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6. 08:12ㆍ우리 역사 바로알기
단군의 두번째 수도 유주 당장경은 낙양시 서쪽의 신안현 함곡관이다.
후에 고구려 평양성 발해 현덕부성이 된다. 기자와 위만조선
금나라때 거란지리도 유주는 원래 요나라연경의 서북쪽에 있다.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v/85 요나라의 연경성은 바로 고구려의 남소성관할로 발해 막힐부이며 옛 동평군이자 옛 요양이었다.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s/215 암연현에 있는 옛 평양성이 바로 신안현의 한도이다.
고려와 조선은 고구려 발해땅을 완전히 수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땅을 자기땅안에 구겨넣었는데 그러다 보니 지명은 이동하되 실제 과거의 지명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즉 고구려의 유주가 바로 당장경으로 단군의 도읍지 옜 평양성으로 지금 낙양(요나라 연경)의 서북쪽 한도(韓都)이다. 마한을 가리켜 옛 진국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마침 개주 진국군은 당나라기록에서 이 근방으로 나온다. 청나라의 기록에서는 개주진국군은 곧 개주촉막군(개경을 달리 부르던 말)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고구려때의 지명이 낙양일대가 개주였고 진국군과 촉막군이 있었다는 것이고 고려는 유주와 촉막군지명을 모두 복양일대로 옮긴다. (왜냐면 고구려땅이 자기땅안에 없다면 백성으로부터 전왕조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터이니 실제로 고려사에는 고구려보다 동서는 짧아도 남북은 길다 남북만리의 대국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남북 만리는 맞지만 동서의 길이는 택도없이 작았다.)
광녕은 조선말기에도 발해 중경현덕부라고 알고 있었는데 발해의 중경현덕부가 바로 고구려의 평양성이다. 원나라에서 작성한 요나라지리지에는 유주즉 당장경이자 단군이 새로 옮긴 도읍지가 바로 기자의 평양성이라고 기록했다.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s/184 당나라영주인 유성일대는 화산일대
유성은 곧 조양이고 한나라 창려인데 사마천의 사기에 창려에 왕검성이 있다고 했으니 지금 위남시일대가 바로 왕검성이 있던 곳이고 단군이 도읍을 옮겼다는 유주는 곧 지금 낙양시 서쪽의 함곡관 일대임을 알 수 있다.
요나라의 기록대로라면 기자가 왔다는 고조선의 도읍지 평양성은 신안현으로 지금 함곡관이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사마천의 사기에서 쓰인 왕검성 즉 창려의 왕검성은 당시 한나라가 위만조선과 싸워 이기고 점령한 위만조선의 수도라는 것이다.
고신의 손녀사위인 단군왕검은 위남시에 도읍했다가 낙양의 신안현으로 옮긴 것이고 기자가 오자 다시 동쪽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유력한 후보지가 바로 하남성 정주시로 고구려의 남평양성이다.
단군의 유주 당장경성이며 기자의 수도이자 고구려의 평양성이며 발해 현덕부성이며 요나라의 구요양현후에 연경성외곽의 성이며 금나라의 연경성 외곽성 원나라의 대도성 외곽성 명나라의 중기 북경외곽성이 되는 지금 한나라 함곡관으로 알려진 신안현의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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