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성 대동시에 어니하라는 지명이 남아있었다. 즉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것이다

2016. 2. 16. 08:19우리 역사 바로알기



      산서성 대동시에 어니하라는 지명이 남아있었다. 즉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것이다.| 고구려영토

history author | | 2013.11.07. 11:41


 

산서성 대동시에 어니하라는 지명이 남아 있었다.

 



《성경지》에는 《요사(遼史)》를 인용하여,

“요양현(遼陽縣)은 한(漢)의 패수현(浿水縣) 북쪽에 있다. 패수는 어니하(淤泥河)라고도 하고 점우락(蔪芋濼)이라고도 한다.”

 동사강목 부록 하권 >

 

  산서성 대동시는 요나라의 기록에 발해의 서경성으로 나온다. 고구려의 옛 모국 즉 환도성 근처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을 요나라는 근처에 그들의  상경성을 새로 세운다.

현재의 지도에도 어니하 즉 고구려의 수도와 관련된 지명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고대의 어느시기에 산서성 대동시를 요양현일대로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발해의 상경성(上京城)에 대해, 《대명일통지》에서는 바로 삼만위 지역이라고 하였다. 지금 삼만위의 위치를 상고해 보면, 바로 발해의 부여부 지역이다. 명나라 때에는 아극살산(牙克薩山)으로 경계를 삼았다

 요양현(遼陽縣)은 본디 발해국의 금락현(金樂縣) 지역이다. 한나라 때에는 패수현(浿水縣)이었다. 고구려 때에는 구려현(句麗縣)이라고 고쳤다. 발해 때에는 상락현(常樂縣)이었다. -삼가 살펴보건대, 《대청일통지》에는 금덕(金德)과 상락(常樂)이 현덕부의 현 이름으로 되어 있다. 아래에 상세하게 나온다

 해동역사 속집 제9권 > 지리고(地理考)

 

 



http://blog.daum.net/sabul358/13652203 청나라시기 초창기 고지도



 

   청나라의 고지도를 통해 명나라의 삼만위지역이 요동반도가 아니라 베이징의 서쪽에 있었음을 알수 있다. 발해의 부여부는 거란을 방비하기 위한 곳으로 주력부대가 있었으며 후에 요나라의 황룡부가 된다. 요금원의 고지도를 종합해보면 대략 대동시 일대로 파악된다. 명나라의 기록에는 발해의 상경성에 금나라가 도읍했다라고 한다.

   현재 금나라 황제 아골타의 무덤이 베이징 서쪽 방산현일대에서 발굴되었는데 그는 금나라의 상경성에 매장되었다고 기록에 있으니  거리상으로 볼때 충분히 발해 상경성 관할구역이라고 볼만하므로 명나라의 기록이 맞는 듯하다.그런데 발해의 부여부가 베이징서쪽 방산현에서 탁록현일대는 아닌 것이다. 훨씬 서쪽으로 봐야한다. 지도를 보면 발해상경성서쪽에 보안이란 지명이와야함을 알수 있다. 즉 산서성 대동시가 발해의 서경성이자 요나라의 상경성인데 보안이란지명이 서쪽에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로 보인다.

 

   조선지리지에 철령 일대에는 묘봉산이란 지명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조선의 초기 철령이라고 주장한 팔달령에는 실제로 묘봉산이란 지명이 남아 있으며 요동반도 철령시에도 묘봉산이란 산이 남아 있다. 물론 한반도 철령에도 묘봉산이 있다. 이러한 것은 지명이 이동될때 주변지명도 같이 이동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동된 지명과 원래 현지 지명의 유래가 합쳐지면서 사실상 뒤죽박죽되 버리는 것이다. 동사강목해동역사지리지를 종합하면 현재 산서성 대동시의 어니하가 패수이고 대동시는 요양현이 되고 고구려떄는 구려현즉 고구려의 중심지였고 발해때는 상락현이 된다. 그런데 또다른 기록에는 이곳이 발해의 서경이 아닌 중경현덕부 일대라고 기록이 남은 것이다.

또한 중경현덕부는 고구려의 평양성이다라는 기록도 존재한다. 그리되면 어니하는 패수 즉 대동강이 되고 대동시는 평양성이 된다.

 

 

《위지(魏志)》에 이르기를, “현도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다.” 하였으며, 응소는 말하기를, “현도는 옛 진번국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현도군의 고구려현(高句麗縣)은 옛 고구려이다.” 하였다

해동역사 속집 제4권 > 지리고(地理考) 4 >

 

   이런 지명의 이동에 대한 근거가 있는데 원래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만든 현도군에는 요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산은 지금 산서성 요주에 있으니 당연히 그곳이 현도군이었다. 그러나 고구려가 남하하자 현도군을 옛 진번국 위치로 옮겨버린다. 즉 새로 만든 현도군은 원래 한나라의 현도군 위치가 아닌 옛 위만조선의 진번군 위치로 옮겨져 버린 것이다. 진번의 위치를 알수 있는 조선시대 기록이 있는데 지금 섬서성 진번이 원래 고조선과 훈족의 경계 진번이라고 기록이 남아 있었다. 즉 아마도 산서성과 섬서성 중간쯤에 옛 진번국 땅에 현도군을 옮겨버린 것이고 구려현 역시 원래 산서성 요주 근처에 있었는데 후대에 이르러  산서성 대동시 일대로 오해된 것이다.그렇다면 요양현이 산서성 요주일대에서 대동시 일대로 옮겨진 것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조선시대 전기까지만 해도 산서성에서 베이징으로 흐르는 영정하가 고구려 압록이라고 알고 있어서 고지도까지 남겼건만 조선중 후기에 난하근처로 옮겨지더니  요하를 거쳐 지금 북한 압록강까지 이동해버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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