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0. 12:31ㆍ美學 이야기
세계문화유산(460)/ 스웨덴/ 타눔 암각화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문화유산(460)/ 스웨덴
타눔 암각화(Rock Carvings in Tanum; 1994)
스웨덴의 북부 보후슬란(Bohuslan)에 있는 타눔 암각화는 문양이 풍부하고 다양할 뿐 아니라[인간과 동물 묘사, 무기, 선박, 기타] 문화적・시대적인 통합으로 독특한 예술성을 성취하였다. 타눔 암각화는 또한 청동기 유럽인의 생활상과 종교성을 보여주며, 그 규모도 클 뿐 아니라 예술성도 높아 주목할 만하다. 타눔 암각화가 보여주는 다양한 문양, 기법, 구성은 청동기 시대 유럽인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정착지의 연속성과 토지 이용의 일관성은 암석 예술과 고고학적 유물에서 잘 나타난다. 또 타눔 지역의 현대 경관 형태는 8,000년 넘게 지속된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스웨덴 북부 보후슬란은 기반암이 화강암이며, 빙하가 북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일부 땅을 뚜렷하게 깨끗한 면으로 깎아내었다. 삐죽 튀어나온 바위 모서리는 부드럽게 깎여서 곡선 형태로 남아 있었다. 빙하가 물러나면서 바위가 깊게 깎인 면이 이곳에 많이 생겨났다. 청동기 예술가들은 이런 흠집을 ‘캔버스’로 선택하였다. 이 모든 깎인 면은 기원적 1500년 시기에는 해안가 바로 위에 있었는데 오늘날 해수면보다는 25m~29m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 이 타눔 암각화는 뛰어난 예술적 수준과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다양하고, 생생한 경관 구성 측면에서 스칸디나비아・유럽・세계 다른 지역 암각 예술 분야의 것들과 견줄 때 상당히 독특하다. 생생한 장면과 정교한 문양을 복잡하게 구성한 것은 당시의 일상생활, 전쟁 과정, 숭배 생활, 종교 생활을 보여준다. 그 중 일부는 분명히 사전에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암각화가 있는 경관은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심한 변화를 몇 차례 겪었다. 1만 년 전쯤에 땅이 융기하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올랐다. 따라서 바닷물이 범람하고 땅이 융기하는 시절이 계속되었으며, 기후 변동도 심했다. 중석기시대(기원전 9000~기원전 4000)부터 인간이 정착하였다. 기원전 3800년경부터 농업이 시작되고 인간이 영구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 보후슬란 지방에는 신석기시대의 묘지 봉분 몇 기와 통로 형태의 무덤[passage grave]이 남아 있다. 기원전 2400년경에 장례 양식이 석관 무덤에서 매장으로 바뀌었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15m쯤 높았을 때인 기원전 1800년경에 이 지역은 청동기로 접어들었다. 이 무렵 이전 시대보다 훨씬 높은 묘지 봉분을 보후슬란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칼・방패・도끼 같은 청동기 물건이 이때 수입되었으며, 이런 물건은 암각화에 그려져 있다. 기원전 1000년경에 매장을 대신하여 화장 풍습이 생겨나 배 모양으로 된 돌 장식에 유골 단지를 놓았으며, 암각화에도 이런 모습이 많이 보인다. 바위에 새긴 표현을 분석하고 다른 시대의 문화적 소재와 비교하면 무기・연장・배 등이 그려진 이 시대가 암각 예술의 전성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모두는 청동기 전후의 일이다(기원전 1800~기원전 500). 해수면은 계속 낮아져 기원전 500년경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4m쯤 높았다. 해수면이 계속해서 내려가면서 육지부가 넓어졌으나 기상 조건이 악화되어 살기 어려운 시기가 뒤따랐다. 기원후 첫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스칸디나비아인은 비로소 다른 유럽인과 다시 접촉하기 시작하였다. 400년부터 바이킹 시대가 끝날 때쯤까지는 황금기였으며, 바로 이때 보후슬란의 풍경이 오늘날의 형태로 갖추어졌다. 암각화는 돌망치와 정으로 바위에 전체 윤곽을 새기고, 표면을 깬 뒤 먼지를 떨어내기 위해 쪼고 가는 작업을 한 다음 필요한 깊이만큼 갈아서 새겼다. 현재 남은 조각은 깊이가 1㎜ 정도밖에 안 되는 것도 있고, 30㎜~40㎜쯤 되는 것도 있다. 더 깊게 판 형태는 그만큼 상징적으로 중요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임을 알려준다. 북부 보후슬란에는 암각화 기념물이 적어도 1,500개 있으며, 각각은 이미지를 몇 개 지녔다. 하지만 조사가 계속 진행되면서 새로운 그림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런 새로운 그림은 어떤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타눔 교구에서 360개 이상의 유물이 새로 기록되었다. 그림의 이미지는 다양하고 풍부해서 성혈[cup marks]・원반・원・바퀴 문양, 작은 배・큰 배・썰매, 동물, 인간, 손자국・발과 발자국, 바퀴 달린 마차, 원시 쟁기, 그물・덫・미로 퍼즐, 나무, 무기와 기타 장비, 그 밖의 다른 이미지로 모두 13개 범주로 나눌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 이런 조각 이미지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 여기에 따른 중요한 해석이 많았다. 현재 통용되는 설명은 이런 조각 이미지는 두 가지 면에서 원시 상징 예술의 사례라는 것이다. 하나는 도구 표현이며, 삶의 질서와 존재의 형태를 설명하고 있다[무기, 마차, 동물, 인간]. 또 다른 하나는 초월적 세계 표현이며, 다른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생각하고 있다[변형된 형태의 동물과 인간, 육체에서 분리한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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