로도 6개 분야로 세분화하여 전문화할 것을 주장했다. 선비를 처음으로 신분개념으로 파악하여 시장속의 사회적 분업의 일환으로 파악했다. 시장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분업체제는 다시 시장의 심화확대를 갖고 온다. 여기에 신분에 기대어 놀고 먹는 양반, 남의 노동의 결과를 지대로 혹은 고리로 받아먹는 지주나 고리대금업자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정치권력과 지방아전들의 전횡은 시장의 공적이 된다. 아울러 시장을 전제로 사회적 분업을 하는 각 전문인은 청빈이 아니라 청부를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을 한국사에 있어서 최초의 시장혁명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21세기의 새로운 시장혁명의 와중에서 다시한번 시장의 심화확대의 의미를 물으면서 다산을 주목하게 된다. 한국의 시장자본주의는 아직도 정치지향자본주의 내지 천민자본주의적 체질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졸부형 축적체제를 청부형 축적 체제로 변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산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개혁의 목표는 무엇인가. 개혁의 목표가 바로 개혁의 과정과 전략을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다산은 "개혁은 치산(발전)을 위함인가, 제산(평등)을 위함인가"하는 물음을 제시하고 결론적으로 치산을 위함이라고 답하고 있다.
다산은 당시의 사회적 분화과정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진 소작인 소농 소상공인 등의 구제에 전력을 기울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치산"이 개혁의 요체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총체적인 개혁론의 체계를 세운 다산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인지 모른다. 다산에게 있어 분배 혹은 평등은 그 자체를 위해서라는 차원을 넘어 경제발전을 위한 사회의 재구성이라는 차원에 가있다. 따라서 생산적 분배론이요, 생산적 평등론이며 결국 발전론적 개혁론이다. 그러므로 다산은 사농공상의 사민의 평등을 주장하되 사는 생산에 공헌하는 지식을 공급해야 하며 공인을 우대하되 공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일종의 공업단지를 이룰 것을 강조하고 무엇보다도 각 생산활동에 있어서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농은 농업전문지식을 활용한 사농으로 공은 공업전문지식을 활용한 사공으로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민형 농공상을 지식투입형 농공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기술혁신형 농공상을 위하여 아래로부터 각 분야의 전문경영인을 발탁하여 그 분야의 행정을 맡길 것을 주장 하면서 국가는 위로부터 외국의 선진기술을 수용하여 각 지방으로 이전하는 "이용감(일종의 기술혁신센터)"을 설치할 것을 제의했다. 개혁을 성장으로 연결시키는 논리전개가 탁월하다.
21세기의 벽두에 세계 각국은 구조조정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20세기형 성장의 연장선상에서 연속적으로 21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파괴하면서 단절적으로 21세기형 성장의 새물결이 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 혹은 개혁없이 21세기의 물결을 탈수 없다. 개혁도상국 한국의 개혁성 성장을 위하여 우리는 한국 개혁사상의 위대성자 혹은 개혁의 강물의 첫 물줄기를 만든 다산의 개혁 꿈과 "백년 뒤를 기다리겠다"는 개혁의 염원을 되돌아 보고 지금의 개혁의 성공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김영호<경북대 교수/경제학> - 한국경제, 20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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